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ill the lights-29화 (29/29)

Side track 2. Lights in the blue

“이번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상이네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 밤, 여기 모인 우리 모두는 이 위대한 상의 주인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죠. 예? 모르겠다구요? 맙소사,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이미 화면에─…, 아이쿠, 이런. 하이, 헤일리?”

카메라가 앞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헤일리를 크게 클로즈업 했다. 와아아아, 사람들의 휘파람소리와 박수소리, 함성이 쏟아졌고 덤덤하고 좀 졸린 듯한 얼굴로 앉아있던 헤일리는 빙긋 웃으며 카메라에 인사했다. 그 아름다운 미소에 사람들이 한 번 더 환호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제임스.”

진행요원이 헤일리에게 마이크를 가져다주었고 그는 호들갑스러운 오늘의 사회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와우, 헤일리. 오늘 밤 정말로 눈부실 만큼 멋지시군요. 저희 카메라맨이 오늘 종일 시선을 못 떼더니 기어코 인터뷰를 조르네요. ─음, 정장 어디서 맞췄어요?”

아주 끝내주는데요. 제임스는 헤일리의 몸을 완벽하게 감싸고 있는 훌륭한 군청색 턱시도를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T&A? 브리오니? 키톤? 제냐? 아니, 그 날렵한 깃은 처음 보는데. 수제입니까? 그렇죠?”

제임스가 내 말이 맞지? 하는 투로 손가락질하며 윙크했고 헤일리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글쎄요. 제가 산 게 아니라서……, 선물 받은 겁니다.”

헤일리의 말에 사람들은 즐거운 가십을 문 것처럼 작게 환호했고 제임스는 “그렇죠, 물었군요.” 하고 눈을 휘어 친근하게 웃었다.

“옷 선물은 역시 그렇고 그런 의미죠. 그 끝내주는 수트를 선물로 주다니, 의미가 노골적이다 못해 제 다리가 떨릴 지경입니다. ─상대는 역시 그분입니까?”

레이칼튼 씨인가요? 제임스의 물음에 헤일리는 달리 누가 있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사실은 말이죠, 제가 친하게 지내는 파파라치가 있는데, 그 친구가─. 예? 아아, 맞습니다. 제가 커피를 든 사진을 몰래 찍은 것인 양 멋들어지게 찍어주는 그런 좋은 녀석인데, 여하튼. 그 친구가 제가 오늘 영화제에 사회자를 한다고 자랑 했더니 당신에게 인터뷰 좀 해달라고 제게 불고기를 사주더군요.”

짧은 인터뷰를 예고하는 제임스의 말에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올해 초, 자살기도로 오인 받은 심장마비 사건이 있은 뒤로 헤일리는 극도로 인터뷰를 아꼈다. 빅 프록터의 대작 영화에 캐스팅 된 것도, 노아와의 연애도, 납치 사건의 히어로가 되고 스토커를 잡아 감옥에 보내는 커다란 사건이 줄줄이 터졌음에도 그는 그것들에 대한 어떠한 코멘트도 하지 않고 인터뷰를 할 만한 스케줄은 대부분 거절했다. 영화 홍보 과정에서 노아 레이칼튼과의 연애를 인정한 것이 그나마 가장 많은 사생활을 드러낸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연인인 노아 레이칼튼이 파파라치를 극도로 싫어하고 언론에 노출 되는 것을 꺼려해 파파라치를 비롯한 언론과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그야말로 애가 닳아 있었다.

한 때는 모두가 헤일리 러스크는 정발 안 되겠다고, 정말로 구제불능이 라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 다 옛 일이었다. 헐리웃 영화사에 길이 남을 초특급 대박 영화 ‘리얼’ 에서 열연을 펼쳐 세간의 찬사를 얻어낸 그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남자 노아 레이칼튼의 목숨을 구하고 그의 연인이 되어 매일 매일 더 엄청나고 놀라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인생 역전. 신데렐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든 드라마틱한 칭호가 그의 이름 앞에 불어 반짝댔다.

물론 시기와 질투, 여전히 그의 성공이 얼마나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물음표를 붙이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지만 올해 가장 핫한 배우가 헤일리 러스크라는 것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신이 아무리 꽁꽁 숨기고 싶대도 오늘 같은 날까지 인터뷰를 거절하지는 않겠죠? 아름다운 영화제외 밤이니까요!”

제임스의 유도에 사람들이 박수를 쏟아냈고 제임스는 그들에게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어때요? 레이칼튼 씨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나요? 오늘은 왜 함께 안 왔죠?”

제임스의 물음에 헤일리가 살짝 난처한 얼굴을 하더니 “완전히 벼르고 계셨군요.” 하고 이내 짧게 웃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의 미소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탄성에 그의 양옆에 앉은 체이스와 빅이 괜히 저가 흐뭇한 얼굴로 콧대를 으쓱해 보였다.

오늘의 헤일리는 정말로 환상적으로 멋있었다. 모델 경력이 있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그의 괴악한 패션센스와 흐느적거리는 걸음걸이, 짙게 물든 다크서클과 살이 움푹 패인 뺨 등, 그가 아름답거나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요 몇 달, 그리고 바로 오늘. 사람들은 그야말로 끝내주는 헤일리의 모습에 다들 감탄과 찬사를 보냈다.

말을 걸고 싶어서가 아니더라도 묻고 싶은 감색의 훌륭한 정장은 몸에 완벽하게 들어맞았고 깔끔하게 정리한 검은 머리카락과 감성적인 느낌이 나는 바다색 눈동자. 관리 잘 받은 여배우들보다 반짝거리는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얼굴은 정말로 수트 전문 잡지의 표지 사진이라도 장식할 것처럼 훈훈했다.

젊고 아름다운 그 남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모을 만큼 매력적인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제가 사귀는 사람이 누군데 제가 안 행복하고 배기겠어요? 꿈인가 싶을 정도죠. ─오늘 같이 안 온 건……, 아 그래요. 그는 제게 지금 화가나 있거든요.”

같이 오기 싫다고 하더군요. ─바쁘다든가, 일이 있다든가 하는 무난한 대답이 예상되었던 헤일리의 갑작스러운 폭탄발언에 시상식장은 술렁거렸고 제임스는 눈을 반짝이며 “이야, 불화설을 인정하는 겁니까? 제가 지금 아무도 물지 못했던 그런 특종을 문건가요?” 하고 물었다.

“왜요? 뭘 잘못했습니까, 헤일리! 속 시원하게 털어놔 보세요!”

제임스가 눈을 반짝거렸고 헤일리는 쓰게 웃었다. 그 쓴웃음조차 매력적이라 여기저기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시상식 중간에 이어지고 있는 인터뷰임에도 모두가 대형화면에 뜬 헤일리의 말과 표정에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집중하고 있었다.

“음, 그게 말이죠, 이야기하자면 긴데…….”

작게 한숨을 쉰 메이슨은 말끝을 흐리며 눈을 굴렸다.

그래, 이야기하자면 꽤나 길었다.

***

시작은 영화 촬영 직후였다. 그때는 내내 피곤하고 잠이 부족해 있었기 때문에 생각이 한참 짧아진 시기였다. 생각이 아주 짧았다. 메이슨은 내내 벼르고 있던 스토커를 붙잡는데 혈안이 되어 그 일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납치 사건 때는 사건이 너무 컸다. 범인 둘은 이미 죽어버렸고, 희생자인 노아는 이미 두 번째 납치 사건으로, 그 충격이 얼마나 클지 모두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혹시라도 그에게 트라우마를 남길까, 세상 모두가, 하다못해 특종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거는 파파라치 놈들조차도 노아를 조심스럽게 대했다. 직접적인 인터뷰를 신청하거나 하는 일도 거의 없었고 필을 통한 공식적인 답변을 하고 나자 다들 유야무야 ‘그렇구나.’ 하고 이미 나와 있는 팩트를 물고 빨고 재생산할 뿐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생생한 인터뷰가 가능한 것은 사실 헤일리─메이슨 뿐이었는데 그조차도 다리에 총상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에 드러누워 레이칼튼 가의 철저한 보호를 받자 그 일에 대한 인터뷰나 취재는 허공으로 붕 뜨고 말았었다.

그러나 스토커 사건은 그렇지 않았다. 사건을 해결한 메이슨은 상처 하나 없이 말짱했고 스토커는 손가락 등 부분이 반쯤 날아가 덜렁거리는 채로 팔팔하게 살아 있었다. 이 스토커가 얼마나 집요하고 지저분하게 굴었는지 증거는 한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에 재판 역시 모두의 예상대로 진행 되었다. 물론 스토커가 내내 겁에 질린 얼굴로 메이슨을 가리키며 ‘저놈에 게 살해당할 것 같았다고!’ 하고 계속해서 소리 질렀지만 그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놈은 스토커 혐의에 기물파손, 살인미수, 등등 갖가지 혐의를 더해 벌금 45만 달러와 12년이라는 무거운 형을 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대중이 스타에게 기대하는 가볍고 신나는 해피엔딩 가십이었다.

