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83화 (83/400)

83화.  < 검무.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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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검心劍.

소백향이 그 경지를 더듬기 시작한 것은, 어느 겨울이 거듭하고 또 거듭하여서 이제는 그 겨울의 온도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이다.

마음의 검心劍.

소백향이 그 경지를 엿보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더는 ‘눈의 향白香’이라 불리는 대신 ‘마의 하늘天魔’이라 불리게 된 계절이다.

……보인다……

소백향이었고, 천마가 된 여인이 중얼거렸다

……어느 강호인도 딛지 못한 경지가 저 앞에 있구나……

……피안처럼 멀어 보이지만……

……보인다면 가지 못할 곳이 있겠느냐……

천마는 심장이 두근 뛰었다.

심검은 전설로만 전해지는 경지다. 심즉살(心卽殺). 죽이려는 뜻을 품으면, 마음에 살의를 담기만 해도, 대상이 곧 죽어버리는 것. 검이 필요 없다. 말이 필요 없다. 그 같은 경지를, 자신은 드디어 눈앞에 둔 것이다.

……천마님……

만일.

.......저희의 지존이시여......

만일 자신에게 시간이 주어져서.

60년의 세월이 주어져서, 오로지 수련에만 매진할 수 있다면.

정녕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원통함을 풀어주소서……

그녀의 앞에 백성들이 엎드렸다.

……관아에서 담비 가죽을 세금으로 바치라 하옵는데. 아비가 담비를 사냥하러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아서, 세금을 치를 수가 없게 되었사온데, 세금을 가족의 머릿수대로 바치게 되어서. 소인의 할애미가, 어차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자신이 사라진 만큼 세금을 줄이라고 하여……

……천마님……

자신의 앞에 조아린 등이 많았다.

……가뭄이 작년에도 들고 올해에도 들어 먹을 게 없사온데, 먹지를 못했는데, 저수지를 쌓고 둑을 쌓으라는 명령이 내려오니, 내년의 가뭄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한 몸으로 어찌 바위를 들어 쌓으라는 것인지……

……딸아이가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사오니……

……천마님……

아주 많았다.

천마는 조용히, 설산(雪山)을 올려보았다.

오직 수련에 매진하는 세월. 60년의 여유분만 있다면, 자신은 강호의 역사에서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경지에 오를 것이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어서 다툴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안내하여라……

천마는 검을 들고 일어섰다. 묵빛 도포가 펄럭였다.

……본좌가 베어야 할 것들이 많고도 많구나……

세상을 버릴 것인가. 자기 자신을 버릴 것인가.

천마는 간단히 자신의 사욕을 버렸다.

무욕(武慾)을 무욕(無慾)하는 것.

그것이 언제나 그녀의 인생이었기에.

그날도, 당신은 천하를 얼어붙게 한 자들을 베었다.

다만 겨울을 베지 못했다.

2.

-본래,

배후령이 무릎을 꿇었다.

-무인이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비무함은 언어도단이지. 실례도 이만한 것이 없으며, 무례로 따져도 강호의 역사에 길이 남아 놀림거리로 남을 거다.

배후령이 취한 자세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는 눈밭에 공손히 앉아 있었다. 그것이 [호적수]라고 인정한 상대방에게만 취하는 배후령 나름의 예법임을, 나는 깨달았다.

-하지만 놀림거리인 줄 알면서도 비무를 청할 수밖에 없군.

검제는 스승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의 별호는 검제(劍帝). 만검세계(萬劍世界)라 불리던 세계에서 천하제일인으로 공인받은 자다. 당신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논검을 청한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

“제자야?"

스승님이 눈을 깜빡거렸다.

“어서 초식을 말하지 않고 뭐 하느냐? 비무는 이미 시작되었느니라.”

당연히 스승님의 눈에는 배후령이 보이지 않았다. 배후령의 말이 안 들렸다. 예법이 안 보였다.

“……스승님.”

“왜 그러느냐.”

“제가 이상한 도술을 쓴다는 건 아셨을 거예요.”

“내 아이들과 백도의 강시들을 도로 돌려놓은 도술을 말하는 것이더냐.”

스승님은 후후, 웃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웃음이 작았다.

“본좌는 너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침묵은 미덕이지. 그저, 옥황상제께서 본좌를 불쌍히 여겨서 보내주신 사자이려니 여길 따름이노라.”

스승님은 내 허벅지에 머리를 뉜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스승님이 웃을 때면 머리가 조금 흔들렸다. 흔들리는 머리에선 그녀의 가벼워진 몸무게가 느껴졌다.

“…제가 쓸 줄 아는 도술이 한 가지 더 있어요.”

