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이슨 외전) 모두가 나를 나쁘다고 한다 (1)
호라이슨은 사실 이번 생이 처음이 아니었다. 전생에서 그는 사실 아인 페르디안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한때 자신은 모두가 비난하던 악당이었다.
지금 몸을 차지하고 있는 호라이슨은 전생에서는 엄청 상냥한 황자님이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던 자신에게조차 친절을 베풀었던 존재였다.
그는 어디 가고 그의 몸을 자신이 차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자신은 더 이상 모두가 싫어하던 아인 페르디안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자신은 진짜 호라이슨처럼 착한 사람이 아니기에 겉모습만 따라 하다 보니 이중인격자가 되어버렸다. 새로운 몸과 삶을 얻었으니, 마음을 다잡고 새 출발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자신과 자신의 에스퍼가 이복형제 관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굉장히 긴데 자신과 자신의 에스퍼는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다. 일방적으로 알렉세이가 자신을 미워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가 만일 전생에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상냥한 알파였다면 자신 또한 악당이 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아인 페르디안이었던 시절,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게 보였다. 기억하건대 아주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어둠이 집어삼킬 것처럼 자신의 주위를 맴돌았던 것 같다.
그리고 가문에는 엘프 주치의가 있었는데, 그가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주면 그 어둠이 약간 물러나곤 했다. 그렇지만 언제 물러났냐는 듯 어둠은 다시 어린 자신의 주위를 에워싸 자신을 무섭게 만들었다. 자신은 어렸기에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어둠이 무서웠다.
입을 닫았다. 혹시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그 어둠이 자신을 찾아와 잡아먹을까 봐. 몸을 웅크리고 최대한 숨었다. 그 어둠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둠은 언제나 자신 주위를 베일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자신은 부모님의 사랑 덕에 간신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거지, 아니었으면 어린 나이에 미쳐버렸을 것이다.
샤를은 항상 식사를 할 때 자신을 번쩍 안아서 무릎에 앉혔다. 겁에 질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자신의 입에 수저를 들이밀었다. 자신은 그럼 입을 살짝 벌려서 양송이수프를 받아먹었다.
그에게서는 아주 독특한 냄새가 났다. 자신은 그 냄새가 좋았다. 풀을 초콜릿에 묻혀서 태운 냄새 같았다. 자신이 샤를의 셔츠 목깃에 코를 박고 있으면 레이나가 화냈다.
“여보, 또 담배 피웠죠? 어서 아인이 이리 넘겨요.”
자신은 샤를의 담배 냄새가 좋은데 레이나는 그 냄새를 못 맡게 했다. 그렇지만 자신은 레이나가 샤를보다 더 좋아서 군말하지 않고 레이나의 품에 안겼다. 엄마에게서는 아빠와 달리 좋은 향수 냄새가 났다.
자신은 그 향수 냄새도 좋아했다. 화장대 거울 앞에는 눈부신 조명과 크리스털로 된 예쁜 향수병들이 있었다. 자신은 레이나가 그 화장대 앞에 앉아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하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레이나가 자신의 등을 손으로 받치고 입에 빵을 넣어줬다. 자신은 빵을 받아먹었다. 엄마의 미소가 주변을 몹시 화사하게 만들어줬다. 화목한 부부는 불안정한 자신을 불행에서 건져 올리는 유일한 빛이었다.
“아가, 내일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니?”
“….”
‘토끼 인형이 가지고 싶어요. 지금 있는 갈색 토끼 인형은 혼자여서 너무 외로울 것 같아요.’
마음속에서는 유창하게 말을 했다. 그러나 정작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레이나가 자신을 들여다보며 뺨에 입을 맞췄다.
“괜찮아. 괜찮아. 아가.”
도대체 무엇이 괜찮다는 걸까.
“그래도 엄마는 아인이를 사랑해.”
자신은 답답했다. 레이나는 왜 자신을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사랑하는지 알고 싶었다. 식사를 다 하고 시종이 자신을 안아 방에 데려다줬다.
얼른 방구석에 숨어들어 갈색 토끼를 끌어안았다. 당근 모양 인형을 들고 토끼에게 밥을 먹여줬다. 자신이 밥을 먹었으니, 자신의 친구 토끼에게도 밥을 먹여줬다.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팠다.
자신은 말을 하지 않아도 엄마와 아빠가 밥을 먹여줬다. 그러니 토끼도 자신이 잘 챙겨줘야 했다.
유일한 친구 토끼 인형과 재미있게 놀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너무 이른 시간에 잠들어서 새벽에 깨고 말았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자신을 위해 언제나 작은 마법등 하나가 방 안을 밝히고 있었다.
