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그러니까,그 우트가르트 로키라는 놈이 왕이 된 후로 자유가 사라졌다고?”
한재석의 목소리에 바위 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는 신들과 외부의 적들에게서 왕국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내부에 살고 있는 요툰들을 강압적으로 지배하고 있습니다.”
“좋은 왕은 아니라는 거군. 그런데…. 어….”
“아! 이름을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제 이름은 베일리입니다.”
“그래. 베일리. 새로운 왕이 아무리 강한 존재였어도, 자유를 억압하고 강압적으로 거인들을 통치했다면, 분명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내가 왕으로 있던 시절에도 거인들은 자유를 억압받는 것을 아주 싫어했으니까.”
베일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재석의 말에 동조하며 말을 이어 갔다.
“로키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트가르트로키가 왕이 되고 500년 정도는 왕국에 전쟁과 반란 분자들의 공격이 끊이질 않았었습니다.”
베일리의 목소리에 한재석뿐 아니라, 최한 일행들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롭게 왕이 된 우트가르트 로키보다 훨씬 더 오래 이곳 요툰헤임에서 살아오던 각 지역의 촌장들과 장로들이, 아무리 왕의 명령이라 해도, 마을 간의 이동 금지 조항과 마을마다 한 달에 한 명씩 여인을 바쳐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율령에 반기를 든 것이었죠.”
누구보다 거인의 성격과 행동을 잘 알고 있던 한재석이 혀를 차며 베일리의 말에 대꾸했다.
“쯧쯧! 내가 백성이라도 그렇게 탄압하면 인원들 모아서 목 따러 가겠다.”
“역시 잘 아시는군요. 아무튼 그렇게 돼서 요툰헤임에 살고 있던 거인들 중 반 이상이 우트가르트 로키를 인정하지 않고 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500년 동안 끊임없이 도전하고 왕국을 공격했습니다만….”
“아직까지도 그 우트가르트 로키인가 하는 놈이 왕인 걸 보니. 아무도 죽이지 못했구나.”
베일리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네. 고대부터 살아온 거인들의 힘으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거인의 힘으로도 그를 쓰러트릴 수 없었습니다.”
“진짜 강하긴 한가 보네. 누구 자식이지? 그 정도로 강하다면 분명 이름 있는 이의 후손일 것 같은데?”
“그렇죠. 우트가르트 로키의 부모는 로키 님도 아는 거인입니다. 아주… 질긴 인연이라고 하는 게 맞겠죠.”
“내가 아는 거인이라고? 설마….”
무언가 떠올린 한재석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같은 것을 떠올린 것인지 베일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스크리미르. 당신에게 밀려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거인입니다.”
“하… 그렇게 된 거로군.”
한재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로키의 기억 속을 조금만 헤집어 보아도 나오는 그 이름.
마법을 쓰는 재능만큼은 아스가르드에 있는 어떤 신들보다 뛰어났던 거인.
엄청난 근력과 고위의 마법을 사용해 요툰의 지배자가 되려 했던 거인이었다.
“우트가르트 로키가 왜 내 이름을 쓰는지 알겠네.”
한재석이 로키의 기억 속에 있는 스크리미르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을 떠올렸다.
닥치는 대로 살육을 하며 전대 왕까지 죽인 스크리미르가 요툰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려던 그 순간이.
“이놈, 감히 누군데 이 스크리미르 님의 앞길을 막는 것이냐!”
“난 그냥 여행을 좋아하는 나그네일 뿐이야. 그리고 난 길 막은 기억 없는데? 그저 이곳에 길이 하나밖에 없어서 지나가려던 참인데….”
“시끄럽다. 이제 이 몸이 요툰의 왕이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내 말을 따라야 한다고!”
“하… 언제부터 요툰이 왕의 명령을 따랐지? 자유로운 나라인 걸로 아는데….”
“이놈 감히! 어디서 말대꾸를 하는 것이냐! 왕이 된 본보기로 나에게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지 모두의 앞에서 보여주마!”
