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ill the lights-20화 (20/29)

20

메이슨은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 같은 눈으로 우는 노아를 보며 숨도 쉬지 못한 채로 굳어 있었다. 노아의 아름다운 얼굴이 눈물로 엉망이었다.

“―…노아,”

메이슨이 더듬거리듯 부르자 노아는 천천히 발밑에서 일어났다.

“괜찮잖아요. 죽어가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푼다고 생각하면.”

안 그래요? 노아는 달래는 것처럼 메이슨에게 말했다. 달래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닌데도 말이었다.

“레이칼튼 씨,”

“아니―,”

노아는 메이슨이 하는 말을 듣는 게 무섭다는 듯 그의 손을 붙잡았다. 메이슨은 노아의 손이 잘게 떨리고 있는 것에 마른 침을 삼켰다. 땀으로 흥건한 손은 차게 식어 있었다.

“이만 오늘은 됐어요. 술 때문에―…, 별로 안 좋거든요.”

노아는 잡았던 손을 천천히 놓으며 말했다.

“험한 꼴 당했다 싶겠지만 밤늦게 자는 사람 방에 들어와서 당한 일 치고는 소소한 편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네요.”

내가 당신을 쏴버렸을지도 모르잖아요. 노아는 가볍게 말하며 힐끗, 침대맡을 가리켰다. 리볼버의 총구가 베개 밑에 튀어나와 있었다.

“이왕 들어온 거니 자고 가도록 해요. 나는 이대로 자면 어차피 또 발작할 테니―…, 가서 밀린 일이나 해야겠네요.”

필이 좋아하겠네. 노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권하고 메이슨을 놔둔 채 방을 나갔다.

메이슨은 그가 나가는 것을 붙잡지도, 말을 걸지도 못했다.

“…―,”

메이슨은 눈을 깜빡이며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노아의 떨리던 손과 땀의 감촉이 아직도 선연하게 남아 있었다.

“……―,”

이게 무슨 일인지, 노아가 자신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어째서 그렇게 울며 매달렸는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메이슨은 마른 침을 삼키며 노아가 나간 방문을 쳐다봤다.

심장은 무섭도록 빠르게 뛰고 있었다.

* * *

“리스? 리스!”

토니의 부름에 꾸벅 졸았던 메이슨은 화들짝 깼다. 바로 앞에 메이크업을 해주는 소피가 난처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렌즈를 본 메이슨은 재빨리 사과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눈을 안 떴군요.”

“헤일리도 오랜만에 야외 촬영이라 긴장했나 봐요?”

지나가던 글로리아가 역시 피곤해 죽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메이슨은 쓰게 웃으며 취재진으로 가득한 주변을 돌아봤다.

오늘은 함께 촬영하는 여배우 리지의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경으로 다음 주 이후로 미루어져 있던 야외촬영이 앞으로 당겨지게 되었다. 덕분에 신난 것은 파파라치들과 취재진들이었다. 그들은 촬영장 근처를 가득 메우고 앉아, 내내 이 기가 막힌 스캔들에 대해 입 닥치고 있던 헤일리가 한 마디라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이 스캔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것은 메이슨도 마찬가지라 할 말이 없었지만.

검은색 렌즈를 낀 메이슨이 눈가를 문지르며 길게 하품하자 토니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살피며 물었다.

“―오늘 왜 그래? 어젯밤에 안 잤어?”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자려고 눕기는 했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사실 그 상황을 겪고도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왜? 혹시……, 노아랑 무슨 일 있었어?”

토니는 힐끗, 분수대 앞에서 메이슨을 대신해 붙들려 인터뷰를 하고 있는 노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

무슨 일이 있기는 했는데……. 메이슨도 노아를 쳐다봤다. 그는 오늘도 다른 날처럼 촬영 시간에 맞추어 메이슨을 헬기로 배웅했다. 주변에 취재진이 몰려 촬영이 지연되자 그는 약간의 인터뷰라면 괜찮다고 말해 촬영에 방해 되지 않도록 돕는 친절을 베풀기까지 했다.

