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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하. 맙소사, 리스.”
헤일리의 사촌 조이는 카메라를 들고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었다. 카메라의 액정에는 헤일리가 노아의 팔을 억지로 붙잡아 끌고 호텔 방 안으로 들어가는 사진이 떠있었다.
손가락을 대고 사진을 확대하자 노아의 차가운 얼굴이 그대로 보였다.
이건 살짝 포토샵을 하는 게 좋을까? 좀 더 곤란하고 당황한 모습으로 만들까?
“아니지. 이대로도 훌륭한데 괜히 손대서 논란을 만들 필요는 없지.”
조이는 낮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헤일리는 답지 않게 전혀 술을 마시지 않았고 남자배우들에게 찝쩍거리지도 않았다. 자신이 카메라를 들이밀고 숨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행동이었다.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내내 찍을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중간에 레이노아가 나타나, 혹시나 뭔가 그림이 될 만한 행동을 해줄까 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사이가 나쁘지 않은 듯 몇 마디 말도 나누었고 레이노아 쪽에서도 그를 전혀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호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빌어먹을. 조이는 욕설을 씹어 삼키며 종일 시간을 날린 것을 한탄했다. 연회장은 시끄럽고 덥고 난리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 헤일리는 유일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오늘은 텃구나. 어쩌면 계속 이런 날이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카메라를 가방 안에 넣으며 집에 돌아가려고 하던 조이는 헤일리가 빅을 부축해 엘리베이터로 끌고 가는 것에 멈칫하며 망설였다.
물론 최근에 빅의 이상행동으로 인해 두 사람 사이가 그렇고 그렇다는 싸구려 루머가 도는 건 사실이었다. 헤일리는 누구에게나 찝쩍대는 헤픈 게이였기때문에 감독의 좆을 빨아주고 배역을 따낸다는 이야기는 매우 흔한 루머였다. 십 년 전, 헤일리의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실 때도 그런 소문은 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런 소문이 돌았으나 평소보다는 그 이야기의 수위가 아주 낮았다. 빅이 두말할 나위도 없는 스트레이트며 엄청난 애처가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벌써 몇 개의 흥행 대작을 만든 거장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펠라치오 솜씨가 뛰어나다해도 좆 좀 빨아준다고 갑자기 주역으로 발탁될 수 있다면 멜리사가 왜 역에서 잘렸겠는가. 그녀도 그런 쪽으로는 만만치 않게 유명한데 말이었다.
여하간 그런 이유로 술에 만취한 감독을 호텔방 안에 던져놓고 나오는 사진 같은 건 아무리 절묘하게 찍어도 쓸모가 없었다. 하물며 이렇게 증인이 많은 와중에야, 사진이 돈 바로 다음날 수많은 스태프들이 감독이 얼마나 취했는지, 그 술자리에서 유일하게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이 누군지 증언할 것이었다.
그런 술자리에서 술을 자제하다니, 괜히 헤일리의 이미지만 업 되고 말지. 조이는 손톱을 깨물며 움직일까 말까 망설였다.
두 사람이 호텔방 문 앞에서 키스라도 하지 않는 이상 쓸모없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이는 오늘 종일을 허탕친 것에 대해 뭔가의 보상이라도 찾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토니가 헤일리에게 건넨 호텔방의 키 번호는 미리 알아 놨다. 1218호. 조이는 헤일리가 올라간 옆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에 내려 계단을 통해 12층으로 내려갔고, 1218호 근처에 숨을만한 곳을 찾았다.
술에 잔뜩 취한 빅을 데리고 오는 것이니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 화분 뒤에 숨은 조이는 길게 하품을 하며 카메라를 조절했고 그때였다. 헤일리가 무서운 얼굴로 복도를 돌아 달려왔다. 그리고 그 뒤로 손을 잡힌 사람은 놀랍게도 빅 따위가 아니었다.
호텔 문 앞으로 한 쌍의 남녀가 뛰어가 문을 붙들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조이는 잠시 그들을 쳐다보다 ‘또 다른 파파라치인가보지.’ 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았고 지금의 이 절묘한 상황을 카메라에 담은 것은 자신뿐이었다.
조이는 레이노아의 사진을 클로즈업했다. 이런 잘생긴 남자를 호텔방 안으로 끌고 들어가다니, 이 앙큼한 것. 그 인생이 망쳐지더라도 오늘 밤은 영원히 기억하려나?
아니, 어쩌면 정신을 차린 레이노아가 아무 일도 없이 그냥 걸어 나올 지도 몰랐지만 중요한 건 자신이 엄청나게 값이 나갈만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헤일리의 인생을 쓰레기통에 처박을 만한 사진이기도 했다.
“하하……, 내가 두고 보라고 했지?”
그녀는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자신이 알고 있는 몇 명의 기자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 * *
노아는 최근 헤일리에게 대체로 호감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종종 그를 향한 까닭 모를 불편함이나 불쾌함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건 자신의 기시감 탓이지 그의 문제는 아니었다.
최근의 헤일리는 흠잡을 데 없는 괜찮은 인물이었다. 필을 통해 계속해 보고를 받고 있었는데 그는 정말로 이전과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근처를 산책하며 괜찮아 보이는 커피숍을 보면 들어가 가십지와 신문을 사서 공부하듯 들여다봤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때우고 나면 그는 오전에는 두 시간, 바리스타 수업을 들었다.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선생을 초빙해 연기 수업을 받았다. 오후 내도록 연기 공부와 연습을 하고 난 뒤에는 저녁을 먹고 다시 산책을 하거나 혹은 집 안에 있는 피트니스 룸을 이용해 운동을 하고 다시 영화 등을 보며 공부를 하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클럽이나 모임에 나가지도 않고 술을 마시거나 약을 하는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전의 헤일리의 삶에 대해서도 보고서가 있었다.
