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내가 진다고?”
피를 내 뿜은 채 땅으로 떨어지고 있는 팔을 담던 토르의 시야가 멀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이 정도 고통을 느끼는 것은.
차오르는 고통보다 아득해지는 정신적 충격이 토르를 잡아먹어 갔다.
‘다음 절대신은 나라고.’
‘나는 천둥의 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힘에서만큼은 나를 이길 자가 없지.’
‘머리를 조아려라. 내가 토르다.’
기고만장했던 과거의 환영들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나 최고였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으며.
자신이 최고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 또한 없었다.
묠니르를 처음 받던 날이 떠오른다.
‘전 이제 무적입니다. 다음 절대신에 어울리는 신이 될 수 있도록…… 절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습니다.’
자만한 적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 자만으로 느낄 수는 있겠으나…….
나에게는 자만이 아니었기에.
오만하다고 보일 수 있겠으나, 오만이 아니었다.
신.
천둥의 신.
절대신. 최고신의 아들.
후계자.
모든 것들이 나의 어깨를 짓눌렀기에, 그것들을 모두 짊어질 수 있는 강함을 몸에 두르게 된 것일 뿐.
상념이 깨끗하게 지워졌다.
‘난 질 수 없다.’
토르의 안광이 빛났다.
뒤바뀐 토르의 눈빛을 발견한 한재석이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토르의 남아 있던 왼손이 들렸다.
“돌아와라, 묠니르.”
팍!
묠니르를 움켜쥔 토르의 팔이 폭발했다.
동시에
슈우웅!
대기를 가르며 묠니르가 빠르게 토르의 손으로 날아왔다.
탕!
엄청난 쇳소리를 내며 토르가 묠니르를 움켜쥐었다.
“난! 지지 않아! 천둥의 신 토르니까!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존재니까!”
쾅!
콰과과광!
토르가 소리칠 때마다 하늘에서 낙뢰가 떨어졌다.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토르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주황색 머리 위로 전류가 일렁이고, 내려친 번개의 파동으로 붉은 망토가 펄럭였다.
그야말로 천둥의 신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
팔을 하나 잃긴 했지만, 온몸에 번개를 두른 이 모습이야말로 토르의 최강 전투 형태였다.
번개를 머금은 토르의 눈동자가 한재석을 향했다.
“팔 하나쯤은 주마. 대신 네 목숨을 거둬 가겠다.”
토르가 묠니르를 높게 들었다.
“버텨 보거라. 나의 진심을.”
토르와 눈이 마주치고 있던 한재석의 미간이 구겨졌다.
번쩍!
새하얀 빛이 한재석의 몸을 감싸고.
콰과과광!
쾅!
콰과과광!
엄청난 낙뢰가 한재석에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쾅!
치지직!
콰과과광!
대기를 찢는 천둥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한재석!”
“아버지!”
성녀와 요르문간드의 외침이 낙뢰로 향했다.
다음 공격을 준비 중이었던 요르문간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원래는 틈을 봐서 공격을 하기로 했었다.
자신의 능력이 토르의 약점이라고 들었으니까.
맹독이 있는 독니를 토르의 상처 난 부위에 꽂아 넣으면 게임 끝.
이론상으로는 아주 간단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요르문간드가 공격을 당하고 있는 한재석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몸만 움찔거리고 있었다.
토르의 약점이 요르문간드의 능력이듯이, 요르문간드의 약점 또한 토르의 능력이었다.
번개.
요르문간드는 마법 내성 중 전기내성이 가장 약했다.
스킬인 ‘순혈의 피’로 인해 웬만한 저항 내성이 50% 증가하긴 했지만, 아무리 스킬로 인해 저항력이 증가해도 본질적으로 낮은 전기 내성에 요르문간드는 한재석을 구하러 가지 못했다.
육체적인 능력치를 보았을 때 요르문간드는 아스가르드에 살고 있는 웬만한 신들보다도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묠니르를 들고 있지 않은 토르보다도 더욱…….
하지만.
