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믿을 수 없었다.
1억이 넘는 해골 병사들이 일순간에 재가 되어 버렸다.
미드가르드가 생겨나고 인간이 창조된 뒤로 끊임없이 인간 전사가 죽을 때마다 네크로맨서의 스킬로 되살려 왔었다.
반 공명.
오딘은 해골 병사들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지배하고 있었다.
1억이 넘는 해골 병사들의 마지막 순간이 오딘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공포가 아니야……. 이건…….’
평안.
죽음 뒤에도 죽지 못하고 오딘의 노리개로서 영겁의 세월 동안 손에 피를 묻혀 왔었던 해골 병사들이 이제야 평안을 얻게 되었다.
오딘이 고개를 돌려 최한을 눈에 담았다.
확실히 지난번 지구에서 봤을 때보다 강해진 것 같았다.
자신감 가득한 표정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꽤 강해진 것 같군. 다른 차원을 여행하며 강해진 건가? 신기하군, 신기해……. 신 주제에 계속해서 강해질 수 있다니.”
최한이 오딘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노려보며 말을 이어 갔다.
“꽤 강해졌다라……. 사실 나도 모르겠어. 얼마나 강해진 건지. 제대로 힘을 써 보지 않았으니까.”
“허허허. 주제넘는 말을 하는구나, 인간의 왕이여. 내가 강해졌다고 말한 것은 인사치레였다네. 아무리 강해졌어도 아직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네.”
“발끝이라……. 그건 모르지. 아직 싸워 보지 않았으니까.”
최한의 담담한 목소리에 오딘의 미간이 주름이 짙게 잡혔다.
“여전히 주제넘는 말을 하는구나. 겨우 1억 마리의 해골들을 없앤 주제에…….”
잔뜩 찌푸린 오딘의 안광이 빛났다.
뒤이어.
쾅!!
“쿠에에엑!”
“끼이이익!”
상공에 떠 있던 발할라의 모든 문이 열리며 해골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까지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빠르게.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해골 병사가 하늘을 뒤덮었다.
“인간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시간 동안 발할라에 병사들을 모아 두었다. 나도 정확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 이번에는…… 10억이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보거라. 가라! 발할라의 전사들이여!”
오딘의 목소리에 하늘을 뒤덮었던 10억의 해골 병사들이 일제히 땅으로 내려갔다.
“꾸에에엑!!”
“끼이이익!”
서울, 강원, 충청, 경상…… 제주도까지.
몇 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해골 병사들이 대한민국 전체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우리나라뿐 아니라 가까운 나라에도 해골 병사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10억이라는 숫자가 땅을 뒤덮으니, 그야말로 지옥이란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땅에 도착한 해골 병사들은 닥치는 대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건물을 부수고, 눈에 보이는 생명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1분이란 시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모두 일어난 일이었다.
또다시 지옥으로 변한 땅을 바라보며 백설이 입술을 깨물었다.
“10억……. 아무리 죽은 인간을 살려낸 것이라 해도 이 정도 숫자를 조종하다니…….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오딘이 최한을 보며 크게 웃음 지었다.
“봤느냐. 네가 없앤 1억의 10배다. 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10억의 숫자를 조종할 수 있다. 이것이…… 너와 나의 차이다. 네가 아무리 강해졌다 한들 넌 여전히 내 발끝…….”
“시끄러워.”
“뭐?”
“시끄럽다고.”
오딘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최한을 노려보았다.
“감히 천한 인간들의 왕 주제에…….”
“노망났냐? 혼자 꿍시렁꿍시렁. 말이 왜 이렇게 많아? 1억이건 10억이건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저들 모두 인간들이었으니까.”
최한이 천천히 오른손을 높게 들었다.
“왕의 명.”
오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최한의 얼굴 위로 천 년 전 옥황상제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때는 꼭…… 땅으로 끌어 내려 주마. 다음번에는…… 지지 않아.’
높게 들린 최한의 손에 주먹이 쥐어졌다.
“돌아가라.”
슈우웅!
상공에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대지부터 올라온 바람.
그 바람을 느낀 오딘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피부로 느껴지는 여운.
오딘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 그것은 비단 오딘만이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딘의 아들 토르.
지옥이 된 땅을 바라보고 있던 백설.
그 주위에 있던 호디와 성녀.
땅에서 이제 막 몸을 일으키고 있던 한재석과 헤니르까지…….
눈앞에서 벌어진 일과, 자신들이 몸으로 직접 체감하고 있는 최한의 힘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한의 새로운 기술.
왕의 명.
최한의 입에서 ‘돌아가라’라는 말이 들린 뒤.
한국과 다른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던 10억의 해골 병사들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최한이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해골 병사들의 가루를 손으로 느끼고 있었다.
피부에 닿자마자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고맙다고.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채 영겁의 시간을 썩어 문드러진 몸으로 연명해야만 했던 자신들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최한의 눈에 슬픈 감정이 끼었다.
“너무 늦게 구해줘서…… 미안하구나.”
최한이 움켜쥐었던 가루들을 하늘로 올려보냈다.
콰과과광!!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대기를 찢는 소리.
최한의 시선이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향했다.
시공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대기를 일그러트리는 마기의 흐름.
오딘의 몸 주위로 엄청난 마기가 뿜어져 나와 갑옷처럼 오딘을 감쌌다.
분노에 일그러진 표정.
그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오딘의 얼굴 전체가 구겨져 있었다.
노파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숨을 멈추게 만들 정도로 강렬했다.
눈알이 없어 감긴 한쪽 눈이 분노에 덜덜 떨리는 것도 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마기의 혈을 모두 뚫은 전투 상태의 오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에 압도당해 기절했을 텐데, 최한은 아니었다.
