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ill the lights-15화 (15/29)

15

“응? 아니, 정말 꼭 나 보란 듯이 내 눈앞에서 그러더라니까?”

조이는 몇 번을 말해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며 믿지 않는 삼촌 제이슨에게 다시금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같은 걸 찍으려는 커플이 있었어. 근데 초짜인지 제대로 된 걸 찍지는 못하고 한참 문 앞을 서성이다 가더라구.”

조이는 정말 웃기지 않냐고 한참 웃었다.

?그래서? 어디, 어디에 팔기로 했다구??

“아직 흥정 중이야. 선데이와 INSIDER에 독점으로 사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둘 다 아주 긍정적이더라구. 가격 조절만 남은 거지.”

조이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당연히 그렇지. 자신이 찍은 그 사진은 그 정도 가치가 있었다. 어떤 신문사든 탐낼 그런 사진이었다. 사람들은 반짝이던 헐리웃 아역스타가 몰락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자신들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헐리웃 아역스타가 재활원에 들어갔다는 기사보다, 재활원에서 탈출했다는 기사가 더 비싼 값에 잘 팔렸다.

이번 기사도 틀림없이 대박이었다.

상대는 그를 가엽게 여기던 노아 레이칼튼. 그리고 그걸 기회 삼아 다시 재기하려던 헤일리. 기사가 터지면 사람들은 헤일리를 향해 역시 동정의 여지가 없는 쓰레기라고 비난을 퍼부을 것이었다.

제이슨도, 안나도 다들 신이 나서 기사가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이는 그때 거기서 돌아가지 않은 것이 승부처였다고 자평하며 킬킬거렸다.

“아, 전화 들어온다. 선데이가 먼저군.”

그녀는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제이슨의 전화를 통화대기로 돌렸다.

“안녕하세요? 가격은 생각해 보셨나요?”

조이가 거만한 투로 묻자 상대는 ?아, 그게 말입니다.? 하며 말했다.

?저희 쪽에서는 그 사진을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

십만 달러나 십이만 달러 선에서 흥정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조이는 의외의 말에 되물었다.

“뭐라구요?”

?죄송합니다. 그게, 다른 신문사를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늘 좋은 값을 쳐주던 선데이의 여기자는 약간 난처하고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곤 조이가 무슨 말을 할 새도 없이 다짜고짜 전화를 끊었다.

“하?”

조이는 얼굴을 구기며 끊어진 전화를 쳐다봤다.

“뭐, 뭐야 이거. 지들 아니면 신문사가 없는 줄 알아?”

조이는 잔뜩 짜증을 내며 내뱉었고 그때였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엔 INSIDER였다.

“아, 기자님? 가격은 생각해 보셨어요?”

조이는 이번엔 조금 상냥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가격? 아냐. 우리는 그거 안 산다고 전화한 거야.?

“무슨 말이에요? 이 사진을 안 산다구요?”

잡지가 두 시간 만에 동이 날, 이런 엄청난 기사를 안 산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레이노아와 사람들이 좋아하는 헤일리의 몰락 기사인데, 그걸 안 산다고?

?조이. 너도 정신 좀 차려. 생활비에, 페라리까지 뽑아주던 친척동생 등골까지 빼먹을 생각 그만 하고. 헤일리가 불쌍하지도 않아??

“뭐, 뭐가 어째요?”

조이는 기가 막혀 되물었다. 뭐가 어째? 한 시간 전 연락했을 때만 해도 ‘우와, 헤일리가? 아 그 쓰레기…, 명불허전이네.’ 라고 했던 기자가 갑자기 훈계조로 말하는 것에 조이는 뒷목이 다 뻐근할 지경이었다.

?여하간 그렇게 살지 말라구.?

그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조이는 끊어진 전화기를 들고 새빨개진 얼굴로 한참을 서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조이는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일의 흐름에 입술을 깨물었다.

?얼마에 사준대? 십만? 십이만? …설마 이십??

통화 대기로 돌려놨던 제이슨의 전화를 받자 제이슨이 신이 나서 묻는 것이 들렸다.

“아니. 선데이도 INSIDER도 사진을 안 산대! 기가 막혀서…!”

?뭐??

제이슨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고 조이는 머리를 마구 긁었다.

“대체 왜? 헤일리가 이렇게 미친 짓을 저질렀는데……, 심지어 상대가 레이노아라구!”

알지? 다들 그 남자의 사생활을 얼마나 목이 타게 기다리는지. ―조이가 씨근덕대며 말했고 제이슨은 ?그게 대체 말이 돼? 네가 너무 높게 부른 거 아냐??하며 조이를 탓했지만 아니었다.

“아예 값은 부르지도 못했어. 전화 받자마자 안 산다고 하더라니까?”

?뭐어? 그게 말이 돼??

“INSIDER 팀장은 내게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그랬어.”

조이는 허……,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힌 듯 중얼거렸고 제이슨은 ?그 베일에 싸인 레이노아의 사생활을 안 산다니, 다들 미친 거 아냐??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 그 레이노아의……, 뭐야, 설마 그쪽에서 막은 건가?”

