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85화 (85/400)

85화.  < 독자의 마음.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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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스승님을 안고 있었다.

숨이 끊어져도 사람의 몸은 남는다.

그래서 죽음은 모질고 잔인한 것이었다.

“대인.”

한참이 지나자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색 도복을 입은 무인들, 마교의 정예가 몰려와서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가 말없이 스승님을 안고 있는 동안에도, 정마대전은 이어졌다. 결국 마교가 승전(勝戰)한 것이다.

“싸움 도중이라서 경황이 없었습니다만. 교주께서 대인을 [제자]라 부르신 것을 여러 교인이 엿들었습니다.”

무인이 긴장한 낯으로 물었다.

“혹여 대인은 천마님께 적통을 이어받았는지요?”

"......."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대전에서 살아남은 교인들이 모두 나를 바라봤다. 스승님이 사마군(四魔君)라고 칭한 마두들도. 그중 누구는 코피가 터졌고, 입술이 찢어졌고, 팔 하나가 잘렸다. 모두가 피에 젖었으며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나의 말을 기다렸다.

“…제가 적통을 이어받은 건지는 모르겠군요.”

“교주께서 대인을 제자로 들이신 것 아닙니까?”

“그건 맞아요.”

나는 스승님의 차가워진 몸을 조금 더 끌어 안았다.

“저는 스승님의 제자입니다.”

"......."

무인의 얼굴이 더 딱딱하게 굳었다.

“만일 교주께서 적전제자를 들이신 게 틀림없다면 필히, 마천신공을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무례를 무릅쓰고 부탁드립니다. 대인. 저희 앞에서 마천신공의 한 자락을 시연해주세요.”

말투는 공손했지만 [당신이 정말로 천마님의 제자인지 믿기 어려우니 증거를 보여달라]와 같은 말.

‘스승님의 제자라는 것 만으로도 후계자 취급을 받는구나.’

깨달았다. 왜 스승님께서 나를 제자로 들이는 것을 그렇게도 망설이셨는지. 천마의 적전제자가 된다는 것은 곧 마교의 적통을 이어받음을 뜻했다.

스승님께서 이 세상에서 당신의 마지막 온기를 거두신 지금. 마교의 법통은 나에게 있었다.

“…좋습니다. 아사유검(餓死流劍)을 펼치는 거로 충분할까요?”

“예. 교주께서는 [터럭이라도 미진하면 본좌의 후계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곧잘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무명한 칼잡이에 불과 하나, 대인의 일검을 견식하여 판별할 재주는 있습니다.”

주변에서 다른 교인들이 수군덕거렸다.

“야. 저 혈마놈이 뭐라고 시부렁거리는 거냐?”

“그것도 못 알아듣습니까? 마천신공의 1식을 보면 그거로 천마님 제자분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 그런데 왜 저놈이 우리 대표로 나서냐?”

“저희 중에서 그나마 예의를 차릴 줄 아니까요. 모용가 출신인걸요. 사생아지만.”

“뭐? 저 새끼가 모용놈들 아새끼였어?”

“아니. 왜 처음 듣는 거처럼 놀라십니까? 이 얘기 옛날에도 수십 번…… 됐습니다. 강은 강이요, 산은 산이고, 돌머리한테 뭘 알려줘도 돌은 여전히 돌이지요.”

“무슨 소리냐?”

“당신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사천당문의 독공(毒功)에 비견하는 암덩어리라는 소리입니다. 검마. 그 증거로 제가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암에 걸리고 있습니다. 제가 천독불침(千毒不候)을 익혔다는 걸 생각하면 당신은 참 놀라운 존재입니다.”

“오? 칭찬이냐?”

“씨발돌머리 새끼.”

“크흠.”

무인이 헛기침했다. 그리고 뒤쪽에서 수군거리는 교인들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사뭇 위엄이 넘치는 눈빛. 조용히 닥치라는 무언의 압박인 듯싶었다.

하지만 검마(劍魔)와 귀혼염마(鬼魂炎魔)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뭘 쳐다보냐? 한판 뜰래?”

“재수없습니다. 다른 곳 좀 쳐다보시죠. 속 느끼합니다.”

"......."

무인은 도로 고개를 돌려서 날 쳐다봤다. 그의 눈빛은 뭐랄까, [방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라고 강변하는 것 같았다.

“아하.”

나는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래. 원래 이런 곳이겠지.’

마교란 본래 못 배운 사람들이 몸을 의탁하는 곳이다. 나의 스승님이 고아했을 뿐. 대부분의 교인은 예의범절에 까막눈인 것이 당연했다.

“대저 굶주림이란---."

나는 칼을 안 뽑았다. 스승님의 몸을 안은 채 날붙이를 휘두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왼손에 오러를 담아서 손짓했다.