그렇지만 커다란 침대에 혼자 있는 건 너무 무서웠다. 토끼 인형도 어딘가로 사라진 상태였다. 눈을 굴려 찾아보니, 토끼 인형이 장난감을 모아두는 통에 들어가 있었다. 얼른 그 아이를 구출해내서 같이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옆 침대에서 자고 있던 유모가 놀라서 깨어났다.
“도련님, 무슨 일이세요. 화장실 가고 싶으세요?”
“….”
오줌이 마렵지 않은데 유모가 자신을 화장실에 데려갔다. 유모가 자꾸 입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쉬. 쉬~. 쉬~ 옳지. 잘 싸셨어요.”
오줌을 싼 자신에게 유모가 도로 팬티와 잠옷 바지를 입히고 방으로 데려갔다. 토끼 인형을 가져와야 하는데 침대에 눕혀졌다. 유모는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다시 자기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잤다.
어둠 속에서 장난감 더미에 파묻힌 자신의 친구를 지켜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렇게 전생의 자신은 열 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
아침부터 고용인들이 몹시 분주하게 자신을 치장시켰다. 시종들이 자신의 목둘레에 주름이 가득 잡힌 러프를 둘렀다. 얼마나 큰지 가슴까지 러프가 내려왔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러프에 파묻힐 것만 같았다.
하얀색 스타킹을 신고 그 위에 호박 바지를 입었다. 상의는 레이스와 리본이 치렁치렁 매달린 셔츠였다.
레이나가 앞머리에 화려한 보석 핀을 꽂아 뒤로 넘겨 주었다. 엄마가 귀엽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자신은 하얀색 호박 광대 같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샤를도 화가를 불러서 당장 자신의 예쁜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야겠다며 기뻐했다.
자신의 감정이야 어떻든 엄마 아빠가 좋아해서 꾹 참았다. 시종에게 안겨서 생일 파티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평소와 달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무서웠다.
그런데 시종이 자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신 또래의 아이들이 사나운 개처럼 달려왔다. 마치 자신을 물어뜯어서 먹을 것처럼 말이다.
빨간 머리와 파란 머리가 자신에게 계속 이름을 물었다. 속으로 처음 만난 또래에게 잘 대답하기 위해 연습했다.
‘안녕, 나는 아인 페르디안이라고 해.’
다섯 번밖에 연습하지 않았는데, 빨간 머리와 파란 머리가 자기들 말을 무시한다며 화냈다.
“너 예뻐서 싸가지 없이 구나 본데, 나는 예쁜 오메가보다 착한 오메가가 더 좋거든.”
“….”
“네 이름 따위 궁금하지 않아. 말하지 마.”
파란 머리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자신은 착하지 않은 걸까? 어른들이 우리를 보며 뭐라고 수군거렸다.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생일 파티에 참석한 손님들을 응대하던 부모님이 자신을 데리러 왔다.
시종장이 거대한 케이크 위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초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샤를이 옆에서 말했다.
“아인아, 호 불어서 불 꺼야지.”
“호~.”
불이 꺼지지 않았다.
“괜찮아. 우리 아인이는 그래도.”
샤를이 대신 케이크 촛불을 꺼버렸다. 다시 한번 시도해 초를 끄려고 했던 자신은 자신의 것을 빼앗긴 듯한 박탈감을 느꼈다.
새벽에 토끼 인형을 데려오지 못한 일부터 시작해, 또래 아이들에게 나쁘다는 욕을 듣고, 샤를까지 자신의 촛불을 대신 꺼버리는 등 안 좋은 일이 겹치자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간신히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레이나가 그런 자신에게 생일 선물을 건넸다.
“아인아, 마음에 드니?”
스케치북이었다. 갈색 토끼 인형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자신은 너무 속상해 그만 울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레이나가 얼른 스케치북을 시종에게 치우게 했다.
자신이 울어버려 생일 파티가 엉망진창으로 망했다. 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터벅터벅 구석으로 걸어갔다. 혼자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복도에 있던 누군가가 자신의 뒷목을 낚아챘다. 목에 두른 거대한 러프가 뒤집혀 얼굴을 가렸다.
“으아아아. 으아악.”
놀란 자신은 거대한 러프에 얼굴이 처박힌 채 어눌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쾅!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세상이 그 사건으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꽃은 피지도 못하고 져버렸다.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서 넝마가 되어 울기만 했다. 얼굴을 뒤덮은 러프 때문에 우니까 숨쉬기 더 힘들었다. 달칵하고 라이터 뚜껑을 여는 소리가 났다. 흡, 숨을 멈췄다. 곧이어 언제나 맡았던 아빠 냄새가 났다.
괴한은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자리를 떠났다. 자신의 손을 묶는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얼굴을 가리던 러프를 내릴 수 있었다.