조이는 멈칫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제이슨이 ?그게 말이 돼?? 하고 되물었지만 조이는 눈을 굴렸다.

생각해보면 세상 모두가 레이노아의 사생활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가 뭘 먹고 사는지, 누굴 만나는지, 섹스 취향은 어떤지, 그야말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잠자리 취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기사라면 자신이라도 잡지를 살 터였다.

헐리웃은 팔리는 거라면 스타가 ‘나 진짜 미치겠다고!’ 하고 소리 지르며 잘라낸 머리카락까지 파는 곳이었다. 레이노아는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연예인보다 더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었고 당연히 그의 기사는 매일 같이 쏟아져 나와도 모자랐다. 하지만 레이노아에 대한 소식은 공식석상에서의 이야기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터진 것들 외에는 없었다.

파파라치들이 얼마나 개 같은 놈들인지 조이도 알았다. 사진 한 장 찍자고 차 앞으로 뛰어드는 것이 일상인 미친놈들이었다.

헌데, 그놈들은 왜 레이노아의 사진을 안 찍지?

“하……?”

조이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세상에 그 징그러운 파파라치 놈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할 수 있었다면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왜 고속도로에서 차를 멈추지 못했겠는가.

?조이??

“…―이게 말이 돼?”

그러나 조이는 이 엄청난 사진을 선데이도, INSIDER도 거절했다는 것보다, 노아의 파파라치 사진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에 경악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노아가 수도승도 아니고 그 나이에 아무도 안 만났을 리는 없었다. 아니 정말로 아무도 안 만났다고 해도 ‘왜 아무도 만나지 않는가’ 라는 창피한 기사가 떠야 정상이었다. ―왜냐면, 대중이 그걸 원하니까!

?다른 신문사에 연락했어? 내가 해볼까? 네가 역시 값을 너무 불러서 그런 게―,?

조이는 이 기가 막힌 사실을 못 알아듣고 아직도 딴소리를 하는 제이슨의 전화를 신경질적으로 끊었다.

그녀는 손톱을 잘근거리며 씹었다. 휴대폰에 넣어놓은 헤일리와 노아의 사진을 확인했다. 대박이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박은커녕 한 푼도 만지지 못할 상황이었다.

아니, 돈은 둘째 치더라도 헤일리를 완전히 매장시킬 수 있을 거라고, 그 무덤덤한 얼굴 앞에 대고 ‘내가 두고 보라고 그랬지?’ 하며 의기양양하게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이는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며 눈을 굴렸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기껏 이런 엄청난 사진을 찍었는데, 헤일리를 매장 시킬 수 없다니. 자신은 걸레인 주제에 생활비를 달라는 그녀를 향해 벌레 보는 듯한 시선을 건넸다.

그 헤일리에게 네가 내 생활비를 주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걸, 레이노아에게 찝쩍대다 못해 그를 호텔방 안에 끌고 들어가는 또라이 새끼라고 온 세상에게 비난 받게 된다는 걸 알려줘야 했다.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그때였다.

――딩동.

딩동. 딩동. 그녀의 아파트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조이는 미간을 구기며 시계를 확인했다. 밤 11시. 사람이 찾아올만한 시각은 아니었다.

“누구세요?”

조이는 살짝 불안해하며 물었다. 혹시나 헤일리가 찾아온 것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달 헤일리에게 독촉장에 대해 따지러 갔을 때 헤일리는 약간 미친 것 같았다.

번들거리는 눈으로 총을 쏘아대며 비열하게 웃었다. 자기 인생을 망치려면 보디가드부터 구하는 게 좋을 거라던 그 무서운 얼굴은, 몇 번이나 꿈에 나와 그녀를 떨게 했다.

설마 진짜 헤일리가 찾아온 건 아니겠지? 그녀가 불안에 떨며 체인을 건 문을 살짝 열었고 그 틈으로 키가 아주 큰 남자가 보였다.

“늦은 밤 죄송합니다. 필 햅슨이라고 합니다.”

그는 문틈으로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단정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명함의 한 면에는 유려한 필기체로 레이칼튼이라고 쓰여 있었다. 뒤집자 개인비서 필 햅슨이라는 그의 이름이 보였다.

“노아 레이칼튼 씨의 개인비서입니다. 선데이와 INSIDER에 팔려 했던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조이는 마른 침을 삼키며 체인을 풀어 문을 열었다. 늘 레이노아의 뒤에 서있는 걸로 유명한 그의 비서가 맞았다.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러 왔다고?

“들어오세요.”

조이가 허락하자 그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며 안으로 들어왔다. 조이는 그를 소파에 앉게 하며 물었다.

“사진을 사러 온 건가요? 가격은 얼마나 생각하고 있다죠?”

조이는 살짝 흥분을 감추며 물었다. 신문사에서 전혀 사주질 않아 돈은 만질 수 없나 했는데 신문사가 아니라 레이칼튼 쪽에서 사진을 사준다면 생각보다 더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헤일리를 매장하는 건 할 수 없었지만 그의 사진은 또 찍으면 됐다. 그쪽이야 또 줄줄 흘려줄 테니까.

