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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귀환자 학교가다-141화 (142/211)

141화

이 정도로 화난 한재석의 모습을 보는 것은 최한 일행도 처음이었다.

가스트롭니르를 지키는 문지기 늑대도 눈에 보일 정도로 엄청난 마기를 뿜어내는 인간의 모습에 온몸을 떨었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어떻게 그 정도의 마기를….”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한재석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내가 분명 방금 마지막이라고 말했을 텐데….”

한재석의 눈이 칼날처럼 번뜩이더니 얼굴 앞으로 붉은 마법진이 나타났다.

고대 문자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일렁이더니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모습이 나타났다.

온몸이 불로 이루어진 그 쌍두사는 곧바로 자신의 적을 발견하고 마법진에서 긴 몸을 쭉 빼내며 나아갔다.

7번 문지기인 거대한 늑대가 반응하기도 전, 쌍두사가 늑대의 온몸을 꽁꽁 휘감았다.

“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옆으로 꼬꾸라진 늑대의 모습에 최한과 아이들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각성한 한재석이 강한 건 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시시한데? 가장 강한 문지기라 그래서 꽤 기대했는데….”

“한 번도 통과한 사람이 없다 하지 않았나요?”

“이거 꿀 퀘스트였네….”

들었던 것과 달리 한방에 나가떨어진 7번 문지기의 모습에 아이들의 시선이 한재석에게 모였다.

아까처럼 분노만 드러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분노가 얼굴 곳곳에 끼어 있었지만, 늑대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재석의 얼굴엔 최한과 아이들처럼 허탈한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이 녀석이 아니야.”

“뭐가?”

“내가 알던 7번 문지기가 아니라고. 거기다 이 모습도 진짜가 아니야.”

“이 모습도 진짜가 아니라고?”

최한이 쌍두사에게 온몸을 졸리고 있는 늑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펑!

작은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뭐야? 저게 본 모습이야?”

연기가 사라진 장소에는 늑대가 아닌, 온몸이 바위로 된 거인이 서 있었다.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간 거인이 힘의 차이를 느끼고는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 그만. 잘못했습니다. 모두 말할 테니. 이 불의 뱀 좀 떼어 주시오.”

무릎까지 꿇으며 머리를 살짝 숙이는 모습에 한재석이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화르륵-.

바위 거인을 감싸고 있던 쌍두사가 연기가 되어 사라져 갔다.

터벅.

터벅.

한재석이 바위 거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묻는 말에 제대로 답하는 게 좋을 거야. 거짓말을 하거나, 한 번 만 더 관련 없는 말을 지껄이면, 그때는 진짜 죽인다.”

꿀꺽.

한재석을 보고 있던 바위 거인이 마른 침을 삼켰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끝도 없는 마기는 무엇이냐…. 어찌 이런 작은 몸에서….’

“알겠습니다. 문을 지키지 못하고 패배한 문지기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원하는 답을 알려주고 문을 열어드리리다.”

한재석이 바위 거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첫 번째로 네가 왜 펜니르의 흉내를 내고 있었지? 그 녀석은 오딘에게 봉인당해 있을 터인데.”

한재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위 거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것을 어떻게…. 이곳에 있는 요툰들조차 몇 알지 못하는 사실인데……”

“내가 대답만 하라 그랬을 텐데.”

순식간에 다시 시퍼런 칼날처럼 변한 한재석의 눈매에, 바위 거인이 겁에 질려 빠르게 대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펜니르의 외형을 하고 있던 이유는 이곳 우트가르트의 왕 우트가르트 로키 님이 마법을 사용해주신 덕분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하고만 있어도 적이 겁먹을 것이라고….”

한재석의 한쪽 눈썹이 사선을 그렸다.

“응? 우트가르트 로키라고?”

그 이름에 놀라는 이는 한재석뿐만이 아니었다.

최한과 다른 아이들도 서로 눈을 마주치며 그 이름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트가르트 로키라고?”

“애매한… 짝퉁 냄새가 나는데….”

아이들의 말을 신경 쓰고 있던 한재석이 다시 바위 거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래. 그 모습에 대한 건 이제 되었고. 우트가르트 로키라고 했나? 언제부터 요툰헤임의 왕이 우트가르트 로키가 된 거지?”

“지금으로부터 삼천 년 전쯤, 너무도 길게 비어 있던 왕의 자리를 놓고 장로들이 회의를 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리더를 잃은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과거를 회상하는 것인지 바위 거인이 어두컴컴한 하늘을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장로들의 선택으로 각 지역에 있던 강한 요툰들이 모두 왕궁에 모여 왕위를 놓고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그때, 모든 요툰들을 물리치고 왕이 된 분이 새로운 왕인 우트가르트 로키 님입니다. 그리고 그는 왕위에 앉으면서 요툰헤임의 명칭을 우트가르트로 바꿨습니다.”

“그럼….”

“네. 지금 이곳은 요툰헤임이 아닌 우트가르트라고 불리는 세계입니다.”

“크… 크하하하하.”

바위 거인의 말을 경청하던 한재석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영문 모를 웃음에 바위 거인뿐 아니라, 곁에 있던 최한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얘 왜 이래?”

“냅둬. 실성했나 보지. 짝퉁한테 이름 뺏겨서.”

강진철이 한재석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들의 반응에도 한참을 더 큰 소리로 웃던 한재석이 단숨에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감히 허락 없이 이름을 사용한 것도 모자라, 태초부터 이어온 요툰헤임의 이름까지 바꿔? 누군지는 몰라도 만나면 온몸을 가루로 만들어주마….”

차분하기에 더욱 무서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때.

