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용 새끼들한테 복수할 수 있겠네. SSS급이 된 거 축하한다, 최수혁.”
최수혁이 웃으며 헌터 협회장 지경태에게 말했다.
“복수는 무슨. 신들 보니 용 새끼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더만.”
“재미없는 건 여전하네. 그래도 진짜 엄청나긴 했어. SSS급인 최한의 힘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으니까.”
“그래. 맞아.”
최수혁과 지경태가 미림고에서 있었던 오딘과의 전투를 떠올렸다.
아스가르드에서 온 신들의 힘은 가히 대단했다.
다른 인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S급과 SSS급의 힘으로도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최한 군이 설마 신이었다니. 그래도 옥황상제로 각성한 최한 군의 힘은 신들에게 통했습니다. 그 티르라는 신을 한 방에 죽이는 모습은 정말…….”
오지훈 박사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슈웅!
공간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협회장실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아고…… 힘들다.”
어깨를 두드리며 나타난 노인이 중앙에 마련된 소파에 털썩 앉았다.
노인의 모습에 최수혁을 포함한 이들의 입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헤니르 님.”
최한의 스승이자, 지금은 오딘이 다시 쳐들어올 것을 대비해 만든 아스가르드 방어 부대 총사령관을 맡고 있는 헤니르였다.
최수혁과 지경태가 먼저 헤니르의 앞으로 이동해 고개를 숙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헤니르 님.”
“어떻게 됐습니까? 그 바나헤임인가에 사는 신들은…….”
요란한 소리에도 헤니르의 얼굴 표정은 작은 변화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천천히 다가오던 오지훈 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절한 거군요.”
오지훈의 목소리에 헤니르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거절당했어. 아스가르드 신들과 적대 관계에 있는 바나헤임의 신들이라면 도와줄 줄 알았는데. 참…… 겁쟁이 신 놈들.”
최수혁과 지경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헤니르와 함께 많은 준비를 한 그들은 알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바나헤임에 살고 있는 바니르 신족이 얼마나 강하고, 아군이 되었을 때 얼마나 큰 보탬이 될지를.
오지훈이 턱을 매만지며 끼어들었다.
“큰일이군요. 바니르 신족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당초 얘기했었던 전력보다 적어도 30% 이상은 타격을 입을 것 같은데요.”
“30%라……. 아니야. 지금 와서 보니 그들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적어도 50%는 힘이 약해지는 거야.”
헤니르의 목소리에 최수혁이 물었다.
“그 정도입니까? 바니르 신들이?”
“그 정도가 아니라, 신이란 존재가 차지하는 힘의 비중이 그 정도로 큰 거야. 이번 전쟁에서…….”
깊은 한숨을 내쉰 헤니르가 최수혁을 보며 물었다.
“너. 강해진 게 느껴지나?”
헤니르의 물음에 최수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비록 신들만큼은 아니지만, SSS급. 인간 중 최강이라 불렸던 최한 군만큼 강해져 보니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이 힘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지.”
“그렇지. 강하지……. 강하고말고. 웬만한 드래곤들이나 변방의 신들보다도 강한 힘일 걸세. 하나…….”
헤니르가 오딘을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딘……. 어차피 그자에게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으로 지워질 정도라네.”
한순간에 방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맞다.
최수혁도 알고 있었다. 아니, 그곳에 있는 모두 알고 있었다.
미림고 운동장에서 힘이 통하지 않아 울부짖던 최한의 모습을 모두 보았으니까.
꽉!
최수혁의 주먹이 쥐어졌다. 많은 감정들을 그러쥔 그 주먹이 크게 떨려왔다.
‘신들에 비해서 전력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터. 하지만…….’
최수혁이 헤니르를 보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애당초 저희의 임무는 오딘과 직접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닌, 발할라에서 나오는 해골 병사들에게서 인간들을 지키고, 최한과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지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저희의 할 일이니까요.”
오지훈과 지경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헤니르의 얼굴에도.
“맞다. 내가 너무 어두운 얘기만 했구나. 바니르 신족을 전력에 넣은 것은 내 잘못이니. 그리고 어차피 그들이 도와주든 도와주지 않든, 우리의 할 일은 한 가지였으니까. 일대일.”
헤니르의 표정이 변하며 굳은 의지가 얼굴에 드러났다.
“어차피 모든 전쟁은 대장의 목이 떨어지면 끝이 나게 된다. 우리의 할 일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오딘과 최한이 제대로 싸울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거다.”
최수혁과 오지훈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데…… 만일…… 최한 군이 오딘을 상대할 만큼 강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불쑥 튀어나온 목소리.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인간의 시간으로 따지면 최한과 아이들이 강해지기 위한 여행을 떠난 건 80일 정도뿐이었으니까.
아무리 다른 차원이라 해도 이렇게 단시간에 강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게다가.
눈앞에서 오딘과 토르의 힘을 본 이들이기에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지경태의 목소리에 헤니르의 입이 떨어졌다.
“뭘 그리 쉬운 답을 묻고 있나? 최한이 오딘과 싸울 힘을 얻지 못했다면…… 당연히 이 지구와 인간들은 모두 사라지는 거지.”
* * *
라그나로크.
D –10일.
서울 브로스 길드의 지하 연구실.
“정말 오늘 오는 거 맞아?”
“네, 맞습니다. 헤니르 님이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하……. 그 노인네, 시간이라도 좀 제대로 알려주지.”
청룡 길드장 이창식과 오지훈이 연구실 한편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걱정 마. 헤니르 님이 거짓말하시는 거 봤냐? 아마 아이들 모두 데리고 포탈이든 뭐든 열어서 오시겠지.”