“저희는 그런 거래는 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제안하는 건 데이터 회수를 대가로 당신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나 필은 조이의 생각과는 다른 말을 했다.

“무슨 말이죠? 회수?”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고? 조이는 필의 냉담한 말에 기막혀하며 되물었다.

“예. 조이 크랭크 씨. 당신은 그 사진을 어떤 신문사에도 팔 수 없을 겁니다. 그 어떤 신문사에서도 레이칼튼의 사생활은 사지도, 팔지도, 언급하지도 않습니다.”

그게 규칙입니다. 필은 덤덤히 이야기하며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언론 통제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런 짓을 한다구요?”

“예. 사생활에 관해서는요.”

그 외의 것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는 식이었다. 조이는 입매를 일그러뜨리며 그를 쳐다보았고 그가 꺼내놓은 서류를 밀었다.

“데이터 전체를 제게 넘기고 함구하는 대가입니다.”

데이터 전체를 넘기고 입을 다무는 대가. 조이 크랭크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 서류에 나온 문장은 그게 다였다.

조이는 파르르 떨며 그를 쳐다봤다.

“내게 어떠한 보상도 없이 데이터를 가져가겠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요? 착각하지 마시죠, 이건 내 사진이에요!”

“크랭크 씨.”

필은 힐끗 손목에 찬 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협상을 하러 온 게 아니라 협박을 하러 온 겁니다.”

그의 눈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를 한참 쳐다본 조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주춤 물러났다.

“하―…, 하하.”

기가 막혀……. ―그렇게 중얼거린 조이는 더듬, 컴퓨터 책상 옆에 올려놓은 휴대폰을 들었다.

“너희가 그렇게 잘났단 말이지―,”

필의 눈썹이 살짝 구겨졌다. 휴대폰을 보며 미친 여자처럼 웃는 그녀의 모습에 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멈추려 했지만 그녀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웃는 것이 더 빨랐다.

그녀는 책상에 걸터앉듯 기대며 휴대폰의 전송 목록을 필에게 보였다.

“요즘 내 친척들이 헤일리에게 화가 많이 나 있거든요. 신문사에 파는 건 못해도 우리끼리 보고 즐기는 건 괜찮겠죠. 이건 제 사생활이니까요.”

그녀의 문자 발송 목록에는 최근 헤일리에게 받던 생활비를 받지 못해 악에 받힌 일곱 명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특히 헤일리에게 패악을 부리다 잡혀간 안나의 번호는 가장 윗줄에 있었다.

필의 미간이 구겨졌다. 약간 낭패한 듯한 그의 시선에 조이는 긴 웃음을 흘렸다.

“여기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사생활을 인터넷에 쓰는 것을 징그러울 정도로 좋아하는 이들이죠.”

“크랭크 씨.”

“어머나. 벌써 산드라가 트위터에 글을 남겼군요?”

휴대폰을 확인한 조이는 신나서 말했다. 벌써 하나 둘, 글이 퍼지고 있었다.

“포기하시죠. 세상 모든 언론사를 다 막을 힘이 있어도 소용없어요. 이건 하느님도 못 막거든요.”

그녀의 문자를 타고, 그리고 SNS 사이트를 타고 어느새 22명의 사람이 자신의 계정에 사진을 올렸다. 사진이 눈 깜짝할 새에 세상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될 거라는 걸 조이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필의 무표정에 조이는 휴대폰을 닫으며 말했다.

“그리고 어차피 레이노아도 나쁠 것 없지 않나요? 안 그래도 헤일리가 짜증날 텐데.”

이 기회에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 거예요. 그녀가 입매를 비틀어 웃었고 필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아닙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지시를 받은 필은 이윽고 전화를 끊고 그녀를 쳐다봤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크랭크 씨.”

필은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순식간에 수백, 수천 명이 보게 되는 SNS는 아무리 노아라도 막을 수 없었다. 가끔 그가 하느님도 못하는 짓을 해내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알아두시는 게 좋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도 막지 못하실 거라는 걸요.”

그러니 기도는 너무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고 그는 서류를 가방에 넣으며 일어났다.

“당신, 그리고 당신의 문자를 받은 친척 일가까지. 모두, 잠깐의 수다를 대가로 많은 것을 잃게 될 겁니다. 언론이 침묵하는 것은 그들이 노아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미리 아셨다면 좋았을 텐데요.”

“뭐―…,”

“자신은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셨다면 금세 아시게 될 겁니다. 당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는지, 말입니다.”

친구, 가족, 재산, 사회적 지위 따위는 물론, 자존심, 동정심, 갖가지 인간적인 마음에서부터 인간성―스스로가 인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식까지. 종국에는 삶에 대한 의지까지 모두 잃게 될 것이었다. ……필은 멈칫 굳어 있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약간 웃어 보였다.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것 중 최악을 고른 사람을 향한 비웃음이었다.

* * *

메이슨은 이게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확실히 꿈과 현실은 달랐다. 꿈을 꾸면서 아무리 ‘현실 같네’, 라고 해도 현실은 꿈보다 더 지독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노아가 그 차고 단단한 손가락으로 허리춤을 쓸어내리고 그 말랑하고 예쁜 입술로 젖꼭지를 빨아올릴 때의 감각은……. 상상으로 해도 진저리가 쳐질 그 짓을 실제로 당하는 것은 정말로 뇌가 진흙이 되는 것처럼 굉장했다.

