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대장간의 있는 모든 이들이 로키의 행동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중 누 가뭐래도 가장 놀란 이는 다름 아닌 오딘이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여유로운 미소만 보이던 오딘의 미간이 구겨졌다.
순식간에 뿜어져 나온 마기의 기운 때문에 토르와 에이트리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압박감을 느꼈다.
엄청난 중압감에도 정작 그 공격을 막은 당사자.
로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있었다.
아스가르드의 신이자, 신들 중 가장 높은 왕족인 토르조차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갑자기 벌어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마치 속박술에 걸린 에이트리처럼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못했다.
‘만약 아버님과 로키가 싸운다면 니다벨리르뿐 아니라 전 차원이 파괴될지도 몰라….’
실실 웃기만 하고 자신에게 농담이나 하는 놈이지만, 토르는 알고 있었다.
저 바보 같은 놈이야말로 최고신인 오딘과 겨룰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꿀꺽.
번개의 신인 토르조차 이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로키와 오딘이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
마치 폭풍전야처럼 불안감과 공허가 공존했다.
“…….”
긴 공허의 시간.
이 숨 막히는 침묵을 끝낸 것은 로키의 밝은 목소리였다.
“너 이제 최고신인데, 차원 날리고 그러면 평판 떨어진다고.”
미소와 함께 오딘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로키였다.
순식간에 뒤바뀐 분위기에 토르의 눈이 두 배나 커졌다.
“최고신이나 돼서 차원 파괴하면 헬헤임에 있는 괴물 새끼들이랑 다를 게 뭐냐? 이제 너 세계수의 통치자야, 인마.”
그 누가 최고신에게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으랴.
하나 유일하게 오딘과 진지하게 겨룰 수 있는 강한 힘을 지닌, 함께 긴 시간 여행을 다닌 로키라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
팟!
궁니르가 다시 지팡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음…….”
로키의 말이 조금은 통했는지, 오딘이 표정을 누그러트렸다.
오딘의 표정을 확인한 로키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그 이유 말고도, 아직 저 녀석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고.”
로키의 손이 화로 옆, 구석으로 향했다.
오딘의 시선이 그곳으로 옮겨졌다.
망치.
에이트리가 두드리던 망치가 보였다.
“저거 아직 완성품 아니야.”
“…….”
오딘이 말없이 망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것은 알고 있었다.
한쪽 몸통 부분에 미세한 차이가 보였으니까.
“너와 토르가 강해져야 아스가르드도 건재할 거 아니야? 네가 그랬잖아? 네 아들한테는 최고신의 자리를 넘겨줄 수 있다고. 그러니까 너랑 토르가 최강이 되어야지.”
로키의 목소리에 오딘의 외눈이 토르를 향했다.
“저 꼬맹이. 마기나 육체 자질 그런 거는 나를 뛰어넘지만, 세세한 전투 능력은 아직 멀었잖아. 그러니 저 최강의 무기가 있어야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오딘이 망치를 들고 있는 토르의 모습을 상상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군…. 하지만.”
이야기를 잘 듣고 있던 오딘의 시선이 에이트리에게 향했다.
오딘의 시선이 닿아 있는 동안 에이트리는 마치 죽음을 앞둔 사형수처럼 절망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오딘이 잠시 생각하다 입을 떼려 했다.
“저….”
그때, 오딘의 목소리를 로키의 목소리가 앞질렀다.
“그러니까 안 죽인다는 게 아니야. 내가 죽일게.”
로키의 목소리에 에이트리뿐 아니라, 오딘도 놀라 잘게 눈을 뜬 채 로키를 바라보았다.
“이 망치가 다 만들어지면 내가 토르에게 선물하고, 저 에이트리라는 녀석과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모든 난쟁이들을 죽일게. 혈통이 끊기면 아마 우리를 죽일 보물 무기 따위는 만들지 못할 거야. 어중이떠중이들이 장신구나 만들 수 있겠지. 그 정도는 우리도 필요하잖아? 아스가르드 신들도 그렇고 나도 난쟁이들 잘 이용한다고. 모두 죽이는 건 좀 그렇잖아?”
