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76화 (76/400)

76화.  < 빛과 그림자의 노래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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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처음 아사유검을 배우려 할 때.

「뭐라?」

천마는 실망했다.

「네놈이 일생 가장 오래도록 굶어본 게 고작 사흘 남짓하단 말이더냐?」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포기했다. 체념했다. 내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잠시 지켜봤을 뿐. 천마는 쉽게 등을 돌려서 떠났다.

「이야기가 안 통하는구나.」

「이것조차 몰라서야 어찌 마천신공을 깨우치겠느냐?」

천마는 오직 스스로 포기하기 위하여 날 시험했던 것이다.

더는 이 세상에 기대할 게 없으므로. 없어야 하므로.

「되었다.」

「본좌의 잘못이다.」

그것이 ‘굶주림’을 배웠을 때의 일.

하지만 ‘목마름’을 익힐 때부터 그녀의 태도는 일변했다.

4.

“너의 검은 지나치게 단순하니라.”

천마는 내가 강시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날 보는 눈빛이 점점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 내가 어설프게 검을 휘둘러도, 천마는 눈썹을 찌푸릴지언정 등을 돌리진 않았다. 외려 조언해주었다.

“너의 검에서 묘용(妙用)은 찾아볼 수 없다. 응용이랄 게 없도다. 우직하고 올곧되 그만큼 취약하지.”

나라는 인간한테, 천마는 희망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너의 검은 마치 인간에 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상대하기 위한 것 같구나. 본교의 검이 아니라 정파의 검에 가까운 것이다. 공교한 일이로고.”

처음엔 나도 무공 좀비한테 일격에 죽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무공 좀비를 손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밤마다 아귀가 데려온 강시들한테 죽었으니까.

목말라 죽은 자의 트라우마를 겪을수록, 내 검은 강해졌다.

“너에게 간결한 심결(心註)을 알려주마.”

내 검이 어느 정도 강해지자 마침내 천마는 가르침을 내리기 시작했다.

“심결이요? 그게 뭡니까?”

“…비결이나 비법이다. 새외의 아해와 얘기하는 게 쉽지 않구나.”

천마가 크음, 큼큼, 목청을 쓸었다.

“네가 아사유검을 펼쳤을 때를 생각해보거라. 검을 휘두를 적에 너는 무엇을 생각했느냐?”

“굶주림을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랬을 것이다. 허나 그뿐만은 아니렷다. 너는 스스로 알고 있지 못했으나,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공의 본질을 꿰뚫었다.”

마공의 본질.

“본좌가 이제부터 그것을 알려주마.”

우리는 눈밭에 마주 앉았다.

“자. 머릿속에 [사과]를 떠올려보거라.”

“사과면…. 먹는 사과를 말씀하는 거예요?”

“먹는 사과다.”

시키는 대로 한 알의 사과를 상상해봤다.

“떠올렸는고?”

“네."

“사과의 촉감이 어떠하냐.

“예?”

천마의 질문이 생경했다. 사과의 촉감이 어떠하냐니? 진짜로 내 손에 사과가 들린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촉감을 알 수 있을까.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런 내 얼굴을 천마는 유심히 바라봤다.

“모르겠느냐?”

“억지로 떠올리면 상상은 되겠지만….”

“괜찮도다.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말하거라.”

“아, 네. 전혀 모르겠습니다.”

“흐음. 흠.”

천마가 미소를 지었다. 여인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솔직하구나. 좋다! 이제는 [굶주림]을 떠올려보거라.”

"......."

떠올렸다.

메마른 땅에 농부가 하염없이 휘두르는 곡괭이를 떠올렸다. 자식을 때리는 손짓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강가의 부드러운 흙을 파냈고, 퍼낸 흙으로 토과(土菜)를 만들었다.

“떠올렸느냐?”

천마가 속삭였다.

“예. 떠올렸습니다.”

“굶주림의 촉감이 어떠하냐?”

진흙쿠키를 먹는 이빨의 깨작거림. 맛. 퍼석퍼석한 식감.

“……퍼석합니다.”

“굶주림의 향기가 어떠하냐.”

“흙의 냄새입니다.”

“오호. 어떤 흙이냐? 흙도 종류가 여럿 있다. 농사를 짓는 흙이 따로 있으며 도자기를 만드는 흙이 따로 있지. 검은색 흙이 있고 붉은색 흙이 있다. 본좌는 궁금하구나. 굶주림의 흙은 무엇인고?”

