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6화 (6/400)

6화.  영웅 사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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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 ···욱, 우윽···!”

죽음의 위기를 코앞에 두고 각성한다.

오래전부터 헌터 업계에선 ‘스킬을 각성하는 방법’으로 그런 속설이 내려왔다. 죽을 위기를 겪으라고.

어쩌면 속설이 아니라 진짜일지도 몰랐다. 적어도 역대급으로 질투심이 추하다고 해서 스킬을 각성하는 것보단 그럴싸했다.

그러므로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방심하지 않고, 똑바로 칼을 휘둘렀다.

“힉···!”

눈앞의 싸이코패스가 만에 하나라도 각성하지 못하도록.

“끄윽··· 커···.”

죽어라.

“우···.”

내가 가장 분노했던 것. 이 싸이코패스가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불태웠다는 사실보다, 그 고통과 억울함보다 더 분노가 치밀어오른 부분은 따로 있었다.

‘이름을 말했다.’

과거로 회귀하기 전.

내 머리를 붙잡아서 바싹 태워버리기 전, 염제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형씨는 내가 염제라는 걸 알잖아. 성녀가 나한테 죽었다는 것도 봤고.

-그럼 뒈져주셔야지.

-내 이름은 유수하다. 잘 가라.

전부 미친놈이 지껄일 법한 얘기였다. 하지만 딱 한 부분. 정말로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분하고 역겨워서 견딜 수 없었다.

바로 마지막 한마디.

‘자기 이름을 말했어.’

왜 나를 죽이면서 뜬금없이 자기 이름을 밝혔을까?

설마 염제의 이름이 뭔지 내가 모를까봐?

아니다. 그런 게 아니었다.

‘멋을 부린 거다.’

염제.

그놈은··· 살인마 주제에 멋을 부렸다.

마치 신성한 결투에 임하면서 전사가 서로 이름을 밝히는 것처럼. 염제는 나를 죽이는 순간 내심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나는 그래도 내가 누구인지 정정당당하게 밝힌 채 죽인다.

-그러니까 나는 최소한 당당하다.

감히.

“네 따위가···.”

감히 너 같은 싸이코패스가.

“네 따위가, 그딴 짓을···!”

단지 우연히 길을 가던 목격자를 죽여버린 인간이. 자기가 불을 질러놓고 돌아와서는 뻔뻔하게 아무런 잘못도 없는 척한 사람이. 그런,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이고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이. 한 마리의 짐승이. 짐승보다 못한 악마가.

자기는 고상하다는 듯 멋을 부리다니.

“웃기지 마라!”

퍽!

내 칼이 유수하의 목을 찔렀다.

“······.”

이미 유수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비명이 없었다. 신음조차 없었다. 아무도 오가지 않아서 인적이 없는 사냥터. 이름 없는 잡초에 몸을 뉜 채 유수하는 초점 없는 눈알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는 죽었다.

“하아, 후욱···. 하아···.”

어쩌면 단순히 ‘죽었다’라고 말하기엔 부적절할지 모르겠지. 그는 평범한 헌터가 아니었고, 평범하게 죽은 것은 더욱더 아니었으니까.

언젠가 염제가 되었을 남자. 세계 랭킹 1위에 도달했을 전설. 수 년 동안 아무도 공략하지 못한 탑 10층을 단신으로 돌파했을 자.

그가 나에게 죽었다.

“후우.”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좀 제정신이···.”

돌아오는군, 하고 말하려다가 나는 멈췄다. 피냄새를 맡고 달려온 것일까? 늑대. 덩치 큰 늑대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르르···.

놈들은 그냥 평범한 늑대가 아니었다. 마치 사람이 새겨놓은 문신처럼 시꺼먼 털이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른바 초원늑대라 불리는 몬스터로, 문양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강했다.

눈앞의 이놈들은 문양이 단순했지만··· 나 같은 F급짜리 헌터가 객기를 부려도 될 상대는 아니었다.

“······.”

우선 유수하에게 빼앗긴 지갑을 도로 가져왔다.

신중히, 한발짝 물러섰다.

“이 녀석을 먹고 싶은 거지?”

시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난 필요없다. 가져가라.”

그리고 뒷걸음질 쳤다.

-으르르릉.

늑대들이 시체로 다가갔다. 찌직! 짐승의 이빨이 시체가 입은 외투를 찢어발겼다. 한 마리가 물어뜯자 다른 늑대들도 몰려들었다. 찌직, 찌이익···. 늑대들의 거대한 덩치에 가려져 시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잘들 먹어라.”

나는 서둘러 후퇴했다.

‘끝났나?’

유수하의 피가 묻은 옷가지를 파묻었다. 미리 파둔 구덩이에 깊이. 플라스틱 생수병들에 담아온 물로 온몸을 씻었다. 배낭에서 새 옷을 꺼내어 입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로 끝난 건가?’

