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단, 죽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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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킬.
수많은 헌터를 울린 말.
스킬을 각성하는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다.
-훈련장에서 허수아비를 1만 번 후려쳤습니다. 그랬더니 저절로 생기더군요?
-어느 날 갑자기 신님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마법? 탑에 들어가니까 그냥 되던데.
인성과 근성을 다 갖췄지만 하필 재능이 없어 밑바닥을 전전하는 헌터가 있었고, 반면, 성격이 개차반인데 재능빨로 먹고 사는 헌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랭킹 1위 염제가 후자였다.
인생을 게임으로 비유한다면 염제의 인생은 아마 실력갓흥겜 아닐까? 뭐든지 원하기만 하면 자기 실력으로 얻어버릴 테니.
내 인생은··· 그냥 평범한 운빨똥망겜이고.
“우웨에에엑!”
술집을 나와 얼마나 정처 없이 떠돌았을까.
인적 없는 골목길에서 결국 오바이트를 쏟고 말았다.
“운이 없으려면, 씨···. 아예 없든가.”
게임을 하면서 제일 절망스러운 순간이 언제일까.
유료 폰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거다.
그 순간이란, 아무리 뽑기를 돌려도 5성이 안 나올 때가 아니라··· 5성이 나와도 하필 제일 쓰레기 같은 5성이 나올 때였다. 3성보다 안 좋은 5성이라거나.
심지어 내 5성은 1성짜리보다 못했다.
+
[너처럼 되고 싶다]
랭크: S+
효과: 적에게 죽으면 자동으로 발동. 당신을 죽인 적의 스킬 중 1개를 복사하여, 당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이미 1번 복사한 상대를 다시 복사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스킬을 복사할지는 무작위로 정해집니다.
※단, 죽습니다!
+
“흑. 젠장···.”
그래. 내 인생은 역시 운빨똥망겜이었다.
본래 스킬이 각성하면 헌터관리국에 가서 신고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신고도 안 했다. 너무 억울해서. 이게 내 스킬이라고 어디 보여주기 쪽팔려서.
-안녕하세요, 헌터님. 어쩌다 스킬을 각성하셨나요?
-랭킹 1위가 부러워서요.
-네?
-부럽고 질투 나서 미칠 것 같더니까 이거나 먹으라는 식으로 스킬이 생기던데요. 제가 역대급으로 질투심이 추한 인간이래요. 하하.
이렇게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결국 지금처럼 술을 진탕 마시고 외진 골목에서 비틀거릴 뿐.
‘···여기가 어디지?’
그런데 나는 그것조차 잘하지 못했다. 어느새 완전히 낯선 골목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여기가 어디이고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났다.
설마 이러다 골목 바닥에서 자게 되는 걸까.
‘아. 서럽다.’
그렇게 눈물을 집어삼킨 순간.
골목의 저편에서 희미하게 비명이 들려왔다.
“······주세요, 악! 왜 갑자기······!”
잠기운이 확 달아났다. 막걸리에 취해서 헛것을 들었다기엔 지나치게 생생한 목소리. 누군지 몰라도 진짜로 목숨이 위협받아 터지는 비명이었다.
‘뭐야?’
나는 발소리를 죽였다. 숨소리도 본능적으로 죽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비명이 들려온 골목을 향해서 조용히 걸어갔다. 다가갈수록 목소리가 생생해졌다.
이것이.
“여, 염제님. 갑자기 저한테 왜···.”
“···해도 소용없어. 어차피 이 근처엔 아무도···.”
이것이, 내가 오늘 두 번째로 저지른 멍청한 짓거리였다.
첫 번째 실수는··· 당연하지만 정신의 퓨즈가 고장날 정도로 술을 마신 것. 나는 평생을 통틀어도 만취한 적이 없었다. 다만 이날만은 예외였다. 마침내 얻은 스킬이 S급짜리 똥이라는 것에 분노하여 막걸리를 물처럼 퍼마시고 말았다.
두 번째 실수는, 비명이 들리자마자 도망치지 않은 것.
“네가 마신 술잔에 미리 독을 발라놨다.”
“도, 독이라니요? 아까부터 무슨 말씀이에요, 염제님?”
“야아. 연기 좋네. 누가 보면 진짜 모르는 줄 알겠어.”
막다른 골목 안쪽.
가로등도 없어서 어둡기만 한 그곳에 남녀 한 쌍이 있었다. 어쩌면 단순히 ‘있었다’라고 말하기엔 이상할지 모르겠다. 남자가 여자를 협박했고, 여자는 남자에게 협박당했으니까.
“바실리스크의 위액. 원래는 네가 내 술잔에 탄 독약이지. 이야. 내 스킬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다니까. 어, 왜 그러셔? 얼굴이 창백해졌는데. 성녀 씨.”
