128화
그것은 아스가르드의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신들 중 최강이라 불리는 아스가르드의 주인 에시르 신족과 바나헤임의 주인인 바니르 신족은 태초부터 서로를 적대시했다.
그로 인해 자주 충돌하였고 전쟁도 많이 했다.
그러나 오딘이 최강의 무기라 일컬어지는 궁니르와 아들인 토르에게 준 묠니르를 가지게 되면서, 세계수의 가장 상층부이자, 세계수 나무의 가장 높은 곳인 아스가르드를 차지하며 전 차원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영생을 얻고 셀 수 없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최고 신들의 자리에서 영생을 누리며 모든 것을 통치하고 있었다.
몇만 년 아니, 몇억 년.
그 영겁의 시간을 살아왔던 에시르 신족이 아스가르드의 주인이 된 후 처음으로 죽었다.
그것도.
에시르도 바니르도 아닌….
미드가르드에 살고 있는 인간.
그 인간의 왕에 의하여….
티르의 목이 세차게 운동장으로 떨어졌다.
펑!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모래바람이 일었다.
모래바람이 차츰 사라지자, 영생을 살아오던 신의 머리가 보였다.
오만했던 표정은 사라지고, 이제는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어떤 표정도 짓고 있지 않은 채 다시는 떠지지 않을 눈을 감고 있었다.
“내 아들이… 신이… 죽는다고?”
오딘이 잘린 티르의 얼굴을 보며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아들을 잃은 슬픔보다 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에시르 신족의 목숨을 가져갈 수 있는 존재가 자신 외에 또 있다는 그 현실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녀의 예언이 정말… 사실이란 것이냐…. 저 녀석으로 인해 정말… 라그나로크가 일어나는 것이냐….’
오딘의 눈에 담겨 있던 티르의 얼굴이 작은 결정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금색의 작은 빛으로 변해 하늘로 올라갔다.
세계수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하늘에 떠 있던 티르의 몸덩이도 결정으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콰과과광!!!!
“꾸에에엑!”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대지를 울리는 괴성이 들렸다.
최한의 시선이 빠르게 운동장 구석으로 향했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인의 모습이 보였다.
기술의 시전자인 티르가 죽자, 거인의 몸을 속박했던 사슬이 끊어졌다.
쾅!!!
자유로워진 거인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저게 민섭이가 말한…. 진짜 저게 한재석이라고?”
거인을 찬찬히 눈에 담던 최한의 머릿속으로 전대 옥황들의 기억이 겹쳐졌다.
‘너 재미있는 인간이구만. 근데 이렇게 계속 윤회하는 인간은 없을 텐데….’
몇 대인지 모를, 아주 오래전 옥황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로키의 모습이 떠올랐다.
“27번째 옥황도 로키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저 녀석들이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아군을 하나 더 만들어놔야지.”
말을 마친 최한이 빠르게 거인이 있는 곳으로 하강했다.
축구 골대를 발로 뭉그러트리고 있는 거인의 눈앞에 최한이 나타났다.
“학교 기물 그만 부수고. 정신 차려라!”
거인의 몸 중앙을 향해 수투르의 검이 나아갔다.
“이 이상 마음대로 하게 놔둘 수 없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천둥소리와 함께 최한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검을 내지르고 있던 최한이 얼굴을 구기며 빠르게 검을 취해 몸을 막았다.
깡!!!!!
무언가에 맞은 최한이 땅바닥으로 처박혔다.
최한이 처박힌 운동장에서 모래 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언제까지고 기다려줄 줄 알았나? 마음대로 설치는 것도 끝이다. 감히 내 동생을 죽이다니….”
붉은 수염이 가득한 근육질의 남성.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 어떤 신들보다 몇 배는 엄청난 기운을 내뿜는 그런 존재였다.
천둥의 신 토르.
드디어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는 방해되니 조용히 처박혀 있거라.”
토르가 거인의 머리를 향해 손을 들었다.
빡!
딱밤을 때리는 것처럼 토르의 손가락이 거인의 머리에 명중하자 엄청난 몸집을 자랑하던 거인이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작은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거인.
티르와는 힘에 대한 강함 자체가 다른 모습이었다.
같은 신이더라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거인을 잠잠하게 만든 토르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망치형 무기. 묠니르로 시선을 옮겼다.
“분명 상처는 하나였는데….”
묠니르의 공격을 담당하는 넓적한 면 부분에 두 개의 흠집이 보였다.
토르의 미간이 구겨지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운동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팟!
자욱하던 연기가 단번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야…. 넌 진짜 강하구나. 아까 지구로 떨어지던 행성보다 더 무거운 것 같은데?”
최한이 목을 돌리며 서 있었다.
최한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던 토르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 짧은 순간에 검의 날로 내 묠니르를 받은 건가….’
분명 지금 느껴지는 강함은 자신이 한 수 위였다.
하나….
피부로 느껴지는 다른 신들과 다른 감각.
체내에 흐르고 있는 마기의 흐름과 농도가 달랐다.
‘끝없는 잠재력이 느껴지는군….’
힘이 정해진 자신들과 달리 인간의 왕이라 불리는 저 사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을 쌓을수록 점점 더 강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행성조차 일순간에 태워 버리는 불꽃을 가진 검.
최강의 무기라 불리는 묠니르에 흠집을 낼 수 있는 강도.
무적이라 불리는 신의 목을 단번에 자른 예리함.
저 붉은 검이 가장 신경 쓰였다.
