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리바이브.”
오딘의 목소리가 흐르고.
한재석과 일행들이 딛고 있는 땅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몇 개의 지점에서 피어오르던 그 어둠의 기운이 점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색이 전혀 칠해지지 않은 검은색의 물체였지만, 형태를 갖춘 그것들의 모습을 눈에 담자마자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다누……. 브리이트까지…….”
한재석과 일행들이 쓰러트린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되살아나 있었다.
본래의 색은 잃었지만, 그 모습은 분명 몇 분 전 자신들이 죽인 적들이었다.
“그으으으…….”
“으그그그…….”
목소리를 잃은 듯이 목을 긁는 소리만을 내고 있었다.
“저들은 분명 죽었을 텐데…….”
최수혁의 목소리에 한재석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게 오딘의 능력이야. 네크로맨서. 오딘에게는 죽은 자를 살려 자신의 부하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저 능력으로…… 최고신의 자리까지 올라갔지. 신들 중에도 단연 최강이라 불리는 육체의 힘과 더불어 죽은 자를 살리는 저 사기적인 능력…….”
이름 : 오딘
나이 : ∞
종족 : 신
칭호 : 아스가르드의 왕 (EX)
능력치
근력 : (EX) SS - 3,603
민첩 : (EX) SS - 3,666
내구 : (EX) SS - 3,555
체력 : (EX) SS - 3,777
마기 : (EX) SS - 3,800
특성 : 네크로맨서
최종 등급 : (EX) SS
[ 리바이브 ]
죽은 자를 되살려 자신의 추종자가 되게 한다.
[ 궁니르의 심판 ]
한번 정하면 목표를 꿰뚫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궁니르에 죽은 자의 영혼과 독성 스킬을 추가하여 데미지를 높인다.
[ 본 아머 ]
뼈로 된 방어막을 소환한다.
[ 저주 ]
적에게 디버프를 걸고, 회복 불가 마법을 적용시킨다.
한재석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켜둔 오딘의 상태창이 점점 사라져 갔다.
사라져 가는 오딘의 상태창을 보던 한재석이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더 말도 안 되는 건 저 능력치가 지금 착용하고 있는 무기와 방어구의 효과도 적용받지 않은 기본 육체 능력이란 거야. 최종 전투 형태로 모든 무기와 방어구의 효과를 적용받은 지금의 오딘이라면 아마…… 우리가 본 능력치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을 거야.”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에 두려운 감정이 피어났다.
되살아난 신들이 한곳에 모여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토르의 곁으로 모이는 신들.
또다시 수적 열세에 놓이게 된 한재석과 길드장들이었다.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헤니르가 말했다.
“이제부터 어중간한 작전 따위는 소용이 없을 거야. 모두 전력으로 간다. 힘들겠지만, 백설과 호디 그리고 인간들이 토르와 저 되살아난 신들을 맡거라. 한재석과 강진철은 나와 함께…… 오딘을 공격한다.”
두려움 가득한 눈빛들이 하늘에 있는 오딘을 향했다.
힘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얼마나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절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길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꿀꺽.
인간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어느새 마수아 팀과 함께 다가온 오지훈이 헤니르에게 말했다.
“일대일로 이길 수 없는 적들입니다. 우선 차근차근 수적으로 밀어붙여 시간을 끄는 것이…….”
헤니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때로는 계획보다도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네. 자네가 인간임에도 신들보다도 더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뒤를 생각지 않고 싸워야 할 때라네. 저기 있는 신이 절대 계획대로 되도록 놓아두지 않을 테니까. 괜히 심기를 건드리면 최한이 오기 전에 이 차원 자체가 사라질 거라네. 오딘이란 존재에게 그 정도는 쉬운 일이니까.”
오지훈을 바라보며 긴 말을 내뱉던 헤니르가 날숨을 내쉬며 숨을 골랐다.
“그럼…… 가도록 하지.”
