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작은 방해가 있었지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최한과 일행들이 니플헤임과 연결된 절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요툰헤임의 끝이라 불리는 지점에 거대한 절벽이 있었다.
그 아래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무저갱.
어둠만이 가득한 공간이 요툰헤임과 니플헤임의 경계가 되어 주었다.
그저 공간적으로 땅이 구분된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른 차원.
요툰헤임과 니플헤임은 엄연한 이차원의 공간이다.
단지 그 차원을 연결할 만큼…….
로키의 딸인 요르문간드가 거대한 것일 뿐.
엄청난 장관에 시선을 빼앗긴 이들과 달리, 한재석의 시선은 단 한 곳에서 멈춰 있었다.
“요르문……간드…….”
한재석의 목소리에 최한과 일행들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허공이라 생각했던 물체가 조금씩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이 길은 주신 오딘만이 지날 수 있는 다리다. 돌아가라. 지금 돌아가면 목숨은 살려주마.”
귀가 아닌 온몸으로 들리는 거대한 목소리.
최한의 시선으로 하늘을 모두 가린 요르문간드의 얼굴이 보였다.
띠링!
@@@@「퀘스트 NO. 009
니플헤임과 연결된 뱀의 다리에 가, 오딘에게 세뇌된 요르문간드를 구하라.
보상
레벨 + 10
토르의 약점.」
“이게…… 요르문간드야?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데?”
최대한 담담하게 내뱉고 있었지만, 신이 된 최한마저도 그 엄청난 크기에 압도되어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요툰헤임의 하늘과 비슷한 색을 지니고 있는 요르문간드는 얼굴 전체가 시야 안쪽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먹구름을 뚫고 요르문간드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한쪽 눈과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날카로운 이빨만으로 인간의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였으니, 전체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었다.
이름 : 요르문간드
나이 : ∞
성별 : 여
종족 : 이형거인족
칭호 : 요툰의 공주 (EX)
능력치
근력 : (EX) S – 3,200
민첩 : (EX) S – 3,200
내구 : (EX) S – 3,200
체력 : (EX) S – 3,200
마기 : (EX) S – 3,200
SKILL
[ 순혈의 피 ]
고대부터 존재해온 거인족. 혈통의 힘을 가지고 있다.
혈계 특성
얼음 내성 100%
화염 내성 50%
전기 내성 50%
포이즌 내성 50%
물리 내성 50%
[ 거인족의 후예 ]
거인족은 둔기 아이템을 쓰면 근력이 200% 향상된다.
[ 로키의 피 ]
요툰의 왕이었던 로키의 피를 이어받은 자.
로키의 가호가 그녀를 보호한다.
[ 앙그르보다의 피 ]
요툰의 여왕인 앙그르보다의 피를 이어받은 자.
앙그르보다의 가호가 그녀를 보호한다.
특성 : 토르의 심판자.
최종 등급 : (EX) - S급
최한이 요르문간드의 상태창을 보고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 정도였다.
엄청난 위압감.
단지 크기만 컸다면 이 정도로 긴장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리라.
거대한 몸집도 압도적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최한과 일행들을 긴장시킨 건.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마기.
몸집이 큰 만큼 마기의 축적량 또한 어마어마했다.
마기의 농도나 강함은 한재석이 조금 더 위라고 볼 수 있었으나, 엄청난 몸 크기에 축적된 마기의 양은 한재석보다도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
긴장감에 잡아먹혀 있을 때, 다시 한번 요르문간드의 목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이 길은 주신 오딘만이 지날 수 있는 다리다. 돌아가라. 지금 돌아가면 목숨은 살려주마.”
“또 똑같은 말만…….”
이상한 낌새를 느낀 한재석의 고개가 앙그르보다에게로 향했다.
“계속 저 상태야. 위해를 가하거나, 길을 건너기 위해, 절벽까지 다가가지 않으면 공격은 해오지 않지만…… 저 상태는…….”
“정신 지배인가.”
한재석이 자신의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곧바로 흘러내리는 피에, 한재석이 얼마나 분노에 휩싸여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최한이 한재석의 곁으로 다가갔다.
턱.
한재석의 어깨 위로 최한의 손이 얹어졌다.
“이제 구해주자.”
최한의 목소리에 강하게 깨물던 입술이 부드럽게 벌어졌다.
한재석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래야지. 그것보다 힌트나 그런 건 없어?”
“퀘스트에는 별다른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아. 그냥 요르문간드를 구하라고만 쓰여 있어.”
“그래? 그럼…….”
한재석이 턱을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겼다.
“최고신의 정신 지배를 풀 방법이 뭐가 있으려나…….”
한참 동안을 고민하는 한재석이었다.
그럴 수밖에.
요르문간드의 정신 지배만 푼다면, 전투를 하지 않고 퀘스트도 완료하고, 그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으니까.
오딘의 정신 지배에 걸렸어도 요르문간드는 가족이다. 그것도 자식.
그렇기에 전투를 하지 않는 최상의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 한재석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없어.”
희망을 지우는 목소리.
단호한 목소리에 한재석의 시선이 목소리의 진원지로 향했다.
“앙그르보다, 지금 뭐라고….”
목소리의 주인은 앙그르보다였다.
“없다고.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신 지배를 풀 수 있는 마법을 모두 써봤어. 마법뿐 아니라… 약초, 무기, 보석들까지도…….”
“그런…….”
한재석의 고개가 떨궈졌다.
“오딘은 룬이라는 특수한 돌을 이용해 자신의 마법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든다고 전해져. 그래서 그놈의 정신 지배가 기본 마법보다 훨씬 강한 거야…….”
앙그르보다의 목소리에 한재석뿐 아니라 일행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두운 표정만을 지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최한이 턱을 긁으며 무언가 말하려 했다.