그에게 반한 듯한 표정으로 늘어선 취재진들 앞에서 노아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해사하고 상냥한 얼굴로 조곤조곤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

간밤 그렇게 울고 매달리던 애원하던 그가 저 남자가 맞는 걸까. 메이슨은 두 눈으로 보고서도 내가 꿈을 꿨나 생각했다. 물론 어제도 지금도 노아는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그래도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메이슨의 시선을 느꼈는지 인터뷰를 하던 노아가 고개를 들어 살짝 그를 쳐다보았다. 약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던 그는 곧 달큼하게 웃었고 약간의 웅성거림과 함께 사방에서 미친 듯이 플래시가 터졌다.

“플래시 삼가 주세요!”

글로리아와 스태프들이 죽겠다는 얼굴로 소리를 지르고 돌아다녔다. 메이슨은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어제 노아가 왜 그랬는지, 메이슨도 밤새 생각했다.

겨우 떠올린 것은 노아가 일곱 살 무렵 납치당했을 때의 일을 기억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사실 20년 전 일이고 워낙 잠깐 본 것이라 설마 그렇겠냐 싶었지만, 그래도. 노아에게 자신이 그렇게까지 특별할 이유라곤 그 정도밖엔 생각나지 않았다.

만약 그런 거라면……, 메이슨은 푸석한 뺨을 문질렀다.

‘제발 당신이 메이슨이라고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내 머리를 쏴버릴 것 같으니까.’

“…….”

메이슨은 노아의 배게 밑에 있던 노아의 총을 저도 모르게 가지고 나왔다. 그냥 하는 말일 테고 사실 노아가 자살하려고 들면 총이 그거 하나뿐이겠냐 마는, 메이슨은 그게 눈에 밟혀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정말 노아가 자신을 내도록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만약 그렇다면 뉴욕에서 만난 것부터 그 이후에 모든 이상한 일들은 대체로 다 설명이 되었다.

설명이 되지 않는 건 그가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그 부분이었다. 약간의 호감이 있는 정도라면 어떻게 이해해보겠지만 그렇게 울 정도로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건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어제 노아의 말은 애원이다 못해 구걸 같았다. 애정이 아니라 동정이라도 달라고, 그렇게 매달렸다.

메이슨은 다시 눈을 굴려 노아를 쳐다봤다. 분수대 아래에서 눈을 휘어 기분 좋게 웃고 있는 그는 그야말로 눈이 부셨다.

“……저런 남자가 저한테 목을 매다니. 착각이겠죠?”

메이슨이 묻자 토니는 “……그, 글쎄, 네가 어때서?” 하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확실히 착각이거나 다른 꿍꿍이가…….”

……있을 리가 없지. 노아가 목적하는 바가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다른 뭔가가 있지 않을까. 정말 그런 단순하고 못 믿을 이유일까. 메이슨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해보았지만 노아가 어제 보여준 모습이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스스로도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노아가 정신적으로 나약한 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일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헤일리 모습을 한 자신을 붙들고 그런 말을 하다니――.

“모르겠다. 모르겠어.”

메이슨은 끙, 하고 앓았다. 멀리서 보이는 노아의 말끔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니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긴. 헤일리의 몸으로 영화를 찍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죽은 자신이 보고 있는 환상 같은 게 아닐까? 그래, 이 모든 게 꿈이고――,

“헤일리! 동선 확인하게 나와요! 바로 슛 들어갑니다!”

글로리아가 멀찍한 곳에서 손을 흔들며 소리쳤고 토니가 메이슨의 어깨를 툭툭 치며 “정신 차리고. 응?” 하고 독려했다.

“…….”

메이슨은 비척거리며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았다. 대단한 감독이라는 빅과 얼굴을 알만한 여배우, 영화 한 편당 수천만 달러를 번다는 체이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스태프들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끝에 노아가 서 있었다. 달큼한 표정 사이 씁쓸한 눈빛이 메이슨의 가슴을 뜨끔하게 만들었다.

분명 현실은 현실인데……. 모르겠다, 정말로.

메이슨은 길게 한숨을 쉬며 “갑니다. 가요.” 하고 말하며 일어났다.

“…―?”

“리스? 왜 그래?”