스크리미르의 양손에 얼음송곳이 나타나자, 주위에 있던 거인들이 두려움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머릿속에 딱 한 가지의 생각만이 가득 차게 되었지.
‘이런 녀석이 왕이 되면 요툰에게 자유는 없어지겠군.’
대의를 위해서라거나, 다른 거인을 살리려고 꼭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거인은 자유로운 종족이어야 하니까.
단지 그 이유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 하나면 충분했다.
눈앞의 스크리미르라는 거인을 없앨 이유는.
“미안. 악의는 없지만, 난 자유를 사랑하는 요툰이 좋아. 그러니 잘 가.”
로키의 발에서 뻗어 나간 화염이 순식간에 스크리미르를 태워 버렸다.
뼛조각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격렬히 타올라 재가 되어 버렸다.
그로 인해 로키가 요툰의 왕이 되었다.
회상을 마친 한재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녀석을 괜히 죽여서 내가 왕이 돼버렸었지….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대장 자리가 안 맞아….”
비록 한 방에 이기긴 했지만, 그때 당시 살고 있던 고대 거인들을 이기고 왕의 자리까지 차지했던 스크리미르의 자식이라면 충분히 왕이 될 재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한이 한재석을 보며 물었다.
“야. 너, 여기 왕이었어?”
최한의 물음에 한재석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원래 요툰헤임이었다며.”
“어.”
“너 그럼 미미르 아저씨 알아? 목만 둥둥 떠 있었는데. 아니지, 너 나랑 같이 탑에 갔잖아. 너도 봤는데? 그 아저씨도 여기 왕이었다 그랬어.”
“알지. 미미르 아저씨. 그 아저씨는 완전 옛날에 이곳 왕이었지. 너랑 탑에 갔을 때는 로키의 기억이 깨어나기 전이라 몰라봤었지. 나도.”
의문을 가진 이는 최한만이 아니었다.
강진철이 한재석을 향해 물었다.
“너 아스가르드의 신이기도 했다며? 근데 어떻게 요툰헤임의 왕이야? 아스가르드랑 요툰헤임이랑 적 아니야?”
“맞아.”
너무도 태연하게 대꾸하는 한재석과 달리 최한과 아이들은 머릿속으로 정리되지 않은 로키의 과거 때문에 미간을 구겼다.
“저기… 그렇게 대답하지 말고 제대로 좀 알려줄래? 네 캐릭터 너무 어렵거든?”
이어진 최한의 목소리와 다른 아이들의 얼굴에 지어진 난해한 표정에 한재석이 한숨을 쉬며 설명을 이어갔다.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나는 인간들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태어난 신이야. 아버지는 신이었고, 어머니는 요툰의 거인이었지. 어릴 적부터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해서 이그드라실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다, 오딘을 만났고 술 먹다 보니 친해졌어. 그런데 그놈이 얼마 뒤 최고신이 되고 아스가르드를 만들더라고. 다른 신들도 재미있고 해서 같이 지내게 된 거야. 그러다 따분해져서 다시 여행을 떠났어. 그 후, 아까 들은 대로 스크리미르를 죽이고 반강제로 이곳 요툰의 왕이 돼버렸지. 이곳의 왕이 되어서도 여행은 쭉 다녔어. 그러다 오딘 놈 소문이 좀 안 좋아서 뒤를 캐고 다녔는데 무슨 먼지가 아니라 잿더미가 우르르 떨어지더라고. 그래서 그 녀석이랑 좀 싸우다가 봉인됐지. 그리고 얼마 전에 다시 깨어난 거야.”
“짧고 좋은 설명, 땡큐.”
최한과 아이들이 엄지를 치켜올렸다.
“그럼 대충 배경은 알았으니… 이제 우트가르트 로키를 물리치고 요툰을 구하면 끝인가? 이것 때문에 최한의 퀘스트도 이곳을 향하게 한 거 같은데.”