“후…… 이제 진짜 마지막 싸움인가?”
오딘의 존재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한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팔을 돌렸다.
오딘의 웃음소리와 함께 해방한 마기에서 엄청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허허허! 여유 부리는 것도 지금뿐일 것이야. 죽은 인간들에게까지 통하는 너의 그 기술이 대단한 것은 인정하마. 하지만 겨우 그 정도 강함 따위로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육체의 힘만으로도 난 최강이니까.”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마기에 백설과 한재석 등 그 공간에 있던 모두의 몸에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소름이 돋듯 피부가 일어나고, 닭살이 돋아났다.
정신적으로는 최대한 버티고 있지만, 본능이 몸에 변화를 주고 있었다.
도망가라고.
한재석과 헤니르 같은 신들도 마른침을 삼키며 움직이지 못했다.
최한이 오딘을 바라보며 상태창을 띄웠다.
이름 : 오딘
나이 : ∞
종족 : 신
칭호 : 아스가르드의 왕 (EX)
능력치
근력 : (EX) SS – 3,603
민첩 : (EX) SS – 3,666
내구 : (EX) SS – 3,555
체력 : (EX) SS – 3,777
마기 : (EX) SS – 3,800
특성 : 네크로맨서
최종 등급 : (EX) SS
[ 리바이브 ]
죽은 자를 되살려 자신의 추종자가 되게 한다.
[ 궁니르의 심판 ]
한번 정하면 목표를 꿰뚫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궁니르에 죽은 자의 영혼과 독성 스킬을 추가하여 데미지를 높인다.
[ 본 아머 ]
뼈로 된 방어막을 소환한다.
[ 저주 ]
적에게 디버프를 걸고, 회복 불가 마법을 적용시킨다.
오딘의 능력치를 확인한 최한이 수투르를 떠올렸다.
‘확실히 육체적인 능력치만으로도 수투르보다 강하군.’
육체적인 능력치를 차치하더라도 스킬에서마저도 오딘이 수투르보다 더욱 공격성이 뛰어났다.
디버프 스킬로 적의 내구도를 깎고, 리바이브로 죽은 자를 살려내 아군으로 만들어 수적 우위를 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무기.
궁니르로 마지막 일격.
단순하지만, 틈이 없는 최강의 공격 루트였다.
수투르의 표정이 떠올랐다.
오딘과의 마지막 싸움을 떠올리며 얼굴 위로 치솟는 불꽃 위로 전해지던 그 후회와 분노가…….
작은 날숨을 내뿜으며 최한이 상태창을 껐다.
“강한 능력치긴 해. 육체적인 힘만으로도 수투르를 이길 만큼.”
최한의 목소리에 오딘의 눈이 가늘어졌다.
“수투르라고? 너 수투르도 만나고 온 것이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 꽤나 강한 상대였지. 어차피 패배자긴 하지만.”
“훗!”
최한의 코웃음에 오딘의 가늘게 뜨인 외눈이 최한을 향했다.
“뭐가 웃긴 것이냐? 수투르를 만나고 왔다면, 내 강함을 더욱 깨닫게 되었을 텐데.”
“강함? 네가 수투르보다 강하다는 것은 들었긴 하지. 하지만…… 또 하나도 들었지. 네가…… 이 검에게 선택받지 못한 것도.”
최한이 수투르의 검을 들어 보였다.
붉은 검의 날을 눈에 담던 오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은 선택받지 못했다.
그때의 그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네가 아니다. 내가 기다리던 존재는. 너는 절대신이 아니다.’
오딘의 몸 주위로 뿜어져 나오던 마기가 요동치며 크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들끓는 분노에 오딘의 마기가 폭발을 일으켰다.
“이 녀석, 닥쳐라! 네놈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것이냐! 내가 절대신이다! 내가 최고신이다! 내가 바로 9개의 전 차원을 다스리는 최고신 오딘이란 말이다!”
슈우웅!
콰과과광!!
오딘의 몸에서 뻗어 나간 마기가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공중에서 폭발했다.
“그딴 칼 없이도 난 최고신이 되었다. 전 차원에서 나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어. 네놈이 아무리 강해졌다 한들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무기와 방어구를 장착한 이 최종 전투 형태의 나는 기본 능력치에 두 배를 넘어선 힘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허세가 아니었다.
최한은 알 수 있었다.
육체적인 기본 능력치인 (EX)SS급을 아득히 뛰어넘는 지금 오딘의 힘을.
최한의 시선이 오딘이 차고 있는 무기와 방어구로 향했다.
오딘의 머리 위에 있는 왕관과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 손에 들고 있는 궁니르와 오딘이 타고 있는 발이 여덟 개 달린 말까지.
‘모든 능력치가 두 배 정도는 올라간 것 같군.’
최강의 육체에 최강의 무기들까지.
분명 눈앞에 보이는 오딘이라는 신은 전 우주를 뒤져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존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단 한 명.
최한을 제외한다면.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 싸워야지.”
최한이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오딘의 눈이 활성화됩니다.]
최한의 귀걸이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최한이 있던 상공과 저 아래 있는 땅에까지 뻗어 나가 색을 칠했다.
두근.
두근.
누군가의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리고.
모두의 귀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히든 퀘스트 완료.]
[최한을 만나라 조건이 완료되었습니다.]
[직접 계약 성립. 강진철의 영혼을 불러옵니다.]
땅에 있던 강진철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귀걸이의 붉은빛을 뒤덮을 정도로 크게 뻗어 나간 그 빛은…….
한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내가 그랬잖아. 다시 돌아오겠다고.”
펜니르와 직접 계약에 성공한 강진철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