메이슨이 멈칫하자 그의 웃옷을 챙기던 토니가 의아하게 물었다. 메이슨은 “아, 아뇨. 별 거 아녜요.” 하고 손을 내저었다. 헤일리! 글로리아가 다시 소리를 질렀고 메이슨은 다시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Zii에서 같이 일했던 프레드 놈의 파란 점퍼를 본 것 같았는데 그 자리엔 서성대는 기자들뿐이었다.

“……잘못 봤나.”

착각이겠지. 그 점퍼를 그놈만 입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기성품이었다. 그리고 그놈이라고 해도 또 아무렴 어떤가. 여긴 공원이었고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었다.

메이슨은 마음이 복잡하니 별게 다 거슬린다고 생각하며 빠른 걸음으로 글로리아에게 다가갔다.

* * *

노아는 힐끗,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를 옮기는 메이슨을 쳐다봤다. 특유의 덤덤한 표정에 노아는 가볍게 웃었다.

“자꾸 헤일리를 쳐다보시네요. ―그렇게 좋으세요?”

인터뷰 차례인 여자 기자가 질투가 난다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노아는 그녀를 향해 눈을 휘어 웃었다.

“Mild type의 스컬리 기자님이시죠? 예전에 기사 좋게 써주셨던―. 오랜만에 뵈니 반갑네요. ―아, 질문이 뭐라구요? 아, 그렇게 좋냐고―.”

노아는 자신을 알아보았다는 것에 얼굴이 붉어진 여기자에게 말했다.

“그러게요. 시선을 떼기가 쉽지가 않네요. ―저분의 저런 표정을 좋아하거든요.”

노아는 다시 메이슨을 쳐다보며 말했고 여기자는 “…그저 뚱한 표정 같은데요.” 하고 헤일리를 쳐다보았다. 누가 들으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정이라도 짓고 있다는 것 같았지만 헤일리는 덤덤하고 약간 졸린 듯한 얼굴로 프로듀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글쎄요. 제 눈에는 살짝―…, 당황한 표정이라서요.”

노아의 말에 여기자는 다시 헤일리를 쳐다보고 전혀 모르겠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노아는 약간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젯밤 일은 노아로서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스스로가 만든 상황이었지만 바라고 있던 상황은 아니었다. 눈을 뜨니 메이슨이 있었고 방을 나서려는 모습에 그를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노아에게 메이슨은 성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매일같이 그를 꿈꾸었지만 그에게 욕정 해 본 적은 없었다. …―아니. 정말 없었던가? 노아는 약간 기묘한 기분으로 메이슨을 보았다.

노아에게 메이슨은 어쩌면 욕망 그 자체였다. 늘 그를 보고 싶었고 그를 만지고 싶었다. 그를 갖고 싶었고 그가 자신을 돌아봐 주기를 바랐다.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싶은 게 없고 하고 싶은 게 없는데, 오직 그만이 반짝거렸다.

메이슨을 만질 때마다 실감했다. 완전히 메말라서 그게 필요하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견디다 그의 살에 닿는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삼키고 싶은 것이 그라는 것을.

닿고 싶지도 않았던 헤일리의 육체인데 그와 닮았다고 생각하면, 그가 메이슨이라고 생각하면 머리가 뜨거워졌다. 게걸스럽게 그를 빨고 깨물고 삼키고, 그대로 씹어 먹고 싶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결국 머리에 열이 올라 그대로 그를 안으려다 그 짝이 났는데……. 덕분에 모든 것은 끝장나기 직전이었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헤일리가 레이칼튼 씨와 사귀는 건 아니라고 했다는 말이 돌던데, 사실입니까?”

기자가 자신의 PDA를 확인하며 물었다. 노아는 “아, 그렇죠. 사실 그래서 예민한 질문은 좀 꺼려지긴 하네요.” 하고 가볍게 대답했다.

“전 지금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거든요.”

노아는 쓰게 웃었다. 원래는 대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를 붙잡아두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것이라고 옭아매서 어디로도 가지 못하게 할 셈이었다. 다 잘 되어가고 있었다.―그의 마음 한 조각을 갖고 싶다는 우스운 소망이 아니었다면.