“너의 맹독이 나의 약점이란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네가 번개에 약한 것도 알고 있지. 넌…… 절대 내 몸에 닿지 못할 것이다. 거기 서서 네 아비가 죽어 가는 것을 지켜만 보거라.”
토르의 얼굴에 승리감에 도취한 표정이 지어졌다.
“어이어이.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니야? 내가 이렇게 멀쩡한데.”
낙뢰가 내려치고 있는 중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토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설마…….”
낙뢰들이 내려치고 있는 중심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대기조차 버티지 못해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그곳에 우뚝 서 있는 한 남자.
한재석이 토르의 번개에도 끄덕하지 않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놈이 어떻게……. 네 능력은 분명 화염 능력일 텐데……. 요툰이 아무리 전기 내성이 있다 해도…… 내 번개를 버틸 수는…….”
“벌써 잊은 거야? 이 몸의 능력을?”
“뭐라고?”
“로키의 능력은 분명 화염이지만…… 지구에서 태어난 이 한재석의 능력은…… 너와 같은 번개라고.”
파파팟!
한재석의 몸에서 번개가 쏟아져 나갔다.
한재석의 몸에서 뻗어 나간 번개가 하늘에서 내려치는 토르의 번개를 밀어내고 있었다.
파팟…….
촤아악!
한재석의 번개와 토르의 번개가 부딪혀 무가 되었다.
자신의 번개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토르의 입술이 떨렸다.
코밑에 난 주황색 수염이 분노를 대변하듯 크게 떨렸다.
“이…… 녀석 마지막까지…….”
“내가 예전부터 말했지. 넌 절대 최강이 될 수 없다고. 다음 절대신? 웃기는 소리. 넌…… 오딘과 최한은 말할 것도 없고…… 나보다도 약해.”
토르의 시야에서 한재석이 사라졌다.
“이 녀석 어디로…….”
푹!
푸푹!!
화염창이 토르의 몸을 꿰뚫었다.
토르가 자신의 몸을 꿰뚫은 채 타오르고 있는 화염창을 눈에 담았다.
“어째서…… 왜 또 보지 못한 것이냐……? 이 정도 공격을 어째서…….”
“계속 말했잖아. 네 자만심 때문이라고. 너는 몸이 꿰뚫린 지금까지도 내가 너보다 약하다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분하고 짜증스러운 마음이 더 클 것이야. 그게 네 패배의 원인이야. 넌…… 은연중에 너와 싸우는 모든 적들을 아래로 깔고 보는 성향이 있어. 그래서…… 패배하는 거다. 너조차도 모르는 그 자만심 때문에.”
“아까부터 무슨 개소리…….”
찌걱.
살이 꿰뚫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박히는 소리.
그리고.
화한 느낌과 함께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 온몸을 잠식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토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미 잘려 나간 오른쪽 팔이 있던 상처 부위에 요르문간드의 얼굴이 보였다.
맹독을 머금은 요르문간드의 송곳니가 찢어진 팔 부분에 박혀 있었다.
“대체 어느 틈에…….”
한재석이 토르의 바로 앞으로 이동했다.
한재석은 토르의 눈높이에 맞춰 공중에 떠 있었다.
“넌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야. 언제나 약한 놈들만 상대했으니까. 자만심에 빠져 전투가 아닌 그저 살육만을 즐기던 네놈은 절대 모를 거다. 잠시도 적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최적을 타이밍으로만 공격을 날리는 우리의 마음을……. 그럼…… 잘 가라, 번개돌이.”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
토르가 마지막 말을 내뱉지 못했다.
돌처럼 굳어진 모습.
요르문간드의 독이 토르의 온몸에 전부 퍼졌다.
그렇게 허무하고도 허망하게…….
천둥의 신 토르가 죽었다.
색이 지워진 토르의 눈동자를 시야에 담던 한재석이 많은 감정이 서린 깊은 날숨을 내쉬었다.
‘내가 나중에 커서 꼭 너를 꺾고 말 거야. 육체적인 힘은 늘어나지 않을 테지만, 기술을 연마하고 더욱더 번개를 잘 다루게 돼서 네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어, 로키!’
토르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린 한재석이었다.
