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지경태!”
이창식이 피를 흘리며 땅으로 추락하고 있는 지경태를 목놓아 불렀다.
그런 이창식을 비웃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렇게 불러도 소용없어. 내 공격이 제대로 명중했거든?”
끌끌거리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는, 하얀 피부를 가진 천사의 모습에 이창식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젠장. 서포트형 능력자라고는 해도 이제 지경태는 S급으로 강해졌을 텐데.’
그런 지경태가 공격 한방에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천사들을 떠올렸다.
처음 만났던 미카엘이라는 파란 피부를 가진 천사.
S급인 자신과 최수혁이 힘을 합쳐 덤벼도 이기지 못했다.
그다음 만났던 천사들도 S급 능력자들이 모두 덤벼도 이기지 못했다.
S급을 훨씬 웃도는 힘을 가진 천사들.
그러나 그들 모두 SSS급인 최한에게는 패배했었다.
‘그렇다면.’
헤니르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수명을 내놓은 대가로 강해진 이창식이었다.
SS급.
지금이라면 천사 놈들한테 힘이 통할지도 모른다.
애매하게 지경태를 구하러 가면 당할지도 모른다.
‘한 방에 해치우고 지경태를 구하러 간다.’
이창식의 온몸에서 초록색 에너지 파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온몸을 감싼 이창식이 소리쳤다.
“브레스!”
이창식의 목소리에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천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이창식의 입이 벌어지며 얼굴 앞으로 초록색 마법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마법진은 분명 용족만이 쓸 수 있는 최강의 스킬.
브레스를 소환하는 마법진이었다.
이창식의 입에서 초록색 브레스가 발사되었다.
콰과과광!!
대기를 찢으며 나아간 브레스가 하얀 천사의 모습을 지웠다.
동시에 뒤쪽에 있던 해골 병사 천마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폭발의 여운이 가시고.
이창식이 숨을 헐떡이며 입을 뗐다.
“어떠냐……. 이게 이 몸의 필살기다. 이제 네놈들한테는 지지 않아…….”
체내의 축적된 마력의 반을 소모하는 최강의 기술이었다.
S급일 때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공격에 마음속에서 승리의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다.
“이겼다.”
이창식이 짧은 한숨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지경태를 구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했다.
“어이. 장난하지 말라고. 적의 시체도 확인하지 않고 이겼다 생각하는 거냐? 힘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보군. 자만심이…… 지나쳐.”
온몸에 소름이 돋는 목소리였다.
이창식의 눈동자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하기도 전.
이창식의 시야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자신의 피로 얼룩진 시야에 당당히 서 있는 천사가 보였다.
작은 상처 하나도 없이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나 강해졌는데도…… 이기지 못하는 거냐…….”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이창식이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처량하게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인간들을 보며 하얀 피부를 가진 천사가 비웃음을 보였다.
“인간이 강해져 봤자지. 그리고 너희들이 아무리 강해진다 해도. 우리 상급 천사한테는 절대 이기지 못할 것이다.”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상급 천사.
상급 3직위. 좌천사의 등장이었다.
이름 : 로로엘
나이 : 10,000
성별 : 남
종족 : 용족
칭호 : 좌천사 (상급 3직위)
능력치
근력 : (EX) D – 1,451
민첩 : (EX) D – 1,411
내구 : (EX) D – 1,366
체력 : (EX) D – 1,322
마력 : (EX) D – 1,444
SKILL
패시브
[ 토르의 가호 ]
천둥의 신, 토르에게 하사받은 천사의 링으로 인해 번개 공격에 대한 내성이 증가하고, 8서클의 고위 화염 마법 사용이 가능해진다.
전기 내성 90%
마법 스킬 오픈 (화염 계열)
액티브
[ 홀리 브레스 ]
용족의 비기.
기본적인 화염 브레스가 아닌, 성스러운 빛의 힘이 깃든 브레스를 발사한다.
최종 등급 : (EX) D급
웃고 있는 로로엘의 뒤로 3마리의 좌천사가 더 등장했다.
“저 녀석들 제대로 숨통 끊고, 오딘 님이 오시기 전까지 우선 이 나라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죽이자.”
* * *
서울 상암.
많은 방송사 빌딩들이 모여 있는 번화가 상공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서울의 마지막 지점을 지키고 있던 아레나 길드의 길드장 이정은과 검성 길드의 길드장 장왕윤이 해골 병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너무 하지 않냐?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 5대 길드의 길드장씩이나 되는데, 우리가 방패막이나 하고 있어야 한다니…….”
아레나 길드장 이정은이 툴툴거리며 블리자드 스킬로 해골 병사를 순식간에 얼려 버렸다.
“툴툴대지 마라. 헤니르 님이 우리를 인정했기에 이 일을 맡겨주신 것이다. 최한이 올 때까지 최대한 다른 곳에 피해 주지 않으려면 우리도 가장 강한 카드로 시간을 벌고 있어야 한다고.”
검성 길드장 장왕윤이 대검을 내리쳤다.
대검에서 발사된 참격이 얼어붙어 있던 해골 병사 무리에게 직격했다.
콰지직!
거대한 얼음에 갇혀 있던 해골 병사들이 산산이 조각나 땅으로 떨어졌다.
다시 정자세를 취하며 깊은 한숨을 내뱉던 장왕윤이 발할라에서 쏟아져 나오는 해골 병사들을 눈에 담았다.
“그래도 정말…… 끝이 없구만…….”
“참나. 멋있는 말은 다 하더니 쏟아져 나오는 해골들 보니까 겁나냐?”
새로운 마법진을 그리고 있던 이정은이 장왕윤을 보며 소리쳤다.
“겁나지 않는다. 그저…… 감탄하고 있다. 마음속에서 피어나고 있는 두려움 속…… 설레는 이 이상한 기분에.”