새 옷이 너무 깨끗하면 도리어 의심을 받을 수도 있겠지. 일부러 맨땅을 굴렀다. 좀 더러워졌다 싶었을 때 탑 1층의 도시로, 바빌론으로 돌아갔다. 자경단원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자경단원은 나를 힐끔 쳐다봤지만··· 곧 하품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

아무도 몰랐다.

‘끝났구나.’

술집에 들어가 맥주를 한 잔 주문했을 때도. 한 잔을 다 비워서 또 한 잔을 주문했을 때도, 나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무도 몰랐다.

주점의 텔레비전에선 낡은 뉴스가 흐를 뿐.

-오늘도 10층 공략조는 좌절했습니다.

-세계 랭킹 2위에서 7위가 총출동하여 함께 10층을 돌파하려 했으나···.

-이런 와중에 세계 랭킹 1위, 검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랭킹 1위이지만 공략조에 참가하지 않는 검성의 태도 때문인데요···.

아무리 기다려도 ‘탑 2층 사냥터 구역에서 헌터 실종’ 같은 속보 따위는 안 떴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초보자 헌터가 목숨을 잃는 일 정도야 매일 벌어졌다. 아무도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이름 없는 헌터의 실종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즉.

‘끝났다!’

그렇다.

나는 괴물을 사냥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5.

“크으.”

나는 빈 유리잔을 높이 들었다.

“여기 생맥 한 잔 추가요!”

“손님 많이 마시네. 오늘 사냥이 잘 됐나 봐?”

“예에, 잘 됐죠. 아주 잘 됐죠!”

가슴이 후련해도 이렇게 후련할 수 없었다.

시원하게 헐렁해진 내 마음을 맥주로 채우길 두세 시간. 주점 바깥에 노을이 질 무렵이 되어서야, 서서히 현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젠 앞으로 뭘 하지?’

할 거야 많았다.

‘복권에 당첨될 수도 있고. 아무도 모르는 상위층 공략 방법을 돈 받고 팔 수도 있고. 이야아, 내 인생이 폈구나. 인생이 폈어!’

나는 내 능력창을 올려봤다.

헌터 본인에게만 비추는 능력창을.

+

이름: 김공자

랭크: F급

스킬(2/4)

1. 너처럼 되고 싶다(S+): 패시브

2. 회귀자의 태엽시계(EX): 패시브

3. 없음

4. 없음

+

“캬아. 안주가 따로 필요없구나.”

내 능력창이 곧 세상에서 제일 맛난 안주였다. S급 스킬이 하나. 듣도 보도 못한 EX급 스킬이 하나. 식사로 따지면 스테이크에 캐비어까지 추가된 격 아니겠는가.

‘이것보다 더 좋아지길 바라면 도둑놈 심보지. 암.’

하지만 내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걸린 것도 잠시.

“···그런데 전투 스킬이 없네.”

아.

사람 마음이란 원래 이런 것일까?

나한테 부족한 점들이 슬슬 눈에 밟혔다.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헌터가 헌터다워야지···. 돈만 있고 힘이 없으면 어차피 언젠가는 털릴 거고···.”

탑 안의 사회는 바깥세상보다 더 살벌했다.

멋지게 표현하면 강자존. 평범히 말하면 약육강식.

그냥 이대로 바깥세상으로 도망칠 수만 있으면 상관없겠지만···.

‘한번 탑에 발을 들인 사람은 절대 나갈 수 없다.’

그것이 법칙이었다.

공간이동 능력을 가진 어느 S급 헌터도 탑 바깥으로는 이동하지 못했다. 그냥 불가능한 것이다.

바빌론에서 바깥세상과 교류할 수 있는 인간은 오직 한 명. 상련(商聯)의 길드장. 소위 ‘백작’이라는 이명을 가진 헌터뿐이었다.

‘상련주도 물건을 내보내고 들여보낼 수 있을 뿐이지, 본인이 직접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는 없다고 하고···.’

말 그대로,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바깥세상을 다 버릴 각오로 들어온 사람만이 비로소 헌터가 되었다.

재산도, 인간관계도, 신분과 국적도, 전부 버린 사람만이.

어쩌면··· 인간성마저도.

“그래.”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탑에서 성공해야지.”

술기운에 힘입어서 중얼거렸다. 성공. 정말 미치도록 성공하고 싶었다.

애초에 내가 왜 염제를 영웅시했던가. 염병할 놈의 인품에 반해서? 그놈한테 인품이랄 게 있었는가? 이유는 훨씬 더 단순했다.

염제가 눈 부시게 거둔 업적을, 성공을 부러워한 것이다.

“성공하자, 김공자. 그래. 4090번이나 죽어본 놈이 뭘 못하겠냐. 꼭 성공하자···.”

그 때.

-짤랑.

주점의 앞문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6.

나는 처음엔 누가 들어왔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초저녁부터 술 마시러 오는 헌터가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하시겠는가?

하지만 나 대신 다른 주정뱅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야, 저기 저 사람···.”

“어라? 진짜 같은데?”

“왜 이런 곳에···.”

곧이어 술집이 묘하게 조용해졌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쯤 되자 나도 관심이 생겨서 고개를 돌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음.”