이제 상대는 모든 칼자루를 쥐게 되었다. 그는 말 한 마디로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고 너 같은 거 보기 싫다며 멀리 떠날 수도 있었다. 메이슨의 성격을 생각하면 덤덤히 각자 잘 살자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끝장나기 직전이었지만 노아는 기분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맙소사. 저라면 당장에 Yes를 연발했을 텐데! 아, 그래요, 어떤 대답이 돌아올 것 같으세요?”

얼마나 대단한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아요? 리포터는 어떻게 당신을 기다리게 할 수가 있냐고 화를 내며 헤일리를 흘겼고 노아는 작게 웃었다.

“글쎄요. 아마―…, 다정한 거절이 아닐까요?”

노아는 이쪽을 힐끗 쳐다보는 메이슨을 달큼한 눈으로 보았다. 다 끝날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건 좋았다. 저 당혹스러운 시선과 표정만은 순수하게 자신의 것이다. 자신이 그를 쥐고 흔들어 만들어낸 것이었다.

매달리고 매달려도 그가 거절하고 떠나는 순간이 두려워 내내 제대로 매달려보지도 못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일이 어떻게 되든 이 순간만은 달큼했다. 그가 자신을 생각하며 고민하고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기뻤다. 이 순간에는 그의 머릿속은 자신이 가득 차 있을 거라는 생각이 노아를 아찔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는 다정하고 따스한 거절로 모든 것이 끝나더라도.

“거절이라니, 겸손이에요? 헤일리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건 기정사실 아닌가요? 지금 당신의 집에서 머물고 있는데, 거절이라뇨!”

어떻게 그런 말을! 기자들이 웅성거렸고 노아는 그들을 향해 적당히 웃었다. 글쎄, 이미 두 번이나 버렸는걸요. 노아는 이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정말로 그냥 자살해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가 조금이라도 안타까워 해준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음습한 생각을 하며 노아는 다시 메이슨을 쳐다봤다.

그는 여배우와 약간의 스킨십을 맞추고 있었다.

“아, 오늘 키스씬 촬영이라던데―…,”

말끝을 흐린 기자가 노아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좋아하는 상대의 키스씬이라니, 당신이 스폰선데 저런 장면을 빼라고 해도 되지 않았나요?”

노아는 살짝 눈을 돌려 질문한 기자를 쳐다봤다. 슛 들어갑니다! 정숙해 주세요! 글로리아가 외쳤고 노아는 다시 메이슨을 돌아봤다.

빅의 큐 사인을 시작으로 메이슨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하기 시작했다.

살벌한 대사를 뱉고 차가운 얼굴로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눴다. 조금 전까지 헤일리를 토로하는 것으로 시끄러웠던 기자들은 조금씩,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다들 입을 다물고 그가 움직이는 것을 쳐다보았다.

헤일리는 모두의 생각보다 날렵했고 날카로웠다. 늘 흐느적거리고 약이나 술에 취해 헤롱대고 음탕하게 굴던 그가 아니었다. 절도 있는 동작과 표정. 어느 살벌한 비밀 조직의 무서운 관리자처럼 차갑고 냉정한 모습이었다.

“…―다, 다른 사람 같네요.”

연기력이 늘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누군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 창백한 얼굴까지. 모두가 알고 있는 헤일리와는 전혀 달랐다.

“다른 사람―….”

노아는 기자의 말을 중얼거리며 낮게 웃었다. 그의 말대로 전혀 다른 사람처럼 연기하고 있는데 노아의 눈에는 그가 영락없는 메이슨처럼 보였다.

헤일리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여배우의 뺨을 붙잡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녀가 벌벌 떨었고 곧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낸 그가 잠시 멈칫했다.

“…….”

그가 살짝 눈을 들었고 노아는 그의 검은 눈동자를 쳐다봤다.

그가 짧게 혀를 찼고 여배우의 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목을 꺾게 하며 빠르게 입술을 겹쳤다.

“…―,”

노아는 낮게 웃었다. 메이슨의 눈가에 스친 난처함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메이슨의 성격에 여배우와의 키스는 몰라도 자신과 그런 짓을 했다는 건 신경이 쓰이긴 할 터였다.