자신은 그 괴한에게서 난 냄새만 기억한 채 샤를을 찾았다. 아빠에게 가서 그 괴한이 아빠가 아니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
온몸이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아팠지만 꾹 참고 샤를을 찾아 저택을 헤맸다. 샤를은 서재에 있었다. 서재 안에는 ‘그 냄새’가 가득했다.
“…아…빠….”
아빠가 평소처럼 안아주길 바라며 두 팔을 벌렸다. 그 괴한이 아님을 따뜻한 포옹으로 증명해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눈시울이 붉은 샤를이 자신을 외면했다.
그가 말했다.
“시종장은 아인이를 방으로 데려가.”
“으아아아. 으아아.”
비명을 지르며 두 팔을 쭉 내밀었다. 그런데도 샤를이 자신의 손을 외면했다. 다음 날, 유모가 아파서 끙끙 앓고 있는 자신에게 말했다.
“도련님, 도련님 때문에 백작 부인께서 돌아가신 거예요.”
“….”
이해할 수 없었다. 유모가 자신의 팔뚝을 손톱이 파고들 때까지 꽉 움켜잡았다. 언제나 다정하던 유모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자신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유모가 자신을 저주했다. 다 자신의 탓이라고 했다. 무서웠다. 왜 상냥했던 사림들이 변해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유모가 씩씩거리며 자신이 아끼던 갈색 토끼 인형을 손에 쥐었다. 가위를 가져와 인형의 배에 꽂아 버렸다. 인형이 찢어져 솜이 삐져나왔다.
“죽어 버려. 너 따위가 죽지, 왜 레이나가 죽어야 해! 죽어! 죽어 버려! 흑흑흐흑. 레이나. 흐흑. 레이나.”
토끼 인형을 난도질한 유모는 그대로 떠나서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침대에서 기어 내려가 바닥에 흩어진 솜을 모았다. 다시 토끼 배 속에 넣어줬지만 인형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싼 어둠이 슬픔을 먹고 커졌다. 그것은 이제 하나의 괴물처럼 형체가 생겨났다. 자신에게 괴물이 말했다.
‘네 아빠가 널 아프게 한 걸 숨기기 위해 네 엄마를 살해한 거야. 왜 모른 척하는 거지? 괴한한테서도 그 냄새가 났잖아!’
돌이켜보면 그때 자신은 닉스에 중독된 상태여서 환상과 환청을 들은 것 같다. 지금의 아인은 그림을 그리며 거기에 페로몬과 닉스를 심는다는데, 자신은 그림 그리는 취미가 전혀 없었다.
에스퍼들은 가이딩을 받지 못하면 육체가 죽어가고, 가이드들은 정신이 죽어갔다. 차라리 아예 가이딩을 해주지 못했으면 깊은 잠에 빠져 버렸을 텐데, 어설픈 에스퍼 디디의 도움으로 어중간한 상태였던 게 문제였다.
레이나의 장례식이 열렸다. 샤를은 장례식 내내 울기만 했다. 자신의 생일 선물을 사러 나갔다가 강도에게 살해당했단다.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이 다 자신의 이름을 언급했다.
어떤 이는 자신이 뭘 알겠냐고 하였고, 어떤 이는 자신이 이기적으로 굴어서 레이나가 죽은 거라고 비난했다. 어쨌든 다들 자신을 나쁜 아이, 레이나를 죽인 원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난이 견디기 힘들었다. 장례식에서 도망치자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두고 수군거렸다. 샤를은 아내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다.
시종들조차 자신을 챙겨주지 않았기에 혼자 장례식장에서 저택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머리에 포대 자루를 뒤집어씌웠다.
정수리 위로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다행히 질식사하지는 않을 수 있었지만, 포대 자루 안에서 숨을 쉴 때마다 천이 입과 코에 달라붙어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아악. 아아악. 살려주세요.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괴한이 포대자루 위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자신을 어두운 창고로 끌고 갔다. 아니다. 창고가 아닌 인적 없는 골목길이었을 수도 있고, 공중화장실이었을 수도 있다. 기억은 중구난방으로 뒤엉켰다. 그때의 자신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신을 망가트린 그가 또다시 담배를 피웠다. 산산이 조각난 영혼이 부유하는 것만 같았다. 정신을 잃은 자신은 그대로 길바닥에서 죽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눈을 뜨니 자신의 방이었다.
머리에 뒤집어씌워졌던 포대 자루는 사라지고, 오직 자신이 느끼는 끔찍한 고통만이 그 일에 대한 유일한 증거가 되었다. 검은 괴물이 자신에게 물었다.
‘이래도 계속 부정할래?’
자신은 괴물의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귀를 틀어막았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인아, 아빠 들어가도 될까?”
“….”
샤를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에게서 진한 그 냄새가 났다. 레이나는 그걸 담배라고 불렀다. 담배는 샤를만의 소유물이 아니지만 그 괴한 또한 자신을 아프게 한 후에 담배를 피웠다.
