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나도 육체는 사라지고 정신만 있었거든. 그래도 이렇게 살 수 있었어. 그러니까…… 이딴 껍데기는 사라져도 돼.”
한재석의 목소리가 울렸다.
육체를 가로챈 뒤 처음으로 무력한 모습을 보인 펜니르의 모습에 전투를 벌이던 늑대족이 당황한 표정으로 펜니르를 지켜보며 굳어 있었다.
당황한 것은 늑대족뿐만 아니었다.
니플헤임을 어지럽히던 악마가 처량할 정도로 밀리는 모습에 전투를 벌이던 아이스타이거족 또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굳어 있었다.
니플헤임의 왕이던 포우스를 해치우고, 전대 족장인 샤벨타이거의 목숨을 앗아갔던 악마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니플헤임의 절반이 넘는 종족을 사라지게 하고, 밤잠을 설치게 했던 악의 근원이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저 펜니르를 한 방에…….”
샤벨타이거 주니어와 호디가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모든 눈이 향한 곳.
바닥에 쓰러져 있던 펜니르가 거대한 울음소리와 함께 분노를 터트렸다.
“뭘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거야! 어서 싸워! 눈앞에 있는 녀석들 하나라도 더 죽이라고!”
날 선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추고 있던 늑대들이 다시 아이스타이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젠장…… 이 몸에게 치욕을 주다니…….”
펜니르가 한재석을 올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정신 지배 같은 건 아니었나 보네? 강한 힘으로 공포를 심어 지배하고 있는 건가? 늑대족들 형편없네.”
한재석이 비릿한 미소를 보이며 펜니르를 깔보았다.
“지배하는 데 공포만 한 것도 없지. 뭐…… 처음에는 반발하는 놈들도 많이 있었지만, 본보기로 그놈들 다 죽이니 이제 내 말에 따르는 착한 놈들만 남게 되었지.”
한재석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 그래도 알기 쉬워서 좋네. 저 녀석들도 이제 쓰레기들만 남았단 거잖아. 살살 할 필요 없이 다 죽이면 되겠네.”
한재석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졌다.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샤벨타이거 주니어의 꼬리가 하늘 높이 추켜올려졌다.
처음으로 가슴속에 두려움이 아닌 다른 감정이 피어오른 샤벨타이거 주니어였다.
‘어쩌면…….’
육체적인 힘만 따지고 본다면 펜니르의 육체보다 샤벨타이거 주니어가 미세하게나마 강했었다.
하지만 근력의 차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최상위 마법과 방대한 양의 마기 때문에 목숨을 건 전투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발생했었는데…….
샤벨타이거 주니어가 쓰러져 있는 펜니르를 보며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는 몸을 세워 한재석에게 다가갔다.
“도와주겠네. 힘을 합친다면 분명 쓰러트릴 수 있을 거야. 아직 저 녀석, 힘의 전부를 꺼내지 않았…….”
걸음을 옮기던 샤벨타이거 주니어의 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니. 이 녀석은 내가 처리할 테니 손대지 마.”
“그렇지만…… 이 녀석, 혼자 상대할 만한 상대가…….”
한재석을 눈에 담던 샤벨타이거 주니어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내가 두 번 말하는 건 싫어해서 말이야. 이 녀석은 내가 맡을게.”
미소.
부드럽게 반달을 그리고 있는 눈의 모습과 과하지 않게 찢어진 입술의 양 끝.
하지만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 미소에서 흐르는 엄청난 압박감과 끝없이 전해지는 살기가 느껴졌다.
한재석의 미소에 샤벨타이거의 꼬리가 땅으로 축 처졌다.
동물적 아니, 신이기에 느낄 수 있는 본능.
죽는다.
샤벨타이거가 더는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뒤쪽에서 지켜보던 최한이 샤벨타이거 주니어에게 말했다.
“그래. 저놈은 한재석한테 맡기자.”
잔뜩 굳어 있던 샤벨타이거 주니어가 고개를 돌려 최한에게 시선을 옮겼다.
최한이 손을 들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아이스타이거들과 늑대족을 가리켰다.
“쳐들어온 늑대족의 수가 너무 많아. 지금은 팽팽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아이스 타이거들 모두 당할 거야. 그렇게 되면…….”
