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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귀환자 학교가다-145화 (146/211)

145화

“뭘 쪼개. 이 멀대 새끼야.”

자신에게 날아든 욕설보다 손가락 하나로 자신의 삼지창을 막고 있는 것이 더 신경 쓰였다.

“뭐냐, 넌. 대체 어떻게 내 공격을….”

지라프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백설이 손가락을 튕겨 삼지창을 바다에 떨궈 버렸다.

백설이 몸을 돌려 기절한 성녀를 둘러메고 돌길로 하강했다.

기절해 있는 성녀를 부드럽게 땅에 내려놓은 백설이 성녀의 상처를 살폈다.

창처럼 변한 바닷물에 뚫려 버린 몸통과 길게 베인 상처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 더욱 백설의 미간을 구기게 만든 것은.

“반동이 오고 있군.”

짧은 시간 폭발적인 힘을 낸 것에 대한 후폭풍이 밀려오고 있었다.

성녀의 몸에 붉은 반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관절과 손에 떨림이 지속되고 있었다.

기절해 있어 비명은 지르지 않고 있지만, 엄청난 고통이 그녀의 몸을 갉아먹고 있을 것이다.

백설의 시선이 성녀의 얼굴에서 멈췄다.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된다. 넌… 누구보다 잘 싸웠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보자마자 적을 처치하지 못한 아쉬움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라프가 백설과 성녀를 내려다보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실성한 것이냐!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패배한 주제에 잘 싸웠다니. 자신의 몸을 망가트리면서까지 싸웠는데도 이기지 못하면 그냥 끝이다!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면 남아 있는 것은 죽음뿐. 잘 싸웠다는 그딴 무의미한 말….”

“닥쳐라.”

백설의 목소리가 지라프의 말을 잘랐다.

백설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라프를 향해 몸을 돌렸다.

“너 같이 키만 큰 멀대가 알 수 있을 리 없지. 이 녀석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깎아 가면서 전투에 임했다. 그 무엇보다 고귀한, 희생이란 이름으로 너와 싸웠단 말이다.”

“희생이라고? 큭… 크하하하하하!”

지라프의 웃음소리가 바다 전체에 울렸다.

지라프의 웃음소리가 파도 소리와 합쳐서 백설의 귓가를 때렸다.

“역시 나약한 놈들은 언제나 핑계만 둘러대지. 지금 너희가 그렇다. 목숨까지 걸었으면 이겼어야지. 이기지도 못하면서 목숨을 걸었네, 어쨌네. 겨우 파리 목숨 하나 가지고 무슨….”

“파리 목숨이라고….”

지라프의 말을 듣고 있던 백설의 표정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눈을 마주치고 있던 지라프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뭐냐… 대체….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니….’

빠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압박감에 지라프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백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쫄았냐?”

“이놈! 감히 우트가르트의 삼천왕이자, 심해의 왕인 이 지라프 님에게 그딴 말을 하는 것이냐!”

지라프의 거대한 몸 뒤로 바닷물이 회오리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던 바닷물이 거대한 창이 되어 백설을 향해 나아갔다.

“죽어라!”

슈우웅!!!

성녀의 몸을 꿰뚫었던 바닷물이 이번엔 백설의 몸을 뚫기 위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심해의… 왕이라 했느냐?”

백설의 작은 목소리에 지라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째서… 왜… 말을 듣지 않는 것이냐….”

창으로 변해 백설을 향해 나아가던 바닷물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단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다.

바다의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는 특권이자, 특성을 부여받은 자신인데….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지라프의 고개가 좌우로 저어졌다.

터벅.

터벅.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바다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어디 너뿐인 줄로만 알고 있었느냐.”

백설의 목소리가 들리고.

백설을 향해 날카로운 송곳을 들이밀던 바닷물들이 일제히 지라프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백설이 손짓하자, 창으로 변한 바닷물이 모두 지라프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크아악!!!”

자신의 무기에 의해 허벅지와 어깨에 구멍이 뚫린 거인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바다에 반쯤 몸이 잠긴 지라프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이 녀석…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어째서 조그마한 인간 따위가… 바다를 조종할 수가….”

“언제 인간이라 했느냐.”

“뭐….”

“난 인간이라 한 적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누가 너에게 심해의 왕이란 이름을 붙여준 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름… 거두어가겠노라. 진짜 심해의 왕 레비아탄의 이름으로.”

지라프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리는 것보다 빠르게.

백설의 손이 거대한 뱀의 머리로 변했다.

새하얀 뱀의 머리가 빠르게 나아가 지라프의 어깨부터 팔까지를 순식간에 뜯어 먹었다.

“으아악!!!”

거인의 비명이 바다를 울렸다.

콰득콰득!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뱀이 거인의 팔을 질겅질겅 씹어 먹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으며 지라프가 소리쳤다.

“어째서… 헬헤임의 마왕이… 여기에 있는 것이냐…. 어째서 나약한 인간 따위와 같이 있는 것이냐!”

남아 있던 한쪽 손으로 붉은 머리칼을 넘기며 백설이 말했다.

“너에게 말해줄 이유 따위 없다. 하나….”

“으아아악!!!”

지라프의 비명이 또다시 울렸다.

어깨를 감싸고 있던 반대쪽 팔이 뱀에게 찢기고 있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백설의 입이 열렸다.

“다시 한번만 내 친구에게 나약하다고 지껄이면, 지금의 고통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해주마.”

“내가… 겨우 이렇게 죽을 성싶으냐!”