까드득. 어금니끼리 맞물렸다. 샤를은 자신이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걸 보고는 그냥 나가버렸다. 헉. 헉. 헉.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짧게 공기를 들이마셨다. 목구멍에 숨이 턱턱 막혀서 폐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빠가 날 아프게 했어. 아빠가 날 아프게 했어. 아빠가 날 아프게 했어.”
머리가 고장 난 자신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식사 시간이라 자신을 데리러 왔던 시종장이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신은 한 가지 말밖에 못 하는 앵무새처럼 중얼거렸다.
시종장이 주치의 디디를 부르러 갔다. 디디가 온전치 못한 자신의 상태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인, 잘 들으세요. 아인은 사실 가이드입니다. 그동안은 제가 아인 몰래 가이딩을 받아 닉스를 뺐지만, 이제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대로 뒀다가는 금방 잠들어 버릴 거예요. 제가 아인의 에스퍼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디디가 자신의 에스퍼를 데려오겠다며 저택을 떠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존재들은 자꾸만 자신을 떠났다. 레이나, 디디, 그리고 샤를….
시종장이 샤를 백작을 신고해 나라에서 조사가 나왔다. 조사관들은 자신을 붙잡고 자꾸만 그 끔찍한 사건을 물었다.
“아빠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니?”
“….”
“어떻게 했니? 자세히 설명해볼래?”
자신은 조사관에게 아무런 말도 못 했다. 그가 이 서류에 이름을 적으면 다시는 나쁜 짓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그 말만 믿고 서류에 이름을 적었다. 그들이 자신을 데리고 서재에 분리해뒀던 샤를에게 데려갔다.
“아…빠….”
샤를에게 안겨서 토닥임을 받고 싶었다. 예전처럼 그가 자신을 무릎에 앉혀서 밥을 먹여줬으면 싶었다. 그에게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가는데 샤를이 자신을 밀어버렸다.
“지금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는 거니!”
샤를이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돌아섰다.
“아빠… 아빠… 아빠!”
자신은 샤를에게 안아달라고 계속 팔을 뻗었다. 조사관들이 우는 자신에게 말했다.
“정말 잘됐구나.”
무엇이?
“이제 안심하렴. 더 이상 그 누구도 널 해치지 못해.”
샤를은 재판에 소환되었다. 항상 그를 지키던 호위들이 샤를의 무죄를 입증해줬다. 검사는 샤를이 아이가 잠들었을 때 범행을 저질렀을 거라고 주장했다.
법정에 불려 나온 자신은 샤를이 범인이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무고죄로 큰 벌을 받을 거라고 검사가 겁을 줬다.
“아빠랑 똑같은 냄새가 났어요.”
검사는 그게 아주 대단한 증거인 양 판사를 향해 말했다.
“존경하는 판사님. 아인 페르디안은 비록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우성 오메가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의 페로몬에 매우 민감하다는 뜻이죠. 비록 친족끼리는 성 페로몬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건 상대의 페로몬에 반응하지 않게 된다는 걸 의미하지,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증거 자료 제출하겠습니다.”
검사가 판사에게 자료를 넘겼다. 판사 셋이 의사들이 저술한 논물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드립니다.”
샤를 측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했다. 아인 페르디안은 두 번의 범행을 겪으며 한 번도 범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아빠와 같은 냄새가 났다는 게 꼭 페로몬을 의미하는 게 아닐 거라고 지적했다.
샤를의 변호사가 자신에게 물었다.
“아인 페르디안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샤를 페르디안의 페로몬 냄새를 맡았습니까?”
검사가 자신을 째려보고 있었다. 무서워서 오줌이 마려웠다. 왜 자신이 이런 일을 겪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담배 냄새가 났어요.”
변호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판사를 보며 말했다.
“이상입니다.”
배심원들이 술렁거렸다. 판사가 판사봉을 두드려 관중을 조용히 시켰다.
“조용. 조용.”
샤를은 무죄였다. 그런데 검사는 비열하게 웃었고, 판사는 이상한 판결을 내렸다. 샤를 페르디안에게 백작위에서 물러나 아인 페르디안에게 작위와 전 재산을 물려줄 것을 명하였다. 배심원석에 앉아 있던 아놀드 후작이 장식용 지팡이를 챙겨 일어났다.
샤를이 고개를 푹 숙이고 좌절했다. 배심원들은 불공평한 판결에 항의했으나 재판은 끝났다. 샤를이 자신을 알은척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자신은 걸음이 빠른 그를 쫓기 위해 달리다가 앞을 보지 못해 누군가와 부딪쳤다. 지금의 자신은 그가 2황자의 충신 아놀드 후작이라는 걸 알지만, 그때의 자신에게 그는 그냥 이름 모를 귀족 아저씨일 뿐이었다.