토르는 사내가 들고 있는 검의 정체를 약간이나마 눈치채고 있었다.
궁니르나 묠니르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붉은 검.
아스가르드에 전설로 내려오는 무기.
‘아마 저게 그 마왕 수투루의 검인가 보군.’
“인간의 왕 따위 신으로 인정 못 한다. 너는 그저 휴거를 방해한 반란 분자.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토르가 묠니르를 높게 들어 올렸다.
“모여라.”
콰과과쾅!!!!
천둥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번개가 하늘에서 내리쳐졌다.
밝은 빛을 뿜어내던 번개가 모두 토르가 들고 있는 묠니르를 향해 모여들었다.
치지직-.
묠니르가 번개의 힘을 받아 밝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토르가 묠니르를 던질 준비를 했다.
강한 공격이 올 것임을 예상한 최한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번 거는 받아내기 꽤 어려울 것 같은데…. 이제 체력이 얼마 안 남았어….’
엄청난 마기가 느껴졌다.
‘저 망치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번개의 성질까지 추가된다면….’
최한이 운동장에 대자로 뻗어 있는 거인에게 시선을 잠시 옮겼다.
‘저 녀석이라도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도움이라도 받을 텐데….’
최한이 입술을 비틀었다.
각성을 하긴 했지만, 아직 수투루의 검을 다루는 것조차 벅차다.
최한은 자신의 몸 상태가 SSS급일 때와는 전혀 달라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야 더 강해질 수 있는 건가.’
최한의 시선으로 새롭게 바뀐 상태창이 떠올랐다.
이름 : 최한
나이 : ∞
종족 : 신
칭호 : 인간의 왕 (EX)
레벨 : 1
능력치
근력 : (EX) B - 2111
민첩 : (EX) B - 2100
내구 : (EX) B - 2100
체력 : (EX) B - 2130
마기 : (EX) B - 2300
특성 : 옥황상제
최종 등급 : (EX) B
< SKILL >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여럿 보였다.
우선 종족이 신으로 바뀌었고, 등급도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최한의 시선을 오래 잡아끄는 것은 역시….
레벨 부분이었다.
레벨 : 1
SSS급일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각성을 한 후 새롭게 상태창에 추가된 부분이었다.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 레벨이 오르는 만큼 강해질 수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였다.
“뭐…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만 있다면 말이지….”
최한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토르가 묠니르의 손잡이 아래 있는 줄을 잡고 빠르게 돌렸다.
위잉위잉-.
엄청난 빠르기로 돌아가던 묠니르에서 바람이 일고 천둥이 뿜어져 나왔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보거라. 내 최고의 공….”
머리 위쪽에서 인기척을 감지한 토르가 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너나 막아 봐. 떨어져라… 메테오.”
학생회장 강진철의 목소리가 울리고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화르륵-.
강한 불길을 내뿜으며 운석이 토르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하등한 인간의 공격이 내게 통할 것 같으냐!”
토르가 돌리고 있던 묠니르를 떨어지는 운석을 향해 던졌다.
슈우웅-.
엄청난 빠르기로 솟아오른 묠니르가 떨어지는 운석에 그대로 직격했다.
콰과과광!!!!!
운석이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뚜둑….
뚜둑….
거대했던 운석이 작은 알갱이가 되어 땅으로 떨어져 갔다.
탁!
묠니르가 다시 토르의 손으로 돌아왔다.
토르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겨우 인간의 공격이 천둥의 신인 이 토르 님에게 먹힐 거라 생각한 거냐?”
“아니…. 당연히 안 먹히겠지.”
강진철의 목소리에 토르의 미간이 구겨졌다.
“하지만… 시간은 벌 수 있잖아?”
“뭐라….”
자신의 기술을 파훼당하고도 만족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목 뒤가 싸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을 번다….’
무언가 깨달은 토르가 빠르게 시선을 옮겼다.
운동장에 대자로 뻗어 있는 거인이 있는 곳으로.
기절한 듯 뻗어 있는 그 푸른 거인의 몸 위로 최한의 모습이 보였다.
“이놈들!!!!”
토르가 분노를 표출하자,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쳤다.
창처럼 변한 번개가 순식간에 강진철을 집어삼켰다.
“커억….”
번개를 직격으로 맞아 온몸이 까맣게 그을린 강진철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토르가 빠르게 거인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멈춰라!”
강진철이 벌어준 시간 덕분에 거인의 몸 위에 먼저 도착해 있던 최한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토르의 모습을 발견했다.
“시간이 없으니….”
최한이 날이 아래로 갈게끔 검을 고쳐 잡았다.
“그만 자고 쳐 일어나! 한재석. 아니, 로키!”
수투루의 검이 거인의 심장을 꿰뚫었다.
푹!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모두의 시선을 멀게 했다.
날아들던 토르도 더는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눈을 가렸다.
“젠장…. 비… 빛 때문에….”
거인이 있던 곳에서부터 뻗어 나간 빛이 운동장 전체를 집어삼켰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오딘도 뿜어져 나오는 빛을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켰던 빛이 차츰 약해져 갔다.
“기억이 조금 돌아왔어.”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오딘과 토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다시는 그 목소리를 들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빛이 사라지고 운동장 중앙에 새로운 모습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까지 올라오는 차이나 셔츠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남자.
햇빛 한 번 받지 않은 것처럼 새하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가 손을 들어, 오딘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야. 친구.”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파팟!
피가 공중으로 흩뿌려졌다.
“네… 네놈… 로키….”
거대한 불의 창이 오딘의 배를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