일격이 눈밭에 새겨졌다.

“---햇빛을 기다리는 아이들이다.”

움찔.

교인을 대표해서 나온 무인도, 수군덕거린 교인들도 입을 다물었다. 내 검격이 몰아치고 간 눈밭에, 깊은 골짜기가 누군가의 상처같이 파였다.

나는 1식을 선보인 거로 끝내지 않았다. 2식. 3식. 4식. 내가 극성까지 터득한 초식을 모두 손끝으로 펼쳤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스승님과 배후령의 혈투를 엿본 덕분일까? 어느새 일격 일격의 위력이 예전보다 더 날카로워졌다. 이 또한 스승님의 안배였다.

“남은 초식들은 아직 크게 깨우치지 못했어요. 보이기 민망하네요.”

“이 정도로 될까요.”

버스럭!

무인은 눈 위로 무릎을 꿇었다.

“마도천하의 적통을 뵙습니다. 새로운 천마이시여.”

뒤이어서 귀혼염마, 월영마군, 검마가 차례차례 부복했다. 버스락, 바삭. 그들의 무릎에 눈밭이 뭉개졌다. 정마대전에서 살아남은 교인들은 곧 모두 설원에 엎드렸다.

“마도천하의 적통을 뵙습니다! 저희의 교주이시여!”

나는 말문을 천천히 열었다.

“천마의 칭호는 과해요. 이미 제게 사왕(死王)이라는 별칭이 있고, 스승님의 별호는 오직 스승님의 이름으로 영원히 남겨지길 원합니다."

“하오면……"

“교주라는 호칭도 버겁군요.”

내가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 배후령이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눈을 감고 있었다. 아마 스승님과 나눈 비무를 머릿속에서 복기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배후령의 얼굴을 살핀 다음, 교인들에게 말했다.

“아직 전 많이 부족해요. 제가 여러분한테 가르칠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교주(敎主)라 하겠어요? 이름을 위한 이름에 불과하죠.”

무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살아생전 천마님께선 사람을 고르는 일에 틀리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적전제자를 들이셨으니 대인은 분명 교주의 직위에 어울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교주의 직위에 어울리는 제가 판단하기로, 아직 전 마교의 법통을 잇기에는 모자랍니다.”

교인들이 웅성거렸다.

“그, 그러면 저희가 대인을 어찌 부를지 옹색해집니다! 마냥 대인이라 칭할 수만도 없사온데….”

“소교주.”

누군가가 툭 말했다.

“소교주(小敎主)로 부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귀혼염마였다. 소림의 승려한테 3수를 양보하겠다고 구라 친 교인. 부러진 코뼈가 다 낫지 않아서, 코피 마른 흔적이 인중에 남았다.

“강호에선 소공자나 소가주라는 말이 흔합니다. 아직 교주에 오르기 부담스럽다는 말이지, 아예 자리를 거절하신다는 게 아니라면, 소교주라 칭하여 받들어도 무방합니다.”

“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수용할 수 있겠다.

“예. 그러십시오.”

교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한결 편해진 낯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소교주님. 정식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떤 신묘한 도술을 부리신 건지 알길이 없으되, 저희 모두 강시에게 물렸다는 것은 기억합니다. 소교주님이 아니었다면 정마대전의 마무리를 짓는 것도, 천마님께 충의를 바치는 것도 불가했을 것입니다!”

무인이 포권을 취하였다.

“마교 사마군의 일위. 혈마(血魔). 휘하, 혈귀대(血鬼隊) 전원. 소교주님께 충성을 바칠 것을 맹약합니다.”

그를 뒤따라 십수 명의 교인이 포권을 취했다.

“마교 사마군의 일위. 귀혼염마랍니다. 휘하, 위령대(慰證隊) 전원. 소교주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사마군 일위. 월영마군(月影魔君). 휘하, 시영대(屍影隊) 전원이 소교주께 충성하겠소.”

“검마요! 휘하, 척살대(刺殺隊)와 더불어 충성을 약조하우.”

재차 수십 명.

"......."

나는 스승님을 서서히 내려놓았다.

스승님은, 본래 설원에 피어난 꽃처럼 하얀 눈밭에 잘 어울렸다.

한 잎의 모란을 두고 나는 교인들에게 포권을 취했다.

“아(我)가 바라니. 제 목숨이 끝나지 않는 한, 그림자의 교리는 불멸할 것입니다."

그 순간이었다.

[스테이지 클리어.]

[퀘스트, ‘리메이크 더 월드 제 1권’을 클리어했습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목소리일까.

[금일, 22층 스테이지가 클리어되었습니다.]

[모두에게 다시 한번 알립니다.]

[금일, 22층 스테이지가 클리어되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것 같기도 했다.

[공략 인원 측정 중.]

