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115화 (115/400)

115화.  < 검은 결혼식.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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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이시여.

-저를 도와주소서.

어느 한 소녀가 기도를 올렸고, 그것은 이루어졌다.

그랬으므로.

-신이시여.

-저희를 도와주소서.

집사로서, 소꿉친구로서 그 소녀의 곁을 지켜왔던 한 소년이 기도를 올렸고, 그 또한 이루어졌다.

2.

"우선 식장의 배치를 바꾸어야겠다.”

라비엘이 속삭이듯 말했다.

“사도들이 어디서 출현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특무대와 무인들을 그곳에 집중 배치할 수 있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깨달았는데, 신부와 신랑에겐 막대한 권력이 주어진다. 결혼식장에 초대한 하객을 우리 마음대로 배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서로 원수인 귀족들도 같은 테이블에 앉힐 수도 있다. 물론 우리의 평판이 깨지고 욕 좀 먹겠지만, 그게 대수인가? 이계의 사도들을 깨부수는 게 먼저다.

‘축복까지 뺏어올 수 있었다면 일이 훨씬 쉬워졌을 텐데….’

안타깝게도 내 스킬, [나도 너처럼 되고 싶다]는 금사매가 쓰던 축복까진 카피할 수 없었다.

-좀비야. 말했잖느냐. 탑은 이상한 부분에서 끝장나게 냉정하다고.

내가 날로 먹지 못하게 된 게 그리도 기쁜지 배후령은 들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장 너도 여러 개의 [축복]을 받고 있잖아? 아귀랑 싸울 때도 그렇고. 지금도 미신(美神)의 가호니, 사신(能神)의 가호니 뭐니.

‘예예. 그것들부터가 제 스킬과는 별개의 취급을 받고있다 이거죠.’

-그래. 그것들, 정확히 말하면 ‘성좌가 자신이 가진 스킬로 걸어준 버프효과’에 속하는 거거덩? 작동 기제 자체가 그러니 뭐 별 수 있남? 꼬우면 버프 걸어준 성좌 본인한테 쳐들어가 걔한테 뒈지던가.

‘알았다구요. 하여간.’

내가 투덜거렸다. 그렇게 작동 기제니 뭐니 하는 설명을 들으면 무슨 컴퓨터 게임 같았지만, 지금 눈앞에 놓인 것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었다.

이단심문관이 그 현실을 날것으로 들이밀었다.

“정신공격에 능한 사도가 있다면, 하객의 규모를 지금보다 한참 더 줄여야 합니다! 특히나 [자신이 행복했던 기억]을 재현하는 것이 사도의 가호라면 말이죠!”

촛불이 타닥타닥 타오르며 이단심문관의 얼굴을 비추었다.

한밤.

우리 세 사람은 트왈렛룸에 모여서 머리를 맞대었다. 탁자에 결혼식장의 배치도와 하객의 초대목록이 놓였다. 라비엘의 트왈렛룸은,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작전회의실로 변모했다.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은 결코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행복하게 만들어주지요! [불멸하는 행복 전도사]가 흩뿌리는 행복의 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것이다.”

라비엘은 긴 손가락으로 툭, 하객목록을 건드렸다.

“하객의 규모를 줄이면 줄일수록 [영원한 평야의 군마] 측을 상대하기 어려워진다. 이 사도는 물경 1만에 달하는 병력을 소환한다. 규모를 키우면 정신공격에 당해버리고, 규모를 줄이면 물량에 압사당하지.”

“으으음. 옳은 지적입니다. 정말 쉽지 않군요….”

두 사람이 고민에 잠겼다. 촛불이 타들었다.

"그건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내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이 나를 돌아봤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까, 사왕?”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의 방책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말을 이어나갈수록, 라비엘과 이단심문관의 안색이 점점 달라졌다.

“……과연.”

라비엘은 감탄한 낯빛이었다.

“내 부인은 참으로 인맥이 넓군. 부인의 방책대로 작전을 수립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

내가 그녀를 존경하는 데 꾸밈이 없듯, 라비엘도 나를 칭찬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조금 부끄러웠다.

