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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귀환자 학교가다-206화 (207/211)

외전 6화

-이세계에서 100년 (6)

“으아아!!”

손에 든 검을 내 목에 찔러 넣었다.

깡!!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팅!

들고 있던 검을 떨어트렸다.

상처 하나 없는 목에 손을 얹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나는 죽을 수도 없다.

나는 너무도 강해져 버렸다.

내가 나를 죽일 수도 없을 만큼.

“왜…… 왜…… 나를 여기에 가둔 거야……? 대체 왜……?”

40년이란 긴 시간을 이곳에서 지내면서 나의 정신은 무너져 버렸다.

무슨 짓을 해도 돌아갈 수 없다.

너무도 강해져 자살조차 할 수 없었다.

매일 반복 되는 이 퀘스트도 이제는 너무나 지겨웠다.

어려운 처지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 얻는 보람으로도.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위험에 처한 인원들을 구해 왔지만, 난…….

나를 지키지 못했다.

“X발…… X발…… 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때.

탁!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일순간에 표정이 굳으며 인기척이 느껴진 곳으로 눈이 움직였다.

땅에 떨어져 있던 검을 순식간에 들어 인기척이 느껴진 곳을 향해 깊게 찔러 넣었다.

“꺄아악!”

쿵…….

빠르게 펼쳐진 내 공격에 누군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뭐야……? 넌…… 아까 그 엘프?”

바닥에 쓰러져 있던 것은 엘프였다.

노란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어린 엘프.

외모가 어려 보이긴 했지만, 이 녀석도 아마 50살은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찔리진 않았지만, 겁에 질린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몸을 떨고 있는 엘프를 뒤로한 채 자리를 뜨려고 했다.

“몰래 지켜본 건 짜증 나지만, 이번만 봐준다. 따라오지 말고 당장 마을로 돌아가.”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린 순간…….

“잠깐만요! 외로운 거죠? 맞죠? 외로워서…….”

빠직.

어금니가 부러질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네가 뭘 안다고! 너 같은 게 뭘 안다고 지껄여! 너희는 그 모습으로 40년을 살아도 이상한 게 없겠지만! 인간은 아니라고! 이 모습으로! 늙지도 않고! 머리카락도 길지 않는 이 모습이 얼마나 이상한 줄 알아! 너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잖아! 괴물이라고! 괴물…….”

턱.

손길.

따스했다.

갑자기 날아든 그 엘프의 움직임을 분명 난 피할 수 있었다.

이 정도로 느린 공격에 당한다면 드레이크 한 마리도 이기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어째서…….

난 그녀의 움직임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온기를.

이런…….

친구를…….

“아니에요. 괴물이 아니에요. 괴물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저 친구가 필요했었던 것뿐이에요.”

나를 끌어안고 있는 엘프는 그렇게 힘이 강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째선지 난…….

그녀의 속박을 풀 수 없었다.

“흐……흑……. 으……으아아!”

40년을 참아 왔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옥에서 날 구해준 것은, 힘도, 보석도, 인간도 아닌…….

그저 곁에 있어 줄 친구였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외로움이 끝이 났다.

* * *

10년 후.

“어이, 나르샤! 그쪽으로 갔다!”

거대한 망치를 들고 있던 드워프가 소리쳤다.

눈보라를 일으키며 엄청난 빠르기로 움직이는 거대한 무언가가 보였다.

멧돼지.

이곳에서는 아이스호그라 부르는 산의 주인이었다.

나무 위에서 드워프가 놓친 아이스호그를 내려다보던 엘프가 소리쳤다.

“아, 진짜! 맨날 놓치면 어떡하냐! 그렇게 굼뜨면서 선봉에 선다고 찡찡거리기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던 엘프가 홀리 블로우를 소환해 아이스호그에게 날렸다.

탕!!

청명한 소리와 함께 빛의 화살이 빠르게 공기를 갈랐다.

아이스호그가 만든 눈보라를 뚫고 날아간 화살이 아이스호그의 등에 명중했다.

그러나

“꾸에에에에!!”

쓰러지기는커녕 더욱 난폭한 울음소리를 내며 돌진하기 시작하는 아이스호그.

“나한테 뭐라 그러더니, 너도 결국 똑같잖아!”

“원래 엘프는 추운 데서 힘이 반감된다고!”

드워프와 엘프가 서로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자자……. 싸움은 그만. 너희는 왜 만날 싸우냐? 동료끼리.”

엘프와 드워프의 시선 중간에 나타난 그림자.

그의 등장에 으르렁거리던 드워프와 엘프의 표정이 밝아졌다.

“대장!”

공중에서 빠르게 낙하하던 인간이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그럼…… 너한테 원한은 없다만. 잘 가라, 돼지야.”

짧은 말만 남긴 채 대장이라 불린 인간이 아이스호그의 머리 위로 주먹을 날렸다.

툭!

콰과과쾅!!

엄청난 폭발음이 울렸다.

눈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던 아이스호그가 더는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혀 기절했다.

땅에 착지한 남자가 가벼운 미소와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후……. 이걸로 500번째인가……?”

남자의 시선으로 퀘스트창이 보였다.

「튜토리얼 퀘스트 NO. 500

두르둔하임에 위치한 레스터산에서 산의 주인 아이스호그를 처치하라.

보상

경험치 + 84,216,237

획득 칭호

두르둔하임의 왕 ( SS )」

띠링!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이 진행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칭호를 얻었습니다.]

.

.

.

이제는 퀘스트를 깨도 특별히 강해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달랐다.

10년 전과는 표정부터가 달랐다.

200개가 넘는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수많은 마을을 여행하며 보수도 받지 않고 도움을 주고 있음에도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 얼굴에서 느껴졌다.

