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세 갈래 길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입구로 들어온 백설과 성녀가 입구 초입에 있던 거인 병사들을 모두 해치우고 끝없이 이어진 돌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최한에게는 얘기하지 않을 건가?”
백설의 목소리에 발을 맞추고 나란히 걷던 성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최한이 알게 된다면 분명 슬퍼할 것입니다. 그러니 안 할 겁니다.”
“그렇지. 그 녀석은 분명 자기를 탓할 테니까.”
“어차피 우리가 선택한 것입니다.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어서….”
뚫어져라 바닥을 쳐다보는 성녀의 눈동자에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백설이 더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백설과 성녀가 걷고 있는 긴 돌길은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바다의 정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어차피 진짜 바다가 아닌, 우트가르트 로키의 마법으로 만들어 낸 장소라는 것은 알고 있기에 크게 개의치 않고 묵묵히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성녀와 백설의 걸음이 멈추었다.
“저건….”
“아무래도 저게 성으로 들어가는 문인가 보군.”
저 멀리 보이는 돌길이 끊긴 지점에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타원형의 양문.
거인들이 사용하는 문답게 고개를 끝까지 젖혀야 겨우 문의 꼭대기를 볼 수 있었다.
거인족의 문자인지, 알 수 없는 파란색 글자가 문에 새겨져 있었다.
문자 아래로 금색의 문양이 문마다 각각 하나씩 새겨져 있었다.
문을 바라보던 백설이 주위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이게 성으로 가는 문이라면 문을 지키는 삼천왕인가 하는 거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때.
펑!!
백설과 성녀가 서 있는 돌길 바로 옆 바다에서 물길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거대한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광경에 백설과 성녀의 눈빛이 변했다.
“온다.”
백설의 목소리가 낮게 울리자마자, 하늘로 솟구쳐 오르던 물속에서 거대한 주먹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백설과 성녀가 주먹을 피해 점프했다.
쾅!!
물속에서 나온 거대한 주먹이 백설과 성녀가 있던 돌길을 산산이 조각내었다.
팟.
족히 5m는 파괴된 돌길이었다.
돌길에 무사히 착지한 백설과 성녀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이게 얼마 만의 침입자인가.”
하늘로 솟아오른 물이 다시 바다로 되돌아가고, 그 자리에는 거대한 거인의 모습만이 보였다.
삼지창을 들고 있는 푸른색의 거인.
붉으락푸르락한 근육과 머리 위로 보이는 두 개의 뿔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슝!
슝!
슝!
거인이 자신의 소개를 하면서 들고 있던 삼지창을 돌려댔다.
“내 이름은 성으로 향하는 이 차왕문을 지키는 마지막 파수꾼이자, 우트가르트의 삼천왕 지라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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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지라프
나이 : 100,000
성별 : 남
종족 : 거인족
칭호 : 우트가르트의 삼천왕
능력치
근력 : (EX) B – 2,491
민첩 : (EX) B – 2,284
내구 : (EX) B – 2,500
체력 : (EX) B – 2,430
마기 : (EX) B – 2,220
SKILL
[ 순혈의 피 ]
고대부터 존재해온 거인족. 혈통의 힘을 가지고 있다.
혈계 특성
얼음 내성 100%
화염 내성 50%
전기 내성 50%
포이즌 내성 50%
물리 내성 50%
[ 거인족의 후예 ]
거인족은 둔기 아이템을 쓰면 근력이 200% 향상된다.
[ 우트가르트 로키의 축복 ]
우트가르트의 왕 우트가르트 로키의 축복이 깃든 전사.
상급 얼음 마법으로 온몸을 강화한다.
마법 데미지 –50%
물리 데미지 30% 반사
[ 바다의 왕 ]
바다의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다.
특성 : 심해의 거인
최종 등급 : (EX) - B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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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인… 못해도 각성한 최한보다 강하다.’
바람에 휘날린 붉은 머리칼을 정리하며 백설이 소리쳤다.
