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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귀환자 학교가다-208화 (209/211)

외전 8화

-이세계에서 100년 (8)

머리가 사라져 버린 몸뚱어리 두 개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서로만 보면 싸우던 얼굴도, 나를 보며 웃던 표정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기괴하게 꺾인 팔다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굳어 버렸다.

“비프리…… 나르샤…….”

분명 끝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웃으며 마무리할 줄 알았다.

내가 있는 한 이런 날은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가늠이 안 됐다.

이런 충격은 지구에서도.

이세계에서 지낸 50년 동안에도 느낀 적 없었으니까.

“표정이 볼 만하구나.”

또다시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렸다.

“강하다 생각했겠지. 아니, 지켜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자신은 강하니까. 힘을 가진 존재니까……. 훗…… 그게 자만이라는 거다. 나약한 주제에.”

온몸을 찌르는 뱀의 목소리에 분노가 터져 나왔다.

“이 개자식! 죽여 버리겠어!”

안고 있던 모레노를 바닥에 내려놓고 빠르게 고이치로를 향해 날아들었다.

분노가 온몸을 지배했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온몸의 기관들이 단 하나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복수.

눈앞에 있는 드래곤을 죽이기 위해 모든 기관과 감각들이 각성을 한 것 같았다.

공기조차 자르며 나아갔다.

이미 육체의 힘만으로도 인간 아니, 이세계에 있는 모든 종족을 초월해 있었다.

죽일 수 있다.

이 공격이면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한 방에 모든 것을 담는다.

그저 주먹이지만, 모든 근육과 가속력을 이용해 힘의 분산을 최대한 줄였다.

힘을 뺀 주먹으로도 드레이크의 가죽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육체였다.

온 힘을 이용한다면 드래곤의 가죽도 분명 뚫을 수 있을 것이라.

그렇게 생각했다.

1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레드 드래곤 고이치로의 얼굴 앞에 도착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담은 주먹을 그대로 드래곤의 인중에 쑤셔 넣었다.

툭.

콰과과쾅!!!

엄청난 폭발음이 울렸다.

뒤이어 주먹을 날린 곳에서 엄청난 바람이 후폭풍이 되어 퍼져 나왔다.

‘감각이 있다.’

제대로 들어갔다.

두꺼운 드래곤의 비늘에 닿는 감촉부터 마찰이 일어나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 것까지 주먹과 몸에 제대로 느껴졌다.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복수는…….”

“뭐라 지껄이는 것이냐, 나약한 인간?”

표정을 사라지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믿을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흔들리는 시야로 똑똑히 보였다.

상처 하나 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고이치로의 얼굴이.

덜덜덜…….

몸이 떨렸다.

두렵지 않았다.

무섭지 않았다.

정점이라 생각했던 힘을 가진 내가…….

대체 왜…….

“본능이다. 약자의 본능. 생존의 본능. 이게 네가 처음 나를 볼 때 느꼈어야 할 감정이다. 네 머릿속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얼마나 기가 차던지. 머릿속 전체에 한 가지 생각만 가득하더구나. 자만심. 네가 최강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더군. 불쌍하게도…….”

커다란 콧구멍에서 나오는 뜨거운 숨결이 거북했다.

아니, 어쩌면 거북한 것은 고이치로의 목소리였을지도 모른다.

자만심.

고이치로는 내 머릿속에 자만심이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공격에 실패한 것보다 그것이…….

생존의 본능으로 떨리는 몸보다도 그 사실이 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개소리 지껄이지 마! 이 쓰레기 새끼야!”

퍽!

퍽!

퍽!

쾅!!

분노를 주먹에 담아 고이치로의 얼굴에 연타를 날렸다.

찰진 타격음이 울리고.

내 주먹이 거대한 드래곤의 얼굴에 닿을 때마다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얼마나 때렸을까.

“하…… 하…… 하…….”

지난날을 돌이켜 보아도 이렇게 온몸의 힘을 실어 주먹을 날린 적이 없었다.

그만큼 혼신의 공격이었다.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은 공격.