“단, 조건이 있어요.”

“무엇인가?”

“저도 검은색 옷을 입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라비엘.”

"......."

라비엘이 입술을 다물었다.

제국에서 결혼식날 흑색복을 입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가문의 주인이 될 사람뿐. 공작부인인 내가 취해도 될 색깔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는 검은색을 입어야만 했다.

“새삼 공작가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다만….”

“아니. 변명하지 않아도 좋다. 부인이 권력을 탐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전생부터 알고 있어.”

라비엘은 고개를 저었다.

“단지 제국의 관습과 전통이 마음에 걸렸을 따름이다. 그리고, 전통과 관습 따위 때문에 내 부인의 바람을 무시할 수는 없지. 음. 부인이 입을 옷은 내가 준비하마.”

“고마워요.”

우리 세 사람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에 불과했지만, 우리가 고개짓을 한 바로 그 순간에 탁자 위의 촛불이 일렁거렸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3.

저녁이 다가왔다.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식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혼이 공표되고 준비되기까지 한 달 남짓. 심각하게 초고속으로 이뤄진 결혼식이었지만, 이반시아의 혼약에 초대받는 것을 거부할 만큼 간이 튀어나온 귀족은 없었다. 아무리 속으로 라비엘을 씹어대도 겉으론 방긋방긋 웃어야만 했다.

권력이 깡패였다.

“……식장의 배치가 이상하더군요.”

그런 귀족들조차 막상 결혼식장에 들어오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전이 아니라 야외에서 식을 올리는 거야 이해할 수 있다. 귀족과 평민 간의 결합은 축복받기 어려우니까.

그러나.

“무인들을 한곳에 모아둔 이유가 무엇이옵니까?”

신랑용 분장실에 들어온 시종장. 내 양아버지가 물었다.

“게다가 이 배치는…… 실례합니다만, 꼭 전투가 벌어질 것을 상정한것 같군요. 싸움에 쓸모가 있는 사람들을 전방에 집결시켰고, 평범한 귀족들은 후방에 두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나는 시종들한테 둘러싸여 꾸밈을 받으면서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노신사가 허허 웃음을 쓸어내렸다.

“싸움에 귀찮아질 떨거지들은 뒤로 치워두고, 쓸 만한 팻감만 앞에 모아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실례가 안 되겠사옵니까?”

“부군께 다 뜻이 있겠지요.”

“그러는 부인께서도 허리춤에 칼을 차고 계시옵니다.”

“예. 제가 평소에 무예를 연마하고 단련하길 즐깁니다. 이반시아의 달이 될 사람이 유약하게 비추어져서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혹시라도 결혼식장에서 난동을 부릴 패거리가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만전에 대비해야죠.”

“과연. 혹시라도 모를 사태를 대비한다라….”

노신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알겠사옵니다. 그럼 저도 같이 온 동료들에게 [혹시라도] 모를 사태에 대비해두라고 언질해두겠나이다. 원, 참. 이반시아 공작 각하께서 하필이면 저를 부인의 양부로 택하신 게 이런 이유일 줄이야….”

노신사는 내게 인사하고 분장실을 나섰다. 아마 자신의 특무대 수하들에게 전투를 준비하라고 말할 속셈이겠지.

여기까지도 유도한 반응이었다.

‘예상외의 사태가 벌어져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

이미 라비엘이 물밑에서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결혼에 불만을 품은 불순분자들이 테러를 일으키려 한다].

그런 뜬소문이 알음알음 퍼졌다. 누구나 소문을 믿진 않겠지만, 귀족들은 심리적인 짐승이다. 마음 한구석에 경계심을 심어두기만 해도 분명히 효과가 생긴다.

“꺄아아악!”

그 효과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왔군.’

나는 시종들을 떨쳐내고 서둘러 분장실을 뛰쳐나왔다.