“이런, 조심해야지. 다칠라.”
아놀드 후작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 기억 때문에 자신은 호라이슨이 되어서 제일 먼저 그에게 첫 경험을 바쳤다.
현생에서의 아놀드 후작은 자신이 죽으라면 기꺼이 독약이라도 마실 열혈 추종자였다. 호라이슨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며 다른 귀족들을 포섭하러 다니고, 2황자의 아름다움을 백장미라 칭송한 시를 낭송했다.
호라이슨의 입장에서는 그가 자신의 편이기에 전생에서 레이나를 죽인 범인과 현생에서 그가 저지른 사건을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어리석게도 자신은 그를 조금쯤은 믿고 의지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가 어떻게 자신이 알렉세이의 가이드라는 걸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흑막 아놀드 후작의 계획대로 아인 페르디안은 몰락했다. 사람들은 대놓고 자신을, 아버지를 범죄자로 몰아서 백작 작위와 전 재산을 빼앗은 악마 같은 꼬맹이라고 욕했다.
저택에서 일하는 시종들은 자신을 돌봐주지 않았고, 복도를 걷다가도 괜히 자신의 구두에 침을 뱉었다. 그러다 고용인들이 저택에서 돈이 될 만한 건 다 훔쳐서 달아났다. 고작 10살이었던 자신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황제는 백작이 되었지만,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신을 대신할 백작 대리인을 보내줬다. 그리고 그 백작 대리인은 자신을 매우 못마땅해하며 이웃 나라의 무용 아카데미에 유학 보내버렸다.
스무 살이 되어서야 커리큘럼을 끝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거대한 저택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게 없었다. 텅 빈 저택은 오랫동안 버려진 폐가 같았다. 이제부터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했다.
기숙사에서는 방으로 시종들이 식사를 가져다줬기에 혼자가 된 지금, 어떻게 밥을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며칠은 물만 마시면 버텨봤지만 무리였다.
너무 배가 고팠다. 정원에 나가서 잔디를 뽑아 먹었다. 기력 없이 누워서 아사하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런데 누군가 저택에 침입했다. 유리창을 깨고 불량한 알파들이 들어와 낄낄거렸다. 그들 손에는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무서워서 구석으로 기어가 몸을 웅크렸다.
“내가 말했지? 여기 우성 오메가 있다고.”
“와우 씨. 역시 우성이다. 아주 자지를 살살 녹이게 생겼네. 킥킥.”
그들이 어떻게 자신을 알고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무릎을 끌어모아 얼굴을 파묻고 숨어봤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검은 괴물이 고개를 숙여서 자신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엄마를 죽여서 벌 받는 거야.’
불량한 알파들이 들개처럼 자신을 뜯어먹기 위해 달려들었다. 자신은 천장만 보며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참았다. 지옥의 끝,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도달했다고 믿었는데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밑이 있었다. 자신을 강간한 알파들은 며칠 동안 떠나지 않고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가 백작 업무를 맡기기 위해 황궁에서 온 시종이 저택을 찾았다.
저택 현관문이 잠겨 있어 돌아갔지만, 시종은 다시 돌아올 터였다. 문을 열어줄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잠시 간 것뿐이었다.
“씨발. 이거 어쩌지. 우리 꼰지르면 완전 좆 되는데.”
“야, 팔자.”
“어디에?”
“어디긴. 인안나 신전에 팔자고.”
인안나 신전이라는 소리에 눈이 커졌다. 도망치기 위해 없는 기운을 짜내 일어났다가 머리채가 붙잡혔다. 머리통이 붙잡힌 채 뺨을 맞았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텅 빈 눈동자에는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보다 더 무서운 괴물들이 보였다. 상상 속 괴물은 자신을 해치지 않았지만, 알파들은 자신을 때리고 묶고 강간했다.
“와. 우리 예쁜이, 완전 출세했네. 야, 거기 아무나 들어가는 데 아니야. 돈 많이 벌고 싶어 하는 오메가들이 들어가려고 줄 섰어.”
알파들은 자신을 거대한 감자 포대 자루에 넣고 등에 맸다. 그렇게 자신은 생면부지의 알파들에게 납치되어 인안나 신전에 팔려 갔다.
사제장은 손님들에게 친절한 사내였다. 돈을 많이 버는 창기에게도 유쾌하고 재미있는 친구였다. 그러나 돈을 못 버는 버러지들에게는 무서운 조교님이었다.
사제장은 매출 성적이 부진한 오메가들에게 알파를 홀리기 위한 훈련을 시켰다. 자신은 인안나 신전에서 통나무로 불렸다.
알파들은 자신을 우성 오메가이고, 예쁘게 생겼다는 이유로 찾았다가 사제장에게 화를 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안 한다면서 돈을 환불해달라고 했다.
