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화
-이 세계에서 100년 (2)
정확히 1년.
내가 이세계로 떨어진 뒤 1년이 지나서야 난 어둠이 깔린 숲에 도전할 수 있었다.
“후…….”
두렵지는 않았지만, 긴장이 안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긴장하지 말거라. 너의 힘은 이미 나를 넘어섰다.”
켄타우로스 스승님의 손이 내 어깨에 얹어졌다.
믿음.
그의 목소리와 손길에서는 그 감정이 느껴졌다.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네.”
“이제 나에게 배울 것은 없다. 그러니 이것이 마지막 관문이다.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혼자서 이 숲에서 너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면…… 넌 이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스승님과 만난 지도 벌써 11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살아남는 법.
강해지는 법.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한 것들도.
솔직히 난 이곳이 싫지 않다.
매일 목숨에 대한 걱정은 할지언정 살아 있다는 느낌은 이곳이 더 드니까.
지구에서는 매일매일이 지옥이었으니까.
지루하고, 나약하고, 무시당하고.
빛이란 찾아볼 수 없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돌아가고 싶다.’
변했으니까.
지구에서 무시만 받던 때와는 달라져 있었으니까.
‘돌아가면 친구라도 사귀어 볼까…….’
그런 마음들이 피어올랐다.
“그 퀘스트란 것을 모두 해낸다면 네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냐?”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은 그 가능성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럼…… 오늘 꼭 살아남아라. 그래야 나폴리아 마을로 갈 수 있을 테니까.”
스승님의 시야를 담고 있던 내 시선으로 퀘스트창이 보였다.
「튜토리얼 퀘스트 NO. 005
나폴리아 마을에 있는 대장장이 린스키를 만나라.
보상
경험치 + 1137
획득 칭호
여행자 ( B )」
‘후……. 가보자.’
퀘스트창을 지우고 작은 빛도 보이지 않는 숲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숲으로 더 들어가 달빛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 어둠뿐인 숲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그럼…….”
탁!
스승님이 마법으로 봉인해 왔던 새의 시체를 바닥에 던졌다.
썩은 내와 피비린내가 어둠을 타고 퍼져 갔다.
“이것으로 산속에 있는 괴물들이 몰려들 것이다. 난 이 나무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겠다. 무운을 빈다.”
켄타우로스 스승님이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기척을 지웠다.
해가 뜨기까지 앞으로 6시간 정도.
6시간만 버티면 된다.
1년간의 훈련의 성과.
시험, 아니…….
이것은 내 졸업식이었다.
스승님에게서의 졸업.
“아오!!!!”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늑대 울음소리에 잠 못 들고, 낮이 되어서야 나무 위에서 쪽잠을 자던 그 시절이.
고블린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던 나약한 인간이던 때가.
작은 날숨과 함께 허리춤으로 시선을 내렸다.
손잡이가 닳은 낡은 검 한 자루.
스승님이 오늘 내게 선물로 준 검이다.
웃으며 졸업할 수 있도록…….
천천히 손을 검의 손잡이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치이잉!!
자세를 낮추고 빠르게 검을 뽑았다.
“켁!!”
툭…….
비명과 함께 늑대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높게 뻗은 나무들 때문에 달빛도 들어오지 않는 숲의 끝자락이었지만, 나는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늑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스승님은 이것을 동물적 감각과 두 번째 눈이라 설명했지만.
적응.
나에게는 적응이라고 느껴졌다.
살기 위해 보지 않아도 나를 공격하는 적의 살기를 느끼는 것.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늑대의 머리를 발로 밟으며 뒤이어 눈앞에 나타난 그것들에게 소리쳤다.
“오늘 손님 많거든? 한 번에…… 덤벼!”
내 목소리에 동료를 잃은 늑대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해 왔다.
무리 생활을 하는 늑대들답게 못해도 스무 마리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처음 이곳에 떨어질 때 보았던 코끼리만 한 거대한 늑대 종족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작은 개체인가……. 이 정도면 지구에 있는 늑대들과 비슷하겠군.’
“크악!!”
분노를 표출하며 날아드는 늑대들의 목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푹!
푹!
푹!
인간의 속도라 생각지 못할 빠르기로 난 공중에 떠 있는 늑대들의 숨통을 끊었다.
나를 공격하기 위해 점프했던 늑대들이 발톱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늑대들의 피가 온몸을 뒤덮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끝을 타고 들어왔다.
상쾌했다. 더욱 정신을 맑아지게 했다.
피 냄새가 나를 더욱더 집중시켰다.
‘살아남아야 한다.’
내 피 냄새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감각을 집중해 나를 향해 공격해 오는 늑대들을 죽였다.
한 방.
한 방에 죽이지 않으면 당한다.
한 번이라도 몸을 물리거나, 잡히기라도 하면…….
떼로 몰려드는 늑대들에게 목숨을 잃을 것이다.
시야가 아닌 다른 감각에 더욱더 집중했다.
이런 어둠에서 눈으로만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늑대들의 숨소리와 살기에 더욱 집중했다.
다행히도 숨이 살짝 거칠어지기 전.
처음으로 몰려온 늑대들을 모두 해치웠다.
‘이 정도 숫자와의 전투에도 숨이 차오르지 않는다.’
“강해졌군. 아니……. 지금도 강해지고 있는 건가…….”