느지막이 오후 네다섯 시쯤 일어나 대충 매니저가 사온 패스트푸드로 식사를 때우거나 굶고서 맥주 한 캔을 들고 멍하니 TV를 쳐다보다가 어느 정도 잠이 깨면 씻고 드레스 룸에 들어가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서너 시간 동안 옷을 골랐다. 옷을 골라 입고 스스로를 단장하고 나면 시간은 벌써 밤 9시가 넘어가고, 그 즈음이 되면 그는 코카인 꺼내 약간 들이킨 뒤 집 밖으로 나갔다.
연락을 받고 나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체로는 그냥 무작정 집을 나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무작정 집을 나선 그는 술집이나 클럽에 가서 마시고 놀고먹고 가끔 남자를 낚아 집이나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는 다시 다음 날 오후 네다섯 시쯤 일어나 전날 마셨던 술을 토하고 다시 그 하루를 시작했다.
가끔 친구를 만나기도 했고 사촌이라는 여자를 만나기도 했지만 도움 되는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쓰레기 주변에 쓰레기가 모이는 격이었다.
보기만 해도 짜증과 경멸이 이는 이전의 보고서와 최근의 보고서를 모아놓고 노아는 제법 긴 시간을 보냈다.
최근의 헤일리의 보고서와 이전 헤일리의 보고서. 그리고 그 중간에 메이슨에 대한 보고서를 내려놓은 것은 오랜 고민 끝이었다.
노아는 메이슨이 실종처리 된 날짜와 추정 시각. 헤일리가 사망 선고를 받고 한두 시간가량 죽어 있다 깨어난 날짜 사이의 공통점을 눈앞에 두고도 노아는 그것을 연결하지 않았다.
상식적이고 비상식적이고를 떠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각하는 것조차 어이없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완전히 덮지도 못했다.
메이슨을 알고 있는 헤일리. 헤일리와 메이슨. 두 사람 사이에 접점이라고는 그날, 그 시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쁜 그의 스케줄을 생각하면 아주 오랫동안, 필이 곤란해 할 만큼 오랫동안 그 보고서들을 쳐다봤던 노아는 그것들을 책상에 그대로 놔둔 채 일어나 윌셔 그랜드 호텔로 향했다. 다른 곳에서 약속이 있었지만 구태여 약속 장소를 바꾸고 뻔히 감독이 ‘네가 왜 여기에?’ 라는 표정을 지을 것을 알면서 크랭크 인 파티 현장에 나타났다.
스스로도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노아는 자신을 보고서 덤덤한 얼굴을 하는 헤일리를 보며 깨달았다.
메이슨과 같은 시선을 보내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고.
노아는 헤일리를 천천히 위아래로 쳐다봤다. 눈이 달렸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헤일리와 메이슨이 얼마나 닮지 않았는지 세세하게 설명할 수 있을 터였다. 키, 얼굴, 체형, 옷이나 구두까지도 전혀 달랐다. 마치 헤일리와 메이슨의 보고서처럼 노아가 기억하고 있는 메이슨과 헤일리 사이에는 어떠한 곳에도 공통점 따위는 없었다.
헌데도 노아는 그를 보며 메이슨을 떠올렸다. 그, 살짝 당황했으면서도 덤덤하게 웃는 표정이나 시선이 아주 닮았다고 생각했다.
십 년 전 헤어질 때도 딱 저런 표정이었는데.
노아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스스로에게 미쳤다고 생각하면서 금세 연회장을 나섰다. 다음 스케줄까지는 시간이 좀 있었지만 더 오래 헤일리를 쳐다보고 있다간 정말로 그가 메이슨이라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보고 싶어서 왔다가 마음이 깊어질까 무서워서 돌아가다니. 자신이 꼭 사랑에 빠진 것처럼 군다는 점이 우스워 노아는 거래처 인물을 만나는 내내 피식 웃었다.
확실히 헤일리에게 느끼는 감정이 불호는 아니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길거리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도 그는 오지랖이기는 했지만 자신을 구했다. 마치 메이슨처럼.
노아는 어렴풋하게 ‘어쩌면.’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리고 비지니스 룸에서 나와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필을 만나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려는 순간, 짙은 싸구려 샴페인 냄새와 함께 헤일리가 나타나 그를 잡아챘다. 그의 다급한 표정에 끌려 뿌리치지 못한 사이에 장소는 어느새 호텔 방 안에 서있었다.
노아는 숨을 몰아쉬며 문 앞에서 문고리를 꽉 쥐고 있는 헤일리를 기가 막힌 눈으로 쳐다봤다.
술은 마시지 않는 것처럼 빨간 펀치 잔을 들고 꼭 메이슨처럼 웃더니, 아직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에게선 머리가 아플 만큼의 술 냄새가 나고 있었다.
호텔방까지 뛰어 들어오기 전에도 그의 옷차림은 흐트러져 있었고 목덜미엔 땀내음이 흘렀으며 뺨은 붉었다. 그에게서 물씬 풍기는 음란한 기운에 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남자를 자신이 ‘어쩌면’ 메이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니. 노아는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만큼 최근의 헤일리가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아의 차가운 시선에 멈칫 돌아보는 남자는 ‘그’ 헤일리가 맞았다. 짙은 술 냄새를 풍기며 나타나 ‘나는 섹스 할 생각밖에 없다’는 식의 행동을 하는 남자.
