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라그나로크.
세계 종말의 날이자, 신들의 영광이 끝나는 전쟁.
하나.
라그나로크는 전쟁의 승리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승리한다면, 신들의 영광은 계속되며 인간이 멸종하고 새로운 차원을 다시 창조하는 기쁨을 맞이할 것이고.
인간들이 승리한다면 영겁의 시간 동안 쾌락과 영생을 누리던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멸망할 것이다.
* * *
라그나로크 D – DAY.
서울 하늘에 이상 기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남, 강북 할 것 없이 서울의 모든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고.
시곗바늘이 정오를 가리키는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는 밤이 찾아왔다.
그리고.
콰과과광!!!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먹구름에서 낙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정없이 내려치던 낙뢰는 마치 신들의 심판이 시작됐다는 말을 대신하듯 수많은 인간들의 목숨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빌딩이 무너지고, 도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일반인들은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며 두려움에 잡아먹혀 갔다.
첫 낙뢰가 떨어진 뒤 단 오 분.
오 분 만에 만 명 에 달하는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여의도 부근.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해치며 소리치는 여성이 보였다.
“야! 손대영! 빨리 구조대 지원 보내달라고 해! 아직 붕괴된 잔해 아래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어!”
여성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치고는 무너져 내린 빌딩의 잔해들을 맨손으로 들어 뒤쪽 도로로 던졌다.
쾅! 쾅!
족히 일 톤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건물의 잔해를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쉽게 치우고 있었다.
“참나. 아직 신 놈들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이 정도 피해라니.”
얼굴에 분노와 함께 피어오른 두려움을 숨기지 못한 마수아였다.
“정말 이길 수 있는 싸움이긴 한가요?”
본부에 지원 요청을 보낸 서번트 손대영이 멍하니 검게 변한 하늘을 보며 말했다.
척.
손대영의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얹어졌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라, 이겨야 하는 싸움이야. 지면 인간 다 멸망이라고, 바보야.”
A급 힐러 윤강산이 손대영이 바라보고 있는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브로스 길드의 간판스타이자, 한때 최강의 딜러라 불렸던 마수아팀.
그들은 헤니르가 정해준 각자의 포지션을 지키며 임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 농땡이 그만 부리고 너희도 도와! 어차피 헤니르 님이 지시 내리기 전까지는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눈앞의 사람들이라도 구해야지!”
마수아의 목소리에 윤강산과 손대영이 미소 지으며 마수아를 도와 건물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마수아팀이 힘을 모아 건물의 잔해를 치우길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삐이이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구조대가 도착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방차와 구급차가 동시에 무너진 건물 주위를 감쌌다.
빠르게 차에서 내린 구조대가 마수아팀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왜 이렇게 늦게 와!”
마수아의 짜증에 맨 앞에 있던 구조대로 보이는 자가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무너진 도로가 많아서.”
“시끄럽고! 빨리 사람들이나 구해!”
“네…… 네!”
얼추 큰 잔해들은 마수아가 모두 치워 놓은 상태였다.
곧바로 구조대원들이 잔해 속으로 들어가 인명 구조를 시작했다.
구조대의 등장에 마수아팀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지시를 기다렸다.
무너진 건물의 뒤쪽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지하철 출구 앞.
“길드 쪽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 구조대가 왔군요.”
손대영의 목소리에 윤강산이 목 뒤를 두드리며 말했다.
“길드장님이 정부에 도움 요청 다 해놨겠지. 그때 잠깐 듣기로는 헤니르 님이 각국의 대통령을 다 만났다고 하는 것 같던데.”
“각국 대통령을요?”
“어. 뭐, 가장 큰 공격은 이곳 서울로 올 게 뻔하지만, 외국에도 분명 동시에 공격이 있을 테니까.”
윤강산의 말에 손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검게 변한 서울 상공에서 붉은빛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해가 주는 따스함과 밝은 LED 조명이 주는 찬란함과는 다른 이질적인 빛.
신성하면서도 어딘가 공포를 자아내는, 처음 보는 빛이 먹구름을 뚫고 내려왔다.
윤강산이 마른침을 삼키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이제 오나 보군……. 망할 놈의 신들이…….”
검은 먹구름을 뚫고 내려오던 붉은빛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서울 상공 전체에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동시에.
띠리리링!!
손대영의 손목에 차고 있던 서번트워치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띡!
“마수아팀 손대영 서번트입니다.”
손대영의 목소리가 들린 뒤, 서번트워치에서 기계음과 함께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최수혁이다. 지정된 위치에 있나?”
“네, 길드장님. NK260 지점에 마수아팀 전원 대기 중입니다.”
“그래. 상공에 나타난 미확인 마법진…… 너희도 보고 있을 테지.”
“네…….”
“헤니르 님의 전언을 전하겠다. 정확히 3분 뒤, 10억의 해골 병사와 함께 발할라라는 전사의 거처가 서울 상공에 나타날 것이다.”
10억.
실로 엄청난 숫자였다.
이 숫자가 신들의 숫자가 아닌 것은 다행이었으나, 이들 모두 100일 전에 미림고에서 일어난 전투에 직접 참여하고 목격한 인원들.
해골 병사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해골 병사 하나하나가 못해도 A 아니, S급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어.”
차분히 스마트워치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있던 마수아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윤강산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들의 긴장감 서린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수혁의 목소리가 서번트워치에서 흘러나왔다.
“쏟아져 나오는 해골 병사들을 최대한 처리해라.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 전체에 헌터들이 나가 있다. 아마 마법진이 나타난 상공에서 발할라가 내려올 테니. 주위를 둘러싸서 최대한 원 밖으로 한 마리도 나가지 않게 해치우는 것이 첫 번째 임무다.”
