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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자살헌터-26화 (26/400)

26화.  선택받은 자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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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예. 솔직히 저는 많이 당황스럽거든요.”

알현실. 어느 제국의 궁궐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12층 스테이지. 그 한복판에서 내 목소리가 나지막이 흘렀다.

“왜 검성님이 절 공격하시는지 모르겠어요. 검성님이야 저를 처음 보겠지만, 저는 평소부터 검성님의 고매한 검술을 흠모했습니다. 그런데 다짜고짜 칼을 드시니까, 되게 난감하네요.”

검성은 표정이 딱딱해졌다.

지금 내가 진실만을 말하는데도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노인의 얼굴이 굳어버리는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검성과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날. 이제 검성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날 밤, 검성은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일갈했다.

-자네가 흑룡에서 보내온 특급 암살자임을 내가 모를 줄 알았는가.

-흑룡의 마녀가 보냈는지 누가 고용했는지 모르겠다만, 나의 전력을 다하여 네놈을 죽여주마!

나를 암살자로 의심한 것이다.

‘그것도 흑룡에서 길러낸 암살자로.’

지금도 검성은 똑같이 의심하고 있겠지. 내가 흑룡의 하청을 받아 손에 무수한 피를 묻혀온 암살자라고. 아니, 오히려 더 지독하게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5대 길드에서 비밀리에 육성한 특급 암살자라거나.’

-음. 하긴.

배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삼자 입장에서 볼 때 좀비 네가 워낙에 이상하긴 하지.

‘바로 그거예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새로이 등장한 영웅!

고작 E급에 불과한 헌터가 난공불락의 스테이지를 공략했다. 심지어 공략이 끝나자마자 5대 길드와 협약을 맺었으며, 길드장들과 동등한 대우를 약속받았다···.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죠.’

-맞아. 마르쿠스 할아범이 보기에 넌 자수성가한 헌터가 아니야. 거대 길드들끼리 짜고 쳐서 만들어낸 가짜 영웅이지. 쯔쯧.

배후령이 혀를 찼다.

-좀비야. 네 킬 카운트가 대충 4090번이라고 했냐.

‘아마 지금은 4093번으로 뜨고 있을걸요?’

-그래. 할아범이 볼 때 4093번이란 숫자는 그냥 단순히 네가 죽인 인간의 머릿수가 아니야. 왜냐하면 넌 혼자서 활동하는 헌터가 아니라, 철저히 거대 길드들의 하수인으로 키워진 놈이니까.

검성의 입장에선 그런 식으로 비출 수밖에 없다.

-요컨대···.

‘예.’

한통속.

‘거대 길드들이 저를 통해서 암살한 인간의 숫자로 보이겠죠.’

탑에서 군림하는 거대 길드.

그들이 최소한 4093명에 달하는 인간을 암살해왔다는 것.

한낱 오해이고 착각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저 노신사에겐, 더없이 역겨운 광경으로 비추고 있을 거다.

“허.”

만약 검성이 조금만 덜 정의로운 노인이었다면 여기서 물러섰으리라.

“바깥세상이든 바빌론이든 참 다를 게 없군.”

그러나 검성은 타협을 몰랐다.

알고 있어도 거부했다.

“탑에 들어온 이후, 하루가 멀다고 네놈들은 내게 추파를 던졌지. 길드에 가입하라고 말일세. 하지만 본인은 단호히 거부했다네. 왜인 줄 아는가?”

검성이 칼자루에 힘을 주었다. 노인의 손은 늙었다. 살집이 늘어졌다. 그러나 살갗 너머로 울퉁불퉁 드러난 핏줄은 조금도 늙지 않았다.

사자의 갈기가 늙어도 사자의 이빨은 날카로운 법.

“이 탑에서는, 새로운 세상에서는, 혼자서라도 정상에 군림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검성은 푸르러서 섬뜩한 눈으로 좌중을 노려보았다.