“…….”
메이슨은 차가운 노아의 시선을 맞으며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당혹스러운 순간에도 그렇지 않은 척을 하는데 도가 튼 메이슨조차도 지금 이 순간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짓인지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그의 시선이 아주 차가웠고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메이슨은 입술을 달싹였다.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저기……, 제가 ‘누군가 당신을 해치려고 하는 것 같아서 데리고 여길 들어왔다’ 라고 하면……, 안 믿으시겠죠?”
메이슨의 말에, 더 차가울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던 노아의 눈이 더 싸늘하게 식었다.
“나를 해치려고 했다구요. ――누가 말입니까?”
노아는 들어나 보겠다는 듯이 물었고 메이슨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론과 애슐리요. 라고 솔직히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론과 애슐리가 누군지 노아에게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메이슨이 입을 다물고 난처하게 웃자 노아는 찬찬히 그를 차가운 눈으로 훑었다. 이 새끼가 약을 한 건지 술을 마신 건지 가늠이라도 하겠다는 투였다.
왜 이런 순간에 딱 맞는 변명은 없는 걸까. 하기사, 사람을 다짜고짜 호텔방으로 끌고 들어왔는데 상대를 설득시킬 만한 변명거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딴 게 있었으면 세상에 강간으로 잡혀 들어가는 놈은 한 놈도 없을 테니까.
메이슨은 눈을 굴리다가 “그게……,” 하고 말끝을 흐렸고 노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노아에게 자신의 이미지가 어떤지 메이슨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쓰레기에서 ‘생각보다 괜찮은 쓰레기’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당장 몇 달 전에 널 좋아하지 않겠다고 했던 남자는 사사건건 끼어드는 것도 모자라 갑자기 뛰어들어 그를 호텔방 안으로 밀어놓고 제대로 된 변명도 못하고 있었다.
메이슨이 머뭇거리자 그가 싸늘하게 웃었다.
“할 말이 없다면 내가 멋대로 생각하죠.”
노아는 차갑게 말하고 경멸스런 눈으로 쳐다보다 문 앞에 서있는 메이슨을 지나쳐 문을 열려고 했다.
“잠깐, 잠깐만요. 레이칼튼 씨.”
메이슨은 필사적으로 그를 문에서 떼어놓으며 그를 붙잡았다. 밖에 아직 아론과 애슐리가 있을지도 몰랐다. 문 앞을 떠나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노아가 왜 붙잡냐는 듯 차갑게 쳐다봤고 메이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타이밍에 이런 한숨은 좋지 않다는 걸 아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맞아요. 제가 발정이라도 났나봅니다.”
메이슨이 착잡한 말투로 말하자 노아는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싶은 눈으로 쳐다봤다.
“제가 실수한 건 아는데 잠시만 같이 있어주세요. 10분―, 아니, 5분이라도 좋으니까―….”
메이슨은 문 뒤의 기척을 예민하게 살피며 말했다. 바스락,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분명 들렸다. 아직 밖에 있었다. 아론과 애슐리가.
메이슨은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노아를 올려봤다. 노아가 천천히 아주 불쾌하다는 듯이 불렀다.
“헤일리. 아니, 러스크 씨.”
아주 약간 친근해져 헤일리라고 불렀던 것을 정정하며 그가 웃었다. 그 해사한 미소에 메이슨이 움칠했다.
“당신에게서 나는 싸구려 샴페인 냄새가 아주 역겨워요.”
약은 안 했습니까? 당연히 했겠죠? ―그가 차갑게 물으며 미간을 구겼다. 기분 나쁜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얼굴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혼자 했던 착각 때문에 아주 불쾌한 상태고, 당신의 존재는 아주 신물이 납니다.”
노아는 정말로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한 투였다. 메이슨은 입술을 달싹였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웃고 있는 그의 눈에는 실망이나 상심 같은 감정이 고스란히 보였는데, 어째서 그런 눈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 아니 헤일리에게 뭘 기대한 걸까.
노아는 메이슨의 풀어진 셔츠 자락을 경멸 어린 눈으로 쳐다보다가 문 앞에 선 그를 다시 밀어내고 문고리를 잡았다.
메이슨은 사실 그를 보내주고 싶었다. 메이슨도 노아에게 경멸 받는 건 내키지 않았고 이유 모를 노아의 상심도 신경 쓰였다.
하지만 그를 보내줄 수는 없었다. 문밖에 누가 지키고 서있는지 뻔히 알고 있는데 어떻게 보낸단 말인가.
메이슨이 그의 팔을 붙들자 그가 짜증을 삼키듯 이를 깨물며 돌아봤다. 그의 녹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고 메이슨은 그의 건조한 눈가를 확인하면서도 마른 침을 삼켰다. 울고 있지 않은데 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자신이 이 남자에게 취약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말을 하는 게 통할까 생각하면서도 방법이 없었다.
“5분―, 아니, 10분만 함께 있어주면, 메이슨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레이칼튼 씨,”
잠시만 나가지 마세요, 라는 말은 마저 할 수가 없었다. 노아가 그대로 그의 배를 강하게 걷어찼기 때문이었다. 메이슨은 쿠당탕 구르며 방 안으로 날아갔고 노아는 열이 오른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숨을 내쉬었다.
“큭―,”
신음하며 구르는 메이슨의 모습에 노아는 코웃음을 치며 타이 매듭에 손가락을 걸어 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아아. 진짜 씨발―….”
