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그럼… 이 무기를 내 아들 토르에게 주시오.”
오딘의 목소리에 에이트리가 들고 있던 망치가 떨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은 아닐 터인데. 뭐, 한 번 더 말해주겠네. 지금 만들고 있는 그 무기, 내 아들 토르에게 주게.”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 속에는 감출 수 없는 뱀의 눈웃음이 깃들어 있었다.
성군이라 불리지 않는 신이란 것은 알고 있었으나 역시 피를 흩뿌려 최고신의 자리에 앉은 이답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빨리 치고 들어올 줄이야.
강력한 힘과 최고신의 자리를 이용해 부탁을 빙자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 어떤 이가 최고신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으랴.
눈앞에 있는 자의 말과 기분이 곧 법이거늘….
하나.
“그건 어려울 듯싶습니다. 오딘이시여.”
대장장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었다.
대장장이는 무기를 만드는 사람일 뿐, 그 무기의 운명까지 결정 짓지는 못하니까.
자신이 혼을 깎아 만들어낸 무기가 수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른다.
살인귀의 손에 들어가 이유도 없이 살생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한낱 철이나 쳐대는 이 몸을 천하의 대장장이로 만들어 준 것은 꼭 실력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뢰. 그 어떤 고객과의 약속도 어긴 적 없는 제 의지입니다.”
에이트리의 단단한 목소리와 뜨거운 눈빛에 오딘이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에이트리의 시선이 자신이 만들고 있는 망치로 향했다.
“그리고 전 이 망치를 두드릴 때… 꼭 자신의 자리에 걸맞은 무기가 되라고 치고… 또 치고… 다그쳤습니다. 그러니… 이 무기는 오딘 님과 토르 님께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망치를 향하던 에이트리의 시선이 오딘을 향해 움직였다.
그 영롱한 눈빛과 마주친 오딘의 눈썹 끝이 떨려왔다.
자신을 앞에 두고도 이 정도 기백을 보이는 자가 오랜만이기에 그러기도 했고, 다른 이유는….
‘역시 전 차원을 통틀어 최고의 장인이라 불릴 만한 자긍심이군. 하나… 상대를 봐가면서 객기를 부려야지.’
“자네의 말은 그 무기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니면… 우리만은 가지면 안 된다는 말인가…?”
은은한 웃음을 보이던 오딘의 외눈이 화살촉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오딘이 들고 있던 지팡이에서 빛이 일렁이더니 응축된 마기가 송곳이 되어 쏘아졌다.
푹!
에이트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 아….”
육체의 고통 때문에 흐르는 신음이 아니었다.
마음의 고통.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던 자신의 분신이 눈앞에서 죽어 가는 고통에 흘리는 신음이었다.
툭….
힘없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배를 움켜쥔 브로크가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브로크!”
에이트리가 바닥에 쓰러진 브로크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다.
“안 돼…. 안 돼…. 눈을 떠, 브로크.”
이미 몸속 중요 내장과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지나간 자리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신에게 무기를 만들어 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드워프에게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는 마법 능력 따위는 없었다.
분노에 휩싸여 붉게 충혈된 두 눈이 오딘에게 향했다.
“오딘… 이… 이노… 웁!”
소리치던 에이트리의 입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최고신에게 욕을 하면 그 자리에서 사형이거든.”
지그시 웃어 보이는 오딘의 얼굴이 에이트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더러워 보였다.
웃음이 저렇게 사악하고 더러워 보일 수 있다니.
자신의 동생이 품 안에서 죽어가고 있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나약하게 느껴졌다.
‘개자식….’
그때, 아주 작은 소리가 에이트리의 귀로 들어갔다.
“혀… 형. 나는 괜찮아. 그러니… 그러니까… 끝까지 지켜. 형의 혼….”
스르르.
품에 안겨 있던 브로크의 눈이 감겼다.
완전한 죽음.
