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분수처럼 피어난 출혈이 콘크리트 바닥을 적셔갔다.
거친 숨을 토해 내던 한재석의 입으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빠르게 왼쪽 팔뚝에 엑스자로 된 상처가 깊게 팼다.
너무도 빠르게 벌어진 공격에 인간인 마수아팀 전원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신 할 수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저 호드라는 신은…….
검을 쓸 때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두려움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마수아 팀과 다르게, 공중에서 모든 것을 눈에 담던 프리그의 얼굴에 만족한 웃음이 지어졌다.
“역시…… 호드야. 나서기 좋아하는 다른 신들과 다르게 자신의 힘을 숨기고 강자와의 싸움 때만 자신의 모든 힘을 내뿜는 그 모습. 숨겨진 진짜 최강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내군. 역시 오딘이 내 옆에 붙여준 이유가 있었군.”
많은 신들의 전투를 보아온 프리그였지만, 호드가 싸우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딘이 최고신이 되기 위해 다른 차원에 있는 강한 신들과 싸우던 시절. 오딘이 가장 먼저 일대일로 싸우러 간 존재가 바로 호드였다.
꼬마 요정들이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알프헤임의 왕.
전투는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미드가르드보다도 더 큰 차원인 알프헤임의 왕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소문에 이끌려 오딘은 호드를 만나러 간 것이다.
삼 일 밤낮을 지새운 전투는 결국 오딘의 승리로 끝났지만, 오딘은 호드의 강함을 인정해 자신이 최고신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건국할, 신들만이 모여 있는 세계에서 함께 하자는 약속을 했다.
프리그가 금색의 쌍검을 들고 있는 호드에게 소리쳤다.
“호드! 저 배신자를 죽여 버려!”
프리그의 목소리에 호드가 금색의 검을 들어 엑스자로 교차했다.
다시금 공격 태세를 취한 호드의 모습에 한재석이 입가에 흘러내린 피를 닦으며 호드에게 말했다.
“너 정말 눈 안 보이는 거 맞아? 내가 방어하는 걸 눈치채고 팔에만 정확하게 상처를 내다니.”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시야에만 의존하는 당신들은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눈을 통해 직접적으로 보는 것이 때로는 불필요한 것까지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죠.”
“뭔 개소리야?”
“어차피 말해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면 더욱 선명하게 눈앞에 있는 적만 보이게 되는 것을요.”
파팟!
한재석의 시야에서 호드의 모습이 빠르게 지워졌다.
뒤쪽에서 미세하게나마 느껴지는 살기에 한재석이 몸을 돌려 방어자세를 취했다.
깡!!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화르륵.
“오호……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두 개의 속성이 들어 있는 창인가 보군요.”
호드의 쌍검이 거대한 불의 창에 막혔다.
타오르는 화염창의 겉부분으로 번개 속성의 전류가 일렁이고 있었다.
“알아주니 고마운걸? 이제 네 공격은 통하지 않을 거야. 진심으로 갈 거거든.”
뜨거운 열기 사이로 호드의 콧바람이 새어나왔다.
“맞대 보니 알았습니다. 당신의 최상위 마법인 이 창, 분명 강하긴 합니다만, 겨우 이 창 하나로는 저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요.”
맞는 말이었다.
원래라면 호드가 가지고 있는 금속 물질인 무기와 부딪친다면, 모든 것을 녹이거나 화염 마법이 발동해 불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어야 했다.
호드의 검에는 마법이 걸려 있지 않았다.
그저 들고 있는 신의 마기가 마법을 상쇄시킬 만큼 강하게 내뿜어지고 있을 뿐.
검과 창을 맞댄 순간 자신의 승리를 감지한 호드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당신은 제 힘을 끌어낼 수조차 없는 약자인가 보군요.”
금색의 쌍검이 다음 공격을 위해 높게 들어 올려졌다.
“어이, 어이. 잊은 거야? 내가 그랬잖아. 진심으로 가겠다고. 겨우 이 창 하나가…… 내 최고 마법일 리 없잖아.”
한재석의 목소리 뒤로 프리그의 다급한 외침이 호드에게 날아들었다.
“위쪽이야! 피해! 호드!”
호드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바로 위 상공을 가득 채운 엄청난 마기의 기운을.
넋놓고 지켜 보고 있던 마수아팀의 입이 떡 벌어져 있었다.
“지져스…….”
어둠게 변한 하늘을 밝히는 붉은 화염이 보였다.
한 개, 두 개…… 아니.
수백 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화염창이 호드의 머리 위쪽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한재석이 들고 있던 화염창을 하늘로 던졌다.
천천히 날아오르던 화염창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하늘을 밝히던 수많은 창들의 앞에서 가장 크게 타올랐다.
“어떻게 이 정도 마기를…….”
호드의 몸이 굳어져 버렸다.
“그럼…… 잘가라. 애송이.”
들려 있던 한재석의 손이 아래로 떨어지자.
송곳처럼 날카로운 창들이 순식간에 호드를 덮쳤다.
팍!
팍!
팍!
팍!
“으아악!!!!”
수백 개의 화염창이 호드의 몸 전체를 꿰뚫고 있었다.
살이 찢기는 소리와 호드의 비명이 번갈아 울리고.
마지막에는.
콰과과광!!!
엄청난 불길이 하늘로 솟아오르며 대폭발이 일어났다.
프리그를 포함해, 그곳에 있던 마수아팀 전원이 한재석의 엄청난 마법 공격에 말을 잃고 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타오르는 불꽃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승리를 확신한 한재석이 기지개를 켜며 몸을 돌렸다.