때문에 언론은 이 일을 가지고 메뚜기 떼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메이슨이 재판에 입고 갔던 검은색 트렌치코트와 셔츠, 구두, 시계 등은 화제가 되어 불티나게 팔렸고 기자들은 메이슨이 이 영웅담을 으스대며 직접 카메라에 대고 설명해주기를 바랐다.

만나는 사람마다 스토커에 대해 물었으며, 짚 앞은 파파라치로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당연히 노아의 저택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었다.

카페를 차리는 일 같은 건 당연히 할 수가 없었다.

노아는 처음엔 이 일에 대해서 ‘결국 그 놈을 잡았군요? 차는 왜 달라고 하나 했더니.’ 하고 심드렁히 굴더니, 메이슨이 내도록 집에서 빈둥거리자 아주 기뻐하며 며칠이나 생글생글 해사하게 웃고 다녔다.

메이슨도, 당장 자리를 봐놓았던 카페 자리를 놓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눈을 휘어 예쁘게 웃는 노아에게 도란도란 하루 일과를 듣는 것이나, 노아와 소소한 게임을 하거나, 노아와 아침, 점심, 저녁 함께 식사하는 것이나, 섹스에 지쳐 잠들었다가 깨서, 곤히 잠들어 있는 노아를 보는 것이 꽤 좋았기 때문에 일이 그렇게 된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문제는 언론이 다소 잠잠해져 활동이 가능해지고 영화가 개봉할 무렵부터 일어났다.

할 일이 없어 산책이나 하고 운동이나 하며 시간을 때우던 메이슨에게 토니가 ‘이것 하나만 하자.’ ‘이건 진짜 꼭 해야 해.’ ‘마지막으로 이 일 하나만.’ ‘너도 심심하지? 이건 노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야.’ ‘이건 두 시간에 삼십만 달러짜리 일인데 정말 안 할 거야?’ 하고 일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몸이 근질거리고 안 그래도 뭐라도 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던 메이슨은 ‘그래요? 그럼 그거 하나만 해볼까요?’ ‘두 시간에 삼십만 달러? 시급이 십오만 달러라고요? AV입니까? 아, 하긴, 나한테 AV가 무슨 삼십만 달러나……. ─그냥 토크쇼? 수다만 떨면 된다구요?’ ‘요즘 가장 잘나가는 인테리어 업자와 함께? 카페 인테리어도 할까요?’ 하고 그가 토니의 찌를 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카페 인테리어 전문이래. 이 사람 만나려면 반 년 전에 예약해야 한다더라.’

토니가 엣헴, 하고 의기양양하게 말했고 메이슨은 ‘반년 전에 예약이라니, 엄청 바쁜 사람이네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도 넣죠.’

메이슨이 최근 가장 잘나가는 카페 인테리어 업자에게 조언을 들을 생각에 부풀어 말했다.

‘어디 보자, 이 프로는 금요일이라고 했으니까─….’

‘그 스케줄을 다 하겠다구요?’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스케줄을 이리 끼워 맞추고 저리 끼워 맞추던 토니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메이슨은 퇴근한 건지 정장을 멋들어지게 입고 있는 노아의 등장에 ‘퇴근이 이르네요.’ 하고 웃어 보였다. 노아는 마주 웃어주는 대신 토니의 다이어리를 빼앗듯 들어 그것을 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몸이 열두 개라도 되나 봐요?’

노아는 툭, 툭, 손가락으로 스케줄 표를 짚었다.

‘여기, 여기, 여기랑 여기, 여기. 다 스케줄이 겹치는데요. 이동 거리나 길을 가로막을 파파라치는 전혀 생각하지 않나 보네요, 토니.’

초보 매니저도 아니고. 노아가 날카롭게 말하며 다이어리를 돌려주었다. 토니는 그의 말에 우물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그래도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저기. 헬기 좀 얼마간만 빌려 쓸 수……,’

‘그가 헬기를 빌려 쓸 수 있냐구요?’

토니의 말에 노아는 메이슨을 돌아보았다. 그는 메이슨을 찬찬히 보며 웃었다.

‘그걸 말이라고. 헬기를 빌려달라는 게 아니라 전용기를 사달라고 말했어도 기꺼이 줬을 텐데요.’

‘그, 그럼…!’

‘물론 그런 말도 안 되는 스케줄 표를 보기 전이었다면 말이죠.’

노아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었다.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스케줄이라니, 헤일리가 당장 푼돈 못 벌면 굶어 죽는 단역 배우도 아니고 어디서 이런 지저분한 스케줄 표를.’

빙긋 웃고 있지만 빈정대는 노아의 면박에 토니는 얼굴을 붉혔다.

‘그, 그게, 다 놓치기 아까워서…….’

‘잠 잘 시간, 식사할 시간도 없이 일 하다가는 정말로 놓치기 아까운 걸 놓칠 수도 있을 겁니다.’

노아는 냉정히 말하고 테이블에 늘어져 있는 그의 물건을 정리해 건넸다. 어서 돌아가라는 뜻이었다. 토니는 쭈뼛쭈뼛 그것을 받아들고 힐끗, 힐끗, 도움을 청하는 눈으로 메이슨을 보았다 작게 한숨을 쉰 메이슨은 일어나 노아의 팔을 잡아끌었다.

‘토니에게 너무 그러지 마요. 나도 동조한 거니까.’

노아의 열렬한 팬인 토니는 금세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메이슨의 말에 노아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말했다.

‘헬기는 빌려주겠지만─, 그 스케줄은 정리하도록 해요. 정말 놓치기 아까운 걸로 일주일에 세 개가 넘지 않게.’

노아는 어물어물, 어쩌지, 하고 눈을 굴리는 토니를 방에서 내보냈다. 아이쿠. 메이슨은 살짝 구겨진 노아의 미간을 보며 그에게 다가갔다. 노아는 다가오는 메이슨의 모습에 표정을 풀고 웃었다.

‘두 시간에 삼십만 달러?’

‘─…Zii시절 제 연봉이, 사십이만 달러였거든요.'

메이슨은 제가 혹한 것도 당연하지 않냐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막이나 밀림에서 구르고 총알을 맞고 목숨이 왔다갔다 1년을 해야 사십이만 달러를 버는데 시원한 곳에서 음료수도 한 잔 가져다 놓고 단 두 시간 수다만 떨어도 삼십만 달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는데 그걸 거절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아는 그깟 사십이만 달러, 하는 투로 짧게 웃으며 메이슨의 뺨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나는 당선의 시간을 살 수 있다면 백만 달러, 천만 달러도 낼 수 있어요. 당신이 원하는 액수는 얼마라도 적을 수 있는 백지수표라도 준비하죠.’

‘……그 시간에 뭘 시키실 건데요?’

뭘 시키는데 한 시간에 천만 달러를 내. 메이슨이 묻자 노아는 눈을 휘어 웃었다.

‘뭘 시킬 것 같은데요?’

‘……음.’

남자가 돈을 주고 연인의 시간을 사서 할 짓이란 대체로 뻔한 법이었다. 메이슨이 눈을 도르륵 굴리자 노아는 낮게 웃음을 터뜨리며 메이슨의 뺨에 입을 맞추며 ‘하여간. 눈치가 빠르다니까.’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자세히는 모르겠죠?’

내가 정확히 뭘 할지, 알아요? ─노아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으며 한 걸음 바짝 다가왔고 메이슨은 슬금 물러나며 웃었다.

‘그렇죠. ……뭘 먹으라고 하려는 건 아니죠……?’

‘글쎄요. 궁금해 하는 걸 보니 듣고,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면 생각해 보기라도 할 건가 보죠?’

아니 그게 아니라……, 메이슨은 바짝 다가오는 노아의 달큼한 풀냄새에 당황해 한 걸음 더 물러났고, 노아가 조금 더 다가왔다.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어느 순간에는 소파 팔걸이에 걸려 털썩, 넘어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당장 백지 수표 쓸까요?’

‘아니, 제가 돈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한 시간에 백지수표라니, 이쯤 되면 남창 취급이라고 따질 수도 없었다. 메이슨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고 노아는 ‘안 좋아하는 것 치고는,’ 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계약서 몇 장을 힐끗, 눈으로 흘겼다.

‘그 총으로 쏴버리고 싶은 새끼와 이미 새 영화를 계약했다고요. 이번에 찍은 영화가 아직, 개봉도 안했는데.’

‘……음.’

‘돈 때문은 물론 아니었겠죠?’

천만 달러와 러닝개런티 따위에 넘어간 건 아니겠지, 하며 노아가 메이슨의 턱을 손가락으로 쥐며 물었다. 천만 달러와 러닝개런티. 역대 흥행성적을 돌이켜 봤을 때 반드시 수천만 달러가 될 계약서를 보고 홀리듯 사인했던 메이슨은 더 이상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보며 비굴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뭘 시키고 싶으신데요?’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했다간 틀림없이 미움 받을 테니, 뭐가 좋을까. …─그래, 야외 플레이 같은 건 어때요?’

