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107화 (107/400)

107화.  < 1DAYS.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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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백합 영애는 조금 지난 뒤에야 반응했다.

“뭐?”

“공녀. 생각해보세요. 공녀라면 제가 떠올린 것과 정확히 똑같은 걸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공녀도 저와 같은 회귀자니까요."

"......."

은백합 영애는 미간을 좁히며 턱을 짚었다.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얼마 안 가서 은백합 영애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눈썹이 올라갔다.

“과연.”

역시. 은백합 영애라면 알아차릴 줄 알았다.

“예."

"하지만, 공자여. 위험하다. 이건 도박이나 다름없다.”

"도박이나 다름없다는 시점에서 이미 우리가 이겼어요. 왜냐면 이것은 탑이 저지른 실수이고 오류니까요. 거기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기만 해도 우리는 지극히 유리한 입장에 서요.”

"……문제는 하나 더 있다.”

은백합 영애는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그대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괜찮아요. 어떻게든 반드시 해결할게요. 다만 제가 혼자 힘으로 이 세계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제가 [전송]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것만 부탁드릴게요. 라비엘.”

나는 입을 열었다.

“저를 믿어주세요.”

정적.

은백합 영애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래.”

그녀가 다가왔다.

“내가 그대의 첫 번째 개새끼가 되었으니, 그대는 나의 마지막 개새끼가 되겠지. 뺏어가는 것이 있다면 빼앗기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은백합 영애는 나의 턱을 잡았다.

“정말로, 나쁜 남자를 연인으로 두게 되었어.”

그리고 키스했다.

"......."

나는 얌전히 은백합 영애의 숨결을 받아들였다.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83%입니다.]

지난번 회차.

이단심문관이 금사매 남작 영애에게 침몰한 모습을 보자마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85%입니다.]

왜 ‘변신’이 유지되고 있는가?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85%입니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단심문관은 신성술식을 이용해서 자유로이 외모를 바꿀 수 있다. 머리카락도 길러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단심문관’이 소유한 스킬이지, 결코 ‘금사매 남작 영애’가 지닌 스킬이 아니다.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85%입니다.]

그런데도 변신의 흔적은 어중지간하게 남아 있었다.

결론은 하나다.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87%입니다.]

몰입해도 우리의 스킬은 사라지지 않는다.

금사매 남작 영애에겐 여전히 이단심문관의 스킬이 남아 있다.

단지, 쓰는 방법을 까먹어서 더는 사용하지 않게 될 뿐.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88%입니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몰입도가 90%에 가까워지자,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기억의 격류.

본래 이 몸의 원주인이 가지고 있던 기억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여태까진 그저 원주인의 기억을 엿보거나 감정을 공유하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89%입니다.]

나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

보육원 시절, 원장님이 이따금 우리를 모아두고 열국지를 읽어주던 목소리도. 겨울이면 너무 추워 화장실에 가기 싫었던 기억도. 가끔 우리와 놀아주러 와준 어느 누나와 형들의 웃음소리도.

-야! 김■자! 진짜 지■ 뭐하자는 ■데 !

[■■이가 ■사님에게 당장 그만■ 것을 호소■■다!]

배후령과 성검의 목소리마저.

“괜찮은가?”

오직 은백합 영애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예…… 아직은, 괜찮아요…… 더.”

“더 키스해달라는 말인가. 참으로 응석꾸러기다, 내 연인은.”

숨이 막혔다.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90%입니다.]

어지러웠다.

어지러운 가운데, 간신히 실눈을 떠서, 우리 두 사람이 비친 거울을 엿보았다.

+

이름: 김공자

호감도: 91

선호 ■르: [무협], [로맨스], 旧리], [모험]

불■ 장르: 없■

선호 캐릭터: [스승], [연인], [고■■ 영웅], [희생자], [■■가], [어린아이], [선인], [스■■ 의심할 줄 아는 자], [■■에게 너그러운 자] , [나를 알아주는 ■]

+

내가.

나의 존재가 무언가에 덮어 씌워지고 있다.

“아직 괜찮은가?”

“라비엘.”

무서웠다.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라비엘……"

“알고 있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절대로 당신을 잊지 못하게. 제가 죽어도 당신을 잊지 못하게......."

“알고 있어.”

입술이 겹쳤다.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91%입니다.]

나의 기억이 사라진다.

+

이■: 김공자

호감■: 9■

선호 [무협], [로맨스], [■■], [■험]

■■ ■■" 없■

선호 ■■■: [스승], [연인], [■■■ 영웅], [희생자], [■■가], [■■아이], [선인], [■■■ 의심■■ 아는 ■], [■■■■ 너그러운 ■ ], [나를 ■■■■■]

+

나의 존재가 희박해진다.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92%입니다.]

싸구려 단검.

'칼집도 없지만 뭐.’

나의 시작.

'댁이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이게 한계거든.’

나의 한계.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93%입니다.]