그러니까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은 이보다 굉장했다. 하지만 메이슨은 입술을 깨물지 않을 수 없었다.

‘으―…으읏,’

입술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쪽팔리게도 여자들의 비음처럼 들렸다. 입술을 깨물고 입을 틀어막아도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노아가, 그가 메이슨의 애널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안을 꾹꾹 눌러 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애널 안쪽에서 만져지는 피어싱 자국을 손가락으로 눌렀고 그때마다 안에서 지끈거리는 감각이 흘러 몸서리를 치게 만들었다. 메이슨의 성기는 이미 꺼덕하게 서있었다.

가랑이를 한껏 벌린 사이로 노아가 가끔 혀를 내밀어 애널 부근을 핥았고 메이슨은 후들거리며 그의 머리칼을 쥐었다. 손끝에 닿는 보드라운 금발의 감촉은 실제로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 순수한 시간들은 음탕함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감기는 머리카락은 상냥하고 다정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을 참지 못하고 얽히는 동작이었다.

‘으, 아냐, 아―, 아…,’

안을 넓히는 손가락은 하나에서 두 개로, 이제는 네 개로 늘어나 있었다. 두 손의 손가락을 넣고 안을 잔뜩 넓힌 그는 줄줄 사정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메이슨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참을성 없기는.’

그는 그만 싸라는 듯 성기를 꾹꾹 눌렀고 그 손짓에 메이슨은 남은 것 한 방울 없이 줄줄 정액을 쏟아냈다.

노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예쁘게 웃었다. 예쁜 얼굴이었다. 머리칼은 땀에 젖고 뺨은 살짝 상기되었다. 눈빛은 아른한 열기로 차 있고, 눈가는 야하게 붉어져 있었다. 축축하고 말랑해 보이는 입술이 평소보다도 약간 도톰하니 부어 있었다.

평소의 노아도 참 예쁜 얼굴이었지만 정사를 치루는 노아는 그야말로 숨 막히게 예쁘고, 그리고 야했다.

메이슨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고 그는 그런 메이슨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바지춤을 풀러 브리프 안에서 자신의 성기를 꺼냈다.

‘아, 아니 잠깐…,’

완전히 할 준비가 다 된 상황에서 메이슨은 일어났다. 이 부분은 예전에 꾸었던 그 질척하고 난잡한 섹스 때와 아주 달랐다. 현실이 새로 반영된 부분이었는데, 그래서 아주 곤란했다.

노아의 아름다운 얼굴과 조각처럼 잘 빠진 몸과 저 흉포해 보이는 성기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아냐, 이건. 이런 건 싫어. 메이슨은 중얼거리며 주춤 물러났고 노아가 메이슨의 양 발목을 잡아 쭉 당겼다.

그리고 잔뜩 벌려 놓은 안으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하아……,’

그가 예쁜 입술을 벌리고 숨을 내쉬었다. 메이슨은 히이익, 숨을 삼키며 그의 팔을 붙들었다. 그의 커다란 성기가 묵직하게 안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지금 다 들어갈 테니까 그만 좀 조여요. 응?’

그가 귓가를 빨며 야하게 속삭였고 메이슨은 후들후들 떨며 신음했다. 고개를 젓고 아니라고, 이제 빼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에서는 달뜬 신음이 흘러나왔다. 스스로가 듣기에도 조르는 것 같았다.

‘아, 으읏, 응,’

‘씨발, 야해라…….’

그는 반도 채 넣지 않았는데 바짝 서서 흔들리는 메이슨의 성기를 살짝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메이슨은 그의 어깨를 붙들고 스스로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만 하고 싶은 마음 한편으로 어차피 꿈인데 어떠냐 하는 얄팍한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메이슨이 흔들리는 사이 그가 다리를 더 넓게 벌리도록 하며 깊게 안으로 들어왔다. 계속. 계속해서 들어왔다. 단단한 그의 성기가 완전히 다 들어와 그의 음모와 고환이 엉덩이에 닿을 때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꺼덕하게 서있던 메이슨의 성기에선 묽은 정액이 줄줄 흘렀다.

‘흐, 으으, 읏…,’

메이슨은 허리를 관통하는 찌릿함에 진저리를 치며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가 천천히 허리를 쳐올렸다. 질꺽, 야한 소리와 함께 메이슨은 눈을 꽉 감았다. 그대로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노아가 목덜미를 깨물며 허리를 움직였고 메이슨은 우는 건지 신음하는 건지 모르게 헐떡이며 그에게 매달렸다. 아아, 아, 흣흣…, 신음하는 귓가에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좋아요, 이게?’

이 좆이 그렇게도 맛있어요, 메이슨? ―그가 웃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부른 이름에 메이슨은 눈을 뜨고 노아를 쳐다봤고 그의 녹색 눈이 신기하다는 듯이 반짝이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

메이슨은 침대에서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창 밖에서 새가 짹짹 지저귀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

멍한 얼굴로 축축하다 못해 흥건한 아랫도리를 흘끔 쳐다본 메이슨은 현실이 더 싫은지 꿈이 더 싫은지 분간할 수가 없어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벌써 두 번째, 노아를 대상으로 몽정해 버렸다.