“혈연. 국적. 출신. 그따위 것들에 얽매여서 악취가 진동하는 바깥세상과 달리, 이곳만큼은 한 자루의 검만 가지고도 충분히 유아독존 할 수 있다. 자신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

“······.”

“바로 그런 희망을 뭇 사람들에게 적시하기 위하여, 본인은 여태까지 패거리를 이루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네놈들은 뭘 하고 있는 것이더냐.”

검성이 칼끝을 겨누었다.

“너희는 이미 고여서 썩어버린 흙탕물과 다름없다.”

길드장들이 꿈틀거렸다.

분노. 치욕. 원한.

묵빛의 감정들이 길드장들의 낯빛에 감돌았다. 방금 검성이 던진 발언은 선전포고였다. 이단심문관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긋거리는 자도 있었으나, 대다수의 길드장은 표정이 구겨졌다.

“검성.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이 그런 말을···.”

“하! 5층을 공략할 때 혼자만 싹 빠진 건 벌써 잊어버렸군! 할아범. 치매가 와서 머리통이 맛이 간 모양인데!”

“그러게 말이야. 칼렌베리 씨. 그대가 바깥세상의 인맥을 써서 도와줬더라면 지금의 식량난도 한참 덜했을 거고, 우리 상련도···.”

아우성이 자글자글 끓었다.

여기 모인 헌터들은 탑이 열린 초창기 시절부터 얼굴을 봐 왔다. 서로 쌓인 게 많은 것일까? 감정과 감정이 부딪히자 알현실의 공기는 순식간에 혼탁해졌다.

“랭킹 1위라면 1위에 걸맞은 자세를 보여주어야 했어. 하지만 당신은 혼자 잘났지. 혼자 살았어. 당신이 잘난 척하지만 않았으면 얼마나 많은 헌터를 구할 수 있었는지 알기나 해?”

흑룡의 마녀가 저주하듯 말했다.

“5층뿐만이 아니지. 7층도, 9층도, 할배가 협력해줬으면 피해가 반으로 줄었다고!”

천무문의 독사가 살기를 피웠다.

“명색이 바깥세상에선 재벌가의 일원이었다는 어른이. 그대가 손을 써주었더라면 지금의 체제가 훨씬 안정적으로 연착륙했을 걸세. 우리가 썩어버린 흙탕물이라고? 좋네. 그럼 그대는 책임감 없는 어린애일 따름이야.”

상련의 백작이 독하게 노려보았다.

그야말로 난장판.

길드장들의 저주와 살기, 시선을 마주하고도 검성은 눈썹만 한번 찡그리고 말았다. 노인이 툭 내뱉은 한마디는 불길을 더욱더 키워버렸다.

“시끄럽다.”

“······.”

“다 큰 어른들 주제에 쫑알쫑알···. 내가 네놈들 친할아버지인 줄 아느냐? 치워라. 덤빌 테면 검으로 덤비거라.”

알현실의 공기는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졌다.

-캬아! 역시 마르쿠스 할아범이야. 내 하나뿐인 제자답다니까.

배후령만이 분위기를 파악하지 않고 감탄할 뿐.

-헌터들이 인맥이니 정치이니 지껄이는 것만큼 극혐이 없거든. 그딴 거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칼이나 한번 더 휘두르라 이 말씀이야!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배후령과 달리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겨우 열 명밖에 없는 곳에서도 싸우네요.”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인 헌터들이 나를 쳐다봤다.

내가 한숨을 쉬었다.

“11층의 NPC들조차 제국을 지켜야 한다며 단합해서 싸웠어요. 그런데 봐요. 오히려 우리 같은 헌터들은 네 잘못이 크네 아니네 악을 쓰면서 손가락질하고 있네요. NPC보다 못하면 좀 쪽팔리지 않겠습니까?”

“···헌터 김공자.”

마녀가 입을 열었다.