“진흙입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마음대로 아무 진흙이나 퍼내면 안 됩니다. 자갈이 적고 모래알이 없는 진흙입니다.”

“그러하구나. 알겠다. 굶주림의 맛은 어떠하냐?”

"......."

“아해야.”

천마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본좌는 굶주림의 맛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어찌하여 곧장 대답하지 않느뇨?”

"……슬퍼서요.”

내가 말했다.

"아이들은 진흙과자를 볕에 말려요. 햇빛에 말려지는 동안, 딱히 할게 없어서, 아이들은 진흙과자 주변에서 서성입니다. 진흙이 마르기만 쭉 기다려서….”

“햇빛을 기다리는 아이들이구나.”

“...예.”

“굶주림이란 햇빛을 기다리는 아이들이다.”

그랬다. 그랬었다.

“아해야. 그것이 너의 시(詩)다.”

천마의 목소리는 소박한 눈처럼 내렸다.

“본좌가 한낱 사과의 촉감을 물었을 때, 너는 모른다 대답했다. 굶주림에 관해 묻자 어떠했느냐? 너는 진흙을 만졌다. 진흙을 맡았다. 진흙을 씹어서 먹었다! 너는 흐르는 강물을 보았으므로, 강이 철렁거리는 물소리마저 엿들었을 것이다.”

어떤 노인의 마지막 항해. 나룻배. 밤하늘.

세상에 민폐를 끼치지 않고자 했던, 그러나 결국 민폐가 되고 말았던 어느 고독사.

“사과는 형태가 있지만 굶주림엔 없다. 사과는 맛을 가졌으나 굶주림은 무미(無味)하다. 헌데도 너는 굶주림에 대해 잘 말하는구나! 너에게 굶주림은 진흙이요, 햇빛이요, 강물이요, 아이들이로다.”

“아해야! 바로 그것이 너의 재능이니라.”

천마가 말했다.

“이제 눈을 떠보거라.”

보았다.

천마는 앉은 자세로 양손을 움직였다.

“네가 사과의 감촉을 모르는 까닭은 간단하다. 너의 [기억 ]을 자극하지 않았기 때문이노라.”

나의 기억.

“너도 사과를 먹어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천마가 미소를 지은 채 손을 움직였다.

나는 곧 알아볼 수 있었다.

천마는 사과를 반으로 자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사과는 껍질이 부드럽지. 반질반질하면서도 아주 약간 토돌토돌하다. 본좌는 평소엔 사과를 껍질째로 먹길 즐겨하나, 감기에 걸린 아이가 있으면 달라지겠지. 반으로 잘라서….”

정말로 그녀의 손엔 사과가 놓인 것 같았다.

“숟가락으로 갉아낸다. 숟가락으로 갉아낸 사과를 한입, 한입, 아픈 아이한테 먹인다.”

"......."

“어릴 적에 그리 갉아낸 사과를 먹어본 적 있느냐?”

있다.

고아원의 어느 선생님이 그렇게 해준 기억이 있다. 감기에 걸려서 누워버린 내게 숟가락으로 갉아낸 사과를 먹여주었다.

“갉아낸 사과의 식감이 어떠하느냐?”

“……설겅설겅합니다.”

“그렇지! 본디 아삭아삭한 사과가 숟가락에 한 번 씹혀 설겅설겅해지지. 허나 그 뿐이냐? 다만 그리 맛없어졌느냐?”

“노란 과즙이 입안 가득 차오릅니다.”

“그러하노라! 그뿐인가! 껍질까지 박박 긁으면 남은 사과 껍질이 우스광스럽게도 쭈글쭈글해지지. 사과를 파준 어미의 손 또한, 사과에서 흘러버린 즙으로 흥건하게 변하노라. 그런데 그러면, 그러면 말이다, 아해야. 그 중의 그 무엇이 네게 사과라 수 있겠는고?”

"......."

나는 생각에 잠겼다.

생각에 잠긴 내게 천마는 다그치듯 물었다.

“한 알의 사과인가? 반으로 가른 사과인가? 갉혀난 한 수저의 즙인가? 껍질인가? 어미의 손인가? 무엇이 너의 사과이냐?”

무엇이 나의 사과인가.

“본좌는 아이에게 사과를 다 퍼준 다음 자신은 껍질만 먹은 어느 어미를 본 적이 있다.”

"......."

“본좌에게 사과란, 어미의 남은 껍질이다. 감기에 걸린 아이다. 한숟씩 갈아진 어미의 마음이다.”