나지막이 중얼거린 그가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바닥에 툭 던지듯 내려놓으며 걸어왔다. 메이슨은 배를 쥐고 주춤거리며 그를 쳐다봤고 노아가 그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일으켜 방 안 쪽 깨끗한 시트가 깔린 베드 위로 내던졌다.
털썩, 매트가 튀었고 침대 위로 엎어진 메이슨은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가 빨랐다. 그는 메이슨의 뒷머리를 강한 힘으로 침대에 찍어 누르며 불렀다.
“러스크 씨.”
낮은 음성은 아주 위험스러웠다. 메이슨은 뒷머리를 잡혀 꼼짝도 못하는 상황에서 마른침을 삼켰고 그 음성이 천천히 목덜미에 닿았다. 뒷목 근처에 뜨거운 숨이 닿았고 곧 그의 서늘한 목소리가 목덜미를 타고 들렸다.
“정말로……, 그렇게까지 발정을 참을 수가 없어요?”
“레이, 큭―,”
노아의 손이 엎드려 있는 메이슨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살짝 열린 셔츠 깃을 붙잡았다. 그리곤 그대로 부욱, 옷을 찢듯이 벌렸다.
투두둑, 단추가 떨어지고 옷 솔기가 찢어지며 셔츠가 난잡하게 벌어졌고 목덜미에 닿을 것처럼 가까운 입술이 “좋아요.” 하며 나직이 속삭였다.
“그래, 당신이 그렇게까지 잘한다던 씹질, 구경 한번 해보죠.”
* * *
아론은 눈앞에서 닫힌 문에 기가 막힌 얼굴을 했다. 대체, 뭐였지?
“뭐야, 방금 그거?”
뒤늦게 뛰어온 애슐리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고 아론은 입을 다물고 닫힌 문을 쳐다봤다. 닫힌 문은 당연히 다시 열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이 문을 부숴서 열 상황도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황은 간단했다. 눈앞에서 노아를 놓친 것이었다. 금고를 해치우고 그들의 목숨을 구할 유일한 끈이 누군가에게 낚아채져 사라졌다.
“이게 뭐야, 대체!”
애슐리가 비명처럼 소리 질렀고 아론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일이 엉망이 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은신처를 나와 노아를 찾는 것은 도박에 가까웠다.
노아는 굉장히 예민한 편인지 보디가드와 함께 하지 않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개인적인 연락처 역시 당연히 알 수 없었고 오늘 이 호텔에 온다는 것도 그의 거래처 사장의 스케줄을 얻어내 파악한 것이었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은신처를 버리고 나왔다. 한 번 은신처 밖을 나온 이상 굉장히 위험해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노아와의 일만 잘 해결된다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보디가드를 대동하지 않은 노아와 만나 거래를 제안하려는 그 직전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금발의 남자가 노아를 붙잡더니 다짜고짜 그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놈은 노아를 끌고 가며 뒤를 돌아보았고 아론과 눈이 마주쳤다. 놈은 마치 자신들의 의도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고 아론은 본능적으로 놈을 붙잡기 위해 뛰었다. 놈과 가까워져 노아든 놈이든 붙잡으려고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그가 골목을 꺾자마자 보인 방의 문을 잡아 열더니 그대로 노아를 밀어 넣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기 직전, 마지막으로 마주쳤던 놈의 두눈을 떠올리자 왠지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그놈?”
아론의 말에 애슐리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되물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헤일리 러스크였잖아.”
노아를 좋아한다고 자살기도까지 했던, 그 걸레. 그녀가 손톱을 깨물며 중얼거렸고 아론은 조금 눈을 깜빡거리다가 다시 닫힌 문을 쳐다봤다.
그런가? 연예인이라서 눈에 익은 건가? 아론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뭣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약간 더 그 앞을 서성이며 노아가 혹시 나오지 않을까 기다리다가 Zii의 연락망 프레드의 전화를 받았다.
?너네 거기서 뭐해? ―팀원 모이고 있으니 빨리 튀어.?
아무리 Zii가 손을 놓았다고는 해도 그렇지, 그가 혀를 차며 말했고 하얗게 질린 아론과 애슐리는 황급히 호텔을 빠져나가 도주했다.
노아와 만나는 건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 * *
노아는 머리로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밑에 깔린 헤일리의 하얀 목덜미를 내려 봤다. 떨리는 그 목덜미에 말간 땀이 맺히고 있었다.
노아가 생각하기에 이 남자는 정말로 자신을 화나게 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누가 그에게 ‘이렇게 하면 노아가 미친놈처럼 날뛸 거야.’ 하고 귀띔이라도 해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10분을 함께 있어주는 대가로 메이슨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그가 그 말을 뱉었을 때 노아는 기폭제를 넣은 것처럼 머리가 쾅 터지는 것을 느꼈다. 안 그래도 이 남자에게서 메이슨을 느꼈던 스스로에 대한 짜증과 혐오, 남자에 대한 경멸로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10분. 이 걸레 같은 남자가 말하는 10분이 손만 잡고 앉아 환담을 나누는 10분이 아니라는 건 뻔했다. 그럴 거라면 애초에 이 엿 같은 호텔 방에 그를 밀어 넣지도 않았겠지.
아아. 노아는 이 싸구려 같은 남자가 정말로 싫었다. 아주 잠깐 그를 괜찮다고 느낀 것 탓에 더더욱 그랬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확실히 알고 있었고 아주 약해진 순간을 파고들어 그것을 이용했다.