호디가 최한의 뒷말을 가로챘다.
“수적으로 너무 불리해져. 그리고 펜니르 녀석과 힘을 합쳐 로키를 공격하기라도 한다면…… 이길 수 없어. 지금 펜니르와 일대일로 싸울 수 있는 건 저 녀석밖에 없으니까.”
샤벨타이거 주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이 전투에서 승리하면 아버지의 복수는 물론 니플헤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어.”
샤벨타이거 주니어가 몸을 돌렸다.
샤벨타이거 주니어가 백설과 아이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힘을 빌려주었으면 하오.”
성녀와 강진철이 서로를 바라보다 다리를 움직였다.
“그리 말하지 않아도…….”
“이제 나서려던 참입니다.”
성녀와 강진철의 뒤로 백설도 함께 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이 터벅터벅 걸어 늑대족을 향해 나아갔다.
호디가 샤벨타이거 주니어에게 말했다.
“아버님. 저희도 가죠. 더 이상 마을의 백성들을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
호디와 샤벨타이거 주니어가 늑대족을 쓰러트리기 위해 나아갔다.
홀로 남겨진 최한.
“그럼 이제…….”
최한이 한재석과 펜니르를 향해 몸을 돌렸다.
쾅!!
마기의 부딪침만으로도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움직임 없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들은 지금 엄청난 전투를 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마기를 방출시켜 서로의 기세를 꺾으려는 듯했다.
콰과광!
치지직-.
엄청난 마기의 요동침이었다.
“음…….”
턱을 매만지던 최한이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오딘의 눈 발동.”
지이잉-.
붉은 귀걸이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시스템을 로딩합니다.]
최한의 시선으로 귀걸이에서 보내는 정보들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오딘의 눈 로딩 중-.]
“그럼 로딩되는 동안 분석을 좀 해볼까? 정보 열람.”
최한의 시선으로 상태창이 두 개 나열되었다.
@@@@이름 : 한재석
@@@@나이 : ∞
@@@@종족 : 거인족, 신
@@@@칭호 : 장난의 신 (EX)
@@@@능력치
@@@@근력 : (EX) S – 3,211
@@@@민첩 : (EX) S – 3,222
@@@@내구 : (EX) S – 3,050
@@@@체력 : (EX) S – 3,130
@@@@마기 : (EX) S – 3,400
@@@@특성 : 로키
@@@@
@@@@최종 등급 : (EX) S
@@@@SKILL
@@@@시전자의 의해 가리개 적용 중입니다.
@@@@
@@@@
@@@@이름 : 펜니르의 육체
@@@@나이 : ∞
@@@@성별 : 남
@@@@종족 : 이형거인족
@@@@칭호 : 종말자 (EX)
@@@@능력치
@@@@근력 : (EX) S – 3,100
@@@@민첩 : (EX) S – 3,100
@@@@내구 : (EX) S – 3,100
@@@@체력 : (EX) S – 3,100
@@@@마기 : (EX) S – 3,300
@@@@SKILL
@@@@[ 순혈의 피 ]
@@@@고대부터 존재해 온 거인족. 혈통의 힘을 가지고 있다.
@@@@혈계 특성
@@@@얼음 내성 100%
@@@@화염 내성 50%
@@@@전기 내성 50%
@@@@포이즌 내성 50%
@@@@물리 내성 50%
@@@@[ 거인족의 후예 ]
@@@@거인족은 둔기 아이템을 쓰면 근력이 200% 향상된다.
@@@@[ 로키의 피 ]
@@@@요툰의 왕이었던 로키의 피를 이어받은 자.
@@@@로키의 가호가 그를 보호한다.
@@@@[ 앙그르보다의 피 ]
@@@@요툰의 여왕인 앙그르보다의 피를 이어받은 자.
@@@@앙그르보다의 가호가 그를 보호한다.
@@@@특성 : 육체의 힘만으로는 특성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최종 등급 : (EX) - S급
‘미세하긴 하지만 내구도 빼고는 한재석이 기본 능력치에선 우위를 보이고 있어. 하지만…….’
최한이 상태창을 지우고 한재석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역시…….”
여유로운 표정 속.