팟!
헤니르의 모습이 사라지고.
뒤이어 강진철과 한재석의 모습이 바로 사라졌다.
어느새인가 높은 상공에서 오딘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백설과 호디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도 가자.”
“최한이 올 때까지 버티는 거야. 저들이 오딘과 싸우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토르와 나머지 신들을 맡자.”
성녀와 길드장들의 얼굴에 굳은 의지가 담긴 표정이 지어졌다.
“그래!”
백설과 호디를 포함해 선두로 남아 있던 인원 전체가 토르와 되살아난 아스가르드 신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어쩌면 마지막 싸움이 될 것이다.
최한이 언제 도착할지는 모르지만, 이 전투의 결과에 따라…….
그를 기다릴지.
아니면 그가 오기 전에 지구와 인간 자체가 사라질지.
그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토르와 아스가르드 신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한 백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토르에게 돌진했다.
쾅!!
엄청난 충격음이 울리고 토르와 백설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빠르기로 서로에게 주먹을 날렸다.
토르의 주먹과 백설의 주먹이 부딪칠 때마다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쳤다.
뒤이어 도착한 호디와 길드장들이 눈앞에 있는 신들의 숫자를 확인했다.
12명.
절대적으로 불리한 형세였지만, 토르나 오딘보다는 훨씬 수월한 상대임에는 분명했다.
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호디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선제 필승.
격차가 벌어질 때일수록, 약한 쪽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기세부터 밀릴 수 있기에, 호디는 길게 생각지 않고 적들의 중심지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한 가지만 생각했다.
‘한 명만 죽이면 된다. 빠르게 단 한 명.’
적들이 대열을 정비할 틈을 주지 않고 중심으로 몸을 집어넣은 호디가 신의 머리통을 그대로 입속으로 삼켰다.
“크르…….”
비명인지 울음소리인지 모를 그 소리만을 남긴 채 되살아난 다누가 그대로 재가 되어 버렸다.
자신을 조종할 수 있는 다누라는 신의 숨통을 가장 먼저 끊었다.
드루이드의 특성을 가진 다누를 해치워야 자유롭게 싸울 수 있었기에.
인간들의 힘으로 신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해야만 한다.
인간들에게 도움은 받겠지만, 숨통을 끊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몫이었다.
다누를 해치운 호디가 길드장들을 향해 소리쳤다.
“할 수 있는 광역기와 지원 마법을 최대한 써줘. 그리고 성녀! 부탁한다.”
파지직!
성녀의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며 온몸에 전류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극한의 기술.
5분.
피를 매개체로 신체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기술이었다.
당연히 그 리스크 또한 컸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어차피 5분 뒤에도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전력으로 간다!”
콰과과광!!
허공을 발판 삼아 빠르게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폭발이 일어나고 대기에 균열이 발생했다.
엄청난 힘.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밖에 쓰지 못하지만, 지금 성녀의 육체는 인간을 아득히 초월해 신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정도까지는 강해져 있었다.
뚜둑.
뚝!
뼈가 뒤틀리고 세포가 끊어지는 소리가 성녀의 귓속으로 들렸다.
‘참아. 조금만. 조금만……. 부탁이야.’
“가요! 호디!”
성녀가 모여 있는 신들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펑!
주먹 한 방에 엄청난 돌풍이 일었다.
오딘의 힘으로 되살아난 신들이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돌풍에 휩쓸려 몸을 가누지 못했다.
호디가 바람을 타고 올라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신들의 머리를 하나씩 입으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척!
착!
두둑!
몸통과 머리가 분리되는 소리가 이어지고.
하늘에서 신들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디버프와 힐을 보내던 지경태와 이정은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우리도 힘내자고!”
최수혁의 목소리에 광역 스킬로 도움을 주던 장왕윤과 이창식이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브레스와 참격 그리고 푸른 불꽃이 합쳐져 돌풍 속에 있는 신들을 태워 갔다.