‘…….’

미움 받지 않을 플레이를 고르고 골라서 야외 플레이라고? 메이슨은 노아를 말끔히 쳐다보았고 노아는 야하게 눈을 휘어 웃더니 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어디든 괜찮아요. 으슥한 골목 같은 곳도 자극적이겠죠.’

노아는 몸을 숙여 코를 맞대고 속삭였다. 손으로는 메어슨이 입고 있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 하나 풀었고 네 개쯤 풀어 젖꼭지가 보일 정도가 되자 손을 떼고 웃었다. 밖에서 하는 건 으레 그렇다는 듯.

노아가 얼굴을 붉히고 있는 메이슨의 팔을 잡아 일으켜며 침대 옆, 창문 틈의 좁은 공간에 메이슨을 기대게 만들었다.

‘아니, 저,’

‘좁고 조명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노아의 손이 달칵, 조명 스위치를 내렸다.

‘노아.’

‘쉬─….’

노아는 메이슨의 뒷목에 ‘착하죠?’ 하고 속삭이며 그를 벽에 바짝 기대도록 밀어붙였다. 그리고 손을 더듬어 메이슨의 바지 앞을 야하게 쓸어내렸다. 그가 남은 다른 한 손으로 창을 밀어 바람이 통하도록 열었다. 창이 열리자 밖 소음이 안으로 새들어왔다.

‘──!’

메이슨은 숨을 삼켰다. 노아가 창을 여는 것과 동시에 메이슨의 바지 앞섬을 끌어내렸기 때문이었다. 메이슨은 확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벽에 이마를 기댔다. 노아의 차가운 손가락이 고간을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메이슨은 그 선뜩한 느낌에 ‘흐─,’ 하고 떨며 이마를 벽에 기댔다. 노아는 낮게 웃으며 목덜미에 후, 숨을 불어 넣었다. 어깨를 잘게 떨자 ‘정말 잘 느끼는 몸이라니까.’ 하고 쥐고 있는 메이슨의 성기를 손으로 훑기 시작했다. 뒤에서 바지 골에 대고 제 것을 문지르며 손으로는 그 움직임에 맞추어 정액을 쥐어짜듯 야하게 앞을 문질렀다.

‘흣,’

노아의 단단한 것이 엉덩이 사이를 오가는 감각은 꼭 정말 안에 넣은 것처럼 밑을 젖게 만들었다. 메이슨은 눈을 꽉 감으며 노아의 손이 고환을 쥐고 흔들고 기둥을 훑고 귀두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것을 느꼈다. 바지가 조금 더 내려갔고 브리프도 함께 허벅지에 걸렸다. 그가 한 손으로는 젖꼭지를 아플 만큼 세게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고환을 쥐고 문지르다 손을 더 길게 감아 그 안쪽, 다이아를 손으로 둥글게 눌렸다.

‘흐읏, 으, 그건,’

‘이거, 왜 안 빼요?’

노아가 목덜미에 대고 뜨거운 숨을 뱉으며 물었다. 메이슨은 그 목덜미를 간질이는 숨과 젖은 목소리에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노아가 피어싱을 살짝 당기며 대답을 재촉했고 메이슨은 더듬, 말했다.

‘어, 어떻게 빼는지 몰라서─…,’

피어싱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메이슨은 고간 사이, 연약한 곳에 있는 그 작은 돌멩이를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살과 이미 붙은 것처럼 보이는 그것은 힘주어 잡아당기면 기분만 무섭고 묘하고 아플 뿐, 쑥 뽑혀 나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빼달라고 하기도……, 뭐랄까, 헤일리의 얼굴이 잘 알려져 있는 탓에 어디 옥션 같은데 팔리기라도 하면 아무리 뻔뻔한 메이슨이라도 동네 창피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파파라치에게 광증을 일으켜 제 머리카락을 자른 스타의 머리카락이 비싼 값에 판매되는 동네였다. 스타의 다리 사이에 박혀 있던 제법 큰 돌멩이야 당연히 팔리고도 남았다.

‘빼는 법을 모르는 거군요.’

노아는 메이슨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웃었다.

‘당신이 자는 사이에 내가 몰래 피어싱을 달면 또 어쩔 수 없이 계속 달고 다니겠군요.’

나는 여기가 좋은데, 하며 노아는 메이슨의 왼쪽 젖꼭지와 귀두를 아프게 문질렀다.

‘제발 좀, 그만,’

생긴 건 말끔하고 청순하게 생긴 노아의 저속한 섹스 취향에 메이슨은 숨을 헐떡이며 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그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노아는 가슴을 쥐고 있던 손을 내려 안으로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이미 젖어들고 있는 구멍이 좁게 벌어지며 노아의 손가락을 삼켰다.

‘아아─.’

노아는 진짜 못 말리겠다는 듯이 웃으며 메이슨의 젖은 목덜미에 이를 박았다. 메이슨은 노아가 안을 휘젓는 손에 힛, 흣, 음란한 신음이 새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원래도 야하던 몸인데─…, 몇 번 하니까 내 좆에 익숙해진 건지, 완전히 맞춤 같은 느낌이 든다구요. 이렇게─, ──,’

대충 휘젓듯 안을 누르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곧 성급하게 노아의 것이 밀고 들어왔다. 메이슨은 쿵, 벽으로 완전히 밀리며 숨을 들이켰다. 노아의 것이 닫혀있던 내벽을 밀고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흐른 것처럼 떨렸다.

‘흐, 으읏─, 잠, 잠…,’

메이슨은 온몸을 바짝 붙이고 선 노아의 체온에 덜덜 떨었다. 노아가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엉덩이, 빼요, 좀 더,’ 하고 손으로 골반을 끌어 당겼다.

‘흣─! 아, 으──!,’

허리가 당겨지자 노아의 것이 더 깊이 안으로 들어왔다. 등이 땀으로 흠뻑 젖는 것이 느껴졌다. 메이슨은 터져 나오는 신음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눈을 꽉 감았다. 살갗이 전기라도 오르는 것처럼 따끔거렸고 노아가 안을 가볍게 쳐올리자 눈앞이 확 쏟아지듯 아찔한 감각과 함께 줄줄, 벽에 대고 사정했다.

‘하아, 당신 사정하는 거, 진짜, 꼴리는 거 압니까?’

이런 표정으로, 어떤 계집을 안았어요? ─몸을 움츠리고 바들거리며 떠는 메이슨의 곤두선 가슴을 손으로 꽉 쥔 노아는 미치겠다는 듯이 세게 허리를 쳐대기 시작했다.

‘흐, 흐윽, 아! ─아악, 아, 아!’

후둑, 눈물과 정액이 바닥으로 튀었다. 땀에 젖은 살이 맞부딪혔고 질꺽대는 소리와 입을 막아도 새는 비명 같은 신음에 메이슨은 입술을 깨물고 손을 뻗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이 음란한 소리가 새어나갈까, 생각만 해도 귓가가 붉어지고 눈앞이 캄캄했지만 창을 닫을 수는 없었다. 되레 노아는 메이슨의 손을 끌어당겨 벽을 짚어 허리를 완전히 굽히게 하고 안 을 강하게 쑤셨다.

‘아, 큿, 읍── 흣, 아, 앗!’

노아의 것이 안을 짓이길 것처럼 드나들었다. 자신을 음란하게 조이는 내벽에 노아도 이를 깨물고 으르렁거렸다.

‘아─…!’

허리를 강하게 조이는 손에 메이슨은 힉, 숨을 삼키며 벽을 긁었다. 땀에 젖은 손이 미끄러졌고 벽에 어깨가 부딪히기 전에 노아가 메이슨을 끌어당겨 강하게 삽입했다. 메이슨은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비틀었다. 성기에서 정액이 줄줄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젖에서 우유 나오는 것 같은데요.’

노아가 메이슨의 젖은 아래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목덜미에서 들린 잠긴 목소리에 안 그래도 열이 올라 벌건 몸이 다시 붉어졌다.

‘밖에서 하는 것 같은 느낌은 안 나지만─….’

노아는 숨을 몰아쉬며 질꺽, 성기를 꺼냈다. 메이슨은 내벽이 딸려 나가는 것을 느끼며 흣, 바르르 떨었다. 노아의 성기가 빠져나가며 그의 손이 떨어지자 메이슨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노아는 메이슨이 바닥에 무릎을 부딪치기 전에 팔을 붙들어 벽에 기대게 하고 그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메이슨은 뺨에 닿는 노아의 성기에 미간을 구겼고 노아는 벽에 손을 짚고 그대로 메이슨을 내려다보며 성기를 손으로 훑어 사정했다.

‘흣……,’

‘……. ……. …─.’