노아는 여배우가 흠칫 감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떠는 것을 쳐다보며 ‘아아.’ 하고 중얼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빅이 장면을 자르고 “키스씬만 다시 갑니다! 리지, 너무 강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하고 말했고 장면이 다시 시작됐다. 메이슨이 다시 그녀의 뺨을 쥐고 입술을 겹쳤다.

“―….”

그와 키스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를 물고 핥고 안으려고 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노아는 이제와 자신이 온전히 그를 포기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메이슨이 다정한 거절을 건네면, 자신은 미쳐서 그를 강간하고 자살하려고 하지 않을까? 그의 입술은 정말로 달콤했으니까. ―노아는 선량한 얼굴로 생각하며 시선을 돌렸다.

“저, 레이칼튼 씨.”

시선을 돌리는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파란 점퍼를 입고 있는 덩치 큰 남자가 작은 쪽지를 건네며 말했다.

“아까 어떤 분이 이것 좀 전해달라고 하시던데요.”

저쪽에. 그 큰 남자는 힐끗, 길 끝 가로수 뒤를 눈으로 가리켰다. 기자인가? 노아는 무심하게 그가 건넨 쪽지를 폈다.

“…―.”

쪽지에 적힌 짧은 문구를 본 노아는 다시 고개를 들어 가로수 뒤를 보았다.

?알타의 금고를 가지고 있다?

쪽지를 보낸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노아는 그들이 누군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 * *

“자, 키스는 찐하게 하되 너무 느끼진 말자고. 헤일리는 지금 그 느낌 좋으니 그대로 가고.”

빅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고 리지는 붉어진 얼굴로 메이슨에게 작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뇨, 괜찮아요.”

메이슨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어제 토니가 연습할 필요 없다고 어느 씬인지도 이야기 안 해주더니 여자와의 키스씬 탓인 듯했다. 헤일리와는 달리 스트레이트인 메이슨으로서야 이렇게 아름다운 여배우와 키스할 기회야 반갑고 좋은 일이었다. 전날 노아와 그렇게 야한 키스를 나누지만 않았다면 말이었다.

덜덜 떨며 울고 있는 리지를 앞에 두고 메이슨은 입술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어제 자신의 앞에서 울던 노아의 얼굴이 떠올랐고, 머리카락을 쥐고 키스를 하자 노아가 자신에게 했던 행위들이 스쳐지나갔다. 그가 어떤 키스를 했는지, 어떻게 입술을 핥고 혀를 감았는지 그 선뜩한 감각이 생각났다.

메이슨은 저도 모르게 노아가 있는 쪽을 향해 눈을 돌렸고 노아와 눈이 마주쳤다. 리지의 입술을 짧게 빨며 메이슨은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했다. 예쁜 여배우의 입술을 빨면서 노아를 떠올리고 그를 쳐다보기까지 하다니, 좋은 징후가 절대로 아니었다.

리지의 NG로 멈추었던 촬영은 금세 다시 재개되었다.

“자, 키스부분만 다시 갑니다.”

빅이 레디―, 하고 불렀고 메이슨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노아의 얼굴을 지우려고 애썼다.

“액션!”

메이슨은 가늘게 떨고 있는 리지의 뺨에 떨어진 눈물을 닦는 척을 하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그녀가 숨을 삼켰고 메이슨은 노아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아랫입술을 핥으며 시선을 들었다.

“…―?”

저도 모르게 노아를 쳐다봤던 메이슨은 노아의 옆에 선 파란 점퍼를 입은 남자에게서 시선을 멈추었다. …―프레드?

키스가 멈춘 탓에 리지가 가쁜 숨을 내쉬며 메이슨의 팔을 붙잡았고 빅이 “컷! ―헤일리!” 하고 외쳤다.

“어이, 지금 어디 신경 쓰는 거야?”

“아, 죄송―……,”

메이슨은 어정쩡히 사과하며 눈으로는 노아가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뜨는 것을 쳐다봤다. 노아의 표정은 심상치가 않았다. 어딜 가는 거지? 보디가드들은 어디에 있지? 메이슨은 마른 침을 삼키며 그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 급하게 가로수길로 나가는 것을 쳐다보았다.

“헤일리?”