“설마 만독불침(萬毒不侵)···? 마, 말도 안 돼요. 당신한테는 그런 스킬이 없을 텐데.”
“없지.”
남자의 웃음소리가 나지막이 퍼졌다.
“근데 만독불침보다 조금 더 좋은 스킬은 갖고 있거든.”
그리고 나는 남자를 알아보았다. 아무리 골목이 어둡다지만 저 남자의 뒷모습을··· 뒤로 묶어서 찰랑거리는 포니 테일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바로 어젯밤 텔레비전에서 똑같이 생긴 뒷모습을 목격했으니까.
‘진짜 염제다!’
랭킹 1위의 헌터. 이 시대의 주인공. 만인이 떠받드는 우상. 바로 그러기에 만인에게 질투와 시기를 받는 자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내 질투심을 받는 영웅.
게다가.
‘저 여자는 성녀잖아!?’
나는 숨소리를 흘리지 않으려고 내 입을 막았다. 성녀. 관리국에서 선정한 세계 랭킹 9위의 헌터이자, 요즘 한창 염제와 사귀는 것 아니냐며 스캔들을 일으킨 장본인. 인터넷에서 동영상과 사진으로만 본 역대급 미녀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장난질도 여기까지다. 날 건드렸으면 대가를 치르셔야지.”
그냥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협박을 받고 있었다.
“자, 잠깐만요. 염제님. 뭔가 오해하신 거예요···. 저는 염제님과 함께 팀을 이뤄서 탑을 공략하려는 마음밖에 없어요!”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기다려주세요! 생각해보셔요. 염제님과 제가 팀을 이루면 40층은 당연하고 어쩌면 50층까지 1년 안에 공략해버릴지 몰라요! 예! 여태까지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곳이지만, 저희 둘이라면!”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겠더라.”
나는 경악했다.
‘저 두 사람.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어?’
인터넷에서 그렇게 떠들었다. 방송에서도 두 영웅의 열애설을 다루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는 연애의 요소 따위가 전무했다. 농담이라도 연인끼리 싸우는 거라 말해주기 어려웠다.
살의(殺意).
상대를 죽이려는 자와 상대에게 죽지 않으려는 자밖에 안 보였다.
“우리 제발 대화해요! 대화로 오해를 풀어요.”
“대화? 아, 대화. 좋지. 신사적이고.”
염제가 성녀의 목을 잡았다.
“크읏···!?”
“하지만 대화의 룰은 내가 정한다.”
컥, 하고 성녀가 발버둥 쳤다. 숨이 막히는 것일까. 그녀가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칠수록 몰래 지켜보는 나의 숨도 막혀왔다. 세상에. 맙소사.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코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질문은 내가 한다. 넌 대답만 해. 아, 굳이 말로 대답할 필요는 없어. 내 질문이 맞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틀리면 고개를 저어. 그게 다야.”
“힉, 후윽···! 컥···.”
“대화에 성실히 응해주신다면야 살려주지. 덤으로 해독제까지 줄게.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내 신사적인 배려를 무시하면··· 뭐.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지? 옥스퍼드 나오셨다면서. 똑똑한 머리 좀 굴려봐.”
성녀는 필사적으로 자기 목을 쥔 염제의 팔을 때렸다. 턱! 턱! 그러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힐러로 대성한 성녀가 무력으로 염제를 이기기란 애당초 불가능했다.
“사실 말이야. 댁한테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어.”
“읍, 컥. 후으읍···.”
“누가 날 죽이라고 명령했냐. 그것만 대답해. 흑룡의 마녀가 시킨 짓이냐?”
움찔. 성녀가 발버둥 치는 걸 멈췄다.
“잘 생각해서 대답해라. 난 만독불침은 없어도 거짓말을 탐지하는 스킬은 갖고 있거든. 만약 구라를 치다 걸리면 뼈까지 불태워주마.”
“······.”
아마도 성녀는 조금 망설인 것 같았다. 깜깜한 골목. 그녀의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침묵이 느껴졌다. 염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성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지.”
작은 웃음소리가 흘렀다.
“잘 가라, 성녀 이자벨.”
불길이 타올랐다.
불길은 막다른 골목을 집어삼켰다. 염제의 손아귀에서 성녀의 목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화염에 휩싸인 성녀는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살기 위한 발악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염제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하게 불타는 성녀를 쳐다볼 뿐.
“흠.”
작열하는 불길 속에서도 염제는 태연했다. 태연자약하게 끝까지 성녀의 목을 놓지 않았다. 성녀는 양팔을 휘둘렀으며, 염제의 팔목을 손톱으로 긁었고, 할퀴었고, 마침내 밤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곧, 멈추었다.
축 늘어졌다.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미친···!’
내 눈앞에서 죽었다. 인류의 영웅이.
