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장왕윤!”
이정은의 목소리에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한쪽 팔이 잘린 자신의 상처는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자신의 고통보다 눈앞에서 일어난 친구의 사고에 더 큰 감정을 이입하고 있었다.
콰과과광!!
대검 율도가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도로변에 떨어졌다.
그 충격은 아스팔트가 길게 갈라지고 큰 구멍이 생겨 버릴 정도였다.
정작 피를 흘리고 있는 당사자인 검성 장왕윤은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저 흐느끼듯 울고 있는 이정은의 목소리와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발드르라는 신의 오만한 표정만이 보이고 있을 뿐.
“너도 꽤 튼튼하구나? 닿기만 해도 몸이 터져 버릴 줄 알았는데 팔만 딱 잘렸네.”
푸른 눈동자를 가진 발드르의 눈매가 반달 모양으로 변하며 꽤나 흥미로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왕윤이 천천히 고개를 내려 고통이 밀려오는 부근으로 시선을 옮겼다.
붉게 솟아오르고 있는 피가 보였다.
너덜너덜하게 잘린 단면.
손으로 잡아 뜯은 듯 양어깨 아랫부분이 찢겨 있었다.
당연히 그 아래 있던 팔과 손은 잘려 나간 상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 뜨거움으로 변해 갔다. 전류가 느껴지듯 따가웠던 상처 부위가 이제는 마치 불로 지지는 듯 열감으로 뒤덮여 갔다.
하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그런 고통보다 장왕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힘을 가진 순간부터…… 나에겐 검밖에 없었다.’
그렇다.
그에게 강함은 곧 검이었고.
그에게 전투라는 것 또한 검이었다.
능력자. 초능력.
인간보다 강한 힘.
스킬이나 자연계 특성을 가진 다른 능력자들과 다르게 각성했을 때도 그에게는 검이 전부였다.
초인의 경지.
검성.
대한민국 5대 길드장.
그 모든 수식어를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검이었다.
“장왕윤! 정신 차려!”
어느새 장왕윤의 곁으로 이정은이 날아왔다.
하나 남은 팔로 빠르게 치료마법을 펼쳤다.
그런 이정은의 행동에도 장왕윤은 어떤 움직임이나 시선도 주지 않았다.
초점이 나가 있는 눈.
이미 그는 어둠에 잡아 먹혔다.
‘검을 들지 못하는 검사는 그날로 죽는 것이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
끝없는 강함을 추구해 단련했던 지난날.
모든 것을 포기하며 검에만 매달렸던 노력.
그 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장왕윤의 죽어 있던 눈동자가 발드르를 향했다.
“그냥…….”
“뭐라고?”
장왕윤의 작은 목소리에 발드르가 미간을 구기며 귀를 장왕윤을 향해 돌렸다.
“그냥 죽여…….”
장왕윤에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응급 치료를 하고 있던 이정은이 소리쳤다.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장왕윤!”
“그냥 죽이라고! 검을 잡지 못하는 검사는 살아 있어도 사는 게 아니야!”
엄청난 고함.
장왕윤의 울분 섞인 목소리 뒤로 정적이 찾아왔다.
“그럼…… 네 소원대로 해주마.”
심판의 목소리가 들린 뒤.
슈우웅!
발드르의 손가락에서 발사된 푸른 빛의 에너지가 장왕윤의 심장을 꿰뚫었다.
“미안하다…… 이정은…….”
장왕윤의 검은 눈동자에 색이 지워졌다.
“안 돼!!”
이정은의 외침과 다르게 장왕윤의 몸은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네가 남 걱정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발드르의 목소리에 이정은이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옮겼다.
푹!!
“커어…….”
이정은의 시야에 발드르의 얼굴이 제대로 담기기도 전.
이정은의 배에 큰 구멍이 생겨 있었다.
발드르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너도 잘 가거라.”
“제, 젠장…….”
이정은이 단말마의 욕설을 내뱉고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럼 이제 제대로 시작해 볼까?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작업을.”
