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오딘이 미드가르드에 도착하기 5분 전.
토르를 제외한 아스가르드 신들을 모두 해치운 한재석과 일행들이었다.
다누를 포함한 아스가르드 신들을 모두 물리친 한재석과 강진철이 토르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백설에게 가세하기 위해 빠르게 이동했다.
성녀와 다른 길드장들.
땅에 있던 헤니르와 호디도 토르가 있는 상공으로 몸을 옮겼다.
전투를 벌이던 백설과 토르가 더는 공격을 하지 않고 대치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최고신의 아들이자, 천둥의 신 토르라도 이 정도로 확연한 전력 차이를 보이는 전투를 해본 적 없었기에.
그저 머릿수로만 따진다면 토르는 만 명이 넘는 수와도 홀로 싸워 이긴 적도 있었다.
하나.
지금 토르의 눈앞에 대치하고 있는 적들은.
아스가르드에서 유일하게 오딘과 전투를 벌일 수 있다고 전해지는 장난의 신 로키.
그리고 전 전투대장이자 티르의 스승이었던 헤니르.
니플헤임의 신인 아이스 타이거.
어째선지 인간의 육체에 깃든 펜니르까지.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이들뿐.
게다가 그들의 주위로 여러 인간들의 모습도 보였다.
신의 힘에는 한참이나 모자라지만, 웬만한 용족과 비교해도 더 강해 보이는 인간들도 여럿 보였다.
어두워진 표정의 토르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붉은 머리칼을 가진 여성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백설.
천 년 전 인간의 왕 옆에 있던 그저 평범한 여자……였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악마.
자신들과 정반대의 힘을 가진 미지의 존재들.
악마의 힘까지 손에 넣은 눈앞의 소녀까지…….
토르가 깊은 날숨을 내뱉으며 살짝 미소 지었다.
“설마 여기까지 해낼 줄이야. 원래는 아버님이 오시기 전에, 지구의 반 정도는 쓸어버리려 했었는데.”
누가 보아도 열세라 느껴지는 토르였지만,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온몸을 두르고 있는 오만함이 그의 기세를 전혀 떨어트리지 않고 있었다.
한재석이 천천히 공중을 발판 삼아 토르에게 다가갔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도 이 정도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몰랐거든.”
어느새인가 한재석의 옆으로 헤니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의 계획과는 다소 틀어졌지만, 어째선지 지금이 더욱 상황이 좋게 돼버렸어. 다른 신들이 모두 죽고 왕자님 한 분하고만 싸울 수 있는 이런 상황이 오게 될 줄이야……. 뭐…… 이 상황을 만들어진 것은 다 저 녀석 때문이지만.”
터벅.
터벅.
헤니르와 한재석을 눈에 담던 토르의 고개가 움직였다.
자신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엄청난 마기와 살기에 그가 인간이 아니란 것쯤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인간의 몸에 들어가 있는 것이지, 펜니르……?”
직접 계약으로 인해 강진철의 육체를 쓰고 있던 펜니르가 토르에게 대답했다.
“그걸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 육체와 정신을 분리한 채 봉인을 했던 건 너와 오딘이었잖아.”
“그렇군. 육체는 사라지고 정신만 남아 있던 건가? 그 인간과 직접 계약이라도 했나 보지?”
“네가 알 바 아니다.”
“싸가지 없는 건 여전하군. 뭐…… 그것도 잠시다. 조금 있으면 성과 함께 아버지가 이곳으로 오실 것이다. 그때…… 다시 널 봉인해주마.”
토르의 표정이 기고만장해졌다.
그 표정을 무심히 보고 있던 강진철이 날숨을 한 번 깊게 내쉬고는 토르를 노려보았다.
팟!
토르의 시야에서 강진철이 지워졌다.
“이 녀석, 어디로…….”
토르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펑!!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고.
토르의 몸이 땅으로 하강하고 있었다.
쿵!
땅이 쩌억 갈라지며 엄청난 크기의 싱크홀을 만들어 냈다.
강진철이 뻗었던 주먹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거대한 싱크홀로 시선을 옮겼다.
“아빠 좀 그만 찾아. 애냐?”
토르를 날려 버린 이는 강진철이었다.
정확히는 그 속에 있는 펜니르.
천둥의 신 토르를 한 방에 날려 버린 그의 모습에, 한재석을 포함한 길드장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짜…… 말도 안 되게 강하군.”
“우리가 나설 자리도 없겠는데?”
“의외로 싱겁게 끝나는 거 아니야?”
기뻐하는 인간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 차려! 토르는 겨우 이 정도로 죽을 놈이 아니야. 이제 시간이 없어. 조금 있으면 오딘이 도착할 거다.”
헤니르의 목소리에 길드장들의 시선이 상공에 떠 있는 거대한 마법진으로 향했다.
천공의 요새 발할라보다도 더 큰 성이 반 넘게 마법진을 통과하고 있었다.
성이 점점 지구에 모습을 드러낼수록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피부로 전해졌다.
꿀꺽.
그 본능에서 나온 두려움에 인간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 성 안에 오딘이 있을 거야.오딘이 완전히 마법진을 통과하기 전에 토르라도 해치워야 해! 전부 일제히 공격하자!”
표정이 바뀐 한재석이 가장 먼저 몸을 움직였다.
슈우웅!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며 토르가 처박혀 있는 싱크홀로 빠르게 하강했다.
“우리도 가자. 호디.”
“그래.”
한재석의 뒤로 백설과 호디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백설과 강진철도 빠르게 그들의 뒤를 따랐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최수혁의 목소리에 다른 길드장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취했다.
“디버프 50프로!”