그것과 동시에, 이 세계에선 아마도 이단심문관과 내게만 들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폐허를 추수하는 소’의 사도가 현현합니다.]

[‘영원한 평야의 군마’의 사도가 현현합니다.]

[‘불멸하는 행복 전도사’의 사도가 현현합니다.]

어제 봤던 것과 똑같은 노을이 펼쳐졌다. 하늘은 깨졌고, 유리창처럼 깨진 틈새로 삼인방의 사도들이 등장했다.

“세상에….”

“신이시여, 저건 도대체….”

하객들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들이 경악에 잠긴 것은 똑같았다. 하지만 잘 보면 자세가 달라졌다. 무인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들끼리 모여서 칼자루를 잡았고, 싸울 줄 모르는 귀족들은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도록 주변을 힐끔거렸다.

그리고.

“이단심문관 씨!”

무엇보다 나의 행동이 달라졌다.

“예, 사왕!”

분장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이단심문관이 대답했다.

“이제부터 사왕의 등에 업히겠습니다!”

“오케이!”

“신성술식, 송신(送神)!”

그것은 이단심문관이 처음으로 싸이코패스임을 내가 깨달았던 순간. 가을비의 마왕과 수호의 여신이 시험을 내려서 우리가 서로 분열 했을 때. 이단심문관이 사용했던 신성술식이었다.

효과는 순간이동.

-어?

목적지는 붉디 붉은 창공.

-뭐, 뭐야?!

망치의 사도. 금사매 남작 영애의 바로 등 뒤였다.

금사매가 당황하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채앵! 내가 휘두른 성검과 그녀가 치켜올린 망치가 격돌했다. 드높은 상공의 중력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내 몸이 수직낙하하는 것을 느끼며, 외쳤다.

“원 모어 타임!”

“아하핫! 예! 신성술식, 송신!”

이단심문관이 즐겁다는 듯 외쳤다. 다음 순간, 우리는 다시금 금사매의 등 뒤에 나타났다. 나는 텅 비어버린 금사매의 등을 향해 칼을 힘껏 내리찍었다.

-읏!

금사매는 이번에도 간신히 내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두 번의 기습은 치명적이었다. 자세가 흐트러진 것이다.

휘우우우웅!

본래 상공에서 우직하게 강하할 작정이었던 그녀는 자세가 무너져버린 채, 그저 추락하기 시작했다.

-무슨 잔재주를 부린 건지 몰라도! 어차피 소용없어!

금사매가 소리쳤다. 추락하면서 발생한 풍압이 그녀의 금빛 머리카락을 난잡하게 헤집었다.

-내 몸은 불굴이야! 이제는 어떤 것도 나를 상처입히지 못해! 나는, 무적이야! 폐허를 추수하는 소께서 내게 상처 입지 않는 몸을 선물 하셨어!

“상처입고 싶지 않아서 사도한테 영혼을 바친 거냐!”

-네가 무슨 상관이야!

금사매는 악을 썼다.

-모두가 라비엘 이반시아밖에 보지 않아! 짜증나는 년! 가문을 잘 타고난 덕밖에 없는 주제에, 세상의 모든 슬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잘난 척하고! 죽여버리겠어! 그년이 가진 건 전부 모조리 빼앗아주겠어!

추레하고 추잡한 욕망.

하지만 나만큼은 금사매를 비웃지 않았다. 아무리 분칠하고 분장해도, 결국은 인간을 이끄는 것은 적나라한 욕망이다. 나 자신이 그래 봤기에 알 수 있다.

다만.

“너보다 못한 사람이 세상에 즐비함을 알아야 했다! 남작 영애!”

그러기에 외칠 수 있는 말이 있다.

나는 성검의 칼자루를 더 강하게 잡았다.

“사람은 자기가 당해본 고통을 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고통에 질려 비명을 지를 때, 그것이 얼마나 고독한지 짐작하여서 연민하게 된다! 출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고통에 잠겨 비명을 지르는 모두가 나의 타인이다!”

-하, 지랄하고 있네 ! 그딴 삶을 누가 살아!

