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132화 (132/400)

132화.  < 황무지.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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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기 봐! 저기에….”

“어, 어떡해? 선생님 부를까?”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들어 옥상을 가리켰다.

“어쩌려는 거야, 쟤?”

“몰라. 떨어지려나 봐….”

옥상에는 한 명의 학생이 서 있었다.

“어떡해?”

“미친! 누가 선생님 좀 불러!”

“저기라고! 저기!”

축구공을 차던 학생들. 산책하는 학생들. 조금 늦게 하교하는 학생들까지. 여기저기 교정에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본능적인 처신이었다. 혼자선 감당치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벌어질 것임을, 학생들은 느꼈다.

"이런......!"

대책 없이 모여드는 대신에 재빨리 행동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안 좋군. 공자! 119에 전화를 걸어라. 학교 이름을 대고, 옥상에서 떨어지려는 학생이 있다고 말해라. 어서!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 저 아이를 설득해보겠다!”

라비엘은 선생님을 부르러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자기 대신에 책임을 져줄 인간을 찾는 대신, 한 시라도 급하게 상황에 대처했다. 라비엘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학교 본관으로 뛰어갔다.

“아….”

라비엘의 뒷모습을 보자 얼어붙었던 내 몸도 풀렸다. 그렇다. 어찌 된 일인지 몰라도, 머뭇거릴 틈 따윈 없다. 나는 황급히 핸드폰 다이얼을 놀렀다. 1번. 1번…….

퍼석!

교정에 무언가가 떨어진 것은 9번을 채 누르기 직전. 처음에 나는 학생이 투신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인간의 몸이 떨어졌다기엔 너무도 소리가 사소했다. 그건, 옥상의 학생이 핸드폰을 던져 떨어트린 소리였다.

"......."

나는 9번 다이얼을 누른 채 옥상을 올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교실에서 본 얼굴이었다. 맨 뒷줄 창가 자리에 앉아서 홀로 묵묵히 예습한 아이. 하지만 나는 이 순간에야 처음으로 그 아이의 얼굴을 똑똑히 바라본 것 같았다.

아이의 눈동자는 흑색이었다.

아이의 뺨은 백색이었다.

"------."

아이가 입꼬리를 들어 비웃었다.

천천히 아이의 입술이 움직였다. 묵음(默音). 멀어서 가려진 목소리는, 입술의 움직임으로 내 눈에 읽혔다. 알아보지 못하려 해도 알아볼 수밖에 없는 두 음절의 단말마였다.

[죽어.]

그리고.

작은 갈퀴 같은 손가락이 옥상 펜스를 놓아서. 놓아버려서.

바람이.

사람이,

"■■■■■■■■!!"

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세상이 소음으로 자욱해졌다. “미■!” 누군가가 발작적으로 신음했다. “■■아아아아■■■악!” 누군가가 누군가의 옷소매를 쥐어뜯으며 떨었다.

“선생■! 선■님!” ”씨■,” ”■친!”

순식간에.

학교는 더 이상 학교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깨졌다. 운동장은 삭막한 모래사막이었다. 본관의 건물은 흉물스러운 감옥에 불과했다.

교실은 짐승들을 도축하는 도살장이었거나, 짐승들을 기르는 사육장이었다. 짐승들은 언제나 먹이에 굶주려 있었다. 도살되고 사육되는 세상에서 사람이란 시체가 될 무엇이었다.

붉게.

사람이 죽은 것이다.

"......."

망연히 교정을 바라보았다. 벽돌은 붉음을 머금고 있었다. 붉음이 더 퍼졌다. 그 붉은색에 발끝이 묻을까 두려워, 학생들은 뒷걸음질쳤다. 몇몇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찰칵! 인공의 소리가 울렸다.

“아."

그 소리가 내 몸을 움직였다.

“찍지 마.”

나는 학생들에게 다가섰다.

“뭐 하자는 거냐. 지금. 찍지 마! 하지 말라고!”

학생들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학생들은 점점 더 모여들고 있었다. 사막에 축구공을 내버려두고, 산책길에 꽃을 버려두고, 하굣길에서 등을 돌려, 사람이 점점 더 모였다.

“찍지 마!”

한 쪽을 막아 세우면 반대쪽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 말라니까! 씨발, 하지 마!”

이름 모를 감정이 식도를 타고 역류했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분노였다. 경멸이었다. 혐오였다. 학교 본관 건물에서, 1층에서, 2층에서, 3층에서, 4층에서, 5층에서, 학생들이 고개를 내밀어 이곳을 쳐다보았다. 무수한 얼굴들이. 무수한 눈동자로.

사람을 구경했다.

“하지, 마!”

노을이 붉었다.

“빌어먹을,”

왜.

“그러지 좀, 마라고!”

