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걸 입겠다고?”
토니는 약간 의아한 것처럼 “그으래?” 하고 되물었다. 메이슨은 자신이 고른 정장을 들여다보고 살짝 미간을 구겼다.
“아, 역시 너무 화려하죠?”
헤일리의 옷장 속 정장은 죄다 반짝거리거나 핫하거나 포스트모더니즘을 표방하는 듯한 희한한 모양의 정장들뿐이라 그나마 가장 얌전한 걸로 골랐는데도 그나마도 묘하게 핏이 붙는 것 같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정장을 입었던 건 경호 업무가 있던 십 년 전 무렵이었고 때문에 그는 오랜만에 입는 정장이 어떤 느낌일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화려하다고?”
그게? 어디가? 토니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되물었다. 메이슨이 자신이 고른 정장을 들어보였다. 토니는 그가 ‘너무 화려하지 않냐고 물은 건지, 너무 안 화려하다고 비꼰 건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다가 말했다.
“난 네가 그렇게 얌전한 정장을 가지고 있었나 싶을 정돈데? 원래 더 화려한 거 좋아하잖아.”
토니는 네가 다음에 영화를 하게 되면 크랭크인 파티 때 꼭 입고 가고 싶다고 했다던 거라며 핫핑크색 정장을 꺼내보였다.
“이걸로 할래?”
“……그냥 이거 입고 나올게요.”
메이슨은 갑자기 피곤해지는 것을 느끼며 고른 정장을 들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토니가 “샵에도 가야 하니까 어서 나와!” 하고 소리쳤다.
“샵이요?”
메이슨은 바지에 다리를 꿰며 큰 소리로 물었다. 샵? 무슨 샵?
“머리 해야지. 화장도 하고.”
진짜 시간 없어! 토니가 소리 질렀고 메이슨은 셔츠를 바지 안에 밀어 넣고 재킷을 입었다. 아, 이거 진짜 묘한데. 메이슨은 거울에 비친 스스로를 쳐다봤다.
정장은 생각보다 몸에 딱 붙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통이 좁고 핏이 되는 감이 있긴 했지만 몸이 워낙에 말라서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다만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지, 아니면 어릴 때 입던 건지 바지는 조금 짧아 발목 복숭아 뼈가 살짝 드러날 정도였고 그리고 어디라고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묘하게, 좀 야한 감이 있었다.
감색의 고급 원단이 헤일리의 하얀 피부와 대비되어서 그런가.
“빨리 입어야 한다니까? 다 입었어?”
토니가 안으로 불쑥 들어오며 물었고 메이슨은 그를 쳐다보는 대신 거울을 보며 말했다.
“아니, 샵은 안 가요. 무슨 머리에 화장씩이나―.”
“아니 왜, 머리도 드라이를 좀 하고―…….”
그래도 꾸미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듯 입을 열었던 토니가 말을 멈췄고 메이슨은 재킷의 깃을 털며 그를 돌아봤다.
“예?”
돌아보자 토니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해요? 다른 거 입을까요?”
이것보다 얌전한 정장을 찾을 수 있으려나? 그냥 적당히 셔츠에 바지 정도만 입어도 되지 않을까? 메이슨이 묻자 토니는 곧 마구 고개를 저었다. 고개가 떨어질까 무서울 정도로 열심히 고개를 저어 No를 말한 토니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말했다.
“아냐. 완벽해. 완―벽해!”
그가 더 이상 손대지 말라며 “샵도 가지마. 샵을 왜 가. 이렇게 멋진데!” 하고 말했다.
“어서 가서 카메라 마사지나 받자.”
이렇게 멋지니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더 많이 사진 찍혀야 한다고, 토니는 메이슨의 손을 붙잡아 끌고 재빨리 차에 태웠다. 메이슨을 태운 토니의 포르쉐가 윌셔 그랜드 호텔의 연회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검은 포터 한 대가 은밀하게 따랐다.
* * *
“와우, 이게 누구야?”