한재석이 천천히 손을 들어 토르의 얼굴 앞으로 가져다 댔다.
“넌…… 아주 어릴 적, 묠니르를 가지기 전이…… 더 강했어, 토르…….”
한재석의 손이 토르에게 닿자, 토르의 얼굴이 무너지듯 가루가 되어 흩날려 갔다.
그렇게 한재석과 요르문간드는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다.
상공에서 아스가르드 신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헤니르와 길드장들이 토르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최한이 요르문간드를 데려온 이유가 있었군.”
“저 번개를 맞고도 멀쩡하다니, 한재석 제법이잖아?”
“됐어. 이걸로 오딘만 해치우면 돼.”
“어이어이. 오딘이 아니라 우리는 눈앞에 있는 신들을 해치워야 한다고.”
“그래.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길드장들이 다시 힘을 합쳐 오딘이 되살린 아스가르드의 신들과 전투를 벌였다.
앙그르보다와 호디 그리고 헤니르가 최전선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성녀와 길드장들도 꽤 도움이 되고 있었다.
길드장들은 원거리 공격을 하며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신들을 엄호했다. 그리고 힐과 디버프 같은 마법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토르나 오딘과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할 만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자비처가 말한 50 퍼센트라는 승률이 유지되었기에…….
쾅!
쾅!
쾅!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전투가 지속되었다.
“후…… 이제 우리가 마지막인가.”
토르의 죽음을 보고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최한이었다.
다른 이들이 말려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 최한과 강진철은 오딘을 발할라와 오딘의 성이 있는 가장 높은 상공까지 유인했다.
“토르여…….”
조금 전까지 뼈로 된 창을 날리던 오딘이 움직임을 멈추고 가루가 되어 하늘로 흩날리고 있는 토르의 잔해들을 눈에 담고 있었다.
많은 것들이 교차하는 표정.
아직 전세가 기울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스가르드의 전력은 구 할이 오딘 혼자의 힘이었기에.
천둥의 신이라 불리던 토르도, 아스가르드에 살고 있는 다른 신들도.
천공의 요새에 살고 있는 수많은 해골 병사들도.
모두 오딘에게는 전력이 아닌 장기 말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숫자는 줄었어도 전혀 타격이 없는 오딘이었다.
멍하니 가루가 된 토르를 눈에 담고 있던 오딘의 입이 움직였다.
“라그나로크를 막지 못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딘의 머릿속으로 과거의 기억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무녀의 예언.
늙은 인간 여자가 오딘의 미래를 전하는 순간이.
‘끝나지 않는 겨울이 오고…… 로키가 라그나로크의 신호탄을 쏠 것입니다…….’
오딘이 눈을 감았다.
‘신들의 마지막 전쟁……. 아스가르드의 모든 신이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최고신……. 당신도 포함해…….’
뚝.
무녀의 목을 자르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수많은 무녀들의 목을 잘라 왔다. 단 하나의 말을 듣기 위해서.’
하지만.
공포를 심어 말을 바꾸려 해도.
예언이 실현되지 않도록 많은 것을 비틀어도.
무녀들은 언제나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자신의 목이 떨어질 것임을 알고도 두려움을 참아 내며 마지막까지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오딘이 천천히 눈을 떴다.
오딘의 시야에 자신을 향해 살기를 내뿜고 있는 두 명의 사내가 보였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마기와 존재감은 분명 신이었다.
인간의 왕과.
펜니르와 직접 계약에 성공한 인간.
“기이한 운명이야……. 내가 죽였던 두 놈이…… 마지막 순간에…… 내 앞을 막고 서 있다니…….”
오딘의 목소리에 최한과 강진철이 공시에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서 사람이 죄를 짓지 말고 살라고 하는 거야.”
“이제 복수의 시간이다. 어차피 네놈이 이기든 우리가 이기든…… 일 분 안에 결판이 날 테니까.”
젊은이들의 패기를 느끼던 오딘이 끌끌거리며 웃음을 보였다.
“일 분이라……. 일 분도 길다네.”
최한과 강진철이 흠칫 놀라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오딘의 목소리가 울렸다.
“돌아오거라, 묠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