이 공격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말했잖아. 약하다고. 이렇게 약한 힘을 가졌는데. 대체 왜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네가 최강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거야?”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껴졌다.

체감했다.

아니, 깨달았다.

지금의 나로서는 이 고이치로라는 드래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친구들의 복수는커녕…….

아마 나도 죽고 말 것임을.

그렇게 죽어 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고이치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 마. 바로는 안 죽일 테니까. 너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더…… 보고 싶거든.”

끝이 말려 올라가는 듯한 목소리.

고이치로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나는 그 녀석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임을 알아차렸다.

“안 돼!”

처절한 외침이 불타오르는 대지에 울리고.

팟!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화염들 가운데 조금은 더 색이 진한 붉은색이 분수처럼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모레노…….”

바닥에 내려두고 온 동료의 몸이 터져 버렸다.

물리적 공격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내 친구는…….

그렇게 몸이 터져 죽어 버렸다.

“아…… 아…….”

그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10년을 함께 동고동락해 온 친구들이 모두 죽었다.

꿈 같았다.

지금 나에게 처한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지금까지처럼 퀘스트를 완료하고 돌아가 맛있는 것을 먹으며 누가 잘했네, 누가 못했네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을 줄 알았는데…….

“대체 왜……. 대체…… 왜 네가 지금 나타난 거야! 우리가 뭐 했다고! 왜 너 같은 놈이 나타난 거야! 왜 내 동료들을 다 죽인 거야!”

“심심했거든.”

머릿속이 아닌 드래곤의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태어난 목소리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라고…….”

“이 불타는 대지에서 긴 시간 지루하게 지내는 게 얼마나 심심한 일인 줄 알아? 백 년……. 아니, 더 됐나? 그 긴 시간 동안 지루하던 찰나에 소문을 듣게 됐지. 해결사라는 놈들이 날뛰고 있다고. 오랜만에 흥미가 생기더…….”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겨우 그딴 이유로! 그딴 이유 때문에! 내 친구들을 다 죽인 거야!”

“그딴 이유라니. 영겁을 사는 내 무료함을 네가 알 리가 없지. 아니면 닥치고 살든가. 내 흥미를 일으키지 말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었던가.

겨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내 친구들을…….

내 평화를…….

내 전부를 부쉈다고?

고이치로의 얼굴과 퀘스트 창이 겹쳐졌다.

“시X! 왜 갑자기 이딴 퀘스트를 준 거야! 대체 누가! 누가 나에게 이딴 시련을…….”

“뭐라는 거야. 실성한 건가? 뭐…… 조금은 재미있었어. 그러니…… 이제 죽어라.”

고이치로의 목소리가 낮게 울린 뒤.

고이치로의 발톱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피하지 않았다.

난 벌을 받아야 하니까.

동료들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하니까.

친구들의 복수도 하지 못하고, 이 녀석한테서 도망친다면…….

그게 더…….

지옥일 테니까.

쥐어졌던 주먹의 힘이 풀어졌다.

‘어차피 죽고 싶었잖아.’

지금의 동료들을 만나기 전에는 죽고 싶었으니까.

지금껏 내가 살아 있던 것은 동료들 때문이었다.

이제 아무도 없다.

모두 죽었으니…….

살아 있어 봤자 또다시 예전처럼 허무할 것이다.

어쩌면…….

바닥에 널브러진 동료들의 시체를 눈에 담았다.

후회는 없다.

단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약해서…… 미안해…….”

슈우웅!

내 몸을 찢기 위해 날아오는 발톱을 눈에 담았다.

“벌은 지옥에서 받을…….”

깡!!

눈앞에서 불꽃이 튀겼다.

강한 물질.

철과 철이 부딪치면 일어나는 불똥들처럼.

강한 것들이 부딪쳐 내 무뎌졌던 감각들을 다시 일으켰다.

그림자가 보였다.

날아오던 거대한 발톱을 멈춰 세우는 그림자.

인간의 형태 같았다.

뒷모습만 보였지만, 이렇게 인간과 흡사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멍하니 굳어 있던 내게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겨우 그 정도로 포기하면 안 되지. 젊은 놈이…….”

