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 유토피아.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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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애용하는 스킬. 백귀환생의 정확한 능력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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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 환생 (百鬼還生)]
랭크: SSS
효과: 당신이 직접 죽인 자들을 소환합니다. 사자는 생전의 능력을 계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원할 경우, 사자는 생전의 기억과 외형을 계승합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다만 몬스터로 소환됩니다.
※단, 일주일에 1번만 소환할 수 있습니다.
+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내가 원할 경우 사자는 생전의 기억과 외형을 계승한다]라는 부분.
달리 말하면, 내가 원하지 않을 경우엔 다만 기억도 외형도 물려받지 않은 몬스터로 소환된다.
바로 지금처럼.
-그오오오오!
내 그림자가 펼쳐졌다. 장판처럼 깔린 그림자에서 하얀 뼈다귀들이 올라왔다. 오천의 스켈레톤. 오랜만에 보게 됐지만 반가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내 죽음의 증거들이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이놈들이 필요하다.’
[불멸하는 행복 전도사]를 따르는 사도들이 몰려왔다. 노래를 합창하면서.
-라. 루라, 루.
-라라.
그것들이 부르는 선율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행복한 기억에 매몰되게 하는 노래. 정신수양을 쌓은 무인도 감히 저항하기 어려운 공격이다. 마교의 교인들조차 결혼식장에서 픽픽 쓰러졌으니까.
하지만.
-그어오오오오!
스켈레톤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히 포효했다.
불과 오천 마리에 불과한 스켈레톤들이 돌격했다. 그것들은 수십수백만의 군세에 도리어 사납게 달려든 것이다. 스켈레톤들이 유독 용감하기 때문이 아니었고, 정신적 공격에 강력하기 때문도 아니었다.
-아항. 과연.
배후령이 내 옆에서 말했다.
-저것들은 아예 ‘기억’이 없으니까 정신공격이 먹히지도 않는군.
그 말이 맞았다.
[불멸하는 행복 전도사]의 사도들이 부르는 노래는 분명히 막강하다. 그러나 이 막강함은 어디까지나 기억을 가진 인간들에게 먹힐 뿐. 아예 아무런 기억을 갖지 못한 소환수들에겐 평범한 노랫소리와 다를 바 없다.
-라….
-키기긱! 키익!
그리고 평범한 노래엔 아무런 공격력도 없다.
스켈레톤들이 사도들을 살육했다. 단검으로 내리찍었고, 이빨로 물어뜯었으며, 손뼈로 할퀴었다. 그때마다 사도들이 쓸려나갔다. 물리공격이란 측면에서 사도들은 한없이 무능했다.
-큭.
허공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성좌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방에서 선율이 흘러넘쳤으나, 성좌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스몄다. 아마도 머리에 직접 울리는 전음(傳音)이겠지.
-쓸데없이 반항을…! 어차피 물량으로 압도할 뿐이니라!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확실히 그렇지.”
아무리 물리공격력이 없다고 해도 십만은 십만이고 백만은 백만이다. 물량은 그 자체로 가공할 만한 폭력을 발휘한다. 그러기에 [불멸하는 행복 전도사]도 자신만만하게 기습을 걸어온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이미 공략법을 알려줬다.”
-뭐?
내 입술의 움직임을 읽은 것일까. 성좌가 반응했다.
“물량은 부차적인 문제다. 어느 군세나 약점을 가지고 있지. 너희가 고통을 모르고, 마냥 행복을 퍼트리는 존재들이란 게 밝혀진 순간
스켈레톤들은 물량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제압되지는 않았다. 아주 잠깐 동안, 앞으로 적어도 1분에서 2분은 버텨주리라. 그리고 우리한테 필요한 시간은 바로 그 잠깐에 불과했다.
“이미 파훼법은 까발려진 거나 마찬가지야.”
나는 성검을 강하게 쥐었다.
“흑룡주.”
“크게 말하렴! 노래 때문에 잘 안 들려!”
“예. 거울들을 띄워주세요.”
나는 오러로 성량을 강화했다. 흑룡주가 바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내 부탁을 듣고 흑룡주는 이미 여섯 개의 거울을 주위에 퍼트렸다.
“했어. 그런데 거울로 뭘 어쩌려고.”
“저희끼리 [가을비의 마왕]이랑 싸웠을 때 기억하세요? 마왕이 광선을 쏴대면 흑룡주가 거울로 여러 번 비추어서 약화시켰잖아요. 반대로 우리의 공격은 강화시켰고요. 그것과 똑같은 공격을 감행할 겁니다.”
흑룡주는 내 의도를 알아들었다.
“네 오러를 광선처럼 쏘려고? 괜찮긴 한데, 당신, [가을비의 마왕]처럼 무지막지한 출력을 낼 자신 있어? 웬만큼 강력하지 않으면 암만 내 거울로 되비쳐도 무리야.”
“출력은 걱정하지 마세요. 최대한 ‘넓게’ 퍼트리는 것만 신경 써주세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알았어. 해보렴.”
