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작은 불꽃 요정 쎄라가 가장 먼저 새롭게 나타난 문앞으로 이동했다.
쎄라의 빛에 문의 모습이 제대로 드러났다.
붉은 쇠사슬이 엑스자로 문을 봉인하고 있었다.
한재석이 가장 먼저 문 앞에 도달했다.
붉은 쇠사슬이 막고 있는 낡은 철문을 눈에 담던 한재석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찌직!
작은 스파크와 함께 한재석의 손이 뒤로 밀려났다.
“여기가 맞나 보군.”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손가락의 고통보다 마지막 지점에 도달했다는 긴장감이 더욱 표정에 드러났다.
한재석의 곁으로 다가온 강진철이 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 오긴 한 것 같은데. 이거 무슨 수로 열지?”
“그건 제가 알고 있습니다.”
단호한 목소리.
한재석과 강진철의 시선이 동시에 네발로 기어 오고 있는 호디에게로 옮겨졌다.
“네가 어떻게 이 정도의 봉인술을 푸는 법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이 봉인술 본 적이라도 있는 거야?”
한재석과 강진철의 사이를 지나치며 호디가 말했다.
“아니요.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호디의 거대한 몸이 문 바로 앞에서 멈췄다.
호디의 머리 위로 푸른 마법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봉인술을 파훼하는 해제 마법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습니다.”
호디의 머리 위에 나타난 푸른 마법진이 봉인 마법이 걸린 붉은 쇠사슬 위로 겹쳐졌다.
치지직!
쇠사슬에서 엄청난 전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붉은색과 검은색의 에너지가 고통을 호소하듯 요란하게 움직이더니 이내 힘을 잃고 사라져 갔다.
동시에.
쿵!!
굉음과 함께 문을 막고 있던 붉은 쇠사슬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
한재석과 강진철이 호디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호디의 옆을 지나며 등을 쓰다듬었다.
“도움이 된다더니 진짜 제대로 한 건 해줬네.”
“고맙다.”
한재석과 강진철이 문을 밀기 시작했다.
끼기긱!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비명을 지르며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쿵!
문이 완전히 열렸다.
한재석이 턱짓하자 공중에 떠 있던 쎄라가 빠르게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화르륵.
어둠만 존재했던 공간에 처음으로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쎄라의 빛에 어둠이 밀려나자.
“저, 저게…….”
“펜니르의 정신…….”
“…….”
아이들의 시선으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늑대의 얼굴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귀신처럼 몸이 연하게 보인다고 해야 하나.
색을 빼앗긴 듯,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이질적인 색감을 가진 늑대의 얼굴이 공중에 떠 있었다.
이름 : 펜니르의 정신
나이 : ∞
성별 : 남
종족 : 이형거인족
칭호 : 종말자 (EX)
능력치
근력 : (EX) S – 3,400
민첩 : (EX) S – 3,400
내구 : (EX) S – 3,400
체력 : (EX) S – 3,400
마기 : (EX) S – 3,400
SKILL
[ 순혈의 피 ]
고대부터 존재해 온 거인족. 혈통의 힘을 가지고 있다.
혈계 특성
얼음 내성 100%
화염 내성 50%
전기 내성 50%
포이즌 내성 50%
물리 내성 50%
[ 거인족의 후예 ]
거인족은 둔기 아이템을 쓰면 근력이 200% 향상된다.
[ 로키의 피 ]
요툰의 왕이었던 로키의 피를 이어받은 자.
로키의 가호가 그를 보호한다.
[ 앙그르보다의 피 ]
요툰의 여왕인 앙그르보다의 피를 이어받은 자.
앙그르보다의 가호가 그를 보호한다.
특성 : 정신의 힘만으로는 특성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최종 등급 : (EX) - S급
처음으로 환한 빛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처음으로 방문한 사람의 목소리 때문인지 늑대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누구지?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것이냐.”
단단하고도 강렬한 목소리에 아이들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중 가장 크게 반응하고 있는 이는 역시 펜니르의 부모인 한재석이었다.
“너…… 정말…… 펜니르냐?”
마른침을 삼키며 한재석이 천천히 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차츰 돌아오는 시야와 가까워지는 인간의 모습을 눈에 담던 펜니르의 정신이 차분히 말했다.
“아버지……이시군요.”
한재석이 울컥하는 마음을 숨긴 채 펜니르의 정신이 있는 곳을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 나다, 로키…….”
“죄송합니다. 오딘의 계략에 속아서……. 그렇게 조심하라 말씀하셨는데…….”
한재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아니야. 긴 시간 동안 봉인당한 네가 가장 힘들었을 터인데. 사과할 필요 없다.”
한재석이 펜니르의 정신 앞으로 다가가 천천히 손을 올렸다.
스윽.
한재석의 손이 늑대의 얼굴을 관통했다.
“만질 수 없는 건가…….”
만져지지 않았다.
육체가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뿌옇게라도 시야에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육체와 분리된 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육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만, 육체를 찾아도 아마 본래의 육체로는 돌아가기 어려울 겁니다.”
뒤쪽에서 보고 있던 강진철과 호디가 천천히 한재석의 곁으로 다가왔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본 한재석이 강진철과 호디를 펜니르의 정신에게 소개했다.