“이건 당신과 상관없는 이야기야.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심각한···.”

“알아요. 알겠는데요. 명색이 헌터라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잖아요.”

나는 알현실을 쓱 둘러봤다.

“12층부터 클리어하는 데 집중합시다.”

“······.”

“사람들한테 희망을 주는 것도 좋고, 탑을 공략하는 데 희생자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것도 멋있고, 다 좋은데요. 제발 눈앞에 있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데 노력해주시죠.”

나는 특히나 검성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무리 NPC에 불과하다지만··· 자기네 제국이 멸망할 위험에 처했잖아요? 도와달라잖아요. 기껏 용사로 소환된 사람들이 제국의 안위는 신경도 안 쓰고 지들끼리 말싸움만 하면, 도대체 그게 무슨 꼴불견입니까.”

“네놈···.”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어차피 여기서 검성은 내 목숨을 더 위협할 수 없었다. 전력의 차이가 명확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내 관심사는 12층을 어떻게 클리어할까, 이것뿐.

헌터들 사이의 복잡한 감정 다툼이나 정치 싸움은 관심 밖에 있었다.

“용사가 별거 있어요? 다른 사람이 해결하지 못한 걸 대신 해결해주면 그게 용사지. 11층을 클리어했으니, 나머지 스테이지들도 해결합시다.”

“김공자의 말이 맞다.”

다행히 내 말에 호응해준 헌터가 있었다.

성기사.

자경단의 부길드장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검성이 왜 김공자를 습격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만. 적어도 지금이 우리끼리 다툴 때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들, 너무 흥분했어.”

“······.”

“······.”

성기사가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아무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검성도, 독사도, 백작도, 이단심문관도, 여차하면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말만 갖고 설득하기엔··· 모두가 서로 불신하고 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쌓이고 또 쌓여온 감정 때문에.

“하아.”

그걸 깨달았는지 성기사가 한숨을 흘렸다.

“좋다. 어쩔 수 없군. 내가 조금 희생하겠다.”

희생이라는 말이 나오자 헌터들이 돌아봤다.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성기사는 작게 읊조렸다.

“스킬 카드 오픈.”

파앗!

성기사의 손에서 빛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잠시 뒤, 허공에 은색 카드가 나타났다.

헌터 본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타인은 절대 볼 수 없는 카드. 성기사가 지닌 스킬 카드였다.

“···부단장.”

마녀는 성기사를 걱정하는 낯이었다. 최상위 랭커는 웬만해선 자신의 스킬 카드를 결코 공개하지 않았다. 스킬은 헌터가 가진 비장의 무기. 그걸 남한테 훤히 보여주는 것은 자책골이나 똑같았다.

“됐다. 상관없다.”

그러나 성기사는 순순히 카드를 뒤집었다.

“모두 똑똑히 보도록.”

+

[거짓말 탐지기]

랭크: A-

효과: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NPC와 몬스터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진실’이라고 생각한 것이 객관적으로는 ‘거짓’일지도 모릅니다. 믿음인가. 의심인가. 최후의 선택은 언제나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단,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믿어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

나는 눈이 크게 뜨였다.

‘거짓말 탐지기!’

그건 한때 염제가 자신이 가졌다며 속인 스킬이었다. 과연. 염병이 아니라 성기사가 가지고 있었나.

‘자경단 부단장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 기술이잖아!’

자경단은 치안을 유지하는 길드였다. 당연히 탑에는 범죄자가 넘쳐났다. 당장 봐라. 랭킹 1위인 염제나 검성만 하더라도 사람들 눈이 없는 곳에서 나를 살해하지 않았던가?

이런 세상이다. [거짓말 탐지기]는 범죄자를 가려내는 데 어마어마하게 유용할 거다.

“보다시피.”

성기사가 카드를 잡은 채 말했다.

“나에게는 상대의 거짓말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 나를 자경단 부길드장까지 올려준 스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검성이여.”