노아는 헤일리의 이 쓰레기 같은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10분이 아니라 열흘이라도 메이슨에 관한 작은 단서를 들을 수 있다면 노아는 기꺼이 시간을 낼 것이었다.
물론 그가 생각했던 그런 좋은 시간은 아니겠지만.
“…―흠.”
노아는 기대감인지 공포인지 여하간 가늘게 떨리는 헤일리의 목덜미를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그의 감색 재킷의 뒷목을 붙잡아 끌어내렸다.
“저기, 잠깐만요, 잠깐,”
그가 시트에 파묻힌 얼굴을 들며 몸을 뒤집으려고 했고 노아는 땀이 고인 그의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힉, 그가 숨을 들이켰고 노아는 천천히 이를 세웠다.
“――!”
아드득, 잇새로 살과 근육이 씹히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렸고 그의 어깨가 바짝 굳었다. 노아는 잔인하게 웃으며 혀를 내밀어 피맺힌 입술을 핥았다.
메이슨은 입술을 깨물며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고통을 삼켰다. 목덜미에서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
고통을 참는 덴 이력이 났지만 헤일리의 몸이라서일까. 통각이 예민한 건지 온몸이 긴장한 것이 느껴졌다. 그가 자신이 깨물어 상처 낸 목덜미를 야하게 혀로 핥았다.
“잠, ―흣,”
그 섬뜩한 감각에 메이슨은 온 힘을 다해 그에게서 몸을 빼려고 했지만 예전 자신의 집에서 그를 마주쳤을 때와는 달랐다. 그때의 노아는 약간 정신이 나가있던 상태랄까, 그의 뺨을 후려치고 멱살을 쥐면서도 그것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의 그는 패닉으로 온몸을 떠느라 제대로 힘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노아는 달랐다. 어깨와 뒷머리를 누르는 힘은 헤일리의 악력으로는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뭐……, 그래요. 나는 당신이 정말로 싫기는 하지만,”
그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말했다. 귓불에 그의 말랑한 입술이 살짝, 살짝 깨물 것처럼 닿았다.
“좀 궁금하긴 하네요. ―대체 얼마나 잘하는지.”
기억나죠? 당신이 심장마비에 걸리기 전날 내게 했던 말들. 그 짓을 그렇게 잘한다면서요? ―그가 귀 아래를 깨물 것처럼 핥으며 말했다. 메이슨은 숨을 삼켰다.
이런 전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내가 발정이 났나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10분만 함께 있어주세요.’ 라고 하면서도 이렇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절절매며 무슨 말이든 하고, 시간을 때우고, 밖에 인기척이 사라지면 죄송했다고 말하며 돌아가는 길에 보디가드를 부르는 것이 어떻냐고 넌지시 말해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메이슨은 재킷을 벗겨내고 셔츠를 손목에 단단히 감는 그의 움직임에 입술을 깨물며 숨을 들이켰다. 잠깐만요,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레이칼튼 씨. 그만 하세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노아의 차가운 손이 배꼽을 더듬고 가슴께로 올라왔다. 그가 젖꼭지를 더듬다 이내 손으로 쥐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 맞다. 당신이 이런 걸레였지.”
노아는 아직 아무것도 안했는데 벌써 잔뜩 서있는 메이슨의 젖꼭지에 기가 막힌다는 듯이 중얼거렸고 메이슨은 귓가가 화끈하게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식은땀이 흠뻑 날 정도로 찢어진 목덜미가 아프고, 노아에게 깔려 애무당하고 있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 미칠 것 같은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스스로의 반응이었다.
네가 이런 걸레지. 노아가 질린 것처럼 중얼거려도 할 말이 없었다. 메이슨은 그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흠칫거리며 반응하는 몸과 신음을 참는 것만으로도 땀이 줄줄 흘렀다.
“――, 흡,”
메이슨은 숨을 삼켰다. 노아가 아랫도리를 더듬었다. 이쪽도 서있는지 보자는 듯이.
노아의 손에 메이슨의 발기한 성기가 가득 쥐어졌다. 그는 옷 위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단단함을 느끼며 메이슨의 귓가를 빨았다.
“차라리 당신이 이런 남자라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그는 귓가에 대고 작게 중얼거리며 흠칫 떠는 메이슨을 바로 눕게 만들었다. 메이슨은 갑자기 보인 노아의 얼굴에 확, 얼굴을 붉혔다.
“아니, 저기……,”
그가 차가운 얼굴로 경멸하듯 쳐다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눈가에는 의외로 옅은 열기가 있었다.
그는 붉어진 메이슨의 목덜미를 보며 피가 남은 제 입술을 핥았다.
메이슨은 침을 삼키며 그의 붉은 입술을 홀린 것처럼 쳐다봤다. 열이 오른 그의 눈에 언젠가 꾸었던 꿈 생각이 떠올랐다.
툭, 툭, 단추와 지퍼가 내려가고 바지가 끌어내려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불쑥 차가운 공기 중에 드러난 허벅지가 떨렸고 메이슨은 “잠시, 잠시만―,” 하고 그를 말리려 했지만 양 손목은 셔츠에 감겨 있고 두 다리는 반쯤 내려간 바지 탓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노아가 손톱으로 가슴께를 할퀴듯 쥐며 겨드랑이 근처를 깨물었다. 노아는 흔적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듯 벌써 여러 군데 몸에 잇자국이나 순흔을 그리고 있었다.
