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목표물의 제거 작업을 시작합니다.”
최한의 붉은 귀걸이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온 후.
거대한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읽을 수 없는 룬문자로 되어 있는 하얀 마법진.
최한의 몸 앞으로 나타난 마법진이 밝은 빛을 뿜어내며 주위에 있는 모든 이의 눈을 멀게 했다.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은 것은 대치하고 있던 아이스 울프였다.
반응할 새도 없이 뿜어져 나온 밝은 빛에 시야를 빼앗겨 전황이 불리해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아이스 울프는 동요하지 않았다.
시야만큼은 아니지만 후각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적이 공격해오는 것쯤은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눈을 멀게 해 공격을 피하지 못하게 하려나 본데, 이 몸이 늑대라는 것을 잊은…… 큭!”
자신감 있던 목소리 위로 고통의 비명이 이어졌다.
아이스 울프의 자세가 무너졌다.
앞다리를 공격당한 것인지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대체… 어느 틈에….”
“어느 틈이라니? 나 엄청 천천히 걸어가서 발로 찬 거뿐인데?”
확연히 대조되는 최한의 목소리가 울렸다.
앞으로 꼬꾸라진 와중에도 분노에 반대 발을 휘둘러 댔다.
슈웅!
거대한 아이스 울프의 앞발이 허공을 갈랐다.
“이 녀석! 그새 도망간 거냐! 시야만 돌아오면 다리를 찢어주마!”
아이스 울프의 분노가 하울링이 되어 울렸다.
“뭐래? 나 아직 여기 있는데.”
최한의 목소리가 들리고.
퍽!!
엄청난 타격음이 울렸다.
“으아악!!”
왼쪽 앞발을 또 한 번 공격당한 아이스 울프가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이 녀석 어떻게 내 약점을 아는 것이냐! 유일하게 가호를 받지 못한 앞발만 집요하게 공격하다니….”
아이스 울프가 태어나던 날.
부모의 실수로 유일하게 얼음의 가호를 받지 못한 곳이 왼쪽 앞발이었다.
이것은 자신과 부모밖에 모르는 비밀이었을 터인데….
다리에서 전해져 오는 고통보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이 더욱 혼란스러웠다.
시야를 앗아간 빛 때문에 아이스 울프의 신음 섞인 비명만이 공간을 채웠다.
구석에 있던 강진철도 시야를 뺏긴 것은 마찬가지였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최한과 같은 편이라는 것.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뿐.
소리로 지금 일어난 일을 정리하고 있는 강진철이었다.
감지하지도 못할 빠르기로 최한이 자신을 구해준 뒤.
최한의 귀걸이가 빛나면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 귀걸이가 낸 목소리였다.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AI.
인공 지능.
지구에서의 지식이라면 그 정도 따위만이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 두 개의 다른 차원을 여행하고, 신이라는 미지의 존재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도 넓어졌다.
그렇기에….
인공 지능이 아닌, 진짜 생명과 지능이 담긴 귀걸이.
그런 결론을 내렸다.
단지 조금 더 보탠다면….
“오딘의 육체…. 세상 모든 것을 깨달은 현자의 눈. 인간의 지능으로 닿지 못할 미지의 영역까지 도달한… 최고의 아군. 최한에게는 대체… 뭐가 보이는 것일까….”
강진철의 마지막 말이 울리고.
멀었던 시야가 점점 돌아오고 있었다.
이제야 눈에 초점이 돌아온 아이스 울프가 최한을 발견하고 천천히 몸을 세웠다.
“이런… 개자식….”
“개자식이라니? 너 거울 안 보냐?”
아이스 울프를 바라보는 최한의 시야에 지금까지와 다른 창이 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던 상태창이나 퀘스트창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몬스터의 머리 위로 보이는 이름.
[우트가르트 아이스 울프]
그리고.