빅은 한껏 과장된 어조로 말하며 메이슨을 맞이했다. 그는 이미 살짝 술에 취한 것 같았다. 메이슨은 ‘아웃, 눈부셔.’ 라는 투로 눈을 가리며 다가오는 감독을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진짜 뭐 시술 같은 거 안 받았어? 어떻게 이렇게 근사하지?”
“자꾸 그러지 마세요. 감독님, 게이 루머 도는 거 알아요?”
빅이 하도 그에 대해 온갖 언론에 대고 떠드는 바람에 일부 사람들은 그가 헤일리에게 진짜로 위험한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하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애처가인지 다들 알기에 그냥 하는 말에 가까웠지만 어쨌거나 그는 그런 소문이 돌 정도로 메이슨에게 꽂혀 있었다.
“그러는 너는 요즘 게이 아니라는 소문 돌더라.”
샴페인을 홀짝이는 빅의 말에 메이슨은 어깨를 으쓱였다. 평소 헤일리에 비해 얌전히 입고 다니고 얌전히 살았더니 그런 말이 돌기는 하는 모양이었으나, 이쪽도 헤일리가 얼마나 완전한 게이인지 다들 알기에 그냥 하는 말이었다.
“오늘도 어떤 차림을 하고 올까, 솔직히 걱정했는데…, 내가 자주 보는 가십지에 네 정장 패션이 모아져 있는 페이지가 있었거든?”
빅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메이슨은 그의 충격을 이해했다. 그는 고작 잡지 페이지로 보았지만 메이슨은 조금 전 실제로 옷장 문을 열어 그것들을 보았으므로. 무지개 색 정장을 보았을 때는 진심으로 헤일리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까지 했을 정도였다.
차를 파킹하고 어딘가에 들렸던 토니는 코가 이만큼 올라간 얼굴을 하고 의기양양하게 홀로 들어왔다.
“밖에서 기자들이랑 사람들이 모두 네 이야기해.”
가까이 다가온 토니는 좋아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빅은 토니에게 샴페인 잔을 권하며 “그럴 만하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리스는 한때는 모델로도 잘 나갔으니까요.”
몸이 좋다 보니 이렇게 슈트빨이 산다며, 토니는 멋져서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는 누가 들을까 무서울 만큼 재수 없는 찬양을 쏟아냈는데 빅은 거기에 대고 또 “역시 그렇지? 내가 보는 눈이 있다니까?” 하며 동조했다.
메이슨은 두 사람이 시시덕거리는 걸 심드렁히 쳐다보다 테이블 위에 늘어진 샴페인 잔을 하나 들었다. 생각 없이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두드리며 물었다.
“이젠 술 마셔도 괜찮아요?”
“아. 체이스.”
메이슨이 돌아보자 곰처럼 키가 큰 남자는 이를 드러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정말 근사하네요, 헤일리.”
“와……, 오늘 다들 짰어요? 왜들 이러지?”
다들 무지개색 정장, 핫핑크색 정장, 배꼽이 보이는 정장 따위를 입은 헤일리만 보다가 멀쩡한 정장을 입은 자신을 보니 영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사실 적응이 안 되기는 메이슨도 마찬가지였다. 이 동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리액션이 강한지. 말하는 거나 눈을 빛내는 표정만 봐선 자신이 정말 드라마틱하게 외모가 변한 것처럼 굴었다. 속은 달라졌어도 겉은 여전히 그 헤일리인데 말이었다.
오늘 LA 시내 윌셔 그랜드 호텔 연회장에서 열리는 이 파티는 ‘리얼’의 새 크랭크인 파티였다. 크랭크 인은 촬영 현장에서 첫 씬을 찍는 것으로, 그날 촬영을 마친 뒤에야 파티장으로 장소를 옮기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영화 ‘리얼’의 경우 실제 크랭크 인은 지난달에 이미 있었기 때문에 간단히 파티만 하기로 되었다. 간단하게 하자고 한 것치고는 최근 언론의 높아진 관심 탓에 제법 시끄러워졌지만.
“근데 정말 샴페인 마셔도 괜찮아요?”
체이스가 재차 물었고 메이슨은 “아.” 하고 노란 액체가 담긴 샴페인 잔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헤일리의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랐다. 알코올 중독 전적이 있다 보니 운동 후 맥주 한 캔 마시고 싶을 때도 몸이 완전히 해독 될 때까지 참자며 최근 금주 중이었던 것이다.
