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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트가 와서 사경을 헤매고 있던 알렉세이에게 페르디안 백작저에 첩자로 들어간 부하가 찾아왔다. 오메가인 첩자는 1황자의 침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문밖에서 보고를 올렸다.
“1황자 전하. 아인 페르디안이 부모님과 함께 갑자기 저택에서 도주를 했습니다. 1황자 전하에게 러트가 왔을 때를 노려서 간다고 하더군요.”
이런 분노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았다. 황제가 제논을 죽였을 때 이후로 그는 격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기 위해 환멸하고 경시하며 지내 얼어붙은 심장에 화살이 꽂혀 들었다. 아프다. 고통이 알렉세이에게 너도 감정을 지닌 사람이라고 알렸다.
“꼬리는 붙였나.”
“예. 지금 돌로리아 항구 도시로 이동 중입니다.”
“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갈 작정인가 보군. 외국으로 나가기 전에 잡아야 해.”
끙끙 앓으며 알렉세이는 억제제 몇 알을 입 안에 더 털어 넣었다. 몸에서 발정열이 식지 않아 눈앞이 어찔했다. 평소라면 한 번에 이동할 수 있었을 거리를 몇 번이나 능력을 반복 사용해 도착했다.
빼앗기기 전에 자신의 손으로 없애 버려야 했다. 언제나 알렉세이의 소중한 것들은 파괴되었다. 처음은 제논이었고, 그다음은 제논이 어린 알렉세이를 위해 직접 만들어준 곰돌이 인형이었다.
어린 시절, 예절 수업을 받고 왔는데 고이 방에 모셔둔 곰돌이의 단추 눈이 뜯기고 배가 갈라져 하얀 솜이 빠져나와 있었다. 2황자 호라이슨의 짓이었다.
‘곰돌아, 흑흑. 곰돌아.’
어린 이복동생을 탓할 수 없었다. 천사같이 생긴 그 아이를 사람들은 사랑했다. 알렉세이가 진실을 말해도 다들 알렉세이가 이복동생을 시기하고 미워해 거짓말하는 거라고 했다.
어린 그는 누군가를 탓하길 포기한 지 오래였다. 다친 곰돌이를 황제에게 가져갔다. 전지전능한 황제이자 자신의 아버지가 곰돌이를 치료해줄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그런 더러운 헝겊 따위 왜 들고 왔냐며 시종을 시켜 인형을 버렸다. 황제 페도로프는 황후 헬링턴과 2황자 호라이슨과 함께 계속 식사를 이어 나갔다. 셋은 한 가족이고, 알렉세이는 가족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시종은 식당에서 알렉세이의 손을 잡고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왜 자신은 저들과 같이 식사할 수 없는지 그땐 이해할 수 없었다.
알렉세이는 외딴 폐궁에 다시 처박히게 되었다. 폐궁은 그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아 마당에 풀 한 포기조차 자라지 않는 황폐한 곳이었다. 시종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헝겊 인형을 알렉세이에게 던져두고 가버렸다.
알렉세이가 원한 건 제논이 만들어준 곰돌이 인형이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성 제품이 아니었다. 못생기고 허술해도 ‘그 곰돌이’여야만 했다.
오른손에서 불꽃을 피워서 황제가 하사한 곰돌이 인형을 태워버렸다. 제논이 가이드를 만날 때까지 능력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땐 새 곰돌이 인형이 꼴 보기 싫어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활활 타올랐다. 에테르는 주인의 감정처럼 거꾸로 역류하며 사방으로 불꽃을 흩뿌렸다. 폐궁은 새까맣게 전소하였다.
그곳이 다 탈 때까지 알렉세이가 무서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황제는 알렉세이가 폭주할 뻔했다며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벙커에 가뒀다. 어린 알렉세이는 어둠 속에서 제논을 찾았다.
‘아빠, 무서워요.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 나 좀 구해줘요.’
왜 자신을 사랑해줬던 아버지가 호라이슨의 아버지로 바뀌고, 제논의 자리를 헬링턴이 빼앗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슬픔을 종이처럼 꾸깃꾸깃 접어서 작게 만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제논은 그 방법을 미처 알려주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오래전 단추 눈이 뜯기고 배가 터져 죽은 자신의 곰돌이 인형을 샤를과 레이나가 훔쳐서 도망치는 환상이 보였다.
찾아야 한다. 되찾아야 해. 나한테는 곰돌이밖에 이제 가족이 없단 말이야.
알렉세이는 자신만 놔두고 멀리 떠나려는 곰돌이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온 금발이 눈부셨다.
“아악!”
맑은 비명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자신의 가이드가 가이딩 못 받고 죽으라는 듯 알렉세이를 두고 외국에 가려던 중이었다.
머리채 잡기도 신체 접촉이랍시고 닉스가 손가락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어릴 때 머물던 폐궁의 황무지처럼 척박한 알렉세이의 레아에 아인이 들어와 버렸다.
레아는 에테르를 생산하는 힘의 원천, 영혼이 담기는 그릇, 생명을 유지하는 심장이었다. 그것은 마치 바람처럼 볼 수 없어도 느낄 수 있어서 고대어로 호흡이란 의미를 가진, 레아라고 불렸다.
쌕쌕. 거친 숨이 뿜어져 아인에게 닿았다. 겁에 질린 아인의 호흡도 알렉세이에게 닿았다. 지이잉. 알렉세이의 에테르와 아인의 닉스의 주파수가 공명하였다.
오래전 에테르가 역류해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제논은 말했다. 언젠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는 알렉세이의 가이드가 구해주러 올 거라고.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만일 그 가이드도 알렉세이를 만나지 못해 어둠 속에서 잠들어 있으면,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님처럼 키스를 해주라 하였지.
‘그런데 제논, 이건 말해주지 않았잖아요. 그 가이드가 날 싫어하면 어떻게 해요?’
가뭄으로 말라비틀어져 쩍쩍 갈라졌던 레아가 빠른 속도로 재생되었다. 에테르의 생산 속도가 빨라졌는데 오염되는 속도는 훨씬 느려졌다. 능력 대비 효율성이 좋아진 거다.
알렉세이는 머리끄덩이를 잡고 아인의 얼굴을 확인했다. 하!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 났다.
‘검은 슬라임이라며, 너. 그런데 이래도 돼? 왜 이렇게 귀여워. 왜 이렇게 예뻐. 왜 이렇게 잘생겼어. 왜 이렇게 사랑스러워. 나만 너한테 반하다니 억울해. 너도 나한테 반해주라.’
어렸을 때 알렉세이가 너덜거리는 헝겊 곰돌이를 끼고 살았던 반면, 미적 기준이 높은 호라이슨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값비싼 하얀 도자기 인형에 프릴이 잔뜩 달린 드레스를 입혀 유리 장식장 안에 넣고 만지지도 않은 채 구경했다. 알렉세이는 호라이슨이 애지중지하는 걸 지켜보며 저 도자기 인형이 퍽 대단한 존재이구나 싶었다.
티끌 하나 없는 아인의 피부는 그 시절, 호라이슨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도자기 인형처럼 아름다웠다. 커다란 눈은 겁을 잔뜩 집어먹었는데, 크리스털 잔에 담긴 샴페인처럼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났다.
이건 정말 반칙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워선 안 돼. 도망치려고 한 행위에 화를 낼 수 없잖아.
그의 이름은 아인인데 예쁜이라는 말밖에 입에 담기지 않았다. 하지만 예쁜걸. 예쁘면 다 용서가 될 수 있구나. 에스퍼의 능력보다 더 대단했다.
아인 때문에 자지가 발딱 서버렸다. 금방이라도 좆구멍이 열려 쿠퍼액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러트여서 그렇다는 건 변명이었다. 이건 그냥 얼굴 보고 선 것이다.
정말 위험한 아인이었다. 얼굴이 무기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아인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 정복도 가능할 것이다. 자신이 그의 발닦개가 되어 통일된 대륙을 선물할 테니까.
심장이 벌떡벌떡 뛰고, 머리털이 곤두서고, 온몸의 세포가 예민해졌다. 모든 감각이 아인에게 집중되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언덕 위에 있는 낡은 나무판자 집이 된 기분이었다.
바람에 덜컹덜컹 나무문이 거세게 흔들리고, 언제 집이 송두리째 날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공포 같은 게 알렉세이를 점령했다. 처음으로 느낀 사랑이란 감정은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었다.
제 가이드를 에스퍼가 사랑하는 건 참으로 당연한 일이지만, 이렇게나 빨리 누군가를 마음속에 들이는 건 위험했다. 그가 자신을 살해하러 온 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아인은 너무나 완벽했다. 알렉세이는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신도일 뿐이었다.
틀어잡은 금발을 얼굴 쪽으로 끌어당겼다. 붉은 입술은 말캉했다. 첫 키스였다. 숨결마저 단 아인이 자신의 가이드란다. 제논은 알았을까. 당신 아들이 제 가이드를 만나면 무논리적으로 그를 찬양하게 될 거라는 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두툼한 혀를 아인의 입 안에 집어넣었다. 입이 작아서 혀를 넣자 공간이 꽉 찼다. 가느다란 허리를 한 손으로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게걸스럽게 아랫입술을 빨았다.
황홀함의 극치였다. 이 엄청난 경지의 황홀함이 첫 키스 때문인지, 아님 직접적으로 가이딩을 받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아인에게 홀려 그가 뜨거운 숨을 내뱉을 때마다 덥석덥석 집어먹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키스를 끝낸 알렉세이는 제 하반신과 맞붙은 아인의 성기가 살짝 발기했음을 느꼈다. 자신만 그에게 발정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기뻤다.
