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로키의 모습과 새로운 인간들의 등장에 다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로키 이놈…… 감히 내 자식들을…….”
분노 섞인 다누의 표정에 한재석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한재석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녀를 바라보았다.
“늦어서 미안하다.”
그 어느 때보다 듬직한 한재석의 목소리가 울렸다.
울컥한 마음을 대변하듯 성녀의 입술이 떨려왔다.
흩뿌리는 신들의 피 사이로 친구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노란 머리칼의 한재석. 푸른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있는 최수혁. 살짝 고개를 돌려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는 조일환 선생의 모습도 보였다.
서울의 각 지점을 지키고 있던 이들이 모두 이곳으로 집결한 것 같았다.
강진철과 지경태 협회장, 그리고 이창식 헌터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어이. 우리도 왔다고.”
“별 도움은 안 될 테지만.”
마수아와 윤강산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옆쪽에서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는 마수아팀의 서번트 손대영의 모습도 보였다.
“서울 각 지점에 있던 모든 능력자들과 서번트. 상암동에 직격한 낙뢰를 보고 모두 달려왔습니다.”
손대영이 헤니르에게 보고하듯 말을 마쳤다.
고개를 끄덕이던 헤니르가 손대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와줬다. 보아하니 그쪽에 있던 적들은 모두 잘 처리했나 보군.”
“네, 그렇습니다. 저희 팀이 있던 여의도에는 가장 먼저 한재석이 합류해 10명가량의 아스가르드 신들을 해치웠습니다. 뒤이어 마지막에는 이창식 길드장과 지경태 협회장 그리고 강진철이 합류해 부상으로 쓰러진 한재석을 치료하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조일환 헌터와 최수혁 길드장은 바로 이 앞에서 만났습니다. 아마 먼저 간 백설을 따라온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래도 아스가르드의 신 10명을 해치운 것은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군. 역시…… 로키는 로키란 말인가.”
“그런데 오다가 들은 바로는 한재…… 아니, 로키가 9명의 신을 해치우고 힘을 다해 쓰러졌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강진철이 나타나 나머지 한 명의 신을 해치우고, 쓰러진 로키에게 치료 마법을 써 상처를 회복하게 했답니다.”
헤니르의 미간이 좁혀졌다.
“인간 정도를 치료하면 모를까…… 마력이 방대하다 소문난 로키를 치료하다니…….”
헤니르의 시선이 강진철에게로 옮겨졌다.
‘펜니르의 정신과 융합했다고는 들었는데. 로키를 치료할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을 가지다니……. 설마.’
강진철을 바라보던 헤니르가 깊은 날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강진철이란 사내는…… 저 몸에 없을 수도…….’
직접 계약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는 헤니르였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신이라면은 모두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그 단어.
헤니르가 강진철을 향했던 어두운 표정을 뒤로한 채 시선을 옮겼다.
쾅!
쾅!
아득히 높은 상공에 번개가 치고 있었다.
엄청난 폭발음과 천둥소리도 이어졌다.
백설과 토르의 전투.
전투를 눈에 담고 있던 헤니르가 한재석에게 소리쳤다.
“현재 백설이 토르를 잘 막아주고 있긴 하나, 밀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너도 알다시피 토르의 육체는 오딘만큼 강하지 않다. 그러나 토르가 지금까지 아스가르드에서 서열 2위를 유지했던 이유는 너도 알고 있을 터. 분명…… 이제 백설이 밀릴 것이다.”
헤니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상공에 떠 있는 검은 먹구름 속에서 연속으로 낙뢰가 떨어졌다.
콰과과광!
쾅!
콰쾅!
콰과과광!
수십 개의 낙뢰가 하늘을 밝히고.
헤니르와 인간들이 모여 있는 땅으로 무언가 떨어졌다.
펑!
폐허가 된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 무언가.
먼지가 피어오르는 땅 위로 붉은 머리칼을 가진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백설아!”
성녀와 조일환이 바닥에 처박힌 백설을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 크게 부상을 입지 않은 백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으…… 저 무기 뭐야……? 엄청난 번개를 만들어내잖아.”
백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조일환 선생과 성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습니까?”
“다행히 큰 부상은 없는 것 같군.”
백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토르가 있는 상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 주황 콧수염 녀석. 육체는 그리 강한 것 같지 않은데, 저 망치로 공격하면 엄청 강하단 말이야…….”
백설의 목소리에 상공에 떠 있던 한재석이 백설을 보며 말했다.
“저 망치는 묠니르라고 하는 무기야. 오딘의 궁니르나 최한의 수투르의 검과 마찬가지로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차원 하나를 박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무기야.”
한재석이 다른 인원들도 보이게 토르의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토르
나이 : ∞
종족 : 신
칭호 : 천둥의 신 (EX)
능력치
근력 : (EX) S – 3,250
민첩 : (EX) S – 3,170
내구 : (EX) S – 3,100
체력 : (EX) S – 3,000
마기 : (EX) S – 3,300
특성 : 후계자
최종 등급 : (EX) S
[ 오딘의 가호 ]
아스가르드 최고신 오딘의 아들.
토르가 태어난 날 오딘이 자신의 뼛조각을 사용해 최강의 보호 마법을 걸어 놓았다.
빈사 상태가 되거나 마기와 체력이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면, 오딘의 가호가 발동한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무한 회귀할 수 있다.
[ 천둥의 신 ]
번개와 낙뢰, 천둥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미드가르드에 내리치는 천둥보다 10배에 달하는 강도까지 힘을 낼 수 있다.