“오늘 정도는 마셔도 괜찮지 않아?”
메이슨이 샴페인 잔을 들고 망설이자 제법 술을 들이켠 빅은 꼬시 듯이 말했고 토니도 동조했다.
“당장 내일부터는 엄청 바쁘게 일해야 하니까 오늘 정도는 마음껏 놀아. 돌아올 때 음주 운전만 하지 말고 그냥 여기서 자고 오고.”
그는 이미 준비했다는 듯 짜잔, 호텔의 카드키를 내밀었다.
“아아.”
메이슨은 픽 웃으며 그가 건넨 카드키를 받아 쳐다봤다. 아무래도 좋으니 음주운전만 하지 말아라, 라니. 토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만 헤일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확실히 아니었을 것 같긴 했다. 중독 전적이 있는 사람에게 맘껏 마시라는 말은 절대 금물이었다.
메이슨은 샴페인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카드키는 주머니에 넣었다.
“안 마시려고?”
“좀 있다가요. 아직은 맨정신으로 있고 싶어서.”
메이슨은 농담처럼 말하며 주변을 돌아봤다. 분명 어딘가 들어오긴 했을 텐데. 아까 토니의 차를 타고 호텔로 오는 길에 내내 따라붙는 차가 한 대 있었다. 어디서 본 건 있는지 가운데에 차 한 대를 끼우고 내내 이리저리 차선까지 바꾸며 쫓아왔지만 프로인 메이슨의 눈에는 그 차가 자신을 쫄쫄 쫓아오는 게 훤히 보였다.
파파라치들이야, 그가 오늘 이 호텔에 올 것을 알고 있으니 딱히 그런 식으로 은밀한 미행을 할 것 같지는 않았고, 아마 조이나 다른 친척들이 아닐까 싶었다. 두고 보라더니 뭔가 약점이라도 잡을 셈이겠지. 메이슨은 훤히 보이는 그들의 속셈에 심드렁히 입맛을 다셨다.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빤히 아는데 약점을 잡혀줄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까딱 잘못 취했다가 실수라도 하면 아무래도 곤란할 테니.
몇 번 이런 식으로 허탕을 치게 하면, 이렇게 미행하는 시간에 차라리 나가서 신문이라도 돌리는 게 이득이라는 걸 그들도 깨달을 것이었다.
체이스는 다른 배우들의 등쌀에 밀려 인사만 하고 다른 테이블로 휩쓸려 갔고 토니는 빅에게 ‘헤일리,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웃기는 인사를 한 뒤 돌아갔다.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는 오늘이 마침 아내의 생일이라고 며칠 전부터 말했었다. 빅 프록터와 체이스 빌러, 그리고 자신의 배우가 함께 하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크랭크 인 파티에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그에게 무척이나 아쉬운 일인듯했지만 그렇다고 생일에 아내를 혼자 두거나 아는 사람도 없는 파티에 데려와 병풍처럼 서있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메이슨은 연회장을 나가려는 토니를 불러 세웠다.
“토니. 잊을 뻔 했는데, 차 뒷좌석에 쇼핑백 하나 있어요. ―그거 부인 분께 전해주세요.”
직접 샀다고 하셔도 된다고 말하며 메이슨은 웃었다. 토니는 눈을 끔뻑거리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가가 살짝 붉어지는 것에 메이슨은 어서 가보라고 손을 내저었다.
“고, 고마워.”
“작가들에게만 샤넬백 주지 마시고. ―오늘 부인 분과 좋은 하루 보내세요.”
메이슨은 토니가 작가들에게 잘 보이려고 샤넬백을 사다 바쳤던 것을 언급하며 그를 보냈다. 토니는 감동한 듯 몇 번씩 뒤를 돌아봤지만 메이슨은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빅을 돌아봤다.
“흠. 매니저 아내의 생일에 샤넬백은 좀 과하지 않아?”
빅이 샴페인을 홀짝이며 물었고 메이슨은 잠시 토니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말했다.
