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강진철의 목숨을 거둬간다는 문구.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던 백설조차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릴 정도였으니.
최한이 눈앞에 뜬 퀘스트 창과 진행되고 있는 보상을 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지금까지 보던 퀘스트 완료 형태였다.
「퀘스트 NO. 013
니플헤임의 남쪽 끝 파라트라 마을에 잠들어 있는 펜니르의 정신을 깨우시오.
보상
레벨 + 5
Time out : 05 : 14 : 02」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을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름 : 최한
나이 : ∞
종족 : 신
칭호 : 인간의 왕 (EX)
레벨 : 57
능력치
근력 : (EX) S - 3,231
민첩 : (EX) S - 3,220
내구 : (EX) S - 3,220
체력 : (EX) S - 3,250
마기 : (EX) S - 3,420
특성 : 옥황상제
최종 등급 : (EX) S
SKILL
신의 권능(복제) - 스킬 빼앗기 LV 100
신의 권능. 모든 만물의 제약을 없애고, 시전자가 눈으로 본 모든 능력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다.
100배의 힘까지.
[능력당 1회만 사용 가능.]
신의 권능(나락) - 풍혈 LV 100
신의 권능. 우주에 있는 모든 공간과 단절된 어둠뿐인 공간에 가둬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시간 동안 벌을 받게 된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
[Cool. 재사용 대기시간 24H]
신의 권능(권속) - 지배 LV 100
신의 권능. 지배자의 권리로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권속할 수 있다.
<각성 SKILL>
왕의 명(EX) - LV 100
인간들은 시전자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
왕의 심판(EX) - LV 100
수투르의 검 속 모든 힘을 이끌어낸 참격.
[참격 1회당 필요 마기 : 3,000]
전혀 기쁘지 않았다.
어쩌면 로키보다 강한 능력치를 가지게 된 순간이지만 최한의 얼굴에는 기쁜 기색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은 수투르의 검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최한은 자신의 능력치는 전혀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모든 상태창을 지우고 단 하나의 문구만을 남겨 놓은 채 진실을 갈구하고 있었다.
“거짓말이야……. 오류일 거야…….”
[퀘스트 계약 조건에 따라 강진철의 목숨을 거둬갑니다.]
문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빠직.
최한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신경질적으로 귀걸이를 만지는 최한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빨리! 오류 났잖아! 고쳐봐!”
최한이 바닥에 주저앉아 괴성을 지르자 주위에 있던 욘두르 형제와 쌍수대신이 눈치를 보며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성녀와 백설도 최한의 모습에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그저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그의 귀걸이가 발동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치잉!
최한의 귀걸이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오딘의 눈 발동. 로딩을 시작합….]
기계음 사이로 최한의 괴성이 다시 한번 울렸다.
“개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이 눈앞에 문구 좀 사라지게 해! 이딴 오류 빨리! 빨리 사라지게 하라고!”
정적이 흐르고.
빛을 내던 최한의 귀걸이가 점멸을 일으켰다.
최한의 귀걸이에서 전자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최한만 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가 아니라 주위에 있는 아이들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시전자의 요청으로 로딩 전 빠르게 정보를 확인해 본 결과…….]
꿀꺽.
최한을 포함한 아이들이 불안한 눈빛을 숨기지 못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문구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NO. 13 퀘스트는 이상 없이 완료되었습니다. 다만 퀘스트 진행 기간 동안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계약이 성립된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퀘스트 완료 조건으로 계약되었던 ‘강진철’의 목숨을 퀘스트 완료와 함께 거둬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정적.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분노를 참지 못해 소리치던 괴성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저…….
이 분함과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는 최한과 아이들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뚝.
뚝.
떨어지는 눈물이 높은 온도에 그대로 기화되어 버렸다.
바닥에 어떤 자국도 만들지 못한 그 슬픔의 눈물이 울분을 풀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었다.
한참을 눈치만 보던 욘두라 형제와 쌍수대신이 최한에게 말했다.
“저…… 큰일이 벌어진 건 알고 있지만…….”
“시간을 지체하면…… 제 시간 안에 무스펠헤임에 도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음에도 최한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그런 최한을 눈에 담고 있던 욘두라 형제와 쌍수대신의 얼굴에 어두운 표정이 지어졌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왕의 증표를 가진 남자.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봤을 때 무작정 걸음을 재촉할 수는 없었다.
인간과 다른 종족이지만, 이들도 마음이란 것이 있었다.
가까운 친구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터벅.
터벅.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최한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가, 강진철은…… 너, 너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의 반을 빼앗기는 대가로 강한 힘을 손에 넣었어.”
최한의 고개가 들렸다.
최한의 시선으로 울고 있는 성녀의 얼굴이 보였다.
“나,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강진철과 마찬가지로 너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생명의 반을 잃었어. 너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으로 너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최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성녀의 상태창에 남은 수명이 나타났던 것을 떠올린 최한이었다.
