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ill the lights-7화 (7/29)

07

“…….”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메이슨은 힐끗, 눈치를 살피듯 노아를 쳐다봤다. 그는 약간 나른한 얼굴로 머리칼을 쓸어 올리고 있었다. 그의 녹색 눈이 살짝 멍해 있었다.

‘이런데서 사람 죽이면 안돼요.’

그렇게 말했을 때 메이슨은 약간 복잡한 기분이었다. 노아는 총을 겨눈 채 숨을 삼키고 있었는데, 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총구가 떨리고 있었다. 그의 예쁜 눈이 번들거렸다. 하얀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렸고, 메이슨은 이건 협박이 아니라 진짜 쏘겠구나 생각했다. 무슨 말이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장소를 생각하라고 지껄이자 노아의 얼굴이 곧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대단히 무서운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굳은 얼굴에 메이슨은 곧 주절대며 변명했다.

‘아니, 여기 벽이 얇거든요. 아까 총소리, 옆집에서 이미 다 들었을 거고, 저기, 당신은 유명인이니까…, 여기 들어오는 거 누군가 봤을 지도 모르고…….’

그, 그러니까 살려주시면 안 될까요. 메이슨은 비굴한 투로 말했다. 다시 한 번 물어봐 주면 뭐든 말할 것처럼 굽실대는 얼굴로 쳐다보자 노아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상대를 확인하듯이 여러 번 눈을 깜빡였다.

‘아…….’

아. 아아…. 그럴 리가 없지…. ―중얼거린 그의 얼굴은 왠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메이슨은 힐끗 발밑을 쳐다봤다. 어깨를 누르던 힘이 살짝 풀려 있었고 계속해서 꼼지락거리던 발끝에 드디어 콜트가 걸려들었다.

메이슨은 힘을 쭉 풀고 누워 있다가 단번에 사력을 다해 그를 밀쳤다. 탕! 순간 노아가 쥔 글록에서 튀어나온 총알이 천장을 뚫었다.

우와, 시발. 역시 진짜 쏠 셈이었네. 메이슨은 부르르 떨며 바닥에 떠밀린 그의 옆에 굴러다니던 콜트를 주워 철컥, 그의 관자놀이를 겨눴다.

총을 든 채로 메이슨은 숨을 몰아쉬었다. 체력이 후져서 잠깐만 움직여도 힘이 부쳤다. 노아는 비스듬히 앉아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은 무심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 보고 있었다.

‘그 총 내려놓으시죠.’

메이슨이 툭툭, 관자놀이를 건드리며 말했지만 노아는 별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저기요? 저 쏠 수 있거든요?’

내 말 안 들립니까? 메이슨이 재차 묻자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는 삐딱하게 고개를 들고 무심한 눈으로 힐끗, 메이슨을 보며 말했다.

‘그냥 쏘지 그래요?’

‘……. ……예?’

뭐라구요……? 메이슨은 멍청하게 되물었고 노아는 피곤하다는 듯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뭐라고 작게 중얼거리는데, 짜증나게 다시 묻고 지랄, 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레, 레이칼튼 씨?’

메이슨이 조금 당황해 부르자 노아는 툭, 총을 던지며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귀찮고 피곤하고 짜증난다는 얼굴로 일어난 그는 물었다.

‘안 쏴요?’

‘…….’

안 쏘냐니. 메이슨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원래 안 쏠 생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안 쏩니다’ 하고 말하기도 뭣했다. 노아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더니 바닥에 떨어진 유리조각들 사이에서 사진을 주워들었다. 그는 조금 귀찮고 나른한 투로 물었다.

‘하나만 묻죠. ……확인은 해야 하니까. ―메이슨이 죽었나요?’

……아니면 살아 있나요? 당신은 아는 것 같은데. ―노아의 말에 메이슨은 입술을 달싹였다. 대체 왜 당신이 그런 걸 묻냐고, 왜 그런 표정으로 자신의 생사를 묻고 있냐는 물음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확인 사살을 기다리는 것 같은 눈에 메이슨은 마른침을 삼켰다.

메이슨이 해야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고 그건 대체로 부정적인 대답들이었다. 나도 모르겠다. 당신이 알바가 아니다. 혹은 죽었다고 생각할 만한 연락을 받았다. ―뭐가 됐든 ‘살아있다’ 는 아니었다. 그런 대답은 할 수 없었다. 사실도 아니거니와 어쩌면 헤일리로서의 인생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메이슨의 행방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라니, 그를 추적하고 있는 Zii가 침을 뚝뚝 흘릴 일이었다.

그러니까 할 말들은 대체로 정해져 있는데 메이슨은 말을 못하고 입술을 우물거렸다.

‘아, 뭐……, 됐어요. 알 것 같네요.’

노아는 메이슨의 곤란한 표정에 말을 잘랐다. 그래 그럴 것 같았지. 그렇게 중얼거린 노아는 잠깐 힐끗 창밖을 쳐다보더니 사진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별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침실을 빠져나가 집을 나갔다.

메이슨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사진과 짐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물건을 다 챙기고 가방을 잠군 뒤 허리를 편 메이슨은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을 잠깐 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

진짜 이 집에는 무슨 볼 일이었을까. 분명 이 집이 메이슨, 그의 집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온 것 같았다. 용건이 뭐였을까.

그리고 그 묘한 시선과 표정들은 뭐였을까.

이것저것 제법 많은 것들이 궁금했는데 그 남자, 헤일리의 모습을 한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

찝찝하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는 없으니 쿨하게 잊는 수밖에 없는데 자꾸 그 생기 없던 눈이 잔상처럼 남았다.

하여간 은근히 눈에 밟히는 도련님이라니까……. 오지랖이라곤 약에 쓸래도 별로 없는 자신인데 저 남자에게는 간간히 마음이 쓰였다.

십 년 전에도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은데―. 메이슨은 인상 깊었던 그 때를 떠올리며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집을 나섰다.

복도를 돌아 엘리베이터로 가는데 빨간 엘리베이터 문 앞에 큰 남자가 서 있었다. 한참 전에 나간 노아였다.

‘……?’