아니 왜 하필 걔야. 중얼거렸던 메이슨은 곧 “아냐. 그럴 만도 하지.” 하고 중얼거렸다.

간밤의 노아는 진짜로 야했다. 대체 뭘 하고 살았는지 싶은 그 능숙한 애무와 키스는 자신의 몸이 헤일리가 아니라 평범한 스트레이트였다고 해도 후들거렸을 거고, 그 아름다운 얼굴은 스트레이트고 뭐고, 침대 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완전히 반칙이었다.

“…….”

내 잘못이 아니야, 라고 변명처럼 생각했던 메이슨은 곧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노아가 뭐냐, 하는 생각에 입을 다물며 아랫도리를 내려다봤다. 몽정은 한 번 하고 나면 잠에서 깨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진짜…….

한참 멍한 얼굴로 인간의 욕망과, 육체와, 영혼에 대해 스스로도 모를 이야기를 고민하던 메이슨은 부스스 일어났다.

토니가 오기 전에 시트를 물에 담그기라도 하려면 이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영화 ‘리얼’의 촬영 첫 날이었다.

* * *

“죄송합니다.”

필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트위터라―. 그래요. 요즘은 이런 걸 하죠.”

노아는 작게 중얼거리며 책상 위에 잔뜩 놓인 아침신문들과 인터넷 기사들을 훑었다.

공개된 사진은 모두 5장. 연속 촬영된 사진으로, 헤일리가 자신의 손을 붙잡아 다급히 호텔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밀어 넣고, 자신까지 들어간 뒤 문을 닫는 사진이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크게 확대된 사진도 있었다. 그 아래 헤드라인은 죄 비난 가득한 느낌표 투성이였다.

?헤일리, 또 다시 저지르다?, ?헤일리 러스크는 노아에게 사과해야.?, ?최악의 비치 등극. 어떻게 이런 짓까지.? ?정말로 구제불능. 어제 재 크랭크인 한 영화 ?리얼? 에서 하차하나.?

헤일리를 향해 한껏 자극적으로 작성된 헤드라인을 보며 노아는 낮게 웃었다. 사생활이니 기사로 옮기기에는 그가 무섭고, 하지만 트위터에 떠도는 저 노골적인 사진을 무시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래서 다들 그 화살을 헤일리에게 두고 기사를 써내려간 모양이었다.

“약간 실망스럽긴 하네요. 이 정도도 막지 못하다니.”

“죄송합니다.”

필은 변명대신 좀 더 고개를 숙였고 노아는 책상 앞에 앉아서 툭툭 손가락을 까딱였다.

“아니, 뭐. 차라리 잘됐나 싶기도 하고―….”

노아는 작게 중얼거렸고 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흠. 오늘 스케줄이 어떻죠?”

노아는 신문들을 한쪽에 밀어놓으며 아래 깔린 스케줄 표를 들어 물었다. 그의 질문은 앞으로 어떤 스케줄이 있냐는 물음이 아니었다. 그는 매일 사무적으로 스케줄을 소화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묻는 법이 없었다. 그는 그저 이 스케줄을 털어낼 수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특별히 중요한 스케줄은 없으십니다.”

“―그래요? 그럼 저녁까지 모두 비워주세요.”

두어 시간만 빼달라고 할 줄 알았던 필은 전체를 비워달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물었다.

“어디에 가실 예정입니까?”

필의 질문에 노아는 약간 기대가 된다는 듯 해사하게 웃었다.

“나비를 채집하러?”

“…―예?”

뭘 하신다고요? 필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묻자 노아는 “비유적인 이야기예요.” 하며 툭, 들고 있던 스케줄 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일단 옆에 붙잡아 놓고 이야기 할까 하고요.”

마지막 확인이야 천천히 해도 괜찮으니까요. ―그는 더 뜻 모를 소리를 하며 환하게 웃었다.

어제 메이슨의 죽음에 대해 알렸던 필은 희한하게 상태가 좋아 보이는 그를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다. 당장 묘하게 웃으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느낌일 줄 알았는데 오늘의 노아는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기분이 나아 보였다.

그는 헤일리의 사진이 잔뜩 박힌 사진들을 다시 흘끔 쳐다본 그는 의자를 빙글 돌려 창밖을 쳐다보더니 한가한 투로 말했다.

“참, 오늘 날씨가 좋던데, 요트라도 띄울까요?”

* * *

“하아암―….”

차가 꽉 막히는 도로를 쳐다보며 길게 하품을 하자 토니가 “어제 술 많이 마셨어?” 하고 물었다. 메이슨은 뺨을 긁적였다.

“차라리 술이라도 마셨으면…….”

진짜 술김에 저지른 짓이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텐데 양쪽 다 정말 말짱한 정신에서 생긴 일이라 아무래도 더 찜찜했다. 아니 뭐, 머리 한켠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 사람 사는 일인데. 하는 좋을 대로의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여하간 노아의 얼굴을 볼 때마다 어제의 일이 떠오를 것 같았다.