스승님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되도록 간결하게.

“그중에는 유령을 불러들이는 술법도 있어서요.”

“흐음?"

“지금 제 곁에 있는 유령이 마침 무공에 조예가 깊어요. 새외에서 천하제일인이라 불린 남자예요.”

“아하. 새외무림의 천하제일인이라! 굉장하구나.”

스승님이 키득거렸다. 우스운 농담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오냐. 제자가 불러들인 천하제일인의 유령이라는데 본좌도 마땅히 신경을 써줘야지. 기꺼이 논검비무의 상대로 인정해주마."

"......."

나는 배후령을 쳐다봤다.

배후령은 묵묵히 정좌하고 있었다.

“그래. 천하제일인의 유령께서는 무슨 초식을 선보인다고 하시는고?”

“…스승님께 양보하겠대요.”

"으음?"

“스승님께 3수를 먼저 양보하겠다고 말했어요.”

스승님의 안색에서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

“광오하구나. 본좌의 제자라면 그런 말을 입에 담을 리가 없지. 주제를 모르고 까부는 귀신인 게 틀림없으렷다. 운룡십이검의 다섯 번째 초식인 출룡쾌검으로 수월혈을 찌르마.”

1수.

-지룡곤무의 여섯 번째 초식인 서하동룡을 허초(虛招)로 삼은 뒤, 유운신법으로 한 걸음 물러서지.

배후령은 일말의 주저 없이 응수했다.

나는 [운룡십이검]이 무엇이고 [지룡곤무]가 무엇인지 몰랐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마천신공이 전부니까. 그저 두 명의 싸움을 담담히 입으로 옮길 뿐.

“지룡곤무의 여섯 번째 초식인 서하동룡을 허초(虛招)로 삼은 뒤, 유운신법으로 한 걸음 물러섭니다.”

“흐음….”

스승님이 미간을 좁혔다.

“현공태극공의 일곱 번째 초식인 수응타정각으로 날려주마.”

-육살권의 두 번째 초식인 지편쌍수를 허초로 삼고, 철판교로 피한다.

스승님의 고아한 눈썹이 조금 더 찡그려졌다.

“당묘육검의 여섯 번째 초식인 천묘육율격으로 공격하마.”

-원앙각을 펼친다. 매화난보로 물러서고.

"......."

순식간에 3수가 끝났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공방이 펼쳐졌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스승님은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당신.

배후령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어떻게 살았을지 대충 상상이 가. 고금제일인의 자리에 오른 다음부터는 수련에 매진할 시간도 없이 교단일에 종사했겠지. 생사경(生死境)의 경지가 보였겠지만 안 갔을 거야. 왜? 바쁘니까. 교단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니까. 자기 가족, 교단 식구들 챙겨주는 것도 바쁜데 수련 따위에 쏟을 시간이 어디 있냐?

그런데, 하고 배후령이 말했다.

-제일 억울한 게 뭔지 알아?

배후령의 입꼬리는 비틀려 있었다.

-그렇게 해도 고금제일인이라는 거.

굳이 더 위를 노려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

-왜냐? 이미 자기가 정상에 섰거든. 먹고 살 만하고, 사람들이 다 인정해주고. 노력할 필요가 없지. 말 그대로 자기가 하늘이니까.

"......."

-불쌍한 것. 너의 불행은 네가 이 무림에서 절대강자였다는 거다.

배후령은 팔짱을 끼었다.

-내가 너에게 천외천(天外天)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나는 그 말을 옮겨서 전하지 않았다.

옮겨 전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음."

스승님은 천천히 머리를 일으켰다.

가벼워진 몸을 내 몸에 조금 기대었다.

그렇게 눈밭에 정좌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로구나.”

천마天魔.

출신, 천마실록天魔實錄.

고금제일인古今第 一人.

마교魔敎.

-당연하지. 내가 누구인데.

검제劍帝.

출신, 만검세계萬劍世界.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정파正派.

“좋다. 본좌도 허투루 봐주지 않으마.

-얼마든지 와라.

비무比武.

개시開始.

3.

“화혈염룡(火血炎龍)의 첫 번째 초식인 폭화작렬승(爆火作製昇)으로 턱을 올려치마.”

-갑자기 웬 정파 흉내를 내고 앉아있구만. 올려치는 기세에 맞춰 운룡대팔식(雲龍大A式) 제 1초를 연속으로 펼친다. 한 차례는 지면, 한 차례는 올려치는 주먹.

한 수.

“폭화작렬승을 척살도(刺殺刀)의 세 번째 초식인 유유격살(儒類激殺)로 변경하여 용천혈(運泉穴)을 찔러 그 기세를 죽이마.”