좁은 방.

헤진 벽.

신문과 사진.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94%입니다.]

포니테일의 미남자가

불에 휩싸인 창을 들고 서서,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95%입니다.]

인터넷.

골목.

‘그런데 형씨는 내 얼굴을,’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96%입니다.]

타오르는 나.

타오르는 저택.

‘착한 아저씨.’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97%입니다.]

붉은 비가 많이도 내리던 날.

아카시아 꽃밭, ‘나는!’

‘나는, 몰랐어!’ 라고 덜덜 떨면서 외치던 누군가의 모습이,

아카시아 꽃밭에서.

+

■■: ■공자

■■■: 9■

■■ ■■: [무협], [로맨스], [■■], [■■]

■■ ■■: 없■

■■■■■: [스승],[연인], [■■■■■], [희생■], [■■■], [■■아이], [선■], [■■■■■■■■■■], [■■■■ ■■■■■], [나■ ■■■■ ■]

+

눈.

설원.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98%입니다.]

붉은 모란.

한 잎의.

+

■■: ■■

■■■: ■■

■■ ■■: [무■],[■■스], [■■], [■■]

■■ ■■

■■ ■■■: [스승], [연인], [■■■ ■■], [■■■], [■■■], [■■아이], [■■], [■■■■■■■■■■], [■■■■ ■■■■■],

[■■ ■■■■■]

+

그러니까.

‘난 이놈한테 기뻐하는 방법들을 가르쳐줄 거다!’ 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그러니까 나는.

[인물에 대한 몰입이 심화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99%입니다.]

나는.

누구지?

+

■■: ■■■

■■■: ■■

■■ ■■: [■■], [■■■], [■■], [■■]

■■ ■■■: [■승], [연■], [■■■ ■■], [■■■], [■■■], [■■■■], [■■], [■■■ ■■■ ■ ■■ ■], [■■■■ ■■■■ ■],

[■■ ■■■■■]

+

"......."

뭔가,

-■■■ ■■■■! ■, ■, ■■■!

[■■■■ ■■■■ ■■ ■■■■.]

뭔가 시끄럽다.

머릿속에 벌떼가 가득찬 것처럼 웅웅거린다.

눈앞은 흐릿하다…… 거울? 거울은 왜?

여기는 어디인가?

“괜찮은가.”

"......."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멍하게 본다.

흐릿해진 시야 너머에서도, 눈앞의 누군가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갖고 있다.

나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

“공자여.”

라비엘 이반시아.

이반시아 공작가의 적녀.

“괜찮은지 물었다.”

내 주인인 금사매 아가씨의 연적(惑敵).

“이게 무슨……"

나는 몸을 움직이려다가 깨달았다. 묶여 있다. 팔다리는 물론이고 몸이 통째로 밧줄에 꽉 묶였다. 나 자신이 포박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흐리멍덩한 정신이 확 깨었다.

“맙소사. 소공작님. 설마 지금 저를 납치하신 것입니까?”

“과합니다. 제아무리 이반시아 공작가의 권력이 하늘을 뒤덮을 정도라 하더라도 이건 과합니다. 금사매 아가씨가 그리도 미우셔서 시종인 저를 겁박하시렵니까.”

은빛의 여인은 조용히 나를 내려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 이상하게도 가슴이 저릿했다.

“그런가.”

슬픈 얼굴.

“그리 되었군.”

제국의 모든 독은 그녀의 손끝을 거치고, 제국의 모든 흉계는 그녀의 심장에서 나온다. 다소 악의적인 소문들이긴 해도 거기엔 진실이 담겨 있다.

그런 은백합 공작 영애가 내 눈앞에서, 분명히,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상처받을 심장은 이미 없어졌다고 생각했다만. 이건 확실히 아프구나. 아픔으로 삶을 증거하는 것이 너의 무(武)라고 말했던가. 그렇다면 기뻐해라. 너의 검은 지금 틀림없이 내 심장을 갈랐다.”

"무슨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

은백합 공작 영애의 말도 이해할 수 없고, 내 감정도 이해할 수 없다. 왜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인가? 납치를 할 때 내게 약물을 쓴 것인가. 그렇지만 나도 금사매 아가씨를 모시면서 여러 독약에 정통했다.

이런 증세는… 들어본 적 없다.

“공자여.”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째서인지.

“……누구를 찾으시는 것입니까?”

“나의 연인. 그리고 나에게 심장을 바친 남자이고, 내가 심장을 바칠 남자다.”

그런 사람이라면, 아마도 황태자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백합 공작 영애의 붉은 눈동자는 오로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것이 더욱더 내 혼란을 가중시킨다.

“소, 공작님.”

이상하다.

단지 소공작을 소공작이라 부를 뿐인데도 왜 식은땀이 흐르는가.

『공자.』

무엇인가. 무척 잘못한 것 같은. 죄스러운.

한없이 미안하기만 한, 그런 것 같은.