“아니, 딱히 더는 볼 일이 없으려나.”

뭐, 얼굴 볼 걱정이야 안 해도 되는 사이긴 했다. 메이슨의 중얼거림에 토니가 “뭐? 뭘 봐?” 하고 물었고 메이슨은 고개를 저었다.

“별거 아녜요. ―아, 근데 우리 늦는 거 아녜요?”

촬영, 9시 시작이라고 들었는데. ―벌써 8시 52분인 시계를 쳐다보며 메이슨이 묻자 토니는 꽉 막힌 도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몇 분 늦을 것 같기는 한데―…, 아마 9시에 맞춰서 도착하는 사람은 우리 말곤 아무도 없을 거야. 어제 다들 술 마셨잖아?”

감독이 일어나기는 했을까? 토니가 미심쩍다는 듯이 말했고 메이슨은 그러고 보니 빅이 어제 집에 잘 들어갔을 지 뒤늦게 걱정했다.

어여쁜 젊은 여자도 아니니 집 밖에서 잔다고 무슨 일이야 있겠냐마는, 어제 노아를 구하겠다고 그를 엘리베이터에 아무렇게나 밀어 넣고 층계를 눌러 내려 보냈던 것이다.

아니 역시, 감독보다는 투자자가 더 윗사람 아니겠습니까. 메이슨은 속으로 변명을 중얼거렸고 타이밍 좋게 메이슨의 휴대폰이 울렸다. 토니가 지난주에 새로 사준 그 폰에 저장 된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인 빅이었다.

?여기가 어디야??

그의 물음에 메이슨은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하고 답장을 찍어 보냈다. 띠릭띠릭. 답장이 바로 왔다.

?너 어제 나 버렸지??

?꿈이라도 꾸신 모양이네요.?

메이슨의 심드렁한 대답에 상대는 한참 대답이 없다가 ?네가 나한테 여기서 오줌 싸면 안 된다고 뺨을 때리는 꿈을 꿨어.? 라고 답장이 왔다.

“―….”

메이슨은 잠깐 입을 다물고 그 문자를 쳐다보다가 휴대폰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에서 뭔가, 띠링띠링 문자가 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르는 척 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별것 아녜요. 그냥 어쩌면 영화를 잘릴 수도 있으려나 싶은, 그런 일이긴 한데.”

설마 그거 가지고 자르기야 하겠냐 싶었지만 혹시 몰라 말하자 토니는 “뭐?” 하고 파르르 떨었다.

“무슨 사고 쳤어, 너?”

“진짜 별 거 아녜요. 감독을 엘리베이터에 버린 정도로 사고라고 하진 않잖아요?”

여기선 그러나? 메이슨은 아직 익숙지 않은 헐리웃의 생리에 대해 고민하며 중얼거렸고 토니는 “감독을 엘리베이터에 버렸어? 빅을?” 하고 화들짝 놀라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왜 그랬어, 리스?”

“……그게, 그가 엘리베이터에 오줌을 싸려고 해서.”

메이슨은 적당히 말했고 토니는 “엇……,”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할 것 같은 얼굴로 토니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며 혀를 찼다.

9시 20여 분쯤. 꽉 막힌 도로를 지나 드디어 세트장 입구가 보였다.

“……어?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토니는 더럭 이럴 리가 없는데, 하는 얼굴로 핸들을 살짝 꺾었고 세트장 입구에 와글거리며 서있던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갑자기 미친 것처럼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헤일리! 헤일리!”

“한 말씀 해주시죠! 헤일리? 헤일리!”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술에 취했었습니까? 아니면 이번에도 코카인?”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밀고 정신없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마이크를 들이 밀었다. 메이슨은 손을 더듬어 차 글로브박스 안에 있는 선글라스를 꺼내어 썼다. 선글라스를 써도 눈앞이 번쩍번쩍 했고 시야에 잔상이 남았다. 토니가 겁에 질린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리, 리스, 너 어제 무슨 짓을 한 거야……?”

“…….”

메이슨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리 헐리웃이 희한한 곳이라고 해도 감독을 엘리베이터에 버린 정도로 이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감독이 공공장소에서 오줌을 싸려 했다고 중상 모략한 것은 욕을 먹을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촬영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메이슨은 멀리서 손을 크게 흔들고 있는 체이스와 스태프들을 가리키며 말했고 토니는 “기자들이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 때는, 1센티도 못 움직여.” 하고 공교로운 얼굴을 했다.

“차 밑에 깔리더라도 취재하겠다는 얼굴인걸.”

메이슨은 입맛을 다셨다. 이 와중에 메이슨의 휴대폰 벨소리가 다시 울렸고 무시하려던 메이슨은 글로리아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것에 휴대폰을 받았다.

?헤일리? 대체 무슨 일이에요??

“저도 그게 묻고 싶어서 전화를 받았는데.”

?맙소사. 지금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거기 있는 거예요? ―그 휴대폰 인터넷 되죠? 어서 확인해 봐요!?

