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자살헌터-136화 (136/400)

136화.  < 살아남는 것.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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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흑룡주가 나를 노려보았다.

“신서중고 2대 왕따니 뭐니, 네가 낄낄거리면서 이름 붙였잖아. 김공자. 덕분에 우리 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따위는….”

흑룡주의 눈빛에는 오래 묵은 경멸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경멸이 오래 이어지진 않았다. 흑룡주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자신의 감정에 지친 안색. 한숨을 표정으로 조각하면 저런 무표정이 될까 싶었다.

“……됐어. 당신한테 이런 얘기도 하기 싫어. 말을 해도 기분이 나빠질 뿐이니까. 젠장! 고등학교 들어와서도 왕따 따위를 볼 줄 알았으면 차라리 다른 학교로 가는 거였는데.”

“너는 반장이야. 학급에서 벌어지는 일에 책임이 있어.”

“어쩌라고? 그래서 내 책임이라는 거야?”

흑룡주가 빈정거렸다.

“굉장하네. 당신, 요즘 ■■이랑 붙어 다니면서 일일이 학생들 만나고 다닌다는 게 진짜였구나. [김공자가 회개했다더라. 김공자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더라.] 선생님들도 교무실에서 칭찬하던걸. 잘 됐네.”

흑룡주의 입꼬리에 싸늘한 비웃음이 걸렸다.

“당신 같은 사람들은 편해서 좋겠어. 다른 사람한테 상처를 주고 나서 사과하면 그만이지? 이렇게 열심히 사과했으니까 용서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면 끝나잖아. 잘못한 것은 전부 실수였다. 상처를 준 건 죄다 장난이었다.”

"......."

“그것도 두세 번이어야지. 너희는 무슨 인생이 다 실수고 장난이니? 한시라도 실수하지 않고 장난을 치지 않으면 뒈지는 병에라도 걸렸어? 세상이 네 실수를 받아주는 쓰레기장이고 사람이 네 장난을 받아주는 쓰레기통으로 보여? 전염병자 자식들. 쓰레기 같은….”

뚝. 흑룡주가 입술을 다물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감정이 더 격렬해지기 직전에 멈춘 것이다. 흑룡주가 초조한 듯 실내화를 내려봤다. 옥상에 올라오고 나서, 흑룡주는 단 한 번도 살천성을 쳐다보지 않았다.

“반장."

“……나한테 이러지 마.”

흑룡주가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 ■■이랑 같이 데려오지 마라고. 어차피 사과하라느니,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라느니 그런 말을 하려는 거잖아. 난 잘못하지 않았어. 잘못은 네가 했지….”

“그렇게 생각 안 하잖아.”

"......."

살천성이 지난 트라우마에서 자살했을 때, 학교는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교실은 [사건]을 잊어버리고 덮어씌우려고 갖가지 술수를 동원했다.

『걔, 그딴 문자를 보냈더라.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다. 돌이켜보면 원래부터 좀 이상하던 녀석이었다.』

살천성이 미친 것이다. 이상한 인간이다.

반면에 우리는 ‘정상’이다.

어쩌면 장난 삼아서 살천성을 괴롭히는 문자를 한 통쯤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장난이었다. 잠깐의 일탈에 불과했다. 누구나 장난을 치고 누구나 일탈을 하므로, 우리는 여전히 정상이다.

어쩌면 살천성을 비웃은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본심이 아니었다. 심각하게 생각해서 저지른 일이 아니라,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키득거린 것에 불과했다. 우리는 잘못하지 않았다.

『너희한테 무엇이 중요한지 잘 생각해서 마음을 추스려라.』

『예, 선생님.』

그렇게 교실은 한 명의 동급생을 떠밀었다.

자살조차도, 죽음조차도 저 사람들의 죄책감을 일깨우진 못했다.

+

나는 네가 살인한 거야.

잊지 마.

네가 나를 죽였어.

+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흑룡주는 ‘예, 선생님’이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나한테 이러지 마……."

수많은 가해자들이 떳떳하게 미쳐 있을 때 오직 한 명의 방관자만이 침묵했다.

“난 최선을 다했어. 1학년 때는, 나도 막아보려고 했어. 젠장.”

그리고 사람이 침묵하게 된 이유에는 수백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너희들 때문에 별에 별 걸 다 알아봤다고…. 그거 알아? 이 학교는 학교법인 세륜학원 소속이야. 이사진은 10명이고. 그중에 김공자, 네 여자친구 부모가 있어. 몰랐지? 이딴 것들도 모르고 그냥 당연하게 ■■을 따시켰지? 이사진엔 삼원노회의 세륜교회 당회장도 있어. 우리 가족이 다니는 교회라고! 주말마다 본단 말이야!”

흑룡주가 이마를 감쌌다.