그런 한재석의 분노를 지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려우실 겁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

아니, 한재석의 힘을 보고도 내뱉는 그 목소리에는 한 치의 거짓이 없었다.

바위 거인이 다시 한재석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냥 잔재주로만 왕이 된 게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요툰을 물리치고 왕이 된 자입니다. 말 그대로 엄청 강합니다. 얼마 전… 전쟁의 신이라 불리던 아스가르드의 티르라는 신의 공격도 막아낸 최강자입니다.”

바위 거인의 입에서 나온 ‘티르’라는 이름에 최한과 아이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의 힘은 지구에서 똑똑히 확인했으니까.

행성 하나를 던져 차원 하나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진 신.

최한이 옥황상제로 각성하지 않았다면…. 그의 손에 수투르의 검이 없었다면….

아마 지구는 사라졌을 테니까.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바위 거인의 말대로라면 이곳의 새로운 왕인 우트가르트 로키는 티르와 동급이거나, 혹은 티르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최한과 아이들의 가라앉은 표정을 보던 바위 거인이 한재석을 보며 말했다.

“문은 열어드리겠습니다. 하나 왕과 전투를 하러 가는 길이시라면 말리고 싶군요. 이상하게 당신들에게서는 이곳을 침략하려는 악의가 보이지 않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괜찮아. 그 우트가르트 로키라는 놈이 아무리 강해도.”

“그게 무슨….”

“그 이름을 쓰는 이유까지는 모르지만… 대충 내 느낌이 맞겠지. 너 역대 거인 중에 가장 강한 자가 누군지 알고 있냐?”

“그거야 왕인 우트가르트 로….”

바위 거인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바위 거인의 눈이 감겼다.

“우트가르트 로키 님도 강하지만 역시… 단 한 명만 꼽는다면 그분밖에 없지요. 저도 어릴 적 단 한 번밖에 본 적 없지만… 아스가르드 신들도 두려워하던 가장 강한 요툰이 있었죠. 반신. 그러니까 반은 신이고 반은 요툰이긴 했지만… 그는 신보다 우리 요툰을 사랑했지요. 그리고 그 어떤 요툰보다도 정말 강했던 왕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왕의 이름은… 로키…. 로키 님입니다.”

긴말을 마친 바위 거인이 눈을 떴다.

그의 시선으로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하얀 얼굴이 들어왔다.

“그러니까 괜찮다는 거야. 내가 바로….”

한재석의 얼굴을 담고 있던 거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신은….”

바위 거인의 시야가 뿌예지며, 몇천 년 전인지도 모를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다.

* * *

그것은 내가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이곳이 우트가르트가 아닌 요툰헤임이었을 때의 일이었다.

들판에 있는 나무보다도 키가 작던 어린 시절.

나는 또래 친구들과 항상 숲에서 전쟁놀이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신이 났던 나는 요새를 찾는다며 평소 가지 않던 깊은 숲까지 들어가 버렸고, 얼마 되지 않아 난 길을 잃어버렸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숲의 안쪽에는 늑대들과 이형의 괴물들이 살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나는 두려움에 움직이지 못하고 커다란 나무 아래에 몸을 웅크리고 울기만 했었다.

늑대 울음소리에 얼마나 겁에 질려 있었을까.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거인이라기에는 아주 작은 몸집을 가진 자가 보였다.

그는 언젠가 부모가 이야기하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느껴지는 마기는 그간 봐왔던 거인과 신들이 가지고 있는 마기보다 훨씬 강한 느낌이었다.

“길을 잃었나 보군, 꼬맹이.”

그자는 내 손에 들려진, 나무로 만든 검과 방패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건 나무로 만든 검과 방패인가? 꼬마, 설마 너 전사가 되고 싶은 거냐?”

혼자가 되지 않아서인지, 강한 마기와 다르게 여유로우면서도 친근한 미소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난 그에게 어떠한 경계심도 보이지 않고 바로 대화를 이어 갔다.

“아니. 난 최강의 문지기가 될 거야. 우리 왕국을 공격하는 에시르 신족이나 다른 신들에게서 가족과 우리 종족을 지키는 최강의 문지기. 난 꼭 7번 문지기가 될 거야.”

반말 섞인 꼬맹이의 말이었지만, 어째선지 그자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는 더욱 커져 있었다.

“그러냐? 좋은 꿈이구나. 그래도 길 잃었다고 이렇게 울고만 있으면 7번 문지기는 못 된다고.”

“안 울었어! 이건 그냥 추워서 콧물 대신 눈물이 흐른 거야!”

“그래, 그래. 알았다. 7번 문지기는 우리 요툰헤임에서 가장 강한 전사가 맡아야 하니. 우선 돌아가면 많이 먹고 좀 더 커져야겠구나. 훈련도 열심히 하고…. 그러니 우선 돌아가자, 집으로. 일어나거라.”

그때, 그가 손을 내밀며 내게 한 말을 몇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난 잊지 못한다.

“그럼 나중에 강해져서 문지기가 되면 인사하러 오거라. 내 이름은….”

그의 밝은 웃음을 마지막으로 빛이 모든 것을 잡아먹었다.

* * *

긴 회상을 끝낸 바위 거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로키 님….”

한재석의 정체를 알아본 바위 거인이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로키 님…. 진짜 로키 님이시군요. 그 미소….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습니다. 그때, 숲에서 구해주셨을 때부터 쭉… 쭉… 그때의….”

바위 거인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듣던 한재석이 지그시 웃음을 보였다.

“고맙구나. 약속을 지켜줘서. 울보 꼬맹이가 아니라 이제 어엿한 문지기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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