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114화 (114/400)

114화.  < 성전.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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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결혼식장은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꺄아아아악!”

“신이시여, 저, 저건 도대체….”

노을이 진 하늘. 그곳에 균열이 벌어졌다.

빨간 하늘이 유리창처럼 쩌저저적, 깨졌다. 깨진 틈새로 핏물이 떨어졌다. 나는 오러로 시력을 강화해서 하늘을 올려보았다.

[‘폐허를 추수하는 소’의 사도가 현현합니다.]

그곳에는 거대한 쇠망치를 든 소녀가 있었고,

[‘영원한 평야의 군마’의 사도가 현현합니다.]

날개를 펄럭이는 페가수스에 올라탄 장군이 있었으며,

[‘불멸하는 행복 전도사’의 사도가 현현합니다.]

손에 손을 잡고 기이한 춤을 추는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세, 세상에….”

결혼식에 초대된 하객들은 경악에 잠겨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붉은 하늘에 균열이 생긴 것만으로도 믿기지 않은 광경이었다. 심지어 균열에서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튀어나왔으니 정신을 못 차린 것이다.

오직 세 명.

“나타났군.”

라비엘과 나, 그리고 이단심문관은 맞서 싸울 준비를 마쳤다. 우리 중에서 지휘권을 가진 사람은 라비엘이었다.

“특무대는 집결하여 하객들을 보호한다! 신룡단에 속한 자들은 한곳에 모이도록! 나의 가신들은 하객들을 인도하여 대피시키라!”

나의 신부이자 제국의 공작인 라비엘은 혼란에 빠진 하객들을 향해서, 무엇보다 공작가의 가신들을 향하여 소리쳤다. 사람들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호명(號名).

이름이 불러진다는 행위에는 묘하게도, 혼란을 일깨우는 마력이 있었다. 그 마법을 발하는 자가 제국에서 두 번째로 고귀한 귀족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푸른 사자 기사단은 대오를 갖추어라!”

“공작 각하. 저것들은 도대체……"

“의문 따위는 집어치워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적들의 움직임에 주의하라. 그대들은 제국을 이끌어나가는 주인들이다. 내 앞에서 꼴 사납게 추태를 보일 작정이라면 작위를 반납하도록! 알겠는가!”

“아, 알겠습니다!”

라비엘은 순식간에 회장을 정리했다. 본래라면 그녀가 지휘권을 가질 수 없는 군사들과 귀족들도 라비엘의 명령에 복종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왜 저녁 하늘의 노을이 깨졌고, 왜 정체불명의 사도들이 출현했는지 모르겠으나, 라비엘 이반시아의 목소리에 따라야만 지금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노라고.

“저들의 능력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일련의 지시를 끝마친 라비엘은 이단심문관에게 말했다.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단심문관이 수인을 맺었다. 그의 손에서 하얀 빛이 터졌다. 빛은 광선처럼 하늘로 뻗어나가서, 순식간에 이계(異界)의 사도들을 훑었다.

“음. 분석을 완료했습니다! 먼저 저기 거대한 망치를 든 아가씨는---."

하지만 이단심문관은 미처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가 쏘아올린 광선이 도발로 비추어버린 것일까. 망치를 든 사도가 하늘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사도는 금발을 휘날리며, 거대한 쇠망치를 내리찍었다.

쿠우우우웅!

말 그대로 땅이 뒤엎어졌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망치의 풍압만으로도 회오리가 몰아쳤다. 결혼식을 장식하기 위해 제국 남부에서 공수해온 붉은꽃과 하얀꽃이 엉망진창으로 휘날렸다. 백화(百花)가 만발하여 흩날리는 가운데, 사도의 눈동자는 붉게 타올랐다.

-라비엘 이반시아!

그 눈동자와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아무것도 너에게는 내어주지 않아!

놀랍게도, 사도의 생김새는 금사매 남작 영애를 쏙 빼닮았다.

“그, 금사매 영애……?”

“당신, 그 모습은 무엇인가요?”