거울들이 허공으로 날아들었다. 동, 서, 남, 북. 한 거울에 빛이 비치면 곧장 다른 거울들로 되비쳐서 능히 광야(廣野)를 감쌀 정도였다.
‘이거로 충분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칼자루에 오러를 흘렸다. 화르륵! 피처럼 붉은 오러가 칼날을 타고 불타올랐다.
‘비록 아귀처럼 힘으로 밀어붙일 수도 없고, 스승님처럼 깨달아서 천하를 가를 수도 없지만.’
이 사도들이 적이라면.
이 동료들이 아군이라면.
나는 가히 무적의 신위를 발휘할 수 있다.
『오직 굶주림으로만 검을 휘두를 수 있다면, 어떻게 됩니까?』
왜냐하면 내가 물려받은 무공이란 그런 것이므로.
『한번도 굶어본 적 없는 자를 일격에 벨 수 있다.』
『이로써 정파의 무림인 가운데 5할은 일초지적으로 전락하노라.』
오직 ‘행복밖에 모르는’ 사도는 결코 나의 대적자가 될 수 없다.
나는 흑룡주가 띄어올린 거울을 향하여, 검을 휘둘렀다.
마천신공魔天神功.
제일식第一式.
아사유검飯死流劍.
군세가 갈라졌다.
붉은 오러를 타고 마천의 절식이 토해졌다. 거울이 신공을 되튕겼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한 번 튕겨질 때마다 붉은 오러는 광야를 두 갈래로 갈랐다.
촤아아아악!
마왕의 일격에 비하여선 더없이 허약했다. 스승님의 일격에 비한다면 한없이 가소로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의 사도들은 붉은 오러에 단순히 ‘스치기만 해도’ 소멸해버렸다.
—뭣...?!
움찔. 성좌가 경악하며 평야를 내려보았다.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내 일격에 수천, 어쩌면 수만의 사도들이 말그대로 증발한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야엔 사도들이 득실 거렸으나, 붉은 오러가 긁고 지나간 자리는 텅 비어버렸다.
“흑룡주! 계속 갑니다!”
당연하지만 나는 한 번의 공격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거울들 위치도 계속 바꿔주십시오!”
“세상에…. 그렇구나. 저 성좌의 하수인들이랑 당신의 무공은, 서로 완전히 상극이야!”
흑룡주는 놀라면서도 능숙하게 거울들의 위치를 재조정했다. 오러의 출력과 상관없이, 내 공격은 그저 닿기만 해도 적군을 소멸시킴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다양한 경로로 공격을 반사시키는 게 중요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계속 공격해! 사왕! 거울은 내가 알아서 컨트롤할게!”
공중에서 거울들이 요란하게 날아다녔다. 흑룡주는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을 내리면,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촤아아아악!
나는 흑룡주의 말을 믿고 다시금 일격을 날렸다. 그저 익숙한 무공을 펼칠 뿐인데도 수만의 적군이 쓸려나갔다. 랭킹 2위와 랭킹 3위. 나와 흑룡주의 합공은, 성좌의 군세를 일방적으로 유린했다.
“아하핫! 굉장하군요! 대단한 장관입니다!”
이단심문관은 신성술식을 펼쳐서 우리를 적들의 정신공격에서 보호했다.
“되, 되도록 빨리 끝내주게! 본인의 비상 저금통이 벌써 2개나 깨졌네!”
백작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어 이단심문관을 백업했다.
“독사! 그 쪽으로 적들이 빠졌다! 처리해라!”
성기사는 전쟁터를 오시하며 실시간으로 지시를 내렸다.
“오케이! 젠장, 멋진 장면은 마교한테 다 뺏기는군!”
미처 스켈레톤이 막아세우지 못해 빠져나온 적군의 잔챙이들은, 독사가 처리했다.
‘할 수 있다.’
고작 여섯 명.
‘우리가 힘을 합치면 무적이다!’
그러나 우리 여섯 명은 하나의 세계에 버금가는 군세를 압도했다.
‘봐라.’
탑에서 살아가는 거주민들은 지금 광장에 모여서 우리의 무위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 장면을 중계하거나 녹화하여, 바깥세상에도 퍼트릴 것이다.
단 여섯 명이서 백만의 사도를 물리치는 광경을.
‘봐라!’
열광해라.
이 탑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사실을 목도해라.
세상이 우리를 짓누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뒤덮는 모습을 똑똑히 보아라.
그리고 희망을 품어라.
-이,
성좌가 얼굴을 구겼다.
-이 간악무도한 외도(外道)의 무리가! 너희에게 무슨 권리가 있어 내가 이룩한 유토피아를 침범하느냐! 이 세계에는 불행이 없다! 불행한 기억조차 없다!
성좌가 손을 휘저었다. 하늘에 홀로그램처럼 어느 풍경이 펼쳐졌다. 그곳엔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도들의 모습이 비치었다.
-라라.
-루.