“아, 잠깐―…,”

메이슨은 더듬, 말을 흐리며 리지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프레드가 노아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노아의 표정이 저렇게 굳었는지 알아야 했다. 무슨 일이 생기려는 건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안 좋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알타의 벙커에서 자신이 죽었을 때, 자신의 시신을 훼손하고 아론과 애슐리가 도주하도록 누군가 도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건 클락이나 프레드일 확률이 높았고, 특히 프레드일 확률이 높았다. 그는 솜씨가 좋은 편이었고 돈을 좋아했으니까.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지금 노아가 만나려는 사람은 틀림없이――.

“헤일리? 왜 그래? 어이, 어디가?”

“헤일리?”

멀쩡히 촬영하던 메이슨이 갑자기 사색이 된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빅과 스태프, 토니는 모두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급히 화장실이라도 가는 건가? 모두 의아하고 궁금한 얼굴로 그를 보았지만 메이슨은 멈추지 않고 노아를 향해 뛰었다.

“노아!”

어느새 가로수길 끝에서 멈춰있던 노아가 메이슨의 부름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본 적 없는 차갑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 메이슨은 숨을 삼켰다.

“지금 무슨―…,”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 겁니까, 메이슨이 채 말을 하기 전에 노아가 다시 앞을 보았다.

이미 그의 앞에 아론과 애슐리가 서 있었다.

* * *

쪽지를 받은 노아는 취재진을 향해 “급한 일이 생겼네요.” 하고 양해를 구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알타의 금고에 뭐가 들었는지 관심도 없었지만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아론 그린과 애슐리 수이. 메이슨을 죽인 사람들이었다.

가로수 길 끝까지 가자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여자와 남자가 서 있었다. 카메라 가방을 든 것이 흡사 평범한 기자들처럼 보였다. 노아는 그들을 찬찬히 쳐다봤다. 필이 주었던 서류에서 보았던 그와 그녀가 맞았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둘 다 얼굴이 많이 상해있었다.

노아의 얼굴을 보자 여자, 애슐리가 말했다.

“당신, 만나기 정말 어렵네요.”

한숨처럼 말한 그녀는 주변에 깔린 카메라가 부담스러운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은데요. 저희가 장소를 준비했으니,”

“왜요?”

노아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내가 너희랑 왜 조용한 곳에 가야 하지? 노아가 우습다는 듯 묻자 그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 표정을 보며 노아가 ‘고작 이런 인간들에게……,’ 하고 한숨을 지으려던 순간이었다.

“노아!”

등 뒤에서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무슨……,”

돌아보자 급하게 달려온 듯한 메이슨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시선이 아론과 애슐리에게 향했다.

이런. 노아는 낮게 혀를 찼다.

메이슨의 뒤로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촬영은 멈춰져 있었고 취재진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쳐다보고 있었다. 곳곳에 퍼져 있던 그의 보디가드들이 총을 빼드는 모습과 필의 안색이 흐려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였다. 애슐리와 아론이 총을 빼들어 주변과 노아를 각각 겨눈 것도.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터였다. 취재진들은 의아한 얼굴로 그들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노아의 보디가드들은 그들을 겨눈 채 달려오기 시작했으며 내내 그들을 추적하고 있었던 Zii의 팀이 기자들 사이에 숨어 있던 파란 점퍼의 남자를 붙들었으니 말이었다.

“아―….”

노아는 머리에 닿는 차가운 총구에 낮게 웃었다. 몇 걸음 앞에 선 메이슨의 표정이 재미있었는데 뭐랄까……, 그야말로 사색이었다. 마치 겁에 질린 것 같아 보였다. 제 머리에 총구가 닿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인데 말이었다.

“왜 그런 표정이에요?”

노아는 새파랗게 질린 메이슨을 향해 물었다. 날 걱정해서인가? 노아는 그의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의 머리에 총을 가져다 댄 애슐리가 노아의 팔을 잡아끌었기 때문이었다.

“―움직이지 마!”

그녀가 발악처럼 소리 지르자 보디가드와 Zii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리고 기자들의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론은 울컥한 얼굴로 입을 열었고,

“찍지 마!”

소리 지른 것은 그가 아니라 메이슨이었다. 기자들을 향해 찍지 말라고 소리 지르려던 아론이 멈칫하며 메이슨을 쳐다봤다.

