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포탈을 지나 걸어 나오고 있는 앙그르보다와 요르문간드의 모습이 보였다.
한재석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앙그르보다의 얼굴이 구겨졌다.
빠직!
“왜 오긴 왜 와! 도와주러 왔지! 그리고 너는 부인이 왔는데 그 표정이 뭐야!”
앙그르보다가 한재석에게 소리쳤다.
“으…….”
한재석이 꼬리를 말고 눈길을 피했다.
“참나. 무드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진짜 내가 왜 저런 놈이랑 결혼을 한 건지……. 어……?”
앙그르보다의 시선이 한재석의 옆에 서 있는 강진철에게 향했다.
달랐다.
요툰헤임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지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기운은…….’
강진철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앙그르보다의 턱이 떨렸다.
“너…… 너…….”
앙그르보다가 빠르게 움직여 강진철을 끌어안았다.
당황한 강진철의 얼굴이 크게 움직였다.
“뭐,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강진철의 몸부림에도 앙그르보다는 껴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
아니, 몸부림이 더욱 심해질수록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더욱 강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아니…… 야! 잠깐만……. 네 남편은 이 녀석이라고. 왜 나한테…….”
[저기…… 이 분은 내 손님이다. 잠시…… 몸 좀 빌려 주지.]
강진철의 머릿속으로 펜니르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렇군. 로키의 아내라면…… 펜니르의 어머니이기도 하지…….’
당황한 표정을 지운 강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짧게 부탁한다.”
[고맙다.]
슈웅!
강진철의 몸이 한 번 들썩이더니.
이내 강진철의 눈빛이 다른 사람처럼 돌변했다.
표정 없이 멍해 보이기까지 했던 눈빛이 아닌, 맹수처럼 날카로운 눈빛.
그러나 그 날카로움 속에 그리움이란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변했다.
강진철의 몸에서 펜니르의 정신이 말했다.
“어머니…….”
강진철을 껴안고 있던 앙그르보다가 흠칫 놀라며 천천히 품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었다.
“맞지? 펜니르…… 맞지?”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버릴 것처럼 앙그르보다의 눈망울에 물기가 가득 찼다.
“네, 어머니. 너무도 오랜만에 찾아 봬서 죄송합니다.”
“으, 으……으아아앙!”
일 년만 떨어져 있어도 보고 싶은 것이 가족이다.
아무리 인간보다 훨씬 긴 삶을 사는 신일지라도 긴 시간 가족과 떨어져 있다면 보고 싶은 마음은 필시 똑같을 것이리라.
그것도.
십 년 아니, 백 년 아니…… 만 년이 넘는 긴 시간이라면 더더욱.
자신의 품에서 목청껏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던 펜니르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툭.
강진철의 몸을 빌려 펜니르가 그토록 긴 시간 동안 품어 왔던 소원을 이뤘다.
“어머니. 보고 싶었습니다.”
펜니르가 품에 안긴 앙그르보다를 감싸 안았다.
곁에 있던 한재석이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오빠…….”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강진철의 몸을 빌린 펜니르가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요…… 요르문간드.”
어릴 적.
꼬맹이였을 때 보고 떨어져 지낸 피붙이.
자신의 뒤만 졸졸 쫓아다니던 껌딱지.
어느새 성인이 된 울보 여동생이 눈앞에 있었다.
“오랜만이야, 오빠…….”
요르문간드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많이 컸구나……. 진짜 많이 컸어.”
“오빠!”
인간형으로 몸을 작게 만든 요르문간드가 펜니르를 껴안았다.
펜니르와 앙그르보다 그리고 요르문간드까지.
영겁의 시간을 떨어져 있던 그들이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려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윽…… 더 이상은…….”
한재석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펜니르와 가족들을 껴안았다.
“으아앙! 미안하다! 아빠가 못나서!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구나!”
한재석의 목소리와 모습은 다소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래도 가족이 모두 모인 모습에 최한과 일행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있었다.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한참을 껴안고 있던 그들이 조금씩 떨어졌다.