고장이라도 났나 했는데 엘리베이터는 이미 7층에 멈춰 있었다. 타거나 내린 사람이 없어 내내 멈춘듯했다. 왜 안타지?

‘안탑니까?’

버튼을 누르며 묻자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메이슨을 확인했다. 그는 아는 척은 커녕 고개를 돌려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를 보더니 별 말도 없이 안으로 올라탔다.

‘…….’

메이슨은 버튼도 안 누르고 엘리베이터 한 구석에 서있는 남자를 좀 보다가 안으로 들어섰다. 1층을 누르고 서서 엘리베이터가 느리게 한 층 한 층 내려가는 것을 보다가 힐끔, 눈을 굴렸다.

“…….”

노아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작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왜인지 좀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저렇게 맹하게 다니면 좀 위험하지 않나. 원래 저런 타입이 아닌 것 같은데 왜 저러지. 남자를 힐끔거리며 메이슨은 눈치를 살폈다. 아래 비서나 보디가드가 와 있다면 괜찮겠지만 혼자라면……, 아니 괜한 참견인가. 메이슨이 그런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쿵――.

갑자기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불이 나갔다. 피시식. 에어컨도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또 지랄이네. 메이슨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도 툭하면 멈추던 엘리베이터의 새삼스러운 오작동에 한숨을 내쉬었다. 1년에 20일도 안 들어오는 집인데 그 중 한두 번씩은 꼭 이런 일이 있었다.

메이슨은 무심코 주머니를 뒤지다 휴대폰도 라이터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몸으로 담배를 피웠다간 숨 쉬다 죽을 것 같아서 다시 태어난 김에 끊어보자 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그게 살짝 후회가 됐다. 아, 얄팍해라. 메이슨은 혀를 차며 노아 쪽을 쳐다봤다. 어둠에 눈이 익지 않아 거기 있을 거라는 건 알겠는데 보이질 않았다.

“저기, 휴대폰이나 라이터 같은 거 없어요?”

담배 따위는 안 피울 것 같긴 한데. 있으면 뭐라도 좀 켜보라는 말에 노아는 대답이 없었다.

“……. …….”

얼굴이 보일 때는 그래도, 대체로 갖잖다는 표정을 해서 그렇지 말이 들리긴 하는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캄캄한데서 씹히니 벽보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메이슨은 입맛을 다시며 벽을 더듬거려 버튼 쪽으로 다가갔다. 이 부근에 있었는데……. 손을 더듬어 툭 튀어나온 동그란 버튼을 누르자 또르륵―, 연결음이 들렸다.

“―….”

관리인 조던이 자리를 비웠는지 연락을 받는 사람이 없었다. 슬슬 저녁시간이기는 하지. 메이슨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벽을 더듬어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와 철퍼덕, 바닥에 앉았다. 묵묵히 바닥에 앉아있자 슬슬 어둠에 눈이 익기 시작했다. 노아 쪽을 쳐다본 메이슨은 참견할까 말까 하다가 말했다.

“……얼마나 있어야 되는지 모르는데…, 좀 앉지 그래요.”

조던은 진짜 믿을 수 없을 만큼 밥을 오래 먹는 남자였다. 먹으러 간 지 얼마 안됐다면 최대 한, 두 시간은 이 안에서 기다려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메이슨이 친절을 베풀어 한 말은 이번에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

메이슨은 ‘그래. 네 다리가 아프지 내 다리가 아프냐.’ 생각하며 심드렁히 뺨을 긁었다. 아까 맞은 데가 자꾸 따끔거리고 간지러웠다. 헤일리는 피부도 연약한 모양이구나. 대체 얘는 왜 남자일까. 아니, 물론 이 몸이 여자였다면 자신도 곤란하긴 했겠지만……. 메이슨은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며 시간을 때우다 문득 오른쪽, 노아가 선 곳에서 들리는 숨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

언제부터 그런 소리가 들렸는지는 모르겠는데 노아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메이슨은 주춤거리며 일어났다. 노아가 약간 몸을 숙인 채 양손으로 가슴께를 부여잡고 있었다.

“……레이칼튼 씨?”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지만 메이슨은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둠 속에서 눈이 익긴 했지만 그래도 잘 보이진 않았다. 가까이. 코앞까지 다가가자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눈은 커다랗게 떠져 있었다.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초점은 완전히 나가 있었다. 이마와 뺨, 목덜미는 비라도 맞은 것처럼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헐떡거리는 숨은 곧 비명이라도 지를 듯 가팔라지고 있었다.

“노아?”

메이슨이 놀라 그를 불렀다. 평소라면 이름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 않냐는 얼굴을 할 그 남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메이슨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흐,”

사실 노아는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부터 제정신은 아니었다.

메이슨이 죽었다. 새삼스럽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의 집에서 나오자 약간 뭔가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헤일리에게서 메이슨의 기시감을 느꼈던 노아는 자신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것을 떠올렸나 깨닫자마자 ‘정말로 메이슨이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자 헤일리와 메이슨이 무슨 사인지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고 모든 일이 귀찮고 허무해졌다. 아무렴 어떻단 말인가. 메이슨이 죽었는데. 사진이고 뭐고 그의 유품이라도 챙기는 거겠지. 도둑질이면 또 어떤가.

집을 나와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으면서도 머리는 분명 이성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에게 매달려 있을 수는 없고, 그가 아프간이니 예멘이니 하는 거지같은 곳에 갈 때마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어느 정도 각오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별 일 아니라고, 이렇게 된 김에 홀가분히 살자고, 그런 생각들이 이성적으로 떠올랐다. 괜찮아. 괜찮잖아.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 노아는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계속해 되뇌다보면 정말로 괜찮을 것 같았다. 몸이 깊은 바다에라도 빠진 것처럼 계속해서 무겁게 침잠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불이 꺼지자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다시 7살 때의 여행 가방 안에 처넣어진 것 같았다. 숨이 막혔고 덥고 춥고 미칠 것 같았다. 온몸이 벌벌 떨렸고 식은땀이 쏟아지며 숨이 가팠다.