“왜 너희가 싸지른 똥 때문에 내가 이딴 것까지 알아야 하는데! 좀, 그냥. 제발 적당히 해. 나도 이제 2학년이야…. 하루에 네 시간, 다섯 시간 자가면서 공부하고 있어. 바빠. 난 ■■이랑 똑같이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고…. 너희는 그냥 깔깔 웃으며 학교 생활을 즐길지 모르겠는데!”

악의는 쉽고.

“아무 생각 없이 남 괴롭히는지 모르겠는데!”

선의는 언제나 불가능하다.

“이쪽은 필사적이야! 이 학교엔 빌어먹을 장학생선발위원회가 있고, 우리 위대하신 담임 선생님께서 2학년 학년부장으로 거기 계셔! 모르지? 알 필요도 없지? 내가, 젠장, 담탱이한테 ■■ 얘기 꺼냈다가… 제발. 그만 좀 해. 난 이런 거 알고 싶지 않았어! 다 역겨워. 너희도 담임도 학교도, 그냥 전부…. 내 살 길 바쁘니까, 좀, 너희끼리 알아서 하라고!”

“미안해.”

악의를 저지르는 데엔 한 가지 이유로도 충분하다.

선의를 행하는 데에는 수백 가지의 이유를 짊어져야 한다.

“미안? 하, 얼마나 미안한데? 아니. 시발. 됐어. 나한테 사과하지 마. 사과하지 마, 김공자. 난 사과받을 필요도 없고, 사과받을 자격도 없어. 그리고 넌 사과할 필요가 없고 사과할 자격이 없지. 쓰레기니까. 그냥 쓰레기인 채로 죽어버려. 죽을 때까지 쓰레기인 채로 살아. 제발 부탁인데 이 학교 졸업하고 나선 서로 보지 말자.”

“미안하다.”

“사과하지 마라고! 쓰레기 새끼야!”

내 정강이를 흑룡주가 걷어찼다. 저릿. 뼈가 울렸다. 흑룡주는 씩씩거리며 내 뺨을 때렸다.

저주와 같은 폭력이 이어졌다.

나는 흑룡주에게 몸을 내어준 채 말했다.

“이 아이, 자살하려고 했어.”

흑룡주의 손이 멈추었다.

“한 달 전에 떨어졌을 거야. 여기서."

옥상에 정적이 가라앉았다.

"......."

흑룡주가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처음으로 살천성을 봤다.

흑룡주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다.

“정말…이야?”

어색한 것처럼.

자신이 눈앞의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를 버거워하듯.

“죽으려고 했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살천성이 무표정하게 흑룡주와 마주보았다.

“맞아."

"......."

“김공자 쟤가 어떻게 알았는진 모르겠지만. 맞아. 죽으려고.”

"......."

“반장은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구나. 전혀 몰랐어.”

옥상은 조용해졌다.

서서히.

흑룡주가 양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

“미안하지 않아……."

어린 손가락 사이로 흐느낌이 새었다.

“난 너한테 미안하지 않아, 그냥. 나는 1학년 때 학교폭력 자료를 모으다가 우연히 이 학교 이사진을 알게 됐고, 터트려봤자 아무것도 안 바뀌겠구나 싶어서 포기했어. 2학년엔 담임한테 얘기 한 번 꺼내보고 관뒀어. 나는 그냥, 그런 인간이야. 나를 그런 인간으로 기억해줘.”

"......."

“하지만, 죽지 마. 죽지는 마…. 왜 죽니. 죽으면 안 되잖아. 쓰레기들 때문에 죽으면 안되잖아. 그러면 안 돼. ■■. 살아야지. 응? 살아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아무튼 돈을 벌어서, 이 개같은 도시에서 나가면……."

“나도 생각해봤는데.”

살천성이 중얼거렸다.

“그러면 이 새끼들이 잊을 거 같아서.”

"......."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 잘 살 거 같아. 아니, 기억도 못할 거 같아. 그게 제일 싫어. 이 새끼들을 좆되게 하고 싶었어. 어차피 잊겠지만….”

살천성이 흑룡주를 내려보았다.

“미안해. 반장.”

"......."

“너 같은 사람을 상처 입히려고 한 건 아니야.”

흑룡주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얼굴을 감싼 채, 숨을 죽였다. 이를 악 물고 소리를 참았다. 참은 소리가 몸을 감전시켜서 흑룡주는 어깨가 떨었다.

살천성이 입을 열었다.

“있었구나.”

무릎을 굽혔다.

“한 명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낮아졌다.

흑룡주와 똑같은 높이가 될 때까지.

“다행이다. 한 달 전에, 그때 안 죽어서.”

살천성은 천천히 흑룡주의 어깨를 감쌌다. 흑룡주가 움찔했다. 살천성은 조금 더 가까이 흑룡주에게 머리를 기대었다.