“신체 강화 마법!”
“천사의 축복!”
지경태가 싱크홀 속으로 디버프 마법을 걸었다.
뒤이어 이정은과 성녀가 토르를 향해 공격을 나선 이들에게 힐과 강화 마법을 걸었다.
공격형 능력자인 최수혁과 이창식, 그리고 장왕윤이 빠르게 싱크홀을 향해 선제공격을 퍼부었다.
화르륵!
펑!!
슈웅!
푸른 화염과 브레스. 그리고 참격이 하나로 합쳐져 다른 이들보다 먼저 싱크홀로 빨려 들어갔다.
콰과과광!
엄청난 폭발이 싱크홀에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싱크홀에서 피어난 엄청난 불길과 폭발을 피하지 않으며 한재석을 포함한, 신의 힘을 가진 이들이 모두 토르의 목숨을 빼앗으려 싱크홀 속으로 들어갔다.
“그럼…… 여기는 위험하니, 자리를 옮기죠, 박사님.”
“너도 꽉 잡아.”
마수아와 윤강산이 땅에 있던 오지훈 박사와 손대영을 끌어안고 싱크홀에서 최대한 멀리 피했다.
슈우우우우…….
싱크홀에서 뿜어져 나오던 폭발이 점점 약해져 갔다.
슈웅.
싱크홀에서 뿜어져 나오던 폭발이 모두 사라졌다.
고요했다.
마치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침묵만이 흘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뿐인 싱크홀.
상공에서 싱크홀을 바라보고 있던 길드장들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초조한 표정.
안쪽의 상황을 알 수 없기에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최수혁이 입을 떼려던 그때.
펑!
쾅!!
콰과과광!!
엄청난 폭발이 연이어 터졌다.
화르륵!
싱크홀에서 시작된 엄청난 불길이 길드장들이 있는 상공까지 타올랐다.
“와…….”
입을 다물지 못하는 길드장들 가운데 최수혁이 빠르게 싱크홀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팟!
타닥!
솟아오르고 있는 불길 속에서 검은 그림자 무리가 땅으로 튀어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길드장들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저 녀석들 설마…… 해낸 건가.”
싱크홀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화염을 뚫고 나온 이들은 다름 아닌 한재석과 일행들이었다.
강진철과 호디의 모습이 보였고, 그 뒤로 머리를 정리하고 있는 백설과 헤니르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 무사했다.
힘을 합쳐 토르를 공격하러 간 이들 모두 살아서 돌아왔다.
최수혁과 길드장들이 헤니르와 다른 이들이 모여 있는 땅으로 빠르게 착지했다.
“해치운 겁니까?”
떨리는 최수혁의 목소리에 헤니르가 날숨을 한 번 쉬더니 고개를 돌려 불길이 용솟음치고 있는 싱크홀 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은…… 모르지. 하나 우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자신들이 낼 수 있는 가장 최강의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호디의 시선이 강진철을 향했다.
최수혁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강진철에게로 쏠렸다.
“감각은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조금 이상한 점이…….”
어두워진 강진철의 표정 뒤로 솟아오르고 있던 불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최수혁과 길드장들의 표정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흔들리는 눈동자.
그리고 그 눈동자로 보이는 검은 물체.
토르가 천천히 싱크홀에서 떠 오르고 있었다.
“하…… 역시 이놈도 오딘의 가호가 있는 건가? 겨우살이나무는 하나밖에 없었는데. 참…….”
한숨을 내뱉은 한재석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는 토르와 눈을 맞췄다.
“하하하하! 이번 공격은 나도 놀랐다. 특히 펜니르. 역시 넌 로키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 하나…… 이제 끝이다. 너희가 이길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었어. 경배하라……. 최고 신께서 미드가르드에 납셨다.”
토르의 목소리에 한재석과 헤니르의 고개가 하늘로 높게 들렸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어차피 토르를 죽였어도 십 분도 버티지 못했을 거야. 아니…… 어쩌면 일 분도 버티지 못했을 수도 있겠군.”
한재석과 헤니르의 시선으로 마법진을 완전히 통과한 오딘의 성이 보였다.
그리고 성문 앞에 모습을 드러낸 한 신의 모습이 보였다.
발이 여덟 개 달린 검은 말에 타고 있는 노인의 모습.
그러나 나이가 들어 힘을 잃은 노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주름진 피부 위로 위엄있는 표정이 지어졌다.
노인의 눈매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기세가 보이는 날카로운 눈매도 보였다.
한번 정한 표적을 절대 놓치지 않는 창. 궁니르를 높게 들어 올리고 있는 오딘의 모습이었다.
“팔찌에…… 왕관까지라……. 저 녀석 진짜 할 셈인가 본데…….”
“오랜만에 보는군요……. 저 모습을 한 오딘은. 최종 전투형태. 모든 무기와 마법 방어구를 차고 나온 저 상태라면…… 우리의 힘으로는 일 분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한재석과 헤니르의 목소리에 모여 있던 인간들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졌다.
“그,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버텨 봐야지. 아직 숫자는 우리가 더 많아. 단둘뿐이야. 단 두 명……만 이기면 되잖아!”
두려웠지만 힘을 북돋기 위해 이창식이 두려움을 억눌러 가며 소리쳤다.
“단둘이긴 하지만…….”
토르와 오딘을 번갈아 가며 보던 백설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뱉진 않았지만, 백설의 다음 말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그들의 두려움을 가중시키는 목소리가 들렸다.
“단둘이라……. 내 능력이 무엇인지 잊었느냐……? 너는 알고 있잖아, 로키.”
오딘의 목소리에 한재석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오딘의 손이 들렸다.
“리바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