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최한과 아이들의 시선으로 샤벨타이거 주니어의 잘린 앞발이 보였다.
“다리가….”
잘린 발을 제외한 세 개의 다리로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공격과 추진력에서 가장 중요한 오른쪽 앞발을 잃었네. 뛰는 건 고사하고 이렇게 서 있는 것도 힘들 지경이야.”
샤벨타이거 주니어의 목소리에 슬픔이 묻어 있었다.
“마기와 육체의 강함은 그대로인 것 같았는데….”
최한의 떨리는 음성에 샤벨타이거 주니어가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마기…. 그래. 마기의 양은 그대로지. 하나… 육체는 아니야. 걷질 못하니 온몸에 근육들이 빠지기 시작했어. 강하게 한 대 정도는 때릴 수 있겠지만, 중심도 못 잡는데 결투를 할 수는 없더라고….”
일어선 지 채 일 분도 되지 않아 다시 바닥에 철퍼덕 쓰러지는 샤벨타이거 주니어였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무리하지 마시라니까요.”
호디가 샤벨타이거 주니어에게 다가가 몸을 핥았다.
“우리 호디…. 미안하구나. 언제나 강한 모습만 보이고 싶었는데….”
“아닙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는 언제나 최강이셨습니다. 언제나 아버지의 그 강한 뒷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렇게 되길…. 아버지처럼 강해지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복수는 꼭 제가….”
크르릉!
샤벨타이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 된다! 내 복수를 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거라!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어금니를 뚫고 엄청난 울음소리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버지….”
“미안하구나. 하지만… 안 된다…. 복수 같은 걸 할 필요가 없다. 이건 내 과오. 내 자만심과 그날 목숨을 잃은 부하들을 기리기 위한 상처이다. 그러니… 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샤벨타이거 주니어와 호디의 고개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최한과 아이들의 얼굴에도 무거운 표정이 지어졌다.
잠깐 동안의 침묵이 이어지고.
무언가 생각난 최한이 샤벨타이거 주니어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상처가 분명 깊긴 하지만….’
최한이 손을 들어 귀걸이를 만졌다.
[스캔을 시작합니다.]
지이잉
최한의 시선으로만 보이는 초록색 빛이 샤벨타이거 주니어의 다리를 비췄다.
한참 동안 다리를 비추던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띠링.
[스캔을 완료합니다.]
[펜니르의 육체에 의해 공격당한 다리입니다. 용족의 마법인 치료 불가 스킬과 같은 고대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최수혁 때 같은 건가….’
최한의 시선을 느낀 샤벨타이거 주니어가 입을 열었다.
“신이 이 정도 상처도 치료 못 하는가 하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당황한 최한이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전 다른….”
“괜찮습니다. 이 다리… 고치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고위 마법이 걸린 상처를 치료해줄 회복술사는 니플헤임에는 없더군요.”
샤벨타이거 주니어의 눈빛이 자신의 잘린 다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음….”
최한이 자신의 귀걸이를 다시 한번 만지며 말했다.
“해결책 제시.”
[치료 불가 스킬을 제거할 수 있는 적합자를 찾습니다.]
띠링.
최한의 시선으로 화살표 표시가 나타났다.
그 방향으로 최한이 고개를 돌렸다.
“성녀?”
띠링.
[성녀의 힘으로 샤벨타이거 주니어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최한의 시선으로 성녀의 상태창이 나타났다.
이름 : 헤네시 그로리아
나이 : 20세
성별 : 여
종족 : 인간
능력치
근력 : SSS
민첩 : SSS
내구 : SSS
체력 : SSS
마력 : SSS
특성 : 마리아
SKILL
[ 교감 ]
모든 생명체와 대화가 가능하게 한다.
[ 신의 축복 ]
어떠한 상처도 고칠 수 있는 궁극의 치료술.
[ ???? ]
스킬이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힌트 : L
최종 등급 : SSS
남은 수명 : 7년
SSS급으로 강하게 능력치가 오른 것도 놀랍긴 했지만, 가장 시선을 끌고 궁금해지는 것은 다름 아닌 수명이었다.
‘남은 수명은 뭐지…?’
생각에 잠긴 채 뚫어지게 성녀를 쳐다보자 이를 알아차린 성녀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맞췄다.
“뭡니까?”
최한이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 급한 건 이게 아니니까….’
“성녀 부탁이 있어. 샤벨타이거 주니어의 다리를 고쳐줘.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말입니까? 여기 신들도 못 고쳤다는데….”
턱.
최한이 성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미소 지었다.
“할 수 있어. 나 믿지?”
같은 표정이 된 성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샤벨타이거 주니어의 앞쪽으로 이동했다.
성녀가 호흡을 가다듬고는 차분히 어조로 말했다.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샤벨타이거 주니어가 긴장감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축복.”
챠라라-.
성녀의 머리 위로 붉은 기운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곧바로 천사들의 모습으로 바뀌더니, 이내.
“아아아아아아-.”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울리며 다시 붉은 피로 되돌아갔다.
붉은 피가 샤벨타이거 주니어를 감쌌다.
거대한 피의 방어막이 성녀와 샤벨타이거 주니어를 잡아먹은 그 시각.
주위에 있던 호디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마을의 아이스타이거들의 얼굴에 긴장한 표정이 지어졌다.
꿀꺽.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들은 아이스타이거족만이 아니었다.
한재석과 아이들도 피의 방어 보호막을 보며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스르륵-.