왜일까, 마음이 포근해졌다.

설원 한복판에 앉아 있는데도.

아마 천마가 미소를 지어서일지 몰랐다.

“---그리고 어릴 때 어미가 단 한 번도 사과를 파준 적 없는 아이들을 또한 떠올리지.”

하지만 천마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사과를 살 수 없는 어미를 떠올린다. 살 수 있음에도 사지 않은 어미를 떠올린다. 고뿔에 걸려 드러누웠는데도 간병해주는 사람이 없는 아이를 떠올린다. 간병 받지 못해 죽은 아이를 떠올린다.”

독기(毒氣).

천마의 검은색 눈동자가 거뭇했다.

“이 천하에 인간의 마음이 깃들지 않은 것이 없고, 하여, 인간의 한이 스미지 않은 곳이 없다!”

몸이 저릿했다.

“굶주림에 형태가 없더냐. 맛이 없더냐. 향기가 없더냐. 갈(渴)! 굶주림은 진흙이고, 강물이며, 아이다. 한 알의 사과조차 그러하니라. 아해야! 너는 굶주림을 진흙으로 삼듯 목마름도 그리하여라!”

"......."

“목마름의 고통을 느껴라! 감각해라. 맛을 채워라. 향을 맡아라. 먹어라. 손짓해라. 마공은 곧 기억이다! 기억은 감각이다. 이것이 본교의 심결이노라! 진흙을 퍼내어 먹는 촉감, 너의 손에 잡힌 그 감촉이 바로 너의 굶주림이요, 너의 마천신공이다!”

뒷목이, 서늘했다.

서늘한 전기가 몸에 흘렀다.

“민초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그뿐이다. 말하지 못한다. 토하지 못한다. 토하지 못한 원념(怨念)이 마음에 계속해서 쌓이고, 끝내 원한(怨恨)으로 응어리진다. 그러나 우리 마교의 무인들은 다르다!”

천마는 나를 보았다.

“우리는 칼을 휘두른다!”

나도 모르게 칼자루를 꾸욱, 쥐었다.

“기생이 노래를 하고 선비가 시를 읊듯, 우리는 칼을 휘두른다. 일개 녹림의 무뢰배와 본교의 마인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더냐? 저들은 칼에 휘둘린다. 그러나 우리는 칼을 휘두른다! 단지 그뿐이고, 그뿐인 모든 것이다.”

수련이 시작되었다.

“그저 살아질 대로 살아지는 것을 어찌 삶이라 부르느냐. 그것은 죽음이다! 휘둘리는 대로 휘둘리는 칼을 어찌 칼이라 부를까. 그것은 짐승이다. 죽고 싶더냐. 짐승이 되고 싶더냐.”

“아닙니다!”

나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저는 살아있는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어서 목마르거라. 굶주렸던 것처럼 목마르라!"

112명의 아사(飯死)한 자를 모았다.

그중 진흙쿠키를 갉아먹은 아이가 있었다.

나는 입안에 퍼석거리는 흙알갱이를 물었다.

고로,

마천신공魔天神功.

제일식第 一式.

아사유검 飯死流劍.

“너는 굶주림의 진흙을 찾았다. 이제 목마름의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너에게 굶주림이란 햇빛을 기다리는 아이들이었다. 너에게 목마름이란 무엇인가!”

48명의 갈사(渴死)한 자를 모았다.

그중 바닷물을 마시고 계속 마신 노파가 있었다.

나는 오장육부를 소금물로 절였다.

고로,

마천신공魔天神功.

제이식第그式.

갈사비검渴死痛劍.

“너에게 굶주림은 진흙이고 목마름은 바다였다. 그러나 바다가 거두는 고통이 목마름뿐인가. 바닷물에 빠져 죽는 고통이 또한 있니라. 강물에 빠져 죽는 고통이 있도다. 아해야, 너에게 물이란 무엇이더냐!”

37명의 익사(觸死)한 자를 모았다.

그중 자기 자식한테 마지막 숨을 불어준 아비가 있었다.

나는 물에 가라앉으며 아귀와 호흡을 나누었다.

고로,

마천신공魔天神功.

제삼식第드式.

익사만검潮死滿劍.

“배고픔은 흙이다. 메마름은 파도다. 너에게 숨막힘은 아비의 마지막 숨결이구나! 이미 땅과 바다와 공기가 너의 것이다. 새외의 아해야! 너에게 겨울이란 무엇이냐.”

96명의 동사(冬死)한 자를 모았다.