로키의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거짓말을 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혈통만 모두 죽이고. 혹시 모르니 난쟁이의 반 정도와 이 마을 자체를 없애자. 마을 자체를 다시 시작하게 만들면 오래 걸리겠지. 발전하는 데도….”
로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최고신의 명성에 피해가 간다는 것도, 무기에 관한 것도, 나머지 난쟁이를 살려둬야 한다는 것도.
“그래. 그러지.”
오딘이 몸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뒷일은 자네에게 맡기네, 로키.”
오딘이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딱!
에이트리를 죄고 있던 속박술이 풀렸다.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자 에이트리가 곧바로 소리쳤다.
“이 개…. 읍.”
로키가 허리 뒤로 손을 숨겨 손가락을 튕겼다.
딱….
오딘이 작게 들린 소리에 고개만 뒤로 돌렸지만, 그의 시선에 보이는 것은 동생의 시체를 안고 울고 있는 드워프뿐이었다.
“가자꾸나.”
오딘과 토르가 문을 나섰다.
쾅!
오딘과 토르가 문을 나서고 한참이 지날 동안 로키는 에이트리에게 건 마법을 풀어주지 않았다.
“미안….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 너뿐 아니라… 모든 난쟁이들이 멸망하게 할 순 없잖아….”
대장간에 로키의 슬픈 목소리만이 남게 되었다.
.
.
.
오딘과 토르가 차란투스카 마을에 다녀간 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동생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천재 대장장이 에이트리는 묠니르를 완성시켰다.
그것을 받아든 로키가 아스가르드로 가 토르에게 전달했다.
오딘이 마법 거울로 차란투스카 마을을 비춰보았다.
차란투스카 마을 자체가 불에 휩싸여 있었다.
거리에는 드워프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마을의 반 이상이 무너져 있었다. 이미 차란투스카의 위용 있던 모습은 모두 사라진 후였다.
마법의 거울이 마지막으로 에이트리의 대장간 쪽을 비추자, 오딘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럼 물건도 전달하고, 일도 완료했으니 난 다시 여행 좀 떠날게.”
로키의 목소리에 오딘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온 김에 즐기다 가지 그래? 밤에 연회를 열려고 했는데.”
“아니. 빨리 여행하고 싶은 곳이 있어서.”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놈이군.”
“그럼 간다. 야, 번개돌이. 무기 잘 써라.”
손을 흔들던 로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오딘의 눈을 피해 로키가 니다벨리르의 깊은 지하로 향했다.
보라색 꽃이 피어 있는 긴 동굴을 지나자, 미로의 입구가 보였다.
장난의 신이라 불리기 오래전 직접 만들어 낸 차원과 단절된 공간.
그 입구 앞에 에이트리와 다른 드워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인사할 겨를도 없이 로키가 에이트리를 향해 말했다.
“차원 자체를 차단해서. 아마 오딘도 눈치 못 챌 거야. 그래도 내가 이곳에 오래 있으면 마기가 새어나가서 발각될지도 모르니 잠깐 얼굴만 보러왔어.”
에이트리가 로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고맙소. 그런데 마을 자체를 옮길 수 있다니 당신의 힘은 대체….”
“에이…. 이 정도는 나한테 껌이지. 이래 보여도 아스가르드 1, 2위를 다투는 최고신이라고. 원래 마을이 있던 자리에 마법으로 시체를 만들어내서 오딘 눈을 속였으니, 걱정 말고. 위에 남아 있는 드워프들도 걱정 말고. 아마 오딘이 건들지 않을 거야.”
“정말…… 고…맙소….”
