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시체다!”
조금 전까지 죽은 듯 물 위에 떠 있던 최한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물이 첨벙대는 소리와 최한의 목소리에 백설과 성녀의 시선이 최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둥둥-.
최한의 옆으로 온몸이 검게 그을린 시체가 유유히 떠 있었다.
성녀와 백설의 미간이 구겨졌다.
작은 움직임도 없이 물 위에 떠 있는 그것은 아무리 봐도 시체였다.
철썩-.
최한이 부리나케 시체의 곁에서 떨어졌다.
샘의 가장자리까지 빠르게 몸을 옮긴 최한이 말까지 더듬으며 손가락질했다.
“왜… 왜… 시체까지 넣어 놓은 거야. 이 변태 노인네야!”
“어디 신에게 변태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이 썩을 제자 놈아! 그리고 저건 시체가 아니다. 자세히 보거라.”
헤니르의 목소리에 최한이 고개를 쭉 빼내어 물 위에 떠 있는 시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불에 탄 것처럼 외형이 온통 검게 그을려 있었고, 입고 있던 옷도 곳곳이 찢어져 있었다.
아래부터 쭉 훑어보던 최한의 시선이 시체의 얼굴 부분에서 멈췄다.
이마 정 중앙을 기점으로 정확히 오 대 오로 갈라진 가르마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어 검게 그을린 얼굴을 찬찬히 눈에 담던 최한의 머릿속으로 한 남자의 얼굴이 겹쳐졌다.
“강진철….”
최한의 눈동자가 떨렸다.
옥황상제로 각성 후 거인으로 변한 한재석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기 위해, 토르를 상대하며 시간을 끌었던 강진철의 모습이 떠올랐다.
“죽지 않았구나….”
“거의 죽을 뻔했지. 이 샘에 데려오지 않았다면 필히 죽었을 거야. 인간의 몸으로 토르의 공격을 받았으니…. 뭐, 그래도 이제 걱정 마라. 한 시간 정도만 이 샘에서 회복하면 정신은 차릴 수 있을 거야.”
헤니르의 목소리에 최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다행이다.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제는 그 누구도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 너 뭐 하는….”
강진철의 곁으로 한재석의 모습이 나타났다.
씨익-.
한재석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만 쳐 자고 일어나!”
쿵!
촤아악!!!!
한재석의 주먹이 기절해 있던 강진철의 얼굴을 제대로 강타했다.
사람을 때린 것이라 믿기 힘든 폭발음과 함께 샘에 있던 물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솟아올랐던 샘의 물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비를 맞으면서도 최한과 아이들의 얼굴에는 표정 하나 지어지지 않았다.
황당한 감정에 눈만 깜빡일 뿐.
한재석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만족한 듯 웃어 보였다.
로키….
아니, 저 모습은 서로 앙숙이라 생각하고 물어뜯던 한재석이었다.
“너… 이제 로키 아니야?”
한재석이 최한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까 못 들었냐? 기본적인 한재석의 몸에 로키의 영혼이 들어온 거라니까. 너처럼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의 몸으로 들어온 거라 생각하면 편해.”
“아….”
최한이 단번에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얘기가 편해지는군. 잘난 신이 아니라 그냥 힘만 조금 세진 애송이라 생각하면 되는 거지?”
새로운 목소리에 한재석의 고개가 뒤를 향했다.
“어라…? 진짜 일어났네.”
빠직-.
어느새 그을음은 사라지고 평소의 얼굴빛으로 돌아온 강진철이 서 있었다.
잔뜩 얼굴을 구긴 채로….
“그렇게 세게 때렸는데! 안 일어나겠냐!”
강진철이 한재석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다.
쿵!
쾅!
쾅!
한재석과 강진철이 샘의 중앙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다 죽어가는 놈 일어나게 해줬으면 ‘감사합니다’라고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감사는 얼어 죽을. 네놈 때문에 삼도천 강 건널 뻔했다.”
“삼도천 강은 개뿔. 내가 천 년 동안 봉인돼 봐서 아는데 삼도천 그딴 거 없다. 그냥 존X 깜깜해!”
“시끄러워! 진짜 죽을 뻔했다고.”
평소의 모습이었다.
만날 때마다 서로 으르렁거리던 평소의 모습.