겨드랑이께부터 가슴, 그리고 젖꼭지까지 노아의 입술이 닿았고 메이슨은 숨을 삼키며 몸을 웅크렸다. 그 예쁘고 부드러운 입술과 단단하고 청결한 이가 가슴께를 물고 핥고 빠는 것에 배꼽께가 뻐근했다.
벌어지는 허벅지를 조이고 싶었지만 노아가 바지를 벗겨내고 다리 사이로 자리를 잡았다. 무릎 뒤를 쓸어내리며 들어 올리고 브리프를 벗기기 위해 그가 손을 뻗었다. 이미 발기할 대로 발기한 성기에선 쿠퍼액이 줄줄 흘러 브리프를 적시고 있었다.
“으…―,”
메이슨은 이건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때의 꿈도 무섭도록 진짜 같았다. 꿈에서 그가 물고 빨았던 목덜미는 깨어나서도 지끈거릴 만큼 선명한 꿈이었다. 생생한 감촉이나 물기, 달아오르는 성감 모두가 그때의 꿈보다 또렷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꿈일지도 몰랐다. 이게 현실이라니, 메이슨은 믿을 수가 없었다.
“흐, 으,”
액체가 늘어나 붙는 브리프를 벗겨내고 그가 자신의 손가락을 메이슨의 입에 넣었다.
“빨아 봐요.”
노아는 약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메이슨은 그의 손가락을 뱉어내려고 했지만 차가운 손가락은 침이 가득 고인 입안을 휘저으며 메이슨의 혀를 달구었다. 입술 밖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액체에 메이슨이 침을 삼키기 위해 입술을 다물었고 그가 살짝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그럼 그렇지, 라는 듯이. 그 눈매가 너무나 야해서 메이슨은 숨을 삼켰다.
그는 젖은 손을 빼 메이슨의 다리 사이를 더듬었다. 손가락에 묻은 액체로 메이슨의 애널에 바르며 주변을 문지르던 손가락이 어느 순간 달칵, 무언가를 스쳤다.
그 달칵, 손톱에 걸리는 소리에 메이슨은 멈칫했다.
멈칫한 것은 노아도 마찬가지였다. 노아의 시선이 도르륵 내려가 다리 사이를 쳐다봤다.
“자, 잠깐――,”
일어나려는 메이슨을 찍어 누르며 그가 메이슨의 무릎 뒤를 들어올렸다. 다리가 휙 벌어졌고 그가 고환과 애널 그 중간 즈음을 쳐다보며 하, 낮게 웃었다.
메이슨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것을 바라보는 노아의 표정이 꿈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았다.
“이 걸레 같은…,”
그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메이슨의 고환 뒤에 박힌 작은 다이아 피어싱을 쥐었다.
* * *
“―…어지간히도 아픈 걸 좋아하나보네.”
노아는 바짝 마르는 입술을 핥으며 중얼거렸고 헤일리의 얼굴은 더 할 수 없을 만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가슴께까지 벌겋게 붉어진 것이 마치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노아는 숨을 삼켰다.
헤일리, 이 음탕한 남자는 노아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음란하고 야했다. 애무는커녕 적당히, 더치와이프처럼 넣고 흔들고 사정할 생각이었던 노아는 헤일리의 하얀 목덜미에 맺힌 송골송골 맺힌 땀에 약간 충동적으로 이를 박고 깨물었다.
피가 흐르도록 깨물고 나자 잔인한 마음이 들었고 그 위를 입술로 빨며 그가 입고 있는 옷을 찢어냈다. 그가 흠칫하며 입술을 씹는 턱선이 마음에 들었고 하얀 살에 남은 붉은 자국이 시선을 끌었다.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하자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치 처녀처럼. 셀 수도 없이 많은 남자와 잔 걸레 주제에 말이었다.
당치 않은 내숭이었지만 그 물기 어린 시선과 야한 눈매가 노아의 시선을 붙들었다. 신음이 흘러나와 어쩔 줄을 모르고 입술을 잘근 씹는 하얀 이, 헐떡대는 그의 젖은 목울대에 노아는 은근히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눈가로 열이 오르고 입술이 말랐다.
“아니, 제가 한 게 아니라……,”
헤일리의 애널 앞에 보란 듯이 박힌 다이아를 쥐고 당기자 그가 더듬거리며 변명하듯 말했다. 노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이아 주변과 애널 주변을 8자가 되도록 손톱으로 긁으며 말했다.
“아아, 그렇겠죠. 이런 곳에 피어싱을 박으려면 당연히 다른 사람이 한 거겠지. 어땠어요? 이 음란한 구멍에 물건을 집어넣고 흔들면서 뚫어주던가요?”
노아의 말에 그는 아차 싶은 얼굴을 하더니 “아, 아니,” 하고 다리를 웅크렸다. 벌리지 않으려고 허벅지에 나름 힘을 주는 것 같기는 했는데 얼마나 몸이 야한지 엉덩이를 쥐면 그대로 힘이 풀려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헤일리는 울 것 같은 눈으로 “제발 그만…, 예?” 하고 말했고 노아는 낮게 혀를 찼다.
제발 그만 하라는 건지, 제발 그만 애태우고 넣어달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리를 자꾸 움츠리는 것을 보면 전자인데 음탕해 보이는 입술을 달싹여대니 애달프게 만들려는 속셈 같기도 했다.
노아는 다이아를 손톱에 건 채로 살짝 당기며 그의 고환을 쥐었다.