숨을 헐떡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가 마냥 사랑스럽기만 했다. 만일 외부가 아니었으면 당장 아인의 바지를 벗겨 그의 구멍을 혀로 핥았을 것이다.
우성 오메가의 페로몬이 러트 중인 우성 알파를 자극했다.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게 놀라웠다. 이렇게 매혹적인 페로몬을 맡고서 말이다.
아인의 뒤에서 레이나와 샤를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째려보고 있었다. 단단히 미움을 받은 듯했다. 그들은 언제든지 기회가 되면 아인을 데리고 도망칠 자들이었다. 부모로서 제 아이를 사랑해주는 건 고맙지만, 자신의 가이드를 빼돌리는 짓은 안 됐다.
경고를 해야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침 작은 배 위에 마땅한 먹잇감이 보였다. 선장은 레이나와 샤를의 관심이 아인에게 온통 쏠린 틈을 타 그들의 짐을 훔치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쥐새끼처럼 몰래 몸을 숨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딱 봐도 질이 안 좋은 놈이었다.
알렉세이는 아인을 무섭게 다그쳤다. 아인을 혼내려는 의도가 아니라 아인의 부모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서 팔을 쭉 뻗었다. ‘당신들이 다시 내 가이드를 데리고 도망치려고 하면 앞으로는 살려두지 않을 거야.’ 하고.
선착장을 가득 채운 긴장감은 활시위처럼 그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팽팽하게 최대치로 당겨놓았다.
하나.
둘.
손가락 끝에서 번개가 발사되었다.
펑!
아인의 어깨가 튀어 올랐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오는 폭발음이 들렸다. 빵야, 장난스럽게 말해놓고 이렇게 큰 폭발을 일으키는 건 반칙이었다.
“흐엉엉엉. 크헝헝.”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알렉세이가 따라서 쪼그려 앉더니, 아인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너 어떡하냐, 진짜. 우는 것도 예뻐서 이제 큰일 났네.”
뭔 헛소리인가 싶었다. 자신이 제이콥과 같은 헬창 머슬맨도 아닌데 말이다.
“앞으로 너 울리겠다고 나 못된 짓 많이 하겠다.”
“뭐래. 이 미친놈이.”
머릿속으로 생각만 한다는 게 그만 입으로 튀어나왔다. 뭐 어쩔 수 없었다. 샤를과 레이나도 죽은 마당에 자신도 따라 저세상에 가기로 했다. 알렉세이가 눈물에 젖은 자신의 뺨에 입술을 맞췄다.
얼른 입맞춤을 당한 뺨을 손으로 닦아냈다. 씩씩거리며 분노를 담아 노려봤다.
“안 죽였어. 설마 내가 장인, 장모도 못 알아보는 그런 미친 새끼인 줄 알아?”
그럼 뭐가 폭발한 건가 싶어서 뒤를 돌아 확인했다. 배에서 내린 샤를과 레이나는 무사했지만, 배에 타고 있던 구레나룻 선장은 조각조각 갈가리 찢겨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에스퍼란 존재가 대단한 힘을 가졌다는 건 막연히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 그동안 자신이 알렉세이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을 했을까 봐 엄청 쫄렸다. 오들오들 떠는 자신을 그가 번쩍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아인아, 다시 기회를 줄게. 질문 하나, 갑자기 왜 도망쳤어?”
“외, 외출을, 흑, 했다가, 훌쩍, 암살당할 뻔해서 훌쩍.”
“아, 무서워서 도망치려고 한 거야?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내가 다 죽여줬을 텐데.”
다정한 어조가 정수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그가 아인의 등을 쓸어주면서 ‘우리 아인이, 아기여서 겁이 많네.’ 하며 걱정했다. 씹. 누가 아기야. 너랑 나랑 동갑이구만.
“누가 그랬을까. 물으나 마나 호라이슨 쪽에 붙은 놈들이겠지?”
쪽쪽쪽. 말하는 내내, 입술이 쉬지 않고 정수리에 키스를 퍼부었다. 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지만 강철 로봇 팔처럼 엄청난 힘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앞으로 걱정 마. 내가 그쪽은 다 처리해줄게.”
‘야, 이 미친놈의 새끼야. 그만해. 내 정수리 머리카락 다 뽑히겠다. 도대체 뽀뽀를 몇 번이나 하는 거야.’
낑낑거리며 알렉세이를 밀어냈지만 그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힘들어서 헉헉거리는데, 그가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 속삭였다.
“왜 그렇게 낑낑거려. 내 좆 터트리려고 아주 작정했네. 우리 아인이 요망해.”
‘변태 변태, 부르기는 했지만 무슨 스무 살짜리가 이렇게 변태 같을까. 너 나이 속였지? 민증 까라? 완전 변태 아저씨네. 변아찌.’
“히이잇.”
속으로 열심히 욕하는데 알렉세이가 두툼하게 발기한 하체를 자신에게 툭툭 부딪쳐댔다.
징그러워. 뭐야, 바지에 이상한 거 넣고 다니지 말라고. 이건 절대 사람의 신체일 수 없어. 떨어져. 떨어지란 말이야.
열심히 엉덩이를 뒤로 빼며 최대한 알렉세이의 대물과 닿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잘생긴 변태, 일명 잘변이가 자신의 엉덩이를 잡아당겨 자기 자지에 맞붙였다.
“아인아, 두 번째 질문에도 대답해야지. 네가 어떻게 해야 부모님이 죽지 않을까.”
알렉세이의 비열함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진짜 진심으로 이게 주인공이 맞나 싶었다. 주인공은커녕 최악의 악당이라고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 같다.
“네가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줄게. 내 가이드를 데리고 외국으로 토끼려고 한, 페르디안 백작 부부는 네가 내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임신하고 출산하고 임신하고 출산하고를 무한으로 반복해야 살 수 있어.”
소름이 쫙 끼쳤다. 어서 우리 집에 있는 제이콥을 보여줘야 했다. 제이콥을 보면 분명 알렉세이가 ‘내가 왜 이런 황금 멸치 따위한테 집착했었지? 우리 콥콥이, 이리 오세요. 냉큼 오세요.’ 하면서 독자들을 즐겁게 해줄 19금을 찍어댈 것이다.
어서 광공을 데리고 집에 가야 했다. 사지가 구렁이에게 얽혀 꼼짝 못 하는 토끼처럼 붙잡혀 있어 고개만 돌려 샤를과 레이나를 살폈다. 그들이 울면서 알렉세이에게 무릎 꿇었다.
“1황자 전하, 제 아들은 아직 어립니다.”
“설마 나이 핑계 대면서 혹시 우리 결혼 허락 안 해주려는 거야? 못된 장인이네. 혹시 혼나고 싶어서 그러는 거면 말해. 얼마든지 숨만 붙여놓고 고문해줄게.”
“1황자 전하. 안 돼요. 우리 아빠 괴롭히지 마세요.”
“괴롭히는 거 아닌데? 아인아, 그냥 대화하는 거야. 내가 괴롭혔으면 네 아빠 지금 저딴 불손한 눈깔도 못 떴어. 눈알 뽑혀서.”
자신의 도주 때문에 흥분한 광공을 어떻게든 진정시키고 제이콥을 만나게 해야 했다. 뜨끈뜨끈한 열기가 맞닿은 몸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러트인 이때가 기회였다. 최음제가 들어 있을 게 분명한 제나 쿠키를 제이콥 주둥이에 처넣고, 둘을 합방시켜야 한다.
“하아~, 하아~. 씨발. 내 가이드. 내 오메가 냄새 때문에 미치겠어.”
알렉세이가 바지를 내리려고 잠시 포옹을 풀었을 때, 간신히 도망쳐 나왔다. 품에서 사라진 자신을 그가 다시 찾으려고 들었다.
“안 돼요. 집에 갈래요.”
기운 넘치던 게 무색하게 알렉세이가 쓰러져버렸다. 그가 바닥을 기어 자신의 발치까지 왔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무너트리고 싶다는 듯 그의 손이 발목을 꽉 쥐었다가 놓길 반복했다.
“집에 가면 나랑 섹스할 거야?”
“미쳤나 봐.”
“왜 안 해. 왜 안 해! 왜 안 하냐고!”
러트로 이성을 잃은 그가 주먹으로 선착장 바닥을 막 두드려댔다. 나무로 된 다리에 구멍이 뚫려서 바닷물이 보였다.
제이콥에게 데려가기도 전에 광분한 새끼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잘 다독여서 제이콥과 한 침대에 눕혀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쑥 하고 몸이 꺼지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바뀌었다.
검푸른 바다가 아닌 침대 위였다. 푹신한 매트리스에 누운 채 여기가 어딘가 살폈다. 알렉세이의 침실인 것 같았다. 발목을 잡고 있던 손이 복숭아뼈를 쓰다듬었다. 자신의 발을 들어 올려 그가 발등에 입을 맞췄다.
“이제 집이야. 해도 되지?”