[ 묠니르의 주인 ]
니다벨리르의 보물.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한 차원을 없앨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충격을 만들어 낸다.
주인 토르를 알아보고 어디에 있든지 주인의 손으로 되돌아간다.
묠니르에 번개를 입히면 추가로 200%의 번개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음.
[ 기린 ]
천둥의 신수인 기린으로 변신.
마기 90%를 사용해 전설에 나오는 신수 기린으로 변신할 수 있다.
지속시간 5분.
(오딘의 가호 스킬로 인해 무제한으로 발동 가능.)
번개 자체가 육체가 된다.
인간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한재석이 상태창을 닫으며 말을 이어 갔다.
“나와 능력치는 호각을 이루지만, 저 녀석이 가진 스킬과 니다벨리르의 보물인 저 묠니르 때문에 상대하기는 엄청 까다로울 거야.”
백설이 엉덩이를 털며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젠장. 저 녀석이라도 어떻게든 해치우려고 했는데. 역시 안 되는군. 퉤!”
백설이 바닥으로 피 한 뭉텅이를 내뱉었다.
입가에 묻은 피를 닦고 있는 백설에게 다가가는 성녀였다.
“괜찮습니까? 치료를…….”
“아니, 괜찮아. 이 정도로는 끄떡도 없어. 너야말로 괜찮아? 상처는…….”
성녀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헤니르에게서 치료받은 몸을 백설에게 보여주었다.
“다행이군.”
백설과 성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갔다.
호디의 공격으로 구석에 처박혀 있던 장왕윤이 이정은과 함께 다가왔다.
“모두 모였군. 다행이야.”
“그런데 그것보다…… 저건 어떻게 할 거야? 호디 녀석, 아직도 조종당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이스타이거 호디가 온통 검게 변한 눈을 길게 찢은 채 노려보고 있었다.
“으르릉!”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
호디를 바라보던 헤니르가 한재석에게 말했다.
“다누가 왔어. 그녀가 호디를 조종하고 있는 모양이야. 호디는 내가 붙잡고 있을 테니. 신들과 다누를 해치워주기 바란다.”
“다누라……. 오랜만이네. 드루이드였었나? 아스가르드에서도 학이랑 동물들 끌고 다녔는데. 참나……. 그것보다 이제 시간이 거의 다 된 것 같군. 해골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한재석의 목소리에 그곳에 있던 모든 인간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토르와 아스가르드 신들보다 더 높은 곳.
먹구름이 끼어 있는 상공에 천공의 요새 발할라가 보였다.
각 지역에 신들과 천사들이 등장한 이후 해골 병사들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성문에서 쏟아져 나오던 해골들이 모두 발할라의 위쪽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무언가를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신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지만, 이제야 그들이 무엇을 만드는지 알 수 있었다.
최수혁이 발할라 위쪽에 모여 있는 해골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저 녀석들…… 마법진을 만들고 있어…….”
신들과 인간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해골 병사들은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고 있었다.
천공의 요새 발할라보다 더욱 거대한 마법진.
해골 병사들이 만들어낸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빛.
해골 병사들이 자신의 몸을 희생해 만든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피어오르던 검은색과 붉은색의 빛이 모두 연결되었다.
그리고.
한재석을 포함한 인간들의 표정이 지워졌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엄청난 기운.
오딘의 기운이었다.
한재석이 해골 병사들이 만들어 낸 거대한 마법진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오딘의 기운이 여기까지 뿜어져 나오는 군……. 그런데 이 정도로 강한 기운이라…….”
헤니르가 뒤이어 말했다.
“오딘 이놈, 이번엔 처음부터 전력으로 싸울 셈인가 보군. 궁니르뿐 아니라 모든 무기와 방어구를 장착한 것 같군.”
한재석과 헤니르만이 알고 있는 오딘의 전투 형태.
최강의 무기라 불리는 궁니르.
그리고 발이 여덟 개 달린 흑색의 말.
방어력을 두 배나 올려주는 룬이 박힌 반지. 마기의 양을 늘려주는 룬이 해석된 목걸이.
그리고 최고신이 되었을 때 모든 신에게서 조금씩 마기를 걷어 만들어낸 삼색 왕관.
이 왕관을 쓰면 오딘의 체력이 두 배로 늘어난다.
한마디로 기본 능력치마저 (EX)SS으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오딘의 능력치가 모두 두 배가 된다는 말이었다.
두려움이 표정에 잔뜩 끼어 있던 인간들의 귀로 큰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처음부터 이기려고 이 싸움 시작한 거 아니잖아! 우린 그저 최한이 오기 전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한재석의 목소리에 인간들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맞다.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따윈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승리의 순간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후…….”
인간들의 입에서 두려움을 털어 버리는 날숨이 동시에 나왔다.
조금은 경직된 표정이 사라진 얼굴을 확인한 한재석이 다시 외쳤다.
“오딘이 오기 전까지. 토르는 제외하더라도 저기 하늘에 떠 있는 다누와 다른 신들을 모두 죽여야 해. 그래야 오딘과…… 조금이라도 전투다운 전투를 할 수 있어.”
하늘에 떠 있던 아스가르드의 신 5명이 한재석과 인간들을 향해 엄청난 살기를 보이며 날아들었다.
한재석이 손을 들어 올렸다.
화르륵.
한재석의 손 위로 화염창이 나타났다.
“아마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덤벼도…… 오딘에게는 10분도 못 버틸 거야. 그러니…… 이 녀석들을 다 죽이고, 우리도 최한이 올 때까지 목숨 걸고 10분만 버텨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