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0화
-이세계에서 100년 (10)
동시에 내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윽…….”
비명을 지를 시간조차 없었다.
짧은 신음.
그 정도면 충분했다.
팔이 잘리는 고통이었지만, 겨우 이 정도 고통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다음은…….
죽음뿐일 테니까.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스승님의 모습은 놓쳤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다음은 뒤에서 올 것이다.
그것이 제일의 사각이니까.
빠르게 몸을 돌려 눈을 부릅떴다.
아니나 다를까, 스승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스승님은 벌써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눈도 깜빡일 수 없었다.
피해야 한다.
다리로 점프하는 것은 늦었다.
그럼 방법은 하나.
끝까지 보고 피한다.
얼굴에 닿기 직전까지 보고 고개만 살짝 움직이면 된다.
말로는 쉬웠다.
하지만,
닿기만 해도 팔이 잘려 나가는 위력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아마 머리통이 터져 죽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방법밖에 없었다.
내 육체로는 스승님의 스피드를 이기지 못한다.
얼굴만 살짝 비틀어 피하는 정도라면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승님은 변칙 공격 따윈 하지 않고 그저 주먹만 내지르고 있으니까.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엄청난 압박감이 몰려왔지만, 버텨야 했다.
이겨내야 했다.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니까.
어쭙잖게 다리를 이용해 점프하면 미처 피하지 못하고 다리에 주먹을 가격당해 다리가 잘려 버릴 것이다.
슈우웅!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건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였다.
20퍼센트의 힘만 썼을 뿐인데 시공간이 뒤틀리고 있었다.
‘닿기만 해도 사망이다.’
1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이 내게는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주먹이 시야 전체를 가렸다.
주먹에 맞춰 천천히 고개를 움직였다.
시야로도 확인 불가능할 정도의 간격.
1센티미터.
아니, 1밀리미터.
아니, 그보다 더 작은 단위의 거리.
종말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라는 말처럼.
나는 스승님의 주먹을 피하고 있었다.
스승님의 주먹을 모두 피했을 때, 천천히 흐르던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팟.
그제야 다리를 움직여 스승님과 거리를 벌렸다.
“하…… 하…….”
공격을 한 것도 아니고, 육체적으로 체력을 소모한 것도 아니었지만.
온몸의 힘이 쭉 빠지고 있었다.
“오. 그래도 5년 동안 나와 대련한 것이 허사는 아니었구나. 이번 펀치는 꽤 진심을 다해서 친 것 같은데…….”
여유.
아니, 거짓말.
진심이란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에게는 목숨을 건 전투였지만, 스승님에게 지금 대련은 그저…….
장난 정도였으니까.
‘이 미친 영감탱이. 진짜 몸이 어떻게 돼 먹은 거야? 진심으로 주먹 내지르면 지구도 박살 낼 수 있겠네.’
생각과 함께 천천히 호흡을 정리했다.
“후.”
긴 날숨을 내뱉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잘려 나간 팔 부위에 지혈이었다.
잘려 나간 팔의 단면에 남아 있던 손을 댔다.
빡!
손가락에 힘을 주고 잘린 부위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뚝…… 뚝…….
떨어지던 피가 멈췄다.
강하게 압박해 잠시 동안이지만, 피가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장난치듯 미소를 보이고 있는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1분.
짧아 보이지만, 지금의 내게는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방금처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엄청난 상황도 실제로는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밖에 흐르지 않는다.
‘이렇게 계속 방어에만 집중하면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할 거야. 1분간 버티지도 못할 거고…….’
“그럼 이제…….”
시야에 담겨 있던 스승님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아마 내 진심이 느껴진 거겠지.
“공격 갑니다. 스승님.”
살기를 끌어 올렸다.
모든 감각을 하나로 집중시켰다.
죽인다.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한다.
온 힘을 다해 진심으로 스승님을 죽인다.
어차피…….
스승님은 죽지 않을 테니까.