“하지만 힘들 때 옆에 남아준 유일한 사람이니까요.”
헤일리로 두 달 남짓 살아본 결과, 헤일리의 옆에서 그의 등을 치지도 않고, 그를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은 토니가 유일했다. 그의 주변에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은 토니뿐이니 이 정도는 해줄 만도 했다.
빅은 “좋은 사람 같기는 하더라. 매니저로서는 그냥 그래보였지만.” 하고 웃었다.
메이슨은 픽 웃으며 알코올이 없는 펀치 잔을 들었다.
“근데 감독님도 다른 테이블로 가보시는 게 낫지 않아요? 저랑 이렇게 계속 같이 계시면 게이 루머가 짙어진다구요.”
“너 진짜 게이 맞지? 내 주변 게이들은 죄 끈적끈적하던데 넌 꼭―.”
빅은 메이슨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가슴 큰 여자 좋아할 것처럼 생겼어.”
“…….”
메이슨은 대답 대신 펀치를 마시며 눈을 돌렸다. 빅은 “멜리사를 볼 때도 넌 가슴부터 보더라. 남자답게. 사실 나도 그렇게는 못했는데.” 하고 별 의미 없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천재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보기 때문에 천재라는 걸까. 메이슨은 새삼스레 빅의 예리함에 숨을 삼켰다.
샴페인을 홀짝이던 빅은 메이슨이 게이인지 아닌지 따위는 사실 별 관심 없다는 듯 말을 돌렸다.
“근데 레이노아랑은 무슨 관계야?”
“누구요?”
메이슨은 뜬금없이 튀어나온 이름에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별 관계 아닌데요? 제가 노아랑 무슨 관계가 있겠어요?”
아. 제가 그 남자에게 치근덕댔던 관계? ―메이슨은 되물었고 빅은 흠, 하고 입을 다물었다.
“하긴 그래. 너랑 레이노아가 무슨 관계겠어. 있다손 쳐도 네가 쫓아다녔던 그런 거겠지.”
“그렇죠, 뭐.”
메이슨은 딱히 기분 나빠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와 관계를 형성하기엔 헤일리도, 원래의 몸인 메이슨으로도 굉장히…, 뭐랄까. 밸런스가 맞질 않았다. 자신을 비하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쪽이 워낙에 하이 클래스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메이슨의 덤덤한 반응에 빅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널 내 영화에 꽂았지?”
“꽂아요?”
“그래. 처음 널 그 킬러 역에 밀어 넣은 게 NLC였단 말이야. 나야 네가 싫어도 최대 투자자가 시키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넣은 거고.”
게다가 이번 일도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받아준 투자자고. 빅의 말에 메이슨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노아 인터뷰 봤어요? 그는 절 동정한다던데요.”
“그런 건가?”
빅은 샴페인을 홀짝이며 함께 고개를 갸웃했다.
“달리 뭐겠어요?”
메이슨의 덤덤하고 심심한 되물음에 빅은 “하긴.” 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메이슨의 어깨너머에 고정됐다.
“근데 너 때문도 아니면 저 남자가 여긴 왜 왔지?”
메이슨은 그가 쳐다보는 곳을 돌아봤다.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연회장 문으로 키가 훤칠하게 큰 금발의 남자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딱히 멋을 부린 것도 아닌 클래식한 검은색 정장에 깔끔한 스프라이트 무늬가 들어간 빨간 넥타이를 맨 그 남자는 온통 멋 부린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도 튀었다.
잘나긴 진짜 잘났네. 메이슨은 연회장 안으로 들어오며 해사하게 미소 짓고 있는 아름다운 남자, 노아를 쳐다보다가 빅을 보았다.
“최대 투자자라서? ―당연히 오는 거 아니에요?”
“노아가 투자하고 있는 게 몇 갠데. 수십 개씩 후원할 텐데 거길 어떻게 다 나타나? 게다가 원래 그는 이런 데는 잘 안 온다고.”
빅은 새 샴페인 잔을 들어 홀짝이며 말했다. 메이슨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뭐, 특별히 그가 자신을 보러왔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었다.