상공에서 전투를 벌이던 토르가 별다른 소득 없이 죽어 가고 있는 신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기껏 아버님이 되살려 줬더니만…….”
“어디 한눈을 팔아?”
펑!!
백설의 주먹이 토르의 얼굴에 명중했다.
뒤로 밀려난 토르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역시 상대하기 힘들군. 악마는 악마라 이건가?”
“시끄럽고. 너도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거야. 밑에 있는 신들도 정리되었고. 이제 위로 올라간 녀석들이 오딘을 붙잡고 있는 동안, 네 녀석만 해치우면 모두 함께 오딘을 칠 수 있어. 그럼……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최한이 올 때까지 버틸 수는 있을 거야.”
“흐흐…… 하하하하하!”
백설의 말이 끝나자 토르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주황색 머리칼과 수염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 모습에 백설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토르에게 말했다.
“왜 웃는 거지?”
“그냥 너무 웃겨서 말이야. 버틸 수 있다고? 위로 올라간 녀석들이 아버지를 붙잡고 있을 수 있다고?”
백설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래. 인간과 계약한 펜니르 녀석의 힘은 정말 나도 놀랄 정도로 강하긴 했어. 하지만…… 너희는 아버지가 얼마나 강한지, 아직 모르고 있어. 올라간 녀석들을 어지간히 믿는 모양인데…… 네 눈으로 똑똑히 봐라. 절대신이라는 자리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야.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가 없기에…… 절대신인 것이다.”
토르의 목소리 뒤로.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세 개의 물체가 보였다.
표정 없이 흰자위만 가득한 눈.
기절한 것인지 팔다리가 바람에 휘청이고 있었다.
전투를 벌이고 있던 호디와 길드장들의 고개가 좌우로 움직였다.
“아, 안 돼…….”
강진철. 한재석 그리고 헤니르.
세 명의 신이 전투 불능이 되어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딘이 천천히 토르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오랜만에 이 모습을 하니…… 힘 조절을 할 수가 없구나. 이제 방해물은 모두 제거한 듯하니…… 휴거를 진행하겠노라.”
오딘의 목소리가 울리고.
굳게 닫혀 있던 발할라의 성문이 전부 열렸다.
“꾸에에엑!”
“꾸아아악!”
여덟 개의 성문에서 해골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천…… 만…… 아니…… 억.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쏟아져 나온 해골 병사들이 금세 서울 전체를 뒤덮었다.
아니…….
길드장들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빠르게 뻗어 나가던 해골 병사들이 이제는 대한민국 전체 상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해골 병사들이여. 인간을 말살하라.”
오딘의 명령이 떨어지자.
상공 떠 있던 해골 병사들이 순식간에 땅으로 내려앉았다.
그렇게 패배가 확정되었다.
“결국…… 최한이 올 때까지 버티지 못한 건가…….”
최수혁이 눈을 감았다.
건물이 무너지고, 인간들의 비명이 줄을 이었다.
불이 피어오르고 인간들의 피 냄새가 사방을 물들였다.
상공에서 지옥으로 변한 서울과 멸망의 첫걸음이 된 한국을 눈에 담던 백설의 턱이 세차게 떨렸다.
“또…… 지키지 못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을……. 또…… 또 지켜주지 못했어.”
모든 것을 포기한 백설의 고개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미드가르드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
.
.
“어이, 어이. 다들 표정이 왜 그래?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 익숙한 목소리에 백설과 길드장들. 그리고 반쯤 정신을 잃고 땅에 처박혀 있던 한재석과 헤니르의 눈동자에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왔구나.”
타오르는 화염 구름을 타고 있는 남자의 손이 하늘로 들어 올려졌다.
“돌아가라.”
왕의 명.
인간의 왕 옥황상제의 목소리가 울리고.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수천 아니, 수억의 해골 병사들이 일제히…….
먼지가 되어 무로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