『내 심장에 흉터를 내면 죽여버리겠다.』

숨이 막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머리를 헤집었다. 미칠 것 같았다. 환청인가.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약물인가. 그래서 내 목덜미에서 땀이 흐르고 내 가슴에서 심장은 진동하는 것인가.

“공자여.”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은백합 공작 영애가 레이피어를 꺼내드는 모습이 빤히 보였고, 그것은 한없이 불길한 징조여서, 무슨 말이든 하여 영애를 말리거나 설득해야만 했는데.

“다녀오거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대를,”

[은으로 도금된 심장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기다리고 있으마.”

심장이 찢어졌다.

"------!!"

나는 비명을 질렀다. 곧, 피가 왈칵 쏟아졌다. 기도가 막혔다. 마지막 숨결마저 금방 흘러버렸다. 그리고 내가 피를 토하려는 그 순간에, 은백합 공작 영애는 내 입술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입술로.

"......, ......."

눈앞이 멀어진다.

나를 죽인다는 것은, 눈앞의 소공작이 드디어 금사매 아가씨에 대한 공작을 본격적으로 펼친다는 뜻. 아가씨의 방패인 내가 죽어버리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위급하고도 시급한 사태였다.

하지만 내가 최후로 떠올린 생각은 금사매 아가씨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무엇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나를 코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붉은색 눈동자.

[은으로 도금된 심장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곳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

[...... .......]

나직하게.

[오류 발생.]

목소리가 흐른다.

[스킬의 소유자와 스킬의 당사자가 다릅니다.]

[‘소유자의 시점에서 24시간 전’으로 회귀할 것인지, ‘당사자의 시점에서 24시간 전’으로 회귀할 것인지, 판단합니다.]

[판단 불가.]

눈앞이 어두워진다.

[탑은 스킬의 발동 요건이 충족되지 않음을 확인합니다.]

[현재 상황이 스킬의 소유자가 의도한 것임을 파악합니다.]

[해당 사안은 탑의 권한을 넘어섭니다.]

까마득해진다.

[탑은 사왕의 권한을 확인합니다.]

[통과. 사왕은 현재 임시 사도의 자격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임시 사도 자격 부여자 - 하무스트라.]

[탑은 사왕의 문제 제기를 정식 의제(議題)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탑은 만생(萬生)의 여섯 기둥에게 다수결 회의를 요청합니다.]

하얀 빛의 파도가 나를 덮쳤다.

.

.

.

.

.

.그곳은 처음 겪어보는 장소였다.

어둡디 어두웠고, 나는 팔다리도 몸도 갖지 않아서,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듯했다.

[참가자를 확인합니다.]

한없는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소곤거렸다.

[여섯 번째 기둥. ‘태고의 지팡이’가 참석합니다.]

[다섯 번째 기둥. ‘신기루를 거니는 공녀’가 참석합니다.]

[네 번째 기둥. ‘맹목을 관조하는 달’이 참석합니다.]

[세 번째 기둥. ‘시초를 입법한 자’가 참석합니다.]

[두 번째 기둥. ‘공허에서 춤추는 신’이 참석합니다.]

[만생의 여섯 기둥이 참석한 것을 확인.]

[탑은 임시 사도 ‘사왕’의 문제 제기를 공유합니다.]

[공유 완료.]

-Tchuba-ta, Mura waloyo Bushi-to!

무척이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Sato, mai-mau.

-Nail!

목소리들은 사방에서 들려왔다. 무수한 뱀이 속삭이는 것 같은 어조. 나는, 이곳이 지옥인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즈라쿠아의 언어를 번역합니다.]

다음 순간.

“---저 개씹상것이 아주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네!”

목소리가 터졌다.

“당장 하무스트라 불러들여! 그 방구석 도서관장 새끼, 대체 뭘 어쩌자고 저런 걸 사도로 삼아서 보낸 거야!”

“확인해봤는데,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그보다 저 아이는 우리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할 텐데. 몰입도, 라고 했나? 그걸 되돌리는 편이 의사소통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미야! 돌려놔!”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사왕의 몰입률을 초기화합니다.]

[현재 당신의 몰입률은 0%입니다.]

“하아!”

나는 간신히, 숨을 놓았다.

어지러워졌던 머리도 멀쩡히 돌아왔다.

내가 집사에 몰입하여서 내뱉었던 말, 날 바라보던 은백합 영애의 시선, 모든 기억이 순식간에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확신한 것이다.

“너. 지금 일부러 등장인물이랑 동기화한 다음에 회귀 스킬 써먹었지?”

내가 성공했다는 것을.

“네 시점이 아니라 등장인물 시점에서 24시간 전으로 돌아가려고!”

나는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예. 그렇습니다.”

은백합 영애가 검을 들어서 거울을 찍어버린 날.

영원한 열흘이 반복되기, 하루 전.

“돌려보내주시죠.”

나는 바로 그 날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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