신발이 벗겨졌다. 양말 또한 벗겨졌다. 알렉세이가 자신의 발을 씹어 먹을 것처럼 입에 넣었다. 그의 큰 입에 자신의 발가락이 몽땅 들어가 무서웠다. 이로 아그작 아그작 발가락들을 씹어서 없애버릴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 팔로 매트리스를 밀어댔다. 이불이 밀리고, 등이 침대 헤드에 부딪혔다. 발을 빨고 깨물고 혀로 핥던 알렉세이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흐리멍덩하던 은회색 눈에 살기인지 음욕인지 모를 강렬한 감정이 맺혔다.
“이리 와!”
발목이 잡혀서 쭉 밑으로 미끄러졌다. 더럽게 발을 빨아먹었던 입으로 키스를 하려고 했다. 고개를 돌려서 피했다.
“화나.”
“….”
“화난다고.”
그가 두 번이나 강조하는 말에 결국 고개를 제자리로 돌렸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키스를 기다렸다. 좋다며 혀를 넣고 키스할 거라고 여겼는데, 그는 손바닥으로 아인의 입술을 가리고, 그 위에 키스를 했다.
“양치하고 오면 키스해줄래?”
“…네.”
“기다려. 도망치면 이 나라 멸망시켜버릴 거야.”
규모가 커졌다. 부모님을 가지고 협박하더니, 이제는 나라를 들먹였다. 그런데 그게 마냥 허풍처럼 들리지 않아서 큰일이었다. 도대체 S급 에스퍼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침실에 딸린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그는 양치를 하러 간다 해놓고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도망칠 절호의 기회였지만 그러지 않았다. 스스로도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러트 때문에 아이처럼 고집을 피우는 알렉세이가 자신이 없는 걸 발견하면 배신감을 느껴 죽이러 올 것 같으니까, 라는 변명을 급조해봤다.
욕실에서 나온 알렉세이는 목욕을 해서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가 걸을 때마다 다리 사이에 있는 엄청난 대물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무겁고 크면 흔들리지조차 않았다. 말도 안 되는 비주얼이었다.
자신도 남자여서 아는데 저건 페니스가 아니었다. 자신에게는 저런 것이 달려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숨통을 끊어놓을 듯 포옹했던 팔이 걷느라 가볍게 앞뒤로 흔들렸다. 온몸이 근육이었다.
지방이 조금도 끼지 않은 완벽한 우성 알파의 신체는 군신이 현신한 것처럼 강인하고 아름다웠다. 어쩌면 알렉세이라면 진짜 전차에 태양을 매달고 하늘을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현대에서 목욕탕 경력이 몇 년인데, 같은 남자의 알몸을 보고 침이 꼴딱 넘어갔다. 알렉세이가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여전히 침대에 있는 자신을 먹잇감처럼 사납게 노려봤다.
그 눈빛이 자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집어삼킬 것 같아 무서우면서도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울컥하고 자신의 구멍이 무언가를 배출했다. 엉덩이가 축축했다. 그게 무엇인지 볼 수 없었다.
다행히 냄새는 안 나는데 미끄덩한 점액질이 자꾸 뒤에서 흘러넘쳤다. 구멍에 힘을 주고 참아보려고 했으나, 보이지 않는 사슬처럼 자신을 옭아매는 향기가 점점 심해졌다.
사지에 힘이 풀리고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제 의지로 도망가지 않은 거였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침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알렉세이의 시선에서 갇혔다는 걸. 그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으면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맛있게 잘 익었어. 볼래?”
그가 발기해서 배에 딱 달라붙은 자지를 손으로 잡고 보여주는 흉내를 냈다. 알렉세이가 침대로 올라와 아인의 입에 자지를 문질렀다. 귀두에서 씁쓸한 액이 나와 입술을 번들거리게 했다.
“너 먹이려고 깨끗하게 닦았어. 세 번이나 꼼꼼하게 비누칠했으니까 이번에는 고개 돌리지 마.”
“흡.”
양치하면 키스해준다는 것이 그새 펠라티오로 바뀌어 있었다. 어떻게든 입술을 오므리고 그것을 입에 들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부질없는 반항을 지켜보던 그가 “벌려.” 명령했다. 입이 스르르 열리더니 완전히 벌어졌다.
“이제부터 아인이는 내 자지 없으면 못 사는 오메가가 되는 거야. 아인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내 좆물이야. 맛있게 빨아서 목구멍에 자지 넘겨봐.”
그는 차마 귀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수위의 말을 했다. 19금 집착광공의 저력이 어디 안 갔다.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자신이 허겁지겁 알렉세이의 자지에 달라붙어서 자지를 빨았다.
커다란 그것은 아무리 잘 먹으려고 노력해도 입이 조그마해서 다 들어가지 않았다. 입술 끝이 찢어진 듯 살짝 피가 맺혔다. 그럼에도 자신은 그의 자지를 먹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다. 입으로 귀두를 오물오물 머금은 채 쿠퍼액을 짜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달콤함이었다. 이것을 먹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쫓기는 사람처럼 자지에 얼굴을 파묻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자신이 집착광공 사타구니에 얼굴을 처박고 정신없이 펠라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자꾸 구멍에서 울컥울컥 이상한 게 뿜어져 나오고, 소주 세 병 마신 취객처럼 정신이 몽롱해지며 몸에서 열이 올랐다.
“쓰흡. 하아~. 발정 나서 자지 빠는 것 좀 봐. 왜 이렇게 예뻐. 응? 우리 아인이 뭐 믿고 그렇게 무턱대고 예쁘냐고.”
정신없이 뭐에 홀린 듯 알렉세이의 귀두를 입에 넣고 쪽쪽 흡입했다. 커다란 손이 밤톨만 한 뒤통수를 한 손으로 잡고 꾹 내리눌렀다.
“커헉. 컥컥.”
닫혀 있는 목구멍에 귀두가 들어오려고 했다. 괴로워서 숨도 제대로 못 쉰 채 팔을 버둥거렸다. 서러워서 눈물을 글썽이며 개새끼를 올려다봤다.
“씨발, 못 참겠다.”
아인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알렉세이가 들어 올렸다. 쪽, 하고 귀여운 뽀뽀가 입술에 닿았다. 귀두가 목젖을 찌르자 서러웠던 마음이 신기하게도 괜찮아졌다.
“아인아, 너 내 페로몬 맡고 히트 왔다.”
“어… 어… 어….”
알렉세이의 말에 당황해서 어버버 하다가 얼른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억제제 한 알을 꺼냈다. 도주할 때 안 먹길 정말 잘했다. 귀중한 억제제를 입에 넣으려고 했는데 분명 손바닥에 올려둔 게 사라졌다
“어? 어디 갔지? 여기 있었는데? 어디 갔지?”
제 손바닥을 뒤집어도 보고, 침대를 훑어도 보며 억제제를 찾아봤으나 이미 그것은 알렉세이에 의해 휙 하고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였다. 아인은 울상을 지으며 그거 없으면 큰일 나는데, 하고 눈물지었다.
훌쩍훌쩍 콧물을 들이마실 때마다 점점 구멍에서 울컥울컥 물이 뿜어져 나왔다. 아인은 이게 말로만 듣던 오메가 애액이었구나, 하고 눈새 주제에 십만 년 일찍 알아차렸다. 아마 알렉세이의 말이 없었다면 여전히 제가 실례를 하고 있다고 믿었을 테다.
주먹 쥔 손으로 번갈아 가며 눈물에 젖은 눈가를 닦았다.
“만세!”
알렉세이는 넋 나간 오메가를 얼른 구워 먹기 위해 재빨리 상의를 벗겨냈다. 하얀 가슴에 도드라진 분홍색 젖꼭지가 빨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이 앙증맞았다.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손을 뻗어 아인의 정점을 잡아챘다.
“아!”
소스라치게 놀란 아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알렉세이를 쳐다봤다. 귀여워. 그렇지만 귀엽다고 봐주지는 않았다. 알렉세이는 젖꼭지를 쭉 잡아당겼다. 우성 오메가의 페로몬이 몸에 다 담기지 못해 밖으로 흘러넘쳤다.
장미처럼 화려한 향기인가 하면, 우아한 백합 같기도 하고, 그 향기가 어른스럽다 싶었는데 다시 맡으니 귀여운 재스민같이 앙증맞다.
팔색조의 매력을 가진 페로몬이었다. 전혀 예측할 수 없었고, 사람을 편하게 하는 향기인데 이상하게 자극적이었다. 알렉세이도 제 페로몬을 좀 더 풀었다. 그러자 젖꼭지가 인질로 붙잡힌 아인이 두 무릎을 꼭 붙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히이잉. 으응~.”
아인이 가느다란 콧소리를 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둘러 바지를 벗겨봤다. 남성기는 물론, 구멍에서 배출된 애액으로 회음부가 온통 질척하게 더럽혀져 있었다. 알렉세이는 혀를 내 그것들을 개처럼 핥아 먹었다.
히트사이클이 온 오메가가 내보내는 애액은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황홀한 맛이었다. 알파에 면역이 없는 아인 또한 알렉세이처럼 페로몬에 취해 정신을 못 차렸다.
그가 아인을 침대에 눕혀 다리를 쫙 벌려내도 물에 젖은 것처럼 녹아내리기나 할 뿐, 반항하지 않았다. 아인의 발정은 엄청났다. 하얗고 아담한 몸을 빨갛게 물들이며 숨을 가쁘게 헐떡였다.
뽀얀 궁둥이 사이에 수줍게 자리한 구멍은 틈 하나 없이 오므라져 있었다. 애액에 번들거리는 그곳은 색마저 어쩜 알렉세이의 취향에 맞게 예쁜 분홍색인지 모르겠다.