노아가 야한 얼굴로 한쪽 눈을 찡그려 사정하는 표정을 보며 메이슨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어 입만 다물고 있었다. 코와 뺨으로 미적지근하고 미끈거리는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노아가 그의 얼굴에 대고 사정한 것이었다. 얼마나 많이 쌌는지 입술이며 턱으로 금세 흘러내렸다.

‘…─.’

메이슨은 노아의 만족스러운 단정한 얼굴을 보며 손을 들어 입안으로 스미는 정액을 쓸어 내렸다. 노아는 그 손을 잡아 흥건한 정액을 메이슨의 얼굴에 치덕치덕 바르며 불렀다.

‘메이슨.’

메이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입안으로 정액이 흘러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노아는 안다는 듯이 뺨을 도닥이며 말했다.

‘당신이 헤일리를 얼마에 팔든, 사실 상관없어요. 나는 당신을 가졌으니까. 헤일리는 헤일리대로 놓아두는 것이 맞죠. 드라마를 하든 그 총으로 쏴버리고 싶은 새끼랑 영화를 찍든, 그래요. 이해할 수 있는데,’

노아는 메이슨의 꾹 다물린 입술을 할짝, 혀를 내어 핥고 쪽 빨았다.

‘이건 내거라는 걸, 잊을 정도가 되어선 곤란해요.’

‘……그 정도가 되면 또 이런 짓을 할 거라는 경고 입니까?’

메이슨은 결국 입안으로 흘러든 미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노아는 뭘 모른다는 듯이 눈을 휘어 웃었다.

‘고작 이 정도일 것 같아요?’

‘…….’

애널과 입으로 정액 좀 삼켜 주는 걸로는 안 되죠. 노아는 저질스러운 말을 하며 해사하게 웃었다. 한 점 부끄러움도 수치심도 없는 그 얼굴에 메이슨은 눈을 굴리다가 결국 시선을 떨구었다.

‘씻으러 갈까요? 난 이대로도 좋기는 하지만.’

노아는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고 뺨에 넓게 발라놓은 정액이 마르는 느낌에 메이슨은 한숨을 쉬며 노아에게 팔을 뻗었다. 메이슨을 안아든 노아는 욕실로 향했고 물론, 씻기는 척, 몸을 지분대었고 다시 섹스가 시작되었다. 메이슨은 그날, 정액이 물처럼 흐르고 하늘이 노래질 때가 되어서야 기절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

“그게 이야기하자면 긴데……,”

말끝을 흐린 메이슨은 왜 그 상냥하고 친절한 노아가 화가 났는지 궁금해 눈을 반짝이는 주변을 돌아보며 웃었다.

"영화인들의 축제인 이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사적이고 우울하네요. 그런 건 술이라도 한 잔 주면서 물어야죠. ─아, 술도 준비되어 있다구요?”

스태프의 손짓에 메이슨이 작게 웃으며 되물었고 사람들이 와르르 웃었다. 술 한 잔 달라고 할까 고민하는 것 같은 얼굴을 했던 메이슨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물었다.

“근데, 이 상, 제가 받는 겁니까?”

“오, 헤일리.”

제임스는 눈썹을 팔八자로 찡그리며 웃었다.

“상이면 뭐든 좋다는 건가요? 물론 영예로운 상이지만요.”

“물론 상도 좋지만─…, 수상 소감 때 애인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나요?”

뭐라도 빨리 받아서 사과를 하고 싶다는 메이슨의 말에 사람들이 다시 웃었다. 그의 가벼운 어투로 사람들은 두 사람 사이에 심각하지 않은 수준의 다툼이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직 없는 것 같지만, 있다가 제가 충분히 기회를 드리죠. 이 상은 따로 주인이 있으니까요. ─여우조연상입니다! 샐리 바트! 축하드립니다!”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고 한쪽에서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나이든 여배우가 감격한 얼굴로 일어났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향해 환호했고 메이슨도 그녀를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진짜 싸웠어?”

박수를 치며 하품을 참는 메이슨의 옆에서, 벅이 은근슬쩍 조용히 물어 왔다. 메이슨은 “싸운 게 아니라 노아가 화가 난 거라니까요.” 하고 말을 정정했다. 빅은 휙, 휘파람을 불어 여우조연상을 탄 배우에게 환호하는 척하며 물었다.

“왜? 무슨 짓을 했는데?”

“저는 왠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체이스도 카메라에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잡히도록 이를 드러내 웃으며 중얼거렸다.

“알 것 같아? 왜? 왜?”

궁금해서 머리카락이 설 것 같다며 빅이 재촉했고 체이스는 메이슨을 보며 쓰게 웃었다. 메이슨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스케줄을 뺀다고 빼서 줄이고 줄였지만 한두 개 하다 보니 그와 연결된 일들도 많고 소모되는 시간도 길어졌다. 일은 제법 바빠졌고 노아의 미간엔 주름이 졌다. 노아가 짜증내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한 번 바쁘기 시작하니 물살에 휩쓸리듯 스케줄에 쓸려 내려갔다.

그러나 정말로 메이슨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것은 영화가 개봉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영화 홍보를 위한 스케줄이 가득 차 있었다. 시사회에 팬 사인회, 미국 전역의 주요 영화관에 가서 손을 흔들어주고 연습한 헤일리의 사인을 퍼주고, 그런 식이었다. 영화 개봉이 열흘 쯤 지났을 때는 영화의 엄청난 흥행 열기에 영화의 주역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곳이 늘어났다.

영화 ‘리얼’은 빅 본인이 스스로 세웠던 이전 영화의 흥행 순위를 완전히 뒤엎어, 현재 상영 중임에도 불구하고 관객 동원 1위를 벌써 갈아치우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흥행 돌풍이 아니라 토네이도 수준의 엄청난 대박이었다.

빅은 의기양양하게 거 보라며, 내가 뭐라고 했냐고 떵떵거리며 자랑했고 메이슨은 ‘정말로 감독님만 부자가 되었네요.’ 하고 차게 웃었다. 빅은 물론 이미 엄청난 부자였겠지만 그 자신의 말대로 더, 더 부자가 되었고 메이슨은 예견대로 엄청난 부자는 아닌, 그냥 톱스타가 되었다.

톱스타. 그건 메이슨에게 정말로 달가운 일이 아니었는데, 노아를 구하고 스토커를 잡은 강한 이미지와 더불어 영화 ‘리얼’의 냉혹하고 무서운 클로저 캐릭터의 이미지까지 더해져 메이슨에게는 그동안 없던 팬이라는 존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켜본 사람들의 중평에 따르면 헤일리의 팬은 독특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곤 했는데……, 그게 상당히 노아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어제 당시도 노아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최근 메이슨은 내도록 아주 바빴고 영화 홍보를 위해 뉴욕이다, 애리조나다, 보스톤이다, 마이애미다, 온 미국을 헤치고 다니다 못해 캐나다, 영국, 프랑스, 한국, 태국…,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와, 이게 누구죠?’

그의 집, 그의 침실에서 기다려 열흘 만에 만난 노아는 꾹꾹 눌러 참는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메이슨은 이렇다 저렇다 변명하는 대신 노아를 꼭 껴안았다. 오랜만에 만난 노아를 껴안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얼굴 보기 무서웠던 탓도 좀 있었다.

‘정말 얼굴 잊을 뻔 했네요. 웬일로 집에 돌아와 있어요, ─아, 내일 시상식 때문에?’

목덜미에서 들린 노아의 차가운 목소리에 메이슨은 ‘아뇨, 보고 싶어서.’ 하고 옳은 대답을 건넸다.

‘……그런다고 내 화가 풀릴 것 같나 보죠?’

‘하하…….’

메이슨은 대답 대신 살짝 웃었다. 이미 노아의 목소리는 찬 기운이 살짝 누그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이슨은 날선 고양이 같은 노아의 어깨를 끌어안고 숨을 들이켰다. 특유의 풀냄새가 어깨를 이완시켰다.

‘나 참…….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건지.’

노아는 작게 한숨을 쉬고 메이슨을 답삭 안아 들고 침대에 내던졌다.

‘저, 잠깐,’

내내 참았다는 듯 샤워도 하지 않고 셔츠를 푸르며 다가오는 노아를 향해 메이슨은 양 손바닥을 내보였다.

‘왜요?’

노아가 대번에 미간을 구기며 참을성 없이 물었고 메이슨은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 오후에 촬영이 있습니다.’

‘살살 할게요.’

오후에 또 촬영이라니, 바쁜 네가 몹시도 짜증나지만 여하간 지금은 하자는 듯 노아가 사근하게 웃으며 말했고 메이슨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을 믿지도 않지만, 믿는다고 쳐도, 오후 촬영에 탈의가 있어서…….’

‘……. 메이슨.’

노아는 메이슨의 뺨을 붙잡고 눈을 마주했다. 메이슨은 노아의 녹색 눈이 짜증과 정염과 질투와 기타 등등의 감정으로 일렁이는 것을 마주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죄송합니다. 저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메이슨의 사과에 노아는 입술을 꾹 깨물고 숨을 들이켜고 내쉬었다.