“그나저나, 샴페인 그만 드시는 게 낫지 않아요?”
메이슨은 슬슬 얼굴이 벌겋게 익고 있는 빅에게 물었고 등 뒤에서 “그러게요. 다른 사람들은 이제 시작인 것 같은데요.” 하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돌아보자 바로 뒤에 노아가 눈을 휘어 웃으며 서있었다.
“원래 감독이 가장 먼저 나가떨어져야 파티가 제대로 굴러간답니다.”
빅은 씩 웃으며 말했고 노아는 “과연. 스태프를 배려하는 마음조차 거장이시군요.” 하며 손을 내밀었다.
“저번엔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죠. ―노아 레이칼튼입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라 와주실까 걱정했는데, 영광입니다. 감독 빅입니다. ―이쪽. 헤일리는 아시죠?”
빅은 슬쩍 물러나 서있는 메이슨을 끌어들이며 쪼갰고 노아는 빅의 손을 잡은 채로 메이슨을 돌아봤다. 메이슨은 마시던 펀치를 꿀꺽 삼키며 노아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술을 안 마시나보죠?”
노아는 빙긋 웃으며 물었고 메이슨은 사방에서 시선이 꽂히는 것을 느끼며 “……덕분에요.” 하고 말했다. 너에게 술 먹고 실수하는 바람에 술을 끊었다는 요지의 말에 노아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연회장의 모든 시선은 갑자기 나타난 레이노아와. 그와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메이슨에게로 집중 되었다. 왠지 주변이 고요해졌다고 느껴지는 건 착각이 아니겠지. 그 불편한 기류 속에서 빅과 노아만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메이슨도 표정만은 덤덤했지만.
“아아. 감독님이 나서서 이렇게 분위기를 주도하는데, 주인공이 술을 안 하다니. 아쉽게 됐네요.”
노아는 빅에게 말을 걸었고 빅은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체이스 빌러 아닌가. 메이슨은 그냥 적당히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레이칼튼 씨가 마셔 주신다면야, 다들 좋아하지 않을까요.”
문득 다가온 진짜 주인공 체이스가 환하게 웃으며 노아에게 잔을 건넸다. 노아는 아쉽다는 듯이 웃었다.
“아, 잠시 뒤에 이 호텔에서 사업 파트너를 만나기로 했거든요. 권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술에는 좀 약해서.”
노아는 체이스의 잔을 정중히 거절하며 빅에게 말했다.
“제가 투자하는 영화중에 가장 특이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영화니만큼 독특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찍어주시리라 기대하겠습니다.”
빅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노아는 눈을 휘어 웃으며 이어 말했다.
“시간이 별로 없는지라 바로 가봐야 하는데, 얼굴만 들이밀고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이네요. 오늘 파티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제가 지불할 테니 술값 걱정 마시고 마음껏 즐기다 가세요.”
우와아아!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스태프들과 배우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노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빅에게 웃어 보인 뒤, 돌아서서 연회장 안쪽,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 중인 필에게 걸어갔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윗사람의 표본 같은 모습이었다. 화통하게 쏘고, 빨리 사라져 주었다.
“……너무 멋있어서, 나 기분 나빠.”
기분 나빠, 저 남자. 빅이 중얼거렸고 메이슨은 노아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는 이쪽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고 메이슨은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지만 곧 잊었다.
* * *
노아가 연회장을 나간 뒤, 그가 술값을 내기로 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모두들 갑자기 미친 듯이 퍼마시기 시작했다. 샴페인 따위가 아니라 엄청나게 비싼 술이 파티장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종국엔 다들 로얄샬루트, 맥칼랜, 글랜피딕 따위를 마셔댔다.
영화판 인간들은 진짜 무섭구나. 메이슨은 상사가 ‘내가 다 낼 테니 아무거나 시켜.’ 라는 말은 ‘가장 싼 걸, 조금만 먹어라’, 와 동의어라고 생각했는데 이쪽은 정말로 순수하게 ‘자신의 돈으로 사마시라면 절대 못 마실 술들을 마시자’ 라는 분위기였다.