자신은 그곳에서 목구멍 깊숙이 좆을 넣고 빠는 법, 젖을 손가락으로 자위하는 법, 구멍을 쑤시는 법, 구멍으로 좆을 조이는 법, 야한 신음 소리를 내는 법 등 여러 훈련을 받았다.
그때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는데 막상 그때 배운 기술을 호라이슨이 되어 써먹더라. 삶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강요하지 않건만 왜 자신은 전생에서와 똑같은 삶을 살았던 걸까.
자신은 점점 인안나 신전 생활에 적응해 갔다. 저택에 혼자 있을 때는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서 배고프고 외로웠는데, 그곳에서는 몸 파는 오메가들이 자신을 챙겨줬다. 그러나 인안나 신전에 있다고 해서 다 같은 남창이 아니었다.
그들과 자신은 몸을 파는 이유가 달랐다. 그들은 히트사이클 때 큰돈을 벌기 위해 일시적으로 신전에 오는 오메가들이었다. 오메가들은 자신을 동정하며 먹을 것을 주고, 옷도 사줬다.
그들이 베푸는 미약한 친절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애정을 갈구했다. 손님들도 자신이 잠자리에서 잘하면 돈도 많이 주고, 칭찬해줬다.
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칭찬받는 건 좋았다. 그들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면 샤를과 레이나에게 사랑받던 시절이 떠올랐다.
자신은 인안나 신전에서 가장 유명한 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수익을 올려도 수중에는 몇 푼밖에 떨어지지 않아 가난했다.
자신은 알파들의 이름을 몰랐지만,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아인 페르디안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서 사제장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 갔다.
자신은 그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달아 놓은 빚을 갚아야 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사제장이 그랬다. 원래 곰이 재주 부리면 조련사가 돈 버는 거라고.
사제장은 자신에게 넌 인기가 좋으니 금방 빚 갚아서 인안나 신전을 나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그는 빚을 다 갚자 이제 집에 가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인안나 신전에서 벗어나도 돌아갈 곳이 없었다. 페르디안 저택은 자신에게 끔찍한 악몽밖에 남아 있지 않은 곳이었다. 다시 그곳에 가면 그 알파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실성한 사람처럼 길거리를 혼자 돌아다니고 있자, 친절한 귀부인이 다가와서 물었다.
“저기,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샤를 페르디안을 찾고 있어요. 그는 어디에 있나요?”
귀부인이 시종에게 자신을 샤를 상단까지 데려다주라는 지시를 내렸다. 시종이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자신보다 한참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서 걸음을 따라잡기 힘든 시종을 쫓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아빠는 샤를 상단이라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페르디안 백작저의 화장실만 한 공간에서 아빠가 물건을 팔고 있었다. 가게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서 실내가 보이는 구조였다. 그동안 유르한 제국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굉장히 획기적인 인테리어였다.
꽤나 장사가 잘되는지 작은 가게에 줄 선 손님들이 많았다. 자신을 발견한 샤를이 일을 다른 직원에게 맡기고 가게를 나왔다. 자신은 샤를을 만나기 위해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인안나 신전에서는 외모를 매우 중요시해서 귀족이 아니어도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옷과 구두를 맞췄다. 자신은 부모님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멀끔하게 관리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샤를을 만나는데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거의 모든 창기들이 환락을 대가로 번 돈을 사치품에 소비했다.
자신도 그들의 소비 패턴을 배우고 익혀 주머니에는 동전 하나 없지만, 비싼 몸값 덕에 빚은 다 갚았고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여길 왜 찾아왔어.”
그가 자신을 반겨줄 거라고 믿었다. 언제나 따스하게 웃어줬던 아빠였기에. 샤를은 오랫동안 자신을 보지 못했지만, 어른이 된 자신을 한눈에 알아봤다.
“다시는 날 찾아오지 마. 꼴도 보기 싫으니까.”
샤를이 바빠 보이는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자신은 유리창 너머로 웃으면서 손님들을 응대하는 샤를을 한참 지켜보다가 자리를 떴다. 더 이상 그의 옆에는 자신의 자리가 없었다.
“흑 훌쩍. 흑 훌쩍.”
갈 곳이라고는 자신이 일했던 인안나 신전밖에 없었다. 사제장이 돌아온 자신의 등을 따스하게 토닥였다. 이제 자신은 돈 잘 버는 우성 오메가이기 때문에 사제장은 좋은 친구 역할을 해줬다.
“돌아올 줄 알았다.”
그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다들 빚을 갚아도 결국 돌아오더구나. 돈맛을 한번 보면 절대 평범한 일상으로 못 돌아가지.”
사제장의 말은 틀렸다. 자신은 돈 때문이 아니라 돌아갈 곳이 없어서 그곳에 머무는 거였다.