금사매가 이죽거렸다. 풍압이 몰아쳤다. 그녀는 공중에서 낙하하며 나를 올려봤다.

-어차피 넌 나한테 상처를 입히지도 못해! 나는 불굴(不屈)이고, 불괴(不壞)이며, 불사(不死)하는 몸이야!

그래.

한낱 말로 바뀔 인간이라면 이미 바뀌었으리라. 말이 무력하다는 것. 비명을 돕기 위해선 무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림자의 교리가 칼을 쥔 이유였다.

“반짝아!”

[반짝이가 용사님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우상의 검에서 연민의 검으로 바뀌어라!”

내가 명령한 순간이었다.

[예, 용사님.]

성검에서 흑빛의 탁기가 흘러나왔다. 꿀럭! 성스러웠던 칼날은 순식간에 구정물 같은 흑색에 오염되었다.

상대방의 능력은 강력하면서도 단순했다.

『저 자는 무티아의 축복 중 하나, 무상(無傷)의 인체를 두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파훼법이 있었다.

『제 능력은 고통.』

스승님의 세계에서 내가 얻은 검.

『저에게 베인 자는 고통을 느끼되.』

『결코 몸에 상처가 남지 않으며, 죽음에 이르지도 않으니.』

『상처 없는 고통이야말로 저의 능력입니다.』

수호의 여신이 지닌 두 번째 능력.

바로 연민(懷惑)이었다.

“실비아 에비나일!”

나는 금사매의 본명을 부르짖으며 검을 내리쳤다.

“지금부터 너를 죽이마!”

-하.

금사매가 비웃었다. 그녀는 내 일격을 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어디 찔러볼 테면 찔러보라는 표정이었다. 자기 자신이 받은 가호에 대한 신뢰. 절대적인 자신감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다.

-어디 죽여볼 테면 죽여........

금사매는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대신, 비명이 찢어졌다.

-아아아아아악!!

내 칼끝은 정확히 그녀의 심장을 찔렀다. 어떠한 상처도 생기지 않았다. 칼날은 마치 투명한 듯 금사매의 가슴을 꿰뚫었을 뿐. 핏물이 낭자하지 않았다.

-끄윽, 하, 끅?!

그러나 고통이 존재했다.

-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붉은 하늘에 핏빛의 비명이 찢어졌다. 한 줄기 유성처럼 추락하면서, 금사매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을 뚫고 온 노을에 번졌다.

“이단심문관 씨!”

우리는 하늘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급속도로 지상이 가까워졌다. 나는 금사매의 심장을 한 번 더 찔렀다.

땅바닥에 고꾸라지기 직전.

“지금입니다!”

“신성술식, 송신!”

이단심문관이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그는 여러 번 신성술식을 반복했다. 파앗! 팟! 순간이동이 이루어질 때마다 추락하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마지막 순간, 우리는 지상에 가뿐히 착지했다. 추락에서 탈출한 것이다.

그러나 금사매는 탈출하지 못했다.

쿠우우우웅!

마치 작은 운석이 떨어진 듯 땅이 진동했다.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지난번 회차와 다르게 금사매의 낙하는 추락으로 변했다. 망치질에 휘말려 피해를 입은 사람도 사라졌다.

-힉, 히익, 컥… 이, 아…?

단지 심장이 찔린 고통에 경련하는 사도가 있을 뿐.

나는 칼을 고쳐잡았다.

“아프냐?”

그리고 금사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아프겠지.”

내 발소리를 알아듣고 금사매는 움찔거렸다. 히익, 신음을 내뱉으며 금사매는 비틀비틀 일어섰다.

-도, 도와줘!

금사매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다급하게 구원을 요청했다. 저녁 하늘을 향해서. 다른 성좌의 하수인을 향해서.

-협정이잖아! 계, 계약이잖아! 날 이대로 방관하면 무티아께서도 용납하지 않을 거야! 네 성좌도 탐탁지 않게 여길걸!

-음.