장왕윤은 목숨을 담보로 헤니르에게서 받은 힘을 사용할 생각에 자신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하여간 이상한 놈이라니까, 넌. 근데 참 신기해. 어떻게 너랑 최수혁만 SSS급이 됐을까.”
“그거야…… 간단한 답 아닌가?”
확신에 찬 장왕윤의 목소리에 이정은이 두 눈을 껌뻑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와 최수혁은 끊임없이 강함을 추구했으니까.”
“에?”
흔들림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장왕윤의 모습에 이정은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너희가 모르는 게 있다. 나와 최수혁만이 알고 있는 것이.”
영문 모를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장왕윤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한계라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본인이 정해 놓은 것이니까.
아무리 생명을 뺏어 힘을 각성시키는 것이더라도.
본인의 의지에 의한 차이는 분명히 생길 수 있었다.
신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다다를 수 있는 최강의 등급은 분명 SSS급이었다.
인간과 신의 경계.
(EX)급은 마기를 가진 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등급.
마력을 가진 인간들은 절대 능력치 상으로는 (EX) 등급으로 넘어갈 순 없었다.
능력치상으로 가장 끝에 도달할 수 있는 등급은 SSS급.
단 SSS급이더라도 한 번에 모든 마력을 태우는 공격과 스킬이라면 잠깐의 시간 동안 (EX)급의 힘을 내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
장왕윤이 자신이 들고 있는 대검.
율도에서 느껴지는 검의 파동을 느꼈다.
지금까지와 다르다.
S급일 때는 통하지 않던, 검과의 공명이 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장왕윤이 짧은 호흡과 함께 검을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이정은과 대화하고 있는 동안 쏟아져 나온 해골 병사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천? 만?
구분도 할 수 없는, 똑같은 모습을 가진 무수한 해골 병사들이 검을 들고 자신을 향해 공격해 오고 있었다.
장왕윤이 숨을 멈추고 집중했다.
‘난 지금도 더욱 강한 힘을 원한다. 능력치가 더욱 올라가지 않는다면…… 신을 넘을 수 없다면…….’
후-.
많은 것을 담은 날숨이 쉬어졌다.
“기술로 메운다.”
대검 율도가 물 흐르듯 허공을 갈랐다.
“검성 제 31초식. 낙향.”
휘이잉-.
작은 바람이 일었다.
그러고는.
콰과과광!!
장왕윤을 향해 다가오던 만이 넘는 대군의 몸통과 얼굴이 분리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이정은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니…… 목만 잘린다고? 이 숫자가…….”
긴장을 풀 듯 편안한 날숨을 내뱉으며 정자세로 다시 자세를 잡은 장왕윤이 검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검만을 잡았기에 알 수 있었다.
‘내 힘이 정도의 경지까지 올랐다니.’
만족의 미소.
얼마 만에 웃는 것인지도 모를 큰 미소가 지어졌다.
표정 없기로 소문난 장왕윤의 얼굴에 희열이 느껴졌다.
“육체의 훈련만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을 넘어선 거로군. 목숨의 반을 가져갔어도……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
장왕윤이 자신의 힘에 취해 있던 그때.
“아무래도 본 게임 시작인 것 같다……. 왕윤아…….”
나란히 서 있던 이정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장왕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정은!”
흔들리는 시선 속에서 똑똑히 보였다.
한쪽 팔이 잘린 채 주저앉아 있는 이정은의 모습이.
“너…… 팔이…….”
얼굴 전체가 고통 때문에 일그러져 있었지만, 나머지 팔은 빠르게 마법진을 펼쳐 치유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고통이 지배하고 있는 그 짧은 순간에도 이정은은 장왕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빠르게 전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몸 상태를 만들고 있었다.
“걱정 마. 한 손으로도 마법은 쓸 수 있어. 나 대마법사 이정은이야. 그것보다…… 저놈은…… 대체 뭐지?”
솟아오르던 피가 멈추고, 이정은이 자신을 공격한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발할라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해골 병사들의 앞에 여유롭게 홀로 서 있는 인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인간과 다르게 끝없는 힘을 가진 아우라 같은 것이 느껴졌다.
파란색 눈동자와 어깨까지 내려오는 파란색 긴 머리를 가진, 성별을 알 수 없는 중성적인 인간이었다.
새하얀 피부와 여성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머리까지 길었지만, 웃통을 입지 않아 드러난 그의 몸과 팔다리에는 엄청난 근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호. 내 공격을 맞고도 버티는 인간이 있다니. 정말 아버님과 형님이 한 말씀이 사실인 것 같군.”
팔을 잃었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이정은이 신기한지 고개를 움직이며 차근차근 눈에 담고 있었다.
장왕윤이 새롭게 나타난 파란 눈동자를 가진 인간을 보며 소리쳤다.
“넌 대체 뭐야!”
“내 이름은 발드르. 오딘의 막내아들이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푸른 눈동자에서 엄청난 자신감과 자만심이 느껴졌다.
자신감과 자만심.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그 감정들이 보였지만.
눈을 마주친 순간 장왕윤은 느낄 수 있었다.
신이기에.
인간과 달리 선과 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존재기에.
자신감과 자만심을 모두 한 감정에 담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은 할 수 없지만, 신은 할 수 있는 것.
눈동자에 담긴 그 느낌만으로도 그가 신이란 것을 몸소 체험하게 해주었다.
“오딘의 아들이 또 있었던 건…….”
말소리를 내려 움직이던 장왕윤의 입술이 멈췄다.
“누가 아버님의 이름을 입에 담아도 된다고 했지? 인간 주제에…….”
발드르의 목소리가 울리고.
검성 장왕윤의 대검 율도가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율도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는 장왕윤의 두 팔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