누군가 여기서 구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메이슨이 죽었다. 이제는 아무도 자신을 그 여행가방 안에서 꺼내주지 않는다. 영원히 그 가방 안에서 나가지 못한다. 자신의 유일한 구원자가 죽었다는 것에 노아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입에 바느질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목이 조이고 숨이 막히고 아프고 괴롭고 미칠 것 같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자신을 구하지 않았다.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다.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 것이다. 계속. 계속. 자신이 죽을 때까지.

노아는 터질 것처럼 휘몰아치는 공포와 고통에 깊게 숨을 삼켰다. 정신이 아득하게 흐려졌고 그 순간이었다.

“――,”

훅, 약간의 바람이 불어왔고 노아는 자신을 보고 있는 한 쌍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짝!

눈앞이 번쩍했다. 짝! 짝! 짝! 타격음이 연달아 들렸다. 헤일리가 무뚝뚝한 얼굴을 코앞에 들이민 채, 양 손으로 자신의 양 뺨을 쉴 새 없이 때리고 있었다.

“――. …―정신, 들었, ―야……,”

노아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말했다. 눈앞이 계속 번쩍번쩍 했다. 헤일리는 노아가 정신을 차렸다는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계속해 양 뺨을 짝짝 후려쳤다. 마치 아까 집안에서 맞은 것에 복수라도 하듯이.

“괜찮아요? 응? 아니, 아직 안 괜찮은 것 같은데?”

메이슨은 살짝 초점이 돌아온 노아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면서도 모른 척 그의 뺨을 후려쳤다. 이 씨발―, 중얼거린 노아가 얼어서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억지로 들어 그의 손을 거칠게 떼어냈다.

“아―. 이제 진짜 괜찮은가 보네요.”

억지로 손이 떼어진 메이슨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손을 들어보였다. 노아는 이 새끼가 지금 장난치나, 하는 얼굴로 노려봤지만 메이슨은 되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왜요? 아니, 저도 얼마나 놀랐다구요. 갑자기 막 가슴을 부여잡더니, 헐떡헐떡 하셔서. 엎고 나갈 수도 없고, 정신 차리게 하려다보니 저도 모르게. ―뭐, 천식 같은 거 있으신 거 아니죠?”

실제로는 때리다보니 약간의 사심이 섞여 몇 대 더 손찌검을 했던 메이슨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며 시치미를 뗐다. 노아는 속셈이 빤했지만 그걸 따질 형편은 아닌지 핏기가 어린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좁고 어두운 데에 가벼운 두려움이 있는 것뿐이에요.”

“그래요? 별로 가벼워 보이지 않던데.”

폐소공포증, 뭐 이런 건가? 메이슨이 일부러 무신경한 척 말하자 노아는 미간을 구기며 그를 노려봤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하는 눈이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 필요한 건 세심한 비전문가가 아니라 무심한 병신이었기 때문에 메이슨은 모른 척 슬쩍 물었다.

“약 없어요?”

“……. 먹던 약을 바꾸려고 하다가…….”

“자낙스? 이젠 안 먹나봐요?”

“…….”

그는 이번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랑 내가 왜 쓸데없는 말을 주워 삼키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앞에 말들도 정신이 없는 와중이라 튀어나온 말이었던 듯 그는 살짝 미간을 구기고 입술을 깨물었다.

메이슨은 뺨을 긁적였다. 표정은 좀 나아졌고 양 뺨도 빨갛게 부어 생기는 좀 돌아왔지만 그는 여전히 정상은 아니었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해도 아까 그 숨넘어갈 때에 비한 거고 아직도 숨은 거칠었고 식은땀도 흘리고 있었다.

“……손이라도 잡아줄까요?”

약도 없고 언제 나가게 될지 알 수도 없었다. 싫어할 것 같긴 했지만 메이슨은 툭, 던지듯이 물었고 노아는 별 미친 소리를 다 듣는다는 듯이 쳐다봤다.

“……손이라도 잡아줄까요?”

약도 없고 언제 나가게 될지 알 수도 없었다. 싫어할 것 같긴 했지만 메이슨은 툭, 던지듯이 물었고 노아는 별 미친 소리를 다 듣는다는 듯이 쳐다봤다.

“뭐라도 잡고 있으면 덜 무섭잖아요.”

“그건 상대가 의지가 되는 경우의 이야기죠.”

너 따위에게 의지? 노아는 짜증나니 말 시키지 말라는 듯 고개를 돌렸고 메이슨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저도 뭐…, 솔직히 다짜고짜 뺨 때리고 총질까지 하는 분에게 좋아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뺨은, …―아니, 됐어요. 서로 좋을 것도 없으니 말 시키지 마시죠?”

뺨은 너도 때리지 않았냐고 따질 것처럼 입을 열었던 노아는 곧 말 섞기도 싫다는 투로 쏘았다. 메이슨은 노아의 통통하게 부은 뺨을 보다 시선을 내려 축축이 젖어 땀이 떨어지는 목덜미를 쳐다봤다. 어깨는 잘게 떨렸고 팔이며 목이며 잔뜩 움츠린 채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메이슨은 입매를 문질렀다. 신경 쓰지 말라는데 무슨 잘난 오지랖이 났다고 신경을 쓰나. 모른 척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돌렸다.

“…….”

“…….”

“……. …….”

그리고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메이슨은 힐끗, 노아를 쳐다봤다. 사실 내내 아닌 척 훔쳐보고 있기는 했었다. 잠깐 뺨을 맞아 그나마 정신을 차렸던 노아는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지는지 숨을 헐떡이며 엘리베이터 벽에 한쪽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어두운 상황에서도 그의 얼굴이 창백한지, 그가 얼마나 위태롭게 버티고 서있는지 그대로 보였다.

“…….”

머리를 한참 긁적거린 메이슨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다가가 가만히 그의 어깨를 껴안았다. 노아가 작게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잠깐만요.”

메이슨은 노아가 뭐라고 입 열기 전에 재빨리 말했다.

“저도 그쪽 싫고 레이칼튼 씨도 저 싫어하는 거 알아요. 아는데, 그냥 전쟁터에서 사람 구조하는 그런 거라고, 아니, 여하간. 밖에 나가서 아는 척 안할 테니까 그냥 바디필로우다 생각하고 조금만 참아요.”