피부가 하얘서 그런지 꽃물을 들인 것 같은 젖꼭지와 남성기, 구멍이 유독 눈에 확 띄었다. 알렉세이가 검지 하나를 닫힌 구멍에 밀어 넣었다.
“아아. 아파. 아파.”
고작 손가락 하나 가지고 아인은 아프다고 다리를 버둥거렸다. 알렉세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손 검지로 구멍을 쑤시고, 아인의 입에는 왼손가락 두 개를 집어넣었다.
“읍읍. 으윽. 으응. 응응.”
아인은 고역이라는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목구멍이 범해질 때마다 구멍으로 검지를 조였다. 야무지게 자기가 받아먹어야 할 걸 점막으로 휘감는 솜씨가 완전 타고난 요부다.
구멍과 목구멍을 동시에 자극하며 사정을 유도했다. 오늘은 펠라에 미숙해 알렉세이의 자지를 다 못 삼켰지만, 앞으로는 몸이 훈련된 기억에 따라 좆을 빨면서 뒤로 가게 될 것이다.
자지에 비해 수월하게 손가락을 받아먹는 아인의 목구멍이 드디어 열렸다. 젖이랑 남성기를 발딱 세운 채 가느다란 허리가 아치형으로 휘었다. 목젖 너머까지 손가락을 넣었다가 뺐다 하면서 구멍에 넣은 손가락을 두 개로 늘렸다.
짱짱하게 조여진 구멍 안에서 손가락을 가위질하듯 움직이며 어떻게든 구멍을 벌리기 위해 노력했다. 살짝 구멍이 늘어날 때마다 뜨거운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자지가 터질 것 같았지만 바로 삽입해 피를 보게 하지 않았다.
앞으로 해야 할 좆질이 많이 남아 있었다. 고작 순간의 욕정을 못 참고 구멍을 찢어서 해야 할 좆질을 못 해선 안 됐다. 투명한 애액이 손가락에 휘감길 때마다 구멍에서 쿨쩍 쿨쩍 야한 소리가 났다.
아인이 뺨을 붉게 물들인 채 입에서 침을 흘렸다.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린 모습조차 야했다. 펠라를 가르쳐주던 손을 빼서 구멍을 여는 데 집중했다. 양손으로 구멍을 좌우로 잡아당겨서 기어이 침입자에게 비협조적인 구멍을 벌려냈다.
“흐으읏. 흐응.”
그러나 아직 알렉세이의 자지가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작고 좁았다. 두툼한 혀를 아인의 벌어진 구멍에 넣고 안을 핥았다.
내벽이 혀를 강하게 흡입하며 꿈틀거렸다. 혀를 깔짝깔짝 움직이며 내벽 주름을 문질렀다. 정신없이 구멍을 빠는 알렉세이의 머리통을 아인이 자기 쪽으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아앗. 아아. 좋아. 흐으으. 조하.”
쾌락에 굴복당한 오메가는 자신이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른 채 좋아했다. 혀로 구멍을 이완시키는 내내, 바깥 주름을 손으로 마사지해서 부드럽게 만들었다. 아인이 허리를 펄떡 튕기며 성기에서 하얀 정액을 뿜어냈다.
“흐으으으. 으으응.”
잠시 오르가즘을 느끼는 오메가를 기다려준 다음, 알렉세이는 아인이 탈진할 때까지 기다렸다. 기둥을 손으로 잡고 구멍에 귀두를 조준했다. 천천히 삽처럼 생긴 귀두가 구멍 안으로 침입했다.
“아아아. 아니야~ 아니야. 하지 마!”
꽉 다물려있던 구멍이 거대한 자지를 삼켜내느라 잔뜩 늘어났다. 귀두를 삼킨 분홍색 점막은 늘어날 대로 늘어나서 투명해 보일 정도였다. 알렉세이는 겁에 질린 제 오메가를 보고 싱긋 웃었다.
퍽.
“아아악. 아파. 아아아.”
퍽.
“아아! 아아!”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요란했다. 동정심이 안 생기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나쁜 알파다. 그는 좁은 통로를 그대로 밀고 들어가며 아인의 얇은 뱃가죽을 유심히 살펴봤다.
아인은 우느라 정신없어서 알렉세이의 교활한 눈빛을 보지 못했다. 자지를 더 깊게 처박을 때마다 피부를 뚫고 나올 것처럼 성기 모양대로 배가 도드라졌다. 알렉세이는 자신의 흔적을 손으로 꾹 눌렀다.
“으아아. 아앙. 앙대. 그마해. 하지 마.”
눈물범벅이 되어 아인은 부정확하게 말했다. 그 모습이 꼭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 것 같아 귀여웠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알렉세이의 주관적인 감상이었다.
아직 자지의 3분의 1밖에 넣지 않았는데 아인은 죽으려고 했다. 알렉세이는 천천히 허리를 흔들며 오메가가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했다. 비명으로 가득했던 울음은 어느새 그 어떠한 냉혈한의 심장도 녹일 수 있을 만큼 섹시하게 변해 있었다.
“아앙. 아아. 아앗. 하아.”
눈물이 걷힌 맑은 눈동자가 알렉세이를 바라봤다. 그는 처음으로 자지에 개통 당하느라 고생하는 자신의 가이드에게 상으로 이마 키스를 해줬다. 짭조름한 땀마저 설탕물처럼 달았다.
“하아. 아앙. 아아. 아앗.”
아인은 알렉세이가 흔드는 대로 자그마한 체구를 나풀거리며 흔들렸다.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벌려져 있던 다리를 들어 그의 허리에 감았다. 장했다. 그는 칭찬의 의미로 열심히 아인의 젖꼭지를 빨아주며 좆질을 했다.
아무리 오메가가 알파 자지를 받아먹도록 신체 구조가 만들어졌다지만, 아인은 정말 섹스에 타고난 게 틀림없었다. 검지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해 버거워했으면서 어느새 자지를 반이나 삼켜냈다니 말이다.
알렉세이는 구멍에 자지를 넣었다가 빼고, 다시 넣길 반복하며 점차 뿌리까지 처넣을 계획을 세웠다. 아인은 끊임없이 뒤로 가며 배 속에 품은 자지를 내벽으로 움켜잡았다.
알렉세이가 자궁이 어디쯤 있나 더듬거리며 귀두로 내벽을 긁어댔다. 아인이 알렉세이의 허리춤에 단단히 감은 발을 쳐올리며 몸을 떨었다. 여기다. 확신이 왔다. 그는 뾰족한 귀두로 그곳을 집중 공략했다. 환희에 차서 진한 꿀처럼 달콤한 소리를 내던 아인이 다시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아아. 아파. 아파. 크헝헝헝.”
알렉세이가 자궁 입구에 천천히 귀두를 삽입했다. 아인은 살려달라며 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세이가 멈출 기미를 안 보이지 않자 어깨를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자궁에 알파 자지를 들이는 과정은 경험이 없는 오메가에게 잔인한 고문일 것이다. 그러나 알렉세이의 가이드로 태어났으니, 아인이 감내해야 하는 몫이었다.
알렉세이는 결국 발작하듯 그를 욕하고 때리던 아인의 자궁 입구에 귀두를 완전히 집어넣었다. 귀두가 들어간 후에는 지체하지 않고 좆을 마저 밀어 넣었다. 끊임없이 아인의 구멍에 자지가 빨려 들어가 결국 불가능해 보였던 뿌리까지 삽입했다. 아인은 기절했는지 고개가 한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알렉세이는 느릿느릿 손으로 자신을 완전히 품어낸 장한 가이드의 몸을 탐했다. 실크처럼 부드러웠던 아인의 몸에는 아픔으로 인한 닭살이 돋아 있었다. 솜털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어 손이 나가는 길마다 촉촉했다.
만지는 맛이 있는 몸이었다. 붙잡고 좆질을 하면 부러질까 걱정될 만큼 가는 허리 또한 보는 맛을 가중시켜주는 일미다. 기운 없이 널브러진 몸을 잘 추슬러 잡았다. 알렉세이는 러트 기간이었고, 노팅을 몇 번을 해도 모자랐다. 제 욕심껏 오메가를 들쑤시고 주무르고 끌어안았다.
알파 맛을 몰랐을 때 아인의 페로몬이 여린 꽃봉오리 같았다면, 드디어 자궁에 좆을 받아들여 진정한 오메가가 된 아인의 페로몬은 활짝 만개한 꽃들로 이뤄진 부케 같았다.
아인의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해갈되어야 할 욕구가 배로 뛰었다. 갈증이 난다고 바닷물을 퍼 마셔댄 격이랄까. 고작 이걸로는 우성 알파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했다.
알렉세이는 혼절한 아인의 한쪽 다리를 들어 어깨에 올렸다. 다리가 가위처럼 찢어져서 삽입하기 한결 수월해졌다. 퍽퍽퍽. 일정한 속도로 좆을 박아 넣었다. 아인이 납작한 가슴을 들썩들썩 흔들며 잘 받아먹었다.
오메가에게 박히던 첩자처럼 풍만한 근육질 가슴은 아니었지만 하얀 가슴에 붙은 돌기가 몹시 깜찍했기 때문에 그 두 개의 정점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참 자궁을 열고 안을 분탕질 치던 알렉세이는 아인의 나머지 다리 한쪽도 제 어깨 위에 올렸다. 그는 두 다리를 어깨에 짊어지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알렉세이는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인을 거꾸로 들어 올린 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깨웠다. 오메가가 한 방울의 좆물도 흘릴 수 없게 그리 자세를 취해놓고 드디어 사정을 한 것이다. 물대포처럼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정액에 자궁이 뜨거워지며 아인이 깨어났다.