마치 라이플의 조준경을 보는 것 같은 모양의 타격점이 아이스 울프의 앞다리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게다가 귀로 연이어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
[아이스 울프의 앞다리의 피해도는 60%입니다. 그로 인해 점프력이 50% 감소하게 되고, 반응속도가 30% 둔해지겠습니다.]
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와…. 이거 거의 사기템인데?”
바로 전 콩콩과 싸울 때 처음으로 발동된 오딘의 눈 아이템은 그야말로 엄청난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적의 약점을 알려주고, 적을 물리치기 위한 가장 최적의 방법을 연산해 답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기에 최한은 자신보다 신체 능력이 우월한 콩콩을 한 방에 해치울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신이 되긴 했어도 현 상태의 최한은 분명 우트가르트 아이스 울프보다 모든 것이 약했다.
이름 : 우트가르트 아이스 울프
나이 : 10,000
성별 : 남
종족 : 거인족, 늑대족
칭호 : 우트가르트의 수호신
능력치
근력 : (EX) A – 2,500
민첩 : (EX) A – 2,500
내구 : (EX) A – 2,500
체력 : (EX) A – 2,500
마기 : (EX) A – 2,500
SKILL
[ 순혈의 피 ]
고대부터 존재해온 혈통의 힘을 가지고 있다.
혈계 특성
얼음 내성 100%
화염 내성 50%
전기 내성 50%
포이즌 내성 50%
물리 내성 50%
[ 거인족의 후예 ]
거인족은 둔기 아이템을 쓰면 근력이 200% 향상된다.
[우트가르트 로키의 축복]
우트가르트의 왕 우트가르트 로키의 축복이 깃든 전사.
상급 얼음 마법으로 온몸을 강화한다.
마법 데미지 –50%
물리 데미지 30% 반사
[ 반신, 반거인족 ]
거인족과 요툰헤임의 수호신인 늑대의 자식.
특성 : 웨어울프
최종 등급 : (EX) - A급
# # #
이름 : 최한
나이 : ∞
종족 : 신
칭호 : 인간의 왕 (EX)
레벨 : 8
능력치
근력 : (EX) B – 2,251
민첩 : (EX) B – 2,240
내구 : (EX) B – 2,240
체력 : (EX) B – 2,270
마기 : (EX) B – 2,440
특성 : 옥황상제
최종 등급 : (EX) B
< SKILL >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우트가르트 아이스 울프와 최한의 능력치만 보아도 신체적으로나 마기적으로나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어이, 멍멍이. 내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이 한 방에 끝내줄게.”
최한이 몸속에 흐르는 마기를 주먹으로 끌어모았다.
“내가 겨우 이렇게 당할 줄 아느냐!”
우트가르트 아이스 울프의 몸 주위로 회오리가 나타났다.
하나로 합쳐진 회오리가 아이스 울프를 삼키더니.
찌직!
엄청난 전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팟!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회오리가 사라졌다.
“이제 앞발만 공격한다고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이 모습으로 변한 나는… 무적이니까.”
아이스 울프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웨어울프.
두 다리로 서 있는 인간 형태의 모습으로 변신한 것 같았다.
모습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뿐 아니라,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자신감이 전해졌다.
그 자신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최한의 눈에도 나타나고 있었다.
[우트가르트 아이스 울프. 웨어울프 모드.]
약점을 비추던 조준경 모양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할 목소리가 최한의 귀로 들렸다.
[성질 변환으로 인해 아이스 울프의 약점과 피해도가 변경되었습니다. 앞다리의 피해도가 20%로 감소했습니다. 성질 변환으로 인해 점프력 피해와 반응 속도가 원상 복구 되었습니다.]
“오호….”
그냥 허세가 아니었다.
공격을 퍼부었던 앞발이 더 이상 약점이 아니었다.
두 발로 서 있는 웨어울프로 변신한 탓에 지금까지 받았던 피해도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적이긴 하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아이스 울프를 보며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최한이었다.