“단 한 명이라도 내가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

“다행이야.”

흑룡주의 숨소리가 무너졌다. 흘러내렸다. 흑룡주는 살천성을 안지 못했다. 단지 몸을 굽힌 채, 심장에서 쥐어짜지는 울음을 감내했다. 그런 동급생을 살천성은 한동안 껴안아주었다.

“미안해……."

흑룡주의 몸이 허물어졌다.

“미안해, ■■. 미안해. 미안. 미안해요.”

하지만 허물이 녹아내렸을 뿐.

그림자로. 망령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흑룡주의 얼굴이 벗겨진 사람이, 누군가가, 절규했다.

“죽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 살아야 해.”

그것은 내가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어디선가 들은 목소리였다.

“살 수 있어. 우리는 살 수 있어. 조금 더 잘 살 수 있어. 살아야 돼. ■■. 조금 더 노력할 테니까,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할 테니까. 같이...."

[트라우마의 구현도가 떨어집니다.]

옥상의 철문이 공허에 파먹혔다.

새카만 안개가 촉수처럼 철문의 틈새로 기어들었다. 소리 없이. 검은 촉수는 철문을 옭아맸다.

집어삼킨 것이다.

5층까지 침몰시킨 공허는 학교 벽을 타고 올라와서, 옥상의 울타리로 흘러들었다.

“아무도 너를 신경 쓰지 않아.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그런 짐승들 때문에 죽으면 안 돼. 살아야 해. 짐승 같은 새끼들 때문에 네 인생이 망가져선 안 돼.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공부해서, 응. 대학교에 들어가서… 다른 도시로 가서.”

나는 흑룡주의 피륙이 벗겨진 그 사람을 보았다.

“불행한 아이들을 위해 살자….”

그 순간.

“우리보다 불행한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어주자.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도와줄게…. 나, 많이 조사했어. 공부했고. 바보 같은 망상이 아니야. 정말로 하려면 할 수 있어---."

나는 등골이 저미었다.

“---먼저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가자. 자격증이 필요해.”

전류가 머리를 뒤흔들었다.

“여기서 살려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돼. ■■. 다른 사람들이 깔보지 못하게, 방해하지 못하게, 갑옷을 둘러싸야 돼. 공부하자. 내가 도와줄게…. 도와줄 수 있어.”

아아.

“어디 대학교를 나왔고, 무슨 자격증을 가졌고…. 당장은 쓸모없어 보일지 몰라. 하지만, 그걸 가지고 있으면, 그게 없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걸 할 수 있어.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 힘이야. 먼저 강해져야 하는 거야.”

아.

“같이 아이들을 도와주자. 나 혼자서는… 혼자서는 힘들 거야. 응. 견디지 못할지도 몰라. 아이들한테 상처를 줘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두 명이서. 세 명이서. 네 명만 모이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야.”

원장님.

“열심히….”

원장 선생님.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야. 아닐 거야. ■■. 우리가 세상을 만들면 돼. 작게…. 작게 시작해서. 두 명만 있어도 세상을 만들 수 있어. 죽지 말아줘…. 같이. 둘이서 같이, 다른 세상을 살자….”

어린 원장 선생님의 얼굴이.

『그러지 마렴.』

『너희는 잘못하지 않았어.』

오래 지친 선생님의 목소리와 겹쳤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원장님은 우리를 과하게 사랑하시는 걸 염려하고 경계하는 것 같았고.

『나같은 녀석으로 인해 비틀어지지 마.』

언제나 두려워하시는 것 같았다.

"......."

살천성이 어린 원장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돈 못 벌 거 같아.”

“돈은 못 벌어……."

“힘들 거 같은데.”

“엄청 힘들대……."

“하지만 지금보다는 괜찮을 거 같아.”

살천성은 미소를 지었다.

“나 1학년 2학기 때부터 공부를 손에서 놨어. 조금 힘들 거야."

“괜찮아. 안 늦었어. 아직은, 아무것도 안 늦었어.”

“응. 반장. 이 세상에서……."

[트라우마의 구현도가 떨어집니다.]

“같이 살아남자.”

[자료를 복구할 수 없습니다.]

옥상이 무너진다.

학교가 녹아내린다.

하교(下敎)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트라우마 구현 종료.]

만약의 가능성이, 만일의 가정이, 만에 하나의 가설이 검은색 허공에 파묻힌다. 살천성이 지은 웃음도. 내가 알지 못한, 원장 선생님의 어린 시절 모습도. 한 명이 미소를 지으며 다른 한 명이 울고 있는, 두 명의 동급생도.

과거가.

실패해버린 과거의 시간이. 후회가. 회한이.

[피대상자의 자아가 유지된 것을 확인.]

전부 사라진다.

[페널티를 종료합니다.]

세상은 노이즈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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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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