한재석이 앙그르보다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왔어? 요툰헤임은 어쩌고?”
“요툰헤임은 잠깐 베일리에게 맡겨 두었어. 다른 요툰들과 같이 잘 지키고 있을 거야.”
“그렇군. 베일리 녀석, 성공했네.”
한재석의 머릿속으로 베일리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난 문지기가 될 거야. 요툰헤임을 지키는 최강의 문지기.’
한재석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럼 잠깐이지만 우리의 나라를 잘 부탁하마, 베일리.”
앙그르보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이건 변신한 모습이지? 그러니까 모습은 나이가 들었지만…… 왠지 더 작아진 것 같아서.”
펜니르의 목소리에 요르문간드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원래 모습으로 다니면 이 작은 차원은 다 무너질 수도 있다고.”
요르문간드의 앞으로 상태창이 나타났다.
@@@@이름 : 요르문간드
@@@@나이 : ∞
@@@@성별 : 여
@@@@종족 : 이형거인족
@@@@칭호 : 요툰의 공주 (EX)
@@@@능력치
@@@@근력 : (EX) S - 3,200
@@@@민첩 : (EX) S - 3,200
@@@@내구 : (EX) S - 3,200
@@@@체력 : (EX) S - 3,200
@@@@마기 : (EX) S - 3,200
@@@@SKILL
@@@@[ 순혈의 피 ]
@@@@고대부터 존재해 온 거인족. 혈통의 힘을 가지고 있다.
@@@@혈계 특성
@@@@얼음 내성 100%
@@@@화염 내성 50%
@@@@전기 내성 50%
@@@@포이즌 내성 50%
@@@@물리 내성 50%
@@@@[ 거인족의 후예 ]
거인족은 둔기 아이템을 쓰면 근력이 200% 향상된다.
@@@@[ 로키의 피 ]
@@@@요툰의 왕이었던 로키의 피를 이어받은 자.
@@@@로키의 가호가 그녀를 보호한다.
@@@@[ 앙그르보다의 피 ]
@@@@요툰의 여왕인 앙그르보다의 피를 이어받은 자.
@@@@앙그르보다의 가호가 그녀를 보호한다.
@@@@특성 : 토르의 심판자.
@@@@최종 등급 : (EX) - S급
“자자…… 그럼 이제 다 모였으니……. 진짜 마지막 전투를 시작하자고.”
최한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거 네가 나타나게 한 거야?”
한재석의 목소리에 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다들 보다시피 요르문간드의 특성은 토르의 심판자야.”
최한의 목소리가 끝나자 상태창이 사라졌다.
최한이 뒷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미 그곳에 모인 모두 최한이 말한 의도를 이해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다 맞는 짝이 있다는 거겠지.”
“짝이라기보다는 상대지요.”
“그럼…… 요르문간드가 토르를 맡는 거군.”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던 로키의 가족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오딘과 토르를 노려보았다.
“그래. 정확히는 상성과 예로부터 내려온 예언을 염두에 두고 짠 거야. 뭐, 자세한 건 이 귀걸이 녀석한테 들어.”
최한의 목소리 뒤로 전자음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 무녀의 예언과 현재 남아 있는 전투력을 비교해 보았을 때 조금 더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방법으로 상대를 선택하였습니다. ]
오딘의 잃어버린 눈이자, 최고의 마법 아이템.
자비처의 목소리가 울렸다.
[ 우선 천둥의신 토르는 요르문간드와 로키가 상대합니다. 주위에 있는 되살아난 신들은 앙그르보다와 헤니르 그리고 인간들이 상대합니다. 다른 신들보다 조금은 여유롭게 전투를 할 수 있으니 간간히 해골 병사들과 발키리를 함께 견제해주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
최한과 강진철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 오딘은 최한과 강진철이 맡습니다. 유일하게 오딘과 싸울 수 있는 존재는 현시점으로 봤을 때 최한과 펜니르와의 직접 계약에 성공한 강진철밖에 없습니다. ]
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날숨을 내쉬었다.