‘곧 스케줄 모두 다 정리할 테니까─…,’

‘아아, 그 말을 지난달부터 한 건 알고 있죠?’

노아는 빙긋 웃으며 날카롭게 물었다. 메이슨은 ‘이번에는 정말로…….’ 하고 그의 손을 붙잡았고 노아는 메이슨을 빤히 쳐다봤다.

‘영화가 곧 내려가니까요. 곧 한가해질 거고 그때는 정말 카페를 하면서 집에서─…,’

‘메이슨.’

노아는 내가 이번에도 속아줄 것 같냐는 듯이 불렀다. 메이슨은 정말, 진심으로 이번에야말로 스케줄 정리를 할 거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게, 스케줄이 밀려들다보면 정말로 쉽지가 않았다. 한 번에 모두 끊어내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줄줄줄 끝도 없이 이어지는 흐름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오늘 촬영은 일찍 끝납니다.’

‘그렇겠죠. 내일 시상식 준비를 해야 할 테니.’

노아는 냉담하게 말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메이슨은 자신이 거절해놓고 노아가 일어나는 것이 아쉬워 입맛을 다시며 따라 일어났다. 침실을 나가려나, 메이슨이 그를 따르려는데 노아가 테이블 위에 놓인 커다란 상자들을 들었다.

‘이거.’

‘뭡니까?’

메이슨이 의아하게 묻자 노아가 메이슨에게 상자를 떠넘기듯 들게 하고 제가 상자를 열었다. 안에서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정장이 나왔다.

‘원래는 가봉도 하러 가고 했어야 했는데─…, 당신이 너무 바빠서 말이죠. 당신이 갖고 있는 다른 수트의 치수를 재고 제단사가 눈대중으로 만들었답니다.’

노아는 사실 그마저도 좀 짜증이 난 것 같았지만 메이슨은 정장을 꺼내 적당히 몸에 대고 물었다.

‘잘 어울립니까?’

‘……음, 입혀 봐야 알 것 같은데.’

노아는 당장 지금 옷을 찢어버리고 새 수트를 입히고 싶다는 듯 몸을 훑었다. 작게 웃은 메이슨은 옷을 내려놓았고 노아가 또 다른 상자들을 열었다.

‘구두에 시계라……. 직접 고르신 겁니까?’

메이슨은 상자 안에서 나온 고급스럽고 깔끔한 구두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브레게에 벨루티라. 메이슨은 노아의 취향 한 번 노골적이라고 생각하며 물었다.

‘물론이죠. 왜요. 너무 과시하는 것 같습니까?’

‘좀…….’

돈이 아주 많은 남자친구가 있다고 온몸으로 호소하는 그런 조합이었다. 노아는 눈을 휘어 웃었다.

‘이 정도가지고 뭘─.’

그깟 거 얼마나 한다고, 하는 투로 말한 노아는 ‘내일 당신이 달 가장 비싼 장신구는 그 정도가 아닐 텐데요.’ 하고 시계를 매만지고 있는 메이슨의 손을 당겨 입을 맞췄다.

‘예?’

‘내일, 당신과 함께 입장할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나요?’

설마 빅이나 체이스 따위와 입장하려는 건 아니겠죠? 노아의 물음에 메이슨은 살짝 귀가 따끈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럴 리가요.’ 하고 노아의 예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일전에 빅과 체이스가 함께 입장하자고 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메이슨은 어쨌든 노아와 함께 시상식 레드카펫을 밟을 생각이었다. 빅과 체이스가 싫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좀 시끄럽고 귀찮았으며, 노아와 함께 입장하는 것은 무척이나 기대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아름다운 노아가 멋들어지게 치장하고 플래시와 조명이 반짝이는 빨간 카펫 위에서 예쁘게 웃는다니, 솔직히 무척 섹시할 것 같았다. 내일 등장하는 그 어떤 배우나 스타보다도 그가 가장 멋지고 아름다울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노아는 메이슨에게 선물을 주고 키스를 받자 좀 더 기분이 나아진 듯했고 메이슨 역시 노아와 함께 시상식장에 들어갈 생각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일이 틀어진 것은 그날 저녁의 일이었다.

***

“아, 왜? 응? 왜 화가 났는데? ─왜 둘만 아는 건데? 둘이 바람이라도 피웠어? 그래서 둘만 아는 거야?”

“감독님, 카메라.”

카메라 들어옵니다. 체이스가 흥분하는 빅을 붙잡으며 이를 드러내 웃었다. 메이슨은 역시 웃는 낯으로 한숨을 삼키며 “아니, 그게─….” 하고 말을 흐렸다.

“헤일리, 팬들 때문에 화가 난 거죠?”

“팬? 팬 때문에 화가 나? 왜?”

체이스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힐끗, 메이슨을 보며 말했고 빅이 왜 빨리 말하지 않고 이렇게 뜸을 들이냐는 듯 발을 살짝 굴렀다. 메이슨은 대답 대신 짧게 한숨을 쉬었고 체이스는 역시 그렇군요, 하며 빅에게 말했다.

“아─…, 그게 말이죠, 헤일리의 팬들이 약간, 조금, 아니 사실은 꽤…… 과격하거든요. 거칠고……, 부담스럽죠.”

응, 누가 봐도 좀 그렇습니다. 체이스는 어깨를 좀 떨며 말했고 함께 홍보 활동을 다니지 않았던 빅은 고개를 눈만 끔뻑였다.

“? 무슨 말이야?”

“…….”

메이슨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고 수상 소감을 마치고 내려가는 여배우의 뒷모습을 생각 없이 쳐다봤다.

사회자 제임스가 여배우를 향해 손을 흔들며 손 키스를 보냈다.

“여우조연상의 샐리 바트,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영화 정말로 잘 봤다고 말하고 싶군요. 제가 브라이트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제임스는 눈물을 닦는 척하며 진심으로 경애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음 시상은 당연히 남우조연상이겠죠? 주역만큼, 어느 누군가의 가슴엔 주역보다 심장에 남는 연기를 해주신 남자 조연들……, 노미네이트 된 후보들을 만나볼까요?”

제임스가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메이슨의 얼굴을 대형화면에 띄웠다. 메이슨은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흔들어보였고 제임스는 그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소개했다.

“애인과 싸웠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아까보다 우수에 찬 느낌이네요. 첫 후보입니다. 영화 ‘리얼’의 고독한 살인마, 클로저 역의 헤일리 러스크입니다!”

영화 리얼의 헤일리의 명장면을 편집한 짧은 영상이 웅장하게 흘러나왔고 다시 헤일리의 얼굴이 대형 화면에 잡혔다. 노미네이트를 소개한 것뿐인데 빅과 체이스가 양옆에서 마치 수상이라도 한 것처럼 거하게 박수를 쳐댔다.

“워워─, 빅, 체이스, 그래요. 헤일리가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진정해요.”

제임스가 그들을 만류했고 메이슨은 그것이 재밌다는 듯이 웃었지만 속은 까맣게 타고 있었다. 내 가장 비싼 장신구. 반짝반짝, 아름답게 치장한 노아를 옆에 달고 의기양양하게 시상식장에 들어서려고 했는데 왜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다음 후보를 소개해야 진정할 모양이군요. 다음 후보는 조금 전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샐리 바트와 열연을 펼쳐준 이 남자죠. 영화 브라이트의…….”

제임스가 다음 후보를 소개하자 냉큼 자리에 앉은 빅과 체이스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헤일리의 팬이 어떻다고? 과격해? 막 때리나?”

“아뇨, 차라리 그런 거면 괜찮은데 헤일리의 팬들은……,”

체이스가 자신의 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메이슨은 자꾸 감기는 눈을 애써 뜨고 다음 후보들을 들으려 노력했다. 노아가 참 예뻤을 텐데, 하는 생각 외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드륵. 주머니에서 짧은 문자 소리가 들렸고 메이슨은 무심히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노아가 혹시 텔레비전을 보고 수상 축하 문자라도 미리 보냈나, 하며.

“…─그래서 그때도 정말 놀랐는데 심지어는 막 이렇게 상의를 풀고 가슴을 열고─…, 헤일리?”

헤일리의 팬들에 대해 빅에게 이야기 해주던 체이스는 의아하게 그를 불렀다. 헤일리가 갑자기 휴대폰을 확인하고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떴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체이스의 물음에 메이슨은 “괜찮아요.” 하고 적당히 답하며 다시 한 번 휴대폰 문자를 보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돌아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

어제 화보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건물을 나섰던 메이슨은 건물 앞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젊은 여자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스케줄은 어떻게 아는 거지. 토니가 흘리나…….