입을 움직일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어진 에이트리가 속으로 괴성을 지르며 울어댔다.
‘안 돼…. 브로크…. 브로크….’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에이트리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오…. 자신의 기술만 믿는 대장장이들에게도 형제애는 있는 건가? 신기하군.”
오딘의 곁으로 토르가 다가와 말했다.
“약한 존재들은 사랑이란 감정을 가지고 태어나니까요.”
품에 안긴 동생의 몸이 굳어갈수록 에이트리는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개자식들…. 눈앞에서 동생이 죽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그때.
똑똑!
에이트리의 대장간을 울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오딘과 토르의 몸이 문을 향해 돌아섰다.
동시에 대장간의 문이 열렸다.
“나왔다! 에이트리! 부탁한 거 다 해놨겠지?”
끼이익….
낡은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는 동안,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이 대장간에서 벌어진 상황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뭐야? 로키잖아?”
“네가 왜 여기에….”
오딘과 토르가 문을 열고 들어온 로키를 확인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빠르게 상황 파악을 마친 로키가 오딘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최고신 자리에 앉더니, 바쁜가 보네? 예전엔 같이 여행도 자주 갔는데 말이야.”
“허허…. 철없는 건 여전하구만. 바쁜 건 내가 아니라 자네겠지. 까마귀를 풀어 찾아도 어디 있는지 통 찾을 수가 없더구만.”
“하하하. 요즘에 니플헤임 좀 여행하고 있어서 말이야. 그건 그렇고….”
로키가 토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이다, 번개돌이. 이제 좀 태가 나오는데? 번개는 좀 다룰 수 있게 됐나 봐?”
빠직.
토르가 표정 전체에 짜증을 드러내며 몸을 뒤로 뺐다.
“애 취급하지 마! 이 몸은 번개신 토르다. 아무리 아버지와 친구라 해도 최고신 서열 2위인 이 몸을 무시하면….”
툭.
로키의 손이 또다시 토르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
“알았어, 알았어. 왕자님. 너 멋지다. 번개의 신이야? 많이 컸네. 번개돌이.”
빠직.
“아!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로키와 토르가 투덕거릴 동안, 대장간의 주인인 에이트리는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눈으로 보이는 로키와 신들의 움직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이트리와 로키의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이 상황은 왜 그런 거야? 무슨 일 있었어?”
로키의 목소리에 오딘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에이트리를 보며 말했다.
“아니, 명성이 자자한 드워프에게 부탁 하나를 했는데, 들어주지 않아서 말이야.”
“뭐? 최고신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아이고…. 근데 부탁이 뭐였는데?”
“저기 보이는 망치. 저 무기를 내 아들 토르에게 달라고 했지. 그런데, 뭐… 고객과의 신뢰 어쩌고 하면서 안 주는 거 아닌가. 그래서 벌을 좀 줬지. 뭐… 한 놈도 마저 죽여 볼까?”
오딘이 지팡이를 주저앉아 있는 에이트리를 향해 들어 올렸다.
에이트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안하다, 브로크. 복수는 못 해줄 것 같다….’
오딘의 지팡이 위로 마기가 모여들었다.
“그럼 잘 가라, 난쟁이. 최고신을 거스른 죄. 모든 난쟁이들이 갚게 하마.”
지팡이 위로 모여진 응축된 마기가 에이트리를 향해 발사되었다.
탁.
누군가의 손이 지팡이에 얹어졌다.
동시에 에이트리의 목숨을 앗아가려 발사된 마기 역시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로키?”
오딘을 막아선 자는 로키였다.
로키의 웃음소리가 대장간을 가득 울렸다.
“하하하.별것도 아닌 일에 최고신까지 나서고 있냐. 저 무기 때문에 그런 거잖아. 저 무기 줄게. 내가… 주인이거든.”