최한이 투덕거리는 한재석과 강진철을 보며 미소 지었다.
‘죽었다 살아나던… 신이 되던… 달라지는 게 없네.’
태평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최한의 앞에 성녀와 백설이 나타났다.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저 녀석, 그렇게 큰 상처를 입고 거의 죽었다 방금 깨어났는데…. 그리고 한재석도 이제 S급이 아니라 신으로 각성해서 강해졌을 텐데….”
“음… 말려야 하나?”
그때.
“아니다. 놔두거라.”
헤니르의 목소리에 최한과 아이들의 시선이 헤니르를 향했다.
“스승님…. 그게 무슨 소리….”
“변태 할배가 강진철은 원래 한 시간 뒤에 눈 뜰 거라고 했잖습니까.”
“변태 늙은이 자기가 뱉은 말도 기억 못 하는 건가? 노망까지 났나 보군.”
빠직-.
헤니르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대답했다.
“그놈에 변태 소리 그만 좀 하려무나. 자세히 보거라.”
헤니르의 눈짓에 최한과 아이들의 시선이 다시 강진철에게 향했다.
조금 전보다도 더욱 혈색이 좋아진 얼굴이었다.
목소리도 더욱 커지고, 표정에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강진철의 변화를 감지한 최한이 미간을 구겼다.
“저건….”
“그래. 그냥 시비를 건 게 아니야. 뭐, 방식이나 말투는 일반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저 녀석 때문에 빠르게 회복한 거야.”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대고 있었지만, 한재석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혈에 직접적으로 자극을 줘서 회복률을 높인 건가?”
최한의 목소리에 헤니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처음 그 한 방부터. 얼굴에 흐르는 혈 자리를 자극해 샘에 흐르는 마기가 더욱 빠르게 돌 수 있게 해놨어. 그뿐 아니라, 서로 투덕거리는 와중에도 자신의 마기를 주입해 남아 있는 피로와 고통을 상쇄시켜주고 있군….”
최한이 고개를 돌려 한재석과 강진철을 바라보았다.
“너 원래 한 시간 뒤에나 깨어날 수 있었는데, 나 때문에 일찍 깬 거야. 감사하다 해, 인마.”
“내가 너보다 한 살 더 많다. 반말하지 마라. 나약한 녀석.”
“나 로키 나이까지 합치면 너보다 몇천 배는 더 살았어. 그리고 나 이제 각성해서 너보다 더 세거든?”
최한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솔직하지 못하긴 하여튼….’
“어이. 싸움은 그만하고 다시 몸을 담그는 게 어때? 빨리 회복하고, 마기를 받아들여야 여행을 떠나지.”
최한의 목소리에 한재석과 강진철의 고개가 동시에 최한을 향했다.
“대장인 척하지 마라. 애송이.”
“큰소리칠 시간에 머리나 정리하지 그래? 떡 져서 꼭 개털 같네.”
빠득-.
최한이 분노에 이를 갈았다.
“풉….”
최한을 바라보던 백설과 성녀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미안합니다. 그게…… 풉!”
최한의 얼굴을 보며 사과하던 성녀가 머리를 보고 또다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이게 어디를 봐서 개털이야! 누가 봐도 윤기가 흐르는구만!”
첨벙.
첨벙.
최한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재석과 강진철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이제는 삼각형 형태로 서로를 바라보는 자세가 되었다.
“윤기가 흐르다니. 어디 말이냐? 너의 뇌 속에 말이냐?”
“개털을 개털이라 부르지 뭐라 그래?”
최한은 더는 반박할 말이 없자, 몸을 숙여 두 손에 물을 가득 담았다.
촤아악!
대포처럼 쏘아진 물이 한재석과 강진철의 얼굴을 덮쳤다.
그저 손에 물을 담아 물싸움을 하는 것처럼 물을 뿌렸지만, 최한은 지금 옥황으로 각성한 신의 육체.
평범하게 손으로 물을 뿌려도 마치 해일이 일어난 것처럼 엄청난 세기로 물보라가 쳤다.
한재석과 강진철의 눈가가 떨렸다.
짜증이 한껏 올라온 표정.
“도전을 받아주마. 애송이.”
“다 죽어!”
촤아악!
펑!!!!
엄청난 물보라가 일었다.