프로듀서 글로리아는 물론 그 점잖고 쾌활하던 체이스까지 신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잔 두잔 샴페인을 홀짝대던 빅은 제대로 된 비싼 술은 입에 대보지도 못하고 잔뜩 취해 휘청휘청하더니 테이블에 거하게 엎어지며 술을 쏟았다.
“…….”
그리고 그의 옆에서 ‘엇차, 위태위태한데…….’ 하고 생각하던 메이슨은 맥칼랜은커녕 샴페인 한 잔도 못 마신 주제에 연회장에서 가장 거하게 술냄새를 피우는 사람이 되었다.
빅이 테이블을 밀면서 엎어지는 바람에 그 위에 잔뜩 놓여있던 샴페인 잔들이 와르르 그에게로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나름 단장하고 연회장에 나타났던 메이슨은 가슴부터 허리까지 샴페인으로 흠뻑 젖어 흰 눈으로 빅을 노려봤지만 빅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과는커녕 자신이 사람인지 벌레인지도 헷갈리는 듯 테이블 아래로 구물구물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메이슨은 테이블 아래 사람들에게 밟히기 딱 좋은 곳에서 똬리를 튼 채 사람들의 다리를 잡아채며 시시덕대기 시작하는 빅을 쳐다보다 주변을 돌아봤다.
늘 그를 챙기던 프로듀서인 글로리아에게 다가가 “빅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하고 말하자 그녀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메이슨을 돌아봤다.
“그 인간은 원래 늘 제정신이 아녜요.”
“……그런 것 같기는 했는데 그래도…….”
메이슨은 잔뜩 풀린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그녀가 졸린 것이기를 빌었지만 그녀는 “적당히 갖다 버려요, 그런 인간.” 하고 솔직한 소리를 하며 다시 잔을 들었다.
메이슨은 연회장을 둘러보며 적당히 빅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자신 빼고는 죄 정신이 나간 사람들처럼 먹고 마셔대고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용병들보다도 더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놀다니. 메이슨은 그들을 새삼 존경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테이블 밑에서 빅을 불렀다.
나오지 않으려는 그의 머리카락을 한 줌 쥐고 끌어당기자 그가 “으으으…….”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딸려 나왔다.
메이슨은 자신보다 한참 무거운 빅을 일으켜 세우고 부축해 아까 노아가 타고 떠났던 엘리베이터로 다가갔다.
옷은 살짝 젖었고 술냄새는 진동했다. 빅을 십여 미터 끌고 오는 동안 메이슨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나도 술이나 마실걸.”
차라리 정신을 놓는 게 나았을 텐데. 후회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빅은 “대박을―…. 대박……, 내 대박……,” 하고 신음처럼 중얼거렸고 메이슨은 그냥 버리고 가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소리에 메이슨은 빅을 추스르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멈칫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이 느껴졌다.
엘리베이터 안쪽에 변장한 아론과 애슐리가 서있었다. 가발과 모자. 안경에 주근깨. 앞니를 과장스럽게 달아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메이슨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이었다.
* * *
“안탑니까?”
아론이 힐끗, 자신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저희 술 냄새 때문에.”
당혹스러운 머릿속과는 달리 입은 착실히 변명을 뱉었다. 메이슨은 마른 침을 삼키며 빅을 추슬러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두어 걸음 걸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무척 길고 좁은 것처럼 느껴졌다. 메이슨은 엘리베이터 안쪽에 빅을 기대게 하고 그를 붙잡아주며 눈을 굴렸다.
아론과 애슐리.
아론을 보는 순간 메이슨으로서는 무척 드물게도, 살짝 뇌가 휘발된 것처럼 생각이 멈춰버렸다. 쿵 내려앉았던 심장이 두근, 두근, 두근, 하며 심하게 박동했다.
자신을 죽인 남자를 마주하게 됐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메이슨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하게 두 사람을 만난 것에 몸이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몸이 잘게 떨리는 이것이 공포인지 아니면 분노인지 알기 어려웠다.
메이슨은 숨을 삼키며 표정관리를 했다. 일단 반사적으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최대한 빅에게만 시선을 맞춘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메이슨은 뺨에 따갑게 닿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애슐리가 흘끔, 쳐다보고 있었다. 네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듯한 그 눈길에 메이슨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곧 자신이 헤일리고, 연예인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싱긋, 해사하게 웃어주었다.