“우리들은 한재… 아니, 로키의 친구들이다. 요툰헤임의 이름을 우트가르트로 바꾸는 것도 모자라, 거인들의 자유를 빼앗은 우트가르트 로키를 처단하러 왔다!”
기백도 기백이었지만, 백설의 입에서 나온 로키라는 단어에 차왕문을 지키는 삼천왕 지라프의 미간이 구겨졌다.
“감히…. 현재의 왕의 목을 베러 왔다고 하는 것도 모자라… 역사상 최고의 왕인 로키 님의 이름을 거들먹거리는 것이냐!”
순식간에 얼굴 전체가 구겨진 지라프가 들고 있던 삼지창을 들어 올렸다 내려쳤다.
쾅!!
쏴아악-.
폭발음과 함께 물줄기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칫! 대화가 안 통하는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전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백설이 혀를 차며 얼굴을 구겼다.
“잠깐… 여기는 나에게 맡겨줬으면 합니다.”
성녀가 백설의 앞을 막아서며 앞으로 나아갔다.
“뭐라는 거야? 저 거인 얼마나 강한 줄 알아? 신이 된 지금의 최한보다도 강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 거인이 얼마나 강한지는. 하지만 더 이상 뒤로 물러서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저도… 최한의 기사니까요.”
백설의 눈동자가 떨렸다.
시선에 들어온 성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단순히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욱 본질적인 것.
‘도움이 되고 싶다.’
‘더 이상 짐짝은 되고 싶지 않아.’
성녀의 눈빛에 깃든 의지를 발견한 백설이 날숨을 내쉬며 작게 말했다.
“조심해라. 무력만 놓고 본다면 절대 네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성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두 손을 모아 스킬을 발현했다.
“신의 축복……. 전투 모드.”
성녀의 몸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붉은 오라가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오라는 점점 형태를 갖춰 가더니, 이내 피의 회오리를 만들어 냈다.
거대한 피의 보호막이 형성되었고, 성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지라프가 비웃음을 보였다.
“잔재주를 부리는군. 몸을 숨겨봤자 이 몸의 공격 한 방이면….”
“숨긴 적 없다.”
성녀의 목소리가 지라프의 말을 잘랐다.
팟!
성녀를 감싸던 피의 보호막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뭐냐? 그 모습은…. 마기를 두른 인간이라….”
성녀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마기와 피를 융합해 만든 갑옷과 방어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등 뒤로 보이는 커다란 피의 날개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 분. 제가 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성녀가 바다에 서 있는 거인을 향해 날아올랐다.
펑!!
엄청난 충격파가 일어났다.
하늘로 몸을 띄운 것만으로도 엄청난 바람이 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백설의 눈매가 사선을 그렸다.
‘자신의 생명력을 담보로 힘을 한계까지 끌어 올린 건가.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신에게 통할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됐군. 하지만….’
놀라움보다 백설의 얼굴을 가득 채운 감정은 걱정이었다.
이미 생명력의 반을 내놓고 인간의 한계까지 강해졌는데, 지금 성녀의 스킬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또 한 번 그 한계를 깨부수고 있었다.
오버페이스.
아니.
저건 그냥 자살행위였다.
일 분이라는 시간 동안 신에 버금가는 힘을 손에 넣지만….
분명 반동이 있을 거다.
아마 일 분 뒤에는 움직이지도 못하겠지.
그럼에도 저 기술을 쓴 것은…….
백설의 머릿속으로 성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더 이상… 짐이 되긴 싫어.’
“많이 힘들었나 보군.”
백설의 시선이 거인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성녀에게로 옮겨졌다.
피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간 성녀가 삼천왕 지라프의 얼굴 앞에 도착했다.
성녀가 두 손을 모으며 소리쳤다.
“아리아.”
성녀의 머리 위로 수많은 천사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아아아아아아아!”
천사의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아악!! 뭐냐! 이건!”
지라프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귀를 움켜쥐었다.
“이것은 천사의 노랫소리. 악에 깃든 영혼을 구속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녀의 모인 두 손으로 빛의 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악의 깃든 영혼을 주님께 보내드리는 전설의 검. 그럼… 주님의 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며 성녀가 빛의 검을 크게 내리쳤다.