“···무엇이냐.”

“그대가 나를 믿어주기만 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김공자한테 무엇이든 질문하라. 김공자의 대답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내가 말해주마.”

성기사는 무덤덤한 눈길로 검성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김공자여. 그대도 마찬가지다. 만일 그대가 믿어주기만 한다면, 그대의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내가 보증해주겠다.”

“······.”

“의심은 인간을 갉아먹는 독이요, 진실은 가장 강력한 해독제다. 지금까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12층에서 협조할 수는 있게 될 것이다.”

“음···.”

검성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와.’

나도 내심 생각했다.

‘개꿀인데?’

이건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하지만··· 이게 정답이 맞았다. 애당초 내가 의심을 사게 된 것은 검성이 가진 스킬, 이른바 [탐정의 혜안] 때문이었다. 스킬 탓에 의심을 얻게 되었으니 스킬로 의심을 푸는 것이 순리 아닌가!

“저는 좋아요.”

나는 바로 즉답했다.

이런 건 먼저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유리하지.

“···성기사 아가씨인가. 자네는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사람을 한 명도 해하지 않은 인물이지. 좋네. 나도 믿어보겠네.”

검성도 의미심장한 말을 흘리며 받아들였다.

성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지. 그럼 검성이여. 아무쪼록 김공자에게 질문해라. 본인의 명예, 자경단의 명성을 걸고 두 사람의 문답을 공정히 증명하겠다.”

“음.”

검성이 나를 노려보았다.

마치 이런 순간만 기다려왔다는 듯 검성의 얼굴은 비장했다. 아마 내가 무시무시하게 나쁜 놈임을 천하에 밝히게 되었다는 생각 아닐까? 어쨌든 승리를 확신하는 눈초리였다.

-아이고···.

배후령이 옆에서 곡소리를 냈다.

-아이고오, 마르쿠스 할아범아. 꼰대 영감아. 이래서 내가 스킬에 너무 의지하지 말라고 영감한테나 좀비한테나 누누이 말하는 거야. 스킬로 먹고 사는 자, 언젠가 스킬한테 배반당한다니까! 아이고오, 아이고.

‘조용히 좀 하세요.’

안타깝게도 배후령의 목소리는 검성한테 닿지 못했다. 이 귀신 새끼는 지금 내 귀신 새끼였다.

“헌터 김공자.”

“예.”

“네놈은 4000명이 넘는 인간을 살해하였다. 아니 그러한가.”

처억!

노인은 칼을 잡지 않은 손으로 나한테 손가락질했다. 뭐라고 해야 되나. 꼭 ‘어떠냐! 이제 네놈의 악행이 만천하에 낱낱이 알려질 시간이노라!’ 하고 외치는 것 같았다.

내가 미소를 지었다.

“예.”

“오오, 거 보거라! 이 천하의 몹쓸 것들아. 너희가 이 아해를 암살자로 기용하여서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내 반드시 밝히어 세상에 고할···.”

“거짓이다.”

성기사가 말했다.

“뭐?”

“거짓이다.”

성기사가 재차 무덤덤하게 말했다.

“방금 그대가 던진 질문에 김공자가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나. 그 대답이 거짓이었다. 정리하면, 김공자는 4000명이 넘는 인간을 살해하지 않았다.”

“······.”

“질문은 더 없는가?”

침묵.

검성이 입을 다문 가운데 성기사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4000명이라니. 이상하군. 한 사람이 그만한 인간을 살해할 수 있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닐까 싶다만.”

“그, 그건 네놈들이··· 이 젊은이를 특급 암살자로 키워서···.”

내가 환하게 웃었다.

“맞아요. 저는 특급 암살자예요.”

“거짓이다.”

“······.”

노년의 검사가 입을 멍하게 벌렸다.