마치 당장 회사에 출근할 것처럼 반듯한 옷차림.

무늬 없이 새빨간 넥타이를 차려입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라? 내가 언제 바깥세상으로 돌아왔나?’ 하고 착각할 만큼 평범한 회사원 같았다.

단, 신발만 구두가 아니라 운동화를 신었다. 빨간색 운동화.

‘와. 저게 대체 무슨 패션 센스야?’

굉장히 언밸런스했다.

그러나 기묘한 것은 옷차림만이 아니었다.

“우유.”

“예?”

“따뜻한 우유에 보드카와 설탕을 살짝만 섞어서 주시게. 설탕이 아니라 꿀이 있다면 더 좋겠군.”

허무맹랑한 주문에 술집 주인도 당황한 눈치였다.

“어···. 손님. 저는 바텐더가 아니라서···.”

“돈은 제대로 내겠네. 걱정하지 말게나.”

술집 주인장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정장 차림의 노인을 훔쳐보며 쑥덕거리고 있었다. 어지간히 유명한 사람인 듯싶었다.

‘누구지?’

나는 가만히 미간을 좁혔다.

‘이상하다? 웬만큼 유명한 헌터들은 다 얼굴을 꿰고 있는데.’

자랑은 아니어도 나만큼 최상위 헌터들을 부러워하는 인간도 없을 거다. 염제는 당연하고, 세계 랭킹 2위부터 100위까지는 줄줄이 다 말해볼 수 있었다. 전부 내 질투심의 대상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이상하게 저 이상한 정장 차림의 노인은 낯설었다.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떠올랐다.

‘아!’

다름 아니라 내 자취방.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신문 쪼가리들.

그중 딱 한 기사에 저 노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검성, 실종 22일 차. 헌터 업계 최악의 혼란이 도래하는가.」

‘검성이다!’

그랬다. 유수하가 염제로서 명성을 떨치기 이전엔 제일 유명했던 자.

너무 오래전에 활약한 헌터라서 그만 깜빡했다. 아무렴 나라고 해서 10년도 더 전에 활동한 헌터까지 단박에 알아보긴 힘들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진 몰라도, 곧 실종되어버릴 사람이기도 했고 말이다.

‘아. 그렇지···. 지금은 11년 전이지.’

새삼스럽게 정말 과거로 회귀했다는 게 느껴졌다.

‘이 시대 사람들한텐 염제가 아니라 저 노인이 세계 최강이겠구나···.’

신기했다.

나는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검성의 옆얼굴을 훔쳐봤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꼭 한참 예전에 죽어버린 위인을 눈앞에서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아무튼 묘했다.

‘야아. 저 어르신도 S급 스킬을 갖고 있겠지?’

나는 히죽거리며 맥주를 홀짝였다.

‘나처럼 이상한 스킬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전투계 스킬을···.’

그 순간이었다.

“어?”

나도 모르게 손이 멈췄다.

문득. 정말로 문득, 내가 가진 S급 스킬이 떠오른 것이다.

+

[너처럼 되고 싶다]

랭크: S+

효과: 적에게 죽으면 자동으로 발동. 당신을 죽인 적의 스킬 중 1개를 복사하여, 당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이미 1번 복사한 상대를 다시 복사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스킬을 복사할지는 무작위로 정해집니다.

※단, 죽습니다!

+

‘잠깐만.’

머릿속에 벼락이 내려쳐서 일순 환해지는 느낌.

염제를 죽이는 방법을 떠올렸을 때와 똑같은 감각이 내 온몸을 덮쳤다.

[너처럼 되고 싶다]. 대단한 스킬이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 헌터한테나 죽어서 스킬을 복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단, 죽어야 한다는 게 너무 큰 단점이지.

그런데.

‘나··· 이제 안 죽잖아?’

왜냐하면 내겐 또 다른 스킬이 생겼으니까.

+

[회귀자의 태엽시계]

랭크: EX

효과: 죽으면 자동으로 발동. 죽은 순간에서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 회귀해도 기억과 능력치는 보존됩니다.

※단, 헌터 랭크가 높아질수록 강한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헌터 유수하로부터 복사한 스킬입니다.

+

‘그럼.’

내 등에서 으스스한 전류가 올라왔다.

‘설마, 그냥 다 복사할 수 있는 건가? 아무 헌터든 골라잡아서 죽어버리기만 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 그러나 어서 염제를 죽여야 한다는 긴장감과 압박감 때문에 여지껏 깨닫지 못한 사실이 드디어 나를 일깨웠다.

‘···지금 시대의 랭킹 1위인 검성도?’

꿀꺽. 나는 입안에 남은 맥주를 마저 삼켰다.

미래에 랭킹 1위가 되었을 염제는 회귀 스킬이라는 사기 능력을 가졌다. 그렇다면 어디론가 실종되기 전의 검성. 이 시대를 주름잡고 있는 헌터는 과연 어떤 능력을 지녔을까?

염제만큼이나 대단한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만약 그걸 복사해올 수만 있다면···.’

노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대박이다.’

아무래도.

내 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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