진짜 당신, 죽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며 메이슨은 노아가 뿌리치지 못하도록 그의 어깨를 좀 더 힘껏 껴안았다. 노아는 싫은 것처럼 몸을 세우려고 했지만 그럴 힘도 없는지 곧 씨발…, 중얼거리며 몸을 기댔다.

“……나가면 성추행으로 고소할 겁니다.”

노아가 숨을 몰아쉬며 품 안에서 말했고 메이슨은 픽 웃었다.

“살아서 나갈 생각이긴 한가봅니다?”

“누가 엘리베이터 따위에 갇혀서 죽죠?”

“…….”

품에 안겨 금세라도 죽을 것처럼 와들와들 떨고 있는 주제에 말을 잘했다. 메이슨은 어깨에 닿는 흠뻑 젖은 머리카락이나 차가운 목덜미, 잔떨림이 멎지 않는 그의 어깨를 느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품에 껴안고 있으니 꼭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때의 노아는 이런 일이 제법 잦았다. 평소에는 멀쩡해 보이다가도 종종 넋을 놓거나 침잠하는가 하면,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나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공포에 질려 후들거리는 눈으로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침대맡에서 졸고 있던 보디가드, 메이슨과 눈이 마주치면 그때야 안심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메이슨은 가끔, 좀 오버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렵게 잠든 그를 지켜보다 종종,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곤 했었다. 그래 봐야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 그거. 머리칼, ……하지 마요.”

품에서 들린 잠긴 목소리에 메이슨은 고개를 들었다. 노아가 눈을 감은 채 숨을 몰아쉬며 미간을 구기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노아의 젖은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었던 메이슨은 “……기분 나쁩니까?”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는 이렇게 해주면 좀 더 잘 잤던 것 같은데―.

메이슨의 물음에 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싫지만 말할 힘이 없는 건지 싫지 않다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메이슨은 조금 더 천천히 머리카락을 만졌다. 노아가 작게 한숨을 쉬는 것이 들렸다.

“……저기요, 레이칼튼 씨.”

한참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놀던 메이슨은 문득 그를 불렀다. 노아는 대꾸를 하거나 고개를 들지는 않았지만 메이슨은 이어 물었다.

“근데 진짜 왜 온 거예요?”

집은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그리고 왜 찾아왔는지,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가 그에게 왜 중요한지, 그런 게 궁금했다.

사실은 어차피 헤일리의 몸으로 살고 있으니 이런 궁금증 따위는 그냥 잊는 게 나았다. 상대에게 이런 거 저런 거, 물을 필요도 없이 이곳을 빠져나가 은행 개인 금고 속 돈을 찾고 나면 메이슨으로서의 인생과는 단절이었다.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것도 분명 있었지만 착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은 죽었다. 머리가 날아가 완전히 절명했고 그로써 그 인생은 끝났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환생도 아니고 이렇게 동시대에 삶을 연장해, 금고라도 챙길 수 있는 건 굉장한 행운이었다.

메이슨은 그 점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때문에 아무리 희한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상대가 노아만 아니었다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을지도 몰랐다.

“혹시…, 메이슨에게 볼일이라도 있으세요?”

하지만 노아는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나 눈에 밟혔다. 함께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된 것에 대단한 운명 같은 걸 느끼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이 남자의 약한 모습을 유독 자주 보게 되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노아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다. ―10년 전 이야기는 아니었다.

메이슨이 노아를 처음 본 건 이 남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냄새나고 허름한 여자화장실이었다. 그때 메이슨은 슬럼가 옆이 아니라 슬럼가에 살고 있었다. 히스패닉계가 많은 거리였는데 웬 백인 여자가 희한한 표정으로 커다란 가방을 끌고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라면 누가 짐을 이고 가든 지고 가든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좀 특이했다. 맛이 간 것 같은 표정은 물론, 지나가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며 걸음을 빨리하거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메이슨이 그녀를 따라간 건 순전히 변덕이었다. 그날따라 무료했고 다음 알바까진 시간이 텅 비어 있었다. 너무 멀리까지 간다면 그냥 신경 꺼야지,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녀는 가까운 건물의 화장실로 들어갔다. 허름하고 썩는 내가 나는 그 화장실은 얼마 전 드랙퀸 두 명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은 이후엔 건물 주인이 늘 잠가두고 감시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드물어진 참이었다.

화장실 안에선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들어갈까 말까. 화장실 밖에서 메이슨은 잠깐 고민했다. 칼 든 사람은 여자든 노인이든 위험했고 말려드는 것도 사양이었다. 하지만――,

‘에휴.’

조금 전 뒤를 따르다 들은 작은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가방 안쪽을 힘없이 갉작대던 그 소리. 그걸 들은 것은 자신뿐인 것 같았고 그걸 무시했다간 오늘 밤에 꿈자리가 영 사나울 것 같았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세 칸의 개인 칸 중 가장 안쪽의 칸이 잠겨 있었다. 메이슨은 주저하지 않고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사람 있어요.’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에서 태연한 목소리가 들렸다. 모르고 들었다면 착각인가보다 하고 넘어갈 듯한 자연스러운 목소리였다. 우와. 이 여자 굉장한데. 메이슨은 피식 웃으며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녀가 쿵쿵, 마주 노크를 하며 ‘사람 있다니까요.’ 하고 말했다. 목소리 끝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메이슨은 잠시 고민하다가 옆 칸으로 들어갔다. 좌변기 위로 올라간 메이슨은 빠끔 고개를 내밀었다.

땀에 흠뻑 젖은 여자가 가방을 가리며 메이슨을 쳐다봤고 메이슨은 낮게 혀를 찼다. 아닌 척하려면 들고 있는 칼부터 가려야지 이 언니야.

‘여기서 사람 죽이면 안 되거든요?’

메이슨이 힐끗 말하며 칼과 가방을 쳐다봤다. 가방 안, 작은 틈으로 무언가가 흔들렸다. 울망울망한 아이의 눈과 눈이 마주쳤다면 착각일까.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칼을 휘둘렀고 메이슨은 웃차, 하고 손을 뺐다. 그녀는 메이슨이 있는 옆 칸 문을 덜컹거리다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았는지 우왕좌왕하다 곧 황급히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완전히 아마추어시구만.’