지라프가 포효하자, 지라프의 얼굴 앞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고대의 문자가 박혀 있는 푸른 마법진 앞으로 수천 개의 물 화살이 나타났다.

“이것이 내 비기…. 내가 심해의 왕이라 불리게 된 이유이다. 내 마기의 절반 이상을 한 번에 쏟아부은 최강의 공격이다. 네가 아무리 헬헤임의 마왕이라도…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

“뭐래. 겨우 그딴 공격이… 나에게 통할 것 같으냐. 나약한 놈.”

기세 좋은 표정을 짓던 지라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꿀렁꿀렁.

백설의 몸이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부피를 키워 나갔다.

지라프의 얼굴이 파리해지고, 그의 몸 전체가 그림자에 잡아 먹혔다.

신에 필적한 힘을 가진, 우트가르트 최강의 전사, 지라프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입을 벌리고 있었지만,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럼… 맛은 없지만… 잘 먹겠다.”

거대한 뱀의 이빨이 지라프의 얼굴을 집어삼켰다.

콰득!

콰득!

뇌수와 두개골이 빠개지는 소리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 * *

같은 시각.

우트가르트 왕이 사는 성이자.

최한 일행의 목적지인 성의 2층 내부.

거대한 붉은 의자에 거인족의 왕.

우트가르트 로키가 앉아 있었다.

검은색과 푸른 빛의 얼음이 반반 섞인 몸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우트가르트 로키의 시선이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정보병에게 옮겨졌다.

“그래. 지라프가 당했다고?”

왕의 근엄한 목소리에 정보병이 머리를 더욱 조아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네. 조금 전 삼천왕 중 하나인 지라프 님이 지키시던 심해의 문, 마법이 사라졌습니다. 또한 문을 열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뭐… 다행히도 오늘 연결된 진짜 문은 그곳이 아니라 문이 열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삼천왕이 당하다니…. 내가 통치한 3,000년 역사 중 가장 치욕적인 날이군.”

크게 분노를 드러낸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알아챈 정보병이 마른침을 삼키며 눈치를 보고는 말을 이어 갔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라프 님은 삼천왕 중 가장 약한 편이니 아마 다른 곳은 절대 뚫리지….”

“아니. 뚫릴 것이다.”

우트가르트 로키의 목소리에 정보병이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모르고 눈알만 굴려댔다.

“아스가르드 신들조차 이곳까지 당도하지 못했다. 그런데 외벽 문을 통과하는 것도 모자라, 기사단의 눈에 걸리지 않고, 세 갈래 길까지 침입했다라…. 거기에 벌써 삼천왕 중 하나를 쓰러트릴 정도니. 아마 조금 있으면 이 방에 쳐들어올 테지.”

“아… 아닙니다. 저… 절대…. 저희 병사들이 꼭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처치하겠습니다.”

정보병의 목소리에도 우트가르트 로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들은 이곳에 도달할 것이다. 그에게 이곳에 도달하는 것쯤은 쉬운 일일 테니까.”

“왕께서는… 침입자가 누군지 알고 계신가 보군요….”

“알지…. 아니, 알 수밖에 없지 않느냐. 3,000년을 지켜오던 철옹성 같은 이 방어력을 쥐도 새도 모르게 단 하루 만에 뚫을 수 있는 존재가…. 또 누가 있단 말이냐…?”

우트가르트 로키의 목소리에 정보병의 얼굴이 천천히 들렸다.

“설마… 로키 님이….”

“그밖에 없지. 요툰 역사상 최고의 왕…. 하지만 걱정 마라. 벌써 손을 써 뒀으니…. 아무리 그라도….”

우트가르트 로키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절대 이기지 못할 것이다.”

* * *

가장 오른쪽 문으로 들어간 로키와 바위 거인 베일리가 무릎까지 차오른 눈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나무 속에 눈이 이렇게 오냐?”

“이것은 우트가르트 로키의 마법 때문입니다. 각 문마다 다른 지형과 날씨를 만들어 놓고, 문을 지키는 삼천왕이 가장 힘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힘을 잘 발휘 할 수 있는 장소라….”

한재석이 시야를 넓혀 먼 곳까지 바라보았다.

하얗고.

하얗고.

하얬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산과 바위만이 보였다.

한재석이 베일리를 보며 말했다.

“삼천왕 중에 서리 거인도 있냐?”

“네. 폭설의 서리 거인이라 불리는 예티티가 있습니다.”

“예티티?”

“네. 다른 서리 거인들처럼 온몸이 얼음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예티티는….”

베일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 한재석이 베일리의 몸을 손으로 밀었다.

그리고.

쿵!!

베일리와 한재석이 걷던 장소에 엄청난 크기의 눈덩이가 떨어졌다.

한재석 덕분에 겨우 사고를 피한 베일리가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괘… 괜찮으십니까? 로키 님!”

어깨에 묻은 눈을 털며 한재석이 손을 들어 보였다.

“당연하지. 그것보다… 그 예티티인가 뭐시긴가 하는 놈이 저놈이야?”

한재석의 시선으로 거대한 하얀 문과 그 앞에 서 있는 거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베일리가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습니다. 그런데 언제 이렇게 가까이까지….”

휘날리는 눈발 때문에 감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쿵! 쿵!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고.

문 앞에 서 있던 거인이 한재석과 베일리를 향해 다가왔다.

“내 이름은 예티티. 이 폭설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이자 우트가르트 로키 님을 지키는 삼천왕 중 한 명이다.”

온몸이 하얀 털로 뒤덮인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재석이 고개를 들어 올려 눈과 입마저 털에 감춰진 거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예티티……. 저거 그냥 예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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