슈우웅-.
바람을 가른 빛의 검이 성녀의 손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촥-.
지라프의 얼굴과 가슴에 사선으로 상처가 생기며 피가 솟구쳐 나왔다.
당당하게 서 있던 지라프가 중심을 잃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젠장… 인간 따위가 어떻게 이런 힘을….”
놀란 이는 지라프만이 아니었다. 직접 공격을 가한 성녀 자신조차도 눈앞에 벌어진 일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능력치만 보면 각성한 최한보다도 강한 거인이었다.
그런 거인을 공격 한 번에 무릎을 꿇게 하다니.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도 최한을 지켜줄 수 있다.’
말로 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러나.
“큭….”
성녀의 입 새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 몇 초…. 움직여야 해. 숨통을 끊지 않으면 이 기술을 쓴 이유가 없어.’
성녀가 흐르는 피를 닦으며 그대로 바다로 하강했다.
슈우웅-.
엄청난 속도였다.
바다에 닿을 때까지 하강하던 성녀가 직각으로 방향을 틀어 지라프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약하다 생각했던 인간에게 무릎을 꿇을 정도의 일격을 맞은 지라프는 이미 평정심을 잃고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 녀석! 어디냐! 가루로 만들어 주마!”
허공에 대고 무작정 공격을 퍼붓고 있는 지라프의 모습에 성녀가 미소를 보였다.
‘좋아. 밑은 신경 쓰지 않고 있어. 이 한 방으로 끝내는 거야.’
수면에 딱 달라붙어 빠르게 날아가던 성녀가 지라프의 무릎에 가까워졌을 때 다시 빛의 검을 소환했다.
성녀가 빛의 검을 몸 안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반동을 이용해 혼신의 힘으로 찔러 넣기 위해….
‘무릎 쪽으로 튀어 올라 놈의 턱에 검을 찔러 넣는다.’
“간다!!”
수면에 붙어 날아가던 성녀가 가속을 이용해 하늘을 향해 빠르게 날아올랐다.
거인의 무릎을 지나 순식간에 턱밑까지 다다랐다.
“죽어라!!!”
몸 안쪽으로 끌어당겼던 검을 턱을 향해 강하게 찔러 넣었다.
푹!!
순식간.
이 모든 것이 몇 초도 되지 않는 너무도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단지.
마무리까지 되었다면 좋았으련만….
뚝….
뚝….
붉은 피가 바다에 떨어졌다.
“어째서… 내 검이 닿지 않았지….”
배가 뚫린 채 허공에 매달려 있는 성녀의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변한 바닷물에 배를 꿰뚫린 채 하늘에 떠 있는 성녀의 모습이었다.
지라프의 얼굴이 성녀의 앞으로 옮겨졌다.
미소.
아니,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비웃음을 보내고 있는 그의 얼굴이었다.
“닿을 뻔했어. 나 진짜 당황했었거든. 단지… 내 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다에 붙어 이동한 게 너의 패인이야.”
성녀의 주위로 회오리바람처럼 솟아올라 있던 바닷물이 일제히 성녀를 공격했다.
“꺄아악!”
성녀의 비명 뒤로 지라프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하하하하! 내 또 다른 이름은 심해의 왕 지라프! 난 이 바다의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는… 신이다!”
“으으으! 아… 아….”
기술에 대한 반동과 지라프의 공격에 성녀가 정신을 잃었다.
“뭐야? 벌써 뒈진 거야? 시시하군. 그래도… 뱉은 말은 지켜야지. 가루로… 만들어 주마.”
지라프가 들고 있던 거대한 삼지창을 성녀를 향해 던졌다.
슈우웅!
엄청난 굉음을 내며 날카로운 창이 성녀를 향해 나아갔다.
날카로운 창의 끝이 성녀의 몸을 덮쳤다.
“하하하! 온몸이 터져 죽어….”
지라프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뭘 쪼개. 멀대 새끼야.”
손가락 하나로 삼지창을 막고 있는 붉은 머리칼 소녀의 모습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