목격자까지 죽이든가 아니면 시도도 말아야지. 중얼거린 메이슨은 그러나 그녀를 쫓지 않았다. 대신 좌변기에서 훌쩍 뛰어 개인 칸을 나와 그녀가 있던 칸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여행 가방 하나가 덜렁 변기 옆에 세워져 있었다.

메이슨은 살짝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런 걸 뭐라고 하지. 두려움? 설렘? 무언지는 알 수 없지만 메이슨은 묘한 기분으로 천천히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

가방이 반쯤 열렸을 때, 메이슨은 탄성이 나려는 것을 참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열린 가방 안에서는 어리고 예쁜 남자애가 와들와들 떨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섯 살? 아니, 일곱 살쯤 됐을까. 아이의 새하얀 백금발은 땀과 약간의 피로 젖어 있었고 얼굴은 맞았는지 이리저리 부어 엉망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슨이 살면서 본 사람 중에 가장 예뻤다.

예뻐서 훔쳐왔나?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멍청한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는 반짝반짝 예뻤다. 아이의 운동화 브랜드가 구찌만 아니었더라도 메이슨은 그가 떨어진 천사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을지도 몰랐다.

메이슨은 아이의 입에 붙은 녹색 테이프를 조심히 떼어냈다. 그 안에 물린 작은 헝겊조각을 빼내자 아이가 숨을 내쉬며 혀를 뺐다.

‘……. ……,’

‘괜찮아?’

메이슨은 쓸데없는 걸 물었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전혀 괜찮은 얼굴이 아니었다. 메이슨은, 탈진해서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듯 할딱거리며 숨을 뱉는 아이를 가방에서 꺼내 묶인 팔다리를 풀어주고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감쌌다.

아이가 안아달라는 듯이 후들거리는 팔을 뻗어왔고 메이슨은 조금 망설이다 아이를 껴안았다. 아이 특유의 젖내와 짭짜름한 눈물의 향이 났다. 뜨겁고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아이를 안고 메이슨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사람을 구했기 때문일까. 메이슨은 괜히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이제 괜찮아.’ 하고 말했다.

‘이제 괜찮아. …다 괜찮아.’

메이슨이 도닥이며 어설프게 중얼거리자 아이는 숨을 헐떡이며 매달려왔다. 정신이 없는지 제대로 힘도 주지 못하면서 매달리는 아이를 안고 메이슨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이를 내려놨다. 병원은 걸어서 가기엔 너무 멀었고 일단 공중전화에 가서 구급차나 경찰을 부르고 돌아오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놓고 ‘잠깐만 있어. 사람 불러올게.’ 하고 말하며 일어난 메이슨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 마….’

나 두고 가지 마요. 아이가 잔뜩 쉬어 거칠어진 목소리로 매달렸기 때문이었다. 필사적으로 바지 자락을 쥐고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우는 것에 메이슨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멈춰 서서 다시 아이를 안아주었다. 아이의 몸은 무서울 정도로 뜨거웠고 금세라도 죽을 것처럼 후들대서 빨리 병원에 연락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두고 다녀올 수가 없었다. 내려놓으면 이대로 죽어버릴 것 같아서 매달리는 것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잃어버리다니. 엄마 마음은 대체 어떨까. 메이슨은 고아라 모성애 따위는 믿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 예쁜 아이를 잃어버렸다면 모성애랑은 상관없이 누구라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일 것 같았다. 애 따위에게 명품 신발이라니, 세상에 그런 돈 지랄을 하는 사람들이 다 있단 말이야? 그 돈 나나 주지. 하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그도 아이의 발에 신겨진 신발은 참 예쁘고 잘 어울려서 비싼 값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

품에 안긴 아이는 탈진했는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곧 잠들었다. 새근새근 숨을 쉬며 잠든 아이를 바닥에 두고 메이슨은 조심히 일어났다.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공중전화까지 아이를 업고 뛸 수는 없었다. 멀고, 뛰면 흔들릴 테고 그 사이 상태가 안 좋아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금방 올게.’

조금 망설인 메이슨은 일어나 말하고 공중전화까지 뛰었다. 제법 긴 거리였는데 전력으로 달려서 신고를 하고 그 건물 앞으로 돌아온 것은 채 3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3분.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의 손을 다시 잡아줄 수는 없었다. 어느새 도주한 납치범까지 체포한 경찰이 주변을 에워싸고 아이를 구출해 구급차에 실은 뒤였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이름이 ‘노아’ 라는 것은 한참 뒤에 알았다. 세상은 한동안 그 유괴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당시엔 메이슨도 관심을 가지고 신문 두어 장을 사보았지만 아이, 노아가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지만 충격이 컸는지 사고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는 기사를 본 뒤로는 적당히 관심을 끊었다.

그런 끔찍한 기억이라면 잊는 게 낫지. 다행이네. 잘살았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며.

그리고는 쭉 접점이 없었다. 메이슨이 스물일곱. 노아가 열일곱 살이던 해에 한 달 정도 경호를 선 것이 그들 인연의 전부였다. 한 달하고 채 한 시간도 안 되었던 시간. 십 년하고 또 십 년, 이십 년의 세월 속에서도 그 시간들이 어렴풋이 생각날 만큼 메이슨도 그가 신경 쓰였다.

노아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긴 속눈썹이 천천히 올라가고 축축이 젖은 아름다운 눈이 드러나는 모습이 묘한 감흥을 일으켰다.

“―…되게 친근하게 부르네요.”

그 남자를. ―노아는 넌 대체 뭐냐는 듯 쳐다보다가 마른 입술을 달싹여 말했다.

“볼일이 있었으면 어쩌게요? 말이라도 전해줄 건가요?”

따지는 투는 아니었다. 그럴 힘도 없는지 하아, 낮게 숨을 몰아쉰 노아는 살짝 웃었다.

“어차피 죽었잖아요, 그 남자.”

“―….”

메이슨은 입을 다물었다. 노아는 그런 메이슨을 쳐다보다가 하하아, 한숨처럼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그의 양팔을 붙잡았다.