그 이유를 이제야 짐작할 수 있었다.
“왜…… 왜 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최한밖에 없으니까요.”
최한의 표정이 사라졌다.
“최한밖에 없으니까요……. 이 세상을…… 지구를…… 친구들을…… 우리 엄마 아빠를 살게 하려면…… 오딘에게 죽임당하지 않게 하려면…… 최한이 강해지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성녀의 목소리에 최한이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다.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강진철이 그랬을 것이다.
한재석이 있었는데도 말리지 못했다면, 자신이 함께 있었다 해도 같은 결과가 나왔으리라.
알고 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한의 고개가 들려 성녀를 향했다.
“이만큼이나 강해졌는데…… 이만큼이나 강해졌는데 구해주지 못해서…… 내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것은 성녀 그리고 먼 곳에 있는 이제는 사라져 버린 생명에게 하는 사과였다.
성녀가 최한의 얼굴을 보다 눈물이 터져 버렸다.
“사과 안 해도 됩니다. 최한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 중 누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희생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최한은…… 앞으로 나아가세요. 그게…… 최한이 할 일입니다. 그게…….”
“최강이 짊어진 업이다. 네가 그랬잖아. 인간들 구하겠다고. 오딘을 이기겠다고. 그럼 앞으로 나가. 우리의…… 시체를 넘어서라도.”
어느새인가 다가온 백설이 최한을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 충혈된 두 눈은 그녀가 얼마나 슬픈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줬다.
그녀도 참고 있었다.
모두가 참고 있었다.
자신을 다독이며 자신들이 짊어진,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기에.
입술을 깨물던 최한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욘두라 형제…… 쌍수대신…….”
최한의 목소리에 욘두라 형제와 쌍수대신이 움찔거리며 소리쳤다.
“네!”
“네…….”
최한이 눈물을 지우며 그들에게 말했다.
“어서 길을 알려줘. 난 꼭 시간 안에 무스펠헤임으로 가야 해. 내 친구가 목숨을 걸고 이어준 이 퀘스트…… 절대 실패할 수 없어.”
욘두라 형제와 쌍수대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 대왕님…….’
‘대왕님과 같은…… 눈이다.’
욘두라 형제와 쌍수대신이 머리를 숙이며 소리쳤다.
“네! 무슨 일이 있어도 제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새롭게 마음을 다잡았다.
‘너의 희생…… 잊지 않을게. 그러니 난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간다. 나중에 사과하러 갈게.’
* * *
강진철의 죽음을 알게 된 시점부터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파라트라 마을에서 붉은 포탈을 타고 해와 분홍색 달이 동시에 떠 있는 이면 세계에 들어온 한재석 일행.
한재석과 강진철 그리고 호디가 펜니르의 정신이 잠들어 있는 지하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는 지하로 가는 계단이 어떤 빛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동굴처럼 변해 있었다.
어떤 빛도 닿지 않는 어둠.
꽤 깊은 곳까지 온 것 같았다.
딱!
한재석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너무 안 보인다.”
한재석의 손가락 위로 작은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손가락 위를 빙글빙글 돌며 모습을 갖춰가던 화염이 이내 작은 씨앗의 모습으로 형태를 갖추었다.
화르륵!
작은 씨앗의 모습이었지만, 어두운, 지하로 가는 통로를 밝히기에는 충분한 불씨였다.
“뭐냐, 이건?”
강진철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불씨를 보며 물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 같습니다.”
호디가 하늘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불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녀석의 이름은 쎄라. 작은 화염의 요정이야. 전투 능력은 거의 없고, 이렇게 어두울 곳을 밝혀주는 용도나 마법진을 대신 그려주는 용도로 쓰고 있지.”
강진철과 호디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그럼 다시 가볼까? 시간이 없다고.”
한재석의 걸음을 시작으로 다시 지하로 이동했다.
턱턱.
한재석이 만들어 낸 쎄라의 빛을 받아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함정도, 적도 없는 통로.
이상했다.
펜니르의 힘을 두려워했던 오딘이라면 분명 어떠한 함정이나 장치들을 설치했을 터인데.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펜니르의 정신이 가까워졌다는 느낌만이 점점 짙어졌다.
펜니르의 정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상해.”
한재석의 목소리에 호디가 꼬리를 움직이며 물었다.
“어떤 것이 말입니까?”
“펜니르의 정신에 가까워진 것 같은데, 문지기도 아니, 어떤 함정도 없다니.”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한재석을 보며 강진철이 말했다.
“네가 너무 오바하는 걸 수도 있어. 이미 이렇게 짱박아둔 게 엄청난 함정이라고. 아니면…… 뭐, 구하려면 엄청 큰 대가가 있다든지. 암튼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강진철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향했다.
호디와 한재석의 시선이 그곳으로 움직였다.
붉은 쇠사슬이 걸린 문이 보였다.
“저곳에 있는 건가…… 펜니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