“서, 성기사 아가씨여. 내 자네의 됨됨이를 잘못 봤구먼! 그래도 자네는 거짓 없이 만사를 중재해주리라 믿었건만!”

“내 말을 신뢰할지 말지는 여러분에게 달렸다.”

성기사가 묵묵히 대꾸했다.

“믿으려면 믿어라. 믿지 말려면 믿지 마라. 그러게 처음부터 두 사람한테 똑같이 물어보지 않았는가? 정말로 나를 믿어줄 것이냐고.”

“······.”

“인제 와서 말을 바꿀 심산이라면 조금··· 쪼잔하군. 아니, 많이 쪼잔하다. 검성이여. 그대가 평소에 보여준 태도답지는 않다.”

“기, 기다리게!”

노인은 다급히 내 쪽을 쳐다봤다.

“아무렴 네가 인간을 한 명도 살해하지 않았을 리 없다!”

“아. 네. 그건 그렇죠. 제가 다른 사람을 없앤 적이 있긴 있습니다.”

성기사가 머리를 끄덕였다.

“진실이다.”

“거 보아라!”

“근데 딱 한 명이에요.”

“···뭣이?”

성기사가 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진실이다.”

“······.”

“물론 한 명을 죽였다고 해서 제가 살인자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죠. 하지만, 검성님. 제가 정말 떳떳하지는 않더라도 이건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놈은 진짜 죽일 만해서 죽였습니다. 왜냐면 그놈이 먼저 저를 죽이려 했거든요.”

“진실이다.”

“아니, 그냥 저 하나만 죽이려 했으면 양반이죠. 그놈이야말로 학살마예요. 학살마. 제가 걔가 살인을 저지르는 현장까지 목격한 적 있는데, 와, 사람을 불태워 죽이면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 염병할 놈이!”

“진실이다.”

“모르긴 몰라도 걔가 죽인 사람만 수십 명. 아뇨, 수백 명은 훌쩍 넘을 겁니다. 예. 걔라면 그럴 만해요. 그럴 만한 놈을 제가 죽였습니다. 살인자라고 욕하시려면 얼마든지 욕하시죠. 근데 그거 아세요? 전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걔부터 조질 겁니다. 와. 씨. 인간이 어떻게 걔처럼 악랄할 수가 없다니까요.”

성기사가 머리를 천천히 끄덕였다.

“다 진실이군.”

“······.”

검성은 침묵하였다.

노인이 서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는 낯빛이었는데, 아마 주위를 둘러봄으로써 좀 상황이 파악되었을 거다.

왜냐하면 길드장들이 모두 ‘···당신 지금 뭐해?’ 하는 눈빛으로 검성을 쳐다보고 있거든.

“아하하하! 아하핫!”

이단심문관이 배꼽을 잡고 폭소했다.

“김공자 헌터가 저희 5대 길드의 특급 암살자라뇨! 흥미로운 발상이군요. 정말로 그랬다면 좋았을 테지만, 검성! 아깝게도 저희는 어제 김공자 헌터를 처음 봤습니다!”

“참고로 저것도 진실이다.”

“······.”

검성의 침묵이 깊어졌다.

-쯔쯔쯔쯧. 스킬로 흥한 자, 스킬로 망하리니.

배후령은 혀만 차고 있었다.

“음. 아무튼 대답은 다 해드렸고요.”

내가 헤살하게 웃었다.

공자님 말씀 중에 정말로 틀린 게 없었다.

“아마 쌍방에 큰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네요. 오해에 불과해서 다행이에요. 근데 검성님. 아무튼 그 오해로 인해 검성님이 저를 공격했고, 길드장 여러분이 지켜주지 않았으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전 죽었겠네요? 진짜 억울하게.”

“······.”

“저는 이쯤에서 사과의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어떠세요?”

성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진실이로군. 한치의 비약이 없는 정론이다.”

“······.”

“어서 김공자한테 사과해라. 검성.”

노인의 얼굴빛에서 혼이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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