체이스와 토니 말에 따르면 원래 모든 스타들의 팬덤은 그마다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어떤 스타의 팬들은 자신의 스타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잘 듣고 따르는 순한 팬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스타의 팬들은 팬인지 안티인지, 공격하고 빼앗고 스타에게 화내는 일도 빈번한 팬들도 있다고. 자신들의 스타에게 무관심한 팬덤, 스타에게 엄마처럼 자상하게 구는 팬덤, 스타가 못난 것을 인정하고 대신 사과하는 팬덤……. 헤일리 팬덤의 성격은 대략 이랬다.

‘여기 좀 봐요! 헤일리! 헤일리!’

그렇게 소리 지른 여자는 아무리 LA라지만 한 겨울, 약간 쌀쌀한 날씨에 맨 다리로 팬티를 벗어서 메이슨에게 던졌다. 메이슨은 그녀가 던진 속옷을 피하며 한숨을 쉬었다. 브래지어도 날아왔고 스타킹도 있었다.

‘헤일리…─, 노아와 헤어져요. 당신은 게이가 아니에요. 게이일리가 없어!’

또 다른 여자는 여자의 몸에 대해 알려주겠다며 달려들었다. 물론 메이슨 자신은 게이가 아니었지만 헤일리는 100% 게이였다. 아니, 120%정도는 게이였다.

헤일리의 팬들은 남자도 물론 있었지만 여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녀들은 대체로 헤일리와 섹스하고 싶어 했는데 부담스러운 육탄 공격을 일삼았다. 그녀들이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영화 리얼의 클로저 캐릭터가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납치범과 스토커를 잡은 실제의 헤일리 역시 강하고 노멀한 남자로 느껴지는 것 같다고 토니와 체이스는 분석했다.

메이슨은 노아와 사귀고 있기는 했지만 노멀한 남자로서 어느 정도까지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건물을 나서면 찬바람이 부는데도 글래머러스한 아가씨들이 수영복만 입고 기다린다니, 싫어할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 이상이 되어 밤에 침실에 숨어들고 자신의 성기 사진을 주머니에 넣어주고 가는 건 무섭다고 생각했다.

‘헤일리, 헤일리!’

그녀들을 지나쳐 대기하고 있는 차로 가려는 메이슨을 한 여자가 붙잡았다. 메이슨의 보디가드들도 모두 건장한 남자들이라 가슴을 훤히 드러낸 여자들이 매달리니 그녀들을 어떻게 떼어낼지 난감한 듯했다.

‘사인해줘요. 응? 사인해줘요!’

그녀는 검은 매직을 들고 간절히 말했다. 가녀려서 밀칠 수도 없는 여자의 부탁에 메이슨은 그녀의 매직을 받아 들었다.

‘종이는?’

메이슨이 묻자 그녀는 종이를 내미는 대신 가슴을 열어 젖혔다. 그녀가 섹시하게 제 입술을 핥으며 가슴을 내밀었다. 메이슨은 하얗고 뽀얀 그녀의 가슴을 내려다보다가 눈을 살짝 굴리고 매직을 그녀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그녀가 작게 신음을 뱉었고 메이슨은 ‘에휴.’ 한숨을 내쉬며 매직을 떼어냈다. 대신 그녀의 손목을 잡아 팔 안쪽에 사인을 휘갈겨 주고 매직을 돌려주었고, 주변에서 꺄악──! 부러움으로 자지러지는 소리가 거리를 메웠다. 사인을 받은 팬의 눈이 감동과 애정으로 반짝였다.

‘…….’

이 여자들의 마음은 정말 모르겠다. 여자들이 자신도 손목을 잡아채 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난리를 부렸고 보디가드들이 그녀들을 막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메이슨은 미간을 찌푸리며 보디가드들 사이에서 그녀들을 피해 빠져나가려 했고 순간, 무언가가 그를 콱 덮쳤다.

‘윽, 읍─!’

메이슨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보디가드를 붙잡았지만 누르는 무게에  바닥으로 넘어졌고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말캉한 입술이 닿는 것을 느꼈다. 아우 씨. 메이슨은 구불거리는 긴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는 것에 미간을 찌푸리며 여자를 밀어냈지만 그녀는 마지막까지 쪽쪽 입술을 빨고 혀로 메이슨의 얼굴을 핥았다.

보디가드들이 그녀를 때어내 밀쳤고 메이슨은 얼얼한 엉덩이와 입술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심코 고개를 돌렸고, 그리고─…,

‘…….’

‘…….’

팬들은 미쳐 날뛰고 보디가드들은 그 여자들에게 소리 지르며 거리를 정리하는 가운데 메이슨과 도로변 차 앞에 서 있는 남자, 노아만이 입을 다물고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지? ─메이슨이 한참 만에 입술을 벙긋하자 노아가 그 입술을 아주, 굉장히 짜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더니 메이슨에게 키스한 여자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메이슨은 입술을 가렸고 도로변에 서 있던 노아가 성큼성큼 여자들 사이를 헤치고 다가왔다. 거치적거리는 여자들을 무신경한 손짓으로 밀어내고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온 노아가 놀란 눈을 한 메이슨의 목과 뺨을 감싸쥐고 그대로 고개를 꺾어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

메이슨은 흠칫 놀라 그의 옷을 붙들었고 사방에서는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노아는 전혀 멈칫하거나 아랑곳 않고 메이슨에게 진한 키스를 퍼부었고 메이슨은 노아를 밀어내려던 손으로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달래는 듯한 손길에 노아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메이슨은 좀 붉어진 얼굴로 그를 올려 보았고 노아는 냉랭한 눈으로 말했다.

‘내가 분명히 말했죠. 이게 내거라는 걸 잊는 건 곤란하다고.’

아, 그게요……, 메이슨은 변명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저쪽에서 한 것이든 아니든, 이 상황에서 기분 좋을 남자는 없을 터기 때문이었다. 메이슨 역시 같은 상황이었다면 틀림없이 노아에게 화를 냈을 것이었다.

노아는 메이슨을, 그리고 주변에 가득한 헐벗은 여자들을 폭발할 것 같은 눈으로 쓸어보고, 메이슨을 지키지 못한 보디가드들까지 짜증 난 눈으로 보다가 돌아서 성큼성큼 차로 돌아갔다.

메이슨은 급하게 그를 쫓아갔지만 차는 메이슨을 두고 출발해 버렸다. 급하게 토니의 차를 타고 노아의 집으로 가 보았지만 정작 노아는 집으로 향한 것이 아니었다.

메이슨은 노아의 침실에 앉아서 전전긍긍 노아를 기다렸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오늘, 시상식에 가야 할 시간이 되자 필을 보내 ‘바빠서 시상식에 함께 가 줄 수 없으니 잘 다녀오기 바라며 꼭 수상하기를 바란다.’ 는 말을 전했다.

메이슨은 노아가 또 예전에 어느 날처럼 머리가 아프다고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했지만 필은 잘라 말했다.

‘아주 잘,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몹시 피곤한 얼굴로 메이슨을 쳐다보았다. 너 때문에 일이 참 곤란하게 되었다는 시선이었는데─….

하여튼 메이슨은 어쩔 수 없이 빅, 체이스와 함께 입장했다. 그가 기대했던 아름다운 노아의 레드카펫은 없었고 대신, 빅과 체이스의 수다가 내내 옆에 있었다.

화려한 시상식의 쇼와 시상, 눈물의 수상이 이어지는 동안 메이슨은 졸다, 걱정하다, 다시 졸다, 걱정하다, 인터뷰 하다, 다시 졸다…… 반쯤 넋이 나가있었다.

한 통의 문자를 받기 전까지.

***

“올해의 남우조연상입니다! 영화 ‘리얼’의 헤일리 러스크!”

시상자가 큰 소리로 헤일리의 이름을 불렀고 장내는 박수와 환호로 가득했다. 헤일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쑥스러운 표정을 하는 것을 잡기 위해 카메라가 그의 자리를 클로즈업 했고, 곧 술렁, 사람들의 의아한 탄성이 흘렀다.

“……헤일리? 어디 갔죠?”

조금 전까지 자리에 앉아서 인터뷰를 하며 웃던 헤일리 러스크의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헤일리가 재미있는 농담이나 유머를 준비해 사라진 것은 아닐까 기대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제작 스태프들은 분주하고 다급히 헤일리를 찾았다.

“빅? 체이스? 그가 어디 갔는지 아나요?”

당황한 시상자를 위해 무대 아래로 내려갔던 사회자 제임스가 나서 물었고 빅과 체이스는 둘 다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문자를 확인한 헤일리가 다급히 어딘가로 나가는 것만 보았을 뿐이었다.

“이런, 맙소사. 시상을 앞두고 화장실에 간 것은 아닐 텐데─…, 그에게 무슨 급한 볼일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예?”

몇 년이나 이 영화 시상식의 호스트 역을 했던 노련한 제임스도 방금 전까지 앉아 있던 수상자의 실종에는 당황했고, 곧 그에게 한 장의 큐 카드가 전달되었다. 그 사이에 시상식장은 어색한 침묵으로 가득했다. 잠시 뒤, 큐 카드를 다 읽은 그는 이마를 짚으며 ‘아이쿠.’ 하고 웃었다.