하객들이 의아스러운 소리를 냈다. 내 부군만큼은 아니어도 금사매 역시 유명인사였다. 당연히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중 몇몇은 사도와 이단심문관을 번갈아 보면서 경악에 잠겼다.

"음."

이단심문관이 작은 목소리로 ‘이건 안 좋군요’라고 중얼거렸다.

“저건 아마도 금사매 남작 영애라는 사람의 본체입니다.”

“본체?”

“쉽게 말하면 악마한테 영혼이 저당잡힌 것과 같습니다. 성좌의 힘을 빌리는 대신 자신의 능력, 외모, 기억을 모조리 바치는 것이지요! 아핫. 아마도 저 아가씨에겐 정말로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이루고 싶었던 소원이 있는 모양입니다. 흥미롭군요….”

이단심문관이 흥미를 느낀 그 대상은 절찬리에 망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휘우우우웅!

망치질의 풍압에 휘말려 사람들이 날아갔다. 그나마 무예를 익힌 기사들은 이를 악 물고 버텼다. 그들은 여전히 혼란에 잠긴 낯빛이었지만, 최소한 한 가지 사실은 깨달았다. 금사매 영애를 빼닮은 저 작자가 자신들한테 우호적이진 않다는 것.

“마, 막아라!”

“하객들을 보호해!”

“지시받은 대로 대응한다!”

명확한 ‘적군’의 출현은 그만큼 ‘아군’을 결집시켰다. 라비엘이 이 날을 위해 하객으로 초대하고 경호로 고용했던, 제국에서 내로라 하는 무인들이 칼을 잡고 돌진했다. 정련된 움직임. 정예들의 협공이었다.

금사매는 코웃음쳤다.

-그래. 어차피 당신들도 라비엘 이반시아의 지시에 따르지.

수십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뛰어들었다.

-저 여자한테 내어줄 바에야 모조리 부숴버리겠어.

수십 자루의 칼날이 오러를 실고 동시에 쏘아졌으나, 깡……! 칼날들은 금사매의 피부에 가로막혀 튕겨나갔다.

“뭣……?!”

여기저기서 당황한 신음이 새어나왔다. 금사매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것이다. 당황하지 않고 다시금 칼을 휘두른 무인도 있었으나, 소용없었다. 칼들은 모조리 금사매의 피륙에 가로막혔다. 그나마 오러들이 금사매의 옷가지를 불태웠을 뿐.

-폐허를 추수하는 소이시여!

금사매가 망치를 내리쳤다.

-저에게 당신의 가호를 허락해주세요!

콰직! 쇠망치에 짓눌려 한 명의 무인이 수박처럼 터졌다. 피가 튀었다. 공중에 튀어오른 핏방울이 미처 땅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금사매는 다시 한 번 더 망치를 휘둘렀다.

“자, 잠깐---."

망치질에 휘말려 누군가의 머리가 박살났다. 퍼억! 핏물이 터지고 또 터졌다. 살육이 거침없이 이어졌다. 동료가 죽는 와중에 무인들은 필사적으로 금사매의 헛점을 찔렀지만, 어느 칼끝도 그녀의 피부에 흉터를 내지 못했다.

“다들 조심하십시오!”

이단심문관이 외쳤다.

“저 자는 무티아의 축복 중 하나, [무상(無傷)의 인체]를 두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아핫. 정확한 효과는 [자신에 대한 물리적 위해를 99.9% 경감시킨다]입니다만!”

상처 입지 않는 신체.

“최소한 봉우리를 허물어뜨릴 정도의 일격이 아니라면 저 자에게 유의미한 데미지를 입힐 수 없을 겁니다! 분발해주시길!”

-라비엘 이반시아아아아!!

무인들이 당황했다. 그중에는 오늘 한정으로 내 양아버지가 된 노신사, 황실의 시종장이자 특무대장인 분도 있었다.

제국 최강의 자리를 맡고 있는 노신사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봉우리를 허물어뜨리라니. 그런 터무니없는 일을 누가 해내겠는가?”

“그렇군요. 실로 지난한 일입니다. 하지만 해내지 못하면 여러분이 죽습니다!”