헤니르의 작전.
그것은 서울 상공에서 나타난 발할라를 감싸, 각 지점에 파견된 헌터들이 점점 해골 병사를 해치우며 원을 줄여 가는 작전이었다.
그러면 뒤쪽으로 피해가 번질 일도 없고.
헌터들이 지키고 있는 자리만이 전쟁에 노출되어 최대한 피해를 적게 볼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언제까지 버텨야 합니까?”
마수아가 서번트워치에 대고 말했다.
찌지직-.
최수혁의 목소리가 아닌 잡음 섞인 기계음만이 흘러나왔다.
잠깐 동안의 침묵이 흐른 뒤.
“간단하다. 너희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최수혁의 목소리에 마수아와 윤강산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알기 쉬워서 좋네요.”
“그럼…… 혹시 살아서 만나게 되면…… 길드장님, 저희 월급 좀 올려주세요.”
농담 섞인 윤강산의 목소리에 최수혁의 목소리에 웃음이 얹혔다.
“그래, 그러지. 전쟁에서 이기고 살아서 만난다면. 그럼 나도 하나 부탁해도 될까?”
최수혁의 목소리에 마수아와 윤강산이 짧게 대답했다.
“네.”
지지직-.
잡음 섞인 기계음 뒤로 최수혁의 마지막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혹시라도 전쟁이 끝나고 내가 없다면…… 길드를 잘 부탁한다.”
뚝.
.
.
.
마수아와 윤강산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굳은 의지가 보이는 굳센 표정.
진지하게 변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때마침 헤니르가 말했던 3분이란 시간이 지나고…….
지지직!
붉은 마법진 위로 붉은 전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그나로크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진짜 어느 한 종족의 종말은 확실하네.”
윤강산의 시야를, 마법진을 통과하고 있는 발할라와 성질을 참지 못하고 그 주위에서 먼저 튀어나온 10만이 넘는 해골 병사들이 가득 채웠다.
마수아의 무릎 아래로 번개 부츠가 나타났다.
“리더로서 미안하지만, 어차피 우리 팀은 살 확률 같은 거 없어. 최대한 많이 죽이고, 지옥에서 다시 만나자.”
* * *
서울 명동.
대한민국 헌터 협회 본부 상공.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지경태와 이창식이 발할라에서 쏟아져 나오는 해골 병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대피를 완료했긴 했으나, 최대한 건물들과 시설들을 지키기 위해 지상이 아닌 상공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디버프 30퍼센트!”
모자를 뒤로 눌러쓴 지경태의 손에서 푸른 빛이 나아갔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해골 병사 무리에 디버프가 걸렸다.
이어 디버프가 걸린 해골 병사들의 몸이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크로스 엘보우!”
콰과과광!!
엄청난 충격파가 일어난 자리에 드래곤 모드로 변한 이창식이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공격을 가한 이창식의 발아래로 해골 병사들의 시체가 바닥으로 떨어져 갔다.
“엘보우 공격 한 방에 100마리 정도라……. 역시 디버프가 좋긴 좋네.”
이창식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야! 창식아! 멍 때리고 있지 마! 나 공격당한다!”
뒤쪽에서 울린 소리에 이창식의 시선이 지경태에게 닿았다.
방금 100마리의 해골 병사를 해치웠지만, 쏟아져 나오는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이미 동료들의 시체를 발판 삼아 전진한 해골 병사들이 지경태의 앞까지 당도했다.
“하……. 진짜 끝이 없구만.”
펄럭!
슈우웅!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며 이창식이 지경태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미라클 봄버!”
이창식의 주먹 위로 불길이 용솟음쳤다.
펑!!
지경태의 시야를 가리던 해골 병사들이 폭발했다.
“휴……. 그런데 그 기술명들은 뭐냐? 원래 이렇게 소리치지 않았잖아.”
지경태의 목소리에 이창식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긁어댔다.
“나도 하기 싫거든? 그런데 헤니르 님이 공격할 때 기술명을 외치는 게 더 강한 파워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하셔서…….”
“그 노인네의 말이라면…… 뭐, 어쩔 수 없지. 최수혁도 SSS급이 됐으니까, 뭐, 사실이겠지.”
“그런데…… 정말 끝이 없긴 없네. 최한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으려나.”
이창식과 지경태의 눈앞에 벌써 해골 병사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경태가 해골 병사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뭐 어쩌겠어. 버텨야지. 이거 아직 시작도 안 한 거라며.”
지경태에 손에서 나간 디버프 마법이 해골 병사들에게 닿았다.
“그러게. 이놈들은 그냥 쫄다구 놈들이고. 엄청 많은 수의 신들이 쳐들어온다며?”
이창식이 빠르게 날아가 디버프가 걸린 해골 병사들을 해치웠다.
콰과과광!!
이창식의 타격이 일어날 때마다 폭발 소리와 함께 해골 병사들의 시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디버프와 이창식의 전공법이 최상의 연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모전으로 가면 갈수록 불리한 쪽은 언제나 인간이었다.
“이 녀석들 못해도 10억 마리는 있다고 했지?”
“쫄다구만 10억 마리라……. 이거, 신들 쳐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지쳐서 쓰러지는 거 아니냐?”
지경태의 목소리에 이창식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10억 마리 다 죽이려면 S급 힐러 한 백 명은 있어야겠는데?”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내뱉던 이창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믿을 수 없는 광경.
순식간에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몇 초 전.
아니, 방금까지 함께 이야기하고 있던 지경태의 몸이 떨어지고 있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로.
“뭐야? 동족의 냄새가 나서 왔더니만…… 이거, 가짜 놈이잖아?”
이창식의 눈앞으로 천사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