누구 할 것 없이 무작정 물을 뿌려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백설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휴…. 신이 돼도 바보인 건 똑같군.”
“그러게 말입니다. 뭐, 그래도….”
성녀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다행입니다. 모두변하지 않고… 그대로여서….”
“그런가….”
백설의 얼굴에서 작은 미소가 번졌다.
“죽어!”
“너나 죽어라!”
촤아악!
물대포가 서로를 공격하는 와중에도 최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너 때문에 무사히 다시 이렇게 모이게 되었어. 그러니 이 바보들이랑 함께 나아갈게.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민섭아…. 그곳에서는 편하게 쉬어. 우리 팀의 서번트는 언제나… 너뿐이니까.’
그렇게 인간의 왕을 지키는 4명의 기사들이 모두 모였다.
* * *
100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기간 동안 최한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무스펠헤임으로 가 마왕의 검인 수투르의 검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배울 것.
또 하나는 수투르의 검과 귀걸이 아이템으로 장착된 오딘의 눈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신체를 만들 것.
신체를 만든다.
그 방법은 운동을 하거나, 근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펑!
거대한 드레이크의 머리가 하늘로 튀어 올랐다.
[드레이크 200마리 잡기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을 진행합니다.]
최한이 한숨을 내쉬며 짜증을 표출했다.
“이거 완전… 이세계 처음 왔을 때 하던 퀘스트랑 비슷하잖아.”
최한의 눈앞으로 자신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이름 : 최한
나이 : ∞
종족 : 신
칭호 : 인간의 왕 (EX)
레벨 : 1
능력치
근력 : (EX) B - 2111
민첩 : (EX) B - 2100
내구 : (EX) B - 2100
체력 : (EX) B - 2130
마기 : (EX) B - 2300
특성 : 옥황상제
최종 등급 : (EX) B
< SKILL >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띠링!
[보상 완료.]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름 : 최한
나이 : ∞
종족 : 신
칭호 : 인간의 왕 (EX)
레벨 : 2
능력치
근력 : (EX) B - 2131
민첩 : (EX) B - 2120
내구 : (EX) B - 2120
체력 : (EX) B - 2150
마기 : (EX) B - 2320
특성 : 옥황상제
최종 등급 : (EX) B
< SKILL >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에게……. 겨우 이거 오른 거야?”
근력을 포함한 모든 능력치들이 20씩 올랐다.
S급 몬스터에 준하는 드레이크를 200마리나 잡았다.
헤니르가 알려준 드레이크의 신전에 도착해 이곳에 있는 드레이크를 한 마리도 빠짐없이 잡았는데….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 거의 몰살을 시켰는데 겨우 레벨 1 오르고 능력치가 20씩밖에 안 오른다고?”
최한의 목소리에 뒤따라오던 한재석이 말했다.
“겨우 20이 아니야. 등급 하나에 능력치 500 정도 차이 날 거야. 즉, 레벨을 25 정도만 올리면 등급이 하나씩 올라간다는 의미지.”
각성해 로키의 기억까지 가지고 있는 한재석은 이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뭐야? 나만 보이는 건가? 이걸 스승님 혼자 만든 거야? 인간 세계에 있는 게임이랑 비슷한데….”
한재석이 손가락을 튕기자 최한의 상태창이 나타났다.
“너만 보이는 건 아니지. 온건파가 만들었는데. 헤니르 혼자서 만들진 않았지. 헤니르를 포함한 온건파 신들이 고안해낸 방법이라고 했어. 28번째 옥황이 나타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강해지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미드가르드에서 유행인 게임을 모티브 삼아서 만들었다고 하더군.”
“참나…. 신들도 피시방 다녔나….”
한재석이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상태창이 사라졌다.
“아무튼 너는 강해지기만 하면 된다. 퀘스트 깨는 건 우리가 도와줄 테니. 레벨을 올리는 것 말고도 도움이 될 무기들을 구하는 것도 퀘스트 사이사이에 껴 있을 거다.”
“뭐… 혼자 퀘스트 깰 때보다는 확실히 낫네…. 같이하니까.”
볼을 긁적이던 최한의 시선으로 다음 퀘스트가 도착했다.
[NO.2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퀘스트를 확인한 최한의 눈이 흔들렸다.
“뭐야…. 이놈이 아직 살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