그녀의 말에 메이슨은 전화를 끊고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켰다. 구글에 헤일리 러스크, 하고 치자 약간의 버퍼링 뒤 곧 엄청난 기사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지금,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는 사진까지도.

“―…아아.”

메이슨은 줄줄이 뜬 기사제목과 사진에 ‘이거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뭐, 뭐야? 이게 뭐야?”

토니가 기겁한 얼굴로 물었고 메이슨은 뺨을 긁적였다.

“합성이지? 응? 설마 진짜 노아를 억지로 방으로 끌고 들어갔어?”

“아 그게요. ……. ……합성은 아니에요.”

일단 그렇다고 말하며 메이슨은 살짝 시선을 피했다.

“바로 나왔지? 사진이 이렇게 찍혀서 그렇지, 뭔가 사정이 있어서 들어갔다가 아무 일도 없이 바로 나온 거지?”

“…….”

메이슨은 대답 대신 뺨을 긁적였다. 사진 한 번 절묘하게 찍었다. 언뜻 보면 정말로 노아를 끌고 행패를 부려 방 안에 밀어 넣는 것처럼 보였다.

누가 이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렸는지는 예상이 갔다. 어젯밤 내내 조이가 따라다니고 있다는 걸, 메이슨도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는데―…, 빅을 방에 밀어 넣고 나오자고 생각할 때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뒤로, 아론을 보면서부터는 그런 것을 생각할 새가 없었다. 그 뒤에 노아랑 그렇고 그런 일이 터지자 더더욱 정신이 없었고.

아니 그래도 생각을 전혀 못한 것은 아니었는데 솔직히 일이 이 정도로 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냥 호텔방에 들어갈 수도 있지, 뭐 이렇게 난리래요.”

“억지로 끌고 간 게 문제잖아!”

“아니, 그 남자가 사람을 얼마나 잘 때리는 줄 알아요?”

억지로 끌고 들어가긴 했지만 뭐 강간 같은 걸 한 건 아니라는 말이었는데 토니는 경악 어린 눈으로 물었다.

“너, 노아에게 맞았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대체 무슨 짓을 하면 그 천사 같은 남자가 사람을 때려? 토니는 바르르 떨며 물었고 메이슨은 입을 다물었다.

아니, 그래도 이건 분위기가 너무 심했다. 노아가 무슨 정숙한 스무 살짜리 어린애도 아니고. 억지로 끌고 들어간 형태이기는 했지만 총칼을 든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당한 건 이쪽이었고.

“…….”

메이슨은 아직도 아릿하니 아픈 목덜미를 문지르면서 생각했고 갑자기 카메라 플래시가 확 줄었다. 돌아보자 촬영장 앞에 택시에서 감독 빅이 헤롱헤롱한 얼굴로 내리고 있었다.

메이슨에게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해 따지려고 달려온 듯한 빅은 구름처럼 몰린 기자단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자기가 진짜 밤에 오줌이라도 싼 것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가 다가오자 기자들이 나뉘며 주변에 약간의 공간이 생겼다.

토니는 이때다 싶은 얼굴로 엑셀을 북 밟으며 촬영장으로 차를 몰았고 차는 오래 가지 못하고 멈추었다. 기자들이 다시 둘러쌌기 때문이었다. 빅에게 한마디를 듣는 것보다 이쪽이 낫다고 생각한 듯했다.

메이슨은 한숨을 쉬며 주변을 돌아봤고 그때, 이번에는 정말로 사람들이 헤일리에게서 떠나게 만들어줄 사람이 등장했다.

멀리서 하얀색 벤츠 SLR멕라렌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노아다.” 하고 중얼거렸고 미친 듯이 앞을 가로막던 기자들은 썰물이 빠지듯 그에게로 우르르 몰려갔다.

토니는 이때다 싶은지 엑셀을 밟았고 차는 조금 더 가다가 약간 남은 사람들을 피하지 못해 멈췄다. 벌써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는 촬영장에 도착하기 전에 날이 새겠네요.”

메이슨은 한숨을 내쉬며 고민하다가 차에서 내렸다.

“리스!”

토니가 뒤에서 당황해 외쳤지만 메이슨은 차 문을 닫아주며 괜찮다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약간 억울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문제로 촬영을 못하게 되는 건 안 될 일이었다. 물론 노아를 저 악마 같은 기자들에게 던져주는 것도 미안한 일이었고.

“헤일리. 대체 왜 노아를 괴롭히는 겁니까?”

“헤일리! 헤일리?”

“노아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 데에 대한 자각은 하고 있습니까?”

메이슨은 뭐 또 그렇게 불미스러울 것까지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뺨을 긁적이며 노아의 차 앞에 진을 친 기자들을 쳐다봤다.

차 문이 열렸고 먼저 내린 필이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미친 듯이 플래시가 터지는 사이에서 노아는 잠시 거기에 앉아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아니, 약간 불쾌한 것 같기도 했다.

“…….”

그가 한참 앉아있자 어느 순간부터인가 천천히 플래시 터지는 수가 적어지기 시작하다가 약간 고요해졌다.

노아가 차에서 내린 것은 그때였다. 그가 차에서 내려 메이슨을 쳐다보자 기자들이 우르르, 홍해가 갈리듯 그와 메이슨 사이에 길을 내어 주었다.