“아, 이런, 그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갑자기 자리를 뜨면서, 수상은 빅 프록터 씨가 대신 하신다고 스태프에게 전하셨군요. 빅, 어서 올라오세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다급한 일이었던 모양인데─….”

제임스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부드러운 말로 상황을 정리했다. 모두가 오늘의 클라이맥스로 예상했던 남우조연상의 시상이 맥없이 지나갔고 다른 부분의 시상이 이어졌다.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헤일리 러스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남아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예전에 요트에서의 약속, 기억납니까? ─후문 앞입니다.」

사상을 앞두고 자리를 뜨는 것은 사람들을 곤란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메이슨은 다급히 움직였다. 자신은 헤일리가 아니라 메이슨이었고, 메이슨에게 노아는 요트에서의 약속 따위를 들먹이지 않아도 늘 최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상식장을 나서자 그가 후문 쪽 레드카펫 끝에 서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선 남자는 메이슨을 보자마자, 감상할 새도 없이 그의 손을 답삭 잡아 차에 태웠다.

차는 순식간에 거리를 빠져나가 공항에 도착했고 메이슨은 왜 여기로 왔지, 생각할 틈도 없이 다시 노아의 호화로운 전세기에 태워졌다.

“어, 어디로 가는 겁니까?”

메이슨이 묻자 노아는 대답해 주는 대신 그를 전세기 안, 침대에 던지듯 내려놓고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한숨도 못 잔 얼굴인데, 자요. 어차피 꽤나 가야 하니까.”

시상을 앞둔 사람을 불러내, 다짜고짜 비행기에 태워 실어 나르면서도 노아는 어딜 가는지 친절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저 어서 자라고 눈을 감겨주었을 뿐이었다.

“…….”

한 번 더, 어딜 가는 거냐고 물으려던 메이슨은 이내 입을 다물고 몸의 긴장을 풀었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노아의 얼굴을 보자 그의 말대로 졸음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어디면 어떠랴, 그런 마음도 들었다. 어차피 노아가 가자는 곳이라면 어딜 가든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도착한 곳이 레드카펫 위보다 아름다운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메이슨은 막연히 생각했다.

수마로 빠져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그리고 눈을 뜬 메이슨은 머리가 울리는 기분에 이마를 짚었다. 눈앞이 굉장히 어두웠고 자신은 누군가에게 들려 옮겨지고 있었다.

“어…,”

놀란 메이슨이 일어나려 하자 누군가가 그를 끌어안았다.

“노, 노아?”

코끝을 스치는 단 풀냄새와 익숙한 어깨에 메이슨이 이름을 부르자 노아가 “그새 깼네요.” 하고 대답했다.

“여, 여기가 어딥니까?”

“음, 별장 앞이요.”

약간 웃은 그가 앞을 가리켰고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 곳 앞에 아름다운 건물이 보였다. 제법 밝게 불을 켜놓은 별장 앞으로 직원들이 나와 있었다.

“제가 걸어도 될 것 같은데…….”

“알아요. 잘 걸어 다니는 거. 다리를 부러뜨리고 싶을 만큼 참 잘 돌아 다녔죠, 그 동안.”

노아는 생글, 눈을 휘어 웃으며 말했고 메이슨은 “음.” 하고 입을 다물고 그의 품에 안겨서 눈을 굴렸다. 열댓 명가량의 직원들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기립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신경 쓸 것 없어요. ─곧 모두 이 섬에서 나갈 테니까.”

“……네?”

노아는 멍청한 얼굴을 한 메이슨에게 생긋, 예쁘게 웃어주곤 직원들을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섬을 빌리셨습니까?”

통째로? 메이슨의 말에 노아는 “섬은 많은데 뭐 하러 빌리죠?” 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개인 소유의 섬이군요.”

심지어 그런 섬이 많으시구나. 메이슨은 노아의 스케일에 새삼 감탄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갖고 싶어요?”

노아는 갖고 싶으면 너도 하나 줄까, 하고 사은품 볼펜 건네듯이 말했고 메이슨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뇨. 어차피 제가 이런 곳에 오면 당신과 함께 올 텐데, 제가 받아봐야 귀찮기만 하고…….”

메이슨의 말에 노아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귀여운 말을 하네요.”

노아는 메이슨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고 그를 한 면을 제외하고 천장까지 모두 창으로 된 침실로 데려갔다. 처음에는 완전히 트인 테라스 같은 밖이라고 생각했다. 메이슨은 새까만 바다와 새까만 하늘로 뒤덮인 그 방을 둘러보며 길게 감탄했다.

“…─끝내주네요, 정말로.”

메이슨은 노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침대에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초 몇 개를 제외하고는 지상에 모든 불이 꺼진 것처럼 어두워, 하늘에 가득한 별이 무서울 만큼 잘 보였다.

간간이 들리는 사삭대는 파도 소리. 새로 간 듯한 바삭한 시트와 벌레를 쫓는 시트러스 향. 메이슨은 왜 갑자기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 노아가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이 순간이 제법 느긋하고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 일주일이나 있을 건데 말이죠.”

노아가 메이슨이 누운 옆으로 앉아 시야에 끼어들며 웃었다.

“…─일주일?”

“네. 아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끝내고 휴가를 받아왔거든요. 한 달 간. 일주일은 여기서 묵을 거고, 나머지는 다른 곳을 생각 중이에요.”

섬이 좋다면 다른 곳도 있고, 요트라든가─…, 아무래도 바다 위에 떠 있는 게 조용하고 좋죠? 노아는 달큼하게 눈을 휘어 웃었다.

“……저도 같이, 말입니까?”

당장 내일도 스케줄이 있을 텐데,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 메이슨이 눈을 끔뻑이며 쳐다보자 노아는 “물론 당신도 함께죠.” 하고 메이슨이 목에 달고 있던 나비넥타이를 풀었다.

“내가 말했죠. 이거, 내 거라고.”

당신이 주기로 했잖아요, 아닌가요? ─노아는 위험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물었다. 메이슨은 끙, 살짝 앓으며 “그렇죠.” 하고 말했다.

“계속 남에게 돌리는 것도 지겹고. 내가 그 정도면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노아가 어둠 속에서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고 메이슨은 “그건……, 그렇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그는 정말로 참을 만큼 참았다. 두어 달 내내 자신은 헤일리 러스크라는 이름만 듣고 살았고, 메이슨을 가진 노아는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고 멀찍이서 기다리고만 있었다.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하면서도 내내 휩쓸려 떠돌았기에 노아가 폭발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 화려한 시상식장으로? 그, 반짝이는 세계로? ─노아가 나른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의 눈이 어둠 속에서 일렁였고 메이슨은 단호하계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나오지도 않았을걸요.”

상이고 뭐고, 어제 길에서 노아가 쌩하니 사라졌을 때부터 메이슨의 머릿속에는 내내 그의 생각뿐이었다. 노아가 예전처럼 혼자 어두운 곳에서 싫은 꿈을 꾸고 두통에 시달리며 울까 봐, 메이슨은 화려하고 멋진 시상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 당신이 레드카펫 위에서 웃는 모습을 잔뜩 기대했었는데.”

플래시가 터지고, 조명이 반짝대고……, 메이슨이 중얼거리듯 그의 수트 위를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쓸어내리자 노아는 피식, 나른히 웃었다.

“아쉬워요?”

“음, 그렇긴 한데─…, 이것도 좋네요.”

메이슨은 노아의 등 뒤로 새까만 하늘,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을 보며 정말로 황홀한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노아의 금색 머리카락이 별빛에 닿아 은빛처럼 빛났다.

“다행이네요. 나도 이쪽이 좀 더 취향인데.”

이러려고 산거니까요. ─노아는 메이슨의 셔츠를 뜯어내듯 단추를 푸르고 재킷을 벗게 했다. 노아의 손이 금세 메이슨을 발가벗게 만들었고 메이슨도 노아의 옷을 벗겼다.

노아는 메이슨의 입술을 가볍게 빨았다. 그리고 곧 강하게 다시 입술을 빨고 혀를 내어 감았다. 감미로운 키스에 메이슨은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노아는 손을 더듬어 메이슨의 얼굴을, 목을, 어깨를, 가슴을 더듬었다. 여기에 그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듯이.

“하…─.”

메이슨의 몸을 매만진 노아는 작게 웃었다.

“나 자신도 놀랍네요. 이걸, 어떻게 그렇게 오래 놓고 기다려 줄 수 있었는지.”

만지다보니 더 목이 탄다는 듯 노아는 메이슨의 뒷머리를 붙잡고 급하게 키스했다. 입을 맞추고, 맞추고, 몇 번이고 키스하고 또 입술을 빨았다. 점잖은 체 하던 노아의 손이, 입술이 점점 성급하고 거칠어졌다. 목덜미를 깨물고 어깨를 빨고, 가슴을 물어뜯을 것처럼 이를 박았다가 손으로는 등을 할퀴었다.