“으, 하지, 노아……,”
그가 신음처럼 삼키며 달뜬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노아는 왠지 귀가 화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마른 침을 삼켰다. 손을 몇 번 움직여주자 그가 후두둑, 금세 손 위에 사정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얼굴이 울 것처럼 구겨졌고 노아는 손을 뻗어 그의 뒷머리를 가볍게 붙잡았다. 그가 잘근 깨물고 있던 입술이 살짝 벌어졌고 노아는 그 아랫입술을 가볍게 빨았다.
헤일리가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노아는 그 시선에 맹렬하게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역시 닮았다. 닮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조차 화가 날 정도로 이 남자에게 경멸을 느꼈는데도 이렇게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여전히 메이슨의 생각이 났다.
메이슨 같다는 생각을 새삼 떠올리자 눈앞으로 확 열이 올랐다. 노아는 헤일리의 입술을 깨물 것처럼 강하게 빨고 혀를 섞었다. 격렬한 키스에 그가 흠칫하고 숨을 삼키는 것이 느껴졌지만 노아는 더 진득하게 입술을 물고 그의 타액을 삼켰다.
흐읏, 그가 작게 신음하는 것을 핥아 삼키며 노아는 중얼거리듯 입술을 대고 말했다.
“……이름, 불러 봐요.”
내 이름. 그의 입술에 대고 달싹거리자 그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노아는 조르듯이 그 입술 위를 혀로 핥았다. 정액으로 더러워진 손으로 그의 가슴을 문지르고 젖꼭지를 잡아당기며 입술에 입을 맞추자 그가 숨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아, 노아…,”
한껏 거칠어진 숨 사이로 새어나온 이름에 노아는 가늘게 웃었다. 그의 목덜미를 깨물고 쇄골에 흘러 있는 피를 핥고 말라서 갈비뼈가 드러나는 가슴께를 깨물었다. 이어 배꼽을 핥자 그는 진저리를 치며 매달렸다. 허벅지에 진하게 입술 자국을 남기자 그는 후들거리며 어깨를 쥐어왔다. 사정을 참는지 그의 작은 고환이 떨렸다.
노아는 그의 야한 다이아 피어싱을 혀로 핥았고 발갛게 달아올라 있는 그의 애널에 손가락을 문지르다 살짝 밀어 넣었다.
“자, 잠깐, 노아, ―흣!”
애널에 드는 이물감에 그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고 노아는 길게 넣은 손가락으로 안쪽, 피어싱 부근을 눌렀다.
“잠깐? ―하지 말까요?”
노아는 안을 야하게 누르며 물었고 그의 허리가 부들거리며 떨렸다. 헤일리의 눈이 불안하게 굴렀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노아는 눈을 휘어 웃으며 젖은 손가락을 빼고 입술을 핥았다. 바지춤을 푸르고 꺼덕하게 일어난 성기를 꺼내자 그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지는 것이 보였다.
“자, 잠, 잠깐, 저기 그건,”
그건 너무 크, ―애널에 성기를 대고 문지르자 그가 말을 삼키며 숨을 들이켰다. 노아가 그의 목덜미를 깨물며 애널 주름을 밀고 안으로 성기를 밀어 넣으려는 그 찰나였다.
TRRR―――!
질척한 마찰음과 신음소리뿐이던 호텔방에 벨소리가 울렸다. 정신이 바짝 들게 하는 그 벨소리에 메이슨은 화들짝 놀라며 노아를 어깨로 밀어냈다.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더라?
“전화 받으,”
메이슨은 전화 받으라는 말을 채 하지 못하고 숨을 삼켰다. 당연히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노아의 커다란 성기 앞부분이 안으로 우악스레 밀려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어깨의 살을 짓씹을 때보다 날카로운 고통이 허리를 스쳤다.
“하……, 하지,”
메이슨은 입술을 깨물었다. TRRR――, 벨소리는 정신없이 울려댔고 메이슨은 순식간에 식은땀에 젖어서 노아를 밀어냈다.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울리는 벨소리에 노아는 힐끗, 바닥에 던져져 있는 자신의 재킷을 쳐다봤다.
“―….”
메이슨은 숨을 헐떡거리며 노아를 쳐다봤다. 그가 그대로 전화를 무시하거나 혹은 전화가 끊어지기라도 할까 봐 메이슨은 긴장했다.
노아는 잔뜩 긴장한 메이슨의 뺨과 눈매를 찬찬히 보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
“힛……,”
메이슨은 안을 빠져나가는 묵직한 느낌에 허리를 빼며 신음했다. 노아는 낮게 혀를 차더니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재킷 안쪽 주머니에 든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했다.
메이슨은 노아가 전화를 받는 것을 보며 허겁지겁 일어났다. 제대로 다 넣은 것도 아닌데 밑이 빠질 것 같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손이 뒤로 돌려져 있어 빼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순식간이었다.
속옷을 꿰어 입고 아무렇게나 뒤집어진 바지를 허겁지겁 입었다. 단추가 다 떨어진 셔츠는 대충 걸치기만 하고 재킷을 주워들고 한 짝은 여기, 한 짝은 저기에 떨어진 구두까지 구겨 신었다.
힐끗 노아를 쳐다보자 그는 정사의 기운이 남은 나른한 얼굴로 전화를 받으며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쟤랑 무슨 짓을……, 메이슨은 괜히 귓가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문고리를 붙잡았다. 어서 집에 가서 뜨거운 물에 씻고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왜 자신은 오늘 술을 마시지 않았던가. 그는 짙은 후회를 씹으며 문을 열었고 순간, 문고리를 쥔 손을 다른 손이 감싸 쥐며 문을 닫았다.