떨리고 있는 한재석의 눈썹이 보였다.
분명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한재석의 승리를 향하고 있었다. 공격 한 방에 쓰러진 펜니르. 능력 수치로 보이는 강함.
하지만 최한의 시선에 보이는 한재석은 분명 무리를 하고 있었다.
능력으로만 본다면 벌써 이겼어야 했다.
‘정에 이끌려 봐주고 있다거나 하는 게 아니야, 이건…….’
띠링!
[분석을 완료합니다.]
[스킬 로키의 피가 펜니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 로키의 피 ]
@@@@요툰의 왕이었던 로키의 피를 이어받은 자.
@@@@로키의 가호가 그를 보호한다.
[로키의 힘으로는 펜니르를 죽일 수 없습니다.]
귀걸이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최한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거 큰일인데……. 저 녀석 분명 자신의 손으로 해치우고 싶다 했는데…….”
콰과과광!!
“으윽!”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한재석의 무릎이 꿇려졌다.
지켜만 보던 최한이 한재석의 곁으로 다가갔다.
“괜찮냐? 네 힘으로는 저 녀석 죽일 수 없대. 육체만 얻긴 했어도 스킬은 다 그대로 인가 봐. 로키의 피라는 스킬이 있는데 아마 그 스킬 때문에 네가 밀리고 있는 걸 거야.”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한재석이 몸을 세웠다.
“아, 쪽팔리네. 반쪽짜리 아들한테도 못 이기면 이거, 부모로서 체면 구기는데 말이야.”
한재석의 눈치를 살피던 최한이 작게 말했다.
“저기…… 내가 도와…….”
최한의 시선으로 한재석의 손가락이 다가왔다.
한재석의 검지가 최한의 말을 멈추게 했다.
“아니. 내가…… 한다. 아무리 딴 놈이 들어간 껍데기라도…… 다른 놈한테 죽임을 당하게 할 순 없잖아. 내 손으로 끝내야…… 누구 탓도 못 하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재석이 최한을 지나쳤다.
마기로만 싸우던 한재석이 빠르게 다리를 움직여 펜니르의 육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성질 변환! 화염에 번개의 성질을 더해서!”
한재석의 손바닥 위로 화염과 번개가 피어올랐다.
붉은 화염 주위를 감싼 채 요동치고 있는 번개들이 보였다.
“죽어라!”
한재석이 펜니르의 육체를 향해 손에서 피어오르던, 번개 성질이 추가된 화염을 던졌다.
화르륵!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화염이 펜니르의 얼굴에 명중했다.
콰과과광!!
대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후폭풍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최한이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엄청난 바람이 마을 전체로 뻗어 나갔다.
슈우웅-.
팔을 시리게 하던 바람이 사라지고.
최한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떤 말도 내뱉지 않았다.
공격은 분명 엄청났다.
웬만한 신조차 가루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세기.
하지만.
오딘의 눈이 틀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최한이었기에.
해치웠나? 같은 틀에 박힌 소리는 하지 않았다.
“칫…… 진짜인가 보네. 이거 웬만한 아스가르드 신들도 한 방에 골로 보낸 기술인데…….”
연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펜니르를 보며 한재석이 입술을 깨물었다.
“뭐야? 이것밖에 안 돼? 아까는 그렇게 큰소리치더니……별거 아니잖아?”
펜니르가 침을 질질 흘리며 음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역전된 상황에 기고만장해진 눈빛이 거슬렸다.
“야, 한재석. 너 진짜 저 녀석 못 죽여. 고집 그만 부려.”
최한의 목소리에 한재석이 최한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시끄러. 내가 해치울 수…….”
턱!
최한이 한재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귀에 대고 작게 이야기했다.
“네 기분 알아. 자식이 다른 놈의 손에 당하는 것도 마음 아플 거란 것도 알아. 그런데 있잖아……. 내 자식 몸에 저딴 X밥 쓰레기가 들어와서 나쁜 짓을 한다면……. 계속해서 내 자식의 평판을 떨어트리는데, 내 힘이 약해 그걸 보고만 있어야 한다면…….”
한재석의 시선으로 최한의 웃는 표정이 보였다.
“그럼 난 다른 놈들이 아닌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여줬으면 좋겠어. 내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