“흣, 노, 노아, 천천히,”

메이슨은 몸을 할퀴고 물어뜯는 노아의 행위에 그의 어깨를 붙들었고 노아는 그의 손목을 붙들고 위로 올리며 목을 길게 빨았다.

“흣─, 아!”

“메이슨,”

노아는 찢을 것처럼 메이슨의 바지를 벗겨냈다. 메이슨은 노아의 거친 손길에 숨을 헐떡였고 노아는 그대로 메이슨의 성기를 한 입에 삼키듯 물었다.

“흣──, 읏!”

메이슨은 강하게 성기를 빨아들이는 노아의 입술에 몸을 덜덜 떨었다. 강렬한 쾌감에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노아는 게걸스럽고 탐욕스럽게 메이슨의 아래를 빨았다. 고환을 손으로 쥐고 문지르고 성기를 핥고 귀두를 눌렀다.

“으─…,”

메이슨은 금세 눈앞이 하얗게 되며 줄줄, 정액이 새는 것을 느꼈고 노아는 그것을 그대로 삼켰다. 꿀꺽, 메이슨은 정액이 넘어가는 소리에 온몸이 새빨갛게 붉어져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노아는 “씨발,” 성급하게 고환께를 이로 할퀴었다.

“나만, 급해요? 당신도 이 아래가─…, 여기가 벌름거리잖아요.”

노아는 보라는 듯 메이슨의 다리를 크게 벌리게 만들었다. 메이슨은 힉, 숨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당신은, 어떻게 참았는데요, 이 몸으로. ─다른 새끼라도 찾았습니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아는 심술궂게 물었고 메이슨은 숨을 헐떡였다.

“내 좆, 안 먹고 싶었어요?”

메이슨은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노아의 천박한 질문에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든가 그의 입을 틀어막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노아는 손가락으로 젖은 아래를 헤집으며 말했다.

“말해 봐요.”

노아의 목소리는 낮고, 잔뜩 젖어 있었다. 유혹하는 것 갈기도 했고 위협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안을 음탕하게 헤집는 손에 메이슨은 다리를 퍼뜩거리며 떨었다.

“말해 봐요, 어서. ─어떤지.”

노아는 손가락 두개를 안으로 넣고 피어싱을 당겼다. 조금씩, 조금씩, 마치 위협이라도 하듯이 손가락의 수를 늘리며 피어싱을 만지고 돌렸고 메이슨은 눈을 꽉 감았다.

“…─넣어 달라고, 말해요, 어서.”

노아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렸다. 목덜미에 닿는 뜨거운 숨에 메이슨은 힛, 숨을 삼켰고 그가 귀롤 야하게 씹었다. 안을 문지르는 손가락은 어느새 세 개가 되어 있었고 손가락은 안을 꾹꾹 눌러 넓혔다.

“…─메이슨,”

노아가 속삭였고 메이슨은 “넣─…,” 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넣어, 노아…….”

메이슨이 헐떡이며 말했고, 노아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넣었던 손가락을 빼고 내도록 성성이 서 있던 성기를 메이슨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흣…─,”

메이슨은 노아가 넣자마자 사정했다. 생리적인 눈물이 눈가를 적셨고 노아가 혀로 그것을 핥았다.

“달아요─…,”

노아가 열 오른 목소리로 말했고 메이슨은 입술을 깨물고 신음했다. 노아의 성기가 안을 성급하고 강하게 문지르고 움직였고 머리가 터질 것처럼 성감이 계속해서 올랐다.

“으, 아, 아! 으읏!”

노아의 거친 숨이 목덜미에 닿았다. 메이슨은 깊은 바다로 떨어질 것 같은 감각에 그의 어깨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땀에 미끄러져도, 계속해서 그에게 매달렸다.

“으─… 노아,”

노아를 끌어안고 메이슨은 울었고 노아는 이성이 완전히 날아간 듯 계속해 그의 안을 질꺽대며 쳐댔다. 아래는 온통 물과 땀으로 젖어들었고 메이슨은 또다시 사정했다.

“메이슨─…,”

절정의 순간에서 노아가 매달리듯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메이슨, 메이슨, 노아가 헐떡대며 불렀고 메이슨은 그를 껴안았다. 노아의 것이 안에서 파정하는 것이 느껴졌고 메이슨은 더 깊이 그를 받아들이며 울었다.

***

귓가로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먼발치에서 들렸다. 파도치는 소리에 여기가 어디지, 하고 멍한 얼굴로 눈을 뜨자 새하얀 백사장과 바다, 하늘이 이어지는 낯선 풍경이 보였다.

“……, …─아.”

한참을 멍하니 여기가 어디지, 하고 눈을 끔뻑인 메이슨은 곧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노아의 섬이었다. ─그리고 백사장.

간밤, 노아의 별장 침실에서 시작되었던 섹스는 몇 번이나 더 이어졌다. 노아는 그간의 갈증을 풀겠다는 듯이 한 번의 섹스가 끝난 뒤 바로 발기해 다시 메이슨을 울게 만들었다. 몇 번이나 섹스를 하고, 해가 뜨고 새벽이 밝고 아침이 되었을 때까지도 내내 그는 메이슨을 놓아주질 않았다.

자신을 잊으면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더니,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충실히 이행했다. 메이슨은 다시는 노아를 잊고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오가 되었을 때, 메이슨은 빌고 빌어 그에게 그만하자고 말했고 노아는 가늘게 웃으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라고 말했다. 밖에서. 마지막이라는 말에 메이슨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그는 모래가 들이친 시트 위에서 눈을 뜨게 된 것이었다.

메이슨은 주변을 두리번거려 노아를 찾았다. 아무리 사람 없는 섬이라지만 이런 곳에 달랑 두고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끙.”

일어나야지 했는데 허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잠깐 바지락거려본 메이슨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아, 모르겠다.” 하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벌거벗고 있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람도 없다는데, 아무렴 어떠냐 싶었다.

그렇게 누워 있다가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든 모양이었다. 붉은 빛에 슬금 눈을 뜨자 눈앞에 해가 지고 있었다.

“…─,”

메이슨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둥근 해안에 하얀 모래사장, 새파란 바다 위로 해가 빨간 빛을 태우며 지고 있었다. 파란 하늘에 떠 있던 구름들은 죄다 붉게 물들었고 수면은 숨이 막힐 것처럼 반짝거렸다.

고개를 들자 해가 지는 반대편, 머리 위에는 이미 별이 뜨고 있었다. 바다 수평선 너머로 붉은 노을과 해가 이미 지나가 어둠이 드리운 자리에는 별이 반짝였다.

“깼어요?”

등 뒤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노아가 달아 보이는 음료 두 잔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노아.”

메이슨은 그의 이름을 불렀고 노아는 대답하듯 눈을 휘어 웃었다. 메이슨은 다시 해가 지는 것을 돌아보았다.

메이슨은 이미 세상의 끝을 본 적이 있었다. 이런 작은 섬이 아니라 아프리카나 남태평양의 대자연 속에서 몇 번이고 그런 모습을 보았다. 메마르고 삭막한 그가 숨을 멈추고 전율할 만큼 아름다운 세상의 광경들을, 메이슨은 수도 없이 만났었다.

죽는다면 이곳에 돌아와, 저 광경을 보며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들이었다.

“─해가 지네요.”

메이슨이 말하자 노아는 알고 있다는 듯이 웃었다. 노아는 앞으로 다가와 음료수 잔을 건네었다.

“목마를 것 같아서요.”

메이슨은 그에게서 잔을 받았고 노아는 메이슨이 보고 있던 바다를 돌아보았다. 바다가 해를 삼키고 있는 그 광경을.

“…….”

메이슨이 봤던 광경 중에는 이보다 심장을 울린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에서 말을 걸어오는 노아의 상냥한 미소에 메이슨은 입술을 달싹였다.

“다행이네요.”

“…─뭐가요?”

메이슨의 중얼거림에 노아가 다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메이슨은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는 노아를 보며 웃었다.

“살아 있어서.”

아름다운 광경을 보며 죽음을 생각하는 대신, 메이슨은 살아가는 것을 생각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너와 살아가는 것은 참 좋구나, 그런 것이 떠올랐다.

“…─.”

노아는 미소 짓는 메이슨의 얼굴을 보고, 그의 시선을 따라 바다를, 하늘을, 그리고 다시 메이슨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말처럼 다행이라는 듯이 숨을 내쉬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메이슨은 그의 달큼한 목소리를 들으며 몇 번이나,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론에게 총을 맞고 그때 죽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헤일리가 되어 이렇게 다시 노아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노아를 그 작은 가방에서 구해 살린 것도, 그가 욕망대로 자살하지 않고 버텨 주어,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함께하는 풍경은 이렇게나 따스하고 달큼하군요. 메이슨의 말에 노아는 약간 놀란 것처럼 눈을 뜨더니 이내 웃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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