“암튼… 여기서 좀 지내. 시간이 많이 흘러서 오딘이 조금씩 이 사건을 잊고, 남아 있는 드워프들이 위에서 발전하면… 너의 후대를 보내 위에 있는 마을에서 살게 해. 다시… 너희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때가 되면 너희가 살던 장소는 잘 보존하고. 난… 여기가 좋거든. 꼭 나중에 다시 올 수 있게 해줘.”
로키가 주머니에서 작은 구슬을 꺼내 에이트리에게 건넸다.
“이… 이게….”
“너희 마을이야. 내 힘으로 이 구슬 안에 봉인했어. 미로를 돌아다니다, 큰 평지가 나오면, 그때 이걸 땅에 두고 박수를 세 번 쳐. 그럼… 너희의 마을이 다시 나타날 거야.”
별거 아니라는 듯이 작은 미소를 보이는 로키였다.
아주 작은 선행을 행할 때 보이는 미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청난 일이었다.
아니, 종족의 멸종을 막아준 천의 은인이 짓는 표정이라 믿지 못할 정도였다.
턱 끝이 떨리던 에이트리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드워프 왕족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우리 난쟁이들은 전 차원의 신인 아스가르드의 최고신 오딘이 아니라, 드워프의 은인 로키만을 주군으로 모시며 살아갈 것입니다.”
에이트리의 뒤쪽에 있던 모든 드워프들이 무릎을 꿇고 로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에이트리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만 년이 지나도, 드워프의 왕과 혈통이 모두 바뀌어도 드워프 종족이 모시는 유일한 신은 로키뿐일 것임을 약속합니다.”
은인.
겨우 그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드워프들은 로키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로키가 부끄러운지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흠흠… 부끄럽게…. 암튼, 잘살아라!”
딱!
로키가 드워프들에게 보호 마법을 걸었다.
에이트리를 포함한 드워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로키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문을 지나 미로 속으로 들어갔다.
“이 미로 속은 만든 나도 알 수 없게 되어 있어. 그러니… 그 길은 너희만 알고 있어. 나중에… 세상에 올라오면 내가 찾으러 갈게.”
로키의 목소리를 끝으로 드워프 왕족과 첫 차란투스카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 *
과거를 비치던 거울이 일을 마치고 사라졌다.
“이게… 기억도 나지 않는 예전에 있던 일이야. 내가 그들을 구해준 게 아니라, 난 그저 내가 좋아하던 드워프들과 차란투스카를 지키려 한 거뿐이야.”
한재석의 긴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한재석의 입만 움직였지만, 그곳에 있던 최한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한 번도 껴들지 않고 끝까지 그의 말만을 경청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의 끝을 들은 지금 그들이 짓고 있는 표정은.
“…….”
최한을 포함한 아이들의 표정이 멈춰 있었다.
멍하다.
혼이 빠졌다.
딱 그렇게 표현하는 게 맞는 표정.
한재석이 식탁에 앉아 있는 그들의 표정을 한 번 쓱 훑었다.
“뭐냐…. 그 표정은.”
한재석의 목소리에도 최한과 아이들은 과거의 이야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아주 약간 더 정적이 흐른 뒤.
“와! 너 좋은 놈이었구나! 한재석은 싸가지없기만 했는데 로키 너 착한 놈이었잖아!”
최한을 시작으로 옆에 있던 성녀도 박수까지 치며 소리쳤다.
“너는 너무 멋진 착한 놈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한재석을 끌어안으려 달려들었다.
“으아악!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소요와 드워프들이 소리높여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그들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으아악! 떨어지라고!”
“싫어!”
“착한 놈이었구나!”
아이들이 모두 한재석에게 매달려 있던 그때.
띠링!
[보상을 진행합니다.]
[드워프의 보물 지도를 획득합니다.]
“그럼… 받아주시지요. 셀 수 없는 시간을 지나 드디어… 우리의 왕에게 전해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멈춰 버린 한재석과 아이들의 앞으로 소요가 낡은 지도 한 장을 들고 서 있었다.
최한과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럼…. 가볼까? 진짜…. 차란투스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