“아아아. 아아아앙. 아아.”
아인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극강의 오르가즘을 느껴 정신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젖꼭지는 물론, 유륜까지 바짝 세운 채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싱싱한 물고기처럼 펄떡거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궁이 터질 만큼 정액을 가득 싼 알렉세이의 귀두가 주먹만 하게 부풀어 올랐다. 꺽꺽. 숨이 넘어갔다. 아인은 임신한 오메가처럼 빵빵해진 제 배를 보며 눈물을 또르륵 흘렸다.
남자와 섹스를 한 스스로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개처럼 자지를 부풀리는 알파의 노팅이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한편, 몹시 기분 좋았다. 아인은 알렉세이에게 노팅 당해 자지와 자궁이 완전히 맞물려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칡 같았다. 칡은 주변에 있는 생명을 빼앗아 황폐하게 만든다.
아인은 알렉세이라는 칡에게 갈취당하는 연약한 꽃이자 넝쿨에 감겨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나무였다.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 시트를 축축하게 적셨다.
비단 눈물에만 시트가 젖은 건 아니었다. 아인은 완전히 발기한 남성기로 정액을 퓻, 퓻 뿜어냈다. 물구나무를 선 자세 때문에 아인의 가슴과 얼굴이 온통 정액으로 더럽혀졌다.
아인의 안을 정액으로 가득 채워놓고도 부족했던 알렉세이는, 아인이 자기 정액으로 뒤덮인 모습에 드디어 활짝 웃었다. 꼭 제 체액에 더럽혀진 모습 같았다.
그는 아인의 다리를 어깨에서 내려 머리 옆에 다리가 오도록 몸을 접었다. 유연한 오메가의 몸은 둥글게 말린 채 구겨졌다. 아인은 자신의 좆이 입술을 찌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잔인한 알파가 명령했다.
“빨아.”
무엇을 빤단 말인가.
“네 자지 빨라고.”
아인이 말을 듣지 않자 알렉세이가 수캐처럼 귀두가 부풀어 자궁에 단단히 흡착된 좆을 살짝 움직였다.
“아악. 할게요. 할게요.”
아인이 얼른 항복하고 혀를 내밀어서 제 좆 끝단을 핥았다. 혀를 길게 뽑아내느라 목과 어깨에 쥐가 날 것만 같았다.
알렉세이가 묵직한 하반신을 꾹 내리눌러 아인의 허리를 좀 더 접었다. 아인은 간신히 입에 자신의 귀두를 약간이나마 머금을 수 있었다.
쭙쭙. 세차게 귀두를 빨아들였다. 알렉세이가 정액을 싸면 입에 머금고 있으라고 명령했다. 아인은 단지 노팅을 당하는 것뿐인데 사지를 결박당한 사람처럼 반항할 수 없어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서 이 불편한 자세에서 풀려나고 싶었다. 사력을 다해 혀를 움직이고 빨아서 간신히 정액을 쌀 수 있었다. 아인은 좆에 박히는 동안 계속 싸대느라 투명하고 묽어진 정액을 삼키지 않고 입에 머금었다.
느끼하고 맛없어서 빨리 어떻게든 입 안에 있는 것을 뱉든지 삼키든지 해 없애버리고 싶었다. 아인의 허리를 반으로 접었던 알렉세이가 일어나며 천천히 그의 몸을 펴줬다.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혹시 척추가 두 동강 나서 하반신 마비가 왔나 무서웠다. 다행히 다리에 피가 통하면서 찌릿찌릿 감각이 살아났다.
“입 벌려봐.”
그가 아인의 입 안에 든 정액을 확인하고는 흡족해했다.
“이제 천천히 먹어. 한꺼번에 다 먹지 말고, 조금씩 삼키는 모습을 나한테 보여주면서. 그래, 그렇게.”
소설에서 봐서 변태인 줄은 알았지만 직접 겪자 더 무시무시했다. 안 그래도 맛없어서 죽겠는데 붉은 입 안에서 굴러다니는 정액을 중간중간 보여주면서 삼키느라 정액 맛이 더 잘 느껴졌다.
혀가 썩어서 사라질 것만 같았다. 알렉세이는 완전히 정액을 삼킨 아인의 입 안에 손가락을 넣어 덜 삼킨 게 있는지 점검했다. 그리고 나선 돌덩어리 같은 팔다리를 올려 아인을 끌어안았다.
“1황자 전하. 제발 빼주세요. 이만 빼줘요.”
“뭘 빼줘?”
“그거요.”
다 알면서 알렉세이가 모르는 척 “뭐?” 하며 아인의 입에 그 단어를 기어코 올리게 했다.
“성기요.”
“성기가 뭔데?”
“…1황자 전하 다리 사이에 있는 거요.”
“아아, 자지 말하는 거구나. 아인아, 자지 빼줘?”
“네. 네, 제발 빼주세요.”
아인은 간절하게 알렉세이에게 빌었다. 그것이 꽂힌 구멍에 감각이 없었다. 배는 여전히 정액으로 가득해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옆으로 눕자 더 퍼져 보여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행이라면 이제 노팅이 끝나 결합부가 헐거워져 정액이 찔끔찔끔 구멍 밖으로 새어 나온다는 점이었다.
“그럼 정확하게 말해야지. 제발 아인이 오메가 구멍에서 자지 빼주세요, 하고.”
아무래도 광공이 자신을 수치심으로 죽이려는 게 틀림없었다. 아인은 굴복하지 않고 아랫입술을 앞니로 꾹 깨물었다가 시간이 흘러도 자지를 빼주지 않는 알렉세이의 단호함에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훌쩍. 훌쩍. 제발. 흑. 아인이 오메가 구멍 훌쩍, 에서 자지 빼주세요. 흑.”
“잘했어.”
수치심에 얼굴을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물들인 채 눈물을 글썽이는 아인을 보며 알렉세이가 군침을 삼켰다.
드디어 노팅이 풀린 물렁한 자지가 구멍을 굼벵이 기어가듯 느긋하게 빠져나갔다. 크기도 크지만, 길이도 엄청난 대물이 내벽을 쓸며 지나가자 아인의 안이 쾌감으로 움찔움찔 경련했다.
이제 끝났구나 싶어 아인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알렉세이 또한 아인과 얼굴을 마주한 채 웃었다.
“아아앗!”
방금 빼낸 자지였건만, 도로 안으로 처박혔다. 나갈 때는 이것보다 느린 게 없을 것처럼 굴더니만 처박을 때는 빛의 속도였다.
팟팟팟팟. 자궁에 담아놓은 정액이 좆질에 밖으로 삐져나오느라 요란한 물소리를 냈다. 구멍에서 흘러내린 정액들이 온통 가랑이 사이를 적셨다.
알렉세이의 좆이 아인의 구멍을 두드리자 질척한 물기 때문에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인은 허리를 비틀어 도망치려고 했다. 손을 위로 뻗어 기어가려는 시도도 했다. 알렉세이는 엄지로 개미를 짓눌러 죽이듯 간단하게 아인의 노력을 저지했다.
“흑. 흑. 응. 그만. 그만. 힘들어요. 제발 그만해 주세요.”
“하아, 아인아.”
행위를 멈춘 알렉세이가 땀에 젖은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렸다. 눈이 부실 정도로 섹시한 알파가 내뱉는 한숨 소리에 아인은 어깨를 움츠리고 눈치를 봤다.
“내가 나 좋자고 좆질 하는 줄 알아? 다 너 히트 와서 달래주려고 노력하는 거잖아. 네가 자꾸 발정 나서 페로몬 푸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자지가 가라앉아야 그만두지.”
그의 말에 아인은 또르르 큰 눈을 굴리며 페로몬을 어떻게 하면 내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여태 페로몬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서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알렉세이의 손목을 잡고 그 방법을 물었다.
“페로몬 안 내보낼게요. 어떻게 하면 돼요?”
“알려줄까?”
“네.”
방법만 알아내면 앞으로는 절대 페로몬을 안 내보낼 거라 다짐했다.
“히트 온 오메가한테 그런 방법은 없어. 그냥 박혀.”
알렉세이는 아주 대단한 방법을 알고 있는 척하더니 결국 없다며 아인에게 자지를 퍽퍽 박아댔다. 가벼운 아인은 알렉세이의 강한 힘에 몸이 붕붕 떴다가 가라앉았다. 망가져 가는 기분이었다.
흑흑, 울음을 삼키면서도 망할 오메가의 히트 때문에 아인은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느꼈다. 예민해진 젖꼭지를 그가 손톱으로 아프게 집고 비틀었다.
“아아. 아파요. 아파. 젖꼭지 아파요.”
“이상하네. 젖이 아픈데 왜 좆을 세워? 우리 아인이, 아픈 거 좋아하는구나.”
절대 그럴 일 없는데 무슨 말인가 싶었다. 시선을 내려 아래를 확인했다. 구멍으로는 다리통만 한 자지를 삼키고, 위로는 살점이 뜯어질 듯 젖꼭지를 괴롭힘당했는데 자신의 미친 좆이 발기했다.
이게 다 원작에서 음란한 남창이었던 악역수 때문이었다. 자신은 음전한 모솔이었는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타락하게 되었나 싶었다.