애슐리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론은 그녀를 쳐다보더니 곧 메이슨을 향해 물었다.
“눌러드릴까요.”
엘리베이터 버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빅을 끌어안고 있는 메이슨이 불편해 보였는지 층계를 눌러주려는 듯 버튼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십…… 칠 층이요.”
메이슨은 힐끗, 이미 눌러져있는 그들의 층 번호 12층을 확인하며 말했다. 12층. 12층에 뭐가 있지? 벽에 붙은 층계표에는 12층에 객실과 VIP 전용 비지니스 룸이 있다고 나와 있었다.
메이슨은 그들의 용건이 무언지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애슐리와 아론은 지금 이런 식으로 나돌아 다닐 때가 아닐 터였다. 특히 아론은 몰라도 애슐리는, 누구인지 확실치 않은 시체상태인 자신을 찾는 것보다 확실히 사라진 애슐리 쪽을 타깃으로 잡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온 동네에 그녀의 추적자가 뻗어 있을 것이었다.
골방에서 피자나 시켜먹으며 숨어 있어도 언제 걸릴 지 모를 판에 이렇게 돌아다녀?
변장을 했다고 해도 아는 사람들에게는 빤히 보이는 수준의 변장이었다. 본인들도 알고 있을 터고 실제로 두 사람은 약간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대체 무슨 용건일까, 이 호텔엔. 이곳에서 숙박을 해결하려는 것일 리는 없었다. 이렇게 CCTV로 넘치는 곳에는 오래 있지 못할 테니까.
뭐지, 대체? 메이슨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
메이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9층, 10층, 11층…, 엘리베이터는 그들의 목표층을 향해 빠르게 올라갔고 입술을 깨문 메이슨은 부축하고 있던 빅을 향해 “뭐라구요?” 하고 대뜸 물었다.
“갑자기 화장실이라뇨. 아니, 잠깐만요. 싸지 말아요, 감독님.”
여기서 싸면 안된다구요! 메이슨은 다급하게 빅을 흔들며 소리 질렀고 졸고 있던 빅은 “으으으……,” 앓는 소리를 내며 괴롭게 흔들렸다.
12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메이슨은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애슐리와 아론을 제치고 “아, 큰 건 진짜 안 돼요! 사회적 체면과 성인으로서의 자존심도 없으세요?” 하며 빅을 끌고 12층에 내렸다. 그리곤 엘리베이터 앞에서 빅을 놓친 척 쿵, 그를 바닥에 내려놓았고 그 사이 내린 아론과 애슐리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어디론가 향했다. 감독님, 감독님. 메이슨은 작게 감독을 부르며 그들의 기척을 주시했다.
“레이노아가 정말 여기에 있는 것 맞아?”
애슐리가 아론을 향해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묻는 것이 들렸다. 메이슨은 빅의 뺨을 치는 시늉을 하다가 멈칫했다.
노아를 찾는다고? ―왜?
메이슨은 그들을 돌아봤고 그때 마침, 라운지에서 한 노년의 남자와 노아가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
메이슨은 아론과 애슐리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들은 노아를 발견하자 지체하지 않았다. 약간 긴장한 기색으로 그를 향해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며 메이슨은 뒤에서 마른 침을 삼켰다.
아까 엘리베이터 속에서 두 사람이 호텔에 온 용건에 대해 생각하려고 했을 때 메이슨의 머릿속에는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노아.
그러나 곧 이건 너무 비약적인 생각이라고, 호텔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중에 노아겠냐고 생각을 흘렸다.
그러나 실제로 두 사람이 노아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노아는 노년의 남자와의 일이 끝났는지 그와 작별인사를 하고 혼자인 상태로 엘리베이터 쪽을 향해 걸어왔다. 메이슨은 빠르게 눈을 굴렸지만 오늘은 숨어 있는 보디가드가 없었다. 늘 같이 붙어 다니던 필도 어딘가에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메이슨은 입술을 깨물었다.