사도들은 집에서 살지 않았다. 도시를 이룰 필요도 없었다. 그들에겐 굶주림이란 것 자체가 부재했다.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자원을 캐낼 필요도 없었다. 사도들은 어린아이의 형상을 취한 채,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게 노래를 불렀다.
-꺄아아아아악!
다만.
이 세계의 심장부에는 무고한 어린아이가 검에 박혀 있었다.
-아아악! 으, 아악! 아아아악!!
무고한 어린아이의 비명이 어떤 원리로 [동력]이 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아이의 가슴에 박힌 검이 모종의 법칙을 만들고 있겠지.
-내가 이룩한 세계는 너희의 하잘것없는 쓰레기장보다 훨씬 더 온건하다!
아이의 비명을 뒤로 한 채 성좌가 외쳤다.
-감히 내 앞에서 위선을 떨 생각 따윈 하지 마라, 침략자들이여! 나는 레판타 아이김을 따라 수많은 세계를 보았다. 어느 세계에서든 비명은 끊이지 않았다.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 수억!
‘희생’이라는 이름을 가진 검이 울부짖었다.
-반면에 나의 세계는 한 명이다. 오직 한 명! 단 한 명을 희생양으로 삼아, 내 사도들은 고통을 모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하나의 악을 저지른다면 너희는 수억의 악을 외면하고 있니라. 그런 쓰레기들이, 무슨 낯짝으로 내 세계를 능멸하는가!
이해한다.
저 성좌는 틀림없이 고심과 고민을 거듭하여 저런 장치를 발명했다. 그것도 선의로 그러했을 것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면, 이곳이야말로 [불멸하는 행복 전도사]가 선택한 지옥이다.
‘이 세계는 극단적인 예시일 뿐.’
내가, 우리가 탑을 경영하면서 마주치게 될 난관들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식량이 부족해질 때. 자원이 바닥났을 때. 우리는 탑을 책임진 사람들로서 누군가를 희생시키게 될 것이다.
-하!
내가 침묵한 걸 보고 성좌는 비웃었다.
-그래도 헛소리를 지껄이지 않을 정도의 양심은 가지고 있군. 대답할 수 없다면 꺼져라! 나는 너 따위를 새로운 주인으로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아니. 대답은 가지고 있어.”
나는 한 걸음 나아갔다.
-대답? 하. 네까짓 게 무슨 대답을 가졌느냐?
『그래도 희생은 옳지 않다』라고 정론을 읊기란 쉽다.
하지만 정론은 입으로 내뱉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살아내기 위해 있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질 수 있을 때. 실현할 능력이 있을 때만 유효하다.
나는 이 점을 잊지 않았다.
“나는 너희를 모두 죽이겠다.”
-뭐?
“너희를 모두 죽여서, 백귀(百鬼)로 삼겠다.”
-........
성좌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지금 무슨 얘기를…….
“나의 검에 죽은 것들은 모두 백귀로 수집된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생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채 소환될 수 있지. 너희를 모조리 죽여서. 이 세계에서 다시 살아가도록 소환해주마.”
나는 성검을 들었다.
“영원히 행복한 채로 살고 싶겠지. 살게 해주마. 고통을 겪지 않고, 기억하지도 않고, 그저 지금처럼 노래할 뿐인 삶을 바랄 거다. 이루어주마.”
-.......
“백귀는 살기 위해 뭔가를 먹을 필요도 없어. 너희가 원하는 세계를 주겠다.”
간단하다.
백만에 이르는 사도들을 모두 죽인다.
죽인 다음, 이 세계에 다시 소환한다.
살아있던 생전의 기억을 다시 쥐여주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이다.
“너에게만 말하는 얘기가 아니야.”
지금 우리 일행을 지켜보고 있을 거주민들.
지켜보게 될 무수한 인간들을 향해서 나는 선언했다.
“개선할 여지가 없는 악인들이 있지. 돌이킬 수 없는 죄인들이 있다. 다시 살고 싶지만 살지 못하는 망령들도 있어. 이제부터 나는 그들을 내 손으로 집행할 것이다.”
-집행......?
“죽이고 나의 백귀들로 되살리마. 그들은 내 그늘에 유배되어 영원히 업을 짊어지게 될 거다.”
뚝.
지평선에 울려 퍼지던 노래가 멈추었다.
하늘을 울리고 땅을 울리던 노래는, 그러기에 멈추었을 때 세상을 적막케 했다.
성좌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을… 모든 악인과 망령이라니. 일개 필멸자가 그럴 수는….
“전도사. 네가 여기에 이룩했다며 자랑하는 유토피아는, 나도 똑같이 만들 수 있어. 심지어 내 세계에는 무고한 아이의 비명 따윈 필요하지도 않아.”
-.......
이번 묵시록에 돌입하기 전에 흑룡주는 물었다.
내게 왕이 될 각오가 있느냐고.
“단순한 이야기야.”
그렇다.
모든 세계가 지옥이라면, 내가 조금 더 큰 지옥이 되어주면 된다.
“너의 지옥보다 내 지옥이 더 옳다."
이것이 내가 택한 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