수백의 얼굴이 무표정했다. 1층에서 흑룡주가 이곳을 쳐다보았다. 3층에서 이단심문관이 얼굴을 내밀었다. 교정에서 성기사와 백작이 바라보았다. 불지옥 저택의 아이들이 나를 둘러쌌다. 교인들이 운동장에 섰다. 찰칵! 찰칵. 그들이 손가락을 움직여서 사진을 찍었다.

+

나는 네가 살인한 거야.

잊지 마.

네가 나를 죽였어.

+

나는 옥상을 올려보았다.

"......."

라비엘이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공자여.”

붉어진 하늘에 라비엘의 목소리가 흘렀다.

“그대가 죽인 것 아니던가.”

세상이 허물어졌다.

하늘이 빨갛게 물들었다.

빨간 물감이 추락하여 지상을 적셨다.

사람들이 빨개졌고, 나의 시야도 붉어졌다.

“---아시다시피, 우리 학교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강당에서 교장 선생이 말했다. 교장은 검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 신서중고 학생들을 믿습니다….”

붉음.

“걔, 그딴 문자를 보냈더라.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백작과 성기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다. 돌이켜보면 원래부터 좀 이상하던 녀석이었다.”

붉음.

“그거 갖고 뭐라고 난리치는 놈들 많다던데 신경쓰지 마라.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할 것들이 손가락만 살아 갖고 난리질이야. 에잉. 그런 놈들은 손가락을 다 잘라버려야 하는데.”

집에서 아버지가 위스키를 마셨다. 배후령의 얼굴과 웃음소리였다.

“그래 임마. 살다보면 때리기도 하고 그런 거지. 뭐 고작 그따위 일로 죽고 앉았대? 그거 완전 관종 아니냐? 야! 사천왕 불러! 같이 게임이나 하러 가자!”

형이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염제가 쾌활하게 말했다.

붉음.

“그래, 선생님도 많이 슬프다. 슬프지만.”

단상에서 담임 선생이 말했다. 담임은 독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너희에게 아주 중요한 시기야. 3학년이 되면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실질적으로 2학년에서 승부가 갈려. 너희한테 무엇이 중요한지 잘 생각해서 마음을 추스려라.”

학생들이 입을 벌렸다. 모두가 일제히 대답했다.

“예, 선생님.”

반장만이 말없이 고개를 수그렸다.

반장은 흑룡주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책상에 흰 꽃이 올려졌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이 안 되어서 책상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누가 치웠는지 알 수 없었다.

누가 치웠느냐고 묻는 학생도 없었다.

맨 뒷줄 창가 자리에 새로운 책상은 들어서지 않았다.

"......."

바람이 불었다.

커튼이 날렸다.

바람이 부는 곳에 사람은 없었다.

[트라우마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페널티 심도는 상(上).]

[축생도(畜生道)입니다.]

딩,

동,

댕,

동.

을씨년스러운 선율이 울렸다.

그건 소리의 탈을 쓴 소음이었다. 자연음을 흉내 낸 전자음이었다. 자기가 흉내를 낸 모조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선율은 더욱더 기를 쓰고 발랄해졌다.

-교내에 남은 학생 여러분에게 방송부에서 알려드립니다.

모조품.

-야간자율학습에 임할 학생을 제외하고 다른 분들은 이제 하교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방송부에서 알려드립니다.

실패해버린 사물.

-최근 들어 하교 시간이 지났는데도 교내에 남은 학생이 목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내에 남은 학생 여러분 중, 야간자율학습을 신청하지 않은 분께서는 하교해주시길 바랍니다.

속이 울렁거리는 걸 느끼며.

나는 눈을 떴다.

“선배님, 일어나십시오! 하교하랍니다!”

"......."

“어라. 벌써 깨어나셨군요.”

이단심문관이 방실거렸다.

“하지만 책상에 엎드려서 주무시면 몸에 안 좋습니다! 허리에도 안 좋고, 무엇보다 숙면을 취할 수가 없습니다. 곧 중간고사 기간이니...."

나는 이단심문관이 말을 끝마치는 걸 기다리지 않았다. 일어서서, 도서관을 달려나갔다. 등 뒤로 이단심문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앗, 선배님! 복도에서 뛰면 안 됩니다!”

나는 복도를 달리며 이빨을 깨물었다.

‘알겠다.’

의문이 풀렸다.

이건 틀림없이 살천성, 레판타 아이김의 트라우마가 맞았다.

단지 레판타 아이김의 악몽에 [내 기억]이 [스킨]처럼 덧씌워졌을 뿐이다.

동일한 상황.

동일한 배역.

다만, 레판타 아이김이 기억하는 인물들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봐온 인물들로 외양이 꾸며졌다. 그래서 흑룡주와 성기사, 백작은 학생이 되었다. 스승님과 배후령은 부모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는 가해자다.’