페가수스에 올라탄 장군이 입을 열었다.

-기이하군. 성좌… 는 아니다. 성좌의 파편인가. 무슨 수로 그런 기물을 손에 넣었는지, 도저히 짐작하기 어렵다만.

장군은 느릿하게 깃발을 들어 올렸다.

-토벌해야 할 방해물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노라. 군마를 따르는 전사들이여. 깨어나라.

그리고 소환이 펼쳐졌다.

-그오오오오!

수백, 수천에 이르는 유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빨간 노을에 비친 유령들은 꼭 피칠갑을 한 살인마들 같았다. 결혼식장 이곳저곳에서 경악에 물든 비명이 터졌다.

상대방의 능력은 절대적이었다.

『성역의 전장은 광역기입니다. 일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군요.』

『효과가 굉장한데, 바로 [소환된 자의 능력을 살아생전 전성기에 고정시킨다]입니다!』

『저 유령들 하나하나가 정예병 중 정예병. 마호스를 추종했던 전사들의 영혼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파훼법이 있었다.

“공자여.”

어느덧 내 뒤로 다가온 라비엘이 말했다. 뒤를 돌아보자, 라비엘은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입어라.”

그것은 검은색 망토였다.

라비엘은 목도리를 입히듯 내게 망토를 둘러주었다. 내가 입은 백색의 턱시도는 곧 흑색의 망토에 가려졌다. 검은색 바탕에는, 은실로 이반시아가문의 문장이 수놓여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유령의 군단은 점점 더 다가왔다.

“고, 공작 각하!”

무인들로 이루어진 하객들이 당황하며 라비엘을 쳐다봤다. 지난 회차와 달리 제대로 대오를 갖추었고 방진도 짰지만, 유령들의 행진은 그 자체로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어찌해야 좋습니까? 저희에게 명령을….”

"닥치고 있어라."

"......."

라비엘은 간단히 응수하고 내게 망토 입히는 일을 마무리했다. 유령 군단 따위는 걱정되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음."

그녀는 내 옷매무새를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망토도 잘 어울리는군.”

“제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그래도, 이것만큼은 지켜야 해서요."

“이해한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끝장을 내버려라.”

“예."

나는 미소를 짓고 등을 돌렸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유령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성역의 전장은 광역기입니다.』

『소환된 자의 능력을 살아생전 전성기에 고정시킨다.』

『일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군요.』

나는 흑빛의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백귀환생 (百鬼還生).”

내 발밑에서 그림자가 땅거미처럼 퍼졌다.

[스킬을 발동합니다.]

저녁.

하늘은 노을에 물들어 붉었고, 지평선은 그늘에 뒤덮여 새까맸다.

-뭣……!

페가수스를 이끌고 기세 좋게 달리던 장군이 멈칫했다. 뒤따르는 유령들도 멈추었다. 손쉽게 우리를 학살하리라 자신만만했던 돌격은, 지상을 파묻은 그림자에 가로막힌 것이다.

“저의 주군이시여.”

그림자의 하나가 입을 열었다.

“부르셨나이까.”

아귀(飯鬼)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생김새는 평소와 달랐다. 가녀린 에스델의 형태가 아니었다. 검붉은 진흙물이 아귀의 온몸을 뒤덮었고,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은 내가 일전에 상대했던 [가을비의 마왕] 그 자체였다.

『소환된 자의 능력을 살아생전 전성기에 고정시킨다.』

아귀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무릎을 꿇은 뒤편으로, 묵빛의 도포를 입은 무인들이 서 있었다. 저마다 다른 얼굴, 다른 출신, 다른 삶을 살았으나 그들은 흑색으로 하나였다.

“마천의 소교주를 뵈옵니다!”

내 삶의 증거가 되어주는 이들.

나는 흑색 망토를 입은 채 말했다.

“저를 위해 싸워주십시오.”

그림자의 교리를 추종하는 교인들이 일제히 포권을 취했다.

“소교주의 명을 받듭니다!”

전쟁을 시작할 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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