-호, 과연. 어떻게 할까, 받아칠까 아니면… 좋아. 생사여율령(生死如律令)의 요령을 섞어 만파접접(灣波接線)으로 맞춰주지.

또 한 수.

"......."

논검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스승님의 숨이 가쁘게 변했다.

겨울, 하얀 숨결이 더 하얘졌다.

스승님은 왼손을 오므려 무릎을 꾹 쥐었다. 오른손으로는 내 손을 꾹 잡았다. 떨고 있었다. 스승님의 떨림이 손을 통해서 내게 전달되었다.

"…언제까지 본좌의 손가락 위에 더러운 발을 얹고 있을 참인고. 삼종마질(三種魔經)의 두 번째 초식인 소질악판(燒蛭頭板)으로 뜯어 주마.”

-오라기에 맞췄을 뿐인데 성질 사납네. 곧바로 발을 빼면서 허공에서 나려타곤, 동시에 신차대회전(神車大回轉)의 네 번째 초식인 생사릉릉(生死眠眠)으로 오른쪽 거골巨骨, 양곡(陽谷), 백호(魂戶)의 삼혈을 동시에 노린다.

"천마군림보로 세 걸음을 물러서겠노라!”

스승님은 기뻐하고 있었다.

-정파 흉내를 내셨었으니 나도 마도 흉내 좀 내볼까? 동사접검으로 응수하여 따라붙지.

그래.

무림맹주 부월선은 결코 스승님의 [적수]가 아니었다.

분명히 무림맹주는 이 세계의 정파무림에서 제일 강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스승님과 대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후의 정마대전에서 증명되지 않았던가? 두 사람이 전력을 쏟아서 대결하면 결국 승리하는 쪽은 스승님이었다.

결말이 정해진 승부.

어쩌면, 그래서 스승님은 정마대전의 결착을 990번까지 미뤄버린 것일지 모른다.

어차피 녹아서 없어질 사탕이라면 최대한 아끼고 아껴서 핥아먹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미안하다.」

그러기에 무림맹주는, 배드 엔딩을 맞이했던 회차에서, 스승님한테 말했었다.

「내가 너보다 약해서 미안하다.」

「내가 너보다 약했던 것이다.」

「나를 죽여다오.」

꾸욱.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리석은 짓을! 척살도의 두 번째 초식으로 인영(人迎)을 찍는다!”

-어림없지. 철판교를 펼쳐 피하는 것과 동시에 이번에는 이 쪽이 폭화작렬승이다.

“아하.”

스승님이 기어이 웃음을 품었다. 슬픈 웃음도 아니었고, 덧없이 사라져가는 미소도 아니었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고스란히 담겨서 붉게 풍기는 웃음이었다.

“제자야. 네가 불러들인 귀신 놈, 최고로구나!”

“……예.”

지금이라면 무림맹주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아마 제일 강할 거예요."

"어디에 이런 귀신을 숨겨두었다가 이제야 소개하는고!"

조금 분하다.

"이리도 고강한 무인, 본좌가 살면서 만나본 적이 없느니라!"

아니.

많이 분했다.

"천천무의 요령을 섞어 팔을 틀어 기세를 죽이마. 그리고 천마군림보로 네 걸음 물러서겠다!"

-어이고. 이미 세 걸음 물러섰으면서 또 네 걸음이라. 슬슬 꼬리를 말아주셨다고 봐도 되겠지. 한걸음 거리에서 유운신법으로 따라붙고, 성하폭우(盛夏爆雨). 검강을 싣는다.

"아핫! 성하폭우에 검강이라! 탐색전은 지겹다는 말이렷다. 오냐, 갈사비검으로 끌어들여 흘린 뒤 곧바로 칼을 역수로 쥐어 사하찬룡 (砂下讚龍)을 1식부터 3식까지, 천주(天柱), 대추(大推), 신주(身柱)를 차례로 찍어주마!”

나에겐… 두 사람이 나누는 비무가 이해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대결을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갈사비검은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사하찬룡]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려타곤이 무엇인진 알았다. 하지만 [신차대회전의 생사릉릉]이 어떤 자세인지 몰랐다.

모르고 또 몰라서,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더듬거리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두 사람이 휘두르는 검로가, 검무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그리 나오셔야지. 좋아! 호접만검에 생사여율령을 접목시켜 피하고, 한 걸음 물러나며 태극비천검(太極肥天劍)이다!

“나쁘지 않구나. 나쁘지 않아!”

아아.

가능하다면 내가 당신의 호적수가 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내가 당신의 희망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당신이 오로지 나로 인해서 기뻐하며 삶의 마지막을 보내길 원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기껏 해봐야 보이고 들리는 것은,

“호(好)야. ■■신법의 묘리로 비끼어 피하마.”