한재석의 목소리에 바위 거인 베일리가 일어나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트가르트 로키를 만나기로 결정했다면 어서 움직이시죠. 그를 만나러 가는 데도 꽤 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긴 시간이 걸린다고?”
“네. 우트가르트 로키가 살고 있는 성은 이동 마법으로 가지 못합니다. 무조건 육로로만 갈 수 있게 되어 있죠. 그리고 성은 3개의 입구로 되어 있는데 우트가르트의 3천왕이라 불리는 그의 심복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문에 마법이 걸려 있어 매일 단 하나의 통로만 왕이 살고 있는 성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문을 밀고 있는 베일리의 뒷모습을 보며 한재석이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이거…. 꼭 하는 짓도 나를 따라 하는 것 같은데…. 짜증 나게….”
끼이익-.
거대한 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리고 있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7번 문지기가 패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들어가시죠. 이 앞은 이제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한재석의 걸음을 시작으로 최한과 일행들이 문을 향해 나아갔다.
아이들의 걸음이 철옹성이라 불렸던 7번 문을 지나 이제는 우트가르트라 불리는 요툰헤임에 닿았다.
“잠깐 이렇게 통과하면….”
최한의 시선으로 퀘스트창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어 클리어를 알리는 알람이 보였다.
「퀘스트 NO. 004
요툰헤임으로.
철의 방어벽인 가스트롭니르 7번 문을 통과하시오.
보상
레벨 + 1」
띠링!
[퀘스트 완료.]
[보상을 진행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름 : 최한
나이 : ∞
종족 : 신
칭호 : 인간의 왕 (EX)
레벨 : 5
능력치
근력 : (EX) B - 2191
민첩 : (EX) B - 2180
내구 : (EX) B - 2180
체력 : (EX) B - 2210
마기 : (EX) B - 2380
특성 : 옥황상제
최종 등급 : (EX) B
< SKILL >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7번 문을 통과하자마자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이런 건 좋네. 내가 싸우고 그러지 않아도 퀘스트만 완료하면 레벨이 오르니 훈련할 때보다는 나은데?”
“온건파 녀석들이 잘 고안한 거겠지. 강함이 어느 정도 정해진 신들과 달리 넌 끝없는 강함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니까. 뭐, 나도 그 원리는 모르지만, 계속 이렇게 쉬운 것만 있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수투르의 불꽃을 다스리는 건 훈련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겠지.”
한재석의 목소리에 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건 앞으로 차차 열심히 해나가면 되니 우선 눈앞에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내면 되겠지.”
한재석의 시야로 넓은 평야와 마을이 보였다. 푸르른 숲과 얼음으로 된 산이 어우러진 묘하고도 괴상한 세계.
하지만, 그 어떤 장소보다 한재석의 마음에 편안함을 주는 세계였다.
“너무도 오랜만에 고향에 와보는구나.”
“우와!”
한재석의 목소리 뒤로 최한과 아이들의 감탄사가 울려 퍼졌다.
성벽 때문에 보이지 않던 우트가르트의 진짜 모습을 눈에 담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만한 광경은 지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으니까.
거인들의 도시답게 큼지막한 건물들과 거대한 나무들이 가장 먼저 보였다.
살짝 비탈이 져 있어,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것처럼 우트가르트의 중심부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시야가 거의 닿지 않는 먼 곳에 안개에 반쯤 가린 성벽과 작은 마을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최한과 아이들이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정신이 빼앗겨 있을 때 문을 닫고 돌아온 베일리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곳이 우트가르트, 그러니까 요툰헤임의 중심부입니다. 다행히 왕이 살고 있는 성은 이 7번 문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으니, 여러분은 운이 좋은 편입니다. 저곳이… 우트가르트 로키가 살고 있는 성입니다.”
최한의 시선이 베일리의 바위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옮겨졌다.
얼음과 회색의 벽돌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성이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최한의 눈앞으로 새로운 퀘스트창이 나타났다.
띠링!
「퀘스트 NO. 005
세 갈래 길에서 왕의 성으로 향하는 진짜 입구를 찾아내어라.
보상
레벨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