그중 이미 죽은 어미의 몸에 마지막까지 들러붙은 갓난아이가 있었다.

나는 얼어버릴 때까지 시체를 꽉 껴안았다.

고로,

마천신공魔天神功.

제사식第四式.

동사접검凍死接劍.

"......."

새벽이 저물었다. 아침이 지났다. 한낮이 흘렀다.

세상은 한 나절을 보냈고,

나는 293명의 죽음을 보냈다.

“아해야. 너의 검은……"

천마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실로, 변화무쌍하구나.”

천마가 나를 보는 눈빛 역시 변했다.

“사람은 사람마다 경향이 다르다. 무공엔 그걸 펼치는 사람의 삶이 묻어나오지. 고칠 수 없는 버릇이니라. 마천신공은 특히 더 그러한데, 아해 너는… 다양하다. 참으로 풍부하도다.”

“아. 제가 좀 다양한 멋이 있다는 소릴 자주 들어요.”

"......."

“죄송합니다. 헛소리였나요?”

“아니. 개소리였노라.”

“말이 좀 심하시네요.”

“솔직히 말하면 개헛소리였다.”

그런가. 개헛소리인가-.

개헛소리라면 어쩔 수 없지-.

“인간이 모든 고통을 다 알기란 어렵다. 알더라도 모든 고통을 극한까지 겪기란… 매우 힘들다. 그런데 네가 마천신공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꼭……. …음?”

천마가 눈썹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렸다.

“…누가 오는구나.”

시선이 향한 곳에선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대낮이어서 좀비일 리 없었고, 이미 멸망한 세계여서 불청객일 리 없었다. 무림맹주와 독사였다. 독사가 무림맹주를 업어서 눈밭을 걸어왔다.

"흠."

천마는 코끝을 씰룩였다.

“노물이 여긴 무슨 일인고. 게다가 그 한심한 꼬라지는 무엇이냐? 하. 드디어 네놈이 늙어빠진 할아비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더냐?”

“시끄럽다.”

독사의 등에 업힌 채 무림맹주가 말했다.

"다 네년이 걱정돼서 온 것이다. 으잉!”

"걱정? 걱정이라니? 지나가는 강시가 파안대소하겠구나. 나보다 약한 노물 주제에 본좌를 걱정할 처지가......."

"마두야. 너, 아직 구배지례(九拜之禮)를 받지도 않았지?”

"......."

“으이고. 빤하다, 빤해! 내 이럴 줄 알았다.”

천마가 입을 꾹 닫았다.

나는 마음속에서 갸웃거렸다.

‘구배지레가 뭐예요?’

-강호에서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을 때 올리는 예법이다.

배후령이 말했다.

-문파마다 예법이 살짝 다르긴 해. 진짜 곧이 곧대로 9번 절을 올리는 곳도 있고, 3번 절하는 곳도 있고…. 마교에선 어쩌는지 모르겠군. 비밀스럽고 신성한 의식이거든.

‘댁의 문파에선 어땠어요?’

-음, 스승한테 대가리를 9번 맞고도 버티면 그게 구배지례란다. 난 63대까지 버텼는데 문파역사상 최장기록이라더라. 쩔지?

배후령이 왜 미친놈인가 깨달았다.

미친놈은 문파부터 비범한 것이다.

“……시끄럽군. 누굴 언제 제자로 받아들일 건지는 본좌가 정하노라.”

천마가 퉁명스레 말했다.

“네놈이 간섭할 사안이 아니다.”

“헛된 소리. 필히 내가 간섭해야 할 일이지!”

무림맹주가 탓, 독사의 등에서 내렸다. 노인은 매섭게 천마를 노려봤다.

“왜냐면 네가 제자를 들이지 않는 이유는 보나마나 나한테 미안해서니까!”

“허어? 무슨 말……"

“우리는 둘밖에 남지 않은 강호인이다. 공교로이도 너는 하나뿐인 마인이고, 나는 하나뿐인 백도다. 네가 홀로 제자를 들이게 되면 강호엔 마교의 전인만이 남는다. 결론은 무엇이냐? 싸우지 않고도 정마대전에서 승리하는 거나 다름없지!”

"......."

"너와 나는 둘이서 결판을 내기로 약조했다. 맹조했다. 맹세를 깨트리기 거북해서, 내게 미안해서, 저 젊은 아해를 제자로 받지 못하는 거 아니냐!”

음.

'…그러게. 저런 이유도 있겠어요.’