메이슨은 그에게 붙들린 채로 흠칫 놀라 그를 불렀다.

“……저, 레, 레이칼튼 씨…?”

“왜요.”

그가 덤덤한 투로 되물었고 메이슨은 마른침을 삼켰다.

“…….”

아니, 저기, 울고 계신 것 같은데……. 메이슨은 말을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노아는 그제야 제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깨달은 듯 “아…….” 하고 손을 들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터져 나온 듯, 손으로 떨어지는 눈물에 노아는 곤란한 얼굴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름다운 얼굴에 말간 눈물이 비현실적으로 툭툭 흘렀다. 메이슨은 그의 매끈한 뺨을 타고 턱으로 툭툭 떨어지는 눈물에 잠시 눈을 굴리다 손을 들어 그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괜찮아요?”

메이슨의 어설픈 질문에 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메이슨은 닦아도 계속해 떨어지는 눈물에 머리가 아주 복잡했다. 노아는 이대로 탈진이라도 할 것 같았다. 잔뜩 흘린 식은땀에 눈물까지, 농담처럼 엘리베이터 갇혀 죽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둥 했지만 이대로라면 그런 희대의 인물이 여기서 하나 나올 것 같았다.

품에서 멍한 얼굴로 툭툭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 노아는 오래전 좁은 화장실 칸에서 안겨오던 작고 약했던 아이와 겹쳐졌다.

“왜 그러시는 건진 모르겠지만…,”

메이슨은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노아가 무슨 이유로 여기 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해를 끼치려고 하거나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만 ‘정작 닥치면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헤일리가 나라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누가 하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차피 문제는 자신이 메이슨이라는 것을 알아볼 사람들이 아니라, ‘메이슨이 있는 곳을 알지?!’ 하고 헤일리로서의 평화를 깰 사람들이었다.

“……, 그러니까 메이슨이라면 아마 살아있는 것 같아요.”

우는 아이를 그치게 하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거짓말쯤 어떠랴. 노아는 눈물이 잔뜩 고인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멈칫했고 메이슨은 말을 추가했다.

“물론 이런저런 문제로, 메이슨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요.”

메이슨은 약간의 중의적인 표현을 담아 말했다. 이렇게 되면 심지어는 거짓말도 아니었다.

“……죽은 게…, 아니라고?”

노아는 눈을 깜빡이며 중얼거렸다. 눈꺼풀이 깜빡일 때마다 그림처럼 고여 있던 눈물이 떨어졌다.

“네. 그러니까 혹시 생사를 걱정하는 거라면…,”

메이슨은 말끝을 흐렸다. 혹시 생사를 걱정해서 운 게 아니라 그냥 타이밍 좋게 폐소공포증이 심해진 거라면 괜한 오지랖에 자신의 안부만 위험해지는 건데. 사실 이 남자가 자신의 생사를 걱정할 리는 없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던 타이밍이었다.

“――!”

메이슨은 훌쩍 뒤로 피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얌전히 눈물을 흘리며 맹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노아가 갑자기 휙, 메이슨을 붙잡을 것처럼 손을 뻗어왔기 때문이었다. 메이슨이 쳐다보자 그가 눈을 휘어 살짝 웃었다.

“……헤일리.”

늘 러스크 씨, 하고 딱딱하게 부르던 그가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왔다.

“당신, 메이슨이 있는 곳을 알아요? ―안다는 이야기 같은데….”

나에게 이야기해주지 않을래요? 노아는 보는 사람이 녹을 것처럼 달큼하게 미소 지으며 달래듯이 말했다. 눈가에 자국이 남은 눈물은 물론, 금세 애원이라도 할 것처럼 선량한 눈이었지만 메이슨은 이번엔 속지 않았다. 분명 조금 전에 다시 공격하려다 실패하자 멈칫한 얼굴이었다. 그가 피하지 않았다면 분명 다시 붙잡아 뺨부터 후려친 뒤 물었을 터였다.

“―그건 좀 곤란한데요.”

“왜요? 내가 그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그래요?”

노아는 별소리를 다한다는 듯이 웃었지만 메이슨은 대답 대신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불행히 좁은 엘리베이터는 피할 곳이 별로 없었다.

“내가 그에게 해코지할 리가 없죠. 나는 그냥…, 예? 헤일리? 나는 그냥… 그가 어디서 뭐 하는지만 알고 싶은 거니까…,”

아니, 이미 그에게 충분히 해코지하려고 하고 계신데요. 메이슨은 입안에서 달싹대는 말을 삼키며 바짝 엘리베이터 벽에 붙었다. 조금 전까지 폐소공포증이니 뭐니 하며 눈물까지 뚝뚝 흘리던 연약하고 가냘픈 남자는 사라지고 눈앞에 남은 건 위협적인 눈을 한 폭력적인 남자였다. ‘메이슨은 살아있습니다’, 는 아무래도 마법의 주문이었던 모양이었다.

노아는 메이슨의 양옆으로 손을 뻗어 가두며 바짝 다가와 물었다.

“……거짓말이었어요, 혹시?”

거짓말이었다고 할까. 메이슨은 짧게 고민했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나가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말했을 때 안 좋아질 노아의 상태는 둘째 치고 이제는 자신의 안위가 걱정됐다.

노아의 눈은 위험스럽게 번들거렸다. 아마도 눈물이 고였던 탓에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만 메이슨은 금세라도 날아올 것 같은 노아의 주먹을 살피며 “……거짓말은 아닙니다. 근데 당신, 폐소공포증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고 물었다.

“가벼운 두려움이 있는 것뿐이라고 했는데요.”

노아는 눈을 휘어 웃었다. 메이슨은 힐끗, 다시 그의 팔을 살폈다. 분명 얼핏 보면 약간의 두려움처럼 보일 정도로 훨씬 나아지긴 했는데…….

“글쎄 별로 안 가벼워 보인다니까요.”

잠깐 의아한 눈을 했던 노아는 “말 돌리긴.”하고 멱살을 쥐어 왔고 메이슨은 노아가 멱살을 조이기 전에 그의 품에 안기듯이 머리로 그의 가슴팍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그를 밀었다.

