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이큘러스를 물리치고 차란투스카 마을을 구한 최한과 일행들이 마을에 있는 드워프의 집으로 초대받았다.
“이큘러스를 물리쳐준 것도 모자라, 부상자들 치료까지 해주시고…. 너무 고맙소.”
붉은 수염을 가진 드워프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뭐…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저희 팀에 회복 마법을 쓰는 친구가 하나 있어서.”
최한의 손짓에 드워프의 시선이 성녀에게 향했다.
“오… 고맙소. 그런데….”
드워프의 시선이 의자에 앉아 있는 성녀의 다리로 향했다.
땅에 닿지 않는 발.
“그대도 드워프인가?”
쿵!
낡은 원목으로 된 식탁에 강하게 잔이 내려쳐졌다.
성녀의 미간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성녀와 달리 드워프는 그녀의 기분이 왜 상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자신은 사실만을 말했으니까.
이 원목에 앉아 있는 인원들 중 땅에 발이 닿지 않는 인원은 드워프들과 성녀뿐이었으니까.
최한이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분위기를 풀려 애썼다.
“하하하하. 에이, 드워프라니. 성녀는 인간이야. 수염도 없잖아. 키가 작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이야.”
찌릿!
최한이 볼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더 기분 나쁩니다.”
“미… 미안….”
그때, 나무 그릇에 색색의 과일이 담겨 식탁에 올려졌다.
“이것도 드셔보게나.”
최한에게 도움받았던 드워프들이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처음 보는 과일들을 대접했다.
“우와… 예쁘게 생겼다.”
어느새 표정이 밝아진 성녀가 과일들을 눈에 담았다.
‘다행이네….’
한숨 돌린 최한이 드워프들을 보며 물었다.
“근데… 아저씨들 이름이 뭐예요? 계속 아저씨라 부를 수도 없고.”
최한의 목소리에 드워프들이 일렬로 정렬했다.
가장 왼쪽에 선 붉은 수염의 드워프부터 차례로 말했다.
“내 이름은 소요. 차란투스카 마을에서 가장 솜씨 좋은 대장장이지!”
“내 이름은 루주크. 차란투스카 마을에서 가장 솜씨 좋은 대장장이지!”
“내 이름은 세리히. 차란투스카 마을에서 가장 솜씨 좋은 대장장이지!”
“내 이름은 요보로. 차란투스카 마을에서 가장 솜씨 좋은 대장장이지!”
“내 이름은…….”
쿵!
쾅!
와르르!
“어딜 감히! 우리 마을에서 가장 솜씨 좋은 대장장이는 나야!”
“아니야!”
“너야말로 아니야! 나야!”
쿵!
쾅!
드워프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했다.
최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게 뭐가 그리 중한디….’
다 똑같이 소개하는 바람에 이름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그나마 수염 색이 특이한 붉은 수염을 가진 드워프. 소요만이 살짝 기억날 뿐이었다.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리고, 순식간에 우당탕탕 싸우던 드워프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췄다.
이어 한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 우리가 시간이 남아도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어디 있지? 진짜 차란투스카로 가는 지도는?”
한재석의 목소리에 소요의 얼굴빛이 변했다.
소요뿐 아니라 함께 있던 다른 드워프들의 얼굴에도 진지한 표정이 지어졌다.
바닥을 뒹굴었던 드워프들이 몸을 털고 일어났다.
소요가 한재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표정을 보니 그냥 떠보는 건 아닌 것 같군요. 어째서 인간의 모습을 한 당신이 우리 드워프 중에서도 소수만 알고 있는 차란투스카의 정체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입니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한재석이 여유롭게 식탁에 있는 과일 한 알을 집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야… 내가 숨겨줬으니까.”
씨익-.
영롱한 그 웃음에 드워프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어…. 뭐… 뭐야…?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최한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소요를 포함한 드워프들이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리고 있었다.
최한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성녀와 백설 그리고 강진철까지 무겁게 변해 버린 분위기에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한재석에게 절을 올리던 드워프 중, 소요가 고개만 살짝 들어 목소리를 내었다.
“당신이 주신 목숨으로 드워프들이 멸종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내려오던 난쟁이 왕족의 피를 하사받은 378대 난쟁이의 왕 소요…. 주군께 인사 올립니다.”
최한과아이들이 말없이 서로 눈만 마주쳤다.
“주군은 무슨…. 우선 일어나. 애들 놀라잖아.”
한재석의 목소리에 드워프들이 몸을 세웠다.
강진철의 목소리가 모두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뭐긴 뭐야? 그냥 어디에나 있을 법한 옛날이야기지. 죽을 뻔한 왕족을 빼돌려 살려준 이야기. 뭐? 흔하잖아?”
여유로운 한재석의 태도와 다르게 소요를 포함한 드워프들의 목소리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그 누구도 못 했던 위대한 일을… 당신이 하신 것입니다.”
“맞습니다. 당신이 하신 일은 왕족과 그 호위를 맡은 기사들이 대대로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드워프의 영웅. 아니, 드워프 종족이 세상에 있게 해준 모든 드워프의 왕이십니다.”
낯간지러운 소리에 한재석이 손사래를 쳤다.
“에이. 그만해. 뭘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저희 드워프들이 은혜를 받으면 꼭 갚아야 하는 생물이 된 것도 모두 주군 때문입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목숨을 살려주신 로키님에게 아무것도…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기 때문에….”