-■■경의 세 번째 초식인 ■■■검으로 대응하지!

겨우 이것 뿐.

나에게는 당신들의 검이 보이지 않는다.

“오냐, ■■■의 두 번째 초식인 ■■각으로 맞대응한다.”

-■■■■의 ■■■법으로 따라붙겠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좋다. ■■■■의 ■■■■검으로 네놈의 ■■와 ■■를 찍어주마!”

-급하구만, 급해. ■■■■로 피한 다음 ■■■■를 써서 목을 겨눈다.

“받아쳐서, ■■■■의 열 번째 초식인 ■■■■■로 ■■■을 가격하지!”

-■■으로 하여, ■■■■■을 ■■■■로. 반격한 다음엔 ■■■■■의 ■ ■■ ■■인 ■■를 휘돌려서 ■■한다.

“■■■■, ■■■해서 ■■와 ■■■을----."

어두웠다.

두 사람이 뛰어노는 경지란 이다지도 멀었다.

“받아친 다음에는……"

그 때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스승님이 나를 돌아보았다.

"......."

문득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스승님의 눈길.

묵빛의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물렀다.

"......그래."

스승님의 입술엔 작은 미소가 감돌았다.

“제자야. 날이 차갑구나.”

"......."

“계절이 겨울로 거듭되어 이곳은 만년의 설원이다. 설원은 강호인들에게 가혹한 싸움터지. 발을 한 번 내딛으려 해도 쭉푹 빠지기 일쑤라, 항시 보법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스승님이 손가락으로 눈밭을 만졌다.

송송한 눈발이 스승님의 손끝에 묻었다.

“그래서 설원 위의 비무는 언제나 상대방의 자세를 무너뜨리는 데 집중하게 된다. 제자야. 알겠느냐? 굳이 고집을 부려서 상대방의 목을 딸 필요도, 허리를 벨 필요도 없다. 보법을 펼치지 못하게 몰아붙이면 그만이노라.”

“너의 귀신과 본좌는 그래서 상대방의 공간을 빼앗으려 애쓰고 있다. 움직일 공간을 빼앗아서 운신의 폭을 줄이는 것이다.”

스승님.

“발차기를 많이 쓰는 것도 목적이 같다. 상대방을 가격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눈발을 쳐서 흩날림으로써 시야를 조금이라도 가린다. 으음, 참으로 필사적인 싸움이지. 안 그러겠느냐….”

스승님이 내 귓가에 소곤거렸다.

“눈을 감으려므나.”

스승님의 왼손이 내 눈가를 천천히, 덮었다.

“본좌의 눈에는 상대가 보인다.”

“……예.”

“고강하고 고매한 고수로다. 덩치가 무척 크구나. 본좌보다 거의 두 배는 몸집이 거대할 것이다. 안 그러느냐.”

머릿속으로, 배후령의 모습을 그렸다.

“예."

“거대한 불곰 같은 고수가 거칠게 숨을 쉬고 있다. 어디 덤벼봐라, 하고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구나. 체격에서 차이가 많이 나니 말이다. 자신이 있겠지….”

스승님의 소곤거림이 이어질수록 배후령의 모습이 또렷해졌다.

“타고난 체격의 차이를 어찌 극복하겠느뇨. 받아들인다. 받아들이되, 본좌의 강점을 떠올리는 것이다. 본좌는 저 녀석보다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본좌는 설원에 익숙하다. 저 녀석보다 솜씨 좋게 답설무흔을 펼칠 것이다….”

“예."

“장기전이다. 알겠느냐, 제자야. 본좌는 장기전을 노리고 있다.”

어허, 하고 스승님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저놈이 본좌의 속셈을 꿰뚫어 보는구나. 몸놀림이 급해진다. 칼질이 빨라진다. 본좌를 향하여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것이다---."

곧.

"하지만 겁먹을 것 없다. 이미 예상한 바다. 본좌는 뒷걸음질 치고, 가볍게, 뒷걸음질쳐서---."

내 눈에.

"저놈을 끌어들인다.”

내 눈앞에 풍경이 그려졌다.

"계속 뒷걸음친다. 본좌의 발걸음은 가볍고 또 가볍노라. 저놈은 실로 멧돼지와 같아, 눈발을 사방으로 날리면서 돌진해 온다---."

겨울이 거듭되어 세상은 만년의 설원이다.

스승님이, 뒷걸음질 친다.

배후령이, 달려든다.

"---우리 둘의 걸음마다 눈꽃이 피어 날리는구나.”

나에게도,

두 사람의 검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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