“뭐 이 정도면 다 알아들었을 테니, 마지막으로…… 자비처……. 네가 말한 대로 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어느 정도나 돼?”
[ ……. ]
오류가 난 건지.
최한의 목소리가 작았던 건지.
아니면, 처음으로 최한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어서 그런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길 확률이 낮았던 것인지…….
자비처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였다.
최한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자비처…….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최한의 주위에 있던 한재석과 강진철…… 멀리서 듣고 있는 성녀와 길드장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모두 자비처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꿀꺽.
자비처의 목소리가 늦어질수록 긴장감이 점점…… 심해져 갔다.
[ 이길 수 있는 확률은……. ]
자비처의 목소리가 나오자 최한과 일행들의 얼굴이 더더욱 긴장에 사로잡혀 갔다.
[ 49.9 퍼센트입니다. ]
자비처의 목소리에 한재석과 다른 신들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최한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힘이 강해져 오딘을 상대할 수 있긴 하지만, 언제나 지키는 것이 많은 쪽이 불리하다는 것을.
다른 인간들뿐만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함께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신들마저도 최한에게는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곳에 오면서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싸움을 그려 보았다.
몇 번을 반복해도 한 지점에서 최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것은 바로 수투르의 검기를 날리기 위해 10초 동안 멈춰서 마기를 모아야 하는 준비 자세.
그 지점에서 최한은 친구들의…… 인간들의 멸망을 보았다.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 궁니르와 다르게 오딘을 한 방에 쓰러트리려면 최한에게는 10초의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그 차이.
단 10초의 차이가 최한 일행들의 승리 확률을 49.9 퍼센트로 낮춰 버렸다.
그 아주 작은 차이 때문에 이미 패배는 결정되어 있었다.
[ 하지만 그것은 수치적인 확률일 뿐. 제 생각은 아닙니다. 저는 최한 님의 귀에서 함께 긴 시간 여행을 해 왔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친구와 함께 힘을 합쳐 이겨 내는 당신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니…… 기본 확률에……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데이터 값을 더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
자비처의 목소리에 최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여러분이 이길 확률은 50 퍼센트. 세상의 종말을 막기에는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확률입니다. ]
자비처의 목소리에 인간들과 그곳에 있는 신들의 얼굴빛이 밝아졌다.
한재석이 최한의 옆으로 이동했다.
뒤쪽에 있던 요르문간드도 한재석을 따라 나란히 섰다.
최한, 강진철.
한재석, 요르문간드.
전 차원의 염원을 담고 그들이 이제 전투를 시작하려 했다.
“진짜 가보자. 50 퍼센트면 지금까지 해왔던 싸움 중에 가장 이길 확률이 높은 거니까. 그럼…… 살아서 보자.”
최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앞서 있던 네 명의 전사들이 사라졌다.
멀뚱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토르가 미간을 구겼다.
“기껏 시간 끌더니 잔재주를 부리는군. 인간의 왕이 아무리 강해져서 돌아와도 너희의 패배는 이미 싸움이 시작되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어.”
토르가 묠니르를 높게 들었다.
콰과과광!
수많은 번개가 내려쳐 묠니르에 모여들었다.
치지직!
높게 들린 묠니르에 번개 에너지가 요동쳤다.
“와 봐라! 어디서 나타나든 이 묠니르 한 방이면 너희의 몸은 가루가 될 것…….”
“피해라! 토르!”
자신감 있게 소리치고 있던 토르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
어째서 다급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로 들어온 것인지.
어째서 번개의 힘을 채운 묠니르의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
어째서…….
이런 공격을 당할 때까지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
“어이, 번개돌이. 내가 예전부터 얘기했지? 네가 너무 강한 게 너의 발목을 잡을 거라고.”
흔들리는 토르의 시야로 웃고 있는 로키의 얼굴이 보였다.
“우리 같은 신들의 싸움은 1초면 끝난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너의 자만심 때문에 반응이 늦어진 그 1초. 그 1초 때문에 넌…… 지는 거야.”
로키의 미소 아래로 묠니르를 힘껏 쥔 토르의 팔이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