그렇기에…….
쾅!!!
땅에서 다리를 떼는 것만으로도 바닥에 엄청난 싱크홀이 발생했다.
땅을 박차고 나서자 순식간에 스승님의 앞에 도착했다.
내 속도에 살짝 놀라긴 했지만, 그 감정을 표현할 만큼 내게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원수.
아니, 나를 몇 번이나 죽였던 사람.
그렇게 머릿속에 세뇌를 걸었다.
눈앞에 있는 인간을 죽이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나는 이 사람에게 원한이 있다.
증오를 만들어 냈다.
거짓이라도 상관없었다.
분노와 증오만큼 빠르게 힘을 각성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남아 있던 팔을 들어 빠르게 주먹을 날렸다.
콰과과광!!
엄청난 폭발음이 울렸다.
주먹에 감각이 있다.
공격은 성공한 것 같았다.
“오……. 꼬맹이. 공격을 선택하다니 꽤 발전…….”
스승님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다시 주먹을 날렸다.
쾅!
쾅!
쾅!!
연타.
쉬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한쪽 팔이 없어져 중심을 잡기는 힘들었지만, 허리와 코어의 힘을 최대한 이용해 빠르게 연속 동작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정통으로 공격이 들어갔어도 한 방에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대련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1분을 버티는 것이니까.
쾅!!
쾅!!
쉬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중간중간 페인트를 섞어가며 발차기도 날렸다.
흠잡을 데 없는 연속 공격.
상대가 스승님이 아니었다면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기뻐했을 것이다.
상대가 헤니르 스승님이 아니었다면…….
주먹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 목소리는 격양되지도 높은 톤으로 말하고 있지도 않았지만, 나의 온몸의 감각 기관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목소리였다.
“참나. 말할 시간은 좀 주지. 나쁜 제자 놈 같으니라고. 오랜만에 칭찬해 줄라 했더만…….”
그렇게 말을 남긴 스승님이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스승님의 손가락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말려졌던 스승님의 손가락이 천천히 펴졌다.
마치 딱밤을 때리듯이.
피할 수 없다.
시간도 거의 다 됐다.
2초 정도 남은 것 같았다.
‘얼마 안 남았는데…….’
피할 수 없다.
아까처럼 고개를 돌릴 시간조차 없었다.
버틸 수 있을까?
아니.
버틸 수 있을까가 아니라…….
버티자.
‘버티면 이긴다. 주먹이 아니라 손가락 정도면……. 두개골에 금이 갈지언정 머리통이 터지진 않을 것이다.’
만약 기절하지 않고 버틴다면 스승님도 놀라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미션 통과다.
혼신의 힘을 다해 어금니를 꽉 물었다.
‘버티자. 버텨서……. 꼭 복수하러 가자…….’
딱!
작은 뼈 소리가 들리고.
콰과과광!!!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 * *
불타는 대지.
10년 만에 이곳에 발을 디뎠다.
잘렸던 팔을 툭툭 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참나……. 그렇게 강한 주제에 팔도 고칠 수 있는 거야?”
스승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미간이 구겨졌다.
‘이건 그만 생각하자. 빡치니까…….’
몇 번이나 같은 꿈을 꾸었다.
친구들의 얼굴이 터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몸이 굳어 버린 내가 울고 있는 꿈.
언제나 반복되는 꿈의 마지막은 레드드래곤이 하찮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약한 주제에…….’
많은 감정이 섞여 있는 깊은 날숨을 내뱉고 걸음을 옮겼다.
아지랑이처럼 타오르는 불을 지나쳤다.
이 온도.
이 습도.
이 냄새.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다.
그리고 오늘이 오기만을 그토록 바랐다.
터벅.
터벅.
꽤 오랫동안 앞만 보며 나아갔다.
피어오르는 많은 감정을 차분히 제어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내 발걸음이 멈췄다.
“이게 누구야? 10년 전 그 쓰레기 아니야?”