그 뒤로도 알렉세이는 지치지도 않고 아인에게 피스톤질을 했고, 자궁 가득 좆물을 싸 배를 빵빵하게 부풀렸다.
노팅을 세 번째 당했을 땐 자지를 빼내자 구멍이 닫히지 않아 안에 든 정액이 줄줄 쏟아졌다. 이대로 구멍이 망가진 채 여러 알파들한테 걸레라며 던져지겠구나 싶었다.
어떻게든 구멍을 다물려고 힘을 줬다. 움파움파 입질을 하며 닫히는 구멍을 본 알렉세이가 또다시 좆을 세우고 삽입해 아인을 괴롭혔다. 우성 알파의 러트는 엄청났다.
히트가 온 아인은 이제 전혀 성욕이 안 생기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며칠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원작 소설에 따르면 이 짓을 무려 일주일 동안 견뎌야 했다.
아인은 잠시 휴식 시간에 알렉세이에게 우리가 이렇게 얼마나 지냈는지 물었다.
“글쎄, 하루 됐나?”
네? 이봐요 광공 씨? 뭔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만? 나는 분명 지금 평생 해야 하는 섹스 횟수를 다 채웠거든요? 그런데 고작 하루라고요? 앞으로 6일이나 이 짓을 반복해야 한다고요?
살기 위해선 도망쳐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항문 파열로 죽을지 몰랐다. 몇 번이고 부풀고 꺼지길 반복하는 자신의 배를 볼 때마다 괴물이 된 것 같아 끔찍했다.
이러다가 정말 남자인 자신이 임신할까 봐 무서울 뿐이었다. 도대체 광광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남자가 임신한다는 설정을 넣은 걸까. 또 알파라며 사람한테 개좆을 달아놓지를 않나. 아주 제정신이 아니었다.
알렉세이가 자신을 번쩍 안아 들었다. 침실에 딸린 욕실에 가기 위함이었다. 도자기 욕조에는 황금 수도전이 달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 집 화장실 수도전도 이걸로 바꿔야지 생각했다. 아인은 당연히 그때까지 자신이 집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빨리 제이콥을 알렉세이와 만나게 해서 예전의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을 궁리에 빠져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집착광공 알렉세이가 욕조에 물을 채우고 n차전에 돌입하려고 한다는 걸 말이다.
아인이 따끈한 물에 허리를 지지며 “어흑, 좋다~.” 아저씨처럼 이러고 있는데, 목덜미에서 쪽쪽 뽀뽀 소리가 났다. 이 태평양 앞바다처럼 넓은 욕조에서 굳이 자신의 뒤로 와 앉더니, 사람 귀찮게 뽀뽀를 해댔다. 주인 사랑이 지독한 대형견에게 애교를 받는 것 같았다.
알렉세이의 머리통을 손으로 치워봤지만, 그는 언제 밀려났냐는 듯 도로 목덜미에 달라붙어서 입을 맞췄다. 짜증 났지만 힘들어서 그냥 내버려 뒀다. 얼른 뜨거운 물에 허리를 지지고 쉬고 싶었다.
무릎을 세우고 앉아 수면 위로 드러난 복숭앗빛 관절을 그가 매만졌다.
“아인아, 넌 무릎도 예쁘다.”
무릎이 예쁜데 왜 자지가 또 선단 말인가. 이쯤 되면 장르를 의심해야 했다. 역시 이 소설은 단순한 19금 BL이 아니라 공이 섹스로이드인 SF물이었다. 등에서 빨리 에너자이너를 꺼내 알렉세이를 종료시켜버려야 했다.
그가 아인의 무릎 아래에 손을 넣어 들어 올렸다. 퉁퉁 부은 구멍은 물속에서 더 불어났건만, 그곳을 비집으며 자지가 들어왔다.
“으으으.”
꽉 구멍을 오므려 자지가 못 들어오게 막아봤지만 알파 페로몬을 맡자 흐물흐물하게 풀려버렸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광광 작가 작품에 댓글을 달 것이다.
제정신이 아닌 작가가 공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알렉세이가 쉬지 않고 섹스를 한다며, 진짜 사람한테 그러면 죽는다고 말이다.
“쪼옥. 쫍. 쫍.”
아인의 목, 어깨, 쇄골을 가리지 않고 뒤에 앉은 알렉세이가 문어 빨판처럼 입으로 피부를 빨았다. 그는 무겁지도 않은지 아인을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으며 피스톤질을 했다.
욕조 물이 출렁이며 사방으로 튀었다. 욕조 밖으로 물이 넘쳐흘러 하수구로 콜롱콜롱 흘러 들어갔다. 아인의 배 속에도 자지와 함께 뜨거운 물이 들어와 출렁거렸다.
“으응. 그만. 그만해요. 물 들어온단 말이에요.”
섹스를 하다가 기력이 다 빨려 미라가 될 것 같았다. 도대체 원작에서 악역수는 이놈의 어디가 좋아서 그 지랄을 떨었던 걸까. 물론 얼굴과 몸이 되긴 했다. 근데 남자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자신처럼 마음이 착해야 한다. 물론 그래서 자신이 예전에 모솔이긴 했다. 흑흑. 빌어먹을 외모지상주의.
남들은 다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챙길 때, 혼자 4월 14일에 짜장면을 시켜 먹는 기분이란 참 뭣 같았지.
그래도 같은 남자에게 뒤가 뚫리는 것보다는 짜장면 혼자 먹는 게 훨씬 좋았다. 중국집 쿠폰은 모으면 탕수육이 공짜인데, 이건 자신한테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축 늘어져서 뱃가죽을 뚫어버릴 것처럼 드나드는 알렉세이에게 구멍을 내줬다. 경험상 지독한 지루인 그는 역시나 이번에도 사정하지 않고 빳빳하게 자지를 유지했다.
욕조에서 한바탕 일을 치른 뒤, 그가 자신을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수건으로 젖은 몸을 정성스럽게 닦아줬다. 솔직히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자신을 이렇게 기력 없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스스로 물기를 닦을 수 있었다.
갑자기 울컥하며 서러움과 신경질이 밀려와 알렉세이의 손을 쳐냈다. 그는 손등을 맞아놓고도 기분 나쁘지 않은지 씨익 웃었다.
“아인아, 여기 엎드려봐. 연고 발라줄게.”
필요 없다고 하고 싶은데 구멍이 아파서 버틸 수 없었다. 테이블에 배를 까고 누워 엉덩이를 내민 자세를 취했다.
“엉덩이를 벌려야 구멍이 보이지.”
아우, 썅! 그냥 내가 바른다고 성질내고 싶었다. 그런데 이곳은 엄연히 신분제 사회였다. 백작 아들이 황자를 상대로 그러면 바로 황족모독죄로 감옥에 끌려갔다.
물리적으로 절대 들어갈 리 없는 곳에 다리 한 짝이 넣어져 열심히 쑤셔졌으니 분명 자신의 그곳이 엉망일 거라 생각했다. 손가락으로 연고를 듬뿍 뜬 알렉세이가 오랫동안 시달려 빨갛게 충혈된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흐으응응.”
미친. 뭐야. 나 미쳤나 봐. 왜 기분 좋아?
“하아. 아앙. 앙!”
손가락이 푹푹 안을 쑤시며 내벽에 있는 볼록한 부분을 눌렀다. 테이블을 손으로 쥐어 뜯으며 어떻게든 엉덩이를 흔들지 않기 위해 참았지만, 구멍에서 울컥 애액이 배출되어 버렸다.
미친 듯이 알렉세이의 손가락을 더 깊숙이 먹기 위해 뒤로 움직여댔다. 쿨쩍 쿨쩍, 목욕하면서 배 속에 들어간 물이 밖으로 뿜어져 나오며 허벅지 안쪽을 타고 슬금슬금 흘러내렸다.
퉁퉁 부은 유두의 열기를 테이블에 문질러 가라앉혔다. 분명 연고를 발라준다고 해놓고는 다시 섹스가 시작되었다.
이쯤 했으면 지겨울 만한데 처음 해보는 자세라 그런지 직각으로 꺾인 몸은 전율하느라 정신없었다.
덜컥 덜컥 덜컥. 테이블 다리 네 개가 바닥에 끌리며 삐걱거렸다. 오메가란 게 어떤 존재인지 드디어 깨달을 수 있었다. 익숙해져선 안 되는 이 짓을 자신의 몸은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번 생은 아무래도 망한 것 같았다. 악역수에 빙의해 데드 플래그만 벗어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흑흑.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모르겠다. BL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광광 작가를 비웃어서 벌을 받는 걸까?
뭐 이미 버린 몸, 일단 즐기기로 했다. 알렉세이가 좆을 빼낼 땐 내벽을 조여 붙잡고, 집어넣을 땐 내벽을 풀어 안쪽 자궁까지 받아냈다.
아무래도 자신이 남창 레전드 악역수 몸에 빙의해서 그런지 이런 쪽으로 몹시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원작 소설에서 괜히 알파들이 악역수랑 자기 위해 돈을 싸 들고 애원한 게 아닌 것 같다.
하, 빌어먹을. 잘나도 꼭 이딴 능력만 잘나냐.
잠깐 의식을 잃고 정신 차려보니 침대에 있었다. 다리가 알렉세이 어깨에 걸쳐진 채 열심히 박히고 있었다. 참 양심도 없는 새끼였다. 사람이 기절했으면 좀 가만히 내버려 둘 줄도 알아야지. 그깟 러트가 뭐라고.