[측정 종료.]

나는 포권을 풀지 않은 채 말했다.

“스승님의 장례를 여러분한테 부탁드릴게요.”

[공략자 4명을 공지합니다.]

스승님의 손짓에 두 쪽으로 갈라진 설산.

산봉우리 위의 하늘에 문자들이 새겨졌다.

+

[공략 기여도 순위]

1위. 사왕(死王)

2위. 약제사燥劑師)

3위. 독사(毒能)

4위. 약왕(藥王)

+

“화려하게 장례를 치르지 마세요. 스승님이 바라지 않을 겁니다. 그저 여러분이 장례의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주기만 해도 스승님은 기뻐할 거예요. 스승님을 부디---."

부디. 그다음 이어질 말을 나는 입으로 안 옮겼다.

옮길 필요가 없었고 옮길 수도 없었다.

눈이 깜빡였을 때, 이미 내 몸은 설원에 없었다.

“어서 오시어요. 사왕님.”

만상의 대도서관.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로 애닳게 기다리고 있었어요!"

성좌, 도서관장이 눈웃음을 짓고 나를 바라보았다.

2.

“축하드려요!”

도서관장은 공중에 떠 있었다.

5m짜리 옷소매가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물거렸다.

“음. [천마실록]의 마지막 한 낱말은 ‘부디’로 끝나게 되었네요. 음. ‘부디’라는 말은 누군가에 대한 기원을 뜻하지요. 기원, 기도. 마교에선 그것을 ‘바라야’로 외어요. ‘부디’와 ‘바라야’는 같은 말이라 볼 수 있거든요. 그런 뜻에서 참 적절한 결말구……"

“잠깐만요.”

나는 도서관장의 장광설을 도중에 끊었다.

[위화감]이 느껴졌다.

대도서관에 오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며칠 밤을 새워서 독서한 적도 있다. 이 장소에 꽤 익숙해진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번과 달라진 점이 너무나 또렷이 내 눈에 들어왔다.

“…왜 다른 헌터들이 전부 기절해 있습니까?”

묵시록 공략에 참가한 헌터들.

이명을 가진 250명의 헌터 전원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흐음.”

도서관장이 입꼬리를 올렸다.

“걱정하지 마시어요. 잠시 잠을 재웠을 뿐인걸요.”

“잠을 재웠다…?”

“예. 인체에 무해한 향을 피웠답니다.”

도서관장이 손을 뻗었다. 성좌의 주변으로는 수십 권의 책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그중 한 권, [연향도시 이야기]라고 제목이 박힌 책이 있었다.

“여러분같이 말로 소통하는 세계도 많지만, 노래로 소통하는 세계가 따로 있으며, 향기로 소통하는 세계가 있어요. 이 묵시록에선 사람들이 분노의 향, 슬픔의 향, 기쁨의 향으로 얘기를 나눠요.”

"......."

“물론 수면향도 있지요.”

나는 긴장하여 경계했다.

“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주세요. 본 관장은 사왕님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잠시 주변을 조용히 시킨 것이에요."

이야기.

“제 동료들을 기절시키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요?”

“아아, [동료]라. 역시 사왕님! 귀찮고 쓸데없는 짐 덩이들이라 여길 수도 있건만 당연하다는 듯 동료들로 생각해주네요. 본 관장은 사왕님의 갸륵한 마음씨에 다시 한 번 눈물을 지을 수밖에 없답니다.”

"......."

“이곳에선 사왕님 일행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여졌어요. 한 편의 영화처럼요. 감동의 도가니였어요. 진짜. 이곳 사람들은 사왕님을 열렬히 환영했겠지요.”

도서관장이 키득 웃었다.

“그런데 그대로 내버려 두면 본 관장은 한참이 지나고 난 다음에나 사왕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겠어요? 차례가 한참 밀릴 테니.” 도서관장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려면 잠깐 사람들을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어요. 걱정하지 마시길. 이래 봬도 제일 온건한 수단을 동원해서 잠재운 거예요.”

섣불리 믿기 어려웠다.

나는 주위를 빠르게 둘러봤다. 마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책장에 기대어서 긴 머리카락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마녀한테 다가가서 가볍게 맥을 짚었다.

두근.

두근.

다행이다.

안색이 편하고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간다.

나는 동료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 도서관장을 올려봤다.

“…이야기가 있으면 얼른 끝내고 사람들을 깨워주시죠.”

“너무 서두르시는 거 아닐까요? 본 관장은 둘이서 좀 더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답니다. 일부러 다른 공략자들을 제하고 사왕님만 소환했는걸요.”

“저 아직 22층에서 일 안 끝났습니다. 찾아야 할 검도 있고….”

“차후.”

도서관장의 눈웃음은 거꾸로 뒤집힌 반달 같았다.