작은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

어느 정도 농익은, 나이 든 목소리였다.

앞을 막아섰던 그림자가 천천히 몸을 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인간…….

그리고 노인.

엘프보다도 더욱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토록 인간을 찾아왔던 나였지만, 지금은 반가운 마음보다 다른 마음이 더욱 크게 튀어나왔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리고 난 젊지 않아. 난 이곳에서 50년이나 고통…….”

“시끄럽다. 겨우 50년 가지고. 난 1,000년을 기다려 왔으니까.”

이해하지 못할 말만 하는 노인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왜 나를 구해준 것인지.

내게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몰랐지만, 노인은 내게 다음 질문을 꺼낼 시간도 주지 않았다.

노인이 몸을 돌려 레드 드래곤 고이치로를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엄청난 살기를 뿜으며 공격을 하던 고이치로가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아니, 분명 보였다.

드래곤의 몸이 떨리는 것을.

“내가 드래곤을 싫어해서 말이야. 원래라면 이 자리에서 죽여 버렸겠지만…… 너를 해치워야 하는 이는 이 뒤에 있는 못난 놈이니까…… 오늘은 봐주마.”

노인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다시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보며 작은 한숨을 내뱉던 노인이 마지막으로 입을 뗐다.

“이만 가자. 제대로 훈련 시켜주마.”

그 마지막 목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 * *

천천히 눈이 떠졌다.

“뭐야……? 내가 잠들었…….”

그때, 머릿속으로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정신을 잃기 전 상황들이 모두 생각나며 가장 먼저 눈을 움직여 누군가를 찾았다.

주위를 눈에 담을 새도 없이 작은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몸을 일으켜 그에게로 달려갔다.

“왜! 왜! 데려온 거야!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왜!”

노인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다.

인간이라면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이미 내 감정은 폭발할 대로 폭발해 더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지경까지 가 있었다.

노인은 내게 멱살을 잡혀 있었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다.

“말을 해!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왜 데려왔냐고! 아니면…… 아니면…….”

흔들리는 시야가 뿌옇게 변해 갔다.

분노로 가득 찼던 감정이 슬픔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찍 와서……구해 줬어야지……. 내 친구들을 살려 줬어야지!”

억지.

억지라는 것쯤은 나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누구 탓이라도 하지 않으면 분노에 잡아먹혀 스스로를 너무도 죽이고 싶을 것 같았다.

“무릇 모든 생명에겐 운명이란 것이 있다. 그리고 정해진 삶의 길이가 있지. 너의 동료들은 모두 오늘 죽을 운명이었다.”

노인의 차분한 목소리에 정신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악에 받친 목소리가 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당신이 뭘 알아! 왜 내 친구들이 오늘 죽었어야 하는데! 왜! 그딴 놈을…… 그딴 놈을…….”

정신을 잃기 전 드래곤에게 말하는 노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너를 해치워야 하는 것은 이 뒤에 있는 못난 놈이니까……. 오늘은 봐주마.’

“죽이지도 않고 나를 데려온 거야!”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까지 슬픔이 차올랐다.

눈물은 얼굴을 다 적실 정도로 흘러내리고, 몸은 슬픔에 떨리고 있었다.

툭.

작은 손길이 느껴졌다.

노인의 손이 내 머리 위에 얹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 그의 얼굴만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것이 너의 운명이니라. 내가 그 녀석을 죽이는 것은 쉽다. 하지만 친구라면…… 네가 마무리 해야 하지 않겠느냐? 친구의 복수도…… 친구들의 한을 풀어주는 일도.”

너무도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가장 슬퍼해야 할 사람은 난데.

이 노인의 눈은 너무도 슬퍼 보였다.

마치 내 슬픔이 자신의 것인 것처럼.

“으아아!”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내 울음소리만이 크게 울릴 뿐이었다.

이것이…….

내 터닝 포인트가 되는 만남이었다.

자만심이 아닌 진짜 강함을 알려준 사람.

헤니르 스승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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