성녀와 샤벨타이거 주니어를 감쌌던 피의 보호막이 점점 사라져 갔다.
“아버지….”
“조… 족장이시여….”
호디와 굴속에서 지켜보던 아이스타이거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샤벨타이거 주니어의 떨리는 음성이 울렸다.
“감각이…. 이 느낌은….”
샤벨타이거 주니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랜 기간 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 자신을 단단히 받치고 있었다.
굳세게 서 있을 수 있었다.
더 이상 휘청거리며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샤벨타이거 주니어의 앞발이 다시 예전처럼….
고쳐져 있었다.
“으르렁!”
“끄르르르!”
아이스 타이거의 울음소리가 마치 환호성처럼 크게 울렸다.
호디가 성녀의 앞에 머리를 조아려 엎드렸다.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다리를 낫게 해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진심이 전해지는 목소리에 성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성녀의 손이 거대한 호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힘이 도움이 되어서 저야말로 감사하네요.”
터벅.
터벅.
샤벨타이거 주니어가 늠름한 모습을 보이며 최한과 아이들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너무… 감사합니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 이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해야 할지….”
한재석과 아이들이 최한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아이들의 시선을 확인한 최한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그 늑대족 일 때문에 상의할 것도 있고. 또… 뭐… 음… 우선 먹을 것 좀 먹으면서 이야기할까요? 우리 여기 오는 동안 한 끼도 먹지 않아서….”
샤벨타이거 주니어가 고개를 하늘로 높게 들어 올리며 크게 외쳤다.
“축제를… 축제를 준비하라!”
“으르렁!!”
* * *
축제가 끝난 그날 밤.
지구와 달리 분홍색을 내뿜는 아름다운 달빛을 보며 최한이 사색에 잠겨 있었다.
지구.
한국. 그리고 학교.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때.
터벅.
터벅.
네 개의 다리가 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최한의 고개가 그곳을 향했다.
“호디?”
“미안합니다. 방해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머리를 살짝 숙이며 호디가 최한에게 사과했다.
“아니야. 그냥 달이 이뻐서 보고 있었어. 그런데 잠도 안 자고 보초 서고 있는 거야?”
“네. 언제 늑대족이 공격해 올지 모르니까요.”
“대단하다, 너도. 그런데… 뭔가 말할 게 있어서 온 거지?”
“그걸 어떻게….”
“그냥. 그런 표정이었어.”
호디가 최한의 옆에 자세를 잡고 엎드렸다.
“아까 식사 자리에서 한 얘기, 진심이십니까?”
“뭐가?”
“늑대족의 족장을… 쓰러트린다는 이야기….”
“아직 쓰러트리는 것까지는 모르지만… 내 친구가 그 녀석의 아버지거든. 근데 자식의 몸을 누군가 뺏어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다면… 얼마나 마음 아프겠냐.”
“그… 로키라는 분이군요. 저희 아버지보다도 더욱 강한 힘을 가지신 분이던데.”
“힘이라…. 엄청 강하지. 지금은 나도 상대가 안 될걸? 그놈 그래 보여도 한 차원의 왕이니까.”
“당신도 왕이라 들었습니다. 미드가르드였나….”
“맞아. 인간들의 왕. 그들을 지키기 위해 여행하고 있어.”
“좋은 왕이군요. 백성을 지키기 위해 여행을 한다라….”
“그런데 펜니르에 대한 건 왜? 우선 동태를 살피고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면 다 함께 만나러 가자고 너희 족장이 얘기했잖아.”
“그게….”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은 호디가 말했다.
“사실… 그 녀석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최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가 어떻게? 아까는 모른다며.”
“그건 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입니다. 아무리 다리를 고쳤어도 지금의 아버지는 예전보다 많이 쇠약해진 상태니까요.”
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너, 몰래 늑대족을 공격하려고 했구나?”
최한의 목소리에 호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분이시군요. 맞습니다. 아픔을 겪은 이는 저만이 아닙니다. 그날 아버지와 함께 나갔던 전사들의 나머지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몰래 늑대족을 치려고 미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셨으면 엄청 혼났겠는데?”
“그러니 말을 안 했죠.”
“그래도 괜찮은데? 힘을 합치기로 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아주 좋은 일이야. 그놈들을 찾는 데 들일 시간을 번 셈이니까. 그래서 그놈들은 지금 어디 있지?”
“어제까지 확인한 바로는 이곳에서 5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는 소우카라는 마을에 있다고 합니다.”
“소우카?”
“네. 소우카 마을은 들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인데. 정찰병의 말에 의하면 이미 마을에 살고 있는 들소족은 모두 전멸했다고 합니다.”
“하아… 진짜 악질이네. 내 자식이어도 죽을 때까지 팼겠다. 그럼 내일 그 마을로 쳐들어가면 되는 거야?”
“네. 정찰병이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곳에 아직 있을 겁니다. 아… 그리고 이 정보는 제가 말했다고는….”
“알았어. 비밀이지? 걱정 마. 아버지한테는 말 안 할게. 내가 알아냈다고 하면 돼.”
“감사합니다.”
“그래. 내일 제대로 싸워야 하니까, 너도 얼른 자. 너 말고 다른 보초들도 있으니까. 게다가 정찰병도 있고.”
“네. 그럼 오늘은 저도 처음으로 편하게 잠을….”
그때.
띠링!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아오오!”
최한의 귓가에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