최한의 얼굴에서는 이제 외로움이라는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최한의 주위에는 많은 동료들이 있었기에.

엘프와 드워프가 최한의 곁으로 다가왔다.

“비프리 녀석이 선봉에 선다고 떼만 쓰지 않았어도 대장이 나설 일 따윈 없었다고.”

“뭐? 내가 언제 떼를 썼다고 그래? 언제는 방어력이 높은 내가 선봉에 서는 게 맞다며!”

찌지직!

전투는 끝났지만, 아직까지도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는 드워프와 엘프였다.

최한이 그런 그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 둘이 바로 최한이 10년 동안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해준 동료들이다.

10년 전부터 쭉 함께 해온 엘프, 나르샤.

그리고 9년 전쯤부터 함께 여행해온 드워프 비프리.

그리고 한 명이 더 있긴 한데, 지금은 잠시 다른 용무로 일주일간 떨어져 지내고 있다.

200개의 퀘스트를 진행하며, 10년 동안 많은 마물들과 싸워 왔더니, 어느새 해결사라는 별칭도 생기게 되었다.

당연히 최한은 퀘스트를 깨는 것뿐이었지만, 마을 입장은 달랐다.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마물들을 죽였지만, 마을을 어지럽히는 마물들을 처치하면 마을에서 최한과 일행들은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10년뿐 아니라, 괴물로 취급받던 기간까지의 노력이 자연스레 좋은 이미지로 바뀌게 되었다.

최한과 동료들은 해결사라 불리며 이세계에 있는 그 어떤 용병 집단보다 명성이 높아져 있었다.

최한이 쓰러져 있는 아이스 호그를 보며 나르샤와 비프리에게 말했다.

“그만 싸우고. 오랜만에 배 터지게 먹어 보자.”

서로를 노려보던 나르샤와 비프리의 눈망울이 흔들렸다.

“설마…… 대장…….”

“이거…… 먹으려고?”

나르샤와 비프리가 최한의 앞에 쓰러져 있는 거대한 돼지에게로 시선을 움직였다.

“당연하지! 이런 큰 고기를 버리고 가면 벌 받는다고!”

최한이 신이 나는지 몸을 들썩이며 아이스호그에게로 다가갔다.

아이스호그의 주둥이에 난 뿔을 툭툭 치던 최한이 주먹에 힘을 주어 강하게 뿔을 내려쳤다.

빡!

부러진 아이스 호그의 뿔을 들어 최한이 고기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뒤쪽에 있던 비프리와 나르샤도 최한에게 다가가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1시간 뒤.

최한과 일행들이 산 아래 있는 마을로 내려왔다.

최한과 일행들에게 아이스호그의 처리를 부탁했던 마을의 촌장과 주민들이 산에서 마을 입구로 들어서고 있는 최한을 보며 마중을 나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눈사람 모양이었다.

이곳은 눈의 정령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무사히 돌아오신 것을 보니, 서, 성공하신 거군요! 그, 그런데 그 고기들은…… 설마…….”

촌장과 주민들이 최한 일행이 들고 온 거대한 고깃덩이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한과 일행들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앞에 들고 온 고깃덩이들을 내려놓았다.

“아고 무거워…….”

“진짜 뼈만 빼고 다 들고 왔네…….”

드워프 비프리와 엘프 나르샤가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고기를 땅에 내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쿵.

가장 큰 고기를 내려놓았던 최한이 마을 주민들을 보며 말했다.

“산을 어지럽히던 아이스호그는 처치했습니다. 그리고 다같이 먹으려고 고기도 가져왔어요!”

처음에는 놀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었지만, 최한의 미소와 거대한 고기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파티다!”

“이제 산에 과일을 구하러 갈 수 있겠어.”

“고마워요, 해결사!”

감사의 박수 소리와 함성이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최한 일행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럼…… 오랜만에 배 터지게 먹어 보죠!”

“오!!”

최한의 목소리 뒤로 마을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축제였다.

마을과 산을 어지럽히던 아이스호그가 사라졌고, 늘 먹을 것이 부족했던 마을 사람들이 오랜만에 배 터지게 나눠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고기도 있었다.

늦은 밤까지 파티는 계속되었고, 최한과 일행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만이 가득했다.

최한은 이 삶에 조금은 만족하고 있었다.

당연히 집에는 돌아가고 싶었지만, 10년 전과 달리 자신의 곁에는 동료들도 있었고.

이렇게 웃으며 함께할 수 있는 마을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조금은…….

행복했다.

당연히 마지막은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이지만, 지금을……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웃음뿐이었다.

‘나도 조금은…… 진짜로 웃을 수 있게 된 건가…….’

최한이 미소를 머금고 고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행복했다.

너무도.

이 행복이 계속될 줄 알았다.

눈앞에 까마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 깜짝이야!”

최한이 뜬금없이 눈앞에 나타난 까마귀를 보며 흠칫 놀랐다.

곁에 있던 비프리가 망치를 손에 집으며 소리쳤다.

“뭐야, 대장! 공격인가?”

까마귀를 발견한 나르샤가 차분하게 말했다.

“아니야. 이 까마귀는…… 모레노의 까마귀인데…….”

나르샤의 목소리에 최한이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까마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다리에 종이가…….”

나르샤가 까마귀의 다리에 달린 종이를 풀었다.

종이를 펼친 나르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종이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아니, 이것은 나르샤의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나르샤?”

“모레노 녀석. 누군가 미행하고 있다는 이상한 소리나 내뱉으며 전 마을에 남더니……. 무슨 사고라도 친 거야?”

나르샤가 들고 있던 종이를 떨어트렸다.

“모레노가…… 전투에서 패하고 붙잡혔대.”

그렇게.

10년 만에 또다시 최한의 삶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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