쿵! 노아가 벽에 부딪히며 엘리베이터가 크게 흔들렸다. 메이슨은 멀쩡한 척하는 그의 팔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던 것을 놓치지 않았다. 벽에 부딪힌 노아는 살짝 미간을 구겼고 메이슨은 그의 팔을 붙들었다. 아무리 헤일리가 부실해도 겁에 질려 벌벌 떠는 남자 하나 따위는 어떻게든―.

“윽!”

메이슨은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던 생각을 수정했다. 연약하고 부실한 헤일리의 팔 힘으로는 일곱 살 어린애도 못 막을 것 같았다. 노아가 가볍게 메이슨의 팔을 뿌리치며 주먹을 날렸고 메이슨은 어설프게 피하며 그의 팔에 매달렸다. 필사적으로 매달려도 팽개쳐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부실한 힘으로 싸운다는 게 이렇게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니. 노아는 자꾸 피하는 것이 짜증난다는 듯이 메이슨을 밀어붙였고 메이슨은 그를 잡아당기며 그대로 바닥으로 굴렀다. 그리곤 필사적으로 몸을 뒤집었다. 이 상황에서 노아에게 깔렸다간 벗어나기는커녕 양 뺨이 터지도록 맞는 결과뿐이었다.

그가 등으로 바닥에 떨어지며 쿵! 엘리베이터 문에 머리를 부딪쳤다. 메이슨은 그의 몸 위에 올라타 멱살을 쥐고 그대로 일어나지 못하도록 찍어 눌렀다. 그 짧은 사이 온몸이 식은땀에 젖었다.

“――!”

노아의 몸 위에서 메이슨은 휘청했다. 그가 턱, 긴 팔을 뻗어 엄청난 힘으로 목을 쥐어왔기 때문이었다. 헤일리의 가는 목은 남자의 손에 적절히 맞았던 모양으로, 순식간에 숨쉬기 어렵도록 조여졌다. 메이슨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의 팔꿈치께를 강하게 눌렀다.

“…―,”

그는 손에서 힘을 푸는 대신 가늘게 웃었고 메이슨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의 예쁜 눈이 정말로 위험하게 번들거렸다. 폐소공포증이고 뭐고 이 거치적대는 년을 죽여 버려야지, 그런 감정이 선명했다.

“잠깐, 노아, 레이칼튼 씨!”

메이슨이 온 힘을 다해 그를 누르며 제발 살려달라는 마음을 담아 애원하듯 불렀다. 싸움이라는 건 힘만으로 하는 건 아니었지만 한 번 붙잡힌 상황에서는 힘이 전부나 다름없었다. 그가 자신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메이슨의 양 손목을 잡았고 그 순간이었다.

쿵! 쿵! 뭔가가 엘리베이터를 두드리듯 두들겼고 휘잉,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메이슨은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끼이익,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컴컴한 엘리베이터 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레이칼튼 씨, 괜찮으십, ……―헤일리?”

열린 엘리베이터 문 앞에 노아의 비서 필과 관리인 플록이 썩는 것 같은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맙소사, 누군가 중얼거린 말에 메이슨은 멍청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떨궜다. 메이슨에게 깔린 채 바닥에 누워있는 노아가 묘한 눈으로 그를 보며 웃었다.

땀에 흠뻑 젖어 가련해 보이기까지 하는 남자의 위에 올라앉은 채로 메이슨은 작게 신음했다.

* * *

누가 봐도 범죄가 일어나려는 긴박한 현장처럼 보였을 터였다. 사실 메이슨 스스로도 내가 너무 심하게 때렸나 싶을 정도로 노아의 뺨은 손자국으로 부어 있었고 옷자락은 엉망으로 구겨져 있었다. 물론 메이슨 자신의 뺨도 붓고 입술이 터져 있었지만 땀구멍 하나 안 보이는 노아의 뽀얀 볼에 난 선명한 손자국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었다.

레이노아 폭행 및 추행 미수라니. 어쩌면 메이슨으로 살았을 때보다 더 한 헬게이트가 열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이놈이 날 폭행하고 추행하려 했다고 누명이라도 씌울 것처럼 묘하게 웃었던 노아는 다행히도 그렇게까지 헤일리가 미운 것은 아닌지 필의 손을 붙들고 일어나며 눈을 휘어 신사처럼 웃었다.

“이분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물론 좀 아프긴 했지만. 하고 장난스레 덧붙이는 그의 말에 메이슨은 “저도 좀 놀라서…. 힘이 과하게 들어갔나 봅니다.” 하고 미안한 척 말했다. 노아는 빙긋 웃었고 메이슨은 어깨를 으쓱했다.

필과 플록은 미심쩍은 얼굴을 했지만 장본인인 노아가 덤덤한 얼굴을 하자 메이슨을 노려보기만 할 뿐 다른 제스쳐를 취하진 않았다.

“…….”

메이슨은 제법 뻐근한 목을 문지르며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아무도 손대지 않을 주인 잃은 금고를 털어 유유자적 돌아가야지 하는 가벼운 계획으로 뉴욕에 왔는데 생각보다 훨씬 터프한 여정이었다. 물론 그가 거쳐 왔던 수많은 임무들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 같은 일이었지만 헤일리의 체력 탓일까. 유난히 피곤했다.

메이슨은 힐끗, 이 모든 피곤의 근원인 노아를 쳐다봤다. 확실히 폐소공포증이 문제긴 했는지 그는 훨씬 나아진 얼굴로 헝클어진 머리칼과 옷차림을 정돈하고 있었다. 메이슨은 그를 잠깐 쳐다보다 이내 가방을 추켜 매고 돌아섰다. 따로 인사는 필요 없겠지. 딱히 좋은 사이도 아닌데. 그리 생각하며 두어 걸음쯤 옮겼을 때 등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러스크 씨.”

돌아보자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던 노아가 쳐다보고 있다가 성큼성큼 걸어 다가왔다. 코앞에 우뚝 선 그는 특유의 나른한 투로 물었다.

“아까 한 이야기…, 거짓은 아니겠죠?”

‘메이슨이라면 아마 살아있는 것 같아요.’ 라고 했던 것 말인가?