“그래. 좀 차분히 기다려. 제일 늦게 와놓고서는.”
아레나 길드장 이정은과 검성 길드장 장왕윤이 이창식을 보며 핀잔을 줬다.
“몇 분이나 차이 난다고 무슨. 그리고 나 꼴찌 아니야. 얘가 꼴찌라고.”
이창식의 손이 조용히 앉아 있던 지경태를 향했다.
“꼴찌는 무슨. 너랑 같이 들어 왔거든? 그리고 나 이제 헌터 협회 협회장이야. 협회장 대우 좀 해줘라.”
“대우는 무슨! A급이 헌터 협회장 하는 게 자랑이냐?”
빠직.
“A급 아니라고! 이제 나도 S급이라고!”
“그럼 나도 이제 SS급이거든!”
쾅!
지경태와 이창식이 머리를 맞부딪히며 눈싸움을 시작했다.
“자…… 그만, 그만. 싸우지들 말라고. 이제 온 것 같으니.”
브로스 길드 길드장 최수혁의 목소리에 이창식과 지경태의 머리가 서로 떨어졌다.
그리고.
지지직!
길드장들과 오지훈의 시선으로 시공의 균열이 생기는 것이 보였다.
치잉!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치던 균열이 넓어지더니 이내 포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턱.
“아이고……. 한 번에 이렇게 많이 데려오려니 힘들긴 하구만.”
붉은 포탈에서 헤니르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곧바로 한재석과 성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재석 군!”
“오! 꼬맹이 오랜만이다!”
오지훈 박사와 이창식이 한재석과 성녀를 반겼다.
“오랜만이네요.”
“이 늙은이 아저씨가.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까, 꼬맹이라 그런 거 이번 한 번만 봐드릴게요.”
최수혁과 다른 길드장들의 얼굴에도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턱.
아이들과의 재회에 몰두해 있을 때, 포탈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붉은 머리칼을 한 소녀와 오 대 오 가르마를 한 남자.
백설과 강진철.
그리고.
“아이, 깜짝이야! 뭐야, 이 호랑이는!”
지경태가 자신의 앞으로 나타난 아이스타이거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한재석이 아이스 타이거를 소개했다.
“이 녀석은, 호디라고 해요. 다른 차원을 여행하다 만난 친구이고……. 이래 보여도 신의 자식이에요.”
“반갑군. 너희들이 최한이 지키려고 하는 자들인가.”
엄청난 근육을 움직이며 호디가 고개를 숙였다.
“와…… 호랑이가 말한다.”
“앞발에 한 대 맞으면 죽겠군.”
검성 장왕윤과 지경태가 호디의 몸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최수혁이 한재석에게 말했다.
“저 한재…….”
최수혁이 뭔가 시원치 않게 이름을 부르자 한재석이 무엇 때문인지 깨닫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냥 편하게 한재석이라 부르세요. 애들이랑도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분명 저는 로키라는 신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여러분과 맺어지게 된 건 한재석이라는 고등학생으로서니까요. 편하게 한재석이라 부르세요.”
한재석의 배려에 최수혁이 어두운 표정을 지우고 미소 지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럼…… 최한 군……. 최한 군의 모습은 왜 보이지 않는 거지? 같이 오지 않은 건가?”
“그건…….”
“올 겁니다. 최한은 지금 엄청 힘든 수련을 하고 있어서 저희만 먼저 왔어요. 11일 후에 꼭…… 꼭…… 오딘보다 강해져서 돌아올 겁니다.”
백설이 한재석의 말을 가로챘다.
물음을 했던 최수혁뿐 아니라 오지훈과 다른 이들도 백설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분위기를 보며 많이 달라진 것을 실감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던 그때와 달라……. 마치 지금은 이 또래의 아이 같기도 하다.’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정체와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아이였지만, 지금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한없이 부드럽고 차분해져 있었다.
한마디로…….
아이들과 같아져 있었다.
최수혁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군. 긴 여행에서 돌아왔을 텐데, 우선 편히 쉬도록. 열흘 후에…… 큰 전쟁에 대비해야 하니.”
최수혁의 목소리에 한재석과 아이들의 얼굴에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잠깐. 모두 쉬러 가기 전에…… 하나만 이야기하자.”
헤니르가 여행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길드장들을 보며 몸을 돌렸다.
헤니르의 진지하게 변한 표정에 길드장들과 아이들의 표정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정확한 시간까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하루. 적으면 몇 시간…… 길면 열두 시간 이상 차이가 날 것이다.”
주어를 말하지 않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두 헤니르의 입에서 나온 그 말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최한.
최한이 돌아오는 시간이다.
아스가르드에 있는 포탈의 봉인이 풀린 후……부터의 시간.
“그 시간만 버티면 된다. 그 시간만 어떻게든 지구와 인간들을 지키며, 최한이 오길 기다리며 버티면 된다. 아마…… 이 중에서 몇 명은 최한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나도 포함이다. 그러니 아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이 마지막 전쟁의 키가 될 것이다.”
정적이 흐르고.
잠시 뜸을 들이던 헤니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키는 시간이, 그 고통을 참고 버틴 시간이…… 최한에게 닿아 그를 이곳으로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
연구실에 있는 모든 이의 표정이 같아졌다.
자신감과 믿음이 겹쳐진 미소.
그들의 결의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전 차원의 미래를 건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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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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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DAY.
라그나로크.
세계수의 가장 높은 곳.
아스가르드.
헤임달이 붉은 쇠사슬을 손에 든 채 오딘의 앞으로 걸어왔다.
오딘이 황금 의자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당장 출정을 준비하라! 발할라의 10억 병사들과 아스가르드에 있는 50명의 신들 모두 미드가르드로 출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