입안에서 비린내가 풍겼다.

‘이 사태의 주범이 나한테 주어진 배역이야.’

지금까지 많은 트라우마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관찰자]였다. 언제나 항상 1인칭 관찰자의 느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랭크가 올라가면서 페널티가 가중된 탓일까.

이곳에서 나는 당사자였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 전원이 그러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젠장!’

층계에 도착했다.

[태도는 바르게♪]

[생활은 즐겁게♪]

[마음은 행복하게♪]

층계에는 웃기지도 않은 표어가 걸려 있었다. 장난치지 마라. 정말, 웃기지 마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저주를 읊으며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려봤다.

그곳에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의 기억에 없는 사람]이 서 있었다.

‘살천성.’

몸집이 자그마한 아이였다. 열리지 않은 철문을 붙잡고, 그 학생은 이리저리 잡아당겼다. 철컥. 철커덩! 쇠사슬은 단단하여 도저히 풀기 어려워 보였다.

“하아…. 열쇠……."

학생이 한숨을 쉬면서 등을 돌렸다. 그 순간 우리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 학생은 아주 잠깐 숨을 멈추었지만, 곧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왜 진즉에 깨닫지 못한 거냐.’

저 아이가 동급생이라는 걸 알았을 때 이미 뭔가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세상에 어떤 동급생이 같은 반 아이한테 [고개를 숙여] 인사하냐는 말이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다.

"......."

학생은 내 눈치를 살핀 뒤 조용히 걸어갔다. 내 곁을 지나치려 할 때, 나는 그 아이를 불렀다.

“잠깐만요.”

“네?”

학생이 당연하다는 듯 존댓말을 썼다. 아이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으며, 몸에 밴 각도로 조심스럽게 올려보았다.

목 안이 울렁였다.

"......핸드폰 좀 잠깐 줘 보십시오.”

"......."

“부탁입니다.”

학생은 순순히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으나, 그 침묵은 핸드폰을 달라는 내 요구에 대한 저항이 아니었다. 단순히 내가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의아함이었다.

비밀번호도 안 걸린 핸드폰을 열었다.

+

미확인된 메세지 : 47개

+

나는 문자를 하나씩 열었다.

보았다.

[나 우리학교 후배들이 너무 불쌍해 TTTT ■■ 널 선배라고 불러야되잖아 걔네 기분 생각해봤어? 양심 안 찔려?]

[야, 씹냐?]

[충격! 교복을 안 빨아 입는 학생이 있다!?]

[■■... 진짜 더러워. 수학샘보다 더 더러워 어떻게 된 게 ㅋㅋㅋ]

[어제 복도에서 한 번 인사해주니까 좋아 죽더라 아주ㅋㅋㅋ 야! 그거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한 거야! 제발 착각하지마 ㅠㅠ]

[■■은 쓰레기장에서 산다. 실내화도 교복도 전부 재활용해서 쓴다. 유일하게 재활용 안 되는 쓰레기가 있는데 그게 바로 ■■이다.]

[너 냄새 진짜 심해. 진심 구려.]

[수업 끝나면 보자.]

탁.

핸드폰을 덮었다.

더 읽을 수 없었다.

"......."

나는 눈을 감고 숨을 쉬었다. 숨을 쉬어서 간신히 진정했다. 이 트라우마에서 나한테는 단검의 칼자루가 없었다. 라비엘이 선물해준 손수건도 없었다. 감정을 가라앉히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왜…”

나는 [살천성의 과거]를 쳐다보았다.

“왜 핸드폰을 들고 학교에 옵니까? 그냥 들고 오지 마세요.”

그러자 학생이 대답했다.

“……안 가져오면 죽인다고 말하셨잖아요.”

목구멍으로 차게 식은 침이 흘러내렸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럼, 아예, 버려요. 버려버리십시오. 잃어버렸다고 하면 어쩔 수 없으니까.”

“이거.”

학생이.

차후 살천성이라 불리게 될 인물이 나직이 입술을 열었다.

“공자님이 주신 핸드폰이에요. 옛날에 쓰던 거….”

"......."

“저희 집에 돈이 없어서… 대신 요금도 내주고 계시는걸요. 공자님이 나오라고 말하면 바로 나오라고. 그런 용도로. 잃어버리면 또 죽여버리겠다고 말하셨는데….”

흉물이 되어버린 건물.

우정을 흉내내는 우정, 사랑을 따라하는 사랑, 의미를 모방한 무의미, 특별함을 가장하고 비범함을 연출하는 이 가면의 사육장에서, 오직 악의(惡意)만.

“정말 버려도 되나요?”

오직 악의만이 가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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