메이슨은 무서운 얼굴로 기자들을 노려보고 다시 아론과 애슐리를 쳐다봤다.

“…―바라는 게 뭐야?”

메이슨은 아론의 저 총에서 총알이 얼마나 쉽게 튀어나오는지 알고 있었다. 아론은 모습과는 다르게 굉장히 다혈질이었고 충동적이었다. 제가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채 생각하기도 전에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다. 그들은 얼핏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핀치에 몰려 있었고 이 상황에 긴장하고 있었다.

메이슨은 마른 침을 삼켰다. 진정해, 메이슨. 메이슨은 스스로를 향해 되뇌었다. 진정해. 진정해. 진정하라고, 이 병신아. 메이슨은 도저히 진정이 안 되어 입술이 하얗게 되도록 잘근 깨물었다. 노아가 몇 걸음 앞에 서 있었고 그의 머리에 총이 겨눠져 있었다.

다른 때였다면 상대에게 시시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정신을 빼았을 것이었다. 그리곤 그들이 눈치 채기 전에 한 놈을 제압하고 그에게 총을 빼앗아 다른 놈을 겨눴을 수도 있었다. 예전에 뉴욕 거리에서 노아를 구했듯이.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아론과 애슐리는 그때 그놈들처럼 아마추어가 아니었고 두 사람은 정말로 노아를 쏴버릴지도 몰랐다. 노아가 총에 맞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메이슨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바라는 게 뭐냐고.”

메이슨은 시간을 끌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이 요구하는 게 무엇이든간에 노아의 목숨보다 중요할 리는 없었다. 메이슨에게는 이들을 잡는 것보다 노아를 구하는 게 더 중요했고 나머지는 알 바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냉정한 판단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바라는 게 뭐냐고 묻잖아!”

헤일리의 모습을 한 메이슨의 고함에 두 사람이 ‘이 새끼는 뭐야,’ 하는 시선으로 쳐다봤지만 곧 아론이 말했다.

“우, 우선 프레드를 놓아줘.”

의도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들도 이 인질극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취재진이 가득한 곳에서 노아를 인질로 잡는다는 극단적인 방법 외에는 달리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었다.

아론의 말에 메이슨은 뒤를 돌아보았다. Zii 놈들이 곤란한 얼굴로 아론과 프레드를 번갈아 쳐다봤다.

“놔줘요.”

메이슨은 짧게 말했다. 프레드를 붙잡은 놈들 사이에 가장 윗대가리로 보이는 놈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메이슨이 그를 보며 한 번 더 “그를 놔.” 라고 말하자 그가 주춤거리며 부하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압박당하고 있던 프레드가 풀려났고 그는 주춤거리며 일어났다.

“프레드, 이리 와.”

아론이 부르자 프레드는 어정쩡한 자세와 표정으로 Zii와 아론을 번갈아 쳐다보다 말했다.

“―…난 빼주면 안 될까?”

난 이게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은데……, 프레드는 약삭빠르게 말했고 아론은 열 받은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 프레드는 “난 평생 쫓기며 살고 싶지 않아.” 하고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친구는 머리가 좋은 편인 것 같은데.”

노아는 낮게 웃으며 중얼거리듯이 말했고 이를 깨문 아론이 겨누고 있던 총으로 노아의 머리를 후려쳤다.

“노아!”

총의 그립, 단단한 부분에 맞아 고개를 숙인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붉은 것이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Zii와 보디가드들이 그들을 향해 다시 총을 들어 올렸지만 총에서 철컥, 장전하는 소리가 난 것은 아론의 총뿐이었다. 아론이 이를 갈며 노아를 향해 총을 겨누고 말했다.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아?”

총을 쥔 아론의 손이 금세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그가 또 무슨 짓을 저질러 버릴까 봐 애슐리가 작게 “아론, 제발.” 하고 중얼거렸다. 노아가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저 두 사람에게도, 메이슨에게도.

“프레드 말고 다른 건? ―차라든가?”

메이슨은 약간 느린 어조로, 조용히 물었다. 흥분 시켜서는 안 되고, 흥분해서도 안 됐다. 메이슨은 후들후들 떨리는 주먹을 손으로 감쌌다. 키득거리며 고개를 든 노아의 뺨에 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자 눈앞이 붉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필사적으로 참으며 물었다.