“레이칼튼 씨, 이번에야 말로 헤일리에게 한마디 해주실 겁니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하는 대중을 위해 한마디 해주실 수 없습니까?”

“지금 기분이 어떠시죠? 혹시 저 사진을 뿌린 것이 헤일리 본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으십니까?”

“그에게 가장 먼저 뭐라고 하실 거죠? 역시 화를 내러 오신 겁니까?”

다들 노아가 헤일리에게 화를 내거나 그에게 공개적인 망신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아가 어떤 점잖은 말을 하든 상관없었다. 기자들은 거기에 얼마든지 자극적인 상황과 단어를 추가할 용의가 있었다.

엄청나게 화끈한 기사가 나오겠구나. 기자들은 ‘촬영장에 나타난 노아는 처음부터 아주 불쾌한 표정이었다.’ 로 시작하는 기사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그를 향해 물었고 노아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용건이라.”

들이밀어지는 마이크를 모두 물리며 노아가 걸어왔다. 메이슨은 바로 앞에 우뚝 선 노아를 보며 음, 하고 난처한 얼굴을 했다.

일단은 죄송하다는 말을 하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어쨌거나 사진을 찍어 뿌린 것은 헤일리의 사촌, 육체적으로는 자신의 사촌이었고 헤일리의 명예야 원래부터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노아의 경우는 타격이 큰 듯 보였다. 호텔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던 것도 사실이었고. 거길 데려간 이유가 노아를 구하기 위해서였다든가 하는 건 어차피 메이슨 자신의 이유일 뿐이었다. 그 일을 선택한 것이 자신이었으니 남 탓 할 일이 아닌 것이었다.

그나저나 영화는 하차하게 되려나? 연예인 일이야 별 미련이 없지만 백십만 달러는 좀 아깝긴 했다.

“저……,”

바로 앞에 서있는 노아를 향해 죄송하다고 말하려는데 그가 생긋, 눈을 휘어 해사하게 웃었다.

“헤일리.”

다정하게 이름을 부른 그는 메이슨의 손을 끌어당겨 쥐더니 말했다.

“데리러 왔어요.”

“……예?”

예? 메이슨은 욕이라도 할 것처럼 다가왔던 남자가 한 말에 눈을 끔뻑였고 웅성거렸던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다. 데리러 왔다고? 노아가 헤일리를? 법원이나 경찰서로 데려가려는 건가? 다들 그런 얼굴이었고 메이슨조차도 그랬다.

그 가운데서 혼자만 생글거리며 웃던 노아가 어정쩡하게 밀려나 서있던 빅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차피 오늘 촬영은 그른 것 같은데 데려가도 되겠죠, 빅?”

그가 붙잡은 메이슨의 손을 들어 보이며 물었고 빅은 사람들의 시선과 상황에 얼떨떨한 얼굴로 “응? 으응? 헤일리는 왜요?” 하고 물었다.

노아는 힐끗,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바람이 좋아 요트를 띄웠거든요.”

“…….”

―그래서? 모두가 생각했고 빅이 물었다.

“그래서요?”

그는 ‘그래서냐뇨?’ 하는, 왜 뻔한 걸 묻냐는 듯한 얼굴을 하더니 말했다.

“그야 당연히 헤일리와 요트 위에서 점심을 먹고 싶어서죠. 어때요, 헤일리? 혹시 요트는 싫어하나요? 레스토랑 예약도 해놓긴 했는데, 날씨가 좋으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왜 헤일리랑 점심을 먹고 싶은데요? 왜 요트도 모자라 레스토랑까지 예약하고 헤일리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시나요? 다들 아무도 이해 못할 무서운 수학 문제를 앞에 둔 것처럼 멍한 얼굴로 쳐다봤고 다시 빅은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요트 위에서 식사라니, 그거……, 꼭 데이트 같네요?”

노아는 픽 웃었다.

“별 소리를 다하시네요.”

그의 말에 순간 모두가 안심했다. 갑자기 요트니 레스토랑이니 달큼한 목소리로 말해서 하마터면 착각할 뻔 했다고 생각하는데 노아가 이어 말했다.

“당연히 데이트죠.”

데이트 ‘같은 게’ 아니라 데이트, 라고 말하며 그가 메이슨의 손을 꼭 잡고 웃었다.

헤일리와 데이트……, 다들 그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 한참 생각 했다. 노아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 가장 이해를 못하고 있는 사람은 사실 메이슨 본인이었다.

노아는 메이슨을 돌아보며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달큼한 미소를 지었다. 메이슨은 살짝 눈살을 찡그렸다.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을 때보다도 더 눈이 부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다 괜찮은 것 같으니, 갈까요?”

“―….”

예? 어디가 다 괜찮은데요? 어딜 가는데요? 그 따위의 소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메이슨은 질질질, 그에게 손을 잡힌 채 그의 벤츠에 올라탔다.

언제 어느 때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을 잊지 않는 프로페셔널한 기자와 파파라치들은 두 사람이 촬영장을 떠나고도 한참 동안 얼어붙은 것처럼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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