이단심문관은 방실방실 예쁘게도 웃었다. 그 미소만 사진으로 찍어서 캡처하면, 지금 실시간으로 사람들이 망치에 찍혀서 육편으로 휘날린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미친 싸이코패스.

“저 하나만 해도 괴물이다만.”

라비엘이 탄식했다.

“그런데 다른 놈까지 오는구나.”

내 부군의 말이 옳았다. 금사매의 영혼인지 본체인지 모를 저 사도는,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적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심지어 어쩌면 제일 상대하기 편한 적일지도 몰랐다.

-안타까운 이들이여.

붉은 노을.

페가수스를 탄 장군이 하늘을 등진 채 천천히 하강하였다.

-저 가엾은 여자아이를 탓하라. 저 여자아이의 원신(元身)에 깃든 이를 탓하고, 저 청년을 탓하여라. 그로 인해 우리의 말발굽에 밟히게 되었나니. 너희 모두는 슬퍼함이 마땅하리라.

장군은 금사매를, 이단심문관을,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두꺼운 투구를 쓰고 있어서 장군의 표정을 알 수는 없었다.

-군마를 따르는 전사들이여.

장군이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붉은 노을 한점이 깃발에 스며들었다.

-깨어나라.

그 순간이었다. 장군의 주변으로 반투명한 유령들이 소환되었다. 수십, 수백, 수천. 어쩌면 일만에 달하는 숫자의 유령들이. -그오오오….

-그어, 어어어어….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금사매가 쇠망치를 휘둘렀을 때도, 사람들이 망치질에 휘말려 종잇장처럼 찢어질 때조차, 그래도 하객들은 정신을 다잡았다. 저항했다. 반항했다. 그러나 새빨간 하늘에서 출현한 일만의 대군은.

차원이 달랐다.

“도, 도망쳐….”

누군가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망쳐라!”

똑같은 말을 누군가가 받아서 외쳤으며.

-돌격하라.

장군은 단 한마디로 그들의 중얼거림과 외침을 차단했다.

-그오어어어어!

-키긱, 키기이익!

무수한 유령들이 쏟아졌다. 그들은 고대의 병사처럼 오래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찌르는 창끝은 낡지 않았다. 푹!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애쓰던 하객의 등이 꿰뚫렸다.

“사, 살려주십쇼!”

“크아아아악!”

학살.

하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들의 피가 쏟아져, 하얀꽃이 붉게 물들었다. 제국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장이 될 예정이었던 이곳은 가장 처절한 지옥이 되었다.

"......이단심문관 씨."

내가 입을 열었다. 말하고 나니, 내 목소리가 무척이나 차가웠다.

“저 사도의 능력은 뭡니까?”

“방금 분석을 완료했습니다. 흐음. 마호스의 가호 중 하나, [성역의 전장]이 발동되고 있군요.”

이단심문관은 수인을 맺은 채 말했다. 내 눈에만 인물창이 보이는 것처럼 이단심문관에게도 그한테만 보이는 문자들이 있는 듯했다.

“[성역의 전장]은 광역기입니다. 일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군요. 효과가 굉장한데, 바로 [소환된 자의 능력을 살아생전 전성기에 고정시킨다]입니다! 저 유령들 하나하나가 정예병 중 정예병. 마호스를 추종했던 전사들의 영혼입니다!”

“……역부족이군.”

라비엘이 부채를 내려놓았다.

“숫자에서 너무 차이가 난다. 무티아의 사도는 1대1에서 절대 지지 않는 능력을 가졌고, 마호스의 사도는 집단전에서 너무나 유리하다. 진퇴 양난인가.”

-루.

그리고.

-루, 루루, 라. 라.

마지막 사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

-루루, 라. 라라. 루.

-루루루. 라라. 라. 라.

어린아이의 형태를 갖춘 사도들이 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는 하늘에서 내려 지상으로 울려 퍼졌다. 어린아이들은 꼭 강강술래를 하듯 원무(圓舞)를 추었으며, 춤이 빨라질수록 노랫소리가 거세졌다.

-라.

-루, 라. 라라.

털썩.