“나중에 탐색해도 될 일이에요.”

"......."

긴장이 감돌았다.

도서관장은 몸집이 작아서 우습게 보일 뿐. 이세계의 기묘한 괴물들을 마음대로 소환할 수 있다. 저번만 해도 무려 50명에 이르는 헌터를 한순간에 삼켜버리지 않았는가?

‘아무리 마천신공을 익혔다지만 지금 맞서 싸우면 필패야.’

나는 침을 삼켰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려고요?”

도서관장의 미소가 깊어졌다.

“매우 긴밀한 이야기요.”

팔랑.

도서관장이 옷소매를 펄럭이며 바닥에 착지했다. 나한테 다가선 도서관장은 소매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음.”

가위였다.

“가위는 갑자기 왜…?”

“머리가 제법 기네요. 사왕님. 다듬어드릴게요.”

도서관장이 발돋움해서 내 머리카락을 싹독싹독 잘랐다. 많이 자르진 않았다. 뒷머리 반 뼘 정도? 도서관장은 자른 머리카락을 붉은 색 비단 주머니에 넣었다.

"......."

“손톱도 기네요. 무인(武人)을 자칭하는 분께서 손톱을 관리 안 하면 큰일이지요. 잘라드릴게요.”

도서관장이 품속에서 또 다른 물건을 꺼냈다.

손톱깎이였다.

도서관장은 내 오른손을 잡더니 손톱을 또깍또깍 깎았다. 새끼손톱부터 엄지손톱까지 전부 말이다. 그리고 손톱 별로 저마다 다른 비단 주머니에 넣었다.

음.

“저기, 도서관장님?”

“예."

“지금 이거 뭐 하자는 겁니까?”

“사왕님.”

도서관장이 허리를 굽혔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리고 마치 당연한 일처럼 내가 신은 구두를 벗겼다.

“만약에 사람이 너무,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해보시어요. 너무예요.”

“…해보겠는데요. 왜요?”

"그저 그 사람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어요. 사랑이에요. 그야말로 지고지순한 사랑. 문제는 그 사람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오직 지면 속에만.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것이에요.”

도서관장이 내 양말을 벗겼다.

"그런데, 짠! 이게 대체 무슨 조화일까요. 제 이상형인 소설 등장인물이 눈앞에 나타났어요.”

"어….”

"자아. 이때 사왕님께선 무슨 심정이시겠어요?”

도서관장은 진지하게 말했다.

발톱깎이를 쥔 채.

“예. 그런 거랍니다.”

"......."

“그런 거예요.”

뭐가 그런 거냐?

“아, 앗! 움직이지 마세요! 뭐 하시는 건가요! 움직이시면 제 발톱깎이가 사왕님의 대리석 같은 발가락에 흉한 상처를 남길지도 몰라요! 그럼 큰일이잖아요!!”

“왜 저한테 화를 내는 겁니까! 당장 꺼지십쇼!”

“잠깐! 잠깐만요! 새끼발톱 하나만 깎고 말게요! 발톱 하나만! 이 정도로 양보해드렸으면 됐지요!”

“이 별탱이가 나한테 왜 이래?!”

“아! 아! 발톱이 안 된다면 눈썹 세 가닥으로 협상해도 좋아요!”

나는 그제야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당신 원래 존댓말 쓰는 사람 아니었잖아요!”

그렇다.

성좌 도서관장은 존댓말을 안 썼다. 하오체를 고집했다. 분명히 그랬을 텐데, 지금은 어째선지 나한테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이것이 위화감의 정체였다.

“평소대로 하오체 쓰십쇼!”

도서관장의 입술이 우르르 떨렸다.

“말도 안 돼요! 비, 빛공자님한테 감히 저 따위 미천한 미물이 하오체라니!”

미친.

[방구석 도서관장은 당신의 새끼발톱을 원합니다.]

저런 미친.

‘인물창!’

절대로 도서관장한테 발톱을 내주지 않고자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글자들이 눈앞에 떴다.

+

이름: 방구석 도서관장

호감도: 95

선호 장르: [퓨전], [로맨스], [추리], [모험], [공포], [역사], [전쟁], [스포츠], [SF], [신화], [동화] …

불호 장르: 없음

선호 캐릭터: [등장인물], [살천성]

불호 캐릭터: 없음

선호 플롯: [이야기]

불호 플롯: [연재중단]

심리 상태: ‘발톱! 가능하다면 눈썹까지 득템해야 하오! 아, 수염을 기른 다음에 좀 뽑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소외만 그건 본좌가 보기에 도 안 될 거 같구려. 아아, 빛공자여. 빛빛빛이여! 찬란한 주인공이여! 그대를 책갈피로 만들어서 영원히 보관하고 싶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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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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