어쩌면 단순히 ‘죽었다’라고 말하기엔 이상할지 몰랐다. 그렇다. 성녀는 평범하게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살해당한 것이다. 똑같이 인류의 영웅으로 대접받은 염제한테.
‘미친놈이다.’
성녀는 이미 숯덩어리가 되었다. 그런데도 불길이 멈추지 않았다. 염제 본인이, 멈추지 않았다. 성녀의 살과 뼈가 모조리 녹아버려서 재와 숲이 되도록 염제는 그녀를 불살랐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이다.
‘제정신이 아니야.’
내가 뒷걸음질 쳤다.
‘당장 도망쳐야 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 세 번째, 마지막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아그작-.
작은 소리였다. 깡통도 아니고 한낱 유리가 밟힌 소음에 불과했다. 그것이 누군가가 소주병을 깨트려서 생긴 유리조각일지. 아니면 어디서 바람에 떠밀려 굴러온 유리일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알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정말로 알아야 할 사실은 따로 있었다.
방금, 내가 병신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
“···호오.”
그리고 염제는 다른 인간의 실수를 놓칠 사냥꾼이 아니라는 것.
“근처에 있는 쥐새끼들은 다 처리했는데. 아직도 한 마리 남았군.”
“윽!”
염제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달렸다.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저 눈동자는 살인자의 눈이었다. 사람을 한두 명 죽여본 게 아니라 수십 명. 혹은 훨씬 더 많이 학살한 악마 새끼의 눈. 그 악마가 나를 죽이려 들었다.
“하, 새끼. 귀엽네?”
염제가 비웃은 찰나였다. 화끈! 발목 부근에서 뜨거운 감각이 느껴지더니 다음 순간, 나는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왜 내가 넘어졌는지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내 발을 보기 전까지는.
“히, 익···!?”
발이 잘렸다. 나의 발이. 오른발과 왼발이, 신발째로 잘려나갔다.
운동화 옆면에 그려진 유명 브랜드의 상표가 유독 하얬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십쇼!”
“그러게 왜 도망을 치셔. 존나 식겁했잖아.”
염제가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내 발을 주운 것이었다. 그는 내 발을 줍고서, 마치 혼자서 야구공을 던졌다가 캐치하는 것처럼 가지고 놀았다. 툭. 툭.
“야. 봤냐?”
“모, 못 봤습니다!”
염제가 다가왔다.
“뭘 못 봤는데?”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읏. 제발. 전 아무것도···.”
“뭘 모르시는데?”
“제발··· 염제님, 제발··· 살려주세요. 아무 말도 안 할게요. 어디 가도 말 안 하겠습니다···.”
내 머리 위로 인기척이 드리웠다.
염제가 무릎을 구부려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와아. 그러니까 내가 염제인 걸 보셨고, 내가 염제라는 걸 아시는구나. 그 정도면 다 봤네. 다 아는 거고.”
“제발···.”
“형씨, 나 막 섭섭해지려고 그런다? 왜 알면서도 모른다고 지랄이야.”
염제가 내 발을 이리저리 만졌다.
“말해봐. 어떤 놈이 보냈어? 또 흑룡이냐?”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시는데 저기서 성녀랑 날 구경하고 계셨다? 쥐새끼처럼 조용하게? 야아. 이 형씨, 신빙성이 흘러넘치시네. 내가 좀만 더 호구였으면 그냥 믿어버리겠어.”
염제가 싱긋 웃었다.
“그런데 난 호구가 아니거든, 씹새끼야?”
눈앞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화르륵! 염제의 손에서 번진 불길은 내 발을 불태웠다. 전부 불타서 없어졌다. 유명 브랜드의 상표도. 오랫동안 신고 다닌 신발도. 그보다 더 오랫동안 내 몸의 일부였던 발도.
전부 사라졌다.
“다음엔 네 머리통이다. 똑바로 대답해라.”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 악마는··· 미쳤다.
미친놈이었다. 미친놈한테는 뭘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자기 생각이 다 옳고 자기가 무조건 맞는 새끼였다.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도 그냥 죽여버리는 싸이코패스 새끼.
명색이 랭킹 1위라는 사람이.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가.
이런 인간한테 열광했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이런 인간을 조금이나마 영웅이라 생각했는가. 솔직해서 좋다고. 성격이 시원하다며 추켜세웠는가. 이런 미친놈을?
“거, 거짓말···.”
“뭐?”
“거짓말 탐지 스킬···. 거짓말 탐지 스킬이 있으시다면서요.”
나는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성녀한테 말씀하셨잖아요. 거짓말하면 알 수 있다고. 그러니까 잘 대답하라고.
“······.”
“그거로 시험해보십시오. 제 말이 진짜라는 걸 아실 겁니다. 염제님. 전, 우연히··· 정말 우연히 지나쳤을 뿐입니다. 제발 믿어주십시오!”
염제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거 구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