‘아! 그러고 보니 나도 히트였잖아!’
정말 다행이다. 남자와의 섹스를 좋아하게 된 게 아니라 히트 때문에 기분 좋은 거였다.
‘그런데 그럼 임신하고 뭐 그런 건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아무리 자궁 있는 남자를 오메가라고 해도 남자잖아… 아니야. 그건 아니지. 암~.’
잠시 떠오른 아주 끔찍한 상상을 머릿속에서 얼른 치워 버렸다. 조금이라도 더 임신이란 단어를 떠올렸다가는 진짜 부정 타서 임신할지 몰랐다.
아무튼 피임은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그런 걸 해봤어야 할지. 오메가들이 히트 때 섹스했다고 다 임신했으면 이 나라는 임산부들 천국일 테니 뭔가 방법이 있을 터다.
“아인아, 무슨 생각해?”
“임신이요.”
뭐야. 왜 기분 나쁘게 그딴 눈으로 보는 거야. 알렉세이가 사랑하는 연인을 보는 듯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봤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회색 눈동자가 얼음 빙판 같은 인상과 달리 몹시 따스했다.
“고마워. 내가 더 잘할게.”
뭐가 고맙다는 거지? 아! 알아서 피임한다니까 귀찮게 애 안 생겨서 좋아하는 거구나. 쓰레기 새끼. 뭐 그래도 사랑 없는 사이에서 아이 낳고 불행해지는 것보단 낫지.
알렉세이가 품에 자신을 끌어안고 등을 연신 쓰다듬었다. 등에 정전기를 일으켜서 감전으로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그럴 이유가 없어서 의아했다.
구멍이 아파서 끙끙 앓으며 자신도 잠을 청했다. 꿈에서 요단강을 봤다. 뱃사공이 얼른 배에 타라고 해서 올라타려고 했는데 빛이 번쩍 내리쬐자 사라져버렸다. 개운한 몸 상태에 신기해하며 눈을 떴다.
“이제 괜찮으세요?”
“누구세요?”
“아, 저는 치유 능력을 가진 에스퍼 다알리아라고 해요. 그런데 전에 저택에서 봤을 때랑은 다른 분이시네요?”
“헉. 그게… 죄송합니다.”
황궁에서 사람이 방문했을 때,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린을 침대에 눕혀뒀던 일을 걸려 버렸다. 파란색 머리를 한 미녀가 괜찮다며 친절하게 웃었다. 등에 천사 날개가 파닥이는 걸 본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이곳에는 미녀들이 많은 걸까. 레이나도 그렇고, 다알리아도 엄청나게 예뻤다. 멍하니 그녀의 미모에 혼이 나가서 쳐다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택에 찾아왔을 때 린을 자신의 대역으로 안 쓸 걸 그랬다.
‘누나… 혹시 내가 밥 사도 될까요? 너무 고마워서 그래요. 진짜예요. 흑심은 99.9%밖에 없어요. 순수한 0.01% 호의라고요.’
“아인, 미안해. 아프면 말하지 그랬어. 하마터면 너 죽을 뻔했다고. 흑흑. 흡. 흑흑. 고작 좆질 몇 번 한 것뿐인데 우리 아인이 너무 연약해. 쪽.”
저 혼자 울고, 사과하고, 뽀뽀한 알렉세이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고백했다.
“소중하게 다뤄야 했는데 처음이라 너무 흥분했어. 다음엔 안 그럴게.”
광공이 동정이었던 건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앞으로 또 잘 일도 없고. 깔끔하게 무시하고 다알리아를 바라봤다. 여신님께서 몸이 괜찮냐고 물었다.
“네. 괜찮아요. 누나가 치료해주셔서 다 나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무리하지 마세요. 1황자 전하의 러트에 휘말려 히트사이클이 왔어요. 당분간 억제제 드시면서 침대에 누워 계세요.”
다알리아가 억제제를 건넸다. 태어나서 엄마 빼고 여자한테 처음 선물을 받아봤다. 진심으로 기뻤다. 혹시 오늘부터 썸이냐고 주접을 떨고 싶은데, 뒤에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 참았다.
자신도 미녀를 상대로 이런 질문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문제가 커져 해결하지 못하게 되기 전에 꼭 물어야 했다. 혹시 임신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1황자 전하께 들었어요. 걱정 마시고, 이 약 드시면 돼요.”
“아. 네. 고맙습니다. 이것만 먹으면 다 깨끗이 해결되는 거죠?”
“그럼요. 저도 이 억제제 먹는데 순하고 좋아요.”
이것만 먹으면 사후 피임이 되는 모양이었다. 처음 먹는 회사의 억제제라 약통에 써진 주의사항을 꼼꼼히 읽었다.
[용법·용량]
성인 오메가: 1회 2정을 1일 1회 식전 또는 식간(식사와 식사 사이)에 복용
[사용상의 주의사항] 자세한 내용은 “첨부 문서” 참조.
다음과 같은 사람은 이 약을 복용(사용)하지 말 것.
*모유 수유 중인 오메가
*1세 이하의 영아
기존에 먹은 억제제와 주의사항이 같았다. 그런데 특이하게 임산부 전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임신을 안 했는데 왜 임산부 전용을 준 거지? 순해서 그런 건가? 뭐 임산부 전용이라고 임산부만 먹는 건 아니니, 그러려니 했다.
다알리아도 먹는다지 않는가. 이렇게나마 그녀와 공통분모를 만들어서 기쁘다고 하면 너무 병신 같은가?
얼른 억제제 두 알을 꺼내서 먹었다. 페로몬에 휩쓸려 알렉세이와 또다시 섹스를 하는 짓을 해선 안 됐다. 평소에 먹던 억제제와 달리 멀미와 두통이 심하지 않았다. 이래서 굳이 임산부 전용으로 먹은 거였구나 싶었다.
얼굴도 예쁜데 다알리아는 현명하기까지 했다. 이 세상에 지혜의 여신이 있다면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자신의 치료를 끝낸 그녀가 바로 가려고 했다. 서운해서 얼른 붙잡았다.
“왜요? 많이 바쁘세요?”
“그건 아닌데… 크흠. 1황자 전하 눈치 보이기도 하고.”
뭔 말인가 싶어서 알렉세이를 확인했다. 그는 다알리아를 향해 뜨거운 눈빛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과 섹스를 했던 광공이 그녀를 향해 엄청난 대시를 했다.
‘하. 어이없다. 남자 여자 가리지 않는다 이거지?’
그래도 너무했다. 알렉세이에게 조금의 애정도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첫 구멍의 순결을 내준 놈이라 그런지 서운했다.
다알리아가 돌아간 뒤,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에게 알렉세이가 직접 수프를 떠서 먹이려고 했다.
“무슨 짓이에요.”
“너 억제제 먹었잖아. 그거 빈속으로 두면 안 좋아.”
“제가 먹을게요. 주세요.”
“아니야. 내가 먹일래. 아인이 넌 아프잖아. 누워 있어.”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런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말싸움하기 싫어서 그냥 얌전히 입을 벌려 수프를 받아먹었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두 번째는 받아먹지 않았다.
수프에 무슨 약을 탔을 줄 알고 그냥 먹어, 먹길. 아주 정신이 빠졌다. 이러니까 광공이랑 잤지.
“왜 그래? 맛없어?”
“…네. 입맛이 없어서.”
꼬르르륵. 입맛이 없다고 하기에는 배 속에 든 거지가 밥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알렉세이가 벌떡 일어나 침실 문을 열고 복도에 있던 시종들에게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야, 이것들아. 얼마나 맛없게 만들었으면 배고픈데 먹기 싫대! 다시 해 와. 당장!”
알렉세이가 정신병자처럼 화내놓고 뒤돌면서 상큼하게 웃었다.
“금방 새로 만들어 온대. 잘됐지?”
“….”
새로운 수프가 올 때까지 침대에 누워 기다리는 동안, 정신없어서 보지 못했던 침실을 둘러봤다. 익숙한 자신의 그림들이 보였다. 어떻게 이 많은 그림들을 다 사 모았는지 신기했다.
황자라 돈이 많은지 아주 덕질을 제대로 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그려준 검은 슬라임 자화상에 그려진 토끼 가면을 보게 되었다.
참신한 낙서였다. 검은 물체에 하얀 가면이 있으니까 가5나시처럼 보였다. 혹시 자신처럼 알렉세이도 빙의자인가 그를 유심히 살폈다.
그에게서 단서를 발견하려 해도 특별한 점이 없어 알아차릴 수 없었다. 혹시 자신이 그림을 가5나시로 완벽하게 바꿔놓으면 그도 제 정체를 밝힐지 몰랐다.
“1황자 전하, 혹시 물감과 붓을 가져다줄 수 있으세요?”
“응? 왜?”
“제 자화상에 추가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알렉세이가 시종에게 심부름을 시켜 그림 도구를 가져오게 했다. 아인은 여러 색의 물감을 보고 가5나시 눈 부위에 있던 줄무늬가 무슨 색이었는지 곰곰이 떠올려봤다.
하도 애니를 오래전에 봐서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붉은색 물감을 짜서 양 눈 위아래에 줄을 그었다. 빨간색으로 하니까 피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뒤늦게 가5나시 문양이 연보라색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뭐 색깔 정도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 다르게 두기로 했다. 왜 자신이 빨간색으로 눈에 문양을 넣었나 했더니만, 짝퉁 인형이 그 색이어서 그랬던 거였다.