발드르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이름 : 발드르
나이 : ∞
종족 : 신
칭호 : 빛의 신 (EX)
능력치
근력 : (EX) A – 2,799
민첩 : (EX) A – 2,780
내구 : (EX) A – 2,730
체력 : (EX) A – 2,710
마기 : (EX) A – 2,800
특성 : 아스가르드의 불사신
최종 등급 : (EX) A
오딘의 가호
아스가르드 최고신 오딘의 막내아들.
발드르가 태어난 날, 오딘이 자신의 뼛조각을 사용해 최강의 보호 마법을 걸어 놓았다.
빈사 상태가 되거나 마기와 체력이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면, 오딘의 가호가 발동한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무한 회귀 할 수 있다.
홀리썬 소드
태초에 태양을 만들 때 작은 결정을 떼어 내어 만든 검.
성스러운 빛의 힘과 태양의 열기가 담긴 전설의 검을 소환 할 수 있다.
“그럼…….”
발드르가 홀리썬 소드를 소환했다.
날부터 손잡이까지 빛으로 구성된, 영험한 힘을 가진 검.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발드르가 홀리썬 소드를 한 번 휘둘렀다.
그리고.
콰과과광!!!
빛이 모든 것을 잡아먹었다.
그렇게 상암동 전체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 * *
“상암동을 지키고 있던 이정은 길드장님과 장왕윤 길드장님이…… 교신이 되지 않습니다…….”
오지훈 박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브로스 길드 서울 본부 지하 연구실.
전쟁의 지휘를 맡은 헤니르가 오지훈의 보고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당한 건가……. 그들이라면 해골 병사들쯤은 문제없었을 터인데……. 설마…….”
“벌써 신이 내려온 것일까요?”
나지막이 울리는 오지훈의 목소리에 헤니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이렇게 빨리 신들이 도착했을 리가 없는데. 힘이 강한 신들은 터널을 통과하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려 빠르게 차원을 넘을 수 있는 선발대를 미리 꾸려 발할라와 천사급 정도만 내려보냈을 텐데…….”
“예전에도 티르라는 신이 먼저 왔었지 않습니까?”
“그건 예외였어. 티르 녀석은 누구의 말을 듣지 않았거든. 그래서 다른 녀석들보다 먼저 출발한 것일 거야. 항상 전쟁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싶어 했지. 그래서 내 자리를 빼앗고 그 녀석이 아스가르드 전투대장이 된 거야. 그렇게 강하지 않았음에도….”
오지훈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뭐…… 인간에 기준에서는 강한 거였지. 하나…… 아스가르드에 살고 있는 신들을 통틀어 본다면…… 티르는 열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하는 신이었어.”
“그럴 수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마른침을 삼키는 오지훈을 보던 헤니르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런데 정말 누구에게 당한 거지? 천사들인가?”
“아닙니다. 천사들은 이창식 길드장이 있는 곳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지 않습니까?”
“그럼 대체 어떤 신이 이렇게 빨리 넘어 올 수 있는 것이지……. 계획이 틀어지고 있어……. 이 상태라면…….”
헤니르가 오지훈이 조작하고 있는 기계 장치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서울의 지도가 나와 있고.
전투원들이 편성된 지점에 점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상암동 부근에 엑스자 표시와 함께 붉은 글씨로 실패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최한이 오기 전까지 버티지 못할 거야.”
* * *
잠실역 상공.
발할라에서 쏟아져 나오는 해골 병사들을 더는 서울의 뒤쪽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 각 지점에서 막는 헤니르의 계획의 마지막 퍼즐.
서울의 마지막 한 곳을 지키고 있는 최수혁이었다.
“이거 미안하군. 길드 소속이나 S급도 아닌데 이렇게 최전선에서 싸우게 해서.”
푸른 화염을 해골 병사들에게 던지는 와중에도 그에게서는 여유가 보였다.