“혹시 연락할 사람이 더 있나? 돈은 얼마나 필요해?”

“…―넌 뭐야, 대체?”

아론이 잔뜩 열 오른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왜 경찰도, Zii도, 보디가드도 아닌 배우 나부랭이가 나서서 중재를 하냔 말이었다.

“내가 누구건, 그게 중요해? ―경찰과 이야기하고 싶은 거라면 그렇게 해. 넌 지금 누구라도 부를 수 있으니까.”

설사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해도, 노아의 머리에 총을 댄 채라면 10분 안에 가능할 터였다. 메이슨의 말에 아론은 눈을 굴렸다. 애슐리가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이, 일단 차를 준비해. ―허튼 짓을 하면 이 새끼, 죽이진 못할지도 모르지만 팔다리 같은 곳은 바로 바로 날려 버릴 테니까.”

그녀는 노아의 머리카락을 잡고 뒷머리에 총을 댄 채로 말했다. 메이슨이 다른 말을 하기 전에 필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곧 공원으로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들어왔다.

“차 키 거기 꽂아놓고 꺼져.”

아론이 차갑게 말했고 벤틀리를 끌고 온 기사는 황급히 나와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추적이 눈에 띄면 이 새끼 죽여 버리라는 걸로 알겠어. ―알아? 우린 이미 죽을 각오는 했으니까.”

애슐리가 후들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총을 쥐고 있는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와 2년 정도 일하며 수많은 작전을 같이 했지만 그녀가 저렇게 겁에 질리고 긴장한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녀와 아론이 노아의 머리에 총을 더 위협적으로 밀어붙이며 주변을 돌아봤다. Zii와 보디가드, 필의 얼굴까지 찬찬히 쳐다보았고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아를 방패처럼 세우고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

메이슨은 하얗게 변하다 못해 피가 맺히는 입술을 더 깨물었다. 이대로 노아를 보내도 되는가. 다른 방법은 없었지만, 하지만――.

메이슨은 끌려들어가듯 차에 올라타는 노아를 바라보았다. 피가 흘러 한쪽 눈을 살짝 감고 있던 노아는 메이슨과 눈이 마주치자 나른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메이슨은 머리털이 쭈뼛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 쭈뼛한 감각은 알타의 은신처 침실 문 앞에서 느꼈던 감각에서부터 시작됐고 노아의 아스라한 미소로 이어졌다. 메이슨은 턱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보내면 노아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몸이 움직였다.

“? ―너 뭐야, 이 새끼야!?”

달려간 메이슨은 아론이 닫으려는 차 문을 붙잡았다. 메이슨은 차에 낀 손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아랑곳 않으며 “잠깐, 잠깐만,” 하고 말했다.

“――헤일리!”

“리스! 리스!”

등 뒤에서 빅과 토니가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메이슨은 그들을 외면한 채 아론을 향해 말했다.

“―인질은 둘인 게 낫지 않아?”

메이슨은 그들이 뭐라고 하기 전에 차 문을 열고 안쪽에 올라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노아를 지킬 수 있도록, 그의 옆에.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노아보다는 내가 덜 부담스러울 테고.”

둘 중 하나만 살아 있더라도 협상은 계속 할 수 있었다. 안 그래? 메이슨은 동의를 구하듯 그들을 향해 말했다. 아론과 애슐리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급히 눈빛을 교환했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차가 출발했다.

“리스! 리스!! 리스으――!”

창밖으로 토니가 울며 달려오는 것이 보이다가 멀어졌다. 당황한 빅의 얼굴과 체이스, 스태프들, 기자들과 Zii 요원들, 가장 끝에 서 있던 필의 얼굴까지 스쳐지나갔다.

차는 빠른 속도로 공원을 빠져나갔다.

“…―.”

창밖으로 녹음이 사라지자 메이슨은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노아를 돌아봤다. 창백한 얼굴에 흥건하게 젖은 피, 잘게 떨리는 입술.

메이슨은 후들후들 떨고 있는 노아의 가련한 눈을 쳐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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