로키의 목소리에 에이트리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로키? 네 물건은 그게 아니잖아.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마음속으로 소리치고 소리쳤지만, 오딘의 저주에 걸려 있는 에이트리는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죽은 동생을 품에 안은 채 굳어 있는 에이트리를 향해 로키의 고개가 움직였다.
짧은 시간.
로키와 눈이 마주친 에이트리는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소리 없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죽는 것보단 낫잖아. 목숨을 소중히 해.’
에이트리의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져 갔다.
“하하하하하!”
오딘의 웃음소리가 대장간을 가득 채웠다.
“뭐야? 저 녀석이 말하던 니플헤임의 신이 너였어? 이 망치의 주인이 너였구만! 로키!”
에이트리를 향하던 시선을 빠르게 오딘에게 돌린 로키였다.
“맞아. 겨우 이런 일로 손재주 좋은 난쟁이들을 다 죽일 순 없잖아? 마침 토르가 번개도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무기를 선물로 줄게. 고마워해라, 번개돌이. 이거, 내가 찾아온 광물로 만든 좋은 무기야.”
“하나도 안 고맙거든. 그리고 번개돌이라고 그만 불러!”
“하하하하하!”
오딘과 로키의 웃음소리가 더 커져만 갔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
잘 마무리될 줄 알았다.
오딘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전까지는.
“확실히 이 손재주 좋은 난쟁이들을 모두 죽이는 건 조금 아깝긴 하지. 하나… 이렇게 강한 보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탁월한 존재들은… 그냥 둘 수 없지.”
로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게 무슨….”
오딘의 얼굴에 악마가 나타났다.
“이 정도로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언젠가 우리를 죽일 수도 있을 만한 무기도 만들어내지 않겠나? 그러니… 싹을 잘라 둬야지. 소문을 들어보니… 이놈들 중에도 왕족이 있다더군.”
속박 저주에 걸려 있던 에이트리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왕족은 다른 드워프들과 달리 몇 배는 더 손재주가 뛰어나고, 무기에 고유의 마법까지 부여할 수 있다고 하더군. 뭐, 소문일 뿐이지만… 혹시 그 혈통이 정말 있다면… 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놈은….”
오딘의 몸이 에이트리를 향해 돌아섰다.
“전대미문의 천재 대장장이. 에이트리뿐이지.”
에이트리의 시선으로 오딘의 얼굴이 가득 찼다.
미소.
아니, 미소라기에 그 웃음은 너무도….
부정적인 느낌을 많이 담고 있었다.
두근두근.
‘이놈…. 처음부터… 나를 죽이기 위해 온 거였어.’
방문한 목적도, 이 무기를 걸고넘어지며 떠본 것도, 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며 마기를 날린 것도 모두….
처음부터 계획하고 온 것이었다.
“태초부터 전해진 이 전설의 무기 궁니르와 견주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무기인 걸 처음 본 순간부터 느꼈었다. 이 정도의 무기라면 웬만한 하급 신들도 단숨에 아스가르드에 있는 신만큼 강해질 수 있겠지. 그러면….”
씨익.
미소 짓던 오딘의 지팡이가 껍질이 벗겨지는 것처럼 변하더니, 이내 제 모습인 궁니르의 모습이 되었다.
위엄 있는 긴 창의 모습.
목표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꿰뚫는다는 최강의 무기.
오딘이 궁니르를 들어 에이트리를 향해 던지려 했다.
“내 자리가 위험하잖아.”
파바밧!
엄청난 소용돌이를 내뿜으며 궁니르가 오딘의 손을 떠나고 있었다.
탁!
휘이잉….
엄청난 기세로 나아가려던 궁니르가 오딘에 손에서 그대로 멈췄다.
오딘의 시선이 궁니르의 앞을 막고 있는 손가락으로 향했다.
“어이, 어이. 그거 여기서 던지면 이 마을이 아니라 이 차원 다 날아간다고. 그러니… 잠깐 얘기 좀 하자,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