애슐리와 아론의 얼굴과 눈은 예상보다 많이 상해있었다. 도피 생활이 그들을 피폐하게 만들었을 거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오천만 달러라는 큰돈에 혹해 일을 저질렀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리라. 하다못해 그 금고조차 열지 못했겠지.
메이슨은 비밀번호의 마지막 숫자가 알타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그 순간 자신이 방아쇠를 당겼던 것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Zii의 추격을 받으며 핀치에 몰린 그들이 노아를 만나려 하고 있었다.
어쩌지. 그냥 둘까? 메이슨은 갈등했다.
“―…,”
메이슨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시하자. 안 그래도 저번 만남에서도 오지랖이 넓다고 한 소리 듣지 않았는가. 괜히 참견할 필요 없지. 그들이 정말로 노아를 인질 삼아 그 꽉 막힌 상황을 타개하려는 건지 아닌지도 정확히 모르지 않는가.
사실은 노아에게 개인적인 용건이 있는 걸지도 몰랐다.
메이슨은 바짝바짝 마르는 입술을 무시하며 생각하려 애썼고 노아가 점점 그들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심장이 쿵, 쿵, 쿵, 아까 처음 아론을 만났을 때보다 무겁게 뛰었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참견하겠다니, 메이슨 테일러. 제정신이냐. 메이슨은 스스로에게 물었고, 그때였다.
애슐리가 뭔가를 찾는 듯 허리 뒤춤을 만졌다. 그녀가 늘 총을 꽂아 두는 곳이었고 그것을 깨닫자마자 메이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이슨은 빅을 일으켜 엘리베이터에 집어넣고 아무 층이나 눌러 내려 보낸 뒤 전속력으로 달렸다.
씨발, 내가 쟬 어떻게 지켰는데――….
방심한 순간 아론의 총, 총구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서늘한 죽음을 이미 맛보지 않았던가. 노아에게 그런 짓을 당하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기껏 그 어둡고 괴로운 여행 가방 안에서 꺼내 내놓은 아이를 그렇게 만들 수는 없었다.
“저기……,”
애슐리가 노아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 순간, 메이슨은 노아를 낚아채듯 붙잡아 끌어 달렸다.
“헤일리?”
노아가 놀란 것처럼 물었지만 메이슨은 대답하는 대신 뒤를 돌아봤다. 멈칫, 아론과 애슐리가 당황한 얼굴로 서있었고 아론과 눈이 마주쳤다.
“잡아.”
아론이 중얼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의 걸음이 빨라졌고 애슐리가 그에게 뭐라고 소리쳤지만 그가 등 뒤에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노아가 “이봐요, 당신,” 하고 잇새를 깨무는 것이 들렸지만 메이슨은 듣지 않았다. 급하게 노아를 잡아끌면서 주머니를 뒤졌다. 토니가 건네준 방 번호가 분명……!
메이슨은 가지고 있는 카드키의 방 번호를 확인했고 바로 고개를 들었다.
No. 1218
―1218호.
“――!”
메이슨은 눈앞에 바로 보인 방 번호에 숨을 삼키며 그대로 카드를 찍어 문을 열고 노아를 납치하듯 안으로 밀어 넣으며 쾅! 문을 닫았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애슐리와 아론의 낭패한 표정이 문 바로 앞에서 사라졌다.
메이슨은 재빨리 문을 걸어 잠그며 힉, 숨을 들이켰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메이슨은 등 뒤로 흐른 식은땀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간발의 차이였고 천운이었다. 만약 토니가 건넨 방 키 번호가 1218호가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붙들렸을 터였다.
얼마 전처럼 길거리 양아치 새끼들이라면 몰라도 진짜 제대로 갈고 닦인 용병인 애슐리와 아론에게서는 노아를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메이슨은 숨을 몰아쉬며 밖의 기척을 살폈다. 밖은 고요했지만 묘한 긴장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어쩌지―…, 하고 턱으로 흐른 땀을 닦으려던 메이슨은 문득 등 뒤에서 따갑게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어 돌아봤다.
“……아….”
영문을 모르는 새, 방으로 끌려 들어온 노아가 몹시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