“아닙니다, 길드장님. 저야말로 S급이 아닌데 이런 큰 중책을 맡을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학생을 지키는 것이 선생의 의무니까요.”
조일환 선생이 미소 지으며 해골 병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중력…… 100배.”
콰과과광!!!
폭발음과 함께 엄청난 중력이 가해지고.
중력을 이기지 못한 해골 병사들의 몸이 으깨지기 시작했다.
작은 뼛조각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해골 병사들.
최수혁이 만족한 듯한 미소를 보이며 조일환에게 말했다.
“역시…… 선생으로만 썩히기에는 아까운 인재라니까.”
조일환의 모습에 자극받았는지 최수혁이 양손에 기를 모으듯 푸른 화염을 계속해서 모았다.
거대한 구형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푸른 화염이 최수혁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최수혁이 쏟아져 나오는 해골 병사들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SSS급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나도 처음이라 너희가 희생양이 좀 돼 줘야겠다.”
최수혁이 머리 위에 있던 푸른 화염을 해골 병사들에게 던졌다.
거대한 공처럼 날아가던 푸른 화염이 쏟아져 나오는 해골 병사들과 부딪쳤다.
화르륵!
콰과과광!!!
엄청난 폭발음이 울리고, 해골 병사에게 닿은 푸른 화염이 해골 병사들의 몸을 타고 크게 번져 갔다.
천 아니, 만.
그 정도의 숫자를 태운 푸른 화염이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발할라에서 쏟아져 나오는 해골 병사들까지 태우려 번져 가고 있었다.
길게 이어진 해골 병사들의 줄을 따라 거꾸로 타오르고 있는 푸른 화염.
“정말…… 대단하군요……. 이게 SSS급이 되신 길드장님의 힘…….”
조일환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벌써 몇만은 태워 버린 푸른 불꽃이 아직도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번져 가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천공의 요새.
발할라의 문 코앞까지 다다른 푸른 화염이었다.
자신의 힘에 놀라면서도 뿌듯함이 깃든 표정을 짓고 있던 최수혁의 눈이 빛났다.
“할 수 있다. 조금만 더 가면…… 문 안쪽에 있는 병사들까지 전부 해치울 수…….”
화르륵!
빠르게 번져 가던 푸른 화염이 순식간에 꺼졌다.
최수혁과 조일환의 눈동자가 동시에 세차게 흔들렸다.
“어째서…….”
“참나. 인간 주제에 꽤 등골이 서늘한 짓을 해주시는구만?”
새롭게 나타난 목소리에 최수혁과 조일환의 시선이 동시에 더 높은 곳을 향했다.
해골 병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발할라의 문 바로 위.
그곳에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천사와 눈이 마주쳤다.
붉은 눈동자를 가진 새하얀 피부의 천사.
지금까지 만났던 천사들과 다른 종이었다.
등 뒤에 여덟 개의 날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차이는…….
“이거…… 조금만 늦었어도 오딘 님께 엄청 혼날 뻔했네.”
“혼나는 게 아니라 죽을 수도 있었다고.”
두 개의 목소리.
그러나 그 목소리는 하나의 몸에서 나온 것이었다.
천사의 얼굴이 두 개였다.
한 몸에 달린 두 개의 얼굴.
그리고 두 개의 인격.
천사를 눈에 담고 있던 최수혁과 조일환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패배의 기억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보던 천사와 다른 생김새 때문도 아니었다.
몸이 떨리는 이유는 그저 한 가지.
인간의 본능.
죽음의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움직임이었다.
“저게…… 천사라고……?”
최수혁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천사에 대한 기억은 패배밖에 없었다.
하나 그것은 자신과 다른 길드장들에게만 국한되는 것.
최한은 달랐다.
SSS급 힘을 가진 최한은 천사라 불리던 존재를 모두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지금 눈앞에 있는 천사는…….
SSS급으로 각성한 자신이 느끼기에도…….
“절대 못 이겨…….”
1퍼센트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