“이쪽은 나와 함께 여행 중인 강진철과 호디다. 내…… 친구들이지.”
강진철과 호디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공중에 떠 있던 늑대의 얼굴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입에서 친구라……. 신기하긴 하군요.”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것보다, 너를 만나러 오기 전에 벌써 네 육체와 만났었다.”
“제 육체를요?”
“그래. 근데 이상한 놈이 네 육체를 빼앗아서 니플헤임에 있는 다른 종족들 싹 다 죽이고 있더라.”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펜니르의 정신이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입을 다물고 있던 펜니르의 정신이 말했다.
“해치우고 오신 거겠죠?”
펜니르의 목소리에 한재석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당연하지. 너도 그걸 바랐을 거 아니냐.”
늑대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맞습니다.”
한재석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그렇고…….”
한재석이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퀘스트 NO. 013
니플헤임의 남쪽 끝 파라트라 마을에 잠들어 있는 펜니르의 정신을 깨우시오.
보상
레벨 + 5
Time out : 06 : 14 : 02」
“역시 클리어되지 않는군. 펜니르의 정신을 깨우라는 게 그냥 잠만 깨우라는 의미가 아니었던 건가?”
“그게 무슨…….”
한재석이 펜니르의 정신도 볼 수 있게 퀘스트창을 나타냈다.
처음 보는 퀘스트창을 한 번에 이해할 수는 없었기에 한재석이 약간의 상황 설명을 덧붙였다.
잠깐의 이야기가 오간 뒤.
“이 퀘스트가 클리어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공중에 떠 있던 펜니르의 정신이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재석이 말했다.
“무엇 때문이냐? 이 문의 봉인은 풀었을 텐데.”
“이 문에 걸린 봉인은 그저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정도의 방어책일 뿐입니다. 제 봉인은 풀린 게 아닙니다. 퀘스트에 나와 있는 정신을 깨우라는 의미는 아마…… 진짜 제 봉인을 풀라는 의미겠죠.”
“그게 무슨…….”
펜니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한재석과 일행들이 유유히 공중을 날고 있는 펜니르의 정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공중에 뜬 채 문을 향해 나아가던 펜니르의 정신이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이게 진짜 제 봉인입니다.”
마지막 말을 남긴 펜니르의 정신이 열린 문을 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치지직!!
펑!!
문 쪽에서 엄청난 전류가 흐르고 곧바로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뿌연 연기를 쏟아내고 있는 펜니르의 정신이 보였다.
“이게 제 봉인입니다. 저는 육체가 없는 한 이 방에서 절대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한재석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며 무릎이 땅으로 떨어졌다.
“이런……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육체를 가져와 보기라도 할걸…….”
“아니요. 후회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너무도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어차피 그 몸으로는 돌아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펜니르의 목소리에도 한재석은 분노와 아쉬움을 쉽게 달래지 못했다.
“시도라도……. 쯧! 젠장. 이 퀘스트를 깨야 하는데. 최한을 위해서도…… 펜니르를 위해서도…….”
퍽.
한재석이 바닥을 강하게 때렸다.
쿵.
큰 소리가 울렸지만, 바닥에는 작은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엄청난 공간 마법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밖에서 보았던 이면 세계도 그렇고, 문 안쪽에 있는 이 작은 방도 그렇고.
듣도 보도 못한 초고위의 봉인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젠장……. 이 정도의 고위봉인 마법은 본 적도 없는데……. 어……?”
한재석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하얀 호랑이.
한재석의 시선이 호디를 향했다.
“너…… 해제 마법에…… 소질이 있다고 했잖아. 이것도…….”
“할 수 없다.”
호디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거짓이 아니었다.
“뭐?”
“내 힘으로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떻게 해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한재석의 언성이 높아졌다.
“워, 워……. 진정해. 지금 우리끼리 싸워 봤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너 이유가 있는 거지?”
강진철이 호디와 한재석을 말렸다.
“기본적으로 해제 마법은 봉인이 각인 된 물체를 파괴하거나 반대로 연산해 문을 여는 구조가 많아. 그런데 지금 이 방과 펜니르의 정신에 걸린 봉인은 각인이 없는 초고위의 봉인술이야. 그것도 이 봉인을 만든 술사조차 해제를 하지 못할 정도의…….”
호디의 목소리에 한재석의 고개가 흔들렸다.
“이럴 수가…….”
한재석의 흔들리는 시선이 펜니르의 정신에게 향했다.
어딘지 담담한 표정.
늑대의 얼굴에선 작은 놀라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너, 알고 있었던 것이냐……?”
“긴 시간 동안, 저도 많은 것들을 시도해보았습니다. 이동 마법부터 저 문을 부수기 위한 마법까지……. 하나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지요. 너무도 오랜 시간 동안 갇혀 있어, 어둠이 친구처럼 느껴질 때쯤…… 아버님이 찾아오신 겁니다.”
“젠장. 방법이 없는 건가…….”
한재석과 강진철. 그리고 호디의 고개가 땅으로 떨어졌다.
“방법…… 있습니다. 왜 오딘이 안쪽에서 문을 못 열게 했는지 밖으로 못 나가게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한재석이 빠르게 펜니르에게 다가갔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
“그 방법은…… 제 정신이 들어갈 새로운 육체를 마련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