잊을 수 없는 목소리.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인간의 생김새와는 전혀 달라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녀석은 분명 비웃고 있었다.
레드드래곤 고이치로.
고이치로의 얼굴 옆으로 퀘스트창이 나타났다.
10년 동안 그대로인 퀘스트창.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튜토리얼 퀘스트 NO. 501
불타는 대지에 있는 고이치로를 쓰러뜨리고 종족의 정점에 서라.
보상
경험치 + 84,216,237
획득 칭호
초월자 ( SSS )」
퀘스트창이 사라지고 고이치로의 얼굴만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변함없었다.
나를 보는 눈빛은.
약자를 보는 눈빛.
전혀 두려움이 없는 눈빛.
고이치로는 여전히 나를 자신보다 아래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거대한 이빨 사이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10년 만에 복수라도 하러 온 건가? 주제도 모르고. 그때는 이상한 늙은이 때문에 죽이지 못했지만……. 오늘은 다르다. 난 제 발로 찾아온 녀석을 봐주지 않아.”
10년……. 나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 녀석이 아직 이 자리에 있어서.
“내가 오늘 기분이 좀 안 좋거든? 그러니 이마 조심해라.”
내 목소리를 들은 고이치로가 등에 있던 날개를 크게 펼치며 웃어댔다.
“하하하하! 10년 만에 와서 한다는 소리가 그딴 소리라니. 내가 볼 때 넌 전혀 강해지지 않았어. 몸에서 어떤 살기도 느껴지지 않아. 너 같은 나약한 종족은 무슨 훈련을 한다 해도 절대 나를 이기지 못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웃고 있는 녀석을 보면 분노에 휩싸여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줄 알았다.
동료들 생각이 떠올라 무턱대고 달려들 줄 알았다.
하지만 10년.
그리고 진짜 강함에 조금 다가선 나는 오히려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10년 전에는.
실컷 괴롭히다 죽이고 싶었다.
죽고 싶다고 빌게 만들 정도로 녀석을 몰아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약자들이나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진짜 복수는.
진정한 강함은…….
차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강함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
자신이 패배한 것도, 죽은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
그 정도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더욱.
제대로 된 복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리에 힘을 주었다.
팟!
순식간에 고이치로의 얼굴 앞으로 이동했다.
흔들리는 녀석의 눈동자가 보였다.
당황한 나머지 몸을 흠칫하며 반사적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울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고이치로의 눈과 눈 사이를 조준하며 손가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딱밤을 때리는 자세를 취하며 마지막으로 고이치로에게 말했다.
“내가 이마 조심하라고 했잖아. X밥아.”
빠르게 손가락을 튕겼다.
빡!
콰과과과광!!
폭발음과 함께 레드드래곤 고이치로의 머리통이 순식간에 터져 버렸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피의 분수를 보며 오랜만에 제대로 후련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띠링.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을 진행합니다.]
[초월자 (SSS) 칭호를 획득합니다.]
그렇게 난 10년 만에 퀘스트를 깰 수 있었다.
쿵!
고이치로의 사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모든 일을 마친 나는 몸을 돌려 다시 스승님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을 떼었다.
터벅.
터벅.
머릿속으로 죽어 갔던 동료들의 모습과.
10년 전 이 녀석에게 패배했던 나약했던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난 앞으로 나아갈게. 편히 쉬어.”
그렇게 난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 * *
“헤니르 스승님, 다녀왔습니다. 이제…… 약속을 지키시지요.”
스승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 이제 이 기술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육체는 되었구나.”
“그런데 그 기술 이름이 뭡니까?”
“이름도 모르고 가르쳐 달라 했던 거냐?”
“이름은 한 번도 안 알려 주셨는데…….”
“뭐, 그래. 따라해 보거라. 이 기술의 이름은…….”
.
.
.
“신의 권능 복제.”
-외전 [이세계에서 100년]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