“뭐, 거짓은 아니긴 한데…….”

메이슨은 그를 천천히 보았다. 역시 아까 그 눈물이 자신 때문이라는 건 착각인 것 같았다. 십 년 전에 한 달의 인연이 있었던 것에 무슨 눈물씩이나. Zii나 무기상 알타와 관련된 일이 아닐까 어렴풋이 그의 용건을 짐작할 뿐이었다.

“저도 별로 자세히 아는 건 아닙니다.”

메이슨의 대답에 노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어설프게 발 빼는 그를 비웃듯 본 그는 힐끗, 메이슨이 든 가방을 쳐다보며 “그래요. 아무래도 좋겠죠.” 하고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이 때린 메이슨의 뺨이며 살짝 부어 있는 목덜미를 천천히 쳐다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뭡니까.”

메이슨은 그가 내민 손을 보며 떫은 투로 물었다. 노아는 빙긋, 그린 것처럼 웃었다.

“오늘은 여러 가지로 고마웠어요. 생각보다…―, 심한 쓰레기는 아니었네요, 당신.”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했는데. 노아는 면전에서 널 쓰레기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하며 악수를 청했다. 메이슨은 노아의 하얗고 고운 손과 생글거리는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조금 늦은 타이밍에 그의 손을 잡았다.

“악수를 참 희한한 말로 권하시네요.”

“당신의 프러포즈만 할까요.”

노아는 ‘나 그 짓 잘해요’ 하며 달려들었던 헤일리의 고백 이야길 꺼내며 웃었다. 하긴. 메이슨도 ‘헤일리 어록’ 이라고 뜬 그 기사를 보다가 천년의 사랑도 식을 프러포즈라고 생각하긴 했었다.

가볍게 손을 흔들고 놓은 메이슨은 홀가분히 돌아섰다. 등 뒤에 서 있던 노아도 돌아서서 가는 것이 느껴졌다.

“…….”

메이슨은 힐끗, 잠깐 멈춰 서 노아를 쳐다봤다.

뭐, 잘 살겠지. 곧 연예인 일을 그만둘 테니 다음에 보는 건 다시 십 년이나 지난 뒤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저 남자와의 인연은 십 년이 주기인 모양이니.

“뭐, 물론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지만―…,”

우연이라는 게 그렇게 계속해 이어질 리가 없으니 물론 이게 마지막일 확률이 높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언제가 됐든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가 단단해져 있기를 바랐다. 아니면 그를 구해줄 만한 다른 누군가가 옆에 있거나.

메이슨은 훌쩍 어른이 된, 그러나 어딘지 안쓰러운 남자의 등을 잠시 쳐다보다 다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

등에 닿던 시선이 떨어진 것을 느낀 노아는 천천히 돌아 헤일리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그는 휘적휘적 홀가분한 투로 걷다가 생각난 듯 황급히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대충 뒤집어썼다. 야구 모자 아래로 드러난 하얀 목덜미엔 약간의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흠.”

노아는 가늘게 뜬 눈으로 차게 웃었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뺨도 그렇고…,”

필은 노아의 상처 난 뺨을 살피며 물었다. 필도 물론 노아가 그냥 순순히 맞고만 있을 상냥한 남자가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어둡고 좁은 곳은 특수상황이었다. 노아를 일곱 살 어린애로 만들어버리는 곳에서 헤일리는 노아를 때렸고, 문이 열렸을 때는 그를 깔고 앉아 있기까지 했다. 익히 알려진 헤일리의 그 추잡한 성정을 생각하면 노아를 강간하려 들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 내가 먼저 때렸어요.”

노아는 픽 웃으며 말했다. 필은 그렇다고 해도 원인 제공자는 헤일리가 아니겠는가 생각했지만 노아는 손사래를 쳤다.

“신경 쓰지 마요. 안 맞았다면 죽었을지도 모르니까.”

“――예?”

이해할 수 없는 발언에 필이 되물었지만 노아는 친절히 대답해주는 대신 한참 멀어진 헤일리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캄캄하고 좁은 엘리베이터 안은 일곱 살 때 갇혔던 그 작은 여행가방 같았다. 크기도 상황도 전혀 다르다는 이성적인 생각 같은 건 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목이 졸리고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았다. 유일하게 자신을 구원해 주었던 메이슨이 죽었다는 사실은 노아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고 노아는 극심한 공포에 완전히 미칠 지경이었다. 죽는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작은 바람이 불었다. 바로 코앞에 한 쌍의 눈이 다가와 있었다.

노아는 헤일리에게 뺨을 맞기 전에 이미 정신이 돌아왔었다.

“레이칼튼 씨?”

필이 헤일리가 떠난 방향을 묘한 얼굴로 쳐다보는 노아를 불렀다. 노아는 그를 쳐다보는 대신 말했다.

“메이슨이 살아 있다는군요.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Zii에 연락해 주세요.”

“메이슨이 말입니까?”

필이 화색을 띄며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했고 노아는 이어 말했다.

“Zii는 메이슨에게서 손을 떼도록 하고 그를 찾는 건 다른 곳에 의뢰해주세요. 그가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그를 찾아내더라도 보고 외에 어떠한 행동도 하지 말고 오직 그의 안전을 지키기만 하라고.”

“예.”

필은 Zii보다 더 은밀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몇몇 집단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다면 공권력을 움직일 수도 있었다. 레이칼튼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이름이었다.

내내 헤일리가 떠난 쪽을 쳐다보고 있던 노아가 “그리고……,” 하며 필을 쳐다봤다.

“헤일리 러스크에 대해서 조사해 주세요.”

몇 년 전 일이나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빠짐없이. ―노아의 말에 필이 잠깐 의아한 표정을 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한 번 더 노아는 헤일리가 떠난 방향을 쳐다봤다. 저 남자가 어떻게 메이슨을 알고 있는지, 왜 여기에 왔는지, 어째서 갑자기 저렇게 다른 사람처럼 변했는지, ―그리고 이 기시감의 정체가 무엇인지까지. 모든 것은 금세 알게 될 터였다.

노아는 왜인지 묘한 거슬림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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