유령들에게 쫓겨 도망치던 하객들이 돌연 고꾸라졌다. 한두 명만 그런 게 아니었다. 털썩, 털썩.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사람들은 제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허물어졌다.

"오."

이단심문관이 재빨리 수인을 맺었다. 그의 손에서 빛이 새어나와 라비엘과 나를 감쌌다.

“아핫, 이건 정말로 좋지 않습니다! 음. 정신공격의 일종이군요. 저 노래에 노출되면 [자기가 제일 행복했던 기억]에 강제적으로 매몰 됩니다. 웬만큼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면 거부할 수 없겠습니다!”

"......."

물리공격에 면역인 망치의 사도.

집단전에 특화된 군마의 사도.

정신을 유린하는 행복의 사도.

“……진짜. 종류별로 지독하네요.”

“예! 일대일 싸움에 특화된 사도만 있으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습니다. 집단전을 강요받아도 대응할 방법이 있지요. 정신공격이 문제라면 정신력이 강한 소수정예를 꾸리면 됩니다. 하지만 세 가지 전투를 한꺼번에 치러야 한다면, 아핫.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단심문관이 방긋 웃었다.

“사왕."

“예."

“사왕이 이길 거라고 믿어도 되겠습니까?”

결혼식장은 이미 노을 속에 저물어갔다.

하늘에선 끊임없이 노래가 울렸다. 지상에선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학살했다.

이윽고.

콰즉!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특무대장의 머리가 으깨어졌다.

노신사의 머리를 짓밟은 채, 망치의 사도, 금사매는 우리를 맹렬하게 노려보았다.

-라비엘 이반시아!

"......."

라비엘은 흑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얼핏 보면 웨딩 드레스가 아니라 상복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것이 제국의 예법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가문의 주인이 될 사람은 검은색 옷을. 아닌 사람은 하얀색 옷을 입는다. 그래서 라비엘은 흑색 드레스를 입었으며, 나는 백색 턱시도를 입었다.

“공자여.”

라비엘이 나를 돌아보았다.

“진작에 말해야 했다만.”

“예."

“그 턱시도, 무척 잘 어울린다.”

"......."

나는 미소를 지었다. 성좌의 사도들이 침략했다. 하객들이 모조리 몰살당했다. 그렇지만 라비엘은 이 순간에 내 결혼복을 칭찬했다. 그것은 그녀가 ‘이 결말’을 ‘끝’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을 뜻했다.

그렇다.

우리는 절대 결혼을 포기하지 않는다.

“라비엘도 우주에서 제일 아름답습니다.”

나는 내 신부의 손을 잡았다. 레이스 장갑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쿠웅!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금사매가 달려오고 있으리라. 곧 쇠망치가 우리를 찍어누를 것이다. 나는 지축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저희끼리 약속을 나누었지요. 라비엘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자결하지 않겠다고. 설령 죽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언제나 항상 최선을 다한 끝에만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그렇다.”

“제가 지금 죽는 것을 허락해주세요.”

라비엘이 미소를 지었다.

“허락하마.”

한마디. 나를 무적(無敵)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한마디에 불과했다.

-라비엘 이반시아아아!

금사매가 망치를 휘두르는 순간. 나는 라비엘을 감쌌다.

그녀보다 0.1 초라도 더 빨리 죽기 위해서.

라비엘은 내 뜻을 알아채고 순순히 감싸였다. 우리 두 사람은 손깍지를 꾹 꼈다. 곧, 거대한 망치가 내 몸을 덮쳤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언제나와 같은 죽음.

[당신을 죽인 적의 트라우마를 재현합니다.]

언제나와 같은 광경.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

하지만.

언제나와 같은 회귀는 아니었다.

“공자여.”

눈을 뜨자, 그곳에는 내 손을 잡고 있는 라비엘이 있었다. 우리는 눈을 마주치자마자 깨달았다. 우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죽기 직전에 그러했듯, 살아 돌아와서도 우리는 여전히 손을 끼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더 이상 일인(一人)의 고독한 회귀자가 아니었다.

“작전을 수립하지.”

우리는 두 사람이어서 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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