“이건 좀 멋있는데? 역시 남자의 꿈은 변신과 거대 로봇이지.”
최한의 반응에 아이스 울프가 이빨이 모두 드러나도록 크게 웃었다.
“하하하! 한 방에 죽인다던 그 기세는 다 사라졌구나! 당연하지. 이 모습을 보고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품지는 못할 테니까.”
하울링과 함께 울려 퍼진 자신감 넘치는 웃음소리에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진철의 미간이 구겨졌다.
‘큰일이다. 지금까지 공격을 퍼부었던 게 물거품이 되었어.’
약점이 더 이상 약점이 아니게 되었다.
분명 저 귀걸이가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약점을 이겨내고 각성한 아이스 울프 쪽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등급도 차이가 있었으니, 더더욱 불리한 것은 최한이었다.
강진철이 천천히 몸을 세웠다.
‘가세해야 한다. 크게 도움 되지 못할 것은 알지만 어떻게라도 도와야 한다. 그래야 이길 수 있을 테니.’
“최한! 내가 틈을 만들 테니 공격해라.”
강진철의 목소리에 최한의 고개가 강진철을 향했다.
강진철에게 시선을 옮긴 이는 최한뿐만이 아니었다.
“하하하하! 너 같은 피라미가 합세한다고 내게 틈이 생길 것 같으냐?”
웨어울프의 모습으로 변한 아이스 울프가 강진철을 보며 비웃음을 보였다.
꽉-.
강진철의 주먹이 쥐어졌다.
모두 맞는 말이었으니까.
“젠장….”
분한 마음이 강진철의 미간을 구겼을 때쯤.
최한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왔다.
“맞아. 너는 그냥 거기 있어.”
강진철의 입술이 떨려왔다.
치욕스러웠다.
신들의 전투에 나약한 자신의 힘은 너무도 한심스럽게까지 느껴졌다.
강진철의 고개가 떨어졌다.
“하하하! 같은 편도 네 힘이 필요 없다고 하는군. 너 같은 피라미가 낄 자리가….”
“뭐래.”
최한의 목소리가 아이스 울프의 말허리를 잘랐다.
“난 그것 때문에 그런 거 아닌데. 내가 그 자리에 있으라 한 이유는… 이 한 방이면 끝나니까, 올 필요 없다는 이야기였어.”
앞으로 내지르고 있는 최한의 주먹 위로 검은색의 마기가 열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뭐냐…. 그 마기는….”
아이스 울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히죽.
최한의 얼굴에 큰 미소가 지어졌다.
“넌 몰라도 돼.”
[아이스 울프의 가죽을 뚫을 수 있는 마기로 성질을 변환합니다.]
귀걸이의 목소리가 들린 뒤 최한의 주먹에 모여 있던 마기가 대포처럼 발사되었다.
“안 돼!”
콰과과광!!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아이스 울프의 몸이 폭발했다.
* * *
뿌연 시야에 붉은 머리칼을 가진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배… 백설아….”
삼천왕과의 전투에서 아깝게 패배한 성녀가 정신을 차렸다.
“이제 정신이 드는 건가? 삼천왕과의 전투로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뿐이다.”
백설의 목소리에 쓰러지기 전 전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 졌구나….”
“아니. 충분히 잘 싸웠어. 바다를 사용하는 그 녀석의 기술만 알았다면 네가 이겼을 거야.”
“고마워…. 그런데… 상처가….”
삼천왕에게 당했던 상처가 모두 사라져 있었다.
“네가 쓰러지고 나서 자가 치료를 한 것 같아. 나도 정확히 말해줄 수 없지만, 아마 강해진 네 능력 때문인 것 같은데.”
정작 성녀 본인도 이해할 순 없었지만, 뒤에 있을 전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긴 했다.
그때.
끼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성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다른 팀이 침입하는 데 성공했나 보군. 가자.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이야.”
백설의 목소리에 성녀가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