갑자기 다가온 그림자에 메이슨은 고개를 들었고 노아가 휴대폰을 든 채 서있었다.
“쥐새끼처럼 도망가긴가요?”
“―바쁘신 것 같아서.”
메이슨이 눈을 피하며 말하자 노아는 한손으로 벽을 짚어 그를 가두듯이 몰며 말했다.
“이 방에 들어온 지 십 분은 훨씬 넘었는데, ―그래. 메이슨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메이슨은 완전히 잊고 있었던 이야기에 잠깐 신음하며 문에 바짝 기대섰다.
“저번에 그가 살아 있다고 했죠? 그럼 그가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면 되겠군요.”
“아니 그건 좀―….”
메이슨은 자신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지껄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노아를 쳐다봤다.
“사는 곳은 말하기 어렵지만 그냥 그럭저럭. 이전보다는 훨씬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물론 가끔 곤란한 일도 겪는 모양이지만. ―메이슨은 지끈거리는 목덜미를 의식하며 셔츠 자락을 쥐고 말했고 노아는 눈을 가늘게 그를 뜨고 쳐다봤다.
이 정도로는 안 되겠지…? 노아가 병신도 아니고 이런 말을 듣고 ‘아, 그렇습니까.’ 하고 넘어가 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차가운 독설을 날릴 것 같던 노아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게 다냐, 라든가. 장난 치냐, 라는 말도 없었다. 한참을 가느스름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 메이슨은 입술을 달싹였다.
“미안합니다. 그게, 아무래도 그쪽도 새 인생을 살고 있다 보니까…….”
메이슨이 사과하자 그는 “……말해줄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허세만 부렸군요.” 하고 낮게 웃었다.
“새 인생이라―.”
그가 되묻듯이 중얼거렸고 메이슨은 뺨을 긁적이다가 말했다.
“혹시 메이슨을 찾고 있다면 그만두는 게 좋아요. 아마……, 못 찾을 겁니다.”
“……나는 못 찾을 거다, 이 말인가요?”
나직한 목소리에 메이슨은 고개를 들었다. 노아가 묘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메이슨은 발긋한 그의 입술을 쳐다보다가 “아마도요.” 하고 대답했다.
노아는 옅게 웃었다.
“다른 건 됐으니 하나만 확실히 하죠. ……그가, 정말로 살아 있습니까?”
메이슨은 그를 쳐다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는 가볍게 말하며 문을 짚고 있던 손을 떼었다. 메이슨은 살짝 멀어진 그를 쳐다보다가 옷깃을 추스르며 문을 열고 나섰다. 그대로 나가려던 메이슨은 문득, 방 안을 돌아보았다.
노아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메이슨은 “저기요.” 하고 그를 불렀다.
“근데……, 메이슨은 왜 찾으시는 겁니까?”
예전에 엘리베이터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했지만 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패닉에 빠져 울었을 뿐이었다.
이번의 질문에 노아는 메이슨을 잠시, 제법 오랫동안 쳐다봤다.
“그에게 직접 물어보시죠. 당신은 연락이 되니까, 무슨 사이냐고 직접 물으면 되잖아요?”
그는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고 메이슨은 ‘내가 모르겠으니 직접 묻는 건데요’라는 말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가 왜 자신을 찾았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참. 돌아갈 때 웬만하면 비서분이랑 보디가드 부르세요.”
요즘 세상이 영 흉흉하니까요. 메이슨은 한 마디 덧붙이며 그에게 꾸벅 인사하고 문을 닫았다.
“…….”
철커덩. 문의 자동 잠금장치가 잠겼다.
노아는 헤일리가 빠져나간 문을 한참 쳐다보다가 쥐고 있던 휴대폰을 다시 들어 귀에 가져다 대고 물었다.
“아까 했던 그 이야기, 다시 한 번 해주세요. 필.”
?……괜찮으십니까??
필은 조심스럽게 물었고 노아는 “아아.” 하고 적당히 대답하며 질척한 냄새가 남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게……, 아론 그린과 애슐리 수이가 그 근방, 윌셔 그랜드 호텔 근처에서 있는 것이 목격 되었다고 합니다.?
필의 음성은 좋지 않았다. 아론 그린과 애슐리 수이. 애슐리는 메이슨과 함께 사라졌다고 알려진 여성 팀원이었고, 아론 그린은 벙커에서 발견된 시신의 주인으로 알려진 사내였다.
노아는 힐끗, 헤일리가 나간 호텔 방문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게 뜻하는 바는 뭔가요.”
그는 알면서도 물었고 필은 침음을 삼키며 말했다.
?……죽은 것으로 알려진 아론 그린이 살아있으며 따라서, 알타의 벙커에서 발견되었던 남자의 시신은……, 메이슨 테일러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메이슨 테일러는 사망한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필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렵다는 듯이, 살짝 거칠어진 숨으로 말했다.
“……그래요.”
노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찮으십니까??
걱정으로 가득한 필의 음성에 노아는 “음……,” 하고 낮게 웃었다.
“글쎄요―…. 일단은.”
노아는 일단은, 하고 입을 다물었다. 필은 노아가 호텔방 안에 있다는 이야기에 모시러 가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고 노아는 끊어진 휴대폰을 옆에 툭 던져 놓고 다시 헤일리가 나간 방문을 쳐다봤다.
‘아마……, 못 찾을 겁니다.’
아마도요. ―헤일리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노아는 픽, 가늘게 웃었다.
“아마도라니……, 거의 다 잡았는데 말이죠.”
안일하네요, 당신도. 노아는 작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