자신은 손님들을 받으며 번 엄청난 화대로 보석들을 사서 치장하고, 허한 마음을 달랬다. 이곳에서 몸을 파는 오메가들은 다 그렇게 주변의 부러움을 사서 자기만족을 끌어내고, 가짜 행복을 누렸다. 그때의 자신은 어떻게든 자신이 있어야 하는 인안나 신전을 좋게 포장했다.
이곳에 있으면 검은 괴물이 안 보이니까. 이곳에 있으면 같이 놀아주는 오메가들이 있으니까.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으니까.
물론 그 이유들은 언제든지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와주면 단번에 부정할 것들이었다. 자신은 기다렸던 것 같다. 샤를이 자신을 찾으러 와주길.
그러나 샤를은 자신을 찾으러 오지 않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가 찾아왔다. 알렉세이 유르한. 유르한 제국의 1황자이자 S급 에스퍼였다.
문득 오래전, 디디가 자신에게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그가 자신을 위해 에스퍼를 찾아서 보내준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관념이 부족한 그 엘프라면 10년을 일주일쯤으로 여기고 이제야 약속을 지켰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자신은 알렉세이가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고 믿었다. 신났다. 어서 가자고 따라나서려는데, 알렉세이가 허리를 급히 숙이고 구토를 했다.
손님은 알렉세이를 알아보고 얼른 인사를 올린 뒤, 도망쳤다. 자신은 그냥 그가 속이 안 좋구나 싶었다. 알렉세이가 사제장의 멱살을 잡고 끌고 왔다.
“지금 상황을 설명해. 설마 저 오메가를 감금해서 성매매를 시킨 거라면, 이곳에 있는 모든 관계자들을 국법으로 엄하게 다스릴 것이다.”
“아이고, 말도 안 됩니다. 1황자 전하. 저 아이는 제 발로 찾아왔습니다. 절대 강요하거나 그런 거 없이 큰돈 벌자고 온 걸요.”
“네 말을 증명할 증거가 있나?”
“예, 당연히 있고 말고요. 가게 출입구에 손님들과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영상 기록 마도구를 설치해뒀습니다.”
알렉세이가 사제장을 따라 나갔다. 자신은 그를 따라나서기 위해 얼른 구멍에서 흐르는 정액을 닦아내고 옷을 입었다.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거울을 보며 열심히 다른 오메가들처럼 얼굴에 하얀 분을 칠했다.
돌아온 그는 자신을 경멸하듯 노려봤다.
“역겨워.”
“….”
“내 가이드가 이딴 더러운 남창이었다니. 돈이 그렇게 좋아?”
“….”
자신에게 독설을 쏟아낸 그가 갑자기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눈물을 쏟아냈다. 자신은 왜 자신의 에스퍼가 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널 만나기만을 기대한 내가 바보 같아. 너무 불쌍해.”
알렉세이는 자기연민으로 오열하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 가버렸다. 자신은 그를 쫓아가기 위해 방에서 달려 나왔다.
“같이 가요. 나 1황자 전하의 가이드잖아요.”
우리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봤다. 자신들이 완벽한 짝임을. 그런데 알렉세이는 자신이 그의 짝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계속 울었다. 인안나 신전 앞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자신을 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마차를 타고 알렉세이와 황궁으로 가는 내내, 그는 자신 쪽을 쳐다보지 않고 울었다. 그런 주제에 자신의 닉스에 홀려서 손을 꼭 잡았다. 알렉세이는 그게 자존심 상한다는 듯 더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마차가 모래궁에 도착했다. 지금과 달리 모래궁에는 알렉세이를 돌보는 시종들과 기사들이 많았다. 황제와 황후의 사랑을 독차지한 진짜 호라이슨이 형을 몹시 아꼈기 때문이었다.
황후는 전처의 소생을 미워하지 않고 자기 아들의 바람대로 알렉세이를 풍족하게 지원해줬다. 진짜 호라이슨도 매일 모래궁을 찾아와서 형을 들여다보니, 자연히 궁인들이 알렉세이를 정성스럽게 보필하고, 궁은 화려하게 관리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1황자의 가이드 자격을 얻기 위해 마탑에서 등급 측정을 하고, 매칭 검사를 했다. 자신은 S급 가이드였고, 우리의 매칭률은 82%였다.
오랫동안 페어를 맺은 에스퍼와 가이드 사이에서나 나올 수 있는 수치였다. 결과를 받아든 알렉세이가 울면서 짜증을 부리고 검사실을 나가버렸다. 용납할 수 없단다.
알렉세이 대신 매칭률 검사를 지휘한 3서클 마법사가 검사실로 들어왔다. 마법사는 앞으로 자신이 1황자의 매칭 가이드이니,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고 했다.