“참나…. 그만하라니까. 너희의 그 대장장이 기술이 세상에 도움되어서, 아까워서 살려준 거야. 진짜 그 좋은 기술이 계승되지 않고 사라질까 봐.”
그윽한 미소를 보이는 한재석의 모습에 소요를 포함한 드워프들이 눈물을 보이며 또다시 절을 올렸다.
“로키 님!”
“목숨을 구해주어서 감사드립니다!”
“역시 가장 높은 아스가르드의 신!”
“이번에도 악을 물리치고 마을을 구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드워프들의 성화에 한재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운데…. 이제 그만 좀 하지….”
툭툭.
누군가 한재석의 어깨를 쳤다.
고개를 돌린 한재석의 시선으로 최한과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뭐… 뭐지? 그 눈빛은?”
초롱초롱한 눈빛.
무언가 아직 해소가 되지 않은 눈빛이었다.
“궁금해.”
최한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아이들의 입에서 한재석을 향한 목소리가 하나씩 이어졌다.
“마무리하지 마.”
“알려줘.”
“궁금하다.”
아이들의 눈빛에 한재석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괜히 말했네. 그냥 지도나 받고 출발할걸….”
끝없이 보내는 눈빛에 한재석이 손을 들어 마법을 발동시켰다.
탁자 위로 금색의 거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거울 속으로 난쟁이들과 토르의 모습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건… 아주 먼 옛날….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 예전의 이야기야….”
한재석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모든 감각이 거울로 빨려 들어갔다.
* * *
브로크와 에이트리 형제.
역대 드워프 중 가장 솜씨가 좋았다고 여겨지는 전설적인 대장장이 형제이다.
차란투스카.
모든 신들이 한 번쯤은 들른다는 전설적인 마을.
황금과 최강의 제련석인 마부라기로 지어진 마을이었다.
무기. 방어구. 그 외에도 장신구 따위를 제작하기 위해 모든 신들이 한 번쯤은 들렀을 정도로.
브로크와 에이트리 형제가 존재했던 차란투스카 마을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곳에 최고신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오딘이 찾아왔다.
깡!
깡!
쇠를 치는 소리만이 울렸다.
최고신의 방문에도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장인 정신은 변함이 없었다.
먼저 의뢰를 받은 무기에 심혈을 쏟고 있던 에이트리 때문에 그의 형제인 브로크가 대신 오딘과 토르의 접대를 맡았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최고신인 오딘님과 토르 왕자님. 차란투스카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리옵니다.”
다소 거칠기로 유명한 드워프 종족이지만, 최고신 앞에서는 어느 정도 예를 갖추는 브로크였다.
오딘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나야말로 반갑소. 당신들이 이전에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다시는 없으리라 평가받는 천재 대장장이 형제인가 보군.”
고개를 살짝 숙인 브로크가 대답했다.
“감사드립니다. 저는 동생인 브로크입니다. 저쪽에 있는 이가 제 형인 에이트리입니다.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무기 만들 때는 너무 몰두해서….”
“하하하하. 장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더 믿음이 가는군.”
표정은 여유롭게 웃고 있는 와중에도 오딘의 외눈은 에이트리를 향하고 있었다.
에이트리 또한 무기에만 몰두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역시 저자는 어울리지 않아.’
망치로 철을 치고 있는 와중에도 곁눈질로 오딘을 관찰하던 에이트리는 다시 한번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보잘것없던 태풍의 신이 어느새인가 최고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소문이 모이는 이곳 차란투스카에는 오딘에 대한 소문도 많이 퍼져 있었다.
근거 없는 소문 따위는 믿지 않는다.
하나 소문은 언제나 그냥은 떠돌지 않는다.
오딘이 짚고 있던 지팡이를 보고 있던 에이트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궁니르.’
지팡이의 본 모습을 꿰뚫어 본 에이트리가 마른침을 삼켰다.
수천…. 수만….
얼마나 많은 신들이 저 무기에 목숨을 잃었는지.
에이트리는 알 수 있었다.
그냥 무기가 아니다.
자신이 치고 있는 것과 같은, 그저 평범한 철 따위가 아니다.
저것은….
‘살아 있는 자들의 영혼을 집어넣은 무기.’
온갖 종족들로 만들어낸 무기였다.
‘역시 저 녀석은 최고신에 어울리지 않아.’
“오… 좋은 무기군요. 뭘 만들고 있는 겁니까?”
에이트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금 전까지는 분명….’
저 멀리 서 있던 오딘이 어느새인가 자신의 등 뒤로 와서 서 있었다.
“이… 이건….”
가까이서 보니 더욱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신이라기보다는 악마를 눈에 담고 있는 듯했다.
“망치로 망치를 때리고 있다라…. 역시 천재 대장장이는 다르군요.”
에이트리가 만들고 있었던 것은, 망치였다.
에이트리의 손에 들린, 철을 때리는 작은 망치와는 다르게 몸통이 거대한 망치.
“예… 이것은 니플헤임에 있는 어느 신께서 부탁한 물건이옵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오딘이 자신의 아들인 토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흐음….”
토르와 망치를 번갈아 보던 오딘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웃음이 지어졌다.
“그럼… 이 무기를 내 아들 토르에게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