“이제 한 마리 남았나?”
한재석의 시선이 상공에 떠 있는 프리그에게로 향했다.
창백해진 얼굴.
사라진 표정.
승리를 확신하고 쳐들어온 프리그의 얼굴에 이제는 패배의 두려움만이 끼어 있었다.
한재석이 프리그를 보며 고민했다.
“어떻게 요리해줘야 하나? 어떻게 죽여야 오딘이 더 빡칠…….”
펑!!
한재석의 목소리를 지우는 폭발이 들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재석이 목소리를 멈추고 몸을 돌린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엄청난 마기의 요동침.
살의가 담긴 엄청난 마기의 기운이 느껴졌다.
터벅.
터벅.
큰 폭발을 일으킨 화염 속에서 누군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이번 싸움은 제 판단 미스라고 인정하겠습니다. 당신은 강합니다. 제 힘을 끌어내 줄 만큼.”
호드의 목소리가 들리고 화염속에서 걸어나오던 호드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치잉!
툭!
바닥으로 떨어진 뭉뚝한 소리.
한재석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땅에 떨어진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에 이 정도 위력의 공격을 받은 적은 오딘과 싸웠을 때 빼고는 없었습니다. 이 정도의 출혈량도…… 처음이고요.”
호드의 목소리가 한재석의 바로 앞에서 울렸다.
한재석의 시선으로 바로 앞에 서 있는 호드의 발이 보였다.
자신의 거리를 빼앗겼다.
하나 시야에 담긴 호드의 발보다 한재석의 시선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바로 잘려 나간 팔.
땅에서 피를 흩뿌린 채 죽어 가고 있는 자신의 팔이었다.
한재석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호드와 눈을 마주쳤다.
피범벅이 된 호드의 전신이었지만, 화염창에 꿰뚫렸던 상처는 모두 나아 있었다.
달라진 것은 또 하나.
호드의 피부가 붉게 변했다.
피가 범벅이 된 피부 사이사이로 살색의 피부가 아닌, 붉게 물든 피부가 보였다.
“저는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집니다. 그리고 강자와 싸우면 싸울수록 그 크기는 커져 가죠. 제 피를 매개체로 한 마기의 폭발……. 이게 오딘이 저를 싸움의 신으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한재석의 시야로 호드의 변한 상태창이 나타났다.
이름 : 호드 (출혈량 최대치 –90%)
나이 : ∞
종족 : 신
칭호 : 싸움의 신 (EX)
능력치
근력 : (EX) S - 3,280
민첩 : (EX) S - 3,291
내구 : (EX) S - 3,180
체력 : (EX) S - 3,210
마기 : (EX) S - 3,460
특성 : 맹인의 제삼의 눈
최종 등급 : (EX) S
SKILL
[ 제 삼의 눈 ]
눈을 잃은 대가로 다른 기관들이 월등하게 발전했다.
눈이 아닌 머릿속으로 세계가 그려져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다.
[ 싸움 광 ]
전쟁이 아닌 일대일 싸움을 사랑하는 신.
피부와 피부가 닿고 무기가 피부를 뚫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더욱 강함이 증가한다. 피가 나면 날수록 강해진다.
- 출혈량 10%당 능력치 20씩 증가.
[ 오딘의 가호 ]
아스가르드의 정예병. 오딘의 가호를 받은 자.
얼음 내성 50%
화염 내성 50%
전기 내성 50%
포이즌 내성 50%
물리 내성 50%
호드의 능력이 모두 증가해 있었다.
신들은 이미 태어날 적부터 능력치의 최대치를 가지고 태어난다.
기술과 마법, 마기의 사용도 정도는 단련이 가능하지만, 고유의 기본 능력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최한이 특별했고,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고 있었다.
처음보는 능력이었다.
어쩌면 오딘도 가지지 못한 기술.
자신의 피와 목숨을 대가로 능력을 끌어 올리는 기술.
한재석이 눈앞에 나타난 호드의 능력창 옆으로 자신의 상태창을 띄웠다.
이름 : 한재석
나이 : ∞
종족 : 거인족, 신
칭호 : 장난의 신 (EX)
능력치
근력 : (EX) S - 3,211
민첩 : (EX) S - 3,222
내구 : (EX) S - 3,050
체력 : (EX) S - 3,130
마기 : (EX) S - 3,400
특성 : 로키
최종 등급 : (EX) S
SKILL
시전자의 의해 가리개 적용 중입니다.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하던 한재석이 눈빛이 흐려졌다.
‘이미 모든 능력치가 압도당했어.’
한재석.
즉, 로키는 오딘을 제외한 신들 중 최강. 아스가르드의 2인자라 불리는 명성에 비해 기본적인 능력치는 그렇게 월등히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근력, 민첩, 내구, 체력 등.
육체적인 강함이나, 그로 인한 전투 기술 등은 다른 신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느낌은 없었다.
로키가 아스가르드의 2인자이자 오딘과 겨룰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된 이유는 바로.
마기의 양이 엄청나며, 초고난이도의 마법을 사용할 때 마법진과 술식을 만드는 속도가 모든 신들 중에도 빠르기 때문이었다.
화염과 번개를 동시에 쓸 수 있는 능력 또한 엄청난 재능이었다.
이 모든 것이 결합 되어 로키는 그 어떤 신들보다도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팔이 잘린 한재석이 호드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오랜만인걸? 나보다…… 강한 상대를 상대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