똑같은 처지인데 혼자만 제자를 받아 가르침을 잇게 한다는 거.

천마의 심정을 볼 때, 충분히 무림맹주한테 미안함을 느낄 법하다.

단지

"쯔쯧쯔쯧, 이잉 쓸데없이 의리는 두터워선!”

"......."

“네가 이럴 줄 알고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무림맹주는 독사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독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었다.

“뭐. 그렇게 됐다.”

천마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졌다.

“노, 노물아… 네가 설마 저 아해를….”

“그래 ! 오늘부터 수제자로 삼았다!”

“네놈이 본좌한테 이래도 되느냐!?”

천마가 달려들었다. 우당쾅쾅! 두 명의 고수가 눈밭을 뒹굴며 개싸움을 벌였다.

“본좌가 어떤 마음으로 오늘 한 종일 구배지례를 안 받았는데! 그걸, 본좌의 정성 어린 마음을 이 노물은 뭣도 아니게......!"

“시끄럽다! 기연이 찾아왔으면 상제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받아라! 괜히 나 눈치본다고 빼는 건 사람 할 짓이 아니야!”

“정마대전은 어쩌고!”

“꼭 우리 둘이 벌여야 정마대전이냐! 우리의 제자들이 싸우면 그것도 정마대전이다!”

“본좌는 네놈이 상대가 아니면 인정할 수 없도다!”

“누가 마두 아니랄까봐 극단적인 식견머리 하고는!”

“뭣이 어째!”

여인이 노인의 멱살을 잡았다.

노인도 그에 질세라 여인의 머리를 잡고는 눈을 부라렸다.

“마두야, 이 마두야! 네 녀석은 항상 그렇지. 이거 아니면 저거고, 저게 아니면 그거지. 인석아! 가른다고 갈라지는 것이 어디 세상이겠느냐!”

“네가 보는 세상은 대해일지 모르겠다만 내가 보는 풍경은 빙판이다! 아무렴 가르는 대로 갈라지지!”

“그럼 녹이든가!”

“그걸 녹이기 위해 마도라는 불이 있는 것이다! 마인이란 장작이 있는 것이야!”

“그럼 장작 하나 더 해라!”

“부월선 이 놈…! 백도의 위군자 아니랄까봐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꼬라지하고는…!”

노인과 여인 사이 그렇게 언쟁이 오갔다. 둘이 엎치락뒤치락거릴 때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쇳소리를 내며 맞부딪혔다. 세계란, 그렇게 한없이 천하게 느껴지는 개싸움 속에서도 능히 자리잡는 것이었다.

두 세계가 싸우도록 내버려두고서, 나는 독사를 바라보았다.

“쫌 의외네요.”

“뭐가 말이냐?”

그야 댁 같은 ‘진짜’가 누군가를 스승으로 모시다니요, 같은 말은 과연 바로 말할 수가 없었다.

조금 돌려 말했다.

“독사님은 천무문주 아니십니까. 문주님이 새 스승 받으셔도 됩니까?”

“씨벌. 칼춤을 출 자리면 칼춤을 추는 거고, 배울 스승이 있으면 배움을 청하는 거지. 그런 거 하나하나 따지고 앉을 만큼 한가하진 않다.”

독사는 씩 웃었다. 선 굵은 얼굴에 사나이다운 미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음.

“독사님.”

“왜."

“분명하게 말씀드리는데요. 떠밀리듯 맡게 됐다거나, 동정심 때문에 떠안으셨다거나. 그런 어중간한 각오로 저 무림맹주 영감님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 거라면 후회하실 겁니다.”

두 개의 세계는 지금도 소리 내어 싸우고 있다.

독사가 자존심을 위해 제자들에게 떠밀려 천마실록에 뛰어들게 된 것과는 결이 다르다.

그런 짓은 저 두 개의 세계를 모욕하는 짓이다.

용서할 수 없다.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이 통 안 간다만은.”

독사는 볼을 긁적이더니, 외눈을 한 차례 치떴다.

“씨벌, 사왕이란 놈이 뭘 그리 주절대고 앉아있냐? 확인할 게 있으면 칼로 확인해라.”

단, 하고 독사는 검을 들어올렸다

“쉽지는 않을 거다.”

쉽게 확인하는 방법이 있기야 있었다. 독사의 심리창을 열어보면 명백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나는 조용하게 말했다.

“독사님.”

“오냐.”

“굶주려보신 적 있습니까?”

독사가 외눈을 깜빡였다.

“뭐?”

그 순간, 나는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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