“어… 저기….”
콱!
최한의 목소리를 지우는 큰 소리가 울렸다.
분을 이기지 못한 한재석이 돌바닥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젠장…….”
그 모습에 앙그르보다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드러났다.
“방법이 없어. 싸우는 것 외에는…….”
“어느 정도 싸워야 하는데? 얼마나 상처를 줘야 정신 지배가 풀리는데……?”
한재석의 목소리에 앙그르보다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다 같이 힘을 모아서 이길 수 있다고 쳐보자. 하지만 공격해도 정신지배가 풀리지 않으면 어쩔 건데? 죽을 때가 다 돼서야 정신 지배가 풀리면 어쩔 건데? 아니…… 죽어야 정신 지배가 풀리면 어쩔…… 건데……?”
한재석의 목소리가 격양되어 있었다.
앙그르보다가 어떤 말도 내뱉지 못하고 한재석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강진철과 성녀가 한재석과 앙그르보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앙그르보다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
“맞아. 방법이 안 통한다고만 했지, 무슨 죽이자고까지 얘기했냐, 이 딸바보 녀석아?”
성녀가 앙그르보다의 팔을 쓰다듬었다.
그토록 강직하기만 했던 앙그르보다가 말대꾸도 하지 않고 슬픈 표정만 짓고 있었다.
최강의 여왕이라 불리지만…….
그녀도 역시 자식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어머니였다.
아이들의 모습에 한재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다.”
한재석이 몸을 돌려 머리를 식혔다.
“어…… 저기…….”
최한이 또다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운을 띄웠다.
그때.
“그럼 어느 정도만 충격을 가해 보는 건 어떨까?”
강진철의 목소리가 최한의 목소리를 잘랐다.
아이들의 시선이 최한이 아닌, 강진철에게로 쏠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못 들었어? 충격 정도가 아니라 죽어서야 정신 지배가 풀리면 어쩔 건데.”
한재석의 날 선 목소리가 강진철을 향했다.
“넌 진정 좀 하고 얘기 들어. 진짜 딸바보네, 이거. 끝까지 다 들어 봐.”
강진철이 몸을 돌려 하늘에서 움직임을 멈춘 채 쳐다보고 있는 요르문간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봐봐. 어느 정도 가까이 가지 않으면 요르문간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아. 그러니까 죽지 않을 정도의 공격을 한 번씩 가해서 정신지배가 풀리나 보자는 거야. 당연히 너희들 말대로 정신 지배가 풀리는 그 지점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시험해볼 가치는 있잖아?”
강진철의 차분한 목소리에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공격을 하고도 정신 지배가 풀리지 않으면 그때 다시 거리를 두고 다음 계획을 세워도 늦지 않아.”
맞는 말이었다.
가만히 고민만 하고 있는 것보다야 효율적이고, 리스크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해답이었다.
요르문간드의 목숨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보면 분명 해볼 만한 가치는 있는 작전이었다.
한재석과 앙그르보다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지한 표정.
그들의 얼굴에 작은 결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럼 그 공격은 우리가 하게 해줘.”
“자식을 타이르는 것도, 혼내는 것도 부모의 몫이니까. 그리고 남한테 맞는 모습을 어떻게 봐.”
“어차피 마음이 찢어질 거 내 손으로 하는 게 나아……. 그게 부모야.”
한재석과 앙그르보다가 요르문간드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그곳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절벽을 지키고 있는 요르문간드의 얼굴 앞에 한재석과 앙그르보다가 도착했다.
“당신들은 오딘 님이 아닙니다. 침입자로 간주하고 제거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요르문간드의 기계적인 목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그리고.
하늘에서 무심히 지켜만 보던 요르문간드가 눈을 치켜뜨며 크게 입을 벌렸다.
“크아악!!”
엄청난 괴성과 함께 거대한 요르문간드의 머리가 침입자를 죽이기 위해 하늘에서 떨어졌다.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것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엄청난 기세로 뱀의 날카로운 이빨이 한재석과 앙그르보다를 향해 나아갔다.
땅에 있던 한재석과 앙드르보다가 깊은 날숨을 내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뒤쪽에서 보고 있던 강진철과 성녀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소리쳤다.
“설마 저 녀석들…. 야! 너희 뭐 하는 거야!”
“공격 안 할 셈입니까! 그러다 죽습니다!”
그렇다.
뒤쪽에 있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이는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자식의 눈을 뜨게 하려는 것 같았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정신 차리십시오!”
“저…… 저기…….”
강진철과 성녀의 목소리에 최한의 목소리는 또 한 번 묻히고 말았다.
하늘에 떠 있던 거대한 뱀의 머리가 이제는 땅에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한재석이 앙그르보다를 보며 말했다.
“딸을 어떻게 때려.”
“그러니까……. 아무리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한들…… 내 딸인데. 우리의 고통으로 정신을 차릴 수만 있다면…….”
“목숨 하나쯤은 줄 수 있어.”
한재석과 앙그르보다가 두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듯 어깨가 내려앉았다.
모든 살의가 사라졌다.
“이 미친놈들아! 진짜 죽을 셈이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백설이 소리쳤다.
급박.
아니…….
이제는 말릴 시간조차 없었다.
벌써.
요르문간드의 입이 한재석과 앙그르보다의 몸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자신의 작전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강진철의 고개가 떨어졌다.
“느…… 늦었어.”
한재석과 앙그르보다의 몸이 요르문간드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
.
.
그렇게 그들은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쳐…….
“이 새끼야! 부모를 처먹는 놈이 어디 있냐! 내 사전에 패륜은 없다!”
최한의 단검이 요르문간드의 머리 중앙을 찔렀다.
동시에.
콰과과광!!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 일대의 모든 빛을 잡아먹었다.
띠링.
[퀘스트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