그때.
땅을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오우거인가……?’
투둑.
쿵!!
앞쪽에 있던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며 거대한 몸집을 가진 오우거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섯 마리의 오우거.
얼핏 보면 고블린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크기는 고블린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했다.
목을 뒤로 젖혀야만 그들의 얼굴에 시선을 둘 수 있었다.
어깨와 가슴 쪽에 엄청나게 발달한 근육들이 보였다.
“우아우!”
선두에 서 있던 오우거의 괴성을 시작으로 다섯 마리의 오우거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붕!!
오우거가 들고 있던 둔기를 내려치자 엄청난 바람이 일었다.
쿵!!
다행히 속도는 느렸기에 피하기는 수월했지만, 공격력만큼은 대단했다.
조금 전까지 서 있던 바닥이 부서졌다.
금이 간 공간이 움푹 파여 있었다.
‘파워 만큼은 대단하네.’
“하지만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파파팟!
빠르게 달려가 높게 점프했다.
아무리 강해졌어도 아직 내 근력으로는 오우거의 단단한 피부와 근육을 뚫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푹!
“꾸에엑!!!”
오우거의 어깨에 매달려 검으로 눈을 찔렀다.
치이이익!!
초록색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오우거 종족의 갑옷 같은 피부와 근육을 뚫을 수 없다면 가장 약한 부분을 노리면 된다.
그것도 단련할 수 없는 부위라면 더더욱 효과가 좋고.
쿵!!
눈을 찔린 오우거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날숨을 내뱉으며 남아 있는 오우거를 노려보았다.
“오늘 내가 다 후크 선장 만들어줄게.”
내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오우거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돌진했다.
“꾸에에엑!!”
그렇게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 * *
“이백……사십…….”
바닥에 넘어져 있는 하이에나의 목에 마지막으로 칼을 꽂아 넣음과 동시에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 하…… 하…….”
숨이 터질 것 같았다.
하늘이 빙빙 도는 기분이었다.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이제는 고블린이 나타나도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초점이 맞지 않는 시야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스, 스승님…….”
켄타우로스 스승님이었다.
“꽤 지친 거 같구나.”
“네……. 일어서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일 년이란 긴 시간 동안 훈련 시켜주셨는데…….”
“왜 사과를 하고 있느냐.”
“전 더 이상 싸울 수가…….”
“싸우지 않아도 된다. 넌 이미 해냈으니까.”
초점이 맞지 않던 시야가 단번에 또렷하게 변했다.
그리고 보였다.
웃고 있는 스승님의 얼굴 옆으로 들어오는.
아주 작은 빛을.
쓰러진 나무 때문에 비워진 그 작은 공간에서…….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침이 밝았다.
“하산을 축하한다.”
스승님의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스윽.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완전히 일어설 수는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몸을 움직였다.
근육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처음으로 나를 믿어준 스승에게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있었다.
툭.
머리를 땅에 박았다.
“살아남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스승님.”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이토록 가슴 벅차고 자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야말로 고맙다. 넌 내…… 최고의 제자다.”
그렇게 난…….
스승님에게서 졸업했다.
* * *
일주일 뒤.
나폴리아 마을에 도착했다.
내가 있던 두쿠레 산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스승님의 도움으로 중간부터는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마지막까지 신세만 지는 못난 제자였다.
탁.
“그럼, 감사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뒤 마부와 헤어졌다.
“이곳이…… 나폴리아 마을인가…….”
일 년 동안 지내던 두쿠레 산과는 전혀 달랐다.
활기 넘치는 마을.
상점들로 이루어진 마을답게 거리를 빽빽이 메우고 있는 인파들로 인산인해였다.
단지…….
툭.
지나가던 행인이 어깨를 부딪쳤다.
“뭐야? 뭔데 멀뚱히 서 있는 거야? 어?”
“잠깐……. 이거…… 아주 작은 게, 인간 아니야?”
“뭐?”
거대한 몸집을 가진 수인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다.
이 거리를 가득 메운 인원들 중에 인간이란 종족은 없었다.
모두 다른 종족.
키가 작은 드워프도 보였고.
아름다운 엘프도 보였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몸집의 수인들도 꽤 있었고…….
머릿속으로 스승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 산과 달리 나폴리아 마을에 가면 많은 종족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산에 있는 괴물들처럼 위험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조심하거라. 그들은…….’
늑대의 얼굴을 가진 수인이 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뭐야, 진짜 인간 냄새가 나잖아?”
옆에 있던 돼지 얼굴을 한 수인이 말했다.
“뭐지? 인간과 신의 아이인가? 그렇기엔 너무나 약한 몰골인데?”
같은 생명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들과 눈을 맞췄다.
“너희보다 약한 종족이면…… 그런 눈으로 보는 게 당연한 건가?”
수인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
“나약한 종족 주제에, 어디 수인족한테.”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더러운 피의 냄새를 내뿜던 그들이 나를 공격하기 위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툭….
툭…….
힘없이 들리는 소리.
두 개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최한아. 하나만 명심하거라. 죽지 않으려면…… 먼저 죽여야 한다. 이곳은 그런 곳이다.’
터벅.
터벅.
“부딪힌 사과는 지옥에서 해라.”
수인들의 시체를 지나쳐 대장간을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