인형뽑기 기계 사장님들도 참. 정품만 넣어야 하는데 중국산 싸구려를 써서 사람 헷갈리게 했다.
“…아인아.”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자신을 불렀다. 그가 검게 죽은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까지 네 과거가 널 괴롭혀?”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하는데, 와락 끌어안겼다.
“내가 네 기억 지워줄까? 응? 너 어렸을 때 기디언 백작과 만났던 기억 말이야.”
뜬금없이 그 이야기는 왜 꺼내나 의아했다. 그런데 미쳤다. 왜 남의 기억을 지운대? S급 에스퍼라고 하더니만 아주 이상한 능력이 있었다.
“지우지 마요. 왜 내 기억을 지워요.”
“하지만… 네가 계속 힘들어하니깐….”
알렉세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눈가가 붉어서 혹시 우나 싶었다. 생각보다 여린 성격 같아서 위로하려고 하는데, 그가 새로운 수프를 가져온 시종을 싸늘하게 째려봤다.
“늦었잖아. 내 가이드를 굶겨 죽일 작정인가 보지?”
“죄송합니다. 1황자 전하. 살려주세요.”
시종이 벌벌 떨었다. 알렉세이가 혀를 차며 이만 나가보라고 했다.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야 하는데 자신이 쉽게 속아서 광공을 걱정했다.
푹신한 베개를 등에 받치고 앉아 수프를 받아먹었다. 진상을 부려서 그런지 아까 수프보다 고가의 맛이 났다.
이 맛에 갑질을 하는 거구나 싶었다. 절대 배워선 안 될 일이지만, 결과물에 만족했다. 배부르니까 여태 자놓고 또 잠이 왔다. 레이나와 샤를이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 무거운 눈꺼풀을 끔뻑거리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1황자 전하, 저 이제 집에 돌아가도 될까요?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예요.”
순식간에 알렉세이의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졌다가 온화한 미소가 돌아왔다. 2황자 세력이 무서워 외국으로 도망치려는 자신을 그가 잡으러 와 머리채를 잡아챘을 때 지은 표정과 똑같았다.
“아니야. 내가 잘 말해뒀어. 당분간 여기서 지내래.”
잠시 망설이는 듯싶던 알렉세이가 “나, 앞으로 이름으로 불러줄래? 우리 이제 그래도 되는 사이잖아.” 하고 화제를 돌렸다.
“통신 마도구 좀 빌려주시면 안 돼요? 부모님한테 잘 있다고 연락 좀 하게요.”
“…아인아, 난 널 믿어. 믿긴 하는데 나 버리고 다른 나라로 토끼려고 한 게 엊그제거든? 딴맘 품으면 안 되는 거 알지? 우리 아인이 그 정도 교훈은 얻었지?”
다정하든가, 협박하든가 둘 중 하나만 하지. 말 참 이상하게 했다. 어쨌든 고집을 부려서 통신 마도구를 받아냈다.
“여보세요.”
“엄마! 저 아인이에요.”
“흑흑흑. 아인아. 흑흑흑. 내 새끼. 잘 있니? 어디 다친 덴 없어?”
역시 연락하길 잘했다. 울면서 걱정하는 레이나에게 자신은 무사히 잘 있으니 걱정 말고, 저택 경비를 늘리라고 했다. 2황자가 사람을 보내 부모님을 해코지할까 봐 걱정됐다.
“엄마 아빠는 너무 걱정 마. 1황자 전하가 마법사들 보내줘서 저택에 보호 결계 쳐주셨어.”
새삼 알렉세이가 달라 보였다. 통신 마도구에 귀를 댄 채 그를 쳐다봤다. 그동안 너무 나쁘게만 봐온 듯했다.
원작 소설이 처음 BL을 접한 사람은 기겁할 만큼 엄청난 하드코어 19금 내용이 즐비한 거라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아참, 제이콥 좀 황궁으로 불러줄래요? 제 방에 제나 쿠키가 있는데 그거 들고 오라고요.”
“그래, 그 덩치 큰 고릴라 같은 오메가 말하는 거지? 알았어.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꼭 엄마 아빠한테 숨기지 말고 말해야 해. 엄마 아빠는 무조건 우리 아인이 편이니까.”
“네. 걱정 마세요. 저 진짜 괜찮으니까. 갑자기 히트가 와서 억제제 먹고 누워 있는 중이에요. 몸 괜찮아지면 집으로 돌아갈게요.”
“그래… 아인아. 혹시 무슨 일 생겨도 절대 1황자 전하와 각인은….”
뚝. 갑자기 통화가 끊겼다. 알렉세이가 통신 마도구를 빼앗아서 치워버렸다.
“너무 오래 통화하지 마. 몸도 약하면서 왜 이렇게 무리해서 사람 걱정하게 만들어. 자, 누워.”
억지로 침대에 눕혀지고 이불이 목 끝까지 덮였다. 손이 잠시 멈칫하더니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평소 자신이 이렇게 자긴 하는데, 그건 노망난 엘프 디디 때문이었다.
알렉세이는 그 사실을 모를 텐데 신기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억제제를 먹어서 몰려오는 수마에 휩쓸려 잠을 청했다.
***
알렉세이는 아인이 잠들어 숨소리가 잔잔해진 걸 듣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인이 자기 자화상을 보자마자 귀여운 토끼 가면에 붉은 눈물을 그려 넣었다.
하아, 그의 과거를 보듬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지 못해 답답했다. 이례적으로 아인의 페로몬이 남아 있는 그림임에도 자화상을 벽에서 내렸다. 자신의 가이드가 피눈물 흘리는 그림을 침실에 걸어두고 싶지 않았다.
우성 오메가인 아인의 도움으로 러트가 예상과 달리 빨리 끝날 수 있었다. 알렉세이는 그림을 잘 포장해 모셔두고, 2황자가 머무는 바람궁으로 향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호라이슨을 지지하는 세력 중 주축을 이루는 아놀드 후작이 암살자를 보내, 그가 운영하는 보석 상점에서 페르디안 일가를 살해하려고 했다. 만일 샤를의 빠른 대처가 아니었다면 아인은 지금처럼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 좋은 척하길 좋아하는 녀석이 자신에게 가이드가 생겼다는 사실에 어지간히 똥줄이 탔나 보다.
만일 아인을 만나기 전이라면, 능력을 쓸 엄두도 못 내 호라이슨에게 무력하게 당하고 있었겠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S급과 A급 에스퍼의 능력은 천지 차이였다.
가이딩을 받아 안정화된 에테르는 그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놓았다. 호라이슨을 죽이는 것쯤은 손가락만 하나 까딱해도 가능했다. 알렉세이는 감히 늑대의 심기를 건드린 쥐새끼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했다.
적막한 1황자 궁과 달리 2황자 궁은 꽃으로 둘러싸여 사람 사는 곳 같았다. 정원사들이 정성스럽게 기른 하얀 장미에서 꽃냄새가 진하게 났다. 벌과 나비가 꽃 사이를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꽃가루를 묻히고, 꿀을 마셨다.
백장미는 호라이슨의 아름다운 은발을 추앙하기 좋아하는 추종자들이 상징물로 삼는 꽃이었다. 육각형 대리석 기둥을 세워서 지은 하얀 퍼걸러에서 호라이슨이 햇살을 피해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토끼도 차를 마신다는 오후 3시가 됐나 보다.
우아하게 찻잔을 기울이던 호라이슨이 알렉세이를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가까워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을 지었지만 속지 않았다. 그의 이복동생은 뱃속에 구렁이 수백 마리가 든 간악한 악마 새끼였다. 어렸을 땐 귀여운 동생이 생겼다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황제가 아끼는 도자기를 깨놓고는 알렉세이에게 뒤집어씌우는가 하면, 헬링턴 황후의 보석함에서 귀금속을 훔쳐 1황자 궁에 숨겨 놓기도 했다. 도둑으로 몰린 그는 황제에게 번번이 손찌검당했다. 그때마다 호라이슨은 형을 걱정하는 동생인 양 착한 척하며 황제를 말렸다.
‘아버지, 알렉 형은 부모님이 안 계셔서 그래요. 천성이 나쁜 건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가 좀 더 형을 잘 보살펴줬어야 했는데.’
알렉세이가 왜 부모님이 없단 말인가. 황제가 바로 알파 아버지였다. 그런데 황제는 호라이슨의 말에 수긍했다. 알렉세이가 부모 없는 고아 새끼라고.
온몸에서 이복동생에 대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백장미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오메가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알렉세이, 여긴 어쩐 일이에요?”
“몰라서 물어? 네가 내 가이드 죽이려고 암살자 보냈지.”
호라이슨의 멱살을 잡아서 들어 올렸다. 목이 졸린 호라이슨의 하얀 얼굴이 검붉게 질려갔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황제는 언제나 최악의 순간에 나타나 알렉세이를 탓했다. 황제가 보는 알렉세이는 늘 이런 모습뿐이었다.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는 고아다.
호라이슨이 그의 아버지한테 살살 웃으면서 알렉세이 편을 들었다.
“폐하,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뭔가 오해가 있었나 봐요.”
“아무리 오해가 있어도 그렇지, 동생 멱살을 잡고 죽일 듯이 굴어. 하여간 어려서부터 포악하더니만, 커서도 여전해. 피가 어디 가는 게 아니지.”
알렉세이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황제에 대한 서운함에 인사도 없이 발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