자신은 알겠다고 답했다. 자신을 깔보는 시선으로 그가 다시 말했다.
“아인 백작, 이때까지처럼 다른 사람이랑 난잡하게 섹스하면 안 됩니다. 아시겠어요?”
“….”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인데, 마법사는 마치 자신의 전부를 알고 있는 양 굴었다. 화가 났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저 마법사가 말한 것 중 틀린 말이 없어서 대꾸할 수 없었다.
혼자 모래궁으로 돌아왔다. 1황자가 없는 궁에서 시종들이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대놓고 뒷담화를 늘어놨다.
“그 아인 페르디안이잖아. 난 쟤 보면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악할 수 있다는 거 알았잖아. 진짜 엄청난 오메가야.”
“우리 1황자 전하, 불쌍해서 어째. 그렇게 가이드 만날 거라고 기대하셨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렉세이가 자신을 만나길 무척 기다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만난 자기 가이드가 별로여서 엄청 실망한 것이리라.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복도를 걸어갔다.
시종들은 자신보고 들으라는 듯 크게 이야기했다.
“야, 그 사건 기억나? 아인 페르디안이 10살 때, 생일 선물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깽판을 쳐서 레이나 백작 부인이 외출했다가 그날 강도에게 죽었다?”
“오. 맞다. 맞아. 기억난다. 그 일만 아니었어도 유르한의 꽃이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실 일은 없었을 텐데….”
“에휴, 말해 뭐 해. 어릴 땐 자기 아버지에게 누명 씌워서 전 재산을 빼앗아 놓고, 커서는 돈 벌겠다며 인안나 신전에서 몸 팔았잖아.”
“근데 외국에서 꽤 유명한 무용수라고 하지 않았어? 뭐가 아쉬워서 몸을 팔았을까. 혹시 납치당해서 끌려간 거 아니야?”
자신을 걱정하는 소리에 어깨가 움찔했다.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 시종을 돌아봤다. 옆에 있던 시종이 그런 소리 말라는 듯 학을 뗐다.
“영상 기록 마도구에 저 새끼가 혼자 걸어와서 하겠다고 한 게 다 찍혔대. 마법사가 조작 흔적 찾았는데 전혀 안 나왔다네?”
“야, 영상 기록 마도구면 음성은 녹음 안 되는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명색이 백작인데 설마 그랬으려고? 평민이면 이해한다.”
“아, 내 말이 맞다니까. 우성 오메가이니까 오죽 알파 좆이 좋겠어? 오메가들 다 재미도 보고, 돈도 벌려고 거기 기어들어 간다니까!”
시종들이 자신을 쳐다봤다. 죄지은 것도 없지만 빨리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뒤에서 비웃음 소리가 났다.
“정말인가 보네. 찔리는 게 있으니까 저러고 다니지. 키키키키.”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아무 방에 들어갔다. 아무도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식사를 챙겨주지 않았다. 배고픈 자신은 방에서 나와 알렉세이를 찾아다녔다.
그가 은발 머리 오메가와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진짜 호라이슨이었다.
“훌쩍. 진짜 내가 얼마나 기대했는데. 흑. 왜 하필 내 가이드가 그런 존재인 걸까. 너무 속상해. 훌쩍.”
“형, 무언가 오해가 있을지 몰라요. 형 가이드분이랑 이야기해 보면 안 될까요?”
알렉세이가 호라이슨의 말에 버럭 화냈다.
“내가 영상 기록 마도구로 직접 확인했어. 아무런 조작 따위 없었다고!”
진짜 호라이슨은 우는 알렉세이를 달래기 위해 그의 등을 끌어안고 토닥였다.
“영상 기록 마도구는 소리를 저장하지 못하잖아요. 아무리 강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전에 무슨 상황이 있었을 수도 있고, 말로 협박당해서 자발적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거예요. 제가 봤을 때, 아인 백작은 전혀 문란한 오메가가 아니에요.”
동생이 형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호라이슨이 오히려 알렉세이보다 형 같았다. 알렉세이가 콧물을 들이마시며 물었다.
“정말 그런 걸까?”
“네. 그럼요.”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자신은 몰래 자리를 빠져나갔다. 알렉세이가 자신에게 어떻게 인안나 신전에 들어가게 되었냐고 물으면,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비극을 털어놓겠노라 마음먹고 속으로 끊임없이 말하는 연습을 했다.
그러나 자신을 찾아온 알렉세이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냐며 질문하지 않았다. 왜 동생과 이야기하는데 쥐새끼처럼 엿들었냐며 화를 내고 가버렸다.
그는 S급 에스퍼였기에 아무리 작은 발소리와 숨소리여도 